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7
문광은 잊을수 없는 이 도래굽이에 또다시 번민을 안고 나왔다. 눈보라치고 격랑이 솟구치던 그때와는 달리 바다는 너무나도 고요하다. 잔잔한 파도소리만 소연한 속에 세멘트공장 초급당비서 엄철수의 격노한 목소리가 지금 문광의 귀를 사정없이 때리고있었다.
《한심하구만! 난 동무의 기자자격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소. 그따위나 들고다니겠으면 다신 우리 공장에 얼씬 마오!》
내가 또 착오를 범하는것인가? 그때에도 그랬다.
《동무를 어떻게 당적안목을 가진 기자라고 말할수 있겠소?》
《문광동무는 우리 기자들이 필력에 앞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것을 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날의 대론쟁마당에서 사정없이 쏟아지던 비판의 소나기. 그러나 그때 아픈 매를 들었던 당조직은 그를 얼마나 아껴주었던가. 현직일군 재교육학습체계에 망라시켜 우리 당 경제정책을 더 잘 알고 더욱 철저히 무장하도록 한없이 고마운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과오를 범하는것이 아닌가?
사연깊은 이 바다가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싶었다. 진영일선장동지, 윤철동무, 내가 아직도 그때처럼 한심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눈앞에 웬일인지 해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심동무, 오늘 나는 동무가 그토록 잊지 못해하는 윤철동무가 사랑하던 세멘트공장의 크링카소성로를 없애는것이 옳다는 주장을 하려고 공장을 찾아갔댔습니다.…)
며칠전에 세멘트공장에서는 공장의 전망문제를 놓고 관리일군, 기술자들의 심중한 모임이 있었다. 그때 책임기사 운식은 원료와 연료를 힘들게 끌어다가 질도 높지 못하게 크링카를 구워낼것이 아니라 크링카 그자체를 들여다가 세멘트를 생산하는 방안을 내놓다가 엄철수의 호된 추궁을 받았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크링카는 세멘트의 기본원료요. 소성로는 세멘트공장의 심장이고. 심장이 없는 공장을 생각할수 있는가?
소성로개조, 소성공정의 합리화, 소성시간의 단축, 이런걸 생각해야지 없애버릴 생각을 하다니! 한심하구만. 걷어치우오! 앉소!》
그리고는 3백명이 넘는 전체 종업원들을 모여놓고 호소하였다. 누구나 생각하고 방도를 내놓으라, 다문 1원이라도 좋다, 세멘트원가를 낮추며 질을 개선할 방도를 누구나 찾자, 공장의 운명이자 우리모두의 운명이다! 하고.
그 소식을 전해듣고 문광은 초급당일군의 피끓는 열정에 감동은 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책임기사의 방안이 옳다고 여겼다. 변천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옳게 세운 기업전략, 경영전략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군들이 안타까와 찾아갔는데 결국은 지배인을 노엽히고 초급당비서를 격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는 그 소성로가 지배인동지에게는 살아있는 아들 윤철이고 스물일곱해전 청년돌격대를 뭇고 자력갱생의 기발을 휘날리며 소성로를 일떠세운 제대군인청년건설자 엄철수초급당비서동지에겐 인생의 크나큰 긍지이고 자랑이라는것을 잊었댔소.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고 갈래많은 생각들을 바로잡을수 없는 이 고민을 왜 동무한테 털어놓고싶은지 모르겠습니다. 해심동무는 어느새 기쁨과 괴로움을 나누고싶은 친근한 벗으로 내 마음속에 함께 살고있구만.)…
성미가 급하고 감때사나운 초급당비서에게 기자가 쫓겨나간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드리웠다.
