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련

1

 

음산하고 습기찬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감나무잎사귀며 능금나무잎사귀는 우들우들 떨어져 공중으로 흩날린다. 이따금 대추알만 한 우박이 산골짝을 후려때린다.

찬수는 자기 방에서 전날 그리다 놓아둔 늙은 소나무에 채색을 하고있었다.

그는 이 그림에다 《불굴의 투지》라고 제명을 붙이고싶었다.

《불굴의 투지!》

찬수는 이 늙은 소나무를 자기 그림의 모델로 한것이 심히 기뻤고 만족스러웠다.

그는 오늘 일기가 좋았으면 화판을 메고 현장에 나가 좀더 관찰하면서 색칠을 하려 했던것이나 일기가 좋지 않아 그대로 하숙방에서 채색을 하고있었던것이다.

남쪽으로 향한 창문은 오늘따라 어두운 구름에 가리여 몹시 침침하였다.

찬수는 웬 일인지 마음이 스산하여졌다.

일기가 좋지 못할 때는 그의 기분도 날씨처럼 흐려지고 침울해지군 하였다.

그는 영옥이가 다녀간 이후 과연 학교에서 자기의 면직문제를 들고 동맹휴학을 일으켰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웬 일인지 영옥의 신변이 불안스럽게 생각되였다.

좀더 영옥이에게 단단히 부탁하지 못한것이 후회도 되였다.

물론 그것은 자기가 복직하고싶은 생각이 없었기때문이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문제를 너무 소홀히 대해준것만 같았다.

영옥이를 중심으로 상급생들이 학교당국에 자기의 복직을 요구하였을 때 교장 김치선이와 그 일파 간부교원들은 어떤 태도로 학생들을 대했을가? 얼른 영옥이를 만나 그 결과를 듣고싶었다.

갑자기 바람소리에 섞여 골짜기아래서 개짖는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혹시 영옥이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자기를 찾아오는것이나 아닌가싶어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열고 골짜기아래를 내려다봤다.

잎이 거의다 떨어진 능금나무와 추리나무 사이길로 누구인가 낯이 설은 양복쟁이 두사람이 비를 맞으며 찬수의 하숙을 향하여 올라오고있다.

찬수는 그 사람들이 혹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두런거리며 곧바로 찬수의 하숙집 대문앞까지 다달았다.

이윽고 그들은 마당으로 선뜻 들어서며 다짜고짜 찬수의 방문을 드르렁 열어제끼였다.

《당신이 홍찬수요?》

캡을 쓴 사나이 하나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찬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찬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들이 보통사람이 아니라 형사란것을 직감할수 있었기때문이다.

《왜 그러십니까?》

《어서 옷입고 나와! 우린 경찰이야!》

캡을 쓴 사나이가 문턱에 턱 걸터앉으며 말했다. 고무비옷에서 흐르는 물방울들이 방안에 뚝뚝 떨어졌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잔소리말구 나오라면 얼른 나와!》

《아, 생각해보면 알지, 묻긴 왜 물어!》

두 사나이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찬수를 쏘아보았다.

이윽고 한 사나이는 비옷을 입은채 방으로 들어왔다.

비옷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찬수의 화판우에 흘러 떨어졌다. 찬수는 그동안 노력과 정열을 다 바쳐 그려온 《불굴의 투지》가 뜻밖의 이 침입자들로 인하여 비방울이 떨어져 얼룩이 지고 결국 못쓰게 된걸 생각했을 때 몹시 불쾌하고 흥분되였다.

그 사나이는 찬수의 책장과 책상우를 일일이 뒤지더니 속사첩들과 책들을 골라내여 찬수에게 싸라고 명령했다.

《이 책들은 미술에 관한 서적들인데 무엇때문에 싸라는것입니까?》

찬수는 불쾌했으므로 항의해나섰다.

《건방지게, 잔말말구 싸란 말야.》

문턱에 걸터앉았던 녀석이 고함을 꽥 지른다.

