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피복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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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옥은 아버지에게 단단히 걸렸다고 생각하였다.

평소에는 때로 웃는 낯으로 영옥이의 청도 들어주고 또 영옥이가 무슨 의견을 말하면 그럴법하게 듣는 아버지였건만 오빠 영준이가 그렇게 된 뒤부터는 아버지의 성질이 아주 달라져버린것이였다.

그 조그만 한가지 실례가 바로 술주정이였다. 얼굴에 술기만 띠고 들어오면 어머니를 들볶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옥이에게 무슨 트집이든지 잡아 잔소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버지가 되여버린것이 몹시 안타깝고 야속스럽기도 했다.

《이젠 그만해두시구려. 저두 정신차릴게요. 나두 아까 들어오는길로 한바탕 야단을 쳤수. 한두살 먹은 어린애가 아닌 이상 제 일 제 알아할게요. 부모가 만날 어찌 이래라저래라하겠소. 또 시키면 잘 듣기나 하우? 요새 아이들이…》

어머니는 어느 틈에 마루로 올라서며 영옥이를 은근히 두둔해주었다.

《왜, 꾸어다논 보리자루처럼 우두커니 섰니? 어서 말 좀 해봐라! 너의 오늘 행동을 내가 다 조사했단 말이야!》

아버지의 말소리는 더 험악했다.

《…》

《글쎄 뭣하러 면직당한 선생을 찾아다니니? 너헌테 리속있을줄 아니? 사상이 불온해서 면직당했단 말야. 그날 밤 너를 위해서 구해준줄로만 아니? 미군에 대한 반대감정에서 나온 폭행으로밖에 볼수 없는거야. 그러니깐 면직당할건 빤한 일이지 뭐냐?》

영옥은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울고만싶었다.

《아버지, 그건 그렇게 생각하시지 마세요. 그 선생님은 결코 미군에게 폭행한게 아니예요. 저때문에 억울하게 면직당한거예요.》

영옥의 목소리는 몹시 떨리였다.

《뭣이 어째? 그래서 너 동정심이 생겨서 그 선생헌테 갔다왔단 말이냐? 안된다. 안돼! 너두 까딱하다간 네 오래비놈처럼 된단 말야. 계집애가 건방지게 무슨 미술가가 되겠다고 가루꿰져가지고선… 지금 우리 집안이 어떻게 돼간다는건 너두 잘 알지?》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여전히 높았다.

그러나 노기는 약간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얘, 이젠 아버지 말씀대루 주의해라. 그리구 어서 내려가 아버지 진지상 차려라.》

어머니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버지, 이젠 주의하겠어요. 용서해주세요.》

영옥은 고개를 숙인채 입을 열었다. 그러나 영옥은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북받쳐올라와 참을수가 없었다.

(아버지, 왜 그리 케케묵은 말씀만 자꾸 하세요. 미술가가 되려는 생각이 무슨 건방진 생각입니까? 나는 꼭 홍선생의 지도를 받아 미술가가 되겠어요. 아버지는 어머니 생각만 아주 못하세요.)

영옥은 이렇게 한번 암팡지게 아버지에게 들이대보고도 싶었으나 오빠때문에 또 공장때문에 골머리를 앓고있는 아버지를 더 흥분시켜 정신적타격을 가하고싶지는 않았다.

영옥은 어느 틈에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래, 아까 나가신 일은 어떻게 됐수?》

《…》

영옥이 아버지는 마누라가 묻는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담배만 푹푹 빨더니 이윽고 원탁우의 수화기를 들고 어디로인지 전화를 건다.

《아, 여봅쇼. 거기 마리야녀학교 교장선생님댁입니까? 교장선생님 계십니까? 아, 교장선생님이십니까? 나는 손종모올시다. 원, 천만에… 그런데 이건 정말 말씀드리기는 대단히 죄송한데… 래일모레가 아시다싶이 우리 공장 월급날이외다. 그래 부득이 말씀을 드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네, 네… 글쎄 그 교복대금 나머지를 래일중에 좀 청산해주셔야겠습니다. 네? 네? 아니, 학교에 얼마간 기부하란 말씀입니까? 하하하… 하복때에두 했는데… 교장선생께서 좀 생각해주셔야죠. 네… 네, 사실 이번 동복은 잘 아시겠지만 희생적입니다. 학부형의 립장에서 어떻게 학교를 상대해가지고 리윤이야 남기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나머지를 래일 그대로 지불해주시면 다음 기회엔 꼭 자진해서 기부해드리겠습니다. 네? 아니, 꼭 래일 좀 지불해주셔야겠습니다. …》

손종모는 수화기를 놓더니 서글프게 한바탕 껄껄 웃으며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쉰다.