《소성로를 없애다니? 동무도 윤철이의 저 소성로그림을 알지?》
무섭게 소리치는 엄철수앞에서 문광은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있다가 책상우에 올려놓았던 록음기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비서동지, 지배인동지, 노엽혔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오해하진 말아주십시오. 전 우리 세대를 위해서 바친 지배인동지와 비서동지 그리고 저 소성로의 지난 27년간 공적을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격분해서 펄펄 뛰던 철수는 거들떠보려고도 안했다.
권민은 가슴이 쓸쓸해졌다. 그렇게 죽을 기를 쓰며 소성로를 돌려왔는데 이렇게 끝장난단 말인가? 소성로를 세우면, 소성로를 버리면 무엇이 남는다고 그런 생각들을 한단 말인가. 어쩌면 사람들이 이럴수 있는가? 젊은것들이 몰라, 너무도 몰라!
한때는 자기도 그랬다. 앞사람들이 해놓은것을 사사건건이 따지고 비판하고 시비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 귀중한줄 모른다고 욕도 많이 먹고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욕하고 비판한 사람들이 제대군인건재공학기사를 절대로 주눅이 들게 하지는 않았다.
《개조하라, 혁신하라, 창조하라! 그러나 아무리 하찮아보여도 초행길을 걸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만은 알라.》
도시건설사업소의 옛 당비서가 자기에게 한 말이였다.
《너무 그러지 말라구, 젊은이. 전쟁을 이기구 복구를 하구 사회주의를 세우느라구 우린 자네보다 공부를 못했네. 잘 몰랐으니 잘못한것두 더러 있겠지. 그래두 너무 그러니 섭섭하구만. 아무렴, 우리가 허투루 살았을텐가?》
기존공법을 비판하는 그에게 그 공법의 창안자였던 나이많은 책임기사아바이가 이렇게 말하며 돌아앉아 독한 써레기담배를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사람이 아닌 그도 년로보장으로 넘어갈 때 자기의 후임으로 권민을 추천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기가 이런 처지에 빠진것이다. 《발명가지배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 자기가.
세월이란 이렇게도 무정하다. 발명가지배인, 그 발명 하나하나에 어떤 고심과 가슴터질것 같은 희열, 인생의 락이 있었던가. 그리고 거기엔 있다. 기술은 잘 몰라도 하겠다는 인간의 신념과 의지와 열정만은 뜨겁게 볼줄 아는 저 당비서의 불같은 인간미가.
공장건설의 돌격대장이였고 첫 소성반장이던 그가 당비서로 자기 공장에 돌아와 눈물까지 글썽해가지고 지배인이 된 이전 책임기사를 끌어안던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 당비서와 손잡고 어언 11년. 얼마나 많은 크링카를 구워냈던가.
실패. 어깨가 처지면 《실패는 무슨 실패란 말입니까? 성공으로 가는 길을 한걸음 더 내디딘거지. 백번 실패도 백걸음 전진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고무해주었고 원료난, 연료난으로 자기가 줄창 집떠나살던 지난 3년간 밤낮으로 소성로를 지켜섰다. 그렇게 살려왔고 그렇게 불을 끄지 않은 소성로이다. 그 11년동안에만도 공장의 생산능력은 세배나 늘어났다.
그러나…
물동을 끌어들이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질 때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몇날이나 유지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드문했다.
그러나 두해전 공장창립 25돐을 맞으며 아들 윤철이 저 소성로그림을 그려가지고는 정성껏 액틀까지 마련해서 벽에 걸어주며 공장의 멎어서지 않는 동음이 어려운 행군을 하는 시안의 인민들에게 힘을 주고있다고 말할 때 그 나약스러웠던 생각을 단호히 털어버렸다. 그래, 아들아, 장하다. 내 이 동음을 지켜도 억세게 지키마! 6천톤에서 만세를 부를것이 아니라 만톤, 2만톤… 이렇게 지켜낼테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자기에게 병문안을 왔던 책임기사가 공장의 생산방식을 바꾸자는 말을 내비쳤을 때 권민은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요. 내 좀 생각해보지, 음.》
그러나… 그밤 병원침대에서 뒤척거리는 그의 가슴은 아팠다. 철이, 그러니 소성로는 그 애보다 한살을 더 살고 죽는셈이다. 소성로를 없애면 그 소성로그림도 벽에서 떼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은 땅에 묻었으나 마음속에는 묻지 않은 아들을 진짜로 묻어버리는 일이다. 과연 살릴 방도가 없단 말인가?
