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석 아닌 목석

3

 

자하문밖 하숙집 로파는 찬수가 들어오자 깜짝 놀라며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밤중에 이렇게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원 별말씀을… 그러잖아두 선생님이 왜 안 오시나 하구 기다렸답니다. 그래 그때 왔던 그 아가씨 만나보셨소?》

주인로파가 호기심어린 어조로 물었다.

《아니, 그 아가씨라니요?》

찬수는 반문하였으나 그 아가씨가 바로 영옥이를 가리키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때 가을에 왔던 처녀말이유. 파란 치마저고리 입고 온… 그 아가씨가 글쎄 선생님이 짐을 옮겨간 그 이튿날 선생님을 찾아왔다가 갔다우. 옮겨가신 주소를 알으켜달라는데 내가 알아야 가르쳐주지. 글쎄… 그 아가씨가 얼마나 안타까와했는지 몰루. 그래 그동안 만냈수? 못 만냈수?》

로파는 못내 궁금한듯 찬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뒤 아직 못 만났습니다.》

《아이유, 저런… 그 아가씨가 얼마나 속이 탈가?》

로파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기에 그대로 우리 집에 계셨으면 만나봤을걸… 이젠 선생님, 우리 집에 다시 와계시구려. 선생님이 가시고나니깐 어떻게나 섭섭한지…》

주인로파는 찬수가 편히 자게 하려고 그가 있던 방에 군불을 덥석 지폈다.

방안에 훈김이 돌자 찬수는 오래간만에 자기가 있던 방으로 내려왔다.

그는 몹시 피곤하였으므로 아래목에 웅크리고 누워서 잠에 들려 하였다.

그러나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영옥이가 이곳까지 자기를 찾아왔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것만큼 도리여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불쑥 났다.

과연 영옥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그의 부모가 이사간 곳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찬수는 생각할수록 막연하고 답답하였다.

그는 거의 뜬눈으로 하루밤을 밝히고나서 오후에 지용세를 만나기 위하여 시내로 들어왔다.

지용세의 집으로 찾아갔으나 그는 집에 없었다.

찬수는 새로 옮겨갔다는 사무실을 찾아가 그와 만났다.

그들은 한참동안 지나온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이젠 제일 급한 문제가 홍선생의 하숙부터 해결하는것인데… 역시 화실로 쓸만 한 큰방을 가지자면 시외로 뚝 떨어져야겠는데…》

《뭐,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지선생께 다시 페를 끼치고싶진 않습니다.》

찬수는 큰소리를 치긴 했으나 따지고보면 막연하였다. 하숙은 정한다치더라도 하숙비를 다달이 어디서 구할것인가? 취직을 할수도 없고 그림을 그려두 팔릴것 같지 않고… 생각할수록 암담하고 안타까왔다.

《이젠 홍선생은 화실에 꼭 들어앉으셔야 합니다. 다리를 부상당해서 저 지경이니 어디 자유로이 출입하겠습니까? 생활타개책은 어떻게든지 생기겠죠.》

그들은 앞으로 닥칠 생활문제를 토의하다가 해가 저물자 사무실을 나와 어느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으면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홍선생, 이것은 내 주관인지는 몰라도 이번 기회에 적당한 배우자를 골라 결혼하는게 어떨가요?》

지용세는 찬수의 눈치를 떠보았다.

《결혼이요? 뭐… 난 아직 그런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찬수는 용세의 권고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아니, 홍선생! 가장 맞춤한 적임자가 있다면 어떡하겠소? 또 상대방도 선생을 잘 알고있는 녀성이라면?》

지용세는 바싹 다가들며 찬수의 표정을 살피였다.

《글쎄요. 뭐, 그럴만한 녀성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제는 다리병신까지 됐으니…》

찬수는 서글프게 웃었다.

《아니야,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적당한 대상이 나타났소. 홍선생이 잘 알고있는 인물이요. 또 그도 홍선생을 잘 알고있소. 이렇게 말하면 홍선생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가겠지… 그는 바로 이번에 고향에서 올라온 은숙이요.》

지용세는 성급하게 말했다.

이 순간 찬수는 빙긋이 웃으며 《은숙씨요? 잘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선생의 오해입니다. 이것이 혹시 주관적관찰이나 추측인지는 몰라도 은숙씨에게는 이미 훌륭한 대상자가 있습니다. 은숙씨 문제는 은숙씨에게 맡기는것이 좋지요.》 하고 거의 거절하다싶이 말을 했다.

《네? 대상자가 있다구요?》

지용세는 랑패스런 표정으로 찬수를 바라보았다.

《은숙씨에게 다시 물어보십시오.》

찬수는 고향마을에서 보고 들은 젊은 의사 리준호와 은숙이와의 사이를 련상하였다.

《글쎄, 홍선생이 잘 알고있는 일이라면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그러나 문제는 상대가 은숙이가 아니라 하더라두 이번에 해결하는것이 좋지 않을가요?》

지용세는 찬수의 기분을 가늠해보며 눈치를 살피였다.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현성이 없는 일입니다. 하하하.》

찬수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얼마후 그들은 식당을 나와 서로 헤여졌다.

찬수는 지용세가 우선 하숙을 구할 때까지 자기 집으로 가서 같이 있자고 하였으나 은숙이까지 와서 페를 끼치는 판에 그것은 너무도 거북스러운 일이였으므로 굳이 사양하고말았다.

그는 2~3일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지용세와 헤여졌다. 우선 그동안은 다시 효자동 하숙이나 자하문밖으로 가서 머무를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리의 상처는 리준호에게서 치료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여러날동안 자기의 손으로 약을 바르고 붕대를 바꾸어감았을뿐 의사의 손을 거치지 않았기때문에 덧날것 같은 념려가 없지도 않았다.

찬수는 효자동에 있는 자기 짐을 정리하여 우선 급한것들을 꺼내가지고 다시 자하문밖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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