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피복공장

5

 

로동자와 사무원들의 임금지불일을 하루 앞둔 공장안은 이른아침부터 다른 날보다 활기를 띠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장주 손종모가 그동안 3개월동안이나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고 이날로 미루어오던 마지막날이였고 또 오늘이 이 공장에서는 외부로부터 상품미수금을 받아 들여오는 수금일이였기때문이였다.

재봉실과 재단실과 제품창고로 나뉘여진 세개 작업장에서는 벌써 작업이 시작되였다.

40여대의 재봉틀을 네줄로 나누어 빽빽하게 설치한 재봉실에서는 남녀재봉공들이 제각기 모여앉아 재봉틀을 돌리며 피복을 만들고있었다.

혹은 소매를, 혹은 바지가랭이를, 혹은 단추구멍을… 제각기 분업적으로 드르렁드르렁 박아나갔다.

재단실에서는 30여명의 재단공들이 본에 맞춰 옷감을 재단하고있었다.

올봄까지도 기계로 재단을 했으나 자본금이 적고 종업원이 100명내외인 소규모의 공장이라는것과 또 군수피복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리유로 전력사용을 금지당했기때문에 가위를 들고 재단을 해대다보니 수공업시대로 돌아간것처럼 적지 않은 시간과 로력을 랑비하게 되였다.

작업장 맨끝에는 조그맣게 공장사무실이 붙어있고 사무실과 나란히 그보다 더 작은 공장주의 방이 달려있었다.

손종모는 오늘 아침 다른 날보다도 류달리 일찍 일어나 자기 사무실에 출근하였다. 출근이래야 안채에서 바깥채에 나와 앉는것이지만…

공장주의 방이라고는 하나 책상이나 의자가 화려한편이 못되였고 또 실내가 몹시 좁고 해빛이 잘 비치지도 않았다.

손종모는 이런 자기 사무실에 대하여 노상 불만이 없지 않았고 따라서 기분이 늘 명랑하지 못했다.

그는 과거 일제시대부터 이 동아피복공장을 경영해왔다.

그러나 그때는 공장건평도 지금보다 훨씬 넓었고 또 종업원도 200여명이나 되여 그 당시 조선사람이 경영하는바로서는 별로 많지 않은 피복공장가운데 하나였다.

일제자본가들의 손으로 운영되던 피복관계회사나 공장들은 그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를 막론하고 손종모와 같은 조선사람의 손으로 경영해나가는 공장들에 대하여 시기하고 깔보고 업신여기였으며 또 박해를 가하기까지 하였건만 그러나 그때는 그래도 큼직한 실내에 화려한 량수책상이며 푹신푹신한 쏘파며 안락의자며 파초와 선인장을 심은 화분들로 장식한 사장실을 가졌고 또 예쁜 소녀를 급사로 채용했던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야말로 말이 공장주의 방이지 실내의 비품이며 환경이 너무도 초라하고 살풍경했다.

그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반쯤 녹이 쓴 초인종을 땡땡 울렸다.

판자로 칸을 막은 사무실에서는 4~5명의 사무원들이 장부들과 전표들을 꺼내놓고 각기 기록들을 하고있었다.

젊은 사무원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자기 책상에서 장부 하나와 서류를 들고 손종모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원은 손종모가 초인종을 누른 뜻을 잘 알았다는듯이 자기가 들고 들어온 미수금장부와 오늘 수금해야 할 수금목록을 따로 뽑은 일람표를 그앞에 공손히 내놓았다.

《수고했소. 그런데 이거 오늘 바싹 서둘러야겠소. 어룽어룽하다가는 래일 임금지불은커녕 다른 급한 지불도 못하게 될것 같소.》

손종모는 사무원에게 미리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는 수금목록을 쭉 훑어보았다.

《세상없어두 오늘 꼭 받아야 할데가 어디어딘줄 아우?》

손종모는 이마를 들며 사무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첫째 마리야녀학교, 둘째 덕성비누, 셋째 한양일용품… 그렇습니다.》

《그것뿐이요? 남산제과, 마포제분에서도 오늘은 꼭 받아와야 되겠소!》

《그야 목록에 있는것은 다 받아와야 되죠. 그렇지만 어디 주어야 받지 않습니까?》

사무원은 서글프게 웃었다.

더부룩하게 자란 긴 머리는 이미 깎을 때가 늦었고 철 맞추어 솜옷을 입어야 할 때이건만 여전히 헌 양복을 입고있는 꼴이며 다 해여진 운동화를 신고있는 주제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손종모는 자기 공장 사무원의 한사람이 이렇게 괴죄죄한 모습을 하고있는것이 결국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껴졌다.

《어쨌든 오늘 바삐 서둘러야겠소. 래일은 또 빚쟁이가 벌떼처럼 달려들거요. 우선 그놈의 세금때문에 야단났소.》

손종모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리구 위탁판매미수금도 오늘 다 받도록 하우. 수틀리면 모두다 반품해오우.》

《네.》

사무원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손종모앞을 물러나갔다.

손종모는 사무원에게 이렇게 단단히 부탁은 했으나 지금까지의 수금경험에 비추어보아 별반 자신이 있는것은 아니였다.

