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4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침침하게 흐렸다. 그래서인지 세멘트공장 지배인 윤권민을 찾아가는 해심의 마음과 걸음도 몹시 무거웠다. 하긴 쾌청한 날씨였대도 마음이 가벼울수는 없었을것이다.
《있다 저녁에 집으루 가렴. 큰아버지두 일이 바쁘실텐데 하필 공장에 가서 만나겠다고 그러니?》
해심은 대답대신 어머니를 멍하니 마주보기만 했다. 피차 괴롭고 아픈 눈길들이 마주쳤다. 그토록 다감하고 정깊은 아버지를 잃은 후 몇달사이에 어머니는 무척 늙었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더듬느라니 해심에게는 아버지를 잃은 자식의 슬픔보다 남편을 잃은 녀인의 슬픔이 몇배로 더 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심은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그래두 왔다는 인사야 해야지 않겠나요.》
그러나 말소리는 입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에서만 맴돌았다. 해심은 얼른 돌아서 문밖으로 나왔다. 조금만 더 있으면 눈물이 쏟아져나올것만 같았던것이다.
초연히 걸음을 옮기는 해심의 눈앞으로 세멘트공장의 연기내뿜는 굴뚝과 함께 지배인 윤권민의 체구크고 헌헌한 모습이 안겨왔다. 극심한 고난속에서도 힘차게 돌아가는 공장은 시안에 저 세멘트공장 하나뿐이라고 한다.
굳세고 강의한 큰아버지. 사랑하는 외아들인 윤철오빠를 땅에 묻은 그 다음날에도 분연히 석회석광산으로 떠났다고 했지. 그 모든 슬픔을 남자답게, 지배인답게 묵새기며 원료수송대를 이끌었다고 했다.
공장이 가까와올수록 해심은 점점 발걸음을 내짚기가 서슴어졌다. 작년 여름방학때 집으로 찾아갔던 일이 떠올랐다.
《오, 우리 해심이가 왔구나. 이런! 다 큰 처녀가 됐는걸, 음? 미술대학에 가는 철이 손목을 잡구 평양제1고등중학교로 떠나던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종합대학졸업반이라. 세월두 참, 음?》
윤철오빠는 어려서부터 그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들이 아버지가 쏟아내는 세멘트를 훌륭한 건축물로 이 땅에 영원히 남기는 건축가가 되기를 바란 큰아버지는 건축가에게는 미술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윤철은 아버지의 뜻대로 건축가가 아니라 미술가의 길을 그대로 달음박질쳤다. 주로를 바꿀 때가 되였는데도 여전히 한주로를 내달리는 아들을 못마땅해하는 권민에게 진영일이 장담했다.
《형님두 참, 세멘트공장지배인 아들이 꼭 건축가가 돼야 만점이라는 법이 어디 있소? 난 철이가 그린 그림을 노상 조타실에 붙여놓구있소. 장담하오만 철인 이제 〈강선의 저녁노을〉같은걸 그려낼거요!》
해심의 아버지 진영일은 맏처남의 아들인 윤철이의 재능을 제일 믿고 지지해주었다. 지난 겨울 그 비극의 날도 영일은 윤철의 새 작품창작을 도와주려고 함께 바다길에 나섰던것이다.
(그 광란하는 바다에서 오빠는 무엇을 그리려고 했을가?)
다섯해전 처녀작 《만선의 배길에 불타는 저녁노을》의 성공을 축하해서 자기가 꽃묶음을 주었을 때 오빠는 이제부터 자기 창작의 총적주제는 《시대와 인간》이라고 하였다.
《문학작품에 총서가 있는것처럼 내 회화작품들도 하나의 총서에 묶어놓자는거야!》
아들의 성공작이 늘어갈수록 권민은 내심 흐뭇해했다.
《그러기 내 뭐랍디까? 철인 미술수재요. 인민예술가감이지요!》 해심이 아버지가 호기있게 소리치면 권민은 만족스럽게 껄껄 웃군 했다.
해심의 발걸음은 점점 떠졌다. 그토록 전도가 촉망되던 윤철오빠와 그의 수재를 열심히 주장해온 자기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고 자기는 지금…
해심이가 권민을 만난것은 공장정문에서였다. 세멘트를 만재하고 금방 떠나려고 차체를 부르르 떨고있는 대형화물자동차곁에서 권민은 어떤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걸스러운 웃음을 웃고있었다.
