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정열

4

 

영옥이가 잠을 못 이루고 가슴만 설레이는 이밤, 지용세의 집 건너방에서는 은숙이가 잠을 못 이루고 가슴을 태우고있었다.

그는 용세가 요즈음 아버지의 석방문제를 비롯하여 찬수의 하숙문제 또 자기 취직문제, 또 집안생활문제 등으로 바삐 휘돌아다니는것이 보기에 딱했다.

사실상 용세가 맡아온 장치사 일을 일부분 거들어주기는 하지만 어쩐지 그것이 밥값도 되는것 같지 않아서 친척집이라고는 하나 미안하고 불안해서 괴롭기만 했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고동소리가 울 때가 되여서야 대문이 열리며 용세가 들어왔다.

은숙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섰다.

안방에서는 용세의 안해가 어린아이를 재우느라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아저씨, 인제 오세요?》

《음, 그래 래일 차입할건 다 준비됐니?》

《네.》

《어제는 홍씨가 사과허구 빵을 차입했다더라.》

《그래요? 그런데 홍씬 어디서 만나셨어요?》

《오늘 사에 나왔더라.》

《그럼 그 이야기 하셨어요?》

《무슨 이야기?》

《그를 만나지 못해 애타하는 처녀가 있다구…》

《참, 그거 깜박 잊었구나. 그렇지만 오히려 안 만나게 하는게 좋다. 정체두 모르는…》

《아이유, 아저씨! 어찌 정체를 모른다구 그러세요? 자기 이름까지 또 련락장소까지 가르쳐주고 갔는데…》

은숙은 안타깝게 지용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제지간이건 그렇지 않은 사이건 지금 홍씨형편이 녀자 만날 형편은 아니야.》

지용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이유, 참 아저씨두… 그렇게 두번 세번씩 안타깝게도 찾아다니는데 어떻게 안 가르쳐줄수 있어요? 글쎄… 대체 새로 옮겨간 하숙주소가 어디예요? 좀 가르쳐주세요.》

《가르쳐줘두 넌 찾아가지 못해. 시외구 번지찾기가 힘든 곳이야. 한 4~5일후에 사에 나올테니깐 그때에 만나려무나. 오늘 내가 일거리를 잔뜩 맡겼다. 며칠동안은 바쁠게다. 자기의 하숙료도 하숙료지만 형무소에서 알게 된 사람들 또 너의 아버지나 오변호사에게 단 한번씩이라도 빵과 과일을 차입하려구 지금 바쁘다.》

지용세는 양복을 벗어걸고 바지를 바꿔입었다.

그는 방 아래목에 앉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참, 깜박 잊었구나. 네게 아까 사로 편지 한장이 왔다.》 하며 양복 속주머니에서 봉함편지를 꺼내주었다.

은숙은 깜짝 놀랐다. 봉투의 글씨가 바로 리준호의 글씨였던것이다.

그는 얼른 발신처를 살펴봤다.

《경남도 하동읍내 김준석》이라고 씌여있었다.

고향에서 그와 헤여지던 날 용세에게서 온 편지를 그에게 보인 일이 생각났다.

그때 리준호가 그 봉투에서 미술장치사의 새 주소를 유심히 기억해두었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은숙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었다.

《… 은숙씨! 그동안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셨겠지요. 나는 그후 바로 이곳에 와서 일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여기서 당분간 또는 경우에 따라 오래있게 될것 같습니다. 은숙씨는 그동안 서울서 취직을 하셨는지요? 만일 취직이 안되였거든 이 편지 보는대로 곧 내게로 내려오십시오. 이곳에 마침 적당한 자리가 있습니다.

만일 뜻이 계시면 오는 25~26일 량일중 어느날이라도 좋으니 진주역에 도착하도록 그곳에서 출발하십시오. 그리고 홍선생을 만날수 있으면 동봉하는 편지를 전해주십시오. …》

은숙은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역시 리준호는 자기를 믿는것이 틀림없었기때문이였다.

《얘, 대체 그가 누구냐?》

《고향마을에서 알게 된 의사예요.》

《의사? 그래, 네가 주소까지 알려주고 올만 한 사람이면 믿을만 한 사람인게로구나.》

지용세는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래?》

지용세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 나 다시 내려가보고 오겠어요.》

《뭐? 어디를?》

《이 편지 한번 읽어보세요.》

은숙은 용세에게 편지를 내맡겼다.

용세는 편지를 읽고나더니 불안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얘, 너 심중히 생각해서 해라. 네 일 어련히 알아하겠지만… 실패할라. 그래 네 장래를 맡길만 한 사람이냐? 무슨 약속이 되여있니? 왜 그럼 요전에 물었는데두 넌 없다구 잡아뗐니? 공연히 나만 실없이 되지 않았니?》

용세는 빙긋이 웃으며 은숙에게 가볍게 핀잔주었다.

《참, 아저씨두. 사실은 아저씨에게 드리는 말씀인데 이 사람한테서 교원생활중에 지도를 많이 받았어요. 그리구 이번 고향마을에서 일어난 절량농민들의 시위사건을 지도한 사람이예요. …》

지용세는 잠간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을 내리고 《그럼 내려가라. 아버지걱정은 말구… 갔다가 일이 제대루 안되거든 또 올라오너라.》 하고 승낙하였다.

《아버지가 나오시게 되면 올라왔다 내려가더래도 꼭 다시 올라오겠어요.》

은숙은 리준호의 편지로 마치 자기 앞길이 환하게 열려진듯 희망과 환희에 불타올랐다.

그는 25일에 진주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래일 밤 서울역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지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는 어느덧 가보지도 못한 진주역이 눈앞에 훤히 내다보이고 름름한 모습으로 빙그레 웃으며 자기를 반가이 맞아줄 리준호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는것 같았다.

은숙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명상에 잠기느라 자정이 넘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

이튿날 아침 은숙은 다시 용세에게 찬수의 주소를 물었다.

《아예 아저씨 계실 때 홍선생 하숙주소를 가르쳐주세요.》

은숙의 눈앞에는 찬수를 만나지 못하여 안타까와하던 그 처녀의 모습이 떠올랐고 자기에게 련락할 곳까지 적어주고 간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너, 시골뜨기가 서울집 번지들을 어떻게 찾을라구 그러니?》

《그래두 찾아서 편지를 전해야죠. 아저씨는 바쁘시잖아요?》

《글쎄…》

용세는 약간 주저하더니 이윽고 종이쪽지에 동이름과 반, 세대주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리고는 잠간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얘, 공연히 집 찾다가 시간 보내지 말구 편지 내게 다오. 내가 며칠사이에 전해주마. 그리구 넌 오전중에 차입을 하고와서 오후에는 출발준비를 해야지.》

은숙은 용세의 말대로 편지는 그에게 맡기고 아버지에게 차입하려고 싸놓았던 옷보퉁이를 들고 형무소로 향하였다.

그는 여러 시간만에 접수시킨 다음 그길로 바로 돌아와 떠날 짐을 꾸려놓고 거리로 나섰다.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은숙은 이미 용세로부터 찬수의 주소를 안 이상 스승을 만나지 못하여 애타는 그 처녀에게 기어이 알려주고 떠나는것이 그와의 약속을 지킬뿐아니라 같은 녀성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되였으므로 전날에 그가 써주고 간 종이쪽지를 꺼내여 살펴보며 문화동쪽으로 걸음을 빨리 옮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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