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여진 꿈

3

 

《한미무역사》 창고를 미군강도단이 털어간 이후 서울시내 각 시장은 말할것도 없고 지방시장에까지도 그 파문이 미치였다.

우선 도난상품수사대가 각 시장을 휩쓸어 일부 상인들을 검거하는 한편 수많은 상품궤짝들이 여러 차량이나 차압을 당하여 어디로엔지 실려갔다.

각 시장은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였고 상인들은 앉아서 벼락을 맞은 격으로 애매하게 자기 상품들을 빼앗긴 분을 참지 못하여 아우성을 쳤다.

서울시내 무역상사 창고들에서 이따금 큰 도난사건이 일어나면 바로 그 영향은 덮어놓고 시장상인들에게 먼저 미치였다.

도적놈의 물건인줄 알면서 살 때도 있지만 모르고 사는수도 적지 않았기때문에 한번 수사대에 걸려 압수를 당하는 날이면 밑천까지 달아나 망해버리는 례가 결코 적지 않았다.

흔히 정당한 상사계통에서 정당하게 거래하여 들여온 상품들도 도적놈의 물건으로 몰리여 수사대의 차량에 실려갈 때가 많았고 그렇게 한번 실려간 상품궤짝들이 다시 상인들의 손에 돌아온 례가 별로 없는 사실에 비추어 상인들은 자기 상품을 찾으려 경찰서로 몰려갔다가는 빈손으로 되돌아오거나 또는 검거를 당하기도 했다.

미라가 아버지의 애원대로 웰톤을 만나 애걸복걸하려고 《한미무역사》를 찾아왔을 때는 정문앞에 수많은 시장상인들이 몰려와있었다.

그 사람들은 압수당한 상품들이 모두다 사건이전에 자기가 소유하고있던 상품들이라는 여러가지 증거를 가지고 경찰서로 가서 찾으려다가 실패를 당한 끝에 사장 박춘식에게 따지러 온것이였다.

미라는 애매하게 물건을 빼앗긴 시장상인들이 한편으로 동정이 갔으나 또 하등에 죄가 없는 자기 아버지를 붙들고 시비를 따지러 온 그들이 너무나 답답하고 밉게만 생각되였다.

미라는 웰톤의 사무실문을 두드리고 불쑥 들어갔다.

웰톤은 마침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있었다.

웰톤은 수화기의 말소리가 사무실안에 또렷이 울리자 미라에게 손짓을 해서 나가달라고 했다.

미라는 모닥불을 들쓴것 같은 모욕을 느끼면서 다시 문밖으로 나와 전화가 끝날 때를 기다렸다.

이윽고 전화가 끝이 났다. 미라는 다시 들어갔다.

《오오, 미쓰 박! 당신 아버지 어디 있습니까? 당신 아버지 왜 나오지 않습니까? 문밖에 사람 많이 와서 당신 아버지 기다립니다. …》

웰톤은 미라가 자기를 찾아온 목적을 이미 알고있다는듯이 불쾌한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지금 우리 아버지는 별장에 앓아누워계세요. 헛소리를 하구, 왼통 방안을 헤매며 실성한 사람처럼 흥분되여 야단이십니다.》

미라는 정색을 하고 웰톤을 바라보았다.

《오오- 빨리빨리 병원에 전화하시오. 얼른 병 고쳐야 합니다. 도난사건 매우 엄중합니다. 당신 아버지 얼른 나와 처리해야 합니다.》

웰톤은 또 랭정하게 말했다.

《사실은 그 문제때문에 웰톤선생을 뵈러 왔어요.》

《응? 당신이 날 보러? 당신 나 만날 필요없습니다. 당신 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아닙니까?》

《아니예요, 선생님! 그동안 웰톤선생을 뵈러 오지 못한것은 음악회련습때문이였어요.》

《오오, 나 당신 말 신용 못하겠습니다. 당신 나 배반한 사람입니다. 당신 나 만날 필요 조금도 없습니다.》

웰톤에게서 이런 말이 튀여나왔을 때 미라는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때 웰톤은 자기의 뒤를 죽자살자 하고 따라다녔고 자기를 사랑한다고 떠벌이였건만 이렇게 쌀쌀하게 랭대할줄은 몰랐던것이다.

《웰톤선생님, 왜 그렇게 쌀쌀하게 구세요. 네? 내가 선생님헌테 뭘 잘못한게 있었어요? 선생님은 나를 언제든지 사랑하겠다고 하셨지요?》

미라는 거의 울음섞인 어조로 아양을 떨었다.

