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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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다방 《녀왕》에서 지용세를 기다리던 찬수는 거의 6시나 되여서야 그를 만났다.

지용세는 도안료를 받기로 약속한 주문주를 5시까지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하는수없이 빈손으로 찬수를 만났다.

그들은 우울한 기분을 풀기 위하여 어떤 선술집에서 몇잔의 술을 나누고 헤여졌다.

술기운탓인지 찬수는 오늘따라 울화가 더욱 치솟았다.

이날 밤 서울의 거리는 실로 고개를 들고 볼수가 없었다.

술에 만취한 미군들이 도처에서 지나가는 녀자들과 녀학생들의 앞을 막고 끌어가려고 강떼를 부리는것이였다. 성탄절을 축하한다는 날이건만 무장을 한 미군들을 가득가득 싣고 어디로인지 달려가는 군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거리우를 소란스럽게 달렸다.

찬수는 울분을 참지 못한채 하숙으로 돌아왔다.

그는 하숙 녀주인에게 이야기를 채 듣기 전에 자기 방에 사람이 들어왔다간 흔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자기가 세워놓고 간 화판들의 위치가 좀 달라지고 더 규모있게 잘 세워져있는것이 우선 눈에 띄였다. 책상우에 놓인 속사첩속에 종이쪽지를 접어 끼워놓은것도 보이였다.

그는 얼른 속사첩속에 끼워놓은 종이쪽지를 뽑았다.

그것은 바로 영옥이가 써놓고 간 편지였던것이다.

《선생님께 올림》이라고 성의껏 쓴 겉종이의 글씨를 발견한 찬수는 깜짝 놀라며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폈다.

《…선생님! 손영옥이가 지금 선생님 화실에 왔어요. 그동안 선생님은 저를 얼마나 괘씸하게 생각하셨어요? 저는 과연 선생님께 죄를 많이 지었어요! 선생님이 감옥에 계실 때 한번도 가뵙지 못했고 또 선생님이 감옥에서 출옥하신 뒤에도 찾아가뵙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선생님앞에 얼굴을 들수가 없어요.

그러나 선생님! 그것은 제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적어졌거나 없어졌기때문은 아니였어요. 모두가 저의 본의아닌 부득이 한 사정때문이였어요. 집안은 몰락되고 스틸맨놈과 개들은 저의 뒤를 쫓고 어머니는 미군놈의 찦차에 치워 불구자가 되고… 이런 수난속에서 저는 오늘까지도 선생님의 출옥이후 계신 곳을 찾기 위하여 애를 써왔어요. 선생님! 오늘 선생님의 화실을 찾은것은 지은숙씨의 덕이예요. …》

찬수는 이 구절에 이르러 더욱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떻게 되여서 영옥이와 은숙이가 서로 알게 되였는가? 궁금하였으나 그는 얼른 다음 구절로 눈길을 옮겼다.

《…선생님! 저는 오늘 선생님의 승낙도 없이 선생님의 화실에 들어왔어요. 용서해주세요. 더구나 선생님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보았어요. 선생님은 그동안 역경과 싸우시면서 훌륭한 그림들을 많이 그리셨는데 저는 아무것도 그린것이 없어요. 선생님이 저를 꾸중하실줄 알아요.

선생님! 방금 선생님의 속사첩속에서 선희와 인자며 그리고 저를 모델로 그리신 그림들을 보았을 때 저는 가슴이 미여지는듯 한 감격에 잠기지 않을수 없었어요.

선생님은 저를 그리고 선희와 인자를 잊지 않고계신다는것을 깨달을수 있었기때문이예요. 더구나 오빠의 얼굴을 보고난 저의 가슴은 한없이 기쁘기도 하고 또 웬 일인지 눈앞이 흐릿해지기도 해요.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그동안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또 선생님에게서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것이오나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 그대로 돌아갈수밖에 없어요.

선생님! 선생님을 언제나 또 만나뵙게 될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기만 해요. …》

찬수는 이 순간 이상한 예감에 부딪쳤다. 그는 불안스런 감정이 치밀어오르는 속에 바싹 긴장되여 다음 구절을 빨리 읽기 시작했다.

《…선생님! 오늘 밤 마리야녀학교에서는 그 저주스러운 연회가 또 열린다 합니다. 축하음악회가 끝나면 바로 선발된 학생들이 연회장으로 끌려가게 준비가 다되여있다 합니다. 선생님! 저는 오늘 밤 연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도저히 그대로 있을수 없어요.

60주년 기념연회가 벌어지던 날 밤에 선생님은 미군놈들과 싸우시며 저를 구해내였지만 그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으셨으며 또 학교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건이 생겨났고 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겼습니까?