《세멘트는 걱정말라구. 암만 고난의 행군이라두, 음? 류진세멘트는 멎지 않아, 음! 아빠트면 아빠트, 공장이면 공장, 쭉쭉 뽑아올리라구, 음!》
그 헌헌한 모습을 보는 순간 해심은 왈칵 눈물이 났다. 자동차를 떠나보내고나서 그를 발견한 권민은 놀라며 그 자리에 섰다.
《해심아!》
참고참았던 울음이 끝내 터지고야말았다. 흐느껴우는 조카딸을 사무실에 데리고 들어온 권민은 해심이가 아주 내려왔다는것을 알자 처음에는 놀랍게, 그다음은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하긴 해남이두 군대에 나갔으니 너라두 곁에 있으면 어머니한테야 좀 낫겠지, 음―》
해심은 눈물을 닦으며 권민을 올려다보다가 자기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눈길과 마주치자 거짓말을 하다가 들킨것처럼 당황해졌다. 자기가 가정사정으로 박사원진급을 포기한다고 말했을 때 현숙이가 그런 눈길로 찬찬히 살펴보던것이 불쑥 생각났다.
그렇다. 나는 지금 방황하고있다. 내 인생은 목표를 잃었다. 내가 과학연구의 길을 포기한것이 정말 가정사정이란 말인가?
《과학기술은 투자없이 발전 못한다는거 너두 알지?》 그 상급생의 말이 대학 5년간 꾸어오던 해심의 꿈을 단박에 흔들어놓고말았다.
뛰여난 재능과 쉽지 않은 정열을 소유한 그 처녀연구사가 여러해동안 걸은 연구의 과정을 잘 알고있는 해심으로서는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떠나가버린 그 심정이 리해되였다.
꿈과 현실과의 차이. 과학연구자금은 둘째치고라도 연구사들의 식량마저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하는 이 어려운 현실속에서 해심은 앞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거기에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 불행…
박사원진급을 포기하는 리유를 가정사정에 둘러댈 때 스승들과 동무들은 해심의 마음속 동요와 방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리해와 동정을 표시했다.
자기들이 도와줄수 없는것을 두고 안타까와하는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진심을 터놓지 않은 자신이 죄스러
웠다. 그런데 현숙이와 권민은 해심이―자기의 마음을 다 꿰뚫어본것이 아닐가?
《하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건 상관없다, 음? 문제는 구실을 하는거지, 음.》
권민은 혼자말하듯 뇌이다가 어디에 배치받았는가고 물었다. 래일 시에 가서 담화하고 배치받아야 한다고 하자 《잘됐다. 그럼 우리 공장에 오너라. 너같은 분석화학전문가가 할 일이 있다.》 하고는 전화로 공장책임기사를 불렀다.
《이제 우리 책임기사하구 공장을 돌아봐라, 음.》
권민의 방 옆벽에는 지난해 공장창립 25돐을 맞으며 윤철이가 그린 그림이 걸려있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로 그린 소성로의 굴뚝이 화폭의 중심을 차지하고 힘있게 뻗어올라있었다. 가없이 푸른 하늘이 펼쳐진 한켠구석에서 음산한 구름이 몰려오다가 공장굴뚝에서 기운차게 뿜어나가는 연기에 밀려나고있었다.
《류진세멘트공장의 동음》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봉쇄와 압살의 검은구름을 생산적앙양으로 밀어내는 세멘트공장 로동계급의 투쟁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보여주고있었다. 제목그대로 그림에서는 공장의 우렁찬 동음이 그대로 울려나오는것만 같았다.
해심이 아버지가 그렇게 칭찬했고 권민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준 제일 큰 선물이라고 아주 만족해하였다는 그 그림을 해심은 오늘 처음 보았다. 확실히 오빠의 화필은 그자신의 생김새나 성미와는 달리 기백있고 힘찼으며 활달했다. 혹시 그것이 그 안속에 내재되여있는 윤철오빠성격의 본질이였는지도 모른다.
해심이가 그림을 들여다보고있는 동안에 책임기사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이가 서른살가량 되여보이는 젊은 사람인데 말쑥하고 얌전해보이는것이 동음 우렁차고 어디나 열기가 확확 내뿜는 이 공장에 잘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자기 조카라는 말은 하지 않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분석화학전문가인데 공장분석실에 받아들일 결심이라는 지배인의 말을 듣고난 그 사람은 대뜸 《손잡고 잘해봅시다.》라고 말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시원시원한것 같기도 했다.
