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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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수의 하숙은 무학재고개를 넘어 홍제원 빈민부락 《향상대》언덕배기에 있었다.

일제시대에 《조선신궁》이 있는 남산변두리에 불결한 빈민부락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일조에 철거령을 내려 수천세대에 달하는 주민들을 멀리 시외로 내몰아 쫓은 곳이 바로 이곳이였다.

8. 15해방후 이 부락에는 미군 군용건물이나 군용지를 만들기 위하여 여기저기서 철거를 당한 더 많은 빈민세대들이 들어앉게 되여 빈민부락으로서의 면목은 다른 곳에 비하여 별로 빠질게 없었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이 부락명칭과 같이 《향상》되여가는 빈민부락으로서의 그 《전통》을 자랑하고있는것이였다.

하모니카구멍처럼 빠끔빠끔 구멍이 났는가 하면 게딱지나 찌그러진 성냥갑처럼 생긴 궤짝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수천호가 밀집해 살고있었다.

지난 시기에는 공장로동자들이 많이 살던 부락이나 지금은 실직자와 무직자와 무거주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있다.

이 《향상대》에도 손영옥이네가 사는 문화동처럼 날품팔이, 페품수집, 구두닦기, 연통소제, 넝마장수, 달구지군,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 등등이 살고있었다.

찬수가 구태여 이런 빈민부락으로 하숙을 옮겨온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인왕산 허물어진 성터에서 전쟁피해를 입어 죽지가 부러진 늙은 소나무를 그림의 유일한 모델로 삼아 자위를 느끼던 찬수는 이제는 그것만으로써는 자기 예술관을 만족시킬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였다.

그는 그동안 오랜 세월은 아니지만 마리야녀학교에서 연회가 벌어지던 날 밤에 있은 사건이후 허다한 시련을 겪었으며 전에 해보지 못한 생활체험을 쌓고 특히 고향마을에서 농민들의 시위사건을 통하여 산 인간들의 현실속으로 좀더 깊이 뛰여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미제와 리승만에게 모든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기아와 빈궁의 캄캄한 구렁창속에서 신음하면서도 래일의 희망과 광명인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갈망하여 싸우는 억센 인간들의 형상속에서 그는 자기 작품의 주제를 찾으려 하였다.

찬수가 들어있는 하숙은 지용세의 알선으로 알게 된 그의 처조카벌되는 사람의 집이였다.

그는 현재 룡산철도공장 기계수리공인 김종진이란 30살가량 된 로동자였다.

일제시대에 삼판통에서 철거를 당하고 이 부락에 옮겨와 지은 집이였으나 목공이였던 그의 아버지가 자기의 손으로 지은지라 방도 좀 크고 제법 들창문도 높고 크게 달려 이 부락에서는 우수한 주택에 속해있었다.

우수하대야 조그만 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너방이 있을따름이였다.

집안식구가 많지 않아 겨울에는 연료관계로 건너방을 사용하지 않고있었다.

찬수는 이 집 건너방으로 짐을 옮겨온 그날부터 넓지는 못할망정 자기 화실을 꾸리기 시작했다.

출옥은 되였으나 《집행유예》라는 멍에를 쓴 그는 언제 다시 피검될는지 모르는 불안한 형편이였으므로 숫제 《국민반》에도 등록을 하지 않고 살다가 들통이 날만 하면 인차 다른 곳으로 옮겨갈 생각을 하고있었다.

주인인 용세의 처조카는 퇴근해오면 밤마다 건너방으로 건너와 찬수와 담배를 같이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또 그가 그림을 그리는것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찬수는 어쩔수없이 용세가 주문을 받아온 광고도안, 자수도본 등을 그려 밥벌이를 하는 한편 고향마을에서 속사해온 기아와 빈궁과 질병에 신음하는 농민들의 형상이며 절량농민들이 아우성치며 시위하는 장면들을 큰 화폭에 옮겨그리기 위하여 여러개의 화판을 준비하였다.

그는 역시 그날그날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광고도안이나 자수도본을 그려주는것이 아니라 이 큰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있을뿐이였다.

찬수는 속사첩에 그려놓은것들만 다 화판에 옮기면 조그만 개인전람회쯤은 넉넉히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였으나 지금같은 환경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은 우선 자기가 그리는 그림들을 미제와 리승만《정부》가 용납해주지 않을것이 빤하기때문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창작적정열을 식힐수 없었고 예술적감흥을 억누를수 없었다.

그는 멀지 않은 앞날에 반드시 자기의 그림을 버젓하게 전람회에 내놓을 때가 있을것이고 또 그때를 앞당기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고 다시한번 결의를 다지면서 화폭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찬수는 이곳으로 하숙을 옮겨옴으로써 몇사람의 로동자들과 친할수 있게 되였다.

바로 찬수가 이 집에 온지 불과 며칠이 지났을 때의 일이였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여서 주인인 김종진은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이른아침 찬수는 마당에 나가 세검정쪽을 향해 서서 가벼운 운동을 하고있었다.

