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석 아닌 목석

1

 

려수에서 떠난 서울행 급행렬차가 강경, 론산의 금강평야를 지나 계룡련봉이 가깝게 보이는 련산부근의 고원지대로 헐떡거리며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차창밖이 벌써 어두워지고있었다.

3등객실 한쪽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계룡련봉을 내다보며 깊은 명상에 잠겼던 찬수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향마을에서 젊은 의사 리준호와 작별한 그날 밤의 일이 눈앞에 다시 토막토막 련상되였고 그 이튿날 죽촌리가 그를 잡으려고 들이닥친 경찰대로 하여 삼엄한 분위기속에 휩싸이던 일이 눈앞에 얼른거리였다.

그는 5촌의 집으로 옮겨가 안방에 박혀 며칠동안 치료를 받는통에 다행히 경찰에게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홍인제로부터 신변이 위험하니 마을을 속히 떠나라는 간곡한 권고를 받고 드디여 떠나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던것이다.

찬수는 마을을 떠나오기 바로 전날 밤 사랑방에 나가 농민들을 격려해주고 앞으로 반드시 미국놈이 물러가고 조국의 평화통일이 이루어진다는 굳센 신념을 북돋아주었으며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힘을 모아 싸워야 한다는것을 강조해주었다.

그가 고향마을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송림리, 용바위 등 여러 마을에서 절량농민들이 참다못해 일으킨 시위는 결국 경찰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 농민들속에서 미제와 리승만을 반대하는 감정은 더욱더 고조에 달하고있다는것과 이 땅에서 빈궁과 기아와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하루바삐 조국의 평화적통일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각성이 날로 높아간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던것이다.

찬수는 이번에 고향마을에서 시위를 일으킨 농민들을 자기 그림의 모델로 속사할수 있었던것이 몹시 기뻤고 또 큰 수확이였다고 생각되였다.

그는 서울에 올라오면 먼저 지용세를 찾아서 다시 하숙을 구하고 그전 하숙에 맡겨두었던 짐을 옮겨다놓은 다음 이번에 속사한 고향마을의 농민군상들을 대형화판에 옮겨 그리려 하였다.

그는 어느덧 담배꽁초를 밟아끄고 지팽이를 짚고 일어섰다.

고향마을을 떠나오면서 주막거리에서 리발은 했지만 입은 양복은 초라했고 쌍지팽이를 짚은 꼴이 보기에 매우 딱하였다.

찬수는 겨우 사람들의 틈을 헤치고 식당차칸을 찾아갔다.

고향을 떠나올 때 5촌이 려비로 쓰라고 자기 양복주머니속에 돈을 넣어주었던것이였다.

식당차안에는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그는 엉거주춤하고 한참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는 빈자리를 발견하고 찾아가 앉았다.

바로 이때 찬수가 앉은 정면쪽 문이 열리며 1~2등실 객차에 탄 손님 두세명이 들어왔다.

찬수는 무심히 그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호화스러운 양장을 한 미라가 그중에 끼워있었기때문이였다.

찬수는 못 본체 하고 시선을 피하려 하였으나 어느 틈에 미라는 찬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있었다.

미라는 동행이 없었던지 다른 사람들과 한좌석에 앉지 않고 곧바로 찬수가 앉은 좌석으로 향해 걸어왔다. 찬수의 맞은편 자리는 마침 비여있었다.

미라는 찬수와 마주앉으며 《아이유, 남평선생 아니십니까?》 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찬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악수는 했으나 기분은 몹시 불쾌하였다.

《그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병원에 가보니까 퇴원을 하셨다구 해서 퍽 미안하게 생각했어요.》

미라는 찬수의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말 남선생님께 너무도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후 퇴원하실 때까지 가서 뵙지 못한데는 적지 않은 사정이 있었어요. 결국 그것이 다 스틸맨때문이였다는것을 아셔야 해요.》

미라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피여올랐으나 그것이 찬수의 감정을 흔들지는 못했다.

