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13

 

흥분된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영옥이를 태운 찌프차를 둘러싼채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무슨 죄로 쇠고랑까지 채워서 잡아가우?》

학부형중에서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놔라! 내려놔!》

학생들의 고함소리도 들렸다.

《학생 여러분! 영옥이를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학부형중 어떤 청년이 웨쳤다.

그는 서대문경찰서에 구류를 당했을 때 찬수의 머리를 매여주던 송동무였다.

이때 가사교실쪽에서 4~5명의 학생들이 두놈의 형사에게 끌려나오고있었다.

그놈들은 그들을 다른 찌프차에 태웠다.

《내려놔라! 내려놔!》

학생들이 동시에 고함치자 학부형들도 호응하여 《내려놔라! 내려놔!》 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아우성을 쳤다.

어떤 학부형들은 학교측과 따지려고 사무실쪽으로 떼를 지어갔고 다른 학부형들은 경찰의 찌프차곁으로 덤벼들었다.

흩어져있던 학생들과 학부형들도 어느 틈에 찌프차쪽으로 모두 밀려갔다.

《도대체 무슨 죄로 잡아가느냐? 무슨 죄로?》

《얘들아! 학생들을 붙들어가지 못하게 해라!》

늙은 어머니들이 소리를 질렀다.

웰톤과 스틸맨은 노기가 뻗질린 상판으로 현관을 나와 승용차를 타려 하다가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소동을 일으킨것을 보았다. 웰톤은 더 화를 내며 뒤에 따라나온 김치선에게 독살스러운 목소리로 호령했다.

《미스터 김! 이 사람들 왜 가지 않고 야단칩니까? 가지 않으면 모두 체포하도록 경찰에게 말하시오!》

《네.》

김치선은 허둥지둥 다시 본관 직원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본관 옥상에 매달린 확성기에서 《에- 학부형 여러분! 어서들 나가십시오. 그리고 학생들도 어서빨리 나가시오! 만일 빨리 나가지 않고 소동을 일으키면 경찰에서 검속할테니 어서들 나가시오!》 하고 떠드는 교무주임 윤성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부 학부형들과 학생들이 헤여져갔다.

그러나 태반이 넘는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그대로 남은채 헤여지지 않고 더욱 떠들며 아우성을 쳤다.

스틸맨은 갑자기 권총을 뽑아들고 군중들을 향하여 팡! 팡팡! 하고 란사했다.

학부형들과 학생들은 깜짝 놀라 운동장 가장자리로 흩어졌다.

학생 하나가 권총에 맞아 쓰러졌다.

일부 학생들이 달려들어 쓰러진 학생을 그러안고 본관 위생실로 들어갔다.

미군장교들과 고문관을 비롯한 《귀빈》일행은 오늘 밤 연회가 파탄된것을 눈치채고 제각기 화를 내며 쏘알거리다가 차를 타고 달아나버렸다.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 양복깃을 세워 얼굴을 가리여 얼핏 보아 누구인지 잘 알수 없는 모습을 한 찬수는 허둥지둥 좁고 어두운 학교골목길을 바삐 걷고있었다.

오늘 밤 영옥이의 편지대로 그 저주스러운 연회가 그때처럼 학교에서 또 열린다면 이 얼마나 모욕적이며 치욕적인가? 비록 자기의 힘이 영옥이의 일에 미치지 못할망정 그는 그대로 참을수 없는 격분을 느끼였던것이다.

골목에서는 벌써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떼를 지어 헤여져나오고있었다.

고급승용차와 찌프차들이 전조등을 비치며 경적을 요란스럽게 울리면서 련달아 미끄러져나오고있었다.

찬수는 이미 음악회가 끝났다고 느껴지자 더 초조하고 안타까왔다.

그는 쌍지팽이에 힘을 주어 더욱 빨리 발길을 옮겨 정문으로 향하였다.

연회가 열릴 소강당이 캄캄한것이 눈에 띄자 그는 약간 마음이 놓였으나 영옥이가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떻게 되였는지 불안스럽고 궁금하였다. 운동장쪽에서는 군중들의 아우성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고있었다.

어느덧 찬수가 정문앞에 이르렀을 때 운동장에서 두대의 찌프차가 정문을 향하여 달려나오고있었다.

