어머니의 비밀

2

 

이윽고 소사 박로인이 교장실로 들어왔다.

《박서방, 졸업반 1조 학생 손영옥이 좀 찾아서 빨리 데리고 오우.》

김치선은 박로인에게 말하고나서 다시 장교놈과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대좌님, 이번 려행은 물론 군사관계이시겠죠?》

《그건 묻지 마시오. 비밀려행입니다. 지금 쏘련에서 탄도로케트를 성공했고 또 인공위성을 성공했습니다. 미국엔 큰 타격입니다. 미국이 타격을 받으면 한국은 북한공산주의자들에게 먹힙니다. 정신채리시오, 미스터 김! 북한은 지금 3개년계획을 완수하고 제1차 5개년계획에 들어섰습니다. 그 계획이 이루어지는 날이면 도저히 미국의 힘으로도 꺾지 못합니다. 그 계획이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 미국의 힘으로 북한을 쳐부셔야 합니다. 그런데 쏘련에서 탄도로케트와 인공위성에 성공했으니 큰 야단났습니다.》

장교놈은 약간 초조해진 표정으로 말을 하다가 다시 태연해지며 《그렇지만 문제없습니다. 우리 미국의 과학은 얼마 안 가서 반드시 쏘련을 이길것입니다. 한국국민들 미국을 믿어야 합니다. 학교교육 가장 중요합니다. 미스터 김! 정신채리시오.》 하고 교만스럽게 김치선을 바라보았다.

이때 문기척소리가 들리더니 녀학생 두명이 다과를 들고 들어왔다.

녀학생 한명은 커피를 차잔에 공손히 따라놓고 가볍게 인사를 하며 뒤로 물러섰다.

《오오- 고맙습니다. 커피 잘 끓였습니다. 냄새 매우 향기롭고 구수합니다. 학생들 여기 앉으시오.》

장교놈은 두 녀학생에게 시선을 돌리며 그 음침하게 생긴 두눈에 웃음을 띠웠다.

두 녀학생들은 엉거주춤하고 잠간동안 섰다가 서로 눈짓을 하고 그대로 교장실을 나가버리였다.

이윽고 문을 두드리며 박로인이 들어왔다.

《손영옥이 아무리 찾아두 보이지 않습니다.》

《별관쪽에 가봤소?》

《네.》

《그만두!》

김치선은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자기가 벌떡 일어나며 장교놈에게 잠간 앉아있으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휙 나왔다.

김치선은 영옥이를 찾아다 장교놈앞에 세워주어야만 할 어떤 의무나 있는듯이 현관을 나서서 운동장을 한번 휙 둘러보았다.

그러나 음산하고 거치른 바람이 락엽과 먼지를 날리는 운동장에는 녀학생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김치선은 얼른 별관쪽으로 건너가서 기숙사뒤 아늑한 잔디밭쪽을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군데군데 두세명씩 떨어져 앉아 무슨 책들인지 읽고있는 녀학생들이 눈에 띄였다.

저편쪽 멀리 혼자 떨어져 속사첩을 무릎우에 올려놓고 팔짱을 낀채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수그린 학생 하나가 눈에 띄였다. 바로 손영옥이였다.

류치장에서 나온 뒤 영옥은 학교에 나올 생각이라고는 없었다.

같은 사건으로 검거되였던 조선희와 백인자가 아직도 석방되지 못했을뿐만아니라 10여명이나 되는 동급생들이 정학처분을 당하여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있는 판에 맹휴사건의 주동인물인 자기의 립장으로서 끄덕끄덕 학교에 나오기가 량심상 허락되지 않았던것이다.

자동차에 태워 자기 집까지 데려다준 그날 밤 김치선은 영옥이만은 무죄로 석방시켰으니 정학처분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곧 학교에 나오라고 생색을 내고 갔던것이였고 또 어머니도 《얘, 좋으나궂으나 졸업장은 있어야 되잖겠니! 이제 몇달 안 남았는데 꾹 참고 댕기렴!》 하고 간곡하게 권고하는 바람에 영옥은 나오기 싫은 학교이지만 어쩔수없이 어머니의 말대로 다니기로 작정했던것이다.

그러나 영옥이는 학교에 나와서나 집에 가서나 또는 길을 걸을 때나 온종일 기분이 명랑치 못한채 울분속에서 그날그날을 보내왔다.

조선희와 백인자가 29일씩 구류처분을 받고 홍선생이 형무소까지 넘어가게 된것을 생각할 때 영옥은 얼굴을 버젓이 들고 학교를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자기가 선희와 인자와 홍선생에게 죄를 모두 둘러씌우고 자기만 혼자 교묘하게 무죄로 석방된것이라고 학생들이 손가락질하는것만 같아 마음이 노상 괴로웠기때문이였다.

학교에 나와서도 그전처럼 자기를 가까이 하는 학생이 별로 없었고 또 자기도 자연 다른 학생들과 가까이 하고싶은 용기도 의욕도 나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이렇게 혼자 떨어져 무거운 고민에 잠기고있는것이였다.

김치선은 손영옥을 발견하자 그쪽으로 바삐 걸어갔다.

《영옥아!》

김치선의 목소리에 놀란 영옥은 벌떡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했다.