거대한 심장이 울부짖는것처럼 송풍기동음이 요란한 소성로와 불덩어리가 되여 쏟아지는 크링카덩어리들은 장쾌한 넋이 되여 처녀의 가슴을 두드렸다. 어쩐지 힘이 솟구치고 나약스러운 모든것이 순간에 날려가버리는것 같았다.
공장의 생산공정들을 돌아보면서 약동하는 그 숨결에 심취된 해심에게 책임기사는 《공장은 힘차게 돌아가고있지만 기술공정은 몹시 낡았소. 빨리 갱신해야겠는데 잘한다, 잘한다 하는 바람에 당면생산밖에 보질 않고있소.》 하고 말했다.
해심은 그 말이 몹시 거슬렸다. 공장이 낡았다는 말이 지배인이 낡았다는 소리같이 들렸던것이다. 큰아버지는 국가발명권을 세개나 받은 발명가지배인이다. 더우기 세멘트공장은 26년전 도시건설사업소 책임기사였던 큰아버지가 자력갱생의 기발을 휘날리며 앞장서서 일떠세운 공장이다. 첫 크링카를 구워낸 바로 그날에 윤철오빠가 태여났다. 그래서 공장은 큰아버지한테 아들이나 같다. 그런데 지배인의 오른팔인 책임기사가 어쩐지 공장운영에서 자기 지배인과 의견을 달리하고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을 다 돌아본 다음 정문까지 바래주면서 권민은 공장초급당비서가 지금 시당에 회의갔는데 오면 배치문제를 토의하겠다고 하였다.
《저녁에 집에 오겠니?》
해심은 고개를 숙이며 힘들게 대답했다.
《배치받은 담에 가겠어요.》
《그건 좋을대로 해라, 음.》
바래주는 권민의 얼굴은 무척 쓸쓸했다. 굳세고 대범하던 모습이 사라지고 이상할 정도로 쇠잔해보였다.
해심이가 얼마쯤 걸어와서 뒤돌아보니 권민은 정문가에 그냥 섰는데 눈길은 어딘가 허공을 바라보고있었다. 사랑하는 외아들을 목메여 불러보고있을것이다.
해심이 역시 아픈 가슴을 누르며 피여오르는 눈물속에 걸음을 옮겼다.
오빠, 윤철오빠―
그러나 다음날 처녀는 인생의 좌표를 단호히 점찍었다. 세멘트공장이 아니라 바다로 갈것을 결심했던것이다.
…일은 이렇게 되였다. 아침에 시당에 들어가던 해심은 청사복도에서 자기를 보자 흠칫 놀라며 멈춰서는 사람과 마주치게 되였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머리가 희슥희슥한 그 사람은 처녀를 찬찬히 뜯어보다가 물었다.
《대학생동무, 혹시 진영일선장의 딸이 아니요?》
자기 아버지보다는 나이가 좀 많아보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수 없어 해심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처녀의 두팔을 덥석 쥐였다.
《옳구나! 너 해심이지?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 눈 큰거랑 키가 쭉 빠진것까지. 어떻게 왔니? 종합대학을 다닌다구 영일이 늘 자랑하더니 졸업한게 아니냐?》
자기 소개는 하지 않고 무작정 반가움만 퍼붓는 그 사람에게 누구인가고 묻기도 무안해서 해심은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했다. 담화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은 아직 시간이 있다고 하면서 복도끝에 있는 대기실로 데려갔다.
《난 네 아버지 총각때부터 10년동안 같이 일했다. 그래 어디 가고싶으냐? 바다에 가야지? 너네 아버진 시에도 제기했댔다. 어려울 때일수록 앞을 내다보면서 바다자원을 늘여야겠는데 망탕 뜯어먹을 내기만 하는걸 막아야 한다구. 그러다 후대들에게 텅빈 바다를 물려주겠는가고 했다. 그런 사람이니까 양식자재가 파도에 떠밀려나가는걸 보구 누구도 시킨 사람이 없었지만 서슴없이 뛰여들었던거지.》
그 말에 해심은 목이 꽉 메고 울음이 북받쳤다. 한생 바다를 주름잡았고 바다에 목숨까지 바친 아버지와 그토록 바다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윤철오빠 생각에 가슴이 미여져왔다. 입술을 꼭 깨문 처녀의 눈이 젖어드는것을 보았는지 그 사람은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갔다.
