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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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타수리공장 책임기사 안만수는 도무지 맺고끊는 법이란 통 모르는 사람이다. 멋없이 꺽두룩한 키도 맺어야 할 때 가서 제때에 맺지 못해서인듯. 거기에다 말을 할 때면 문장을 채 맺는 법이 없이 두서없는 말마디들을 줄줄 흘리군 했다.
젊었을 때에는 기술혁신도 하고 맵시도 있는 키다리멋쟁이였다는데 공장이 제대로 돌지 못하게 되자 뚱딴지같이 지금의 생산지표를 가지고는 공장이 더는 전망이 없다는 말을 들고다니다가 손탁이 센 이전 지배인한테 호되게 얻어맞고 비판교양까지 받았다. 책임기사가 해임될것 같다고 말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관대히 용서는 되였다. 그다음부터 사람이 영 딴판이 되였다. 자기의 견해와 주장을 내세우기는커녕 책임기사가 응당 해야 할 일에도 결론이라는것이 없이 그저 두리뭉실하게 말을 하군 하였다.
오늘 아침도 일감이 없는 공장의 젊은또래들을 휘동해가지고 또 어디론가 뽈차러 가는 기사 리운호에게 《우에서 나오겠다는데 이거 공장꼴이, 청소라두 하긴 해야겠는데…》 하며 어물어물했다.
하라는 소리인지, 제가 하겠다는 소리인지 대중할수 없는 그 말에 운호는 씩 웃으며 《그러니까 청소를 하구 가란 말이지요?》 하고 물었다. 만수는 《글쎄, 그렇게 하면 좋긴 하겠는데…》 하며 어줍게 웃었다.
운호가 돌아가자 버르장머리없는 젊은 녀석들 몇이 떠들어댔다.
《〈만만수〉가 뭐래?》
《제길, 부업지에서 터밭농사나 하는 사람들 데려다 청소할게지.》
언제부터인가 만수에게는 안만수라는 이름대신 《만만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래도 꿈만, 저래도 꿈만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문문하다는 뜻인지. 하긴 그 두가지가 다 들어있을수도 있다.
《뭘그래? 제꺽 마당이나 쓸구 가자.》 운호의 말에 젊은것들은 온 구내에 뽀얗게 먼지를 피워올리며 마당을 뻑뻑 쓸고는 그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달아뺐다. 그나마도 다행이였다. 일감도 없는 공장에 그래도 저런 젊은이들이라도 있어가지고 아침에 나와서는 저들끼리 뽈차는 련습일망정 하다가는 어디로 우르르 밀려간다. 그랬다가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꼭 공장에 왔다가야 흩어지군 한다.
3년전 광산금속대학을 졸업한 운호는 공장에 금속가공기계기사가 할 일이 하도 없으니 심심하다면서 시안의 로동자들이 일하면서 배우는 공장대학인 류진공업대학에 다녔다. 정식 편입한것이 아니여서 출석부에 이름도 없지만 단 하루도 결석하는 법이 없이 부지런히 다녔다. 일감이 없는 공장의 젊은것들을 휘동해서 한때 이름있던 공장축구팀을 되살리고 주장이 되였다. 그리고는 매일 어디하고 경기를 한다고 돌아치군 한다.
드세기 그지없던 지배인이 년로보장으로 들어간 다음 초급당비서까지 다른데로 조동되여가다나니 무르기 짝이 없는 안만수의 손에서 공장은 점점 더 말이 아니였다. 청년들이 부업지농사를 보고 터밭농사라고 하는것도 일리가 있었다. 자기의 무른 손으로는 공장뒤산기슭에 있는 부업지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겠으니 작업반별로 떼주었는데 어떤 작업반들에서는 그것을 아예 개인별로 나누어놓아 저마끔 농사를 짓는것이 정말 개인터밭처럼 되고만것이다.
아무튼 당장 야단난것은 시에서 나오겠다는데 축구팀마저 달아빼고나니 공장에 책임기사 자기와 애꿎은 처녀들 몇명밖에 남지 않은것이였다. 부업지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엊그제 입직한 처녀애를 올려보냈는데 누구 하나 내려오는 사람이 없었다. 만수는 한숨만 내쉬였다. 다 망가진 이 공장에서 점점 더 위축되고 주눅이 드는 만수였다.
