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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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름을 받고 류인석의 방에 들어선 국림은 엄엄한 눈길로 마주보는 앞에서 굳어지고말았다. 그토록 사색적이고 사려깊던 그 눈에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풍기고있었다.

《동무가 공장청년들하구 축구놀음에 끼여들었다는게 사실이요?》

국림은 대번에 주눅이 들었다.

다음순간 반발심이 솟구쳤다.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자면 그들, 바로 그 청년들의 생활속에 뛰여들어 그들의 지향과 포부를 알아야 하며 그들과 진정으로 한덩어리가 되여야 한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당일군의 위신? 군대에선 정치일군들이 병사들과 뽈도 같이 차고 장기, 주패도 같이 놀며 휩쓸리지 않는가.

국림은 병사들이 무척 따르던 부대정치위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50대의 상좌가 웃동을 벗어버리고 20대의 병사와 팔씨름을 하다가 지게 되자 주먹을 흔들던것을. 꾸밈이 없고 소탈하고 솔직한 그 마음이 병사들을 휘여잡군 하였다. 그래서 자기도 청년로동자들과 휩쓸린것인데 뭐가 잘못되였단 말인가?

《동문 지금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는게 아니요?》

국림은 꿈쩍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전 아직 당사업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와 뒤짐을 지고 허리를 약간 굽히며 국림의 두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얼마간 담차게 마주보던 국림의 눈길이 끝내 이기지 못하고 꺾이웠다. 그러자 인석은 뒤로 돌아 뚜벅뚜벅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모른다, 모른단 말이지.》

조용한 방안에 인석의 발걸음소리만 울리는데 그 걸음마다에 얼마나 무거운 사색이 담겼는지 울리면 울릴수록 국림의 가슴은 커다란 뚜껑으로 내리누르듯 압박되였다.

《비서동무.》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며 인석이 입을 열었다.

《당사업에는 물론 고정격식화된 틀과 공식이 있을수 없소.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원칙은 하나요. 당사업이란 사람과의 사업, 그들의 마음과의 사업이라는것이요. 그렇기때문에 당일군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볼줄 알아야 하오. 당사업의 어떤 성과이든 비결은 사람들의 마음을 옳게 들여다본데 있소. 그런데 동무는 공장청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고있소.》

국림은 의아해졌다.

청년들의 마음을? 물론 아직 다는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에로 들어가기 위해서 애쓰고있지 않는가.

국림의 마음속 목소리가 그대로 얼굴에 씌여있는듯 인석은 그 말들을 낱낱이 읽고있었다. 그리고나서 단호히 그루를 박았다.

《공장의 청년축구팀은 본질을 잘 봐야 하오. 그건 당사업이 아니요!》

국림은 순간 비칠거렸다. 아니, 그럴수 없다.

(아닙니다. 바로 그들이 공장의 설비들을 지켜내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큰 재부라고 비서동지가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그 항변은 입밖으로 새여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말이 속에서만 끓고 도무지 입을 열수 없는지 국림은 안타까왔다.

인석은 그제야 국림에게 자리를 권했다.

《진정하오. 앉소.》

국림의 어깨를 눌러서 자리에 앉히고 인석은 여전히 서있었다.

《그들이 어째서 하루하루를 뽈이나 차면서 밀려다니는가? 그걸 먼저 생각해봐야 했소. 공장의 기개? 명예? 아니요. 시내에선 그 청년들을 형타수리공장 축구팀이라고 부르는게 아니라 운호네 축구패라고 부르고있소. 알겠소? 할 일도 없는데 뽈이나 차면서 세월을 보내겠다는 패란 말이요. 이 시련의 시기에 이지러져있는 그들 심리의 한 표현이요.》

