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피복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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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이르러 전차에서 내린 영옥은 동대문시장이 있는 골목으로 바삐 들어갔다.

서울의 도심지대라고는 할수 있으나 이 골목의 주택들은 그렇게 화려한편은 못되였다.

전쟁중에 가장 많이 파괴되고 상실된 이 동대문시장부근의 집터들에는 이것저것 림시 지은 날림식주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전쟁전엔 소위 고래등같은 기와집들이 군데군데 드높은 대문간을 자랑했고 벽돌담장우에는 서슬이 시퍼런 유리쪼각을 박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경계하고있었건만 지금은 이 근방에 그런 집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영옥은 자기 집이 보이는 골목으로 뛰여들어갔다.

이 부근에서 영옥이네 집은 전쟁의 피해를 그다지 많이 입지 않은 집들중의 하나였다.

한쪽벽이 폭풍에 달아났던탓으로 수리해붙인 흔적이 력력히 보이는 ㄱ자형 조선식기와집이다.

이 기와집앞에는 ㄴ자형으로 나지막하게 지은 7~8칸이나 되여보이는 날림식양철집이 서있다.

영옥은 양철집정문을 향하여 바삐 걸어들어갔다.

정문에는 동아피복공장이라는 별로 크지 못한 나무간판이 걸려있다.

공장안은 씻은듯 고요하다. 영옥은 사이문을 열고 안채 마당으로 들어섰다.

하얀 사기바탕에 새빨간 꽃무늬를 박은 화분들에는 가지가 뻗은 선인장과 키큰 파초, 흰 국화들이 활짝 피여있고 안방과 건너방사이의 넓은 3간 대청마루에는 전화기가 놓인 둥근 탁을 중심으로 2~3개의 안락의자가 놓여있었다.

벌써 해는 저물어 황혼이 회색빛어둠으로 변하고있었다.

영옥은 부엌에서 저녁을 짓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어머니,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하고 대청마루로 올라섰다.

《얘, 너 왜 그리 오래 있었니? 그래 선생님 만나뵈웠니?》

부엌에서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며 영옥이 어머니가 마루로 올라선다.

50이 넘어보이는 그의 어머니는 얼굴에 잔주름이 잡히긴 했으나 젊었을 시절에는 제법 미인다왔던 흔적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을만큼 살결은 곱고 아름다왔다.

《어머니, 그 찬합을 드렸더니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하잖아요.》

《그래 너 여태까지 종일 선생님헌테 있었니?》

어머니의 말소리엔 걱정스러운 기색이 넘쳐흘렀다.

《아니예요. 한시에 나와서 지금까지 동무네 집에 들려오는 길이예요.》

영옥은 사실 아까 자하문고개에서 찬수와 헤여진 다음 그길로 몇몇 동무의 집을 다녀오느라고 이렇게 늦은것이였다.

영옥은 서대문밖 향촌동에 사는 조선희네 집과 남산밑에 있는 백인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찬수의 복직문제를 학교당국에 요구할것과 그 요구가 일축될 때에는 동맹휴학에 들어갈 방법들에 대하여 서로 의논하고 오는 길이였다.

《난 모르겠다. 자라 보고 놀랜 놈이 솥뚜껑 보고도 놀랜다구… 네 오래비 일을 생각하면 어찌 너두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부디 서투르게 일을 꾸미지는 말아.》

어머니는 영옥이가 하고 온 일에 대하여 걱정스럽게 말했다.

《념려마세요.》

영옥은 나들이옷을 벗고 실내옷으로 입는 고동색뜨개덧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머니, 이제는 들어가계셔요. 내가 해요.》

《뭐, 할게야 있니. 아버지도 나가신지 얼마 안되니깐 아마 밖에서 잡숫고 들어오실게다.》

《참, 아버지가 아세요? 오늘 제가 홍선생헌테 간걸…》

영옥은 불안스럽게 물었다. 그는 설겆이그릇에 손을 잠그고 그릇을 씻다가 멈추며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였다.