한달전 시당위원회에서 경제사업을 맡아보는 비서를 만나 담화하던 일이 생각났다. 류인석비서는 친절히 자리를 권하고나서 공장의 실태를 물었다. 두서없이 중얼거리는 만수의 말을 끝까지 듣고난 다음 《책임기사동무 생각엔 어떻게 하면 공장을 살릴수 있을것 같소?》 하고 물었다.
만수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장이 살아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만수가 공장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의심한지는 오랬다. 그래서 한마디 비쳤다가 되게 혼난 뒤부터는 일체 입을 다물고말았다. 책임기사는 지배인이 조직하는 사업만 잘 집행하면 그만이다. 크지 않은 지방산업공장이여서 말로는 기사장격이라고 하지만 책임기사는 어디까지나 책임기사인것이다.
류인석은 송구스러운 자세로 앉아만 있는 만수가 답답한지 뒤짐을 지고 말없이 방안을 거닐기만 하다가 그를 내보냈다.
《생각해보오. 그리고 전화하든가 찾아오든가 하오, 아무때건.》
며칠전에 인석은 전화로 안만수를 다시 찾았다.
《그래 생각해봤소?》
만수는 미안쩍게 어물거렸다.
《글쎄 생각은 해봤지만 공장이 너무… 이 공장을 유지한다는게…》
《그러니까 책임기사동문 공장이 더는 전망이 없다는거겠습니다?》
만수는 류인석비서가 앞에 있기라도 한듯 송수화기를 황황히 두손으로 받쳐쥐고 허리를 굽석했다.
《아,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글쎄…》
《알았습니다.》
이어 수화기에서는 붕― 하는 신호음만 길게 들려왔다. 시당비서가 전화를 끊은것이다.
만수는 불안해서 견딜수 없었다. 분명 철직시킬것이다. 필요없으니까. 지금 후임을 고르고있을테지. 까짓것, 앞날이 내다보이지 않는 이
공장에서 책임기사면 어떻고 로동자면 어떻고. 그런데 오늘 시에서 나오겠으니 자리를 뜨지 말고 기다리란다. 그
러지 않은들 어디 나돌아다니지도 않는 만수였다.
접수실에 소죽은 귀신처럼 들어박혀 아무 기척도 없이 담배만 뻐금뻐금 빨고있는데 자전거를 탄 두사람이 공장정문에 나타났다. 머리가 희슥희슥하고 사색적인 두눈에 키가 후리후리한 첫번째 사람이 시당비서인것을 알아본 만수는 후닥닥 일어나 허둥지둥 달려나갔다.
서느러운 가을바람에 날리는 희슥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류인석이 만수에게 함께 온 사람을 가리켰다.
《제대군관 지국림동무요. 동무네 공장에 초급당비서로 파견되였소.》
새로 온 초급당비서는 키가 작고 몸이 가로 퍼진 사람이였다. 첫눈에 배포유하고 뭐나 대수롭지 않아하는 인상을 주었다. 하긴 그러니까 저렇게 몸이 뚱뚱할테지.
만수는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 생각을 서둘러 지워버리며 국림과 송구하게 마주 머리숙여 인사했다.
《책임기사 안만수입니다. 전 차를 타구 오시는줄 알구.》
처음 보는 당비서와 나누는 인사를 채 맺지 않고 시당비서에게 인사인지 정문밖에 나가서 맞이해올리지 못한 변명인지를 중얼거리는 그 말을 국림은 통채로 자기에게 하는 인사인줄 알고 헌헌하게 웃었다.
《형타수리공장 초급당비서가 승용차편제 됩니까?》
인석은 만수의 어딘가 비굴해보이는 언행이 딱 질색인지 눈살을 약간 찌프리다가 제꺽 표정을 고쳐지으며 롱담을 던졌다.
《동무들이 일을 잘해서 공장이 번창하면 그렇게 될수 있소. 당일군은 몰라도 큰 공장 지배인, 기사장은 승용차편제니까.》
그 말에 국림이 반색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승용차타는걸 목표루 걸구 책임기사동무, 한번 잘해봅시다. 지배인, 기사장 승용차 당비서가 어불러타는건 일없겠지요?》
두사람은 웃었지만 책임기사는 두손을 어색하게 맞비비며 어줍어할뿐이였다.
