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피복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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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영옥이와 미술선생과의 관계가 깊다는 무슨 근거가 있습니까?》

손종모의 질문에 김치선은 조금도 당황해보이는 기색이 없이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그야 우선 그날 밤 미술선생이 미군장교에게 폭행하고 대든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그것은 결국 반미사상의 표현이지만 그것이 폭발된 동기는 바로 영옥이와의 관계가 깊은데서 빚어진 대담한 행동이라고 보는것입니다. 홍선생이란 사람은 아무런 리해관계없이는 그런 대담한짓을 할만 한 사람이 못됩니다. 그는 평상시에 아주 온순한 사람이였으니까요!》

김치선은 잠시동안 말을 끊고 차를 마시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또 영옥이만 하더래도 그렇습니다.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몇몇 학생들과 휩쓸려서 미술선생의 복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내고 만일 자기들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는 동맹휴학을 하겠다고 학교당국을 위협하고있습니다. 손선생댁에서는 아드님도 그랬는데 또 따님까지도 이렇게 될수 있습니까?》

김치선은 은근히 손종모를 공박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음성을 낮추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사실 나두 딸자식을 키우는 사람이외다. 나는 선생의 심경을 모르지 않습니다. 물론 영옥이의 장래를 위하여 걱정되시겠지요. 나도 걱정이 안되는게 아닙니다.》

김치선은 손종모의 심경을 가장 잘 리해한다는듯이 근심스러운 안색으로 《그런데 손선생, 우리 좀 연구해봅시다. 어떻게 해서든지 영옥이를 감쪽같이 떼여냅시다. 어떻습니까? 손선생 의견은?》 하고 물었다.

마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듯 한 기색이였다. 손종모는 김치선의 이런 성의가 고맙지 않을수 없었다. 역시 오래동안 교육계에 종사한 그인것만큼 교육자다운 정신이 발현되였다고 생각되였다. 더구나 이러한 정신은 그가 그리스도교신자이기때문에 생겨날수 있었을것이라고 느끼여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어떻게든지 빼내만 주시면야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손종모는 김치선에게 마치 무엇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애원하였다.

김치선은 이 순간 몹시 만족한 얼굴로 자기앞에 고개를 숙인 손종모를 가긍스럽게 내려다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의 손아귀에 넉넉히 휘여잡을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유쾌해졌다.

《그러자면 손선생, 문제는 꼭 한가지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은 곧 운동빕니다.》

《운동비요?》

손종모는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물론 경찰에 구금될 형편에 처한 영옥이를 빼내오자면 막대한 운동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는 그 비용지출방법에 자신이 없었다.

다 큰 딸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비상수단으로라도 운동비를 마련하여야만 할것 같았으나 돈을 시급히 돌릴 방법이 막연하였다. 때문에 얼른 확답이 나오지 않았고 어느 틈에 그의 얼굴에는 걱정과 난색이 피여올랐다.

《물론 공장운영난으로 고통을 당하시는걸 잘 압니다. 우리 학교에서 드려야 할 교복대금두 오늘 못 드렸구 해서…》

김치선도 잠간동안 걱정스런 빛을 띠우더니 갑자기 손종모앞으로 얼굴을 내밀고 은근히 입을 벌렸다.

《손선생, 우리 이렇게 비상수단을 취해봅시다. 우리 학교에서 선생께 지불해야 할 돈을 림시변통으로 돌려서 쓰도록 합시다. 어쨌든 영옥이를 빼내와야 할게 아닙니까? 만일 손선생이 그것을 내게 일임하신다면 영옥이문제는 오늘 밤안으로 해결될겝니다. 아시다싶이 오늘 밤 영옥이가 어떤 고문을 당할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김치선의 이 말에 손종모는 머리끝이 찌르르해지며 몸서리가 쳐졌다.

과연 영옥이가 어느 정도의 일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일단 경찰에 끌려간 이상 오늘 밤에 어떤 지독한 고문을 당할는지 누가 알랴. …

손종모는 자기 살을 도려내는듯 한 쓰라림을 느끼였다. 아니 지금쯤은 이미 고문을 당하여 인사불성이 되였는지도 알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손종모는 어느덧 자기가 과거 3. 1운동때 거리에서 《조선독립 만세!》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뛰여나와 자기도 모르게 만세대렬에 가담했던 일이 회상되였다. 사실 그때 손종모는 만세를 변변히 부르지도 못하고 일제경찰에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당했고 29일만에 놓여나왔던것이였다.

