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피복공장

8

 

수화기에서는 분잡스러운 쟈즈음악이 흘러나왔다.

《손선생이시오? 나 교장 김치선이올시다. 지금 꼭 좀 만나뵈워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여기는 다방 <뉴욕>입니다. 곧 좀 오실수 없으십니까?》

《아니, 무슨 급한 일인지요?》

《좌우간 만나뵙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네, 그럼 곧 가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손종모는 잠간동안 생각해보았다. 대체 무슨 일로 김치선이가 자기를 만나자는것인가? 그는 자못 궁금하기도 했고 또 불안스럽기도 했다.

그는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또 어딜 가시우?》

마누라가 마당에서 나타나며 물었다.

《교장이 좀 만나재. 그런데 영옥이는 왔소?》

《아직 안 왔어요. 오늘은 좀 늦을는지 모른다구는 했지만…》

마누라는 어느덧 손종모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흥, 난 모르겠수! 그 계집애가 암만해두 요새 수상하우. 또 자하문밖에 나가지 않았소?》

《원, 당신두… 자식을 그렇게 못 믿으면 어떡하시우. 또 설사 그런다치더래두 다 큰 자식을 꺾을 재주 있수? 영준이 보시구려. 당신이 그렇게 심히 잡두리했지만 어디 당신 말대루 됐수? 당신 말마따나 가루꿰져 나갔으니…》

《듣기 싫우. 그게 다 임자때문이요. 공연스리 데리고 들어온 자식처럼 싸돌리더니만 그래 잘됐소. 잘돼! 어디 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때갔는지 누가 안단 말이유? 그래 제발루 버젓이 걸어들어올 때가 있을줄 알우? 힝!》

손종모는 어느덧 마누라에게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바루잡히면 제발루 버젓이 돌아오지 않으리!》

마누라도 한마디 쏘아던지며 새초롬했다.

《흥! 임자두 영준이놈헌테 물이 들었단 말야.》

손종모는 다시 퉁명스럽게 고함을 치면서 대문짝을 화닥닥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는 종로부근에 이르자 전차에서 내려 다방 《뉴욕》으로 들어갔다.

아까 수화기에서 들리던 쟈즈곡이 또다시 반복되고 담배연기가 다방안에 자욱히 끼여있었다.

그는 웅성거리는 다방안을 휙 둘러보다가 한편구석에 앉은 김치선을 발견하고 곧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김치선은 혼자 앉았다가 손종모가 나타나자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를 청하였다.

《어서 앉으십쇼. 그래 오늘 수금원을 보내셨다는데 그만 학교에 좀 급한 사건이 생겨서 미처 거기 정신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러나 곧 해결해드리겠습니다. …》

김치선은 먼저 이렇게 말하고나서 손종모의 표정을 살피였다.

《아니 무슨 사건입니까?》

《네, 차차 숨쉬여가면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차는 무슨 차를 좋아하십니까?》

김치선은 손짓을 하여 녀급을 불렀다.

손종모는 다방이라고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와본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실 차맛도 무엇이 좋은건지 잘 알수 없었다.

《커피할가요?》

《예.》

손종모는 그저 대답하였다. 녀급이 눈치를 채고 물러가자 김치선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 손선생, 그런데 공장경영이 매우 힘드시죠? 가끔 내가 영옥이에게서 댁사정을 듣긴 합니다만…》

《네, 그저 선생님들 덕택으로 겨우 유지해나갑니다.》

《어떻습니까? 좀더 자본금을 투자해서 군수피복공장으로 전환하시는게…》

《글쎄올시다. 그럴수만 있다면야 좋지요만 아직 그런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러시겠죠. 그러나 공장을 유지하시려면 방향을 전환하셔야 될겝니다. 지금 민수산업이 어디 됩니까? 모두 문을 닫고 꺼꾸러지는 판인데…》

《그래서 사실 곤경에 빠졌습니다.》

《만일 방향을 바꾸실 의향이 계시다면 내가 그 다리는 놔드리겠습니다. 아주 확실한 계통을 잡아서…》

김치선의 이 말에 손종모는 어느덧 귀가 솔깃해졌다.