언제 그렇게 되겠다구. 뭐나 떡먹듯 쉬운줄 아는 모양인데 그러니까 저렇게 몸이 나지.
만수는 어째서 새로 온 초급당비서가 몸좋은 사람인것을 두고 자기가 신경을 쓰는지 알수 없었다.
인석의 사색적인 눈길이 공장을 휘둘러보았다.
《공장이 왜 이렇게 조용하오?》
사람이 왜 안 보이느냐는 물음인데 만수는 왕청같이 《예, 돌아 못가는지가 오랜데 일감이 지금두 없구…》 하고 다 알고있는 공장사정만 중얼거렸다.
《종업원들은 다 어디 갔소?》
그제야 만수는 시당비서의 말귀를 알아듣고 《저― 부업지에…》 하고 대답했다.
만수를 앞세우고 두사람은 공장을 돌아보았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공장이였다. 멎어있는 기대설비나마 생산건물들에 들어차있을 때는 그래도 지금보다 보기가 나았다.
만수가 공장을 림시로 책임진지 한달인가 되였을 때였다. 한 로동자가 가내부업을 해서 그 수입을 공장에 들여놓겠으니 소형전동기를 한달만 빌려달라고 했다가 만수가 말을 듣지 않으니 마대에 싸서 자전거에 싣고나가다가 눈에 걸렸다.
《이 사람아, 이러문 안되네. 이거야 사람이 할짓이 아니지. 제발 도루 가져다두게.》
욕설을 퍼부어도 시원치 않겠는데 제편에서 오히려 사정을 하는 만수에게 그 로동자가 을러멨다.
《그럼 손가락이나 빨고 그저 앉아있으란 말이요? 나 혼자 먹겠다는가? 번 수입을 공장에 넣겠다는건데.》
《안되네. 이건 국가재산이야. 저마다 그렇게 하면 공장에 뭐가 남겠나?》
《그럼 일감을 달란 말이요! 이건 사람도 놀아, 기계도 놀아. 젠장! 그렇게 공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왜 돌릴 생각은 안하구 손털구 앉아만 있소?》
그럴 때 운호가 뛰여나와 그 옥신각신판을 가로베여섰다.
《당장 제 자리에 가져가라요. 혼쌀내기 전에!》
아무리 위엄있게 말을 해도 애티가 나는 운호의 날파람있는 몸을 아래우로 훑어보던 그가 한숨을 쉬며 자전거를 돌렸다. 애숭이같은 총각기사녀석은 무섭지 않은데 운호의 뒤에 있는 그 축구팀이 무서웠던것이다.
그날부터 공장축구팀은 한주일동안 뽈마당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운호의 지휘밑에 밤낮없이 공장의 설비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어쩌자구 그러느냐는 만수의 물음에 운호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낡은 화물자동차 한대가 신발벗은채로 네발을 들고 서있는 공장의 너렁청한 차고에 큰 설비들은 해체해서 넣고 작은 설비들은 통채로 넣고 아무튼 공장의 쓸만 한 설비들은 모조리 처넣었다. 그리고는 차고의 두쪽으로 된 철문을 아예 용접해버리고말았다.
영구보존된 설비명세를 운호가 가져다줄 때 만수는 숨이 다 나갔다.
《수고했구만. 그런데 일없을가?》
겁질려있는 책임기사에게 운호는 어린애들처럼 천진한 웃음을 쌕 지어보였다.
《고난의 행군이 끝나면 출고합시다!》
잃어버릴 념려는 없어졌지만 중요부분품들을 뜯어낸 설비들은 이발이 홀랑 다 빠져버린 호물때기늙은이처럼 순간에 조골조골 늙어보였다.
관리국에서 나와서 야단쳤지만 운호는 요지부동이였다. 이제라도 일감만 있으면 조립은 순간에 해치운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공장을 페쇄해버린것이나 다름없는 그 망동을 두고 만수는 또 눈알이 빠지게 욕을 먹고 당사자인 운호는 법기관에까지 불리워다녔는데 당장 무슨 일이 날것만 같던 소동이 갑자기 뚝 그쳐버렸다. 돌아가는 말이 시에서 그냥 놔두라고 했다는데 정말인지는 만수도 알수 없었다.
인석은 든든히 용접해놓은 그 철문을 쓸어만지며 국림을 돌아보았다.