권민은 침대를 차며 일어났다. 안돼, 절대로!
그러나 다음날 건설강재공장건설장에서 일어난 사고의 원인이 크링카에 있었다는 말을 들으며 권민은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다가 병원을 뛰쳐나와 차를 끌고 청진으로 향했다. 크링카의 질을 올리지 못한다면 급결첨가제를! 그렇게 해서라도 소성로를 죽어야 하는 운명에서 건져내고싶었다.
권민이 자식의 병이 불치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좋다는 약을 다 들이대보는 부모라면 엄철수는 불치라는 그 진단을 한사코 믿지 않는 또 한 부모였다. 그래서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머리를 젓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울분을 터뜨리는것이다.
무거운 침묵만이 뚜껑처럼 꽉 내리누르고있는 방안에 책임기사가 조용히 들어섰다.
《지배인동지, 마지막크링카를 출하하겠습니다. 오늘 크링카는 특별히… 잘… 구워졌습니다. 굽던중 제일…》 그리고는 뒤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서서 벽에 걸린 소성로그림을 눈을 슴벅거리며 올려다보았다.
권민과 철수의 눈길이 맞부딪쳤다. 괴롭게 떨리던 철수의 눈에서 불꽃이 튕겼다. 철수는 자리를 차고 일어서서 운식에게 소리쳤다.
《마지막크링카라는게 뭐요? 제일 잘 구워졌다구? 앞으론 그보다 더 잘 구워내야지!》 철수는 권민에게 돌아섰다.
《지배인동지, 내 시당에 좀 갔다오겠습니다.》
권민은 멀거니 창밖만 내다보았다.
《거기 가선 음? 그만두오.》
《그럼 이렇게 앉아만 있겠습니까?》
권민은 피를 토하는것처럼 한숨을 내쉬였다.
《죽어야 한다면 죽는거지.》
철수는 책상을 내리쳤다.
《왜 그렇게 나약해졌습니까? 백번, 천번 실패에두 끄떡없던 지배인동지가!
못 살린다고 생각하니까 방도가 보이지 않는겁니다. 죽으면 죽었지 소성로는 못 죽인다구 생각해보십시오. 방도가 생기지 않나.》 그리고는 운식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틀려먹었다, 책임기사. 산처럼 흔들리지 않던 지배인동지가 이렇게 된건 동무때문이야! 어떤 공장이구 어떤 소성로라구 들어내자는 생각부터 한단 말이야?
내 꼭 방도를 찾아내고야말테다.》
문이 후려닫기고 다시 정적이 확 밀려들었다. 잠시후 밖에서는 공장화물차를 불러내는 호령소리와 함께 부르릉― 하는 대형화물자동차의 발동거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시꺼먼 배기가스를 와락 내뱉은 자동차가 몽둥이로 때려몬것처럼 후닥닥 정문밖으로 뛰쳐나가고있었다.
시당에 가서는 어쩐단 말인가? 저렇게 큰 차를 몰고가서는…
이럴 땐 차라리 심장이 콱 터지기라도 했으면. 불같이 살다가 불같이 꺼져버렸다는 말이라도 듣게.
권민은 느닷없이 해심이 아버지 진영일의 모습이 떠오르며 그가 부러워졌다. 비록 죽었어도 그가 바라던대로 바다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류인석은 엄철수를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불덩어리같은 사람. 작업복차림에 목에다 수건까지 비끄러매고 뛰여들었다.