(그때보다 몇십배 더 심한 전기고문이니, 치욕적인 라체고문이니 하는 끔찍한 고문을 영옥이가 당한다면 까딱하다가 죽어나오지나 않을가? 죽지 않더라도 바보가 되여 나오지나 않을가?)

손종모는 이런 생각을 하니 전신에서 진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김치선이가 말한대로 학교에서 받을 교복대금을 운동비로 써서 영옥이를 한시라도 빨리 구해내와야 할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40만환을 경찰의 아가리에 몽땅 처넣기는 너무도 아깝고 억울하였다.

더구나 그 사용권을 김치선이에게 일임한다는것은 더욱 기막힌 일이 아닌가!

그 돈 40만환은 결코 경찰의 아가리에 처넣어줄 돈이 아니라 자기 공장 로동자들의 임금으로 사용되여야 할 돈이 아닌가!

손종모는 잠간동안 이런 생각에 잠기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한시가 급한 영옥이의 문제를 뒤로 돌릴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그까짓 40만환이 무엇이냐? 수백만환의 미수금을 받지 못하고있는 이 판에… 그까짓것을 아끼다가 딸자식을 죽일수야 없지 않는가!)

손종모는 결국 비장한 결심을 하고 40만환의 사용권을 김치선에게 일임하지 않을수 없었다.

《좋습니다. 모든것을 교장선생께 일임합니다.》

《내 지금 바루 또 경찰서에 가서 서장을 만나겠습니다. 되도록 오늘 밤 통행시간이내로 석방시키도록 하겠습니다. 40만환이란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닌만큼 당장 효력이 발생될겝니다.》

김치선은 빙그레 웃으며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어쨌든 오늘 밤안으로 꼭 석방만 시켜주십시오.》

손종모의 목소리는 태연하려 하였으나 몹시 떨리였다.

《네, 념려마십시오. 그리구 아까두 말씀드렸지만 이번 기회에 공장경영방법을 바꾸시도록 하십시오. 내 끝까지 협조해드릴테니깐…》

《네.》

손종모와 김치선은 함께 일어섰다.

김치선과 헤여진 손종모는 터벅터벅 밤거리로 힘없는 발길을 옮겨놓았다.

비기운을 품은 찬바람이 큰 거리우를 휩쓸자 그는 추위를 느끼면서 뒤골목으로 들어섰다.

컴컴한 뒤골목, 거지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손종모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돈을 달라고 애걸하였다.

《이녀석들, 비켜!》

손종모는 고함을 쳐서 거지들을 물리치고 터벅거리며 걸어나갔다. 단 한푼의 돈이 아까와 거지에게 주지 않는 자기가 오늘 밤 40만환의 대금을 손쉽게 경찰의 아가리에 넣어주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을 생각하니 몹시 불쾌하고 우울하였다.

영옥이가 그렇게 가로꿰져 자기를 괴롭히는것은 오직 아들놈 영준이때문이라고 생각되자 그는 맹숭맹숭한 기분으로는 도저히 집에 들어갈수가 없었다.

뜻하지 않았건만 그의 발길은 저절로 어느 선술집앞에서 멈추어졌다.

그는 연거퍼 곱배기로 네댓잔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휙 나왔다.

그는 혼자서 술집에 들어온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고 또 선술집 같은데에는 웬 일인지 창피한 생각이 나서 잘 들락거리지 않았건만 오늘만은 그런 생각을 초월해버렸다.

그는 전차를 탈 생각을 단념하고 그대로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문간에 이르자 긴장이 풀리여 정신을 잃고 겨우 마누라의 부축으로 방에 들어가 쓰러져버렸다.

얼마후에 통행금지를 알리는 고동이 울렸다. 그러나 영옥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손종모는 고동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부시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마루로 나갔다. 그는 마루우에 놓여있는 의자에 철퍽 앉으며 전화통을 끌어당겨 김치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얼른 걸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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