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3
…해심은 그런 현숙이가 부러워 다시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아까부터 차창밖을 열심히 내다보던 현숙이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나직이 환성을 질렀다.
《류진이다. 해심아, 류진이 보여!》
렬차는 동해안선을 달리고있었다. 차창밖으로는 파아란 바다가 펼쳐졌다. 어디서부터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분간할수 없을 정도로 꼭같이 파아란 하늘과 바다, 달리는 렬차를 누가 먼저 다쳐볼것인가 내기라도 하는듯 쪽빛의 잔이랑들을 지으며 숨가쁘게 달려온 파도들이 기슭에까지 이르러서는 머리를 숙이며 하야니 부서진다. 자기들은 떠나지 말아야 할 품이 있으니 부디 잘 가라고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는지. 그우에서 갈매기들이 저들끼리 뭐라고 즐겁게 소리치고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해심이와 현숙은 창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있었다. 해심은 차창밖으로 펼쳐진 바다, 아득한 그 수평선을 넋없이 바라보고있었다. 이따금 그 바다우에 고기배들이 나타날 때마다 두눈이 부리부리하고 얼굴이 바다바람에 타서 검실검실한 아버지와 유순하고 속깊은 윤철오빠의 모습이 가슴무너지게 안겨오군 했다.
총각시절부터 먼바다선단의 선장으로 이름날린 아버지 진영일은 가공반 처녀였던 안해가 첫딸을 낳자 바다의 마음이라는 뜻에서 해심이라고 이름지었다.
《해심이라, 진해심이. 음! 뜻이 있구 부르기도 좋아. 음!》
어머니의 맏오빠인 세멘트공장 지배인 윤권민이 조카딸을 보러 왔다가 아버지가 지은 그 이름을 무척 마음들어했다.
《해심아- 넌 아버지처럼 용감하구 어머니처럼 곱게 크거라. 음!》
목소리가 걸걸하고 키가 큰 해심이 아버지는 남달리 다정다감한 사나이였다.
해심이가 네살나던 해 어느날 먼바다에서 한달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딸애가 그새 많이 컸다고 기뻐하며 안아주었다. 어린 해심이는 아빠목을 그러안고 좋아라 캐득캐득 웃었다. 이때 어머니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 딸을 안고 빙빙 돌아가는 남편을 문가에 서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얼굴이 퍼그나 축가보이는 어머니를 놀랍게 바라보며 그새 어디 앓았는가고 근심스레 물었다. 어머니는 《일이 바빠 그랬겠지요 뭐. 너무 많이 잡아들이니 가공반은 숨이나 돌려보겠나요?》 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고개를 젓다가 이번에는 딸애에게 물었다.
《해심아, 엄마 아팠지?》
딸은 아버지한테 냉큼 일러바쳤다.
《엄마 자꾸 토하댔어. 밥두 나만 먹구…》
《해심아!》
어머니가 나직이 꾸짖는 바람에 해심이는 제꺽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영일은 딸을 내려놓고 안해한테 다가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속탈 만난게 아니요? 병원엔 가봤소?》
안해는 대답이 없었다. 남편이 계속 묻자 안해는 《뭘 자꾸 그래요? 그렇게 눈치없어가지구 바다속은 어떻게 들여다보는지…》 하면서 딸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잠시 어리둥절해있던 영일은 갑자기 껄껄 웃으며 딸을 번쩍 안아올렸다.
《그랬댔구만! 자, 우리 해심이 누나되겠니, 언니되겠니?》
해심이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깜빡깜빡 쳐다보는데 아버지가 소리는 내지 않고 입시늉으로 《누-나》 하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해심이는 무작정 짜랑짜랑하게 소리쳤다.
《누! 나!》
그러자 아버지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호탕하게 웃고 어머니는 남편과 딸을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부엌으로 나갔다. 앞치마를 두르던 어머니가 문득 입가에 손을 가져다대고 혼자서 방그레 웃는 모습이 채 닫기지 않은 사이문틈으로 내다보였다.…
어느해 초겨울 함박눈이 무덕무덕 내리던 날 아버지는 부문당회의에서 되게 비판을 받고 한달간 선장자격정지처벌까지 받은적이 있었다. 전날에 생산조건이 나쁘다고 옆에 있는 양식사업소의 양식장에 몰래 들어가 조개잡이를 한 세소작업반의 열아홉살난 잠수공총각을 호되게 꾸짖다가 선단부문당비서가 추궁하자 덜돼먹은 녀석들은 그렇게 다불러야 한다고 맞섰다. 그 거치른 작풍때문에 비판을 받고 처벌을 받았던것이다.