패기있고 담찬 당일군. 행정일군들, 기술자들을 밀어주어도 웃동을 활 벗어내치고 씨엉씨엉 밀어주며 믿어주어도 시뻘건 가슴을 탁 헤쳐놓고 믿어주고 로동자들과 독한 잎담배를 같이 말아피우면서 《어― 그 담배 배꼽까지 써늘―하군!》 하고 휩쓸리는 소성공출신의 당일군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이제 등두드려주고 칭찬해줄것이 아니라 아픈 말로 꾸짖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새 륜리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있기때문에.
《할 말 다 했소?》
《생각나는데까지는 다 했습니다. 더 생각나면 더 말하겠습니다.》
류인석은 저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이렇다. 이렇게 가식이란 모르는 사람이다. 아무렴, 불을 다루는 당일군이 아닌가.
인석은 잠시 마음을 다잡고 그를 엄엄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대답해보오. 동무들의 27년간 공적이 혁명의 리익, 내 나라, 내 조국의 부강보다 더 귀중하오?》
엄철수는 머리를 쳐들었다.
《예?》
《소성로에 바친 그 모든것이 무엇을 위해서요? 어느 개인의 긍지높은 자서전을 위해서요?》
철수는 후려맞은듯 비칠했다.
《앉으시오, 거기.》
갑자기 낯빛이 꺼멓게 죽은 철수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류인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비서동무, 동무는 지금까지 나무랄데 없는 당일군이였소. 사랑, 믿음, 헌신, 진짜로 심장을 울려주는 현장당사업. 훌륭했소. 이 시련속에서도 굴함없이 연기를 뿜어올리는 소성로의 굴뚝은 위대한 장군님과 끝까지 뜻과 운명을 함께 하려는 한 당일군의 신념이였소. 세멘트공장동무들은 바로 동무를 억센 기둥으로 삼고 동무한테 의지하면서 3년간의 고난의 행군길을 꿋꿋이 걸어오고있소.
동무는 당일군 10년간 공로메달 한개도 받은적이 없지만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가 지배인동무와 공장의 기술자, 로동자들에게 차례졌소. 그 모든 훈장, 메달들을 다 모아서 동무 한사람한테 준대도 아깝지 않게 동무는 일했소. 당사업을 했단 말이요.
그러나 동문 지금 착오를 범하고있소.》
엄철수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는 그를 류인석은 어깨를 눌러앉혔다.
《마저 듣소. 다 들은 다음에 생각할 시간도, 말할 시간도 주겠소.》
그리고는 다시 방안을 거닐었다.
《어제는 아무리 옳았어도 오늘의 시점에서 맞지 않으면 버리고 새로 출발할줄도 알아야 하오. 새 세기를 구상하는 당의 의도이구 당을 받드는 전사의 륜리요. 아무리 심장을 도려내는것 같이 아파도 동무들은 다시 일어서리라고 믿었소.
그런데 이게 뭐요? 날 죽이면 죽였지 소성로는 못 죽인다구? 아니요. 동문 당일군이요. 누구보다 당의 의도를 깊이 알구 실력있고 공로있는 지배인동무를 이끌어야지.》
철수는 낯색이 하얗게 질려 부르짖었다.
《그러니 제가 이젠 낡았다는겁니까? 벌써?》
그 말에 인석은 책상을 탁 쳤다.
《아니요! 공장의 생산방식이 낡았다고 했지 동무를 낡았다고 하진 않았소. 동무는 낡지 않았소. 지배인 윤권민동무도 낡지 않았고. 자력갱생! 간고분투! 영원히 낡을수 없는 백두의 혁명정신이요. 이 정신을 가슴속에 간직하고있는 한 우리는 누구도 낡아질수 없소.
