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피복공장

4

 

영옥은 오늘따라 마음이 몹시 산란하였다.

건너방으로 옮겨와 자기 책상앞에 앉긴 했으나 공부할 생각은 다 없어지고 오빠 영준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만 했다.

영준이가 경찰의 체포를 피하여 마지막으로 집을 나가던 그날 밤도 오늘 밤처럼 어머니와 단 둘이 있을 때였고 또 오늘처럼 가슴이 설레이던 밤이였다.

그날 밤 영준이는 다른 날보다도 훨씬 늦게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안방에서 곤히 잠이 들었고 아버지는 밖에서 들어오지 않았을 때였다.

영준이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책장속에서 몇권의 책들을 꺼내였고 또 서랍속에서도 표지없는 책들을 몇권 꺼내여놓고나서 영옥이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얘, 나 당분간 집에 안 들어오겠다. 이 책들은 지금 바로 모두다 깊숙이 건사해둬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왜 어딜 가있을라구? 응?》

《…》

영준은 그 리유를 말하지 않았고 벽에 걸린 자기 속옷들을 더 껴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게 부탁할것은 아버지가 반대하시더래도 너는 역시 미술가를 지망하고있는만큼 잘 참고 견디면서 노력해야 한다는것이다. 아버지가 처음엔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실게다만 결국 얼마 안 가서 아시게 될거다. …》

영옥은 오빠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으므로 갑자기 불안스러웠고 어떤 불길한 예감까지 머리를 스치였다.

《그리고 어머니를 잘 위로해드려라. 내가 집에서 나가게 되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실거구 또 네게까지도 영향이 미칠줄 안다. 게다가 공장경영이 날로 난관에 부딪칠건 빤한 일이니까 어머니가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니! 이런 때 어머니를 잘 위로해드려야 한다.》

영준은 제법 어른답게 영옥이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오빠, 이 밤중에 꼭 가야만 해요?》

《지금 우리 대학은 징병반대투쟁에 들어갔다는것만 알아두어라. 이것이 도화선이 되여 서울시내 여러 학교가 호응해나설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반드시 개떼들이 나를 잡으려고 집에 들이닥칠것이다. 개떼들이 오더래두 비겁하게 보이지는 말아.》

영준은 더 길게 이야기할 사이가 없다는듯이 당황히 일어섰다.

《오빠, 그럼 이거 더 껴입고 가우!》

영옥은 허둥지둥 자기가 입었던 웃도리 털세타를 벗어주었다.

《아니야, 이제 곧 봄이 될텐데 뭘…》

영준은 좀 주저하였으나 이윽고 다시 생각하더니 《역시 좀 든든히 입을 필요가 있다.》 하고 영옥이의 세타를 껴입었다.

그 날카롭게 빛나는 두눈에서는 리지가 넘쳐흘렀고 쩍 벌어진 어깨며 굵고 억세여보이는 두팔뚝에는 무엇이나 박차며 뚫고나갈만 한 용감성이 숨어있는것만 같아 영옥은 자기 오빠가 한편으로 믿음직스럽고 의젓하게 보이였다. 그러나 영옥은 《그럼 오빠, 어디 가있을 작정이우?》 하고 불안스럽게 물었다.

《그야 어찌 미리 말할수 있니? 그러나 내 걱정은 말아. 쉬이 만나게 될 때가 있을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너두 싸워야 한다. …》

영준은 더 말을 하지 않고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루로 나와 안방문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이때 어머니는 마침 잠에 곤히 들어있었다.

인사를 하고 떠나려던 영준은 그만 단념을 하고 방문을 가만히 닫았다.

《며칠후에 네가 잘 말씀해드려라. 지금 깨시면 아마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만 하실게다!》

영준은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영옥이에게 부탁하였다.

대문을 가만히 열고 나와 오빠를 보내지 않으면 안되게 된 영옥의 가슴은 몹시도 괴로웠다.