국림은 뭔가 뒤바뀌우고 자기가 꿈에서 깨여나는듯 한감이 들었다. 흐려있던 그 무엇인가가 금시 맑아지는듯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납득되지 않는것이 있었다. 축구팀의 본질을 까밝혀놓는 시당비서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것 같은데 하다면 공장의 설비들을 해체하여 굳건히 보관한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고난의 시련이 끝나고 승리의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기다리고있소, 공장이 용을 쓰며 다시 살아날 그날을. 그래서 주장청년은 출석부에 이름도 없는 공장대학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고있소. 기다리는 그날까지 자기가 낡아지지 않으려고 애쓴단 말이요. 우리가 이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하는 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것은 좋지만 객관적인 관조자가 되여 기다리고만 있는것은 일종의 타락이고 현실도피요. 지금처럼 마음내키는대로 뽈이나 차면서 밀려다니는 생활에 더 깊이 젖어든다면 그들은 남이 되고마오. 공장과 상관이 없는 남이 된단 말이요. 이래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는가?》

국림은 속이 뜨끔해졌다.

젠장, 군대는 뭐나 명백한데 이건 전탕 옳은것과 그른것이 한데 엉켜돌아가니 갈피를 잡을수가 있나. 이제 가서 당장 그 빌어먹을 놈의 축구패를 해산해치워야지.

그다음엔? 그다음엔 그들을 당장 어쩐단 말인가?

결정적으로 공장이 돌아가야 한다. 공장을, 공장을 돌려야 한다.

《옳소. 일감이 없으면 로동자들은 타락하게 되오.》

또 한번 꿈쩍 놀랐다. 자기를 지꿎게 주시하는 저 눈. 어쩌면 남의 속생각을 저렇게도 잘 알아맞히는가. 국림은 벌떡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대책하겠습니다.》

인석은 머리를 저었다.

《어떤 대책을 세우겠소?》

말이 막혔다. 어떤 대책? 정말 대책이 없다. 책임기사 제길, 그 사람이 뭔가 좀 궁리해야겠는데 소죽은 귀신처럼 아무 기척도 없으니… 끙끙 갑자르기만 하는 국림을 이윽히 지켜보던 인석은 그제야 자리에 가앉았다.

《이보오, 비서동무. 기왕 축구팀에 발을 들여놨는데 한번 본때있게 경기해볼 생각이 없소?》

《예?》

국림은 아연해졌다.

《놀음이 아니라 진짜축구를 해보잔 말이요. 내 생각엔 이번 일요일에 세멘트공장하구 한번 붙었으면 좋겠는데 어떻소?》

아하, 그러니 진짜경기를 하자는거로군. 공장 대 공장. 해볼만 하지. 밥먹구 뽈만 찬 그 녀석들이 지지 않을거야. 경기를 크게 벌려놓구 이겨서 가라앉은 사기를 북돋아주자는건데 좋아! 진작 이런 궁리가 떠올랐어야 하는걸. 당사업을 오래한 일군이니 정말 로숙하군. 나도 빨리 저 수준에 올라서야 하겠는데…

《좋습니다!》

국림은 담차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세멘트공장도 축구가 세오. 이길 자신이 있소?》

국림은 히쭉 웃었다.

《문제없습니다. 그 친구들 이젠 처처 뽈만 차놔서 발이 딱딱 맞아돌아갑니다. 전문축구팀이나 같습니다.》

인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후리후리한 몸을 쭉 폈다.

《꼭 이기시오. 그날은 나두 가서 응원해주겠소. 경기장소는 세멘트공장 운동장으로 합시다. 전체 종업원들, 좋기는 가족들까지 다 데리고가서 응원도 들썩하게 조직해보오.》

《알았습니다. 돌아가도 좋습니까?》

거수경례까지 붙이고 활기있게 돌아서는 국림을 미소속에 바래우고나서 인석은 전화로 세멘트공장을 찾았다.…

《가족들두 말입니까?》

만수의 눈이 떼꾼해졌다.

《왜 그러오? 이건 공장의 명예를 걸구 하는 진짜경기란 말이요. 군대에선 부대별 체육경기를 할 땐 빵, 떡함지를 이구 가족들두 다 나와서 응원한단 말이요. 내 우리 처 키가 나보다 한뽐이나 더 커서 어디 같이 안 다니지만 이번 경기엔 무조건이요. 다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시오.》

국림은 더 말을 못하게 오금을 박았다.