《원, 학교라는게 멀쩡한 도적놈들이구나! 왜 남의 물건값을 무우쪽같이 떼여먹으려고 하느냐 말이야. 올봄에도 교복대금중에서 강제로 10만환이나 떼여먹었으면 됐지 또 학부형이란 약점을 노리고서 잔금을 제대루 안 주겠다는거야?》

손종모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마루우를 오락가락하며 흥분된채 혼자말로 중얼거리였다.

《아니, 또 기부를 하라면 대체 얼마를 하라는거요. 응?》

《잔금 40만환중에서 적어도 10만환은 잘라먹을 수작이야. 이러니 이놈의 노릇 해먹을 재주가 있나! 뼈빠지게 일생을 벌어서 자식새끼 공부밑천에 다 털어넣으니깐 끝판에 가루꿰져 저 지경이 되더니만 딸년 공부시키는데두 이렇게 돼나가다간 나중에 오막살이두 못 차지하겠는걸…》

손종모는 다시 의자에 철퍽 앉더니 어디엔가 또 전화를 건다.

《아 이봅시오, 대한공익입니까? 나 손종모올시다. 전무령감 계십니까? 안 계시면 지배인어른 좀 대주시구려… 맹선생이요, 안녕하시오? 어떻시오? 요새두 약주 잘하시오? 하하하… 그럼 오늘 우리 한잔 합시다그려. 그럼 내가 요전 그 집으로 지금 가리다. 얼른 나오시구려!》

손종모는 수화기를 놓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더니 회색두루마기를 입고 중절모자를 쓰고 다시 마루로 나온다.

《아니, 진지는 안 잡숫고 또 약주를 잡수러 가시우?》

마누라가 걱정스럽게 말하였다.

《어떡허우, 래일모레 일을 생각하니 몸이 달아 못 견디겠소. 최소한도 80만환이 있어야겠는데… 우선 다만 얼마라도 또 좀 구워 삶아서 돌려야지 별수 있소. 이제는 정말 로동자들에게 볼낯이 없이 됐소.》

손종모는 뜨락으로 내려서며 힘없이 걸어나갔다.

《아버지, 진지 좀 뜨고 가세요.》

영옥이가 밥상을 들고나오다가 엉거주춤하고 섰다.

《싫다.》

아버지가 힘없이 나가는 뒤모양만 우두커니 바라보던 영옥은 밥상을 들고 들어와 어머니앞에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글쎄 왜 안되는 공장을 하시느라고 저렇게 애만 쓰시는지 몰라요. 오빠의 말을 일찍 들으셨더라면 이런 헛고생 하시지 않는거 아니예요.》

영옥은 원망스러운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글쎄말이다. 그러나 아버진들 공장이 이렇게 쪼들려들어갈줄 아셨겠니? 설마 이만한 작은 공장 하나야 못해나가랴싶어하신게 아니냐?》

어머니의 목소리도 풀기가 없이 들리였다.

잠간동안 모녀사이에는 아무 말이 없이 고요하였다.

《래일모레 이제 또 공장이 벌컥 끓고 야단이 날는지 모르겠다. 말이 쉽지 80만환을 어디서 당장 돌리겠니?》

《그러니 뭐예요. 죽도록 애만 쓰고 고생해가면서 해봤자 리익은커녕 로동자들 월급도 제때에 주지 못하는걸 왜 하세요? 차라리 일찍 남들처럼 문을 닫고말지. …》

《야, 문닫기는 쉬운 일이냐? 직공들 월급을 석달, 넉달씩 밀려오면서 그대루 문만 덮어놓고 닫아버릴수도 없단다.》

모녀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을 때 갑자기 마당에서 구두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영옥은 방문을 열고 나와 마당을 내려다봤다.

중절모를 빼딱하게 쓰고 미군 가죽잠바를 입은 사나이 하나가 말도 없이 주춤하고 서있었다.

영옥은 갑자기 몸서리가 쳐지며 기분이 불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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