찬수는 정문옆으로 비켜섰다.

찌프차들이 앞을 스쳐지날 때 찬수는 소스라쳐 놀랐다.

앞차에는 여러명의 학생들을 태웠고 뒤차에는 영옥이를 가운데 놓고 두놈의 형사가 붙잡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기때문이였다.

찬수는 얼른 길가운데로 뛰여나오며 지나치는 찌프차를 향하여 《영옥이- 영옥이-》 하고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발동소리와 바람소리때문에 영옥의 귀에 들릴수 없었다.

찬수는 치솟는 분격을 걷잡을수 없었다. 지팽이를 짚은 두주먹이 부르르 떨리였다.

그는 찌프차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릴 때까지 이를 앙다물고 길우에 한참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이때 교문안에서 두덜거리며 학생들 한패가 밀려나오고있었다.

찬수는 고개를 돌리였다. 학생들은 찬수의 얼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그앞으로 모두 밀려왔다.

《아이유, 홍선생님!》

《홍선생님! 영옥이가 방금 잡혀갔어요.》

《선생님! 영옥이는 오늘 밤 용감하게 싸웠어요!》

어떤 학생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흑흑 흐느껴울고있었다.

이 녀학생들은 그가 공판받던 날 재판소 문밖에서 지켜서있다가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안타까와하던 영옥이의 동급생들이였다.

찬수는 가슴이 미여지는듯 한 흥분과 감격을 억누를수 없었다.

《학생들! 용감했소. 연회를 못 열게 한것은 큰 승리요!》

찬수의 목소리는 무겁게 울리였다.

《선생님! 여기 서계시지 마시구 저희들허구 빨리 가세요. 우리가 댁에까지 모셔다드려요.》

학생 하나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학생들이나 빨리들 가우.》

찬수는 증오에 불타오르는 두눈으로 교문안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이끌리여 그는 다시 돌아섰다.

《홍선생님! 정말 오늘 밤 뜻밖이였어요. 영옥이가 강당에 나타나 연설을 할줄은 몰랐어요!》

《선생님! 우리가 모두 영옥이처럼 용감하면 못할 일이 없을것만 같아요!》

찬수를 에워싸고 걸어가며 학생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떠들었다.

《그렇소. 영옥이의 뒤를 따라야 할것이요. 이것이 곧 미제를 반대해서 싸우는것이요. 영옥이는 오늘 밤 이 땅에 살고있는 녀학생들의 순결을 위해서 용감히 싸워 이겼소. 영옥이와 여러 학생들이 체포되여갔다고 겁을 내지 마시오.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면 언제든지 학부형들은 지지해줄것이고 사회는 성원할것이요!》

찬수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였으나 박력이 있었다.

《선생님! 언제면 이런 일이 안 생겨요? 네?》

한 학생이 한탄조로 물었다.

《그것은 오직 우리 나라가 평화통일이 된 뒤라야…》

《아이유. 언제 평화통일이 돼요, 네?》

학생 하나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또 물었다.

《학생들! 평화통일이 오기를 앉아서 기다릴게 아니요. 우리의 힘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하오. 그것은 미군놈들이 이 땅에서 하루라도 빨리 물러가도록 하는것이요!》

찬수와 학생들사이에는 이런 이야기가 오고갔다.

어느 틈에 그들은 좁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큰 거리로 나섰다.

《자, 학생들! 어서 집으로들 돌아가오.》

《아니예요. 선생님을 모셔다드리겠어요!》

학생들은 좀처럼 헤여지지 않고 찬수의 주위에 그대로 모여 서있었다.

《고맙소. 그러나 내가 있는 곳은 시외요. 학생들이 시외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올 시간은 없을것이요. 부디 건강한 몸으로 영옥이처럼 용감들 하시오!》

《그럼 선생님을 언제나 또 뵈올수 있을가요, 네?》

《선생님! 우리를 다시 가르쳐주세요, 네?》

학생들은 안타까와하면서 찬수와 작별하기를 아쉬워하였다.

찬수 역시 학생들과 헤여지기가 서운했으나 어쩔수없이 헤여졌다.

찬바람은 무학재고개를 넘어 칼날처럼 사납게 몰아쳤건만 찬수는 조금도 추운줄을 몰랐다.

