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련

3

 

밤이 깊어지자 류치장안은 씻은듯 고요해졌다.

찬수는 방망이로 맞아 멍들고 부어오른 온몸이 몹시 쑤시고 욱신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아픔을 잊기 위하여 잠을 이루려 했으나 잠은 오지 않고 정반대로 새록새록 모든 기억이 샘솟아오르기만 했다.

그는 아까 영옥이가 죽지가 늘어져 고문실에서 형사놈에게 끌려나오던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리였다.

영옥이가 류치장에 구금당하고 그 혹심한 고문까지 당한것은 모두 자기때문이라고 생각되였을 때 그는 갑자기 영옥이에게 미안한 생각과 동정심이 함께 북받쳐올라왔다.

선생의 억울한 면직처분을 보고 학생으로서 학교당국에 복직문제를 제기한것은 의젓하고 떳떳한 일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거늘 어찌 그것을 범죄로 몰아 류치장에 가두어놓고 고문을 한단 말인가?

사랑스럽고 깨끗하고 순진한 조선의 녀학생이 술에 취한 미군장교놈의 추악한 발톱에 긁히여 비명을 올리던 그 아슬아슬한 순간 그것을 보고 선생으로서 그를 구해낸것이 어찌 죄란 말인가? 그것이 무슨 반미사상이며 무슨 미군에 대한 폭행이란 말인가? 설령 그렇다치더라도 그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찬수는 생각할수록 분했고 억울했다.

찬수의 곁에 누웠던 학생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더니 슬그머니 찬수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떠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바루 미술선생님이시죠?》

《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언제인가 녀학교앞으로 지나다가 선생님이 학생들 그림을 지도하느라구 오락가락하시는걸 봤습니다.》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그런데 학생은 무슨 사건입니까?》

《나두 마리야녀학교사건에 관련되였습니다.》

학생의 이 말에 찬수는 깜짝 놀랐다.

《내 누이두 졸업반 학생입니다. 파티인지 뭔지 열리는 날 밤 내 누이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미군장교놈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들어오기에 나는 죽어라 하고 두드려팼죠. 내 누이는 지금 앓아누웠습니다. 나는 조선녀학생들을 미국놈에게 창녀로 팔아먹는 마리야 교장놈에게 항의했습니다. 그것은 학부형으로서 나의 정당한 항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공무방해죄로 체포되였습니다.》

찬수는 학생의 억울한 이야기를 듣자 전신이 부르르 떨리였다.

학생은 또다시 가만히 소곤거리였다.

《그날 밤 모욕을 당한 10여명의 학생들의 학부형들에 대하여 이놈들은 신경을 날카롭게 돌리고있고 또 일부 학부형들을 속속 검거해들이고있습니다. 지금 이 류치장에도 세명의 학부형이 체포되여 들어왔습니다.》

찬수는 또 의외의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학부형들은 선생을 면직처분한데 대하여 극도로 분개하고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간섭으로 학부형회를 소집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렇지만 모욕을 당한 학생들의 부형이 어찌 그대로 참고있겠습니까? 난 석방되여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학부형회를 열어서 교장배척운동을 일으킬 작정입니다.》

학생의 목소리는 가늘었으나 흥분되였고 의분에 불타올랐다.

이때 갑자기 형사실로 통한 층계로 요란한 구두발소리를 울리며 형사 하나가 뛰여내려왔다. 그놈은 굵은 목소리로 《손영옥이 나와!》 하고 고함쳤다. 그놈은 바로 아까 낮에 영옥을 고문실에서 끌고 나오던 그놈이였다.

그놈은 술냄새를 풍기며 류치장안의 공기를 흐리터분하게 했다.

간수녀석은 열쇠를 가지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더니 영옥이가 갇힌 감방문을 열고 그를 끌어냈다.

찬수는 어느 틈에 일어나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창살문밖을 뚫어지게 내다보았다.

영옥은 쩔뚝거리며 걸어나오고있었다.

영옥이의 시선이 찬수의 눈길과 마주쳤으나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주고받지 못했다.

찬수는 영옥이의 피기가 없고 해쓱한 모습에 또다시 놀라며 걱정이 되였다.

《영옥이, 소지품있나?》

《…》

간수녀석은 령치궤짝을 열고 영옥이의 속옷끈과 빈침, 구두를 내여주었다.

영옥은 끈으로 속옷을 졸라매고 빈침으로 치마허리를 단단히 조였다. 그리고는 신발을 신었다.

형사놈은 영옥이를 데리고 층계우로 올라섰다.

찬수는 영옥이가 혹시 석방되는것이나 아닌가싶었다. 그러나 대낮에 그렇게까지 혹심하게 고문을 하던 영옥이를 별안간 석방시킬수가 있을가? 심히 의심스럽기도 했다.

《영옥이가 석방됩니다. 좀 이상스럽습니다.》

학생은 찬수의 곁에서 의심스런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찬수는 우두커니 앉아서 정신없이 영옥이가 쩔뚝거리며 나가는 뒤모양만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무엇이 자기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겼기때문이다.

《이 자식아, 뭘 그리 쳐다보고있어!》

간수녀석이였다. 그놈은 목도끝을 창살안에 집어넣어 찬수의 머리를 갈긴것이였다.

찬수는 팩 하고 쪼개지는것 같은 머리를 두손으로 짓누르며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쓰러졌다.

손가락사이로 끈끈한것이 흐르고있었다. 얼른 손을 떼여보았을 때 찬수는 진저리를 치며 놀랐다. 새빨간 피가 손가락사이로 흘러서 손등을 붉게 물들이고있었기때문이다.

학생은 재빨리 자기 속옷자락을 찢어서 찬수의 머리를 동여매주었다.

곁에서 목격한 사람들도 자기들이 아끼던 휴지들을 꺼내여 흘러내리는 피를 씻어주었다.

깨여진 머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배여올랐고 귀밑으로 주르르 흘러 떨어졌다.

이때 술에 취한 형사 두놈이 층계를 내려와 조선희와 백인자를 끌어내갔다.

《저런 개만도 못한 놈들, 취조를 구실삼아 이 밤중에 녀학생들을 끌어내가는것 좀 봐!》

학생은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짓찧으며 분격을 참지 못했다.

찬수도 욱신거리는 머리를 짓누르며 이를 앙다물었다.

자기때문에 순진한 처녀들이 개만도 못한 놈들에게 롱락을 당하지나 않나 생각되였을 때 그는 자기 아픔도 잊고 걷잡을수 없는 분격에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였다.

간수녀석은 찬수의 머리를 갈겨 피를 흘려놓고도 의례 있는 일이라는듯이 시치미를 떼고 뚜벅거리며 감방앞을 오락가락하기만 했다.

찬수는 점점 더 진통이 심한 머리를 두손으로 짓누르며 어느 틈에 마루바닥에 쓰러져버렸으나 이윽고 얼마 안돼서 《홍찬수!》 하고 독살스럽게 부르는 형사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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