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석 아닌 목석

2

 

소박하고 무뚝뚝한 찬수의 마음을 기어이 휘여잡아보려고 생각한 미라였으나 결국 보기 좋게 실패를 당했다.

미라는 찬수가 먹은 밥값까지도 자기가 치르어 그의 호감을 사려했지만 찬수는 그 기미를 알았던지 먼저 일어나 재빨리 자기 밥값을 치르고 나갔던것이다.

전람회준비를 도와주마 했고 화실까지 알선해주겠다고 큰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나가는 사교적인 말인줄로만 알았던지 달갑게 듣지 않았고 또 2등차표로 바꿀테니 자기가 탄 2등객실로 옮기라고까지 권했으나 찬수는 도리여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무시해버렸던것이였다.

그렇게도 옹졸하고 융통성이 없는 남자가 무슨 미술가인가?

젊은 남자가 젊은 녀자에 대해서 그렇게도 자존심이 강하고 거만할수가 있는가? 더구나 자기는 악단에서 이름있는 녀류성악가가 아닌가?

미라는 생각할수록 기분이 불쾌했다.

그러나 미라는 어느덧 자기를 랭정히 반성해봤다.

전에 별장에서 스틸맨에게 중상을 당한 복수를 만만한 자기에게 하려는것인가?

입원치료비를 책임지겠다고 장담해놓고 그것을 물지 않아 병원에서 퇴원을 당하게 만든 신용없고 실없는 녀자로 보였기때문인가?

미라는 그것이 모두 정당한 리유로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너무도 지나치게 랭정하게 자기를 대하는데는 일종의 반감까지 치밀어올랐다.

미라는 아직까지 지금처럼 남자에게서 랭대를 받아본적은 없었다.

그는 남자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수 있는 물건이거니 하고 생각해왔었다. 하건만 그러한 자기의 견해가 오늘에 이르러 여지없이 그릇된 견해로 되고말았던것이다.

미라는 과거 중학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또 졸업후 현재에 이르는 사이에 걸쳐 수많은 사나이들에게서 사랑을 구걸해오는 편지를 받아보았고 또 자기의 뒤를 일상 미행하며 추근추근하게 치근덕거리는 어중이떠중이들을 자기 마음껏 롱락도 해봤다. 또 싫증이 나면 모두다 보기 좋게 걷어차버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남자편에서 자기의 사랑을 먼저 거절하거나 걷어찬 일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는 자기였던것을 생각할 때 그가 남평으로부터 받은 랭대는 새삼스럽게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도대체 남평이란 사람은 어찌된 사람이기에 그렇게도 움직여지지 않는것인가?

나의 미모가 남평의 미적감정으로 보는 기준에는 락제점수로밖에 보이지 않는것인가?

천만에! 나의 미모에는 이미 웰톤과 스틸맨 같은자들까지도 매혹을 느끼고 덤벼들지 않았는가? 탄력있고 풍만하고 매혹적인 육체미, 쌍까풀진 두눈, 웃으면 볼우물지는 두뺨, 다 영그러들어간 옥수수수염같이 곱슬거리는 머리칼, 얼핏 보아 미국미인과도 흡사한 자기의 미모에 대하여 어찌 그만은 매혹을 느끼지 않는것인가?

남평은 정녕 나보다도 더 훌륭한 녀자를 사랑의 대상자로 가지고있는것인가? 있다면 대체 그는 어떤 녀자인가? 도대체 얼마나 잘난 녀자인가? 어느 명문가의 딸인가?

서울에서, 아니 이 땅에서 나만 한 미모를 가진 녀자가 또 어디 있을것인가? 또 나만 한 성악예술가가 어디 있을것인가? 나만 한 권력과 지위를 가진 가정은 또 어디 있을것인가?

미라는 이렇게 자만심에 가득찬 명상에 잠기여버렸다.

(흥, 어디 보자. 기어이 한번 꺾어보고말걸.)

미라는 결국 이렇게 결심을 다지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한것은 밤이 제법 깊은 때였다.

역홈에 내린 미라는 휙 그대로 먼저 나와버릴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구름다리계단우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봤다.

쌍지팽이를 짚은 남평을 찾기는 가장 쉬웠다. 그는 하차객들의 맨끝에 처져서 천천히 걸어오고있었기때문이였다.

미라는 구름다리우에서 남평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찬수가 계단우로 올라섰다. 두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매우 피곤하시겠어요.》

미라는 조그만 려행용가방을 들고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내뒤에 나올 사람은 없을겝니다.》

찬수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미라는 이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속으로 괴로운 웃음이 북받쳐올랐다. 그렇게도 자기의 호의를 몰라주는 그가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했다.

그러나 쌍지팽이를 짚고 초라한 모습으로 뒤에 처져나오는 그의 행동거지가 몹시 딱해보였으므로 미라는 다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어느 방면으로 가시겠어요?》

《나가봐야 알겠습니다.》

《아니, 댁이 어디신데요? 가실데가 많으신게로군요.》

《…》

《실례이지만 하숙에 계세요? 가정생활을 하세요?》

《가정생활을 합니다.》

《녜, 그러세요. 애기두 있습니까?》

《네.》

《내 자동차로 댁까지 바래다드리겠어요.》

《아니요, 자동차 갈 곳이 못됩니다.》

《그럼 이렇게 늦었는데 댁으로 어떻게 가시겠습니까? 내가 주무실만 한 곳을 안내해드리겠어요.》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그러나 그런데까지 페를 끼치고싶진 않습니다.》

《실례이지만 댁주소를 좀 알려주세요.》

《… 집번지를 아직껏 기억 못했습니다.》

찬수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미라는 남평이가 자기에게 주소를 가르쳐주지 않는 리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물론 나를 신용 못하실테니깐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시는줄 압니다. 그러나 나를 신용하세요. 호호…》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정거장밖에 나왔다.

미라는 여전히 목석같은 그가 미우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마음은 그의 매력에 끌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미라는 택시를 한대 붙들어놓고 함께 타려 했으나 찬수는 굳이 사양했다.

《호의는 고맙습니다. 부디 진실한 생활을 하십시오. 앞으로 당신이 조선녀성으로 살고싶을진대… 그리고 당신이 말한것처럼 예술가로서 일생을 살고싶을진대 지금 당신이 빠져든 시궁창속에서 하루빨리 뛰쳐나와야 합니다.》

찬수는 침착한 어조로 말하고는 미라의 얼굴을 잠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덧 쌍지팽이를 옮겨 남대문쪽으로 걸어갔다.

효자동으로 가는 마지막전차가 정류장에 와닿았다.

그는 전차에 선뜻 올라탔다. 자하문밖에서 옮겨온 하숙이 있는 효자동으로 가려는것이였다.

그는 효자동에서 내려 자기 하숙을 찾아갔다.

그러나 하숙방에는 벌써 딴 사람이 둘이나 들어있었고 자기의 짐들은 모두 광안에 처박혀있었다.

그는 불쾌한 기분으로 다시 하숙을 나왔다.

밤이 깊었으므로 지용세의 집으로 찾아갈수도 없었다. 그는 생각하던 끝에 여기서 가까운 자하문밖 그전 하숙을 찾아가 하루밤을 자려고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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