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피복공장

7

 

박춘식에게 랭대를 당한 손종모는 몇군데의 고리대금기관에 들려봤으나 하루에 《1할 변》을 내면서까지 돈을 빌려올수는 없었다.

그는 화김에 술이라도 마시고 시간을 보내다가 로동자들이 다 헤여져갔을 때쯤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만 지나면 래일은 안 볼 그들이 아닌만큼 차마 그렇게 할수가 없어 빈털털이지만 어쩔수없이 공장으로 돌아왔다.

벌써 퇴근시간이 지났으나 100여명의 로동자들은 손종모가 혹시 돈뭉치라도 싸가지고 올가 하고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오늘 수금성적이 엉망이란것을 알았기때문에 우울한 표정들을 하고 앉아서 다만 얼마씩이라도 받아가려고 생각하고있었다.

손종모가 사무실에 들어와 의자에 앉자마자 사무원이 사이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래, 오늘 수금총액이 얼마나 되오?》

손종모가 먼저 사무원에게 물었다.

《겨우 8만 5천환가량입니다.》

《흥, 겨우 1할 수금했군!》

손종모는 서글프게 웃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가요? 로동자들은 모두다 지금 대기하고있는데요.》

《별수 없소. 우선 그것이라도 나누어줍시다. 각 작업장 책임자를 불러오우!》

《네.》

사무원은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손종모는 갑자기 태도를 고치며 《가만 있소. 그럴게 아니라 재봉실에 모두 모이도록 하우.》 하고 다시 지시를 주었다.

이윽고 공장안에서는 웅성거리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손종모는 사무실을 나와 공장으로 들어갔다.

웅성거리고 시끄럽던 공장안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손종모에게서 무슨 반가운 이야기나 시원한 말이 안 나올줄 알면서도 100여명 로동자들은 무슨 소리가 나오나 들어보려고 긴장된 표정들을 하고 입을 다문채 그의 얼굴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잠간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공장안에 모인 로동자들을 휙 한번 둘러본 손종모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에- 여러분께 할 말이 없소외다. 오늘 수금이 잘됐어야 나도 기쁘고 여러분도 기쁠텐데 일이 제대로 안됐습니다. 크게 믿었던 수금자리는 다 헛걸음이 되였쇠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어제오늘에 걸쳐서 애를 쓰고 다녔으나 고리대금까지도 잘되지 않쇠다.》

손종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로동자 하나가 불쑥 일어섰다. 그는 아까 낮에 대표로 자기 사무실에 들어왔던 김만국이였다.

《결국 그렇다면 오늘 또 빈손으로 돌아가란 말씀입니까? 절박합니다. 어떻게든지 해결해주셔야겠습니다.》

김만국의 어조는 제법 강경하였다.

로동자들의 표정은 이 순간 긴장되였다.

《아니 그래, 수금이 전혀 안되지는 않았지요? 그거라두 나누어달란 그 말입니다.》

한 로동자가 또 강경히 요구해나섰다.

손종모는 실로 곤경에 빠지고말았다.

물론 임금을 다문 얼마씩이라도 나누어줘야 할것이지만 수금된 금액을 가지고는 몇푼씩 배당되지도 않을것이며 또 그것을 다 나누어주고나면 래일 들이닥칠 세금독촉과 또 다문 얼마만이라도 밀어넣어야 할 은행과의 일도 터무니없이 될것이며 또 사실상 경영난에 빠지기는 했지만 공장에서 뜯어쓰던 자기네 용돈을 한푼도 만져보지 못할것이 은근히 걱정되지 않을수 없었다.

손종모는 생각다 못해 이런 의견을 제출했다.

《정말 사정들이 딱하게 되였소. 우선 당장 급한 불들이나 꺼야 할테니깐 먼저달처럼 반품해온 상품이라도 얼마간 나누어드리리다.》

로동자들은 고개를 수그리고 듣고만 있는데 한 로동자가 불쑥 입을 벌렸다.

《난 반품해온 상품은 싫습니다. 현금을 주십쇼. 철늦은 상품을 받아다가 뭘 합니까?》

《아니, 또 철늦은 반품으로 때우실 작정입니까? 힝- 우리를 다 굶겨죽이려고 그러십니까?》

한 로동자가 또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정말이지 빈손으론 집에 못 들어가겠습니다.》

《여봅쇼, 사장어른! 당신네는 그래도 하루에 세끼 끼니를 끓이지 않소? 원, 세상에 이럴수가 있소?》

공장안은 또다시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김만국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조용들 하시오.》

만국의 말에 장내는 슬그머니 조용해졌다.

《…사장어른, 우리가 오늘 임금지불을 요구한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공장사정을 잘 알기때문에 여태까지 참아온것입니다. 그러니 사장어른, 더 좀 힘을 쓰셔서 오늘만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주셔야겠습니다.》

김만국의 목소리는 침착하게 공장안을 울리였다.

손종모는 잠시 입을 열지 못한채 당황한 표정으로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

김만국은 자기와 처지가 같은 로동자들의 사정도 딱했지만 손종모의 사정도 심히 딱하게 생각되였다.

