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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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부락 문화동에 밤이 찾아오면 고무쪽 타는 냄새, 종이쪽 타는 냄새, 재탄 타는 냄새에 섞여 우거지 삶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골목은 너무도 컴컴해서 오고가는 사람끼리 이마를 부딪칠 지경이였고 게다가 얼음판이 져서 몹시 미끄러웠다.

실고추가닥같은 전기불의 혜택조차 입지 못한 사람들은 무덤속처럼 캄캄한 방안에서 우는 어린아이들을 달래기도 했고 고함을 치고 싸우기도 했다. 어떤 집에서는 아이어른 할것없이 기침소리만 련달아 들리였고 또 어떤 집에서는 온 집안식구가 한꺼번에 목을 놓아 울기도 했다.

영옥이네 집 침침한 방안에는 언제부터 모여왔는지 5~6명의 젊은 녀자들이 둘러앉아서 그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있었다.
《자, 그럼 내가 다시한번 읽을테니 똑똑히 들으세요. 바뱌, 버벼, 보뵤, 부뷰, 브비 이렇게 읽으셔야 해요. 바이뱌, 버이벼… 하고 이자를 넣어서 읽으시면 안돼요. 자, 그럼 한번 같이 따라 읽어보세요. 손가락으로 글자를 꼭꼭 짚어가며 가만가만 읽어보세요.》

영옥은 상냥스런 어조로 말하며 모여앉은 녀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앞에 있는 공책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으면서 가만가만 읽기 시작했다.

그들은 영옥이가 다니는 제면공장 세탁부 로동자들이였고 영옥이네 집 이웃에 사는 녀자들이였다.

영옥은 지난번 한숙경선생의 집에 갔을 때 그와 약속한바도 있고 또 자신이 느낀바가 있어 낮에는 제면공장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이렇게 밤마다 이웃 문맹녀성들을 모아놓고 먼저 우리 말부터 가르쳐주려 한것이였다.

영옥은 이 문화동에 지금 자기네 집에 모여와 앉은 녀성들처럼 문맹녀성들이 수없이 많고 또 학령이 초과되도록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소년, 소녀들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맹들을 퇴치하기 위한 문교당국의 대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명색상 야간부라는것이 일부 학교에 부설되여 시내 여기저기 몇군데 있긴 하나 이것은 문맹퇴치를 위한게 아니라 입학금과 수업료 등 주간학교와 맞먹는 비싼 학비를 받아 모리를 하기 위한것들에 불과하였다.

영옥은 큰 건물을 얻어 버젓하게 이름을 붙여 간판을 걸고 수십명 또는 백여명이상의 문맹자들을 모아 가르치고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로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고 또 한선생의 말대로 경찰이 반드시 단속하며 허가해주지 않을것이란것을 빤히 알았으므로 그저 집에다 이웃에 사는 녀성들을 두세명씩이라도 모아다가 우선 우리 말이라도 배워주는것이 가능한 일이며 또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한달에 자기 한사람의 힘으로 다섯사람에게 우리 말을 배워주면 일년이면 60명의 문맹자를 없애게 될것이 아닌가?

이만한 일은 낮엔 직장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와 집에서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일이 아닌가?

영옥은 이런것을 생각하였을 때 가슴이 한없이 벅차올랐고 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긍지스럽게 생각되였다.

그러나 영옥은 자기에게 우리 말을 배우려고 모여온 이들 문맹녀성들에게 다만 《가갸거겨》나 《1234》를 가르쳐주는데에 그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감이 들었다.

영옥은 그들의 공책을 개별적으로 보아주며 하루하루 글자의 획이 달라지고 제 주소와 이름을 쓸수 있게 된데 대하여 칭찬을 하면서 뜻깊은 말을 한두마디씩 해주었다.

《… 정말 아주머니들이 이렇게 배우시려고 와주시니 고마와요. 우리는 배워야 해요. 아는것이 힘이예요. 우리가 지금 이런 문화동 같은 빈민부락에서 왜 이렇게 굶주리구 헐벗고 사는지 아세요?》

《돈이 없구 가난하니깐 그렇지 뭐.》

《왜 가난해요?》

《복이 없어 그렇지. 남들처럼 팔자를 잘 타구 났으면야 이런 고생살이를 하겠수?》

한 젊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 그런게 아니예요. 복이니, 팔자니 하는것은 옛날 사람들이 하던 말이예요. 잘사는 사람은 복이 많구 팔자가 좋아서 잘사는것이 아니예요. 잘 못사는 사람은 복이 없고 팔자가 사나와서 그런것이 아니예요. 팔자니, 복이니, 운수니 하는것은 다 헛소리예요. 이제 글을 잘배우셔서 신문도 읽게 되고 또 책도 읽게 되면 우리가 왜 잘 못사는지 자연히 알게 돼요.》

