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4

 

안방에서 주인녀자가 나왔다.

빗장을 밀고 대문을 제끼자 영옥은 마당으로 선뜻 들어서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묻기 시작했다.

《댁에 선생님 한분이 하숙하고계시지요?》

영옥은 홍선생이 이 하숙에서는 본명을 쓰는지 또는 변성명을 쓰는지 잘 알수 없어서 그저 《선생님》이라고만 말했던것이다.

《네, 어디서 오셨어요?》

《시내에서 왔어요. 그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는 선생님이시죠?》

《네.》

주인녀자는 대답은 하면서도 영옥의 태도를 수상스럽게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영옥은 시선을 마루밑 뜰아래로 돌리였다. 남자의 신발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건너방이 응당 홍선생의 하숙방일터인데 웬 일인지 잠잠하기만 했다.

《선생님이 지금 안 계신가요?》

《아까 나가셨어요.》

《곧 들어오실가요?》

《글쎄요. 며칠만에 나가셨으니까… 꼭 만나야 하시겠거든 기다려보시지요.》

《네.》

영옥은 주인녀자를 따라 뜨락으로 올라섰다.

《선생님 계신 방이 건너방이예요?》

《네.》

《선생님이 혼자 계세요?》

《네.》

《그럼 오실 때까지 들어가있겠어요.》

《아니, 그 방이 추울텐데 안방에서 기다리세요.》

주인녀자는 역시 용의주도하여 영옥이의 신분을 알수 없어선지 건너방으로 들어가려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색이였다.

눈치를 챈 영옥은 건너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주인녀자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방에서 기다리고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홍선생이 없는 방이지만 얼른 그 방에 들어가 홍선생이 그동안 어떤 그림들을 그리고있는가 보고싶었다.

《그런데 선생님하구 잘 아세요?》

주인녀자가 물었다.

《네, 우리 선생님이세요.》

《네, 그러세요.》

《선생님의 다리는 좀 어떠신가요?》

《아직두 잘 못쓰세요. 오늘도 쌍지팽이를 짚고 가셨어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영옥은 벌떡 일어나며 《선생님방에 이것 좀 갖다놓고 오겠어요.》 하고 말하고는 주인녀자의 표정을 살폈다.

《네, 갖다두고 오세요.》

영옥은 주인녀자의 승낙을 받자 보자기를 들고 얼른 나와 건너방 미닫이를 열었다.

영옥은 이 순간 가슴이 울렁거렸고 미닫이를 여는 손이 가볍게 떨리였다.

방안에서는 찬바람이 휭 돌았으나 채색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안에는 그전에 자하문밖에서 보던 창작용책상이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웃목벽에는 여러개의 화판이 포개져서 비스듬히 세워져있었다.

자하문밖의 하숙방에서 보던 때와는 판이하게 화구며 서적이며 속사첩이며… 실내에 놓여있는 모든것들이 질서있게 잘 정돈되여있었다.

벽에는 자하문밖에서처럼 풍경화들은 별로 볼수 없었다.

영옥은 보자기를 풀고 가지고 온 와이샤쯔를 꺼내놓았다.

그는 벽쪽으로 다가가 차곡차곡 세워놓은 화판들을 하나하나 제껴보기 시작했다.

자하문밖에서 보지 못하던 새로운 그림들이였다.

절량농민들의 시위, 기아와 질병에 신음하는 농촌환자들, 감방생활에서 취재한 그림들, 도시실직자들의 울분에 찬 얼굴들, 철거령을 반대해나선 도시빈민들, 임금을 받지 못하여 웅성거리는 로동자들… 이런 그림들이 눈에 띄울 때마다 영옥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홍선생이 어느 틈에 이런 많은 그림들을 그렸을가? 실로 홍선생의 정열에는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영옥은 어느덧 낯이 화끈해졌다.

자기는 그동안 그림 한장 변변히 그려보지 못했으니 홍선생이 만일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것인가?

그는 다시 화판을 제끼다가 소스라쳐 놀랐다.

서대문경찰서 류치장에서 고문을 당하고 나올 때의 자기의 모습을 형상한 그림이였기때문이였다.