《비서동무, 이게 내가 말한 그 설비창고요. 이건 뭘 말해주는가? 이 공장에 주인이 있다는걸 말해주고있소. 동무들은 큰 재산을 가지고있소. 이안에 있는 설비들? 아니요. 이렇게 한 그들이 바로 가장 큰 재부요.
명심하오, 비서동무. 이걸 용접해치운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면 이 철문도 열수 없다는것을.》
만수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꾹 닫겨있는 철문짝들과 인석의 사색적인 눈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 이젠 로동자들을 만나봅시다. 다들 불러오느라 하지 말고 부업지에 가서 만나지. 안내하오.》
공장이 시내에서 퍼그나 떨어진 산기슭에 있어 부업지는 멀지 않았다. 말이 공장부업지지 이제는 개인터밭처럼 되여버린 그곳에 시당일군과 새로 온 초급당비서를 데리고가자니 만수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초급당비서는 아무래도 알게 될 일이지만 시당비서가 이제 알게 되면 또 무슨 벼락을 맞을지 몰라 만수는 황황히 손을 내저었다.
《아, 제가 이제 가서 다 데려오겠습니다. 잠간만 기다리면 예, 제꺽…》
눈치없는 초급당비서가 만류했다.
《그렇게 잠간이면 멀지도 않은 모양인데 가봅시다. 부업지농사형편도 볼겸.》
인석도 머리를 끄덕했다.
《공장은 못 돌려두 그새 부업지농사는 어떻게 했는지 가보기요.》
이런 야단이라구야. 사람이 저렇게 눈치가 무디니까 몸이 나지?
세사람이 공장부업지가 있는 뒤산으로 오르는데 인석이 국림을 돌아보며 말했다.
《비서동문 부업농사에 조예가 깊겠소?》
《예, 그렇습니다.》
국림은 활발하게 웃으며 앞서걷는 만수에게 말을 건너보냈다.
《책임기사동문 군사복무를 어디서 했습니까?》
만수는 면구스럽게 머리를 저었다.
《아, 전 아직, 중학교를 졸업하구 곧장 공장엘…》
줄줄 흘리는 그 말을 막아치우며 국림이 이야기판을 펼쳤다.
《그래요? 우리 부대에선 날 <부업소좌>라고 불렀습니다. 잠꼬대를 해도 부업소리만 한다나요. 그 별명이 싫지는 않습디다. 난 후방부련대장이였으니까요. 제대돼서 당학교에 다니면서 배우긴 했는데 아직 당사업은 좀 자신이 없어두 부업농사만은 자신있습니다. 맡아서 본때있게 내밀어주겠습니다.》
(아하, 후방일군! 몸난 리유가 있었군.)
만수가 이런 속생각을 굴리며 징겅징겅 사마귀걸음을 하는데 국림이 또 물었다.
《부업지작황은 어떻습니까? 올해농사형편이 말이 아닌데.》
제 생각에 옴해있던 만수는 꿈쩍 놀라며 두손을 맞비비였다.
《그만하면 뭐…》
공장부업지는 정말 작황이 좋았다. 고추심은데서는 장정 엄지손가락만큼 퉁퉁한 고추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강냉이심은데는 팔뚝같은 이삭들이 수염이 시꺼맸다. 테두리들의 줄당콩대들에는 다닥다닥 당콩들이 매달렸는데 꼬투리들이 벌써 말라가고있었다. 둬정보 잘되는 부업지에서 농사작황은 흐뭇했지만 꼴사나운것은 이것저것 겨끔내기로 올망졸망 심어놓은것이였다.
눈치무딘 국림이 무슨 말이 떨어질가 옴찔옴찔해있는 만수의 속을 모르고 물었다.
《공장밭인데 왜 작물배치가 이렇게 무질서합니까? 같은 곡종은 한데 몰지 않고. 뙈기별 작황은 좋아보여두 로력도 그렇고 총수확도 손해를 보겠는데.》
만수가 민망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있는데 부업지를 둘러보는 류인석의 눈길이 서느러워졌다.
《이건 공장밭이요, 개인밭이요?》
만수는 시당일군에게 망측스러운 집안꼴을 보인것으로 얼굴이 주독오른 사람처럼 뻘개가지고 어쩔바를 몰라하고 국림은 그제야 사연을 알아차리고 입을 딱 벌렸다.
