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3

 

이날 영옥은 공장에서 오전에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늘 할 일이 적지 않았다.

어제 은숙이로부터 홍선생의 주소를 알았으니 오늘은 반드시 홍선생을 만나러 가야 했고 또 오늘 밤 이미 의논한대로 자기가 자진해서 맡은 중한 책임을 수행해야 했다.

영옥은 오늘 오후 5시에 조선희와 백인자를 만나기로 굳게 약속이 되여있었기때문에 홍선생을 만날 시간은 그 이전이라야만 했다.

영옥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 찬장곁에 놓여있는 궤짝속을 열어봤다. 거기에는 자기가 묶어가지고 단단히 넣어둔 오빠 영준이의 서적들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그는 어쩐지 앞으로 안심이 되지 않아 찬장을 들어내놓고 그 밑바닥을 팠다.

《아니, 너 왜 거길 파니?》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오빠 궤짝을 우선 깊이 묻어두어야겠어요. 별일은 없겠지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영옥은 손을 멈추고 말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단단하게 두는게 낫지! 혹시 그놈들이 주소를 알고 찾아와 뒤져가면 어쩌겠니… 그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책들을…》

어머니는 영옥이를 도와 궤짝을 깊이 묻고 그우에 찬장을 다시 놓았다.

영옥은 방으로 들어왔다. 자기의 책상우와 서랍속을 정리하며 이것저것 한데 뭉그려 치울것은 치우고 그대로 둘것은 두었다.
그는 오빠의 책궤짝속에서 꺼내여 읽던 표지없는 책 두권을 종이에 싸들고 부엌으로 나와 찬장옆에 놓인 쌀궤짝밑을 다시 파고 깊이 묻어놓고 어머니에게 부탁하였다.

영옥은 방으로 들어와 자기 옷가지가 들어있는 버들상자를 열고 속옷을 한벌 꺼내였다.

그는 어머니가 눈치채지 않도록 얼른 속옷을 껴입었다.

《얘, 너 오늘 홍선생 보러 간댔지?》

《네.》

《아예 가는 길에 그 와이샤쯔 가져다 드려라. 벌써 그게 언제냐. 미리 꺼내놓아라. 꾸겨진것 다려주마.》

《네.》

영옥은 홍선생의 와이샤쯔를 꺼내놓았다.

《그리구 너 무슨 옷 입고 갈 작정이냐? 그때 입고 갔던 하늘빛치마저고리 입고 가려거든 그것두 꺼내놔라.》

어머니가 말하자 영옥은 잠간동안 무엇을 생각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때 오빠가 입다가 작다구 나 준 양복바지 있지요?》

《아니, 너 갑자기 양복바지를 입고 갈테냐? 오래간만에 선생을 만나러 가면서 건방지게 보이면 못쓴다. 계집애들이 치마를 입든지 양복을 입으면 입었지 무슨 건방지게 남자양복바지를 입고 다니는지 눈꼴이 시더라.》

어머니의 이런 주의를 들으면서 영옥은 속으로 웃었다.

실상은 홍선생에게 건방지게 보이기 위하여 양복바지를 입으려는것이 아니라 그 리유가 딴데 있는것을 어머니로서는 아직 리해할수 없었던것이였다.

《아이유, 어머니두! 양복바지가 뭐가 건방져뵈여요. 외투안에 간단하구 좋지요.》

《그래, 네 마음대루 해라. 네 오래비가 네게 자유를 주랬으니…》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방으로 들어와 영준의 옷만 따로 넣어둔 상자속에서 검정양복바지를 꺼내주었다.

영옥은 양복바지를 입었다. 우아래에 내의를 든든히 껴입은 그의 몸엔 오빠의 양복바지가 오히려 통이 좁았다.

그는 오빠가 집을 나가던 그날 밤의 일이 선뜻 머리에 떠올랐다.

