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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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아침이였다.

찬수는 만국이가 요구한 철거민들을 모델로 한 그림을 그려놓고나서 그동안 틈틈이 밥벌이로 그려놓은 광고도안과 자수도본 등 지용세의 부탁을 받아 그린것들을 정리하여 속사첩안에 접어넣어들고 하숙을 나섰다.

아직도 완쾌되지 못해 쑤시고 아픈 다리였으므로 그는 오늘도 쌍지팽이를 짚고 거리로 나섰다.

성탄절의 서울의 풍경은 문자그대로 란장판이였다.

보통날도 그렇지만 벌써 거리에는 대낮부터 술에 만취한 미군들이 떼를 지어 비틀거리며 통행하는 젊은 녀자들과 녀학생들을 가로막고 희롱을 하고 규정을 위반하고 속력을 놓아 제멋대로 이리저리 지랄치며 달리는 미군들의 찌프차며 자동차들이 사람을 치워놓고도 그대로 뺑소니치는가 하면 서로 충돌을 하고 또는 전주에 부딪치거나 점포진렬장을 들이받기도 했다.

백화점과 양품점 상품진렬장들에는 《성탄절프레센트》용미국상품 견본이 화려하게 진렬되여있었고 산타클로스할아버지의 그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무도장, 캬바레, 빠, 식당, 다방 등에는 청솔가지로 경축문을 세우거나 솔포기를 떠다심어놓고 흰 솜을 덮어 설경을 만들었다.

이런 축하장식을 한 건물들의 정문앞에서는 누데기를 걸친 어린 거지들이 깡통을 들고 벌벌 떨면서 드나드는 《신사》들에게 《돈 한푼 줍쇼!》 하고 굽신거리며 애걸하건만 《신사》들은 본둥만둥 그들을 피해갔다.

라지오, 축음기, 확성기들에서는 음탕한 쟈즈곡이 그칠 사이없이 요란스럽게 흘러나왔다.

빈궁과 기아의 거리, 무직과 실직의 거리-서울의 거리를 래왕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오늘따라 더욱더 침울하고 저주스러운 원망의 표정이 떠돌고있었다.

예수가 탄생한 날을 경축하는 성탄절이 다만 종교적축하행사로 그치는것이 아니라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들에게는 이날이 바로 로골적으로 공인된 만행의 날로, 부패한 미국식생활양식을 더욱 선전하고 강요하는 날로, 새로운 전쟁도발을 위한 시위의 날로 리용되고있는것이다.

찬수는 물론이거니와 래왕하는 시민들도 이러한 성탄절이 자기들의 생활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날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발아래만 보며 힘없이 오고갔다.

어느 골목에서는 굳게 닫힌 회사정문앞에 수많은 로동자들이 모여들어 문짝을 차고 고함을 지르며 시위하는 모습이 보이였다.

그것은 확실히 밀린 임금을 받으러 온 로동자들의 행렬임에 틀림없었다.

을지로7가에서 내린 찬수는 신당리쪽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군중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다 람루한 옷에 얼굴이 파리했고 흥분되여있었다.

《그저 시청을 때려부셔야 돼! 이 겨울에 어디로 가라고 철거령을 내리고 집을 허물어 쫓아내느냐 말야.》

《어서 빨리빨리들 가자!》

《망할놈들이 오늘 있긴 뭐가 있어? 우리가 이렇게 항의하러 올줄 알고 문닫고 술 처먹으러 갔겠지…》

《정문이 닫혔으면 뒤문을 차고 들어가서 앉아버티자꾸나!》

군중들속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리였다.

찬수는 한참동안 자기도 모르게 흥분된채 그대로 서서 시청쪽을 향하여 밀려가는 군중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철거를 당하고 쫓기는 사람들의 절박한 처지!

그것은 자기가 당하고있는 처지와도 같이 생각되였다.

찬수는 좀처럼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한채 미술장치사를 찾아갔다.