《진영일동무는 용감하고 심지가 바른 사람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구 바다에 진출한 그 또래 청년들가운데서 제일 먼저 입당하구 총각때 벌써 큰 배 선장이 됐지. 그렇게 용감하구 대바르구 경험많은 선장은 쉽지 않아. 아까운 수산일군과 재능있는 화가를 잃었다.…》
아, 바다! 저 바다에는 우리 아버지의 한생이 담겨있고 윤철오빠의 꿈과 재능이 묻혀있다. 해심은 불길처럼 타번지는 아버지의 눈길과 녀자처럼 곱게 쌍까풀진 윤철오빠의 두눈이 그 시각 자기를 간절히 지켜보는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가. 후대들에게 물려줄 바다, 바로 우리들에게, 해양과학자가 될 이 딸과 용감한 어로공이 될 아들 해남이에게 물려줄 풍요한 바다를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그래서 그 바다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요하고 힘차게 그리고싶어하는 윤철오빠를 남달리 사랑한것이다. 문득 어제 세멘트공장에 가서 본 크링카불덩어리들이 소성로에서 그대로 자기가슴에 쏟아지는것만 같았다.
그 순간 처녀는 깨달았다.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바다를 사랑하자, 바다에 목숨을 묻은 아버지와 윤철오빠가 바란대로 바다를 가꾸는데 내 한생을 깡그리 바치리라!
누구인지는 알수 없으나 아버지의 뜻 높았던 인생을 뜨겁게 추억해준 아버지의 친구에게 해심은 말했다.
《바다에 가겠어요. 아버지의 마지막숨결이 깃들어있는 저 풀섬양식장에 가겠어요. 전 양식전문가가 아니니까 거기에 배치해주지 않을수도 있는데 가서 제 몫을 꼭 찾겠으니 좀 도와주세요.》
해심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제 더 입을 열면 또다시 울음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 사람은 처녀의 어깨를 쓰다듬어주며 말
했다.
《그래, 도와줄거다, 당에서. 이제 담화할 때 네 마음을 다 이야기해라. 당에선 그걸 귀중히 여겨줄거다.》
―당에서!
당에서 아버지의 열렬한 바다사랑과 그것을 이으려는 자기의 소망을 귀중히 여겨줄것이라는 그 말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진정되고 큰 산이 들어앉은것처럼 든든해졌다.
그 사람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시간이 됐구나. 우린 이제부터 자주 만나게 될거다.》하면서 먼저 대기실에서 나갔다.
간부부장과의 담화는 오래 걸렸다. 해심이가 방에 들어서는데 부장은 누구와 전화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그런 동무라면 알겠소.》 이렇게 말하며 전화를 마친 부장은 아버지에 대한 어린시절의 추억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것을 물어보았다. 해심은 눈물을 삼켜가며 이야기했다. 처녀의 말을 다 듣고나서 부장은 말했다.
《동무를 꼭 보내달라구 바다가양식사업소 초급당비서동무가 제기해왔소. 동무의 결심도 좋은데 어려운 곳이요. 곧 찾겠으니 다시 만납시다.》
해심은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이 모든것을 다 이야기하고나서 물었다.
《양식사업소 초급당비서동지는 누구예요? 내가 졸업하구 온걸 어떻게 알구 벌써 제기했을가요?》
어머니는 며칠전에 그곳 지배인, 초급당비서가 다 새로 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초급당비서는 김천영이라구 이전에 아버지네 선단부문당비서를 하던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다.》
해심은 어릴 때 아버지가 작풍상문제로 처벌을 받았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럼 그 부문당비서가?…
며칠후 해심은 류진바다가양식사업소 양식기사로 파견장을 받았다.
《진해심동무, 아버지처럼 조국의 바다를 목숨바쳐 사랑하는 참된 애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파견장. 갈래많은 인생길을 헛돌지 말고 곧추 가라고 어머니당이 세워주는 리정표가 아닌지… 엄숙한 심정으로 파견장을 받아쥔 해심은 어쩐지 자기가 이 길을 처음부터 선택한듯싶었고 비로소 사람들앞에, 고향앞에 그리고 아버지와 윤철오빠가 목숨을 바친 바다앞에 떳떳해지는것만 같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바다가양식사업소를 찾아가니 사업소정문에 며칠전에 만났던 아버지친구와 30대의 젊은 사람이 나와있었다.