삽시에 온 공장에 소문이 퍼졌다. 좋다는 사람보다 시답지 않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 바른 세월에 당비서가 새로 왔으면 식량배급 풀어줄 궁리부터 하는것이 아니라 축구에 미쳐돌아간다고 뒤소리들이 많았다. 거기에다 응원련습까지 하겠다니 두덜거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 사람들을 국림은 익살과 으름장으로 눌러놓으면서 이 공장 대항축구경기의 응원을 작업반 당세포들에서 중요한 사업으로 틀어쥐도록 분공조직을 한 다음 축구조와 함께 훈련에 들어갔다.

맹물 한사발 안 마시고도 자신있노라고 흰소리치면서 자기네가 이기면 세멘트공장에서 뭘 내느냐부터 물어보던 축구팀은 경기잡도리가 만만치 않은것을 보고 훈련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운호는 팀에서 뽈다루기가 제일 미약한 국림이 최종방어수로 출전하는 조건에서 자기들의 전통적인 4―3―3체계를 허물고 국림의 뒤에 방어수를 또 한명 깔아두는 3―3―2―2라는 종심이 긴 새로운 체계를 내놓았다.

상대방의 정면공격은 굳건히 막아낼수 있지만 만약 측면돌파당하는 경우 결정적으로 불리해지는 체계라고 더러 반대했지만 운호는 앞선에서 상대방의 공격진출을 철저히 제압하는 압박방어를 진행하고 국림이 활동반경을 크게 움직여주면 얼마든지 측면돌파를 막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 나이가 60이 다된 비서동지가 그렇게 넓은 구간을 뛸수 있어?》

쉰살을 좀 넘긴 제 나이를 턱자없이 예순에다 갖다붙이는 문지기의 어깨를 툭 치며 국림이 배심좋게 소리쳤다.

《일없소. 난 90분동안 쉬지 않구 뛸수 있소!》

운호는 제꺽 《옳습니다. 비서동진 주력이 있기때문에 얼마든지 감당할수 있습니다.》 하며 장난기짙은 웃음을 지었다.

누구도 이 새로운 전술체계가 국림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체계라는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뽈다루기기술이 약해가지고도 중땅크같은 체력을 믿고 몸을 내대는 국림을 한두번의 경기에서 이미 파악한 운호였다. 기술이 약한 사람은 부지런히 뛰기나 하라는 속심이 종심이요, 압박방어요 하는 너울속에 교묘하게 감추어져있었다.

상대방공격수에게 무작정 《육》을 내대는 그가 방어선을 돌파해들어온 공격수를 육체로 제압해도 좋고 또 놓친다 해도 그뒤에 있는 진짜최종방어수가 처리할수 있기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암만 체력이 좋다고 해도 그 넓은 구역을 달리느라면 인차 맥이 빠질것이고 그때가서 선수교체를 하면 즉시에 자기들에게 익숙해진 4―3―3체계로 이행할수 있었다. 종전체계와 다른것 같아도 사실 달라진것이란 없는 새 전술체계에 국림은 물론 후보선수들을 포함한 열여섯명의 선수들이 다 깜짝 속아넘어갔다.

맹렬한 훈련속에 팀의 박자와 호흡이 완벽할 정도로 맞아떨어지자 갑자기 운호는 경기를 시경기장에서 하자고 주장했다.

《뭣때문에 남의 공장마당에 가서 한다는겁니까? 소학교운동장보다두 작겠는데.》

국림도 그 말이 그럴듯했다.

《옳소, 할바엔 경기장에서 하자구.》

그런데 경기장소를 옮기겠다는 국림의 제기를 류인석이 딱 잘라버렸다.

《안되오. 세멘트공장에서 하시오.》

운호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국림도 경기를 꼭 세멘트공장에서 조직하려는 인석의 의도를 알수 없었다.

