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여진 꿈

2

 

박춘식은 미라가 가져다 주는 양주 한병을 단숨에 반병이나 들이켰다.

그는 오늘 독한 술에라도 흠뻑 취해야만 괴로움을 잊으리라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는 각각으로 얼굴이 홧홧해지며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침대우에 다시 뛰여올라가 잠에 들려 하였으나 역시 잠은 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벌떡 일어나 쏘파에 가앉으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얘, 미라야! 이리 좀 와앉아라.》

그는 미라를 불러 자기곁에 앉히였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어조로 입을 열며 미라의 눈치를 떠보았다.

《이제는 어쩔수 없다. 살아나갈 길은 오직 한길밖에 없다. 그것은 네가 웰톤을 찾아가서 떼를 쓰고 애걸복걸하는 길… 그것밖에는 없다.》

미라는 아버지가 오늘 별장에 나온 목적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되자 서글프고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뭐라구 애걸복걸해요?》

미라는 자신없는 어조로 말하며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변상문제를 취소해달라구 할수밖에 더 있니? 3억환의 변상! 생각만 하여두 뼈가 으스러진다. 만일 네가 가서 실패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우리는 일조에 거지가 된다는걸 알아라. 국회의원이 다 뭐냐? 돈의 힘이였다. 내가 망하는것은 바루 네가 망하는것이다.…》

《애걸복걸한다구 웰톤이 들어줄것 같아요? 한번 중역회의에서 결정한것을…》

미라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지기만 했다.

《그렇지만 중역회의를 움직이는것은 웰톤이다. 네가 가서 웰톤의 마음만 돌려놓으면 그까짓 회의에서 결정한게 문제가 아니다. 원래 미국사람들이란 자기 마음만 내키면 회의에서 결정한것도 취소 잘하는 사람들이니깐…》

《그렇지만 변상문제를 취소할리 있어요?》

미라는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 얘, 너 어째 남의 일처럼 말하니. 어떻게든지 해서 웰톤의 마음을 사가지고 변상문제를 취소시키도록 해야지. 그래두 넌 스틸맨보다는 웰톤에게서 사랑두 많이 받았구… 현재두 네가 웰톤에게 접근만 한다면 변상문제는 쉽게 취소될수 있다. 벽화사건이후 너는 스틸맨이나 웰톤이나 다 멀리했지만 웰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늘 뭐라구 했니? 네 운명은 이미 결정되였다구… 웰톤이나 스틸맨을 다 적당히 접근해야 할 네가 정 반대로 두사람 다 뿌리치고있으니 이런 문제를 어디다 내놓고 호소한단 말이냐? 웰톤은 그런 사정은 모르고 너와 스틸맨과의 사이가 그뒤 자기와의 사이보다 훨씬 밀접해진줄만 알고… 그렇기때문에 네가 자연히 자기와 멀어져버린것으로만 오해하면서 너를 은근히 미워하고있지 않니… 더구나 그것이 모두 내가 무슨 스틸맨의 덕이라도 입을가 해서 네게 시켜서 그렇게 된것처럼 웰톤은 나까지 오해하고있다.

이번 기회에 웰톤을 만나서 오해를 풀어야 한다.》

미라는 아버지의 애원 비슷한 요구가 가엾기도 하였으나 또 한편 비굴하게 들리기도 했다.

미라는 고개를 수그리고 곰곰히 생각하였다.

3억환! 그 대금을 변상하고나면 자기 집은 그날로 당장 몰락될것이 아닌가? 자기 집이 몰락되면 자기 운명은 장차 어찌될것인가? 미라는 앞길이 캄캄하였다.

애걸복걸을 해서 성공을 할는지 못할는지는 자기 역시 알수 없는 일이였으나 자기 집 운명이 생사의 경계선에 서있는 이 판에 방관적태도를 취할수는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벽화사건이후 웰톤과 접촉이 없었던 자기가 이제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나 교태를 부리며 웃음을 팔아봤자 그가 그렇게 쉽게 그 문제를 취소해줄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이제는 우리 집 운명이 네 태도여하에 달렸다. 웰톤에게 죽자살자허구 매달려서 취소될 때까지는 며칠이구 떨어지지 말아. 음악회가 문제가 아니다.》

박춘식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글쎄, 아버지! 범인들을 얼른 잡아서 물건을 도루 찾을 생각은 왜 안하세요?》

미라는 또다시 퉁명스럽게 물었다.

《얘, 어리석은 소리말아. 범인을 잡다니… 범인이 어떤 놈들인줄 몰라서 못 잡는줄 아니?》

《아니, 왜 범인을 알면서두 못 잡아요?》

미라는 갑자기 긴장되였다.