일어서시오, 비서동무! 자기 령도자를 알고 혁명을 알고 인간을 알뿐아니라 경제도 기술도 다 아는 21세기의 당일군이 되시오!》
엄철수는 벌떡 일어섰다. 새로운 그 무엇이 온몸을 휩쓰는 희열을 느끼며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비서동지!》 그리고는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공장에 도착하니 특별히 잘 구운 마지막크링카를 쏟아낸 소성로에서는 송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멎었고 화구는 벌겋게 식어가고있었다. 지배인 권민은 그 화구앞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크링카먼지가 오른 희슥희슥한 머리카락들이 흩어져있었으나 쓸어넘길념도 않고 멍하니 앉아만 있는 지배인을 측은히 바라보던 철수도 그곁에 쭈그리고앉았다. 소성로와 함께 흘러온 나날들이 눈앞에 흘렀다.
《우리 세멘트다! 류진세멘트!》 마르까 100을 겨우 넘어선 첫 세멘트였지만 그것을 곽삽에 담아 공중에 휘뿌려서는 뽀얗게 뒤집어쓰며 서로 안고 돌아가던 27년전의 그날이 안겨오며 못 견디게 눈물을 자아냈다. 하얀 수건에 정히 싼 크링카덩어리를 움켜쥐고 고고성을 터친 아들을 보겠다고 덤벼치며 걸채며 달려가던 그날의 권민. 백날후 요란스런 송풍기동음, 황황 불길이 뿜어져나오는 화구앞에서 겁질려 우는 백날잡이 윤철이를 저저마다 안고돌아가며 껄껄 웃으면서 백날기념사진을 찍어주던 그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희열에 넘쳤던가.
《책임기사동무, 미안하오. 전번에 내 동무한테 너무 란폭하게 굴었지?》
별안간 철수의 목청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알아두라! 소성로는 없어져두 크링카를 구워내던 우리 인생의 불은 절대루 꺼지지 않아! 더 활활 탈거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배인동지.》
권민은 결연한 눈길로 초급당비서를 마주보았다.
《옳소, 비서동무. 음? 이 낡은 소성로대신에 현대화된 류진세멘트를 보란듯이 일으켜세우기요! 넨장, 하면 했지 못할게 뭐요, 음?》
운식은 빙긋 웃었다.
《이제 제 방에 같이 가서 뭘 좀 봐주십시오. 그동안 공장을 현대화해서 생산능력을 확장할 계획을 완성했습니다. 1단계에서는 5만톤, 전망적으로는 10만톤까지 내다보았습니다. 생산조종과 관리운영을 완전히 콤퓨터화할 결심입니다. 우선 이 소성로를 들어낸 자리에는…》
권민과 철수는 깜짝 놀라며 저들끼리 마주보다가 야심만만한 미소를 짓고 소성로를 가리키는 책임기사를 쳐다보았다.
철수가 먼저 손에 쥐였던 늄고뿌를 운식의 가슴에 활 팽개쳤다.
《목대 불러놓구 말테다, 호박씨 까는 놈! 지배인, 당비서 우는줄 뻔히 알면서두 뒤구석에 앉아서 그런 장난질해? 늙은것, 낡은것 세멘트처럼 푹푹 퍼서 어디 실어보내구 너 혼자 해먹자는 수작이였지?》
운식은 가슴에 날아든 고뿌를 받아쥐고 당황해서 변명했다.
《아닙니다. 오늘같은 날이 꼭 올거라구 믿었습니다. 사실 그날 모임에서 내놓구 토론하자구 했댔는데 말은 바른대루 비서동지가 어디 입이나 벌리게 했습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권민이 자기가 쥐였던 고뿌도 운식의 가슴에 훌 뿌려던졌다.
《됐어, 음― 새파란게 앉아서 딴꿈 꾸는 방엘 머리허연게 왜 기신기신 따라간단 말이야, 음? 가서 가져와. 어떤 도깨비장난감인지 봐두 여기서 보자. 마음에 안 들었단 봐라. 저 아궁이에다 활 쓸어넣구 말테다.》 그리고는 짐짓 눈살을 찌프리며 철수를 돌아보았다.