시당일군의 물음에 머리를 푹 수그리고 서있는 만수와 꼴사나운 부업밭전경을 둘러보던 국림은 드디여 결심이 선듯 시당비서를 향해 차렷자세로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사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인석이 고개를 약간 끄덕이자 국림은 만수에게 지시를 주었다.
《책임기사동무, 여기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전체 종업원들을 20분내로 공장마당에 집합시키시오.》
만수는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돌아갔다. 꺽두룩한 허리를 꺼꺼부정해가지고 돌아가는 그 모습을 이윽히 지켜보던 인석이 옆에 서있는 국림에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제살궁리밖에 모르는 남남으로 될수 있소. 우리한테 제일 무서운게 바로 이거요, 이거.》
사람들을 내려보내고나서 헐떡거리며 다가온 만수는 엄하게 쏘아보는 류인석의 눈길앞에서 굳어졌다. 어지고 정기없는 두눈이 눈동자를 어디다 건사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공장부업지를 저렇게 갈라놓은게 동무요?》
인석의 목소리는 무척 낮고 갈려있었다.
《말해보오. 왜 그렇게 했소? 누가 시켰소?》
만수는 모든것을 체념해버린듯 길다란 두팔을 축 늘어뜨리고 말을 못했다.
《동문 집단에 대해서 생각해봤소? 집단주의원칙 말이요. 일군들이 이걸 줴버리면 군중이 바로 이렇게 되고마오. 그래서 당에서는 일군들이 죽어도 원칙만은 베고 죽으라고 하는거요.》
만수는 가슴이 뜨끔했다가 얼어드는것처럼 써늘해졌다.
《내려갑시다.》
세사람이 나란히 내려가는데 만수는 죄를 짓고 끌려가는 주제에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꾸 뒤로 둬발자국 떨어지군 했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발이 걸채여 넘어질번 한것을 국림이 든든한 손으로 잡아 부축해주었다. 망신이라구야.
그런데 이번에는 돌개바람이 홱 불면서 눈에 티검불이 들어배겼다. 눈을 깜짝깜짝하며 아무리 애써도 빌어먹을 놈의 티검불이 나와주질 않았다.
《왜, 눈에 뭐이 들어갔소?》
국림이 올려다보며 묻자 만수는 《예, 아니, 그저.》 하고 얼버무렸다.
《보기요.》
만수는 허겁지겁 손을 내저었다. 그러거나말거나 국림은 제잡담 손을 올리뻗쳐 만수의 목을 끄당겼다.
《이런 제길, 고개를 더 숙이오. 어느쪽이요? 왼쪽? 오른쪽?》 그리고는 눈까풀을 뒤집고 혀를 가져다댔다.
《아, 아니 어쩌자구?》
《가만있소. 눈에 티는 이렇게 해야 나오는 법이요.》
긴 허리는 물론 무릎까지 꺼부정하게 구부린 만수의 눈을 발뒤축을 바싹 추켜든 국림이가 혀로 한번 핥고는 퉤! 침을 뱉고 또 한번 핥고는 퉤! 침을 뱉았다.
인석은 무랍이 없는 국림의 그 행동과 어쩔바를 몰라 허둥거리는 만수의 모습을 생각깊이 지켜보았다. 외모는 물론 성격과 행동이 판이하게 대조되는 저 두사람이 이제 공장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당분간은 국림의 넓고 든든한 어깨에 모든 짐이 다 실릴것이다.
(제대군관, 공장을 복구하려면 사람부터 복구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회주의인간본태를 다시 찾을 때 죽어버린 이 공장이 살아난다는것을 명심하라. 명심하라! 그래서 군관출신의 동무를 여기에 파견한것이다, 여기에…)
《나왔소?》
또 한번 침을 뱉고나서 국림이 묻자 만수는 《예― 빠진것 같기두…》 하며 눈을 껌적껌적했다. 그러자 국림은 답답한지 증을 냈다.
《그건 빠졌다는 소리요? 안빠졌다는 소리요? 〈예, 예.〉 하는 소리만 듣구 어디 알수가 있나, 다시 보기요.》
국림이 짧은 팔을 또 올려뻗치며 목을 끄당기려 하자 만수는 뒤로 닁큼 물러섰다.
《아, 됐다는데.》 그러다가 자기를 생각깊은 눈으로 지켜보는 인석의 눈길과 마주치자 면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꿍얼거렸다.
