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련

5

 

형사놈은 담배를 피우면서 또 한번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뭉치를 만져봤다.

적어도 3만환은 틀림없다고 생각되였다.

김치선이가 교복대 40만환을 이번 사건통에 어름어름하고 집어삼키려는 수작인것을 눈치빠른 그놈은 모르지 않았으나 그것을 모르는체 눈감아주고 그보다 더 큰 자리를 뚫어 그에게 바가지 씌우고싶은 생각이 없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오늘 밤 영옥이를 김치선이의 요구대로 석방시켜줌으로써 그 교환조건으로 학생 하나를 도중에 입학시켜 중간소개비와 학교에 낼 기부금을 자른다면 50만~60만환쯤은 넉넉히 착복할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영옥이를 그 미끼로 석방시키려는것이였다.

물론 영옥이가 맹휴사건의 중심인물인만큼 더 구금해두고 취조해야 할터이지만 김치선이가 서장과 계장에게도 《꾹돈》을 쓴 모양인지 태도가 강경하던 서장으로부터 갑자기 영옥이만은 오늘 밤 석방하라는 명령도 있고 해서 담당형사놈은 떳떳이 영옥을 석방시킨것이였다.

《자 영옥아, 가자. 집에서 널 얼마나 기다리겠니?》

김치선은 영옥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영옥은 갑자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걱정하고있는 얼굴이 눈앞에 선히 떠올라왔고 얼른 집에 돌아가고싶었다.

그러나 웬 일인지 그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홍선생과 조선희와 백인자를 류치장에 그대로 놔두고 자기만 먼저 석방된다는것이 께름했고 또 그들의 앞일이 걱정되였기때문이다.

벽을 사이에 둔 취조실에서는 찬수가 형사놈에게 취조를 받고있었다.

《글쎄 이 자식아, 자꾸 부인하면 어떡해? 영옥이는 오늘 밤 석방되는것 알지? 영옥이가 왜 석방되는지 모르니? 영옥이는 죄가 없단 말이야. 영옥이 입에서 다 나왔어. 그렇기때문에 영옥이는 석방된단 말야. 모든 죄는 네가 다 책임져야 돼!》

형사놈은 거친 목소리로 으르렁대였다.

그놈에게서도 술냄새가 몹시 풍기였다.

찬수는 슬그머니 이상한 생각이 치솟아올랐다.

영옥이가 갑자기 석방된다는것은 자기에게 죄를 둘러씌우고 또 조선희와 백인자에게도 죄를 씌우고 자기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것처럼 부인했기때문이 아닌가?

등치고 배만지는 간악한 경찰의 취조방법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소박한 찬수는 이 순간 너무도 허전하고 섭섭한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올랐다.

역시 아직 나이가 어리고 고생을 해보지 못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다만 순진한 처녀의 마음이란 이런 비상한 경우에는 믿을수 없는것이라고 느껴졌다.

찬수는 그때 영옥이가 자기의 복직문제를 들고 동맹휴학까지 하겠다고 했을 때 자기가 복직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기왕에 고조되고 흥분된 학생들의 정의감과 의분을 꺾을수 없었기때문에 《하려면 철저히 해라!》 하고 격려해주던것이 새삼스럽게 회상되였다.

영옥은 형사놈의 고문에 못이기여 정녕 그런 말까지도 낱낱이 해가면서 자기에게 맹휴사건의 선동책임을 전가한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였다.

학교에서 억울하게 면직을 당한것도 또 오늘 경찰에 체포되여 고문을 당한것도 모두가 영옥이때문이란것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영옥이가 그렇게까지 자기에게 죄를 둘러씌울수 있을것인가?

찬수는 생각할수록 서글프고 쓸쓸해지기만 했다.

뿐만아니라 지금까지 영옥이에 대해 품어온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왔던 인상이 저도 모르게 허물어져가는 환멸의 비애를 느끼였다.

이때 별안간 이웃 어느 취조실에서 녀자의 비명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였다.

그것은 틀림없는 조선희나 백인자의 비명소리라고 생각되였다.

찬수는 머리끝이 쭈삣해지며 전신이 부르르 떨리였다.