《얘, 어디 아프냐?》

《아, 아니요.》

《잠간 내 방에 같이 가자. 좋은 일이 있다!》

영옥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김치선을 따라갔다.

영옥은 운동장에 서있는 자동차가 약간 이상스럽게 보이였으나 그것이 자기를 끌고 가려던 그 장교놈이 타고 온 차란것을 전혀 알수 없었다.

김치선을 따라 교장실로 들어갔을 때 영옥은 깜짝 놀랐다. 마치 징그러운 구렁이라도 만난것처럼 전신에 소름이 쭉 끼치였다.

《오오- 미쓰 손!》

장교놈은 흉물스런 웃음을 띠고 손을 내밀어 영옥이앞으로 다가서며 악수를 청했다.

영옥은 별안간 대들어 자기 손을 덥석 쥐는 그놈의 손을 자기 기운으로서는 뿌리칠수가 없었다.

영옥은 끝없이 불쾌했다. 불쾌할뿐아니라 분격이 치받쳐올라와 참을수가 없었다. 연회가 벌어지던 날 밤의 사건과 아울러 홍선생이 이놈때문에 억울하게도 반미분자로 불리우고 게다가 맹휴사건선동자로까지 몰리여 형무소로 넘어간 사실을 생각할 때 또다시 치가 떨리였다.

《그래, 영옥이! 오늘 좋은 일 생겼어! 대좌님께서 영옥이헌테 선물을 주시겠대. 이번에 미국에 갔다오셨거던. … 따라가 선물을 받아오라구…》

김치선은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옥은 이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기의 신변에 또 무서운 위험이 닥쳐왔다고 생각되였기때문이다.

영옥은 어름어름할 때가 아니라는듯이 《싫어요!》 하고 강경히 거절한 다음 재빨리 교장실을 휙 나와버리였다.

김치선은 당황하였다. 단박 뛰여가 문을 막지 못한것이 후회도 되였다.

장교놈도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김치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스터 김! 당신 교육 좋지 못합니다. 손영옥 왜 저렇게 나갑니까? 우리 미군 반대하는 학생 아닙니까?》

《아니올시다. 한국의 처녀들은 의례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랭정한듯 해도 속으로는 대좌님을 따라가 선물을 받고싶어할겝니다.》

김치선은 자기 체면을 세우기 위하여 이렇게 떠벌이였다.

《노오- 노오- 그렇지 않습니다. 미스터 김! 정직하지 못합니다.》

장교놈은 더욱 표정이 고약해지며 그 흉하게 푹 들어간 노랑눈에 노기를 띠웠다.

《이제 수일내로 내가 한번 영옥이를 데리고 대좌님 숙소를 찾아가죠.》

김치선은 여전히 아양을 떨었다.

《오우, 미스터 김! 정말입니까? 꼭 데리구 오시오. 선물 당신에게도 많이 드리겠습니다.》

장교놈은 자못 만족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다시 입을 벌리였다.

《그리구 미스터 김, 우리 장교구락부에 당신 학교 학생 매주 토요일마다 20명씩 보내시오. 우리 장교들 당신 학교 녀학생들 좋아합니다. 당신 학교 녀학생들 매우 아름답습니다. 우리 장교들 학생들에게 선물 많이많이 주겠습니다.》

장교놈의 돌발적인 요구에 김치선은 당황하였다. 그것은 연회가 벌어지던 날 밤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학부형들이 비록 조직된 힘이 못되고 개별적이며 분산적이였으나 맹렬히 항의를 해왔기때문이였다. 몇몇 과격한 언사를 쓴 학부형들은 경찰에 의뢰하여 《공무방해죄》로 몰아 구류를 시켜 다른 학부형들을 띠끔하게 억압해두긴 했지만 이번에 또 그러한 요구를 들어준다면 학부형들이 그대로 참고있을것 같지 않았고 또 일부 신문에 보도되여 사회적여론이 비등될것이 념려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김치선은 스틸맨의 요구를 거절할수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스틸맨의 요구를 거절하는 날이면 반미분자로 불리워 그날 당장 밥줄이 끊어질것이 뻔한 일이기때문이다.

스틸맨은 《유엔군사령부》의 고급장교가 아닌가. 그는 마리야녀학교리사회 리사장이며 문교부 고문인 웰톤과 친한 사이인만큼 스틸맨의 전화 한마디면 자기의 모가지가 어디로 달아날지 알수 없는노릇이였다.

《미스터 김, 무얼 생각하시오? 결정하시오! 웰톤씨도 내 의견에 찬성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꼭꼭 보내시오. 그때 파티에 나왔던 학생들 20명 모두 아름답습니다. 그 학생들 보내시오!》

김치선은 이 순간 뒤에 올 화근이 걱정되였으나 스틸맨의 비위를 상해서는 안될것 같았으므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승낙하였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유엔군사령부 고급장교 많습니다. 한국 녀학생 모두다 사랑합니다. 우리 사령부 왜 서울로 옮겨왔는지 아십니까? 북한을 쳐부시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국사람 우리 미군헌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스틸맨은 만족스럽게 웃음을 띠우며 다시 김치선에게 요구했다.

《미스터 김! 손영옥 또 한번 불러주시오! 그 학생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 학생 미국에 보내서 공부시킬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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