드디여 경기의 날이 왔다. 세멘트공장에서 친절하게 보내준 자동차 두대에 선수들, 종업원들, 가족들이 갈라타고 공장에 들어섰다. 크링카소성은 련속공정이여서 일요일이지만 공장은 우렁차게 돌아가고있었다. 교대공들을 제외한 세멘트공장의 종업원들이 공장마당 한쪽을 차지하고 형타수리공장의 《원정대》를 환영하는데 꽹과리며 북통들을 두드리고 박수채들을 짜락짜락하면서 와와 소리를 치는것이 환영인지 위압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류인석비서가 약속대로 와있었다. 국림은 만수와 팀의 주장 운호를 데리고 인석과 세멘트공장 지배인, 당비서, 책임기사와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인석은 머리를 꾸뻑하는 운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동무가 리운호요? 오늘 형제간이 맞붙어야 되겠구만.》 하고 세멘트공장 책임기사 운식을 돌아보았다.

《그런 사이였습니까?》

국림은 운호와 운식을 번갈아보다가 운호에게 주먹을 흔들었다.

《가족주의요소가 조금치라두 나타나면 퇴장시키겠소!》

그러나 운호의 눈길은 연기가 황황 솟구쳐오르는 소성로굴뚝에 가있었다. 돌아가는 공장! 어린애처럼 천진해보이는 그 눈에 부러움이 한껏 실린것을 인석은 주의깊게 지켜보고있었다. 만수도 우두커니 서서 세멘트공장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고있었다. 그러다가 사슴같이 어진 눈이 초점없이 망연하게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고있는데 흘러간 그 어느 시절인가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여있었다.

세멘트공장 응원군중의 맞은켠에 형타수리공장 종업원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질서정연한 세멘트공장 종업원들과 확연히 대조되여 어설프고 흐트러져보였다.

세멘트공장 응원석쪽에 내다놓은 책상에 몸집이 거쿨진 지배인 윤권민이 산처럼 묵직이 앉아있고 그옆에 성미가 칼칼해보이는 초급당비서 엄철수가 자신만만하게 앉아있었다. 류인석은 안만수를 데리고 형타수리공장 군중들의 가운데 앉았는데 안만수는 자기에게는 시당비서곁의 이 자리가 송구스럽다는듯 구부린 허리를 펴지 못하고있었다.

호각소리가 길게 울리고 일제히 함성이 터져올랐다. 북소리, 꽹과리소리, 박수채가 짝짝 하는 소리에다 소성로의 송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우람찬 뽈분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한데 합쳐져 세멘트공장의 응원함성이 형타수리공장 응원소리를 순간에 제압해버렸다. 온몸을 붕― 띄우는것 같은 응원소리가 세멘트공장의것임을 감촉하는 순간부터 운호네 팀은 사기가 떨어졌다.

경기는 시작부터 맹렬했다. 공다루기기술이 높고 풍부한 경기경험을 가지고있는 형타수리공장팀이 첫순간에 흐트러지던 심리를 수습하고 공세에로 넘어갔다. 세멘트공장팀이 공격형중간방어수인 책임기사 운식을 축으로 정면공격에 나선것을 손쉽게 꺾어버린 운호네 팀은 좌우측면돌파와 정면돌입을 능숙하게 결합하며 경기에서 주도권을 쥐였다.

공격마당 오른쪽에서 운호가 반대쪽으로 길게 갈라준 뽈이 왼쪽날개에게서 중앙공격수에게 넘어갔다가 잽싼 머리받기로 다시 오른쪽에 넘어오는 순간 운호의 특기인 오른발휘감아차기에 걸려 총알같이 문대로 날아갔다. 만약 운호의 주장대로 경기마당이 시경기장의 규격축구장이였다면 영낙없는 꼴이였을것이다. 그러나 제 규격보다 작은 공장마당이다나니 뽈은 문대의 가름대를 스쳐넘어 그뒤에 있는 공장건물벽에 맞고 탕 튀여났다.