영옥이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한 아낙네가 새겨듣고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거야 글을 꼭 배워서 책을 읽어야만 알겠수? 나 같은 무식쟁이 소견에두 우리가 이렇게 못사는것은 이놈의 세상이 바루잡히지 못한탓이라구 생각된다우. 어서 그 원쑤놈들이 물러가고 통일이 돼야만 우리가 잘살지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살아가지도 못할거요.》

영옥은 그 아낙네의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이고 정신이 들었다.

이 아낙네가 비록 우리 말조차 배우지 못했을망정 세상을 똑바로 보고 옳은 말을 하는것이 몹시 기뻤다.

《옳습니다. 아주머니 말씀이…》

영옥은 그가 한 말을 높이 평가해주고 그동안 배워온 《가》행에서부터 《마》행까지 복습을 시킨 다음 집으로 돌려보냈다.

《얘, 너 그 사람들을 밤마다 한두시간씩 가르쳐주는것은 좋은 일이지만 말은 함부로 하지 말아. 혹시 누가 아니? 네가 한 말 소문이 나면 재미없다.》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이유, 어머니두… 아무 념려마세요. 내가 무슨 책망들을 말을 했어요? 당연한 말을 했지요.》

영옥이가 태연스럽게 말하고있는데 바깥쪽 대문이 삐드득 열리며 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아버지였다. 그는 오늘 웬 일인지 다른 날과 달리 얼굴에 화기가 넘치고있었다.

《여보, 그 박춘식이 녀석 이야기 좀 들어보우. 기어이 그놈의 별장에 시장상인들이 떼를 지어 가서 나자빠진 그녀석을 잡아내여 따지다가 결국 구타를 해서 생명이 위독할 지경에 이르렀다누만…》

《아따, 그 듣던중 통쾌하구나. 애매한 시장상인들만 잡아다 족치게 하구 얼투당투않은 상품들을 차압해갔으니 가만히들 있을리 있소?》

《흥, 그놈이 그래 제 자손만대까지 부귀공명을 누리며 고리대금을 해처먹을줄 알았지만… 그봐. 당대에 갑자기 망하게 되지 않나. 그놈때문에 우리가 망했지만 그래두 우린 그놈네처럼 창피하게 망하지는 않았어. 허허허…》

손종모는 껄껄 웃었다.

《그렇지만 그놈이야 어디 다 망했소? 회사가 아직두 두갠지 세갠지 남아있다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있으면 뭘 해. 알맹이는 미국놈헌테 다 빼먹혀버렸는걸.》

《부귀영화두 일장춘몽이라더니 그 몹쓸놈을 두고 한 말이구려. 우리 집을 차압하고 경매를 붙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래 미국놈의 아가리에 처넣어주려구 그랬나? 망할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

어머니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 신세 딱하게두 됐다우. 고리대금해서 번 돈 미국놈이 홀딱 빨아먹고 첩년은 제놈 회사 지배인놈허구 배가 맞아 돈 횡령해가지고 도망가고 딸년은 양갈보고 제놈은 상인들헌데 습격을 당하고… 그야말로 안팎 곱사등이구 사면초가야. 허허허…》

손종모는 통쾌하다는듯이 껄껄 웃었다.

《그래두 그놈이 그대루 망할줄 아시유? 또 대가리 쳐들구 일어난다우.》

《일어나면 뭘 해. 제따위 놈 <국회>의원 출마하면 누가 투표해줄 사람 있을줄 알고… 흥, 어림없다.》

손종모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이유, 아버지두… 언제 그놈이 정식 투표해서 당선됐어요? 돈의 힘으로 뭉테기투표, 몽둥이투표로 사기해서 당선됐지. 이제 그놈들이 그나마 아주 로골적으로 투표하지 않고도 당선시키는 법으로 무투표당선이라는 법을 만들어놨다는데 뭐가 걱정이예요.》

영옥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내버려둬라, 그까짓 놈들 제놈들이 소위 <국회>의원을 해처먹으면 평생 해처먹겠니? 이제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손종모는 자신이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영옥은 아버지의 그 말이 례사로 들리지 않았고 또 아버지가 요즈음 날이 갈수록 달라져가는것이 은근히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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