《왔구나! 우리 해심이가 왔어. 기다렸다. 인사해라, 이분은 지배인이고 난 여기 초급당비서다.》
해심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못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덤비던 시절의 아버지에게 신발을 바로 신겨주었고 오늘은 자기를 손잡아 바다로 이끌어온 당비서와 자기 가정사이의 이 불가사의한 인연은 어쩌면 필연적인것인지도 모른다.
해심이 아버지를 잘 알고있는 사업소의 모든 사람들이 해심이가 양식사업소에 온것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게 한다음 초급당비서 김천영은 해심이에게 풀섬에 건너가보자고 하였다.
풀섬! 해심은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아버지와 윤철오빠가 희생된 그 섬을 해심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10년전 평양제1고등중학교를 다닐 때 방학을 왔다가 바다가양식면적을 10만정보로 확대할데 대한 당의 방침을 받들고 그 수역에 양식장을 새로 개척하느라고 시적인 지원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을뿐이다.
사업소잔교에는 이미 자그마한 잠수작업용발동선이 떠날 준비를 하고있었다. 일행은 해심이와 초급당비서외에 사업소청년동맹비서(당시)인 송은향이라는 처녀와 조철국이라는 해병출신의 작업반장이였다.
배가 점점 섬에 다가들수록 해심은 오한이 나듯 온몸이 떨려났다. 배전을 치는 파도도 살아있는 아버지의 억센 숨결같았고 저 섬의 어느 바위에서인가 화판을 펼쳐놓은 윤철오빠가 그림그리기에 여념이 없다가 불쑥 나타난 자기들을 놀랍게 쳐다볼것만 같았다.
해심은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누르며 떨리는 다리로 겨우 배전을 내려 섬에 올랐다. 그러나 몇걸음 올라 섬을 둘러보던 해심은 순식간에 가슴이 싸늘해졌다. 섬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던것이다. 양식장이라는것은 섬수역에서 흔적도 찾아볼수 없었고 섬에는 해방전에 림시로 썼다는 낡은 등대탑이 유럽영화에 나오는 옛 성새유적처럼 묵묵히 서있었다. 번창하던 시기에 양식장을 확대하며 풀섬수역을 개척하던 청년양식작업반의 목조건물은 고삭아서 쓰러져있었고 물러앉은 지붕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인간의 자취와 흔적이란 력사유적처럼 퇴색과 망각의 지층에 묻혀있는 섬 무인도!
《여긴 양식자재가 보장되지 않아 몇년동안 내버려두고있었어. 올해초에 시에서 어쩌다 해결해준 양식자재두 바다에 처박고
얼마 건지지 못했고…》
가슴아픈 눈길로 섬의 정경을 둘러보는 해심에게 은향이가 죄스러운지 말끝을 사리며 속삭였다.
아무리 그런들 이렇게도?
파도에 떠밀려가는 그 양식자재때문에 솔섬으로 건너가던 아버지와 윤철오빠가 전마선을 돌려 여기에 뛰여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러면 그 희생은 아무런 가치도 보람도 없는 허무한것이였단 말인가? 야속하고 분하고 가슴 한구석이 허물어져내리는 강한 허무감에 해심은 눈물이 쿡 솟았다.
그때 이 모든 감정의 분출을 꾹 눌러버리듯 천영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우린 여기를 무조건 살려야 하오. 주저앉아버린다면 여기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령혼과 이 바다를 물려받을 후대들이 우리를 용서치 않을거요!》
해심은 당비서의 눈빛이 단호해지고 희슥한 머리카락이 바다바람에 근엄하게 나붓기는것을 보며 다음말을 기다렸다.
《청년양식반을 다시 조직하겠소. 동무들이 청년반의 핵심이 돼야겠기때문에 이렇게 같이 오자고 했던거요. 청년비서하구 철국동무는 더 말하지 않아두 아는거구. 해심동무, 동무의 아버지 진영일선장은 청년들의 기수였고 홰불이였소. 그 기발이 여기서 다시 날리고 그 홰불이 이 섬에 다시 타올라야 하오.》
파도가 그 누구를 부르듯, 그 무엇을 웨치듯 의미심장하게 철썩였다.