《비서동무, 안되겠소. 내 방을 강당만 하게 벽을 터쳐놓구 책임기사건 무슨 기사건 몽땅 한굴에 가두구 꼭뒤를 눌러잡구있어야지, 음? 이러단 별별 도깨비가 다 나오겠는걸.
요새 젊은것들이란 이렇단 말이야, 음?》
말을 마치고나서 권민은 요란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거쿨진 몸을 들썩들썩 흔들며…
Ⅹ
두해가 지났다.…
고난의 년대를 마감하는 1999년 12월 31일 깊은 밤. 해심은 풀섬양식장에 전개한 실험실에서 현숙에게 편지를 쓰고있었다.
…사랑하는 현숙아, 보고싶구나!
송진산련봉의 높은 골짜기를 가로막아 산정의 호수를 만들고 그 물을 떨구어 전기를 일으키며 시안의 먹는물공급도 자연흐름식으로 한다는 통이 큰 설계를 네가 내놓았다는 소식을 문광동지가 처음 전해주었을 때 나는 너의 특등작 환상설계 《결심》을 생각했어. 너는 한생의 결심을 담은 거창한 설계도를 이렇듯 하나하나 실천해가는구나.
측량기를 메고 심심산발을 누빈 설계원들의 대오에 용감히 앞장선 처녀설계실장의 모습을 그는 얼마나 감동깊이 이야기해주었는지 몰라. 넉달전 시안의 각 공장, 기업소들에서 우수한 력량을 뽑아 발전소건설려단을 조직하고 그 대오가 떠날 때 려단의 시공지휘관인 너를 뜨겁게 환송해주고싶어 달려갔으나 너는 이미 운호동무와 함께 선발대로 현지에 가있다고 하지 않겠니. 만나보지 못한 서운함보다 격전장에 누구보다 먼저 자욱을 찍은 너와 너의 사랑하는 동무에 대한 자랑이 가슴가득 차올랐어.…
그동안 류진바다가양식사업소는 현대적인 인공배양장과 축양가공장을 일떠세우고 양식수준을 높은 단계에 올려세웠다.
해심은 새로운 목표로 인공배양유생들의 초기먹이인 단백질균류먹이를 자체로 배양해낼것을 내세웠다. 바다가양식에서 첨단기술의 하나인 이 기술은 발전된 몇개 나라들에서 개발하였지만 높은 원가로 하여 널리 도입되지 못하고있었다. 해심은 바로 그것을 외국의 값비싼 출발원료가 아니라 우리의 실정에 맞는 출발원료로 실현하기 위해서 1년나마 고심분투하고있었다.
하루는 사업소에 있는 해심의 실험실에 찾아왔던 문광이 슬며시 튕겨주었다.
《양식물의 고향은 바다입니다. 그것들은 바다에서 태여나 바다에 몸을 잠그고 바다가 주는 먹이를 먹고삽니다. 아무리 들어갈것 다 들어가고 설사 더 들어갔다고 해도 젖먹이애기한테는 제 엄마젖이 암가루보다 낫다고들 하더군요.》
해심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 바다의 생명들은 그 바다처럼 먹여주고 키워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다.
저도 모르게 탄성을 올린 다음순간 해심은 생각했다. 이것이 그가 다문박식해서일가? 처녀는 그렇게만 여겨지지 않았다. 혹시 그가 자기를 깊이 살피고 사색과 고민을 함께 하고있는것이 아닌지?
그 다음날로 해심은 연구장소를 여기 풀섬으로 옮겼다. 오늘이 섬에 나온지 백날째이다.