장치사에서는 지용세가 찬수를 기다리고있었다. 장치사는 아직도 간판을 붙이지 못했다.

찬수는 지용세가 앉아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속사첩에서 도안을 꺼내여 용세에게 주었다.

용세는 그것을 받아 자기 가방에 넣어가지고 일어섰다.

《내, 그럼 두어시간뒤에 돌아올테니 여기서 기다리겠소?》

용세가 묻자 찬수는 잠간동안 무엇을 생각하다가 《아니, 나두 명동에 좀 가서 화구를 사야겠습니다.》 하고 그와 함께 일어섰다.

《그럼 명동다방 <녀왕>에 가셔서 기다리시죠. 내 곧 갈테니…》

지용세는 찬수와 서로 약속을 하고 바삐 동대문쪽으로 사라졌다.

찬수는 그길로 명동 어느 문방구상점에서 붓 몇개와 속사첩을 두어권 사가지고 다방 《녀왕》으로 들어갔다.

담배연기가 짙은 다방안은 거의 만원이였고 전축에서는 시끄러운 쟈즈곡이 흘러나오고있었다.

찬수는 어느 구석진 조용한 자리를 골라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이 다방안에 모이는 사람들이란 주로 영화배우를 비롯하여 음악가, 미술가 등 예술가들이라는 정평이 이미 나있었고 오늘도 모여앉은 사람들의 용모와 의상들만 봐도 그것을 짐작케 하고도 남았다.

찬수는 이웃에 앉은 미술가인듯 한 사람들이 자기를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는것을 느꼈으나 태연스럽게 커피잔을 들고 후르르 들여마시였다.

다방정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나들어 번거로왔으나 용세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이윽고 얼마후에 다방문이 열리며 호화스럽게 차린 양장미인이 들어왔다. 그는 바로 미라였다.

미라는 오늘따라 농화장을 했고 입술엔 새빨갛게 연지를 칠했다.

미라는 벌써 자기의 몸 한부분이 썩어져들어가고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한때 찬수에 대하여 일종의 렵기적 또는 생리적인 호기심을 느꼈던 미라였으나 이제는 그런 미련조차도 아주 단념해버리지 않을수 없었다.

더러워진 자기 몸을 받아줄 곳은 어디인가? 그것은 다만 륜락의 거리일것이며 그 거리에 몸을 내던지는 길… 그 길만이 자기가 갈길이라고 생각되였다.

미라는 자기의 꾀꼬리같은 목소리, 탄력있는 육체미, 미국녀자와 흡사한 용모는 반드시 륜락의 거리에서 인기를 끌것이며 큰 환영을 받을것이고 그것으로써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청춘의 향락과 위안을 맛볼수 있다고 느끼고있는것이였다.

이것이 미라가 발견한 세계관이였고 생활철학이였다.

일찌기 부르죠아지의 딸로 호의호식하며 자라난 미라는 금상첨화격으로 미국식생활양식을 강요하는 그리스도교계통의 학교교육을 받았고 또 아버지의 리용물이 되여 미국인과의 접촉에서 영향을 받아 철저한 개인리기주의자로 성장한것만큼 결국 자기가 갈길은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되였다.

미라는 아버지 박춘식이가 파산을 당한 이후 결국 자포자기하여 성악련습도 집어치우고 명동과 충무로일대의 무도장이나 다방거리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가 오늘 다방 《녀왕》에 나타난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것이였다.

찬수는 자기와 약간 멀리 떨어진 저편쪽 벽밑에 앉아서 혼자 포도주를 마시고있는 미라의 옆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어느덧 고개를 돌려버리고말았다.

찬수는 지난날 미라가 병원에서와 기차안에서 예술가로서 진실하게 살고싶다느니 뭐니 하고 이러니저러니 떠벌이던 일이 새삼스럽게 회상되자 불쾌한 생각이 치밀어올랐다.

찬수는 눈을 감고 머리를 좌우로 쩔레쩔레 흔들어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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