갑자기 대문이 열리며 《종진이!》 하고 부르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찬수는 무심히 그 사람과 얼굴이 마주치다가 선뜻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비록 털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리우기는 했으나 그의 눈매와 코날이 어디서 본듯 한 얼굴이였기때문이였다.

그도 웬 일인지 잠간 찬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먼저 《아! 선생님 아니십니까?》 하고 털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했다.

찬수는 그제야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 김만국씨 아니십니까?》

그는 찬수가 감옥에서 출옥한 뒤 차동무로부터 받은 부탁을 전하려고 문화동에 찾아갔을 때에 본 김만국이 확실하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웬 일이십니까? 여기 하숙하셨습니까?》

《네.》

찬수는 선선히 대답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참, 그때 그 부탁은 바루 전하셨습니까?》

《네.》

김만국은 찬수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성큼 마루로 올라가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되지 않아 또 누구인지 로동자 두서너명이 모여드는것이였다.

찬수는 방으로 들어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안방에서는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리였다.

조그만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안방이였으므로 그들의 이야기소리는 드문드문 또렷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찬수는 무심히 귀를 기울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니 그놈들이 우리들의 임금을 횡령해 처먹고 이제 와서는 해결할 길이 없으니깐 해고를 시킨다? 힝! 이러니저러니 할것 없어! 이제는 죽느냐 사느냐의 판가리싸움이야. …》

한사람이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해고반대파업투쟁으로 들어가는수밖에 없지!》

다른 사람이 맞받아 말했다.

《할바엔 철저히 합시다. …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라구…》

이것은 틀림없는 김만국의 목소리였다.

《물론 해고반대투쟁을 해야지. 그러나 이제는 말야. 미국놈 나가라고 적극적으로 소리높여 부르짖어야 해!》

이것은 확실히 집주인 종진이의 음성이였다.

찬수는 가슴이 두근거려 그대로 앉아 그림을 그릴수가 없었다.

그들이 모두다 잘 아는 사이라면 자기도 뛰여들어가 목격하고 온 고향마을 농민들의 동향을 알려주고싶었고 또 그들을 격려해주고싶은 생각이 샘솟아올랐다.

그들은 한참동안 더 이야기를 하더니 얼마후에 몇사람은 나가고 누구인가 건너방 문을 두드리며 찬수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김만국이였다.

《어서 오십시오. 자, 여기 앉으십시오.》

찬수는 붓을 놓고 담요를 깔아주며 앉기를 권했다.

김만국은 사양하고 그대로 앉으며 《아, 선생님이 화가이신줄은 몰랐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방안을 휙 한번 둘러보더니 화판의 그림들을 이것저것 보기 시작했다.

그는 채 완성도 되지 못한-륜곽만 보이는 시위장면을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그런데 선생님! 이 그림을 조그마하게 그릴수는 없습니까?》 하고 묻고는 빙긋이 웃었다.

《그림이 크고작은것은 상관없습니다. 작으면 작은만큼 물자가 적게 드는것뿐이죠.》

찬수는 상냥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조그마하게 한장 그리시자면 물자가 얼마나 들가요?》

김만국은 어느덧 찬수의 그림에 빠져들어갔다.

《들면 얼마나 들겠습니까? 그리는 시간이 걸릴뿐이죠.》

찬수는 태연하게 말하며 만국에게 담배를 권했다.

《미안하지만 선생님! 그럼 이 농민들을 그린 그림 한장 조그맣게 그려주실수 없습니까? 용지는 내가 구해다드릴테니까요!》

김만국은 침착한 어조로 부탁했다.

찬수는 빙긋이 웃으며 《뭐, 구해오시긴… 필요하시다면 그대루 그려드리죠. 그러나 그림이 별루 잘된것 같지 않습니다.》 하고 겸손히 말했다.

찬수는 김만국이와 같은 로동자가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것이 비로소 처음이였으므로 기분이 좀 이상해졌고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 도회지 로동자들이나 빈민부락에 사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은 없습니까?》

《네, 이제 그리려구 합니다. 그런 그림이 필요하십니까?》

찬수는 또 미소를 지으며 김만국의 표정을 살피였다.

《혹시 그려놓으신것이 있으시면 보고싶어 그럽니다.》

김만국도 마주보며 웃었다.

찬수는 그후 이틀이 지나 만국이가 다시 왔을 때에 두장의 그림을 그에게 주었다.

한장은 절량농민들의 시위장면, 또 하나는 빈궁과 기아에 신음하는 도회지의 실업자군상을 그린 그림이였다.

만국은 몹시 만족한 얼굴로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선생님의 그림을 보니깐 이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이는것 같고 고함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것만 같습니다. 난 선생님의 이 그림을 나 혼자 보려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만은 꼭 믿어주십시오!》

김만국은 손을 내밀어 찬수와 악수를 하고 물러갔다.

주인 종진이도 찬수에게 여러장의 그림을 요구했다. 찬수는 거절하지 않고 다 그려주었다.

찬수는 만국이가 사는 문화동에 영옥이가 산다는것을 알리 없었고 만국이 역시 찬수가 영옥이가 찾고있는 홍선생인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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