…현숙아, 내가 왜 이럴가? 너를 만나면 저도 모르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것이. 오늘 편지에서도 또 이러는구나. 그러나 구태여 지우고 다시 쓰고싶지 않아. 우린 서로 숨기는것이 없는 더없이 가까운 동무지? 너도 언제인가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주겠다고 늘 품고다니던 사진을 운호동무에게 주게 된 이야기를 나한테 하지 않았니. 려단정치부에 나가있는 문광동지가 이해의 마지막날에 발전소건설자들의 투쟁기를 시민들에게 들려주려고 들어왔어. 2000년대의 첫아침을 섬에서 맞게 될 우리 몇사람 들으라고 오늘 방송의 편집물을 통채로 담은 록음카세트를 가지고 방금 우리 섬에 건너왔단다.…
록음기에서 울려나오는 투쟁기의 하많은 이름들을 해심은 한사람한사람 정답게 꼽아보았다. 려단장인 옛 수산국장 김태호, 참모장인 자기네 사업소 생산부원 조철국, 시공참모인 사랑하는 동무 현숙이 그리고 려단의 주력대대로 위훈떨치고있는 물길굴건설청년결사대 대장 리운호와 그 대원들인 용감하고 씩씩한 축구선수들, 그속에는 명남이도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진해서 올라가 생활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돌보고 려단의 대소사를 가림없이 떠맡고있다는 돌격대의 맏누이 김정란…
친근하고 정다운 사람들. 너와 나 따로 없이 하나의 사상, 하나의 뜻, 하나의 숨결로 함께 살며 조국의 부름에 심장으로 화답해나선 이 사람들모두가 윤철오빠가 그리려 했던 《시대와 인간》이라는 회화총서의 주인공들이 아니겠는가.
윤철이가 미완성으로 남기고간 파도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 시미술창작사의 창작가집단이 오늘 풀섬을 거쳐 솔섬에 건너갔다. 2000년대의 장쾌한 첫 아침노을이 그가 그린 억센 파도에 물들여지게 된다. 창작사당조직은 그 작품을 완성하여 뜻깊은 새해에 열리는 당창건 55돐 경축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창작가들은 고난속에서도 줄기찬 발전을 이룩하고있는 시안의 변모된 현실을 몇달동안 답사하고 체험하면서 그 준비를 갖추었다.
…조국을 위하여 바친 삶은 이렇게 우리와 함께 살며 영생하고있어.
현숙아, 이제 한시간 있으면 우리는 새해, 새천년대를 맞게 돼. 1990년대의 마지막시간이 흐르고있구나. 우리들의 인생에, 조국과 혁명의 력사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새겨놓고 잊지 못할 년대가 지나가고있어.
시방송의 오늘 편집물마감을 장식한 송년시 《1990년대처럼 살리라》를 이 편지에 적어보내. 그가 쓴 시야.
물론 온 려단이 정치부의 야전방송으로 들었겠지만 그의 말대로 우리모두가 창작가들이고 서정적주인공들이며 가수들인 1990년대의 노래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동무에게 내 손으로 적어보내고싶어.
잘 가라 잊을수 없는 년대
손저어 정겹게 바래워도
마음은 뜨겁게 부여안고 놓지 못하는 1990년대여!
가슴찢어지는 민족의 국상이였다
하늘도 땅도 목놓아울던 7월의 피눈물
불밝던 우리의 거리들에 불빛이 귀해지고
동음 우렁차던 공장들에
그 동음 그리워지던 고난의 년대여
허나 너 그것뿐이라면
바래우는 손저움 이리도 정겨울것인가
너 이 땅에 남긴것
눈물과 아픔 모진 시련뿐이였다면
마음속엔 영원히 떠나지 말라고
우리 뜨겁게 그러안으며 이처럼 볼을 비빌것인가
풀뿌리를 씹으면서도
강성하는 래일을 믿는 법 배워준 년대
눈보라속에서 피여나는 백두산의 서리꽃처럼
험난한 길을 웃으며 걷는 법 알게 한 년대
소중하여라
너의 나날에 깎아낸 나사못 한개도
그 나날에 높이 솟은 제방의 흙 한줌까지도
전야의 이삭들엔
또 얼마나 진한 땀과 넋이 묻혔던가
…
문광은 서경과 함께 섬기슭에 오래도록 서서 밤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잊을수 없는 년대의 만단사연이 그 파도소리에 실려 가슴가득 떠오르고있었다.