《미쓰 박, 나 당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신 나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신 나 다시 사랑하고싶습니까? 나 당신 믿을수 없습니다. …》

웰톤은 랭정히 비웃으며 미라를 흘겨보았다.

《선생님, 정말 저는 웰톤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선생님에게 나는 내 모든것을 바치지 않았어요? 그것을 생각해서라두 이번에 우리 아버지를 구해주세요.》

《아니, 무슨 말입니까?》

웰톤은 갑자기 시치미를 뚝 따며 이상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도난물품변상문제 말씀이예요. 우리 아버지에게 그 거액의 돈을 변상시키면 어떡해요. 글쎄.》

《미쓰 박, 당신 너무 걱정마시오. 그 문제는 당신 아버지 책임질 문제입니다. 당신 아버지 중역회의에서 변상하겠다고 언명했습니다. 당신 아버지 매우 훌륭한 사람입니다. 당신 아버지 주권 3억환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 아버지 사장공로 많기때문에 변상부족액 더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 아버지 우리 회사에서 계속 높은 지위 차지할수 있습니다. 당신 너무 걱정마시오.》

웰톤은 한참동안 떠벌이였다. 그러나 미라의 귀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예요, 선생님. 제발 변상금을 취소해주세요. 변상금을 물고나면 우리 집은 거지가 돼요. 아버지가 국회의원두 못하시게 되구요.》

미라는 다시 애원하였다.

《노오- 노오, 당신 아버지 아직 돈 많이 있습니다. 한국산업, 대한공익 두 회사 자본금 적지 않게 남아있습니다. 당신 아버지 국회의원 계속할수 있습니다. 당신 아무 걱정마시오. 하하하…》

웰톤은 악마처럼 껄껄 웃었다.

미라는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웰톤을 찾아온것이 도리여 창피스럽고 쑥스럽기 짝이 없었다. 기왕 실패를 하고 돌아갈바에는 한바탕 분풀이라도 하고 가고싶었다.

《웰톤선생님, 진범인을 왜 안 잡으십니까? 진범인은 미군이 아닙니까? 그런 법도 있습니까? 배후에서 고급장교가 조종했기때문에 눈감아두는것입니까?》

미라의 목소리는 이 순간 고조되였다.

웰톤은 갑자기 두눈을 부릅뜨고 《당신 그 소리 누구헌테 들었습니까? 당신 그런 소리 함부루 하면 재미없습니다. 당신 그런 소리 또 하면 경찰에 체포됩니다.》 하고 미라를 위협하였다.

《뭐가 체포당할 일입니까? 쓸데없이 애매하고 만만한 운전수들, 장사군들 잡아가두었자 도난당한 물건이 나옵니까? 세상 소문 좀 들어보세요. 모두다 미군강도가 한짓이라고 하지 않나…》

미라는 악에 받쳐 말투가 곱지 않았다.

웰톤은 미라를 달래듯이 약간 부드러운 태도로 《미쓰 박, 당신 한국경찰 믿지 못합니까? 한국경찰 훌륭합니다. 그날 새벽 창고 습격한자들 모두 미군군복을 입은 한국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지금 모두 잡혔고 모두 자백했습니다. 당신 말 주의하시오. 우리 미군 강도없습니다.》 하고 잘라말했다.

그리고나서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제발 제 소원이예요. 변상금만은 취소해주세요. 어찌 우리 아버지가 변상을 해야 해요, 네? 범인이 잡혔고 그놈들이 자백을 했다면 그놈들에게서 물건을 찾아내면 되잖아요? 글쎄, 우리 아버지가 무슨 경비를 잘못 세웠어요? 아닌 말루 공모를 했어요? 네? 선생님, 취소해주세요.》

미라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애원하였으나 웰톤은 여전히 흉물스런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면서 《노오- 당신 아버지 상관마시오. 당신 너무 내게 그런 요구하면 구금당합니다.》 하고 또 한번 위협하였다.

이윽고 웰톤은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자기 방을 나가 복도를 따라 내려갔다. 미라도 그뒤를 따라 내려갔다.

전 같으면 자기 자동차에 태워가지고 호텔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같이 먹었을 웰톤이건만 오늘은 말도 없이 그대로 휙 먼저 나가 승용차를 타고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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