저는 선생님의 뜻을 이어 선희와 인자들과 의논한 끝에 저의 적고 어린 힘이나마 오늘 밤 연회를 반대해서 싸우려 해요.

선생님! 오늘 밤도 그때처럼 미군놈들의 찦차에 학생들이 끌려가서는 안되겠어요. 선생님! 그날 밤에 끌려갔던 오영애와 안혜란이는 결국 그 치욕을 씻을 길이 없어 참혹하게 자살하고말았어요. …》

찬수는 처음 듣는 이 소식에 전신이 부르르 떨리며 흥분되였다.

《…선생님! 제 한몸이 희생되더라도 재학생들이 그 저주스러운 연회에서 구원될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예요. 이렇게까지 저의 마음이 달라진것은 선생님에게서 받은 영향때문이라고 생각돼요.

선생님! 저는 오래동안 소식을 몰라 궁금하던 오빠로부터 편지를 받았어요. 오빠가 선생님을 치료해드렸다는 소식은 실로 뜻밖이였어요.》

찬수는 이 구절에 이르자 더욱 가슴이 뛰고 울렁거렸다.

《…선생님! 부상당하신 다리가 아직도 완쾌되시지 않아 쌍지팽이를 짚고 다니신다니 저의 마음은 더욱 안타까와요. 선생님! 선생님이 학교에서 면직을 당하시고나서 오늘날 쌍지팽이를 짚게까지 된 모든것을 생각할 때마다 저의 작은 가슴은 칼로 도려내는것처럼 쓰리고 아파 견딜수가 없어요. 선생님! 모든것을 용서해주세요.

그때 자하문밖에서 다려다드리겠다고 가져온 선생님의 와이샤쯔를 이제야 다려왔어요! 어머니가 곱게 다려주셨는데 보자기에 싸가지고 와서보니 구겨진데가 많아서 다려놓고 가려 하였사오나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대로 두었어요. 너무도 오래동안 선생님에게 드리지 못했던것이 여간 죄송스럽지 않아요. …》

찬수는 잠시동안 편지에서 눈길을 떼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영옥이의 손길이 닿은 자기 와이샤쯔가 벽에 걸려있는것을 발견한 그는 더욱 가슴이 설레였다.

《…선생님! 선생님이 언제 들어오실지 몰라 더 기다리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갈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선생님! 저는 오늘 선생님 화실에서 본 작품을 통하여 선생님의 음성을 듣는듯 하였고 선생님의 숨결이 느껴지는것만 같은 기쁨과 감격을 느끼였어요.

선생님!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이만 붓을 놓을가 해요. 부디 건강에 주의하시고 훌륭한 작품을 더 많이 그려주세요.

선생님의 작품들이 빛날 날이 반드시 올것이라고 믿어지며 저의 마음은 한없이 기뻐요.

그날은 바로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날이예요.

선생님! 그럼 언제 다시 선생님을 뵈옵게 될는지… 저는 그때가 오래지 않아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 밤 하고싶은 일을 기어이 하고야말겠어요.

선생님! 저는 지금 선생님이 방안에 꼭 계신것만 같아 일어서서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가겠어요. 선생님! 부디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을 존경하는 영옥 올림.》

찬수는 편지를 다 읽고나자 가슴에 세찬 격정이 치솟아올라 도저히 그대로 있을수 없었다.

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일곱시 반이 넘었다.

영옥의 말대로 하면 지금 이 시각에 마리야녀학교에서는 음악회가 열리고있을것이며 앞으로 한시간이내에 끝날것이 아닌가?
찬수는 어름어름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다시 나왔다.

안방 녀주인이 부엌에서 저녁밥상을 차려가지고 들고나왔으나 찬수는 밥을 먹고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니, 진지두 안 잡수시구 어디를 또 가십니까?》

《네, 좀 갔다올데가 생겼습니다. 종진씨는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까?》

《아니요, 아까 들어왔었는데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을 가지구 어디 갔다오겠다고 나갔어요.》

주인녀자는 찬수의 흥분된 표정을 보고 저으기 걱정하는 빛을 띠우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참, 선생님 제자라구 어떤 처녀가 찾아왔다 갔어요.》

《네, 압니다.》

찬수는 다시 구두를 신고 쌍지팽이를 짚고 나섰다.

그는 곧바로 마리야녀학교를 향하여 뛰여가고싶었다.

찬바람이 얼굴을 오려낼것처럼 몰아쳤으나 분격이 치솟아오른 그는 추운줄도 몰랐다.

그는 어느 틈에 무학재고개를 넘어 시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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