《해심동무의 연구가 성공하면 새해에 우리 양식은 또 한단계 비약하겠군요.》
서경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한단계? 아니요. 이건 양식에서 세계적수준을 디디고 올라서는거요.》
풍력발전기의 전등빛이 고요히 흘러나오는 창가를 그들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거기에서 지금 우리 식으로 최첨단을 돌파하려는 처녀의 피타는 사색전, 탐구전이 소리없이 벌어지고있다. 물면은 고요해도 내심깊은 곳에서는 강렬한 흐름이 격류치는 바다처럼.
그 창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문광을 서경은 빙그레 웃으며 지켜보았다.
《문광이, 내 하나 물어볼가? 친구지간에 솔직히 말해야 돼.》
문광은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우리 해심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문광은 그 뜻을 가늠해보는듯 한동안 마주보다가 천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훌륭한 동무지요, 포부가 크고 실력과 열정이 있는.》
어쩐지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어주는 이밤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그러나 서경은 그것을 낱낱이 밝혀보며 눈가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다음은?》
문광은 그래도 천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려고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집요하게 마주보는 서경의 눈길을 피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다음은 또… 뭡니까?》
서경은 껄껄 웃으며 문광의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하지 못하구만. 됐소. 친구의 마음을 몰라서 물은게 아니요. 더 진하고 아름답게 가꾸라구.》
서경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조용히 더듬었다. 그리운 옥심이!
얼마전 또 한차례의 육종시험을 준비하고있는 안해를 찾아갔을 때 새롭게 강조되고있는 당의 종자혁명방침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그 모습이 삼삼히 안겨왔다. 이밤도 저 별바다아래서 인생의 높은 뜻을 대지에 묻고있을 사랑하는 안해. 옥토같이 부드러운 그 가슴에 귀를 대이고 강의한 그 심장이 울려주는 황금파도소리를 서경은 못 견디게 듣고싶었다.
…
그래서 90년대여 너는
애국의 한박동으로 심장의 고동들을 합쳐온
사랑 또한 아니던가
꽃처럼 피여나고 불길처럼 타오른
불굴하고 위대한 년대여
너는 심장처럼 타오른 개척자들의 우등불
그 불길로 언땅을 녹이던
고난의 결사대원들의 천막
…
잊지 못할 년대의 마지막 이밤, 심심산중의 발전소건설장에서는 우등불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전려단이 언제기초굴착장에 모여 삼단같은 우등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우리는 심산속에 우등불 지폈네
언땅에 천막 치고 발전소 세워가네
…
대오의 한복판에서 전투원들과 팔을 끼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 현숙과 운호는 황홀한 별하늘로 불꼬리를 끄을며 무수히 날아오르는 불꽃들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조국과 함께 걷는 오늘의 행군길
래일의 추억속에 아름다우리
…
고난의 년대가 력사에 일으키는 메아리인양 우렁찬 합창소리는 중중첩첩한 산발들을 흔들었다. 고요한 밤하늘에서 빛나는 뭇별들이 강렬한 열망을 휘끌어올리며 래일을 불러 타오르는 그 불길에 미소를 뿌려주고있었다.
…
조국과 함께 살고
위대한 장군님과 운명을 함께 한
일심단결의 년대여
그 나날의 박동으로 심장을 고동치며
우리는 2000년대를 살리라
성스러운 1990년대를 청사에 새기고
부강하게 살 조국이여 가자, 강성대국으로
세월은 가도
선군조국이 영원히 잊지 않을
오, 우리는 1990년대처럼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