《뭐, 난 지금 와서 그런것 알려구 생각지는 않습니다.》

찬수는 서글프게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상처는 좀 어떠세요?》

《네, 때가 되면 낫겠지요.》

《모두 내게 책임이 있습니다.》

《…》

《사실은 그동안 선생님이 어디로 옮겨가셨나 무척 찾았습니다. 나는 병원측에 강경히 항의했습니다. 내가 보낸 환잔데 어째서 내 말없이 퇴원을 시켰느냐구…》

미라가 혼자서 열심히 재잘거리고있는 동안 접대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양정식 두명분.》

미라가 먼저 말했다.

《아니요, 나는 조선정식을 주시오.》

찬수는 미라의 주문을 취소했다. 그가 내는 서양음식을 얻어먹기가 기분상 불쾌했기때문이였다.

《그뒤 나는 남선생님이 그날 병원에서 내게 하신 충고를 결코 잊지 않고있습니다.》

미라는 이 순간 심각한 표정으로 찬수를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그대로 실행하실수 있습니까?》

찬수는 정색을 하고 태연하게 물었다.

《할수 있습니다. 하지 못할 리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미라는 자신있게 말하며 방그레 웃었다.

그러나 찬수에게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미라는 추가로 양주를 주문했다.

눈치빠른 접대원이 술잔을 두개 가지고 왔다.

미라는 두개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술잔을 찬수에게 권했다.

그러나 찬수는 그것을 들지 않았다.

무슨 필요가 있어 미라와 술을 같이 나누겠는가? 생각하면 괴로운 웃음이 북받쳐오르기만 했다.

《자, 어서 드세요.》

《난 술을 못합니다.》

찬수는 태연스럽게 거절하였다.

《그러세요? 그럼 포도주를 할가요?》

《아니요, 그만두십시오.》

미라는 찬수가 너무 사양하는것만 같아 도리여 미안하였다. 그러나 그가 너무도 소박하고 무뚝뚝한 남자라는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되였다.

미라는 그것이 도리여 좋았고 마음에 들었다.

자기에게는 지금 그러한 남평이 필요했다.

소박하고 무뚝뚝하고 녀자에게 아첨할줄 모르고 웃음 한번 웃지 않는 남평! 이 얼마나 남성적이고 지성적이고 또 믿음직스러운가?

자기를 보기만 하면 몸뚱이채 집어삼킬것처럼 그 흉물스러운 두눈을 음탕하게 끔벅거리며 포옹과 키스를 강요하는 스틸맨이나 웰톤과 같은 짐승들과는 비할수도 없고 비해서도 안되는 남평이 아닌가?

이러한 남평과 사귀여보고싶고 서로 사랑해보고싶은 충동은 오늘 그를 만나자 갑자기 미라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부패한 미국식생활양식에 젖어 살아온 미라가 다만 일시적인 자기 생활의 권태를 잊기 위한 호기심의 발로가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부패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을 겪은 심경의 변화인가? …

이것은 미라자신도 아직 정확히 분간해 말할수가 없었다.

미라는 접대원에게 다시 주문해온 포도주를 잔에 따라 찬수에게 권했다.

그러나 찬수는 역시 술잔을 들지 않았다.

《아니, 정말 포도주도 못 마시세요?》

《네.》

《그러시구 어떻게 그림을 그리세요? 호호호…》

미라는 이 순간 자기 본색을 드러내며 요염하게 웃었다.

《그림은 붓과 채색으로 그립니다. 술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찬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얼굴에 띠웠다.

《정말 미안합니다. 선생님이 암만해두 노기가 풀리시지 않으신것만 같군요. 나는 선생님을 뵙기만 하면 그런것 저런것 모두 합쳐서 사과하려구 생각했어요.》

미라는 얼굴에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뭐, 사과하실게 있습니까? 그리구 또 사과를 받을건 또 뭐 있습니까?》

찬수는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그때두 말씀드렸지만 앞으로 남선생님의 화단생활을 위해서 내 힘자라는데까지 도와드리려고 생각해요.》

《호의는 고맙습니다. 그러나 난 남의 도움을 받아 출세할 욕망은 없습니다.》

찬수는 웃음을 띠우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싸늘한 웃음이였다.

《그것은 너무도 소박한 생각이세요. 우선 전람회를 준비하셔야죠. 그러자면 아드리에(화실)를 가지셔야죠? 그런것은 내가 다 알선해드려요.》

미라는 기어이 찬수의 마음을 꺾어보려고 애를 썼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