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련

2

 

찬수는 취조서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자기와 문답한 내용가운데서 찬수는 놀라지 않을수 없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 (문) 마리야녀학교 기념연회가 벌어지던 날 밤 미군장교에게 폭행을 가한것은 반미사상의 표현이 아닌가?

(답) 네, 그렇습니다.

(문) 마리야녀학교에 복직하기 위해서 손영옥에게 지시를 주어 동맹휴학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는가?

(답) 네, 했습니다. …

찬수는 이런 구절에 대하여 그대로 참을수 없었다. 그것은 자기가 시인하지도 않은것을 강제로 꾸며넣은 《답》이기때문이다.

《난, 이 조서에 지장찍을수 없습니다. 사실이 아닌것을 이렇게 시인할수 있습니까?》

찬수는 정색을 하고 항의하였다.

《뭣이 어째? 이 자식 맛을 좀 톡톡히 봐야만 하겠니?》

형사녀석은 벌떡 일어서며 《이 자식 일어나!》 하고 찬수의 등을 밀어 취조실밖으로 내몰았다.

찬수는 무슨 영문인지 잘 알수 없었다.

《이 자식아! 날 따라와!》

형사녀석은 찬수를 끌고 지하실층계로 내려갔다.

침침하고 음산한 지하실이였다.

이방저방에서는 탁, 탁 하고 장작패는것 같은 매질소리, 그와 함께 비명올리는 소리, 엉엉 우는 녀자의 목소리, 고함치는 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무시무시하고 처참하게 들려왔다.

찬수는 이 지하실이 본격적인 고문실이구나 하고 생각되였다. 그는 전신이 부르르 떨리며 긴장되였다.

자기도 저렇게 고문을 당할것만 같았기때문이였다.

형사에게 끌려 복도를 걷던 찬수는 어느 고문실에선가 문이 열리며 전신에 물벼락을 맞고 나오는 한 녀학생을 보았다.

《?!》

찬수는 별안간 주춤하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 녀학생은 바로 영옥이였기때문이다.

영옥은 심한 고문을 당한 흔적이 얼굴에 력력했고 두다리를 쩔뚝거리며 겨우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아, 영옥이!》

찬수는 입을 벌리며 영옥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영옥은 깜짝 놀라며 발길을 멈추려 했으나 형사녀석이 그들에게 멈출 기회를 줄리 없었다.

《이 자식아, 여기가 련애하는 장손줄 아니? 들어가, 이 자식아!》

찬수는 어느 틈에 형사놈에게 등을 밀려 영옥이가 나온 그 고문실로 끌려들어갔다.

세멘트바닥인 이 고문실에는 한가운데 큰 물통이 있고 공중에는 고리쇠가 달려있다.

찬수의 발목을 묶은 형사놈은 그를 공중에 거꾸로 매달아 줄을 늦추어 얼굴을 물통에 처박기 시작했다.

찬수는 가슴이 미여지고 오장륙부가 낱낱이 뒤집혀져버리는것만 같은 고통을 참을수 없었다.

영옥이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거꾸로 매달려 물을 먹이고 고문을 한것이라고 생각되자 찬수는 치가 떨렸다.

《너 이 자식! 지장을 찍으라면 찍지 무슨 반항이야?》

형사놈은 줄을 더 늦추어 가슴이 잠기는데까지 처박아놓았다.

그러다가 그놈은 심심하면 줄을 당기여 끌어올려보기도 하고 또 늦추어 처박기도 했다.

찬수는 처음 비명을 질렀으나 곧 그치고말았다. 귀와 코와 입으로 사정없이 치밀어들어오는 물을 도저히 막아낼수가 없었고 마침내 숨을 쉴수가 없었다. 이윽고 찬수는 의식을 잃고말았다.

형사녀석은 찬수의 발목을 끌러 세멘트바닥에 쓰러뜨려버리였다.

그리고는 전신에 찬물을 끼얹었다.

얼마후에 찬수는 겨우 의식이 들기 시작했다.

형사놈은 찬수를 잡아일으켜 등을 떠밀어 복도로 내몰았다.

찬수는 머리가 어지럽고 팔과 다리가 몹시 아팠으나 어쩔수없이 비틀거리며 형사녀석에게 끌려 지하실복도를 한참 돌아갔다.