《그놈의 흙먼지가…》
인석은 빙긋 웃었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날리는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말이요, 바람이 암만 불어두 바다는 흩날리지 않소. 그건 왜 그렇소?》
만수는 인석이 무슨 뜻으로 묻는지 몰라 어진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다가 대답을 기다리는 인석의 진지한 표정을 마주하게 되자 중얼중얼 대답했다.
《그건 액체에 겉면켕길힘이라는게 있는데 그게 뭐나면… 이건 물리학에 나오는건데…》
국림이 제사 답답한지 끼여들었다.
《아, 거 물리구 화학이구 있소? 물은 커두 한덩어리구 작아두 한덩어리기때문에 그렇겠지. 비서동지, 우리 군대때 그런 수수께끼가 있었습니다, 바다물이 모두 몇방울인가 하는.》
인석은 재미있다는듯 눈을 번쩍했다.
《그래, 몇방울이요? 책임기사동무.》
만수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건 한방울을 얼마나 크게 보는가 하는건데 바다물의 총용적을 매 방울의 용적으로 나누면…》
국림이 만수의 대답을 또 가로챘다.
《틀렸소, 책임기사동무. 아, 나누기구 곱하기구 있는가? 바다물이야 바다만 한 물방울 하나지! 커두 한덩어리, 작아두 한덩어리라구 금방 말해주기까지 했는데. 비서동지, 전탕 이렇습니다. 쪼물짝하게 재구 나누구.》
인석은 호탕하게 웃었다.
《비서동무말이 옳소. 커두 작아두 한덩어리가 되시오. 저 부업지처럼 재구 나누구 하지 말고.》
만수는 그제서야 시당비서가 어째서 흙먼지요, 바다요 하는 이야기를 꺼냈는지 깨달았다. 커도 한덩어리, 작아도 한덩어리… 의미심장한 그 말을 국림도 곱씹어 새겨보았다.
《그런데 왜 청년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고난의 행군이 끝나면 창고문을 열겠다는 친구를 좀 만나야겠는데.》
국림의 물음에 인석도 그제야 생각났는지 만수를 돌아보았다.
《예, 저 뽈차러…》
로동행정규률이 없다고 시당일군이 또 못마땅해하고 덩달아 초급당비서가 군대의 강한 규률을 떠들면서 《전탕!》 할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국림은 반색했다.
《축구? 어디하구?》
그건 만수도 모른다. 매일같이 뽈망태기를 자전거바구니에 처싣고 우르르 밀려다니는 녀석들이 오늘 어디하구 붙었댔는지는 저녁에 와서 왁작 떠들어야 알판이다.
《공장팀이 <원정경기>나갔는데 책임기사가 모른단 말이요? 젠장.》
(또 《전탕!》하겠지?)
아닐세라 국림은 《전탕 이렇군.》 하고 말꼬리를 붙였다.
(글쎄 그럴테지.) 만수는 제 추측이 맞아떨어진것이 내심 기쁜듯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청년들이 역시 청년들이구만. 이 어려운 때에 축구경기를 하구. 공장이 돌아 못 간다구 죽은건 아니다, 이거겠지?》
국림의 말에 류인석이 무슨 말인지 하려다가 그만두고 묻는듯 한 눈길로 만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 눈길과 마주치게 되자 만수는 또 가슴이 조여들었다. 《공장의 죽지 않은 기개를 떨친》다고 새 초급당비서가 바싹 대견해하는 그 패거리들이 이제 밀려들어오면 아무 말이나 막 늘어놓을것이다. 이제 그 녀석들까지 이 만수에게 욕벌이를 시키겠지?…
국림은 공장마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탕!》을 련발하며 익살과 해학이 섞인 욕을 퍼부은 다음 부업지의 모든 수확물을 공장의 공동소유로 선포해버렸다.
시간이 흘러 시당비서도 떠나가고 새 초급당비서의 조치를 지지한 사람들도, 턱자없는 엎어말이에 두덜거리던 사람들도 다 흩어져간 다음 《원정경기》갔던 공장축구팀이 정문으로 몰려왔다. 저들끼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접수실에 앉아있는 만수와 국림의 귀에도 들려와 만수는 가슴이 조여들었다.