《와―》하는 환성이 형타수리공장쪽에서 일어났다.

《잘―해!》 방어마당에서 국림이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세멘트공장쪽에서 문지기가 힘껏 내지른 뽈이 형타수리공장팀의 방어선을 날아넘는데 머리를 쳐들고 뽈을 보면서 뒤걸음치던 국림이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그뒤에 있던 진짜최종방어수가 머리받기해버렸다. 떨어지는 공을 이번에는 세멘트팀의 공격수가 힘껏 머리받기하였는데 그만 헛골질하여 뽈은 그냥 뒤로 넘어가고 골받기하려던 선수는 제힘에 못이겨 앞으로 어푸러졌다. 우습강스러운 동작들이 련속 반복되여 량쪽 응원석에서 웃음소나기가 터졌는데 분위기가 해이되는 틈에 떨어지는 뽈을 주은 세멘트공장 책임기사 운식이 묘한 뒤발빼몰기로 새여들어왔다. 자빠졌던 국림이 맞받아달려나가며 운식의 정면에서 미끄러져빼앗기를 하였지만 뽈은 새여나가고 국림의 다리에 걸린 운식이 공중제비로 땅바닥에 딩굴었다. 이번에도 뒤선에 있던 최종방어수가 국림이 놓친 뽈을 꽝 하고 걷어찼다. 그 순간 호각소리가 울렸다. 국림의 반칙이였던것이다.

벌차기. 운호네 팀이 담벽을 쌓은 앞에서 아까 헛골질했던 선수가 달려나가며 걷어찼지만 이번에는 헛발질하며 넘어졌다. 《와하하―》 하는 응원자들의 웃음속에 운호네 담벽이 흩어지는 순간 운식이 뛰여나가며 제자리에 그냥 놓여있는 뽈을 강하게 차넣었다. 뽈은 문지기도 어쩔 사이없이 그물에 걸렸다. 미리 짜고든 기만동작도 이것처럼 멋들어지게 상대방을 기만할수는 없었을것이다.

세멘트공장 응원자들이 일제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북통과 꽹과리를 깨여져나가게 두드리고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댔다.

《보―아라, 어떠냐! 우리 선수 어떠냐! 야―》

어처구니없이 한꼴 먹은 운호네는 저들끼리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정면공격에는 끄떡없을것 같던 종장체계가 국림의 반칙과 세멘트공장선수의 서투른 발길질로 우습게 무너지고말았던것이다.

먼저 실점을 당한 운호네가 드센 공격으로 넘어가자 세멘트공장팀은 선수들이 모두 자기 마당에 들어와 완강한 방어진을 쳤다. 몇차례의 혼전이 벌어졌으나 이 밀집방어진을 도저히 깨뜨릴수 없었다.

드디여 운호네는 자기 팀의 특기전술인 파도식공격으로 이행했다. 공격선에 있는 세명의 공격수가 뽈을 문대로 밀고들어가다가 밀집방어진과 부딪칠 때 뒤로 돌려주면 그 뽈을 받은 중간방어수 세명이 또 몰고들어갔다. 그 사이 공격선에 섰던 공격수들이 뒤로 들어와 중간지대를 차지하고있다가 문전으로 압박해들어갔던 세명이 다시 뒤로 돌려주는 뽈을 받아가지고 공격해나왔다. 공격수들과 방어수들이 자리를 엇바꾸어가며 교대로 련속 덮쳐드는 이 파도식공격에 걸려 시내의 한다하는 축구팀들이 무너지군 했다. 이름난 류진항팀도 지난번 여름경기때 열일곱번째인지 열여덟번째인지 쉴새없이 들이치는 공격파도에 끝내 방어진이 무너져 패권을 떼우고야말았었다.