거기에는 동물원에서 보는것과 같은 쇠창살방이 주르르 잇달려있었다. 류치장이였다.

찬수를 끌고 온 형사놈은 간수에게 찬수를 인계하고 사라져버렸다.

《이 자식, 꼴 조오타. 물에 빠진 새양쥐 같구나. 그래 이 자식아, 다짜고짜 들어오기도 전에 해수욕이냐?》

간수놈은 빈정거리면서 물에 젖은 찬수의 소지품을 빼앗고 허리띠를 뽑은 다음 류치장에 집어넣었다.

찬수가 들어간 감방안에는 근 1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있었다.

수염이 거의 닷푼가량이나 자란 텁석부리, 아직도 여름양복을 입고있는 사람, 귀밑까지 머리가 길게 자란 청년들, 학생들 그리고 어린 소년들 모두가 찬수에게로 시선을 돌리였다.

찬수는 감방에 들어가자마자 어지러워 정신을 잃고 한쪽마루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죽일놈들 같으니, 들어오기 전부터 저렇게 물고문질이야?》

《그놈들이 어디 사람이요? 미국놈의 개지.》

누구들인가 가만히 소곤거린다.

《그저 어서 망해라 망해! 저놈들 꼴을 안 보게!》

《그저 어서 통일이 돼야지!》

수염이 더부룩한 40살가량 된 사람이 한숨을 후우 하고 내 쉰다.

《쉬-잇!》

누구인가 신호를 주었다.

어느 틈에 간수녀석 하나가 감방문앞에 와서 주춤하고 서있다.

《누구야? 떠든 놈이!》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간수녀석은 저편쪽으로 부리나케 가더니 물담은 바께쯔를 들고 돌아온다.

《어떤 놈이냐? 어서 나와! 안 나오면 모두다 한꺼번에 물벼락 맞는거 알지? 어떤 놈이냐? 통일이니 어쩌니 한 놈이…》

간수녀석은 바께쯔를 들더니 류치장안으로 물을 쏟으려 한다.

《내가 말했소, 그게 무슨 죄요?》

젊은 청년 하나가 용감스럽게 가로막아나섰다.

《이 자식아, 너 여기가 어디라구… 이 자식 빨리 나와!》

간수녀석은 열쇠로 류치장문을 열고 그 청년을 강제로 끌어냈다.

일제경찰이 남겨놓고 간 격검대로 사정없이 그 청년을 후려갈기는것이였다.

《이 자식아, 공장에서 빨갱이짓 허던 버릇을 류치장에 와서두 할줄 아니? 어리석은 자식 같으니라구…》

청년은 팔다리가 늘씬하게 구타를 당한 뒤 거의 풀이 죽어 기다싶이 하여 감방안으로 들어왔다.

감방안은 잠간동안 무서운 침묵속에 잠기였다.

그러나 뒤미처 이 감방, 저 감방에서 《음-》, 《음-》 하고 뼈무는 소리와 함께 기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퍼졌다.

그들은 억울하고 분노에 넘치는 감정을 서로 말로써 호소하지 못하는 대신에 이렇게 《음-》소리와 기침으로써 항거와 격려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시위를 하는것이였다.

얼마후 학생 하나가 찬수의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앉으며 무엇인지 가만히 물었다.

찬수는 무엇을 묻는것인지 잘 몰랐고 또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으므로 그저 물끄러미 그 학생만 바라볼뿐이였다.

《마리야녀학교사건으로 들어오시지 않았습니까?》

학생은 또 은근히 물었다.

찬수는 벌써 감방안에까지 소문이 퍼진것으로 보아 사건이 상당히 확대된것이나 아닌가 생각되였다.

《녀학생들이 얼마나 검속되였나요?》

《열댓명 됐었는데 다 나가고 세명 남았습니다.》

《열댓명?》

찬수는 비로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마리야녀학교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실패했나 봅디다. 동맹휴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주동인물들이 다 검거됐으니 말이죠.》

학생은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선생님이 혹시 그 학교 미술선생님 아니십니까?》 하고 가만히 물었다.

《차차 이야기하죠.》

찬수는 아직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놓고싶지 않았으므로 얼버무려버렸다.

학생은 더 캐여물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담요를 찬수에게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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