조선희와 백인자가 저렇게 고문을 당하는 판에 영옥이만은 석방될수 있을것인가?

찬수는 이 순간 영옥이가 원망스러웠고 한편 가벼운 증오심까지 솟아올랐다.

조선희와 백인자도 정녕 자기와 마찬가지로 영옥이를 원망하고 증오할것이 아닌가?

미술에 천성적소질이 있는것을 보고 너무도 영옥이를 지나치게 믿고 바라던 자기의 기대는 어느덧 종지부를 찍고만것 같았다.

찬수는 이런 생각에 쏠려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다.

《이 자식아, 왜 말을 안해? 영옥이가 몹시 밉겠지! 사실을 다 고백했으니 말야!》

형사놈은 빈정거리며 찬수를 쏘아보았다.

이웃 취조실에서는 아까 들리던 녀자의 비명소리가 연거퍼 들려왔다.

찬수는 조선희와 백인자가 너무도 가엾게 생각되였다.

그들이 누구때문에 저렇게 고문을 당하는것인가 따져보았을 때 그는 가슴이 뛰고 설레여 참을수가 없었다.

이윽고 찬수는 형사놈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영옥이를 석방한것처럼 조선희와 백인자도 석방시켜주시오. 조선희와 백인자도 영옥이와 마찬가지로 아무 죄도 없는 처녀들입니다.》

찬수의 어조는 심각하였다.

《이 자식아, 건방진 소리말아! 네가 석방하란다구 석방해? 힝-》

형사놈은 고함을 꽥 질렀다. 그리고는 취조서에 무엇을 자꾸 써넘기고있었다.

벽을 사이에 둔 형사실에서는 영옥이가 여전히 그대로 서있었다.

《아니, 영옥아! 너 왜 그러니? 어서 가자, 집에! 응?》

김치선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전 홍선생님에게 죄를 둘러씌우고는 석방되기 싫어요. 홍선생님은 아무런 죄도 없어요. 왜 홍선생님은 석방 안하세요? 조선희두 백인자두 다 죄가 없어요!》

영옥은 거의 울상이 되며 말했다.

《얘, 너 정말 철딱서니두 없구나. 석방을 시켜줘두 안 나가는 아이가 어디 있니? 아마 경찰서 생겨나서 처음 있는 일일거야.》

담당형사놈은 빙글거리며 김치선을 향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교장선생, 어서 데려가십쇼. 이미 석방을 한 이상 귀찮습니다.》

《어서 가자.》

김치선은 영옥의 등을 밀고 형사실을 나왔다.

영옥은 어찌되여 자기가 이렇게 쉽사리 석방되는지 암만 생각해봐도 알수 없었다.

자기가 이렇게 정말로 석방이 될줄 알았더라면 아까 류치장에서 나올 때 조선희와 백인자와 홍선생의 모습을 더 좀 살피며 신호를 주고 나왔을걸 하고 후회되였다.

과연 홍선생은 언제나 석방될것이며 조선희, 백인자는 또 언제 놓여나올것인가?

영옥은 경찰서정문을 나설 때까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불안스럽기만 했고 안타까왔다.

김치선은 영옥이의 손을 이끌어 자동차에 태웠다. 자동차는 깊이 잠들어가는 밤거리의 정적을 깨뜨리며 경적을 뿌-웅 하고 울리며 달리였다.

찬수는 어렴풋이 들려오는 경적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영옥이를 생각했다. 혹시 그 경적소리가 영옥이를 태워가는 경적소리나 아닌가 생각되였을 때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영옥이가 내게 죄를 둘러씌우고 석방된거라면 조선희와 백인자의 죄도 내게 둘러씌우고 석방시켜주시오.》

찬수는 흥분된 어조로 형사놈에게 간청하였다.

물론 자기 요구가 관철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때때로 귀에 들려오는 그들의 비명소리가 너무도 애처롭기때문이였다.

《흥, 이 자식아! 이젠 조선희와 백인자를 바람내놀 작정이냐? 힝-》

형사놈은 코방귀를 뀌며 빈정거리였다.

《남의 인격을 모욕하지 마시오.》

찬수는 항의했으나 형사놈은 들은듯만듯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취조를 중단하고 찬수를 그대로 류치장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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