말이 쉬워 수금이지 오늘 최저로 요구되는 80만환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해도 단 50만환이라도 수금이 된다면 우선 급한 불은 면할것 같았다.

그는 어제 밤 《대한공익사》 지배인에게 고리대금을 빌리려고 술까지 먹인것이 결국 틀리고만것을 생각해볼 때 코앞에 절박한 자기 공장의 운명이 암담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어느덧 의자에서 일어나 좁은 사무실안을 왔다갔다하며 불안과 초조에 잠기였다.

물론 자기의 본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석달씩이나 로임을 제대로 지불받지 못한 100여명 로동자와 사무원들일진대 래일로 닥친 지불약속일에 어떻게 또 빈손그대로 돌려보낼수 있을것인가?

(아니야. 참지 않을거야. … 굶어죽게 된 그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지. …)

손종모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서성거리며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이때 갑자기 사무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로동자 세명이 들어섰다.

《잠간 사장어른께 말씀드릴게 있어왔습니다.》

한 젊은 로동자가 손종모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재봉공이며 기계수리공인 김만국이였다.

어깨가 좀 굽었고 가슴이 얄팍한 그는 골격과 키는 크나 영양이 좋지 못한탓인지 얼굴은 꺼칠하고 혈색이 좋지 못해 희끄무레했다. 그러나 두눈만은 광채가 있었고 리지가 넘쳐흘렀다.

그는 아직도 여름에 입던 때묻은 헌 양복을 그대로 입고있었다.

《자, 다들 앉으시우. …》

손종모는 그들에게 앉기를 권하고 자기도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양하고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

피복공장의 로동자들이라면 자기들의 옷치레만은 다른 공장 로동자들보다 초라하지 않은것이 보통이건만 이 사람들은 그렇지도 못했다.

김만국은 요즈음 수개월에 걸쳐 로동자들의 임금지불문제를 가지고 때때로 공장주의 방을 찾아와 손종모와 만났다.

김만국은 이 공장 로동자들가운데 취업년한이 가장 오랜 사람이였다.

그는 8. 15해방전 어린 소년시절에 손종모의 이웃에 살았고 손종모네 공장 즉 이 동아피복공장에 소년견습공으로 다니였다.

8. 15해방이 되자 만국은 자기 아버지를 따라 어떤 기계수리공장으로 들어갔으나 그 공장이 망하여 실직자가 되자 손종모의 요구로 다시 그의 공장에 들어오게 된것이였다.

그는 공장 로동자들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손종모의 가정내용을 잘 알고있었고 손종모가 그다지 마음보가 나쁜 사람이 아니며 따지고보면 망해가는데 동정할 점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손종모는 만국이가 성실하게 공장일을 잘해주는데 대하여 늘 고맙게 생각해왔으며 만국이가 제기하는 말이면 어느 정도 귀담아들어왔다.

그는 같은 로동자들의 생활문제를 자기의 문제나 마찬가지로 알고 솔선 나서기를 좋아하였기때문에 자연히 공장내에서 로동자들끼리 공장주와 교섭할 일이 있을 때는 의례히 만국이가 대표가 되여 교섭하군 했다.

손종모는 김만국을 비롯한 로동자대표들이 임금지불을 독촉하러 나타날 때마다 답답하고 불쾌하였으나 그들에게 내색을 할수는 없었다.

《사장어른께 말씀드리려는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는 래일이 임금지불일이며 또 오늘이 수금일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물론 래일은 임금을 지불해주실줄 압니다만 100여명 로동자들의 가족들이 지금 벌써 여러날째 굶고있다는것을 생각하면 단 한끼가 바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려는것인데… 기왕에 하루 차이이지만… 오늘 저희가 퇴근할때 지불해주셨으면… 하는것입니다. 그리구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번에는 꼭 밀려내려온 임금을 다 지불해주셔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다 지불되지 못하면 말씀드리기는 박절하지만 앞으로 겨울은 닥쳐오는데 우리는 가족을 더 굶겨가며 일하러 나올수 없습니다.》

김만국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손종모는 잠간동안 침통한 표정을 짓고있다가 입을 열었다.

《알겠소. 어디 봅시다. 오늘 수금이 잘만 되면야 선불이라도 해주지!》

손종모는 또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결국 내가 어리석었소. 그래도 내딴에는 8. 15해방이후 민족산업을 발전시켜보겠다고 내게 있는 모든 힘을 다 바쳤던것이요. … 그러나 그 보람은 없소. 공연히 당신들만 모아다놓고 임금도 제대로 지불 못하고… 그러나 그것이 내 본의는 아니요. 당신들도 알다싶이 시장에는 미국상품이 산같이 쌓이지, 우리 손으로 만든 물건은 팔리지 않지, 공장은 작으나크나 할것없이 자꾸 망해만 가지, 로동자들은 실직을 당하지, 물가는 비싸지, 구매력은 버쩍버쩍 줄어들어가지, 이 판에 무슨 피복공업이 발을 붙이겠소. 그렇다고 해서 문을 닫아버리기란 더 괴로운 일이요. …》

손종모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어느덧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