운호네 팀이 《리운호전술》이라고 명명한 이 파도식공격은 원래 4―3―3체계에서 최종방어수를 제외하고 세명씩 세조가 교대로 자리를 바꾸어가며 파도처럼 련속 덮쳐드는 특이한 공격전법이였다. 상대방에게 절대로 뽈을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주고받으며 한조가 밀고들어가다가 뒤로 돌려주면 다음조가 받아서 밀고들어가는 이 파도식공격은 방어조와 공격조가 따로 없다. 어느 조든 공격해들어가다가 방어진에 구멍만 생기면 뒤로 돌리는것이 아니라 잽싸게 쏴넣어 득점을 한다. 세개의 조가 교대로 파도처럼 덮쳐드는 이 독특한 전법은 결정적인 차넣기가 이루어질 때까지 상대방에게 절대로 뽈을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주고받는 높은 공다루기기술과 결정적인 득점순간을 포착하는 예리한 경기감각, 공격선과 방어선사이를 직포기의 북나들듯 쉬임없이 오가는 완강한 주력을 누구나 꼭같이 가지고있어야 하는 높은 수준이여서 그 어느 팀도 쉽게는 소유할수 없는것이였다.

공격선에 섰던 운호가 중간지대로 돌아갔다가 다시 공격선에 진출한 다섯번째 파도가 세멘트공장팀에 덮쳐들었다. 공을 뒤로 돌리려는 순간 상대편 방어진의 빈틈이 운호의 눈에 포착되였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빼몰기를 하여 공격마당 오른쪽을 돌파했는데 그만 몰기가 약간 길어져 뽈이 문선바깥되려 했다. 그 뽈을 미끄러져 정지시킨 운호는 일어서자바람으로 강한 외측깎아차기로 공을 날렸다. 문대앞을 가로지나가던 공이 갑자기 옆으로 휘여들며 문대에 날아들어가 그물에 걸렸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비행하는 물체의 자리길은 안쪽으로 구부러든다는 마그누스효과를 노린 차넣기가 멋지게 성공하였던것이다.

형타수리공장 응원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질러댔다. 만수까지도 벌떡 일어섰다. 귀중한 동점꼴을 넣은 운호를 국림이 번쩍 안아올렸다. 전반전 30분경에 1:1로 동점을 기록한 경기가 그 실력으로 보나 주력으로 보나 형타수리공장팀의 승리로 끝나리라는것이 명백해졌다.

파도식공격에 걸려들어 완전히 피동에 빠졌던 세멘트공장팀에서 머리받기로 날아들어온 공을 요행 받아쥔 문지기가 힘껏 내찬 공이 이번에도 높이 떠올라 운호네 방어선을 날아넘고있었다. 방어마당에 들어와있다가 머리받기로 공을 빼앗자고 조약하려는 순간 운호의 눈에 흰 연기가 아구리 미여질 정도로 기운차게 뿜어져나가고있는 소성로의 굴뚝이 비껴왔다. 축구공이 날으고있는 파아란 가을하늘에 흰구름마냥 소담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나가고있는 그 모습이 이상한 충격을 일으켰다. 숨쉬는 공장, 살아있는 공장!

운호가 순간 굳어진 사이에 운식이가 달려들며 힘있는 머리받기를 하여 그대로 꼴잉시켰다. 세멘트공장 응원자들속에서 또다시 폭풍같은 함성이 일어났다.

전반전끝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길게 울리자 국림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운호! 어떻게 된거야? 젠장!》

운호는 아무 말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 자기팀 응원석앞에 맥없이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눈앞에는 숨죽어버린 자기네 공장, 억척같이 입을 봉해버린 차고의 철문짝들이 아프게 안겨왔다.

세멘트공장팀쪽에서는 와―와― 하는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터져나오고 춤판까지 벌어졌다. 거기에 화답하듯 소성로의 송풍기소리, 뽈미르 돌아가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있었다.

남의 공장 굴뚝만 멍하니 쳐다보고있는 운호의 맥없는 모습을 류인석은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그옆에 송구스럽게 앉은 만수도 련민이 가득한 눈길을 운호에게서 떼지 못하고있었다. 누구인가가 나서서 응원자들을 불러일으키느라고 열심히 선창하고있으나 운호의 갑자기 저락된 기분이 전체에게 파급되여서인지 형타수리공장 응원자들의 화답과 박수소리는 벌써 맥이 없었다.