그러나 다문 얼마씩이라도 받아가지고 돌아가야만 할 형편이였으므로 그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사실 위탁판매에서 반품해온 상품들은 우리에게 나누어주어도 그것이 시장에 나가서 팔리지 않을것은 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장사정을 모르지 않는 이상 그거라두 나누어주시구 수금한 현금중에서 다문 얼마씩이라도 나누어주십시오.》

김만국의 요구에 로동자들은 공감이라는듯이 잠잠하였고 손종모는 곤난스러운 기색을 다시 얼굴에 띠웠다.

사실 그는 철늦은 반품이라도 나누어준다고 말은 했지만 전례에 비추어 로동자들이 반대할줄 알았었다. 그런데 김만국의 말에 잠잠하고있는것으로 보아 부득이 자기가 언명한대로 그것이라도 나누어주지 않을수 없었다.

비록 철은 늦었지만 한사람에게 두벌씩만 나누어주더라도 200여벌의 상품이 나가게 되지 않는가?

손종모는 약간 생각이 달라졌다.

망해가는 공장이지만 역시 그는 자기 재산에 대한 애착이 없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언명한대로 시행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이리하여 결국 로동자 매 사람앞에 현금 몇백환정도와 반품해온 여름샤쯔, 아동복 등이 두어벌씩 돌아갔다.

3개월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밀려온 그들에게 그것은 너무도 눈에 차지 않는 시장스러운것이였다.

일부 로동자들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은채 담배만 피웠다.

어떤 늙은 로동자 하나가 흥분된 얼굴로 말이 없더니 만국이에게로 다가서며 《여보게, 만국이! 자네는 대체 누구편을 드는건가? 그래 이따위 철늦은 반품을 나누어달라고 요구할게 뭐냐 말일세. 난 이따위 반품 싫으이. 그대루 강경히 버티면 다만 얼마라도 현금이 더 나올텐데… 원, 공연히…》 하고 자기 몫으로 돌아온 옷가지들을 그의 앞에 휙 내동댕이쳤다.

만국은 실로 딱하였다.

《령감님, 이 공장사정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공장은 망해가는 민수공장이란것을! 헌다는 군수공장이란것도 여러달씩 임금지불을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시잖아요?》

만국은 이렇게 말하여 그의 흥분을 누그러지게 했다.

령감은 잠잠하다가 슬그머니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서글픈 표정으로 공장문을 나가버리였다.

손종모는 자기 사무실로 돌아와 담배를 피워물고 한참동안 넋잃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로동자들은 하나둘 헤여져가고 공장안은 차차 고요해졌다.

손종모는 새삼스럽게 자기 공장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기에 처해있는것이 오늘 더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는 때때로 한두번도 아니고 이런 무리한 수단과 방법으로는 자기 공장을 계속 운영할수 없을것만 같았다.

손종모는 생각할수록 초조해졌고 새삼스럽게 8.15해방직후의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때 일제자본가가 경영하던 대규모의 군수피복공장들은 그만두고라도 2류, 3류에 속하는 적산피복공장 하나 차지하지 못하고 무엇때문에 지금까지 아득바득 밑천이 딸리여 결손만 보아오는 소규모의 공장경영에 골머리를 썩여온것인가?

그때 자기도 박춘식과 함께 달라붙어 그가 관계하는 정당에 선뜻 들고 미군정을 협조, 지지해나서면서 미군정청에 들락거리며 관리들과 친했더라면 응당 적산공장 지배인자리 하나쯤은 넉넉히 얻어할수 있었을것이다. 또 그렇게 되였더라면 그때 자기의 공장인 이 동아피복은 적당한 가격으로 남에게 팔아넘겼을것이고 그 재산은 재산대로 남아서 지금은 새끼에 새끼를 칠것이고… 그렇게 되였더라면 지금 무슨 걱정이 있어 이렇게 골머리를 앓을것인가?

그는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며 공상을 하다가 어느덧 고개를 흔들고말았다.

그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느껴졌던것이다.

(가늘게 먹고 가늘게 싸자! 무슨 제란 놈들이 가장 애국자인체 나서누! 엊그제까지 왜놈에게 붙어먹던 부 협의원이니, 도 평의원이니, 군수니 뭐니뭐니 하던것들이 이제는 미국놈 군정에 찰싹 붙어가지구…)

손종모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던 자기를 한번 돌이켜본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때 민전산하에 망라된 정당, 단체들에 대하여서도 별로 탐탁한 생각이 없었고 가까이 하고싶지도 않았다.

민전은 좌익이라고 생각되였고 좌익은 결국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사회를 목표하는것이며 그것은 무서운것이라고 느끼여왔다.

손종모의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새삼스럽게 《빨갱이》가 되여나간 아들 영준이가 밉고 원망스러웠으며 또 요즘에 와서 암만해도 가로꿰질 위험성이 있는 영옥이와 그것을 옹호해나서는 자기 마누라에 대해서도 어쩐지 감정이 썩 좋지 못했다.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주먹으로 광대뼈를 괴이고 우두커니 앉아있기만 했다.

이때 갑자기 전화가 따르릉 울렸다.

그는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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