《그러니 기가 막힐 일이다. 후유-》

박춘식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한바탕 내쉬며 어제 새벽 자기 회사 창고에서 벌어진 도난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현장에서 목격한 한 창고경비원의 보고를 듣던 일을 회상했다.

《… 확실히 그것은 두대가 다 미군트럭이였습니다. 두대의 트럭이 창고정문앞에 턱 서더니 10여명의 미군이 뛰여내렸습니다. 경비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미군들은 권총을 뽑아들고 다짜고짜로 경비실에 들어와 경비원들을 위협하며 창고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창고열쇠는 회사에 있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가지고 온 무슨 열쇠인지 아주 손쉽게 열고서 문짝을 활짝 열어제끼였습니다. 미군들은 재빨리 들어가 짐짝을 두 트럭에 가득 싣고 도주해버렸습니다. …》

경비원의 목격담을 듣던 웰톤은 갑자기 성을 왈칵 내며 《노, 노오. 당신 말 믿을수 없습니다. 우리 미군 그런짓 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 미군처럼 가장하고 도적질 잘합니다. 한국사람 믿을수 없습니다.》 하고 경비원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아니올시다. 증거물이 떨어져있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건 틀림없는 미군수첩입니다. 이 증거물을 가지면 범인들을 손쉽게 잡을수 있을겝니다.》

경비원은 자기 양복주머니에서 조그만 수첩 하나를 내보였다.

웰톤은 얼른 경비원의 손에서 그 수첩을 빼앗아가지고 뒤적거려보더니 《까뗌, 당신 이런것 무슨 증거됩니까? 이런 수첩 길에서 얻을수도 있습니다. 당신 이 수첩 길에서 얻지 않았습니까? 당신 믿을수 없습니다. 당신 수상합니다.》 하고 경비원을 도리여 의심하면서 현장조사나온 경찰에게 체포해가라고 호령하였다.

그리고는 현장에서 자기를 향하여 분노가 치솟는 음성으로 《미스터 박, 이 사건 미군이 한짓 아닙니다. 경비원들 믿을수 없습니다. 당신 이 사건 책임지시오!》 하고 말하며 독기어린 눈길로 무섭게 쏘아보았던것이였다.

박춘식은 웰톤의 그 독사같은 눈초리가 자기 눈앞에 얼른거리자 쏘파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로엔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 서장이요? 나 박이요. 그래 어느 정도로 체포되였소? 응? 뭐? 150명? 음, 음…》

박춘식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열중하고있었다. 고요한 실내에 수화기에서 나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미라의 귀에까지 또렷이 들리였다.

《에- 령감께만 하는 말씀이지만 이 사건은 빤한 미군깽사건인데… 이걸 글쎄… 령감께서두 아시다싶이 수사범위에 한계가 명확히 서있는 이상 한국경찰의 힘으로써는 진범인을 체포하기가 곤난합니다. 더구나 이 사건은 여러가지 수사결과로 봐서 배후에… 유엔군사령부의 어떤 고급장교가 조종하고있는것 같습니다. …》

《아니, 뭐? 유엔군사령부의…》

박춘식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박춘식은 그 장교가 혹시 스틸맨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스틸맨이 자기 직속부대에 깽부대를 가지고있는것을 박춘식도 모르지는 않았다.

웰톤과 가장 친근하게 지내던 그가 미라로 인한 치정관계를 보복하기 위한 일거량득의 수단이였을가?

박춘식은 갑자기 스틸맨이 증오스러웠다.

《뭐, 령감께만 참고로 말씀드리는거지 이것이 루설돼서는 안될 문젭니다. 적어도 유엔군사령부의 위신에 관한 문제이니까요.》

《아니 그래, 미군당국에서는 이 사건에 눈을 감고있고… 체포되는 놈은 하나도 실속이 없는 가짜들이 아닌가? 이렇게 되니 결국 중간에 녹는 놈은 나뿐이지 뭔가? 응?》

《그러나 뭐 과히 념려마십시오. 지금 시장에서 상품을 차압해들여오고있습니다.》

《고맙소. 그러나 도난물품이 그렇게 쉽게 다 발견되겠소?》

《그거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수고 좀 하오.》

박춘식은 전화를 끊고 다시 비틀거리며 침대쪽으로 걸어갔다.

《흥, 유엔군사령부 고급장교가 배후에서 조종했다구? 만일 이것이 스틸맨의짓이라면 이런 기막힐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박춘식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미라를 힐끔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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