찬수는 어쩔수없이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 책들을 싸기 시작했다.

그는 책을 싼 보퉁이를 들고 비가 줄줄 쏟아지건만 형사들에게 끌려 하숙을 나섰다.

찬수는 생각할수록 불쾌하였다.

자기가 무슨 큰 죄인이라고 비오는 날 이렇게 시외까지 나와 붙들어가는것인가? 암만 생각해봐도 까닭을 알수 없었다.

비옷도 입지 못한 찬수는 양복이 비에 젖어 단박에 후줄근해졌다.

골짜기에서 행길로 올라서니 그자들이 타고 온 찌프차가 한대 기다리고있었다.

찬수는 어쩔수없이 그자들의 찌프차에 올라타게 되였다.

두놈을 한꺼번에 요정내고 도망갈만 한 완력도 용기도 갖지 못한 찬수였다.

그자들은 두놈이 다 허리에 권총을 차고있었다.

찌프차는 자하문고개를 넘어 시가지로 들어섰다.

이윽고 찬수는 서대문경찰서앞에서 내려 그자들에게 이끌려 사찰계 형사실로 들어갔다.

찬수는 여러 시간을 우두커니 앉아서 처분을 기다리였다.

거의 해가 저물었을 때였다. 찬수는 자기를 잡아온 캡쓴 놈에게 끌려 형사실에서 취조실로 들어갔다.

《거기 의자에 앉아!》

사나이는 표독스럽게 말하면서 취조책상서랍에서 종이를 꺼내놓았다.

찬수에겐 생전처음으로 당하는 경찰취조였으므로 어쩐지 마음이 좀 불안스러웠다.

사나이는 찬수의 본적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경력을 상세히 물어 종이우에 써나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성을 왈칵 내며 《그래 이 자식아! 선생질이나 가만히 엎드려 할 일이지 되지 못하게 미군에게 폭행을 하고 게다가 학생들까지 선동해서 동맹휴학을 일으켜?》 하고 눈을 부라리였다.

찬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이 소리에 기가 막혀버렸다.

《난 미군에게 폭행하지 않았고 학생들을 선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찬수의 음성은 나지막하게 울렸다.

《뭣이 어째? 이 자식이 여기가 어딘줄 알구?》

《…》

《공연히 그러지 말고 솔직히 고백해라. … 왜 미군장교에게 폭행했으며 또 왜 동맹휴학을 선동했는가를…》

《난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뭐? 이 자식 봐라. 방맹이맛 좀 보고서야 말할테냐?》

그녀석은 취조실벽에서 야구방망이 같은 기다란 몽둥이 하나를 떼내여들더니 찬수를 사정없이 죽어라 하고 후려갈기는것이였다.

찬수는 뼈가 부러지는것 같은 아픔과 치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을수 없었다.

《내게 무슨 죄가 있다구 이럽니까?》

《너 이 자식아! 미군장교에게 폭행한 죄가 면직만 당하면 아무 일 없을줄 알았더냐? 힝, 병신이 꼴값한다더니만…》

형사놈은 방망이를 여전히 쥐고서 또 으르렁대며 고함쳤다.

찬수는 실로 맹랑하게 걸려들었다고 생각되자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경찰에 체포되여 이렇게 맞아가며 취조를 받을만 한 무슨 근거가 있단 말인가? 다만 영옥이가 한번 찾아와 이야기하고 간것밖에는 다른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혹시 영옥이의 입을 통하여 자기 이야기가 나왔다치더라도 영옥이는 결코 자기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않았을것이 아닌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기가 학생들을 선동한 아무런 사실도 없기때문이다.

《다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영옥의 입을 통해서… 영옥이가 네 하숙에 찾아갔을 때 너는 뭐라구 선동했니?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없다. 더 맞지 않으려거든 여기에다 지장 찍어!》

형사녀석은 찍찍 갈겨쓰던 취조서를 찬수앞에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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