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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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완전히 어두워지고 바람은 칼날처럼 예리하고 사나왔다.

외투깃을 올려 량볼을 싸고 넓은 마스크를 써서 얼굴모색을 감춘 영옥은 시계를 연방 들여다보며 한숙경선생과 함께 큰거리로 나와 전차정류장에 다달았다.

그는 방금 조선희의 집에서 둘씩, 셋씩 여러패로 나뉘여 간격을 두고 전차를 타기로 약속한 다음 먼저 선발대로 나오는 길이였다.

영옥과 한숙경은 초조한 마음으로 령천에서 오는 전차를 기다리고있었다.

영옥은 두시간전에 홍선생을 찾아 홍제원 《향상대》에 갔던 생각이 떠오르자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쯤은 홍선생이 하숙에 들어가지나 않았을가? 만일 그렇다면 자기가 써놓고 온 편지를 읽었을것이라고 생각되자 영옥의 가슴은 더욱 울렁거렸다.

영옥은 자기가 오늘 홍선생의 하숙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한숙경선생에게 자랑하고 또 그의 소식을 알려주고싶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전 오늘 홍선생님 하숙을 찾았어요!》

《그래? 만나보았니? 어디냐?》

《뵙지 못했어요. <향상대>예요. 홍선생님은 그동안 정말 훌륭한 미술작품들을 많이 그려놓으셨어요. 이제 홍선생님은 통일만 되면 단번에 유명해지실거예요. …》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있는 동안에 동대문행 전차가 와닿았다.

그들은 함께 전차에 올라탔다.

이윽고 그들은 내려야 할 정류장에 와서 내렸다.

영옥과 한숙경은 컴컴한 길모퉁이에서 발길을 멈추고 서로 굳세게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럼, 선생님! 뒤일을 선생님께 부탁해요!》

《오냐, 부디 용감해라!》

그들은 서로 헤여졌다.

헤여졌다기보다 영옥과 한숙경이 서로 간격을 두고 걷기 시작한것이였다.

영옥은 총총걸음으로 마리야녀학교를 향하여 바삐 걸어갔다.

학교정문이 보이는 돌담밑으로 들어섰을 때 음악회구경을 가는듯 한 학생들과 학부형들로 골목길이 몹시 비좁을 정도였다.

영옥은 그들 틈에 끼워 태연스럽게 따라갔다.

조선희와 백인자가 곧 뒤차로 따라올것이고 그뒤에 나머지 처녀들이 따라오게 되여있었다.

영옥은 학교교문이 가까와지자 까닭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 일을 성사시키면 우선 홍선생이 기뻐할것이고 오빠가 자기를 칭찬해줄것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도 잘못했다고 하지는 않을것만 같았다.

뿐만아니라 수백여명의 재학생들과 또 그 학부형들뿐만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비난하고 나설것 같지 않았다.

영옥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느덧 정문에 들어섰다.

어두운 운동장이였으나 고급승용차와 찌프차가 헤아릴수 없이 많이 와있었고 또 그중에는 작은 화물자동차도 두세대나 보이였다.

바로 오늘 밤 연회가 끝나면 학생들을 태워가려고 미리 대기하고있는게 분명했다.

대강당앞에는 초대장을 쥔 사람들이 미처 들어가지 못하고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영옥은 학생들이 들어가는 문으로 하급생들과 섞여 태연스럽게 들어갔다.

강당안은 벌써 만원을 이루고있었다.

영옥은 학부형석 제일 뒤줄 한 모퉁이에 가서 어느 할머니가 앉은 자리곁에 파고들어가 앉았다. 그는 고개를 가볍게 숙이였고 앉은 키까지 낮추어서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강당 맨 앞줄에는 출연할 학생들이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있었고 바로 그뒤로는 50여석이나 되는 특별초대좌석이 준비되여있었다.

강당안은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로 하여 정숙을 잃고 혼잡을 이루었다.

