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12

 

성탄절을 축하하는 음악회는 소위 성스러운 분위기는 조금도 없었고 또 장내까지 정숙을 잃고말았다.

녀성고음독창을 한다고 녀학생답지 않게 연분홍색치마자락을 무대바닥에 질질 끌고 나와 무슨 가극 가수나 된듯이 얼굴에 농화장을 하고 가슴앞에 조막손처럼 두손가락을 깍지껴 합장하고 손짓, 고개짓, 어깨짓까지 해가며 혀꼬부라진 쇠소리를 내는 꼴은 학부형들의 불쾌감을 자아냈다.

《원, 웬 몸짓을 저렇게 해가며 노래를 부르나?》

《아니, 대체 무슨 노랜지 알아들을수가 없구나. 강아지 앓는 소리같구나. 쇠깎는 소리같구나…》

학부형들이 앉은 어느 구석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였다.

독창이 끝나자 특별초대석에 앉은 미군장교들은 박수를 요란스럽게 쳤다.

이윽고 축음기반주에 맞추어 무용이 시작되였다.

웰톤이 시킨대로 김치선은 무용교원에게 다시 지시를 주었던것이다.

원래 연회장에서 미군장교들과 고문관들앞에만 오붓하게 내놓아 칭찬을 받으려 한 종목중의 하나였으나 웰톤의 지시라 미리 내놓고말았다.

소위 군중무용으로 형상한 반라체의 《인어의 춤》이였다.

초대석에 앉은자들은 막이 채 오르기도 전에 박수를 요란히 치며 환호성까지 올렸다.

《어째 녀학교강당이 아니라 저급한 극장같구나.》

《아니 음악회나 하지 저따위 무용은 왜 해?》

어디선가 또 두덜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떤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고말았다.

영옥은 입을 꼭 다물고 두눈을 오긋하게 뜨고있었다. 외투주머니에 넣은 두손이 자기도 모르게 불끈 쥐여졌다.

영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있었다. 가슴은 몹시 울렁거리고 숨결은 다급해지는것 같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고싶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소리치고싶었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자 겨우 자신을 억제했다.

이윽고 무용이 끝나자 막이 내리고 미군장교들의 박수소리는 더욱 요란하였다.

이제는 마지막종목으로 합창 《성모찬가》가 남아있었다.

합창단은 다시 무대우로 올라서고 막이 스르르 올랐다.

합창이 끝나고 막이 반쯤 내리다가 다시 올라갔다. 합창단은 그대로 잠간 무대우에 서있었다.

사회자가 페회를 선언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학부형들은 그대로 잠간만 앉아주십시오. 이제 손님들이 먼저 퇴장하겠습니다.》 하고 주를 달았다.

《힝! 원 별소리두 다 듣네. 나가는데두 차별이 있어?》

《아니, 우리 학부형들은 손님이 아니란 말인가?》

어느 어머니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김치선은 미군장교들과 고문관들의 퇴장안내를 하려 하였으나 그들은 퇴장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주춤거리면서 무대에서 내려온 합창단 학생들의 곁으로 바싹 다가가 흉물스럽게 손목들을 잡고 무어라고 쏘알거리더니 슬그머니 하나씩 제옆에 잡아끼고 연회장으로 나가려 하였다.

학생들은 손목을 잡히지 않으려고 반항하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합창단 학생들이 미군장교놈들에게 강제로 팔죽지가 잡혀있었다.

영옥은 이 순간 자기가 나설 때가 왔다고 생각되자 앉았던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분격을 참지 못하는 어조로 크게 웨쳤다.

《얘들아! 너희들 단 한사람이라도 끌려가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오영애나 안혜란이가 왜 자살했는지 알겠지? 홍찬수선생님과 한숙경선생님이 왜 면직을 당하고 쫓겨나셨는지 아니? 너희들은 오늘 밤 그 저주스러운 연회장으로 끌려가서는 안된다! …》

영옥이의 목소리가 채 그치기도 전에 어느 좌석에선지 그의 목소리에 호응하여 《그렇다! 끌려가지 말아! 손목을 뿌리쳐버려라!》 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영옥은 그 소리의 주인공이 백인자라는것을 짐작했다.