젊은것들은 접수실안은 들여다보지도 않고 웃고 떠들며 밀려가는 재미에 노상 기다려주군 하는 공장처녀들에게 말소나기를 퍼부었다.
《공장에서 <농업협동화>를 했다면서?》
《<세기적전변>이 일어났대?》
소문두 참, 벌써 어디서 얻어들은 모양이다.
《여 운호, 네가 잘 안다는 그 방송기자 있잖아. 여기 와서 취재하구 <석개울의 새봄>같은거 하나 쓰라구 하는게 어때? 새루 온 초급당비서를 김창혁이라구 하고 말이야.》
《여여, 창혁인 관리위원장이야. 조합비서는 곽봉기지 뭐.》
《그럼 누가 창혁이 되게? 책임기사?》
《<만만수>가 협동화를 해? 조합이 물렁팥죽 되자구?》
그 소란스러운 웃음소리, 말소리속에서 운호가 활기있게 소리쳤다.
《새루 온 초급당비서 키가 책임기사 두제곱뿌리밖에 안된다는게 사실이야?》
망할 녀석들, 버르장머리란. 만수가 어처구니없고 창피스러워서 입을 쩝쩝 다시는데 접수실문이 벌컥 열리며 그 버르장머리없는 녀석들중 하나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 책임기사동지 여기 계셨구만요. 초급당비서동지 새루 와서 이젠 <공장접수원> 면제된줄 알았는데요? 래일부턴 우리하구 뽈차러 다니자요, 고문으로 모실테니.》
밖에서 한 녀석이 호응했다.
《위신이 부쩍 올라갈거예요. 우린 지는 법이 없으니까. 오늘두 장공장하구 붙어서 3 대 0…》
그 말에 저쪽에 앉아있던 국림이 반색하며 튕겨일어섰다.
《3 대 0? 그러니까 이겼다는거겠소? 이 친구들 괜찮은데!》 그리고는 문밖으로 나가 젊은패들에게 소리쳤다.
《새루 온 초급당비서요. 뭐, 내 키가 책임기사 두제곱뿌리? 절반두 못된다는거요?》
와- 웃음이 터지는데 운호가 제꺽 말을 받았다.
《절반은 훨씬 넘습니다. 둘의 절반은 하나지만 두제곱뿌리는 1. 414란 말입니다. 70프로두 넘는데 뭘 그럽니까?》
국림은 두눈을 껌뻑껌뻑하다가 뒤따라 접수실에서 나온 만수를 돌아보았다. 그때 접수실에 머리를 들이밀었던 청년이 짐짓 정중히 두손으로 책임기사를 개여올렸다.
《우리 책임기사동지 키 70프로면 작지 않은 키입니다.》
그 말에 국림은 꺽두룩한 책임기사를 올리훑고 내리훑고 하다가 《하긴 그렇군. 책임기사동무 키가 두메터는 잘 되겠고. 거기에 70프로라면야 정 작진 않지.》 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만수가 어처구니없어 허허 웃고말았다.
꾀동이같은 녀석들이라구야. 70프로라는 수자가 굉장한것 같애도 2메터의 70프로라야 1. 4메터밖에 안된다. 한메터반도 못되는 수자인줄도 모르고 70프로라는 말에 깜찍하게 속아넘어간 국림이가 우스웠다.
《그래 친구들, 나두 뽈차는걸 좋아하는데 공장팀에 좀 받아주지 않겠나?》
젊은패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초급당비서가 축구팀에 가담한다? 미심쩍은 눈길들이 저들끼리 오고갔다.
《왜 그러오? 내 이래뵈두 부대축구팀 최종방어수였소.》
수군수군거리다가 한마디씩 튀여나왔다.
《입직인사부터 해야지 맨입엔 접수 안합니다.》
국림은 만족스럽게 껄껄 웃었다.
《좋소, 하겠소!》
그러는 초급당비서를 보며 만수는 후- 하고 숨을 내쉬였다. 오늘은 모든것이 마른 북어짝 두드리듯 죽신히 두들겨맞을 일들이였는데 다행히도 자기가 야단맞은것은 없다. 새로 온 초급당비서가 덜렁덜렁하고 대범한 사람같아보였다. 하긴 그러니까 몸도 났을테지.
안도감이 휘도는것과 함께 어쩐지 다리맥이 매시시 풀리고 온몸이 나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