오빠 영준은 그때 침착하게 자기가 벗어주는 털세타까지 껴입고 나가지 않았던가. …

영옥은 오늘 자기가 맡은 일을 침착하고 용감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양복저고리를 입고 외투를 걸치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다려준 홍선생의 와이샤쯔를 잘 개여 보자기에 싸들고 일어섰다.

그는 먼저 《향상대》로 가서 홍선생을 만나 인사를 하고 와이샤쯔를 전한 후 곧 나와 백인자와 조선희를 만나면 다시 집에 돌아올 사이없이 학교로 가야만 할것 같았다.

오늘 밤 만일 마리야녀학교에서 자기가 경찰에 체포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당분간 또는 오랜 기간 다시 만날수 없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영옥은 갑자기 어머니가 걱정스러웠다.

《어머니, 나 오늘 홍선생을 만나보고나서 그길로 바로 선희와 인자를 만나 학교를 다녀오겠어요.》

영옥은 태연스럽게 말하며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였다.

《아니, 너 그까짓 놈의 학교는 뭣하러 가니? 홍선생이나 만나 인사하고 바루 오지…》

어머니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너무 념려마세요. 혹시 오늘 밤 늦게 되면 선희네 집으로 가서 자고 올테예요. 기다리지 마세요.》

《너, 그게 무슨 소리냐? 늦어두 들어와야 헌다. 래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너의 오래비 생일이다. 공교롭게 다른 날 다 놔두고 너까지 빠지면 되니?》

어머니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들어와요. 만일 못 들어오면 래일 아침 일찍 오겠어요. 걱정마세요.》

영옥은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말했으나 그의 가슴은 몹시 아팠다.

《그럼, 어머니 다녀오겠어요!》

영옥의 목소리는 태연하려 하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떨리였고 두눈이 어느덧 흐릿해졌다.

영옥은 어머니에게 눈치를 보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되여 얼른 마당을 걸어나갔다.

어머니는 영옥의 태도가 수상해보이는지 불안스런 목소리로 《얘, 영옥아! 너 오늘 밤 그놈의 연회인지 파티인지 못하게 하러 가는거 아니냐?》 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예요, 어머니! 너무 념려마세요.》

《그놈의 연회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상했니? 생각하면 그저 달라붙어 그놈들을 짓밟아놓고 때려부셔도 분이 안 풀리겠다. 그러나 너희들의 힘으로 될듯싶으냐? 공연히 또 고생들만 할라. 주의해라!》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아버님이 들어오시더래두 아무 말씀마세요. 공연히 걱정하실테니깐…》

《그래, 부디 넌 표나게 나서지 말고 얼른 집으로 들어오너라. 응?》

《네.》

영옥은 어머니에게 약속을 남기고 거리로 나왔으나 어머니를 속인것이 가슴에 아팠다.

영옥은 령천행 전차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다음 무학재고개를 넘어섰다.

칼날같은 바람이 량볼을 때리였으나 그는 추운줄을 몰랐다.

홍제원다리를 건너 《향상대》의 비탈진 부락을 한참동안 더듬어올라갈 때 영옥의 가슴은 몹시 출렁거리였다.

(그동안 홍선생을 만나지 못하여 얼마나 안타까와했던가? 홍선생은 그런것을 모르고 얼마나 무심하다고 섭섭히 생각하며 혹은 오해까지 하고있지나 않을가? 그러나 오늘 만나면 홍선생은 섭섭했던 마음도, 오해했던 감정도 모두다 풀리겠지. 그리고는 반가이 맞아주겠지…)

영옥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가슴은 더욱 설레이고 다리는 떨리였다.

홍선생의 하숙집을 찾아 마당으로 쑥 들어가며 《홍선생님!》 하고 부르면 홍선생은 얼마나 놀라며 기쁘게 뛰여나올것인가!

《아, 영옥이! 이게 웬 일이야? 그래 어떻게 집을 찾았어? 얼른 올라와!》

홍선생은 틀림없이 자기의 손목을 정답게 쥐며 방으로 안내해줄것 같았다.

영옥의 가슴은 더욱 출렁거렸다.

그는 한참만에야 겨우 홍찬수의 하숙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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