학부형들이 갑자기 수군덕거리며 장내는 소란해지고 김치선은 당황해났다.

영옥은 계속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학부형 여러분! 60주년 기념연회가 벌어지던 날 밤에 생긴 사건을 여러분들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운동장에는 스리쿼타가 3대나 와서 기다리고있습니다. 그 스리쿼타는 바로 연회끝에 여러분들의 따님들을 태워가려고 대기시켜놓았다는걸 어찌 모르십니까?》

영옥은 또 멍하고 서서 멀리서 자기를 바라다보고만 서있는 교원들에게 웨쳤다.

《선생님 여러분! 선생님들은 내가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오늘 밤 우리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사랑하는 학생들이 짐승들에게 끌려가는것을 보시고도 선생님들은 어째서 그대로 방관만 하십니까? 선생님들은 자기들의 제자가 귀중하고 사랑스럽지 않으십니까? 선생님들은 홍찬수선생님의 뒤를 왜 따르지 못합니까?》

영옥이의 음성은 몹시 떨리였다.

학부형들은 사방에서 수군덕거리며 자기 딸의 이름들을 부르면서 소란을 일으켰다.

어떤 어머니는 자기 딸의 팔을 끌고 가는 미군장교에게 달려들어 《놔라, 놔! 원, 이게 될 말이냐? 연회는 무슨 연회야?》 하며 딸의 손을 잡아당겨 빼앗고는 옆문으로 나가버렸다.

김치선의 뒤를 따라 퇴장하던 웰톤과 스틸맨은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그를 공박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김! 당신 이 일 어찌된 일입니까? 손영옥이 왜 오게 했습니까? 당신 책임지시오!》

웰톤이 화를 내며 김치선을 쏘아보았다.

《미스터 김! 당신 오늘 밤 큰일났습니다. 손영옥이 빨리 체포하시오!》

스틸맨도 노기가 뻗질린 눈살을 찌프리며 표독스럽게 말했다.

영옥은 퇴장하는 학부형들과 학생들 틈에 끼워 강당문을 나오려 하였다.

그러나 어느새 영옥의 앞을 막아서며 팔목을 휘여잡고 두말없이 쇠고랑을 덜컥 채우는 놈이 있었다.

바로 서대문경찰서 류치장에서 영옥이를 고문하던 포악스럽게 생긴 형사녀석이였다.

그놈은 영옥이를 끌고 스틸맨의 뒤를 따라 본관 복도를 지나 김치선의 방으로 갔다.

영옥은 이미 각오한바가 있으므로 겁날것이 조금도 없었다.

교장실 유리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소강당은 전등이 꺼져 캄캄하였다.

영옥은 속으로 안심이 되였다. 연회장의 전등을 꺼버리고 또 연회에 동원된 《허드레반》 학생들이 일제히 일을 중지해버린것이 확실하였다.

영옥은 조선희가 맡은 일이 이미 성공되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틸맨은 독사같은 두눈을 부릅뜨고 권총을 쑥 뽑아들더니 영옥의 얼굴에 바싹 대고 금방 쏘기라도 할듯이 《손영옥! 너 이 권총 무섭지 않느냐? 너 무서운 반미분자다! 이제 너를 엄벌에 처할것이다. …》 하고 위협공갈하였다.

그러나 영옥은 태연한 표정으로 조금도 겁을 내지 않고 도리여 불같은 증오심이 치밀어올라 그놈의 얼굴을 면바로 쏘아보았다.

《까뗌!》

스틸맨은 영옥이를 향하여 욕설을 퍼붓고나서 《당신 빨리 경찰에 끌고 가시오!》 하고 형사놈에게 명령했다.

이윽고 영옥은 두놈의 형사에게 끌려 복도로 나왔다. 두놈은 권총을 뽑아들었다.

만일 영옥이를 탈환하려는 학생들이나 학부형들이 있으면 용서없이 쏘려는것이였다.

운동장에는 군데군데 아직도 많은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오늘 밤 영옥이의 목소리를 듣고 모두다 흥분을 참을수 없었다.

영옥이가 체포된채 찌프차에 올라타는것을 발견한 그들은 그대로 보고만 서있을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무슨 약속도 없었건만 와- 하고 그 찌프차곁으로 몰려갔다.

영옥이를 탈환하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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