이미 망해가는 자기 공장을 그대로 고집할게 아니라 군수피복공장으로 전환할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말 교장선생님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내 공장은 살아날겝니다. 따라서 100여명 로동자들과 수백명 가족의 생활문제도 해결되겠죠.》

손종모는 간곡한 어조로 말하며 김치선을 바라보았다.

《네, 그럼 그 문제는 그렇게 해결해드리도록 하고… 오늘 또 한가지 손선생께 말씀드리려는것은 영옥이문젭니다.》

김치선은 정색을 하면서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손선생, 영옥이가 제 오빠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아니 무슨 사건이라두?》

손종모는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한채 김치선의 다음말을 독촉하였다.

손종모는 이 순간 어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네- 사실, 오늘 영옥이가 학교에서 큰일을 하나 저질렀습니다.》

《아니 무슨 일을?》

손종모는 깜짝 놀랐다.

《간단히 말하자면 학교정책을 반대하고 동맹휴학을 선동했습니다. 물론 영옥이 혼자서 한 일은 아니지만…》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

손종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전신의 맥이 홱 풀리며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영옥이는 경찰이 취조하고있습니다. 그 맹휴선동내용의 해석여하에 따라서는 정치성을 띨수도 있고 해서 경찰은 엄중하게 보고있습니다. 면직처분한 선생을 복직시켜달라는것은 학교정책을 반대하는것입니다. 면직당한 사람은 반미분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교장의 립장에서 학생들을 단 한사람이라도 류치장에 구류시키고싶진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지금 내가 경찰서장을 만나서 간곡한 부탁을 했고 특히 영옥이만은 죄가 없다고 력설하면서 오늘 밤중으로 집에 보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서장은 내 말을 존중할것입니다. 만일 내 말을 안듣는다면 나는 리사회를 움직일것이고 미군의 힘을 빌어서라도 무조건 끌어내올수 있습니다. …》

김치선은 제법 자신이나 있는듯이 손종모를 바라보며 가만히 말했다.

손종모는 고개를 수그리고 듣고만 있었다. 모든것이 자기가 상상했던대로 들어맞아간다고 생각되였다.

영옥이가 이렇게 가로꿰질줄은 벌써부터 느끼고있었지만 그동안 공장운영에 골몰하느라고 제때에 단속을 하지 못했던것이 후회되지 않을수 없었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영옥이를 퇴학을 시켜 집에 들어앉히든지 적당한데 시집을 보내든지 해버리면 이런 걱정은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였다.

《정말 교장선생님 뵐 낯이 없습니다. 내가 가정교육을 등한히 한 탓입니다. 그러나 어떡해서든지 오늘 밤에 석방시키도록 선생님께서 노력해주십시오.》

손종모는 낮은 목소리로 애원하였다.

《사실 영옥이는 령리한 학생입니다. 령리하기때문에 탈선하기 쉽습니다.》

《령리할게 뭡니까. 잔망하고 철따구니가 없고 아둔해 그렇죠!》

《그런데 혹시 손선생댁에 그전에나 요즈음 미술선생이 방문한 일 없습니까?》

《글쎄요, 별로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럼 혹시 영옥이가 미술선생을 찾아다닌 사실이 있는지 모르십니까?》

손종모는 김치선의 질문이 점점 이상한데로 파고들어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알기에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대개 학교에서 오면 집에 있고 또 내가 외출을 못하게 하니까요.》

손종모는 영옥이가 찬수를 찾아갔다온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이 영옥이에게 불리한 사실이 될는지 몰라 시치미를 떼고말았다.

그러나 김치선은 납득이 안된다는듯이 빙그레하고 괴로운 웃음을 띠우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건 손선생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영옥이와 미술선생과의 관계는 깊습니다. 미술선생이 면직당한 리유가 영옥이때문이란것은 아시겠지요?》

김치선의 이 말이 손종모의 귀에는 몹시 거슬리였고 기분이 좋지 못했다. 그는 긴장되고 심각한 표정으로 김치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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