어느 틈에 조선희와 백인자도 영옥이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영옥은 시계를 들여다봤다. 벌써 여섯시 반이 넘었다.

이윽고 교장 김치선의 안내를 받아 웰톤과 스틸맨을 비롯한 미군장교들과 고문관, 당국의 고관들이 줄을 지어 장내로 들어왔다.

《일어섯!》

갑자기 무대앞에서 구령소리가 들리였다.

남자체육선생의 목소리였다.

앞에 앉았던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러나 학부형들속에는 일어선 사람도 있었고 그대로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뒤에 앉은 학부형들도 다 일어서십시오!》

체육선생의 강요로 앉아있던 학부형들이 일어났다.

영옥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윽고 《귀빈》일행이 자리에 앉자 학생들과 학부형들도 따라앉았다.

얼마후 김치선이가 개회사를 하기 위하여 무대우에 나타났다. 시끄럽던 장내는 약간 조용해졌다.

《에- 지금부터 성탄절축하음악회를 열겠습니다. 에- 오늘 한량없이 기쁜 성탄절을 경축할뿐아니라 우리 학교의 빛나는 륭성발전을 위해서 왕림해주신 귀빈 여러 선생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웰톤선생의 인도로 하나님앞에 다같이 기도를 올립시다. …》

김치선은 물러가고 그 자리에 웰톤이 등장하였다.

웰톤은 옛날 조선에 와서 선교사를 하던 《관록》이 있어 조금도 서슴지 않고 능숙하고 로련한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량쪽팔을 좌우로 쳐들고는 류창한 조선말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 전지전능하옵신 하나님아버지시여! 오늘 거룩한 성탄절을 축하하는 이 모임에 당신의 아들딸 많이 보내주시고 당신의 아들딸 마음속 기쁘게 해주시니 감사 감사합네다.

하나님아버지시여! 당신의 아름다운 딸들이 기쁜 마음으로 배우고 행복스럽게 커나가는 이 학교에 더욱 사랑을 내려주시고 더욱 복많이 내려주시고 더욱 빛나게 해주시고 오늘 밤 이 모임을 더욱 즐겁게 해주시고 이 모임에 참석한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더욱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아버지시여!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과 학부형들에게 붉은 마귀가 침범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시고 뜨거운 사랑을 베푸시사 당신의 거룩한 뜻 전해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좋지 못한 학생들과 학부형들 하루바삐 붉은 마귀의 침범에서 벗어나 회개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 바로 미국의 뜻이며 미국의 뜻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란것 널리 알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시여! 오늘 한국의 사정 매우 딱하오며 한국사람들 매우 위험한 경지에 빠져있는것 보살펴주시옵소서. 한국사람들 요즘 와서 하나님의 뜻인 미국의 뜻 잘 받들지 못하고있사오며 점점 북한 붉은 마귀에게 침범되여가고있나이다.

하나님아버지시여! 당신의 뜻인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속히 구원하도록 해주시고 한국사람들의 마음속깊이 뿌리박히려 하는 북한 붉은 마귀의 침범을 하루속히 뽑아 없애주시기 바라오며 오늘 밤 이 자리에 모인 선량한 학부형들과 아름다운 당신의 딸들에게 특히 마귀가 침범치 않도록 해주시고 오늘 밤 이 모임이 끝날 때까지 기쁘고 아름답게 마치도록 하나님의 뜻 내려주시옵기를 주 예수그리스도 공로 받들어 비옵나이다. … 아…멘!》

웰톤의 기도가 끝났다.

영옥은 그 기도소리가 귀에 토막토막 들린탓에 무슨 소리를 늘어놓는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가까운 시간내에 자기가 할 일에 주의가 집중되고 긴장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장내는 다시 와글와글 시끄러워지고 앞줄에 앉았던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50여명의 합창대원들이 무대로 통한 준비실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음악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것이였다.

영옥은 얼른 음악회가 끝날무렵이 되기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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