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문고개

2

 

《선생님!》

방안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며 찬수에게 안길듯이 다가들며 반가운 표정을 짓는 녀자손님은 바로 손영옥이였다.

《아! 어떻게 이렇게 용케 찾아왔어?》

찬수 역시 반가왔으나 영옥이의 방문이 뜻밖이였으므로 당황하였다.

《정말 이렇게 구석지고 교통이 불편한데 계시는줄은 몰랐어요.》

영옥은 찬수의 손에서 화판을 받아서 벽밑에 세워놓았다.

영옥은 오늘 웬 일인지 교복을 입지 않고 우아래 하늘빛치마저고리를 입고 왔다.

교복을 입었을 때 보던 영옥이와는 아주 딴판으로 훨씬 숙성하고 의젓해보였다.

만일 영옥이가 쌍태머리를 해서 량쪽어깨우로 드리우지 않았다면 그는 갓 시집온 새색시로 보였을것이다.

찬수는 교실에서 그를 대할 때보다 어쩐지 어색하고 거북하였다.

영옥이가 교복대신 치마저고리를 입고 자기를 찾아온 리유를 찬수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학교에서 면직처분까지 당한 선생앞이니 구태여 그 학교의 교복까지 입고 와서 선생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고 좋지 않은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음일가?

만일 그렇다면 영옥은 얼마나 령리한 처녀인가…

《어서 앉어.》

찬수는 담요를 접어 깔아주며 영옥이에게 앉기를 권했다.

영옥은 굳이 사양하며 책상옆에 무릎을 꿇고 그저 얌전하게 앉았을뿐이였다.

찬수는 면직을 당한 이후 벌써 여러날이 지났지만 아직 아무도 찾아와주는 사람이 없는 자기에게 영옥이가 이처럼 뜻밖에 찾아온것이 너무도 고맙고 대견스럽게 생각되였다.

그러나 한편 영옥이가 이렇게 이른아침 자기를 찾아온것이 암만해도 심상치 않다고 느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 그동안 학교에 나갔어?》

《네.》

영옥의 대답은 풀기가 없고 또 흥미없이 들리였다.

《기념식도 성대히 했겠지?》

《…》

영옥은 대답할 생각도 않고 《그런데 선생님, 어떻게 된 일이세요? 네? 말씀 좀 자세히 해주세요.》 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하며 찬수를 바라보았다.

《글쎄… 무슨 말을?》

《선생님이 왜 갑자기 학교에 안 나오시게 됐어요? 녜?》

영옥의 질문에 찬수는 이 순간 무어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곤경에 빠지고말았다.

영옥이가 자기의 면직당한 경위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온것 같기도 하고 또 아직 똑똑히 알지 못하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찬수는 사실대로 영옥이에게 《너때문에 면직을 당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창피하고 어른답지 않아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찬수는 시치미를 떼고 태연스럽게 《음, 몸이 좀 불편해서…》 하고 본의아닌 말로 얼버무려버리였다.

《선생님, 전 다 알아요. 저때문에… 선생님이 저때문에 면직을 당하셨다는것을 모르는줄 아세요? 우리들은 모두다 분개하고있어요.》

영옥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였다.

《…》

찬수는 한참동안이나 할 말이 없었다.

《어제 선생님후임으로 선생 하나가 왔어요. 그러나 우리들은 리사회에 선생님을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했고 후임선생의 지도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아니, 지도를 받아보지도 않고 배척부터 해서는 쓰나!》

찬수의 얼굴에는 한줄기 괴로운 웃음이 떠올랐다.

《아무리 우릴 잘 지도해줄 사람이 왔더래두 우리는 싫어요. 학부형들도 분개해나섰어요. 후임이라고 온 사람은 대구 어느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배척을 받고 쫓겨난 사람이란걸 알게 되였어요. 바로 그 학교에서 전학해온 아이가 있는데 모를리 있어요.》

영옥의 말을 듣던 찬수는 은근히 걱정이 되였다.

《학생들의 기분은 리해할수 있고 또 나를 그처럼 지지해주는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승산을 보고 일을 해야 해. 내 립장으로서는 학생들 보고 이래라저래라하기가 곤난한 일이야.》

《선생님, 왜 그리 약한 말씀을 하세요. 선생님의 복직을 요구하는게 학생으로서 무슨 잘못된 일이예요? 지금 하급생들까지도 움직이고있어요. 우리의 요구가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동맹휴학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어요. 선생님도 우리를 격려해주세요. 선생님은 분하지 않으세요?》

영옥이의 말소리는 나지막했으나 암팡지고 씩씩한데가 있었다.

찬수는 영옥이를 다만 상냥스럽고 유순한 처녀로만 알아온 자기 인식이 잘못된것이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러나 찬수는 갑자기 불안스런 생각이 치솟아올랐다.

비록 억울하게 면직처분을 당한 선생을 동정하고 그 복직을 요구하여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일으킬수는 있는 일이나 그러나 아직 그러한 경험들이 없는 마리야녀학교의 경우에는 과연 학생들이 자기들의 요구를 쉽사리 관철하기는 지극히 어려울것만 같았다.

우선 마리야녀학교의 900여명 학생들의 구성을 보면 거의 반수가 《정부》요인이거나 권력과 금력을 가진 특권계급의 딸들이 아닌가. …

그들이 과연 학교정책을 반대해나서서 동맹휴학에 가담할수 있을것인가?

찬수는 암만해도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래, 영옥이는 어떻게 생각해? 동맹휴학에 전교학생이 한덩어리로 뭉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뭉칠수 있어요. 만일 잘 뭉쳐지지 않아두 좋아요. 실패해두 좋아요. 그만큼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켜놓을 필요가 있으니까요.》

영옥이의 이 말에 찬수로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중학을 졸업하지 못한 찬수였으나 그 당시 상급생들이 일본선생을 반대해 동맹휴학을 했을 때 자기도 약간 거기에 가담한 경험이 있었던만큼 영옥이에게 무슨 말이든 한마디 격려해주어야 좋을것만 같았다.

그는 잠간동안 생각던 끝에 입을 열었다.

《기왕에 할바엔 철저하게 하라구. 내 복직문제만 가지고 할게 아니라 조건을 들어보면 얼마든지 있지!》

찬수는 이렇게 영옥을 격려하였다.

《념려마세요, 실패해두 좋아요.》

이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더니 주인로파가 쟁반에 감을 담아들고 서서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선생님! 웬 일이요? 저렇게 예쁜 아가씨가 다 찾아오니. 엣수, 감곳에 왔으니 감을 대접해야지.》

찬수는 로파가 내미는 쟁반을 받아 영옥이앞에 내려놓았다.

《할머니, 좀 들어오세요.》

영옥은 방그레 웃으며 인사를 했다.

《원, 별말을 다하우. 늙은이가 들어가 뭘 하겠수. 어서 정다운 이야기들이나 허시유. …》

로파는 헛다리를 짚고 수다를 부리면서 사라져버렸다.

《선생님진지는 저 할머니가 지으세요?》

《음.》

《아이유, 머리가 파뿌리처럼 센 할머니가 눈이 어둡지 않으실가? 음식이 깨끗해요?》

《음.》

《세탁은 참 어떡하세요?》

《저 할머니두 하구 나두 하구…》

찬수는 빙그레 웃었다.

《세탁할것 있으면 내놓으세요. 제가 오늘 해드리고 갈테예요.》

영옥은 어느 틈에 방안을 휙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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