마리야녀학교설립 60년을 맞으며 연회가 벌어지던 밤에 승냥이 스틸맨에게 쫓긴 어린 사슴 영옥이는 어두운 교실벽 컴컴한 구석에서 떨며 흐느껴울었지만 오늘 밤의 영옥이는 연회를 반대해서 용감히 싸워이긴것이였다. 이것을 생각할 때 찬수는 새삼스럽게 영옥이가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선생님! 념려마세요. 조금도 겁나지 않아요. 저희들 뒤에는 선생님과 오빠가 있고 900여명 재학생이 있고 아니, 이 땅의 수백만 청년학생들이 있고 학부형들이 있고 또 사회가 있으니까요!》

귀전을 쟁쟁 울리는 영옥이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찬수의 눈앞에는 어느덧 영옥이의 얼굴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자하문밖에 나올 때의 영옥, 서대문경찰서 류치장에서 볼 때의 영옥, 공판정에서 실로 잠간동안 볼 때의 영옥… 그 얼굴들이 한꺼번에 눈앞을 어지럽게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용감한 영옥이냐?

그의 오빠 영준이가 오늘 밤 동생의 용감한 행동을 안다면 얼마나 기뻐할것인가?

이런것을 생각해볼 때 찬수는 확실히 영옥이에게 뒤떨어진것만 같았다.

생각하면 영옥이를 미군장교놈의 손에서 구해냈다는것… 그것이 무슨 큰 자랑거리며 큰일이라고 할것인가? 그것은 마땅히 교육자로서, 민족적량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것뿐이 아닌가?

박춘식의 별장에서 스틸맨놈에게 굴하지 않았다는것-그것이 또한 무슨 큰 자부심이 될것인가? 그것은 마땅히 조선민족의 한사람으로서 굳센 의지를 시위하기 위하여 반드시 그렇게 했어야 할 일이 아닌가?

다만 그것만으로써 어찌 오늘 밤의 영옥이앞에 떳떳하다 할것인가?

찬수는 새삼스럽게 고향마을에서 목격한 절량농민들의 시위장면이 떠올랐고 거기에 영준이처럼 대담하게 뛰여들지 못했던 자기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뿐만아니라 오늘 거리에서 본 로동자들의 시위, 철거민들의 시위를 자기는 다만 지나치며 구경만 한것이 아니였던가?

비록 그것이 모두다 자기 작품의 주제가 될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의 예술관이 그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으며 이미 김만국과 종진이와 같은 로동자들과 련계를 맺게 된것도 하나의 발전이라고 생각되기는 하나 그것만으로써는 자기의 발전이 너무나 미약한것만 같았다.

《좀더 현실속으로 파고들어가자! 연약하고 과단성없는 소시민적인 지식인의 근성에서 하루바삐 벗어나자!》

찬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였다.

이 순간 찬수의 눈앞에는 미제와 리승만을 반대해 싸우는 마리야녀학교의 수많은 학생들과 또 그들의 학부형들의 얼굴들이며 형무소 감방안에서 알게 된 차동무와 정돌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며 고향마을에 내려갔을 때에 만난 수많은 절량농민들의 얼굴들이며 오늘 거리에서 목격한 철거를 당한 빈궁민들의 시위행렬들이 차례로 떠올랐고 우렁찬 함성소리가 그의 귀전에 력력히 들리는것만 같았다.

그중에서 김만국과 손영준과 종진이의 얼굴이며 조선희와 백인자의 얼굴이 더 크게 눈앞에 얼른거리였다.

찬수는 이들의 힘이 합치고 뭉쳐짐으로써 조국의 평화적통일의 그날이 동터오고있다는것을 확신하자 가슴이 미여지는듯 벅차올랐다.

이 순간 찬수의 눈앞에는 류달리 방그레 웃는 영옥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 용감했어!)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향상대》를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멀리 보이는 북쪽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유난스럽게도 반짝거리고있었다.

마치 오늘 밤의 사실을 모두 굽어보았다는듯이, 미제를 반대해 싸워이긴 영옥이를 칭찬해주는듯이…

아름답고 상냥스럽고 령리하고 용감한 영옥! 그의 앞길에는 반드시 밝은 태양이 비칠것이며 슬기롭고 보람찬 행복의 아침이 열려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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