마리야녀학교 교복을 입은채 물주머니가 되여 나올 때의 자기의 증오에 찬 얼굴이 방불하게 그려져있었다.

영옥은 좁은 가슴이 미여지는듯 감회가 벅차올랐다.

홍선생이 얼른 돌아오면 이 그림들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터인데… 안타까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채 그는 다시 책상우에 놓여있는 속사첩을 일일이 번져보기 시작했다.

화판의 그림들이 이 속사첩에 그려진 그림을 확대한것임을 비로소 알수 있었다.

이장저장 뒤지던 영옥은 또 깜짝 놀랐다. 오빠 영준의 얼굴이 속사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위생복을 입은 오빠의 얼굴에는 예리하고도 리지적인 과학자적풍모까지 나타나보이였다.

영옥은 그립던 오빠를 금방 만나보는듯 한 반가움과 흥분이 한꺼번에 치솟았다.

한숙경선생의 얼굴도, 조선희, 백인자의 얼굴도 속사첩에서 발견하였을 때 몹시 기쁘고 감동되였다.

어느 틈에 4시가 가까왔다.

이 시각에 홍선생이 명동다방 《녀왕》에서 지용세를 기다리고있는줄 영옥은 꿈에도 알수 없었다.

영옥은 홍선생이 얼른 돌아오지 않는것이 더욱 안타까왔다.

홍선생을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듯 했으나 조선희, 백인자와 약속한 시간은 너무도 빨리 다가오는것이였다.

어느덧 시계는 4시를 넘어섰다.

홍선생이 지금 돌아와도 이야기를 오래하고있을수 없는 그였다.

다섯시까지 조선희 집에 도착하자면 시간이 모자랐다.

영옥은 이이상 더 홍선생을 막연히 기다릴수는 없었다.

그는 오늘 밤에 할 일을 생각하면 조선희와 백인자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을 30분이상 초과해서는 안된다고 느껴졌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 전차종점까지 30분이상을 걸어가야 할것이고 전차를 타고 조선희 집에까지 가자면 그것도 30분은 넉넉히 걸리지 않는가?

영옥은 초조한 마음에 조바심을 하다가 결국 결심을 내리고 책상우에 흰종이를 몇장 꺼내여놓고 바삐 편지를 썼다. 어쩔수없이 편지나 남겨놓고 떠나려 한것이였다.

영옥은 시간이 바쁜탓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펜을 들고 단숨에 두장의 종이에다 그래도 제법 긴 사연을 써서 접어놓고 가지고 간 홍선생의 와이샤쯔를 벽에 걸며 시계를 또 들여다보았다.

그는 얼른 외투를 입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안방으로 건너가 차근차근 이야기하거나 인사를 할 사이도 없었다.

영옥은 마루에서 집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더 좀 기다려보세요. 아마 곧 들어오실거예요.》

주인녀자는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가야겠어요.》

영옥은 뜨락으로 내려섰다. 주인녀자도 따라 내려섰다.

《혹시 도중에서 만나실는지도 몰라요. 늦게 다니시지는 않으니까…》

주인녀자는 대문밖까지 나와 바래주었다.

《그럼, 선생님 오시거든 말씀이나 전해주세요. 제자 하나가 와이샤쯔를 갖다놓고 갔다구…》

영옥은 주인녀자에게 부탁을 하고나서 총총걸음으로 비탈길을 걸어내려와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그는 오늘 홍선생을 만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는것이 몹시 허전하고 안타까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한히 기뻤다.

홍선생의 방에서 들추어본 화판들과 속사첩의 한장한장 어느것에서나 홍선생의 숨소리와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던것이다.

이제는 홍선생의 예술관이 더욱 확립된것만 같았다.

미제가 강점한 남조선의 생지옥속에서 미군철수를 용감히 웨치며 평화적인 조국통일을 념원하는 인민들을 형상화하는것을 자기 그림의 주제로 삼고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영옥은 홍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더 강렬해졌다.

영옥은 뻐스를 기다릴 사이도 없이 초조한 마음에 그대로 바삐 걸어서 무학재고개를 넘었다.

전차정류장까지 가는 동안에 혹시 홍선생을 만나지나 않을가싶은 한가닥 희망은 그의 가슴을 더욱 설레이게 하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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