해심은 대답했다. 파도의 그 부름에, 그 웨침에. 마음속으로만 웨쳤는지도 모르나 분명히 심장으로 화답했다.
돌아오는 배길에 노을이 유난히도 빨갛게 탔다. 윤철의 처녀작 《만선의 배길에 불타는 저녁노을》에서처럼 그토록 유정하게 노을이 불탔다. 한생을 바다에 바친 아버지의 심장이, 스물여섯해밖에 고동치지 못한 윤철오빠의 심장이 하늘에, 바다에 통채로 물들여진것이라고 처녀는 생각했다.
해심은 섬에서 돌아와 오늘 저녁에야 비로소 큰집에 갔다.
《생각 잘했다. 그 길로 가는게 옳지, 음.》 권민이 머리를 끄덕였다.
해심은 지난 겨울 윤철이가 화판과 함께 가지고나갔던 습작화첩을 떨리는 손으로 한장한장 펼쳤다. 거기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파도를 그린것들이였다. 산처럼 멀기를 쳐든 파도를 정면에서 그린것들도 있고 해당화 만발한 기슭에 하얗게 흩어지는 파도도 있었다. 금방 덮씌울듯 일떠선 파도뒤에 그의 련속성을 암시하듯 무연한 바다를 밭처럼 이랑지으며 줄줄이 따라서는 다음파도들을 사선부감구도로 그린것도 있었고.
그러고보면 오빠가 준비하고있던 새 작품은 분명히 파도였다. 그래서 파도높은 날에 솔섬으로 건너가려고 했고 그의 창작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은 아버지는 그것을 도우려고 함께 바다길에 나섰을것이다. 만약 풀섬기슭에 되는대로 무져놓았던 귀중한 양식자재들이 높아지기 시작한 파도에 떠밀려내려가는것을 발견하고 배를 거기로 돌리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무사히 솔섬에 올랐을것이고 지금쯤은 윤철의 새 작품이 미술박물관에 걸려있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어떤 파도를 그리려고 했을가? 어떤 파도를…
파도, 바다의 상징인 파도―
해심은 어째서인지 그 해답을 찾아내는것이 운명적인 의의라도 있는듯이 여겨져 파도를 여러가지로 그려본 습작품들을 다시 한장한장 뜯어보다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그린게 어느거나요?》
그 마지막그림은 거기에 없었다. 이미 완성하여 2. 16경축 시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제출했던것을 더 손댈것이 있다면서 그날 찾아가지고 나갔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희생되였다. 그런데 그 미완성품은 윤철의 친구라면서 시방송위원회 기자가 찾아와 가져갔다는것이다.
오빠의 친구들가운데 방송기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는 해심은 의아해졌다.
《우리 공장에두 자주 다니는 기자인데 철이하구 그렇게 가까운 친구지간인줄은 몰랐댔다. 용감하고 량심적인 선장이 〈바다의 화가〉라구 불러준 윤철동무처럼 고향바다를 사랑하는 기자가 되겠다면서 그 그림을 자기가 일생 간직하면 안되겠는가구 하더라, 음―》
권민의 말에 해심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기 친구가 다 쏟아붓지 못한 바다에 대한 사랑을 그처럼 귀중히 간직해준 그 기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가?
《그 그림두 너네 아버지하고 창평도래굽이에 가서 그리는걸 봤다구 하더라.》
해심은 조용히 습작화첩을 덮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 기자만이 《시대와 인간》이라는 회화총서를 구상하던 윤철오빠가 그 파도작품에 어떤 인간상을 담으려 했는지 알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것이다.
(해심의 일기)
…
나는 이렇게 사연많은 바다에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디였다. 힘들것이다. 고생스러울것이고. 그러나 명백한것은 내가 쓰러질지언정 후회하지 않을것이라는 그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일기장아, 이제부터 나는 내가 짚는 자욱자욱을 너의 갈피에 빠짐없이 적어넣으련다.
현숙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평양에서부터 자기가 바란대로 도시설계사업소 설계원으로 파견장을 받아가지고 왔으니 벌써 자기의 리상 아니, 자기의 결심을 실현하기 위한 첫 설계에 달라붙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뒤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리는 성미니까. 그래두 한번 집에 들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