《얘, 그렇잖아두 네 아버지는 눈치를 채고 너 어디 갔느냐구 물으시더라. 이년이 오늘 허구 나가는게 수상해하시면서 걱정하시더구나.》

《그래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난 어디 제 동무네 집에 간다더라고 했더니 날 보고 얼빠진 사람이라구 야단치시더구나.》

《참, 아버님두… 요샌 왜 바싹 더 그러실가? 내가 뭐 세살먹은 어린앤가 뭐…》

《세살먹은 어린애 같으면야 그러시겠니? 네가 이제는 철이 다 들었으니깐 더 그러시는게지. 그러기에 딸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은 항상 칼날에 앉은것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스러운 법이란다.》

어머니의 말소리는 몹시 부드러웠으나 영옥이의 귀엔 가시처럼 걸리는데가 있었다.

영옥은 그릇을 씻어놓고 바께쯔를 들고 물을 길러 나갔다.

집안에 전용수도가 있긴 하나 그것은 전쟁시기에 페물이 된채 아무 소용없는 물건이 되여버렸다.

공동수도에 나와 순번을 기다려서 물을 길어 나르기란 영옥이에게는 큰 로동이였다.

올봄까지만 해도 영옥이네 집에서는 식모를 두고 일을 시키였다.

그렇기때문에 영옥은 부엌에 내려가 일을 거둘 필요도 없었고 또 그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영옥이 오빠 영준이가 징병반대 동맹휴학의 주동인물로 탄로되여 경찰에 쫓기우고 행방불명이 되고난 뒤에는 집안이 살풍경한 란가가 되였고 불안과 공포에 싸이게 되였으며 게다가 또 공장경영도 차차 곤경에 빠지게 되였다. 그래서 영옥이 어머니는 식모를 내보내고 직접 자기 손으로 부엌일을 하였고 영옥은 그것을 보고 그저 방안에 앉아있을수 없어 자연히 자기도 부엌일을 협조해왔던것이다.

영옥이가 바께쯔에 물을 받아들고 들어왔을 때였다.

뜨락우에는 아버지의 구두가 놓여있었다.

《아버지 오셨어요?》

영옥은 물바께쯔를 부엌에 두고 마루우로 올라가며 안방문을 드르렁 열었다.

아버지는 마침 양복을 벗고 조선바지저고리를 입고 앉아서 대님을 매고있었다.

《진지 차려올가요?》

《…》

아버지는 영옥이의 말을 들은체만체 하고 눈도 떠보지 않았다.

영옥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녕 아버지 입에서 꾸중이 아니면 벼락이 내릴것만 같아 문을 살며시 닫고 부엌으로 얼른 내려가버리였다.

《얘, 아버지가 약주에 취하셨다. 말 함부로 말고 넌 가만히 있거라.》

어머니는 미리 영옥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윽고 안방문이 드르렁 열리며 대청마루를 쿵쿵 디디는 아버지의 발자국소리와 함께 안락의자를 잡아 끌어내놓는 소리가 들리였다.

《얘, 영옥아!》

노기가 가득찬 아버지의 음성이였다.

《예-》

영옥은 가만가만 걸어나갔다.

《너, 이리 좀 올라오너라!》

아버지는 조끼주머니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여 피워물고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뜨락앞에 선 영옥을 뚫어지게 내려다보는것이였다.

《어서 이리 올라오지 못하겠니?》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놀랜 영옥은 겁을 먹은채 어름어름 마루로 올라갔다.

거의 60이 다된 영옥의 아버지는 작달막한 키에 몸집은 뚱뚱한편이나 배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고 짧게 깎은 머리털은 희끗희끗 반백이 넘은 그의 나이를 표시해주는듯 했으나 얼굴은 검붉은 빛이 떠돌아 아직도 정정해보이였다.

그는 술기운이 떠도는 도끼눈을 뜨고 영옥이를 흘기면서 고함을 꽥 질렀다.

《얘, 너 나이 몇살이냐? 스물한살이면 아이를 낳아두 두셋씩 낳았을 나이야. 왜 철딱서니없는짓을 하고 다니느냐? 그래 온종일 너 갔다온데가 어디란 말이냐?》

《…》

영옥은 아버지가 정녕 자하문밖에 갔다온것을 알고만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한번 뻗대볼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동무네 집에 갔다왔어요.》

《뭣이 어째? 동무네 집엘 가는데 무슨 호화스럽게… 건방지게 치마저고리를 꺼내입고 간단 말이냐? 날마다 만나는 동무를 공일날 하루 안 만난다구 병이 나니? 너 공연히 앙큼하게 나를 속이지 말고 바루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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