《그럼 오빠! 몸조심해요, 네?》

《음, 너두 몸조심해라.》

영준은 어느덧 골목길을 향하여 걸어갔다.

영옥은 영준이의 발자국소리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린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길모퉁이에 정신없이 서있었다.

영옥은 그때 웬 일인지 자기 오빠를 영영 잃어버리고마는것만 같은 슬픈 생각이 불쑥 솟아올라왔다.

그러나 영옥은 오빠가 남기고 간 말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쉬이 만나게 될 때가 있을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너두 싸워야 한다.》

영옥은 영준이의 이 말을 잊지 않으려고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틈에 그의 두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영옥은 그때 곧 간직해두라는 서적뭉테기를 꽁꽁 묶어 부엌골방 다락에 깊이깊이 감추어두었다.

바로 그 이튿날 새벽 골목에서 개짖는 요란스런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자기네 집 담장을 훌훌 뛰여넘어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형사녀석들이 영준이를 잡으러 덤벼들었던것이였다.

그때 덤벼든 녀석들가운데 앞장에 서서 집안팎을 샅샅이 뒤지던 형사놈이 바로 아까 찾아왔던 강태근이였다.

다행히 골방 다락만은 뒤지지 않았으나 건너방에 남아있던 많은 서적들은 물론 교과서까지도 모두다 휩쓸어 압수해갔던것이다.

영옥은 이렇게 지난 일을 회상하면서 멍하니 책상우에 고개를 수그리고있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불쑥 솟아오르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는 캄캄한 뒤뜨락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어름어름 더듬으며 장독대로 올라간 영옥은 간장독뒤에 있는 어떤 독뚜껑을 가만히 열고 손을 집어넣어봤다. 독안에는 팥이 7홉이나 담겨져있었다.

영옥은 그제야 안심이 되였다. 그 독 밑바닥에는 오빠가 간직해두라던 그 책뭉치가 들어있기때문이였다.

부엌골방 다락에 두는것이 암만해도 안심이 되지 않았기때문에 영옥은 어머니와 의논하고 이 독안으로 옮긴것이였고 그 책뭉테기를 감추어두기 위하여 팥을 일부러 사다가 넣어두었던것이다.

영옥은 그래도 혹시 알수 없어서 손으로 팥을 헤치고 팔을 깊이 넣어 손가락끝으로 밑바닥을 더듬었다. 딱딱한 책뭉테기가 만져졌다. 그제야 영옥은 안심이 되였다.

이때 대문흔드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였다.

영옥은 얼른 뚜껑을 닫고 마당으로 뛰여나왔다.

《아버님이세요?》

《오냐.》

영옥은 얼른 대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약주냄새가 물컥 풍기였다.

아버지는 곤드레만드레가 되여 비틀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느 틈에 영옥이 어머니가 나왔다. 모녀의 부축을 받아 손종모는 겨우 마루로 올라갔다.

그는 두루마기를 입은채 아래목에 힘없이 쓰러져버렸다.

영옥과 어머니는 두루마기를 벗기고 대님을 끌러 그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손종모는 잠이 들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숨을 톺으며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잠꼬대였다.

《아! 그렇지, 80만환… 음! 안돼? 두번 저당은 안돼? 너무 괄시말구 이번만 봐주구려. …》

영옥이 어머니는 령감의 잠꼬대를 들으며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였다.

《얘, 오늘 밤 아버지 일이 틀리셨나부다. 공연히 그자들 술만 사먹이느라구 생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모르겠구나!》

손종모는 또 코를 세차게 골다가 잠꼬대를 계속하였다.

《이, 이, 이놈아! 너때문에 우리 집이… 이놈아, 뼈빠지게 공부시켜놓으니까 가루꿰져서 빨갱이가 돼나가?》

영옥은 아버지의 잠꼬대가 듣기 싫어졌기때문에 건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오빠가 집에 못 들어오는것을 가로꿰져서 난봉이나 난 자식처럼 생각하는 아버지의 생각이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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