후반전에서도 가라앉은 심리는 회복되지 못했다. 국림은 자기가 주동적으로 퇴장하여 선수교체를 하였지만 세개 조의 파도식공격도 잘되지 않았다.

운호에게는 경기가 힘들어졌다. 파도식공격에서 기본은 상대방에게 뽈을 뺏기지 않는것이다. 그러자면 련락이 정확해야 하는데 박자가 헝클어진 팀에서 련락도 자주 끊기우군 하였다. 세멘트공장팀은 부쩍 사기가 올라 역습까지 시도하군 하였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겨우 모면되군 했다. 선수로부터 감독이 되여버린 국림은 어떻게 하나 이겨보려고 운호를 교체하는 용단까지 내렸으나 그래도 형세는 역전되지 않았다. 주장이 없는 팀은 더욱더 어렵게 경기를 치르었다.

후반전은 끝내 득점이 없이 끝나고말았다. 결국 2:1로 형타수리공장팀은 패하고말았다.

기술로 보나 주력으로 보나 세멘트공장팀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팀의 패배는 국림을 격분시켰다. 무슨 쪼간이 있는것이 분명했다. 두꼴이나 걷어넣은 세멘트공장 책임기사가 운호의 형이라니까 이건 전탕! 형이라고 해서 동생이 주접들다니.

쭈그리고 앉아있는 운호에게 달려가 어깨를 와락 잡아흔들던 국림은 놀랐다. 운호의 두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던것이다.

《이건 뭐야? 시시하게!》

선수들도 운호를 에워쌌다.

《운호, 왜 그래?》

운호는 대답이 없었다. 어쩐지 모든것이 허전하고 허무해졌다.

축구. 남들은 이 고난속에서도 이렇게 공장을 돌리고있는데 우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경기에서 이겼다 한들 무슨 의의가 있는가? 종심이 깊은 방어체계? 정신적종심이 얕은 자기들에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우스운 일이다. 자기 공장은 페쇄해버린 주제에 굳건히 돌아가는 남의 공장에 와서 이겨보겠다는 이것이야말로 희극이 아닌가.

《경기야 이길수두 있구 질수두 있는데 오늘은 경기가 참, 처음엔 잘돼가는것 같더니…》

어정어정 다가온 책임기사의 중얼거림이 끝내 운호의 분통을 터뜨려놓고야말았다. 운호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뛰쳐일어나 부르짖었다.

《공장을 세워놓은 주제에 축구나 이겨선 뭘합니까? 난 살아있는 이 공장이 부럽습니다!》

가슴을 찢어헤치는것 같은 그 부르짖음앞에서 모두가 굳어졌다. 거인의 심장처럼 울부짖는 공장의 동음. 패전의 원인은 너무도 명백했다.

이때 그들에게 다가온 류인석이 운호의 손을 꽉 쥐였다.

《공장을 살려내시오, 그 파도식공격으로. 파도는 부시지 못하는게 없지? 축구팀의 공격파도가 난관을 짓부시는 파도가 돼야 하오.》 그리고나서 국림과 만수를 돌아보았다.

《이제 곧 소성로에서 크링카출하를 하게 되는데 모두 데리고가서 한번 보오. 장쾌할거요.》

축구선수들의 어깨를 한명한명 두드려주고 떠나가는 시당일군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서서 바라보며 국림은 그제야 축구경기장소를 꼭 세멘트공장으로 정해놓은 의도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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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 단동 - 로동 - 2021-12-28
안녕하십니까? 제가 조국에서 이 도서를 열람할때 기억에 의하면 1장이 시작되기전 주인공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언약하는 서문이 별도로 존재했던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이 루락되였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자 - - 관리자 - 2021-12-30
미래선생의 기억이 정확합니다. 빠진 서문내용을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열람해주시기 바랍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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