남달리 바다를 사랑했고 이 세상 그 어느 아버지보다도 가정과 자식들을 사랑한 아버지, 다정다감한 그 아버지를 더는 볼수 없다는 생각에 해심은 가슴이 미여져왔다.
윤철오빠, 외사촌오빠인 그는 또 얼마나 정답고 친근했던가. 지금도 해심은 철부지 유년시절에 있었던 밀항사건을 잊을수 없었다.
해심이가 다섯살, 윤철이가 아홉살나던 해의 여름이였다. 그날도 포구에 정박하여 출항준비를 갖추고있는 배에 진영일선장은 딸 해심이와 여름방학기간 바다그리기에 여념이 없는 윤철이를 데리고 올랐다. 다섯살잡이 소녀는 아버지의 조타를 잡고 빙빙 돌려보는것을 좋아했고 꼬마화가 윤철이는 배의 선수갑판에 화판을 펼쳐놓고 바다며 포구의 모습을 그리군 하였다.
《아버지, 이걸 이렇게 돌리면 배가 가나?》
《그럼.》
《지금 내가 자꾸자꾸 돌리는데 배가 왜 안 가나?》
《우리 해심이 쪼꼬마니까 이 큰 배가 말을 안 듣는구나. 빨리 커서 아버지같이 바다에 나갈가?》
《바다? 여기가 바다 아니나.》
젊은 선장은 딸애의 야들야들한 볼에 수염그루볼을 비비며 속삭였다.
《아니다, 진짜바다는 저기 있다, 저-기.》
《머나?》
《그럼.》
《크나?》
《그럼.》
《곱나?》
《그럼.》
《나만큼?》
《더 곱지!》
《안야. 세상에서 내가 제일 곱다구선?》
선장은 사랑스러운 딸애를 품에 안아 그 작은 얼굴을 자기의 든든한 가슴에 꼭 가져다붙이고 볼로 머리카락을 비볐다.
《우리 해심이 바다처럼 곱게 크거라.》
그 시각 소년화가 윤철이는 여느때와 달리 화판과 화구가방을 멘채로 배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보고있었다. 관찰력이 뛰여난 소년의 눈길이 무엇을 찾고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출항검사시간이 되여왔다. 해심이와 윤철이를 데리고 배에서 내린 선장은 어로공들과 함께 선단청사로 들어갔다. 출항전 지시, 안전규정 강조… 이러루한 일들이 그 시간에 진행된다. 그다음은 부두가에서 출항준비검사, 출항.
아버지가 아저씨들과 청사로 들어가면 해심이는 윤철오빠의 손목을 잡고 사업소정문을 나서군 했다. 그날도 일은 그렇게 흘렀다. 그런데 정문이 보이는 곳에서 오빠가 해심이의 손을 슬며시 놓으며 물었다.
《해심아, 너 혼자 갈수 있지?》
소녀는 의아한 눈길로 오빠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오빤?》
《오빤 응- 어디 들렸다가 저기 후문으로 나갈게. 오빠 기다리지 말구 그냥 집에 가라, 응?》
《싫어, 나두 같이.》
그러자 소년은 호주머니에서 사탕봉지를 꺼내주었다. 계집애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피-사탕, 우리 집에두 많아.》
《그럼 지우개 줄가?》
그래도 해심이는 머리를 저었다. 윤철이는 말똥말똥 올려다보는 해심이를 안타깝게 내려다보다가 화구가방에서 연필 하나를 꺼냈다. 심이 몹시 무른 소묘연필. 언제인가 그것으로 팔목에 콩알같이 깜찍한 시계를 그려주자 달라고 몹시 졸랐던 그 연필을 해심이는 제꺽 기억해냈다.
《응, 그거 달라.》
손을 내미는 해심이한테 연필을 쥐여준 윤철이는 《자, 이젠 혼자서 집에 가지?》 하고 조급히 물었다. 해심이는 연필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까딱했다.
《응, 갈게.》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소년은 어디론가 달아뺐다.
부두가는 소란스러웠다. 선창에 주둥이를 박아넣은 흡입관을 타고 바다물과 함께 빨려올라온 물고기들이 허공으로 건너간 굵다란 수송관으로 해서 가공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소리, 퉁탕거리는 배기관소리, 랭동블로크짝들을 몰고다니는 지게차들에다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목청이 높고 입심이 센 바다녀인들과 사나이들이 걸죽한 롱말이며 악의없는 욕설들을 주고받는데 머리우에서는 갈매기무리가 물고기 한마리라도 더 쪼아내려고 겨끔내기로 고았다대며 헤덤비고있었다. 이런 속에서 누구도 먼바다선단의 《청년》호에 살금살금 다가드는 소년에게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갑판우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윤철이가 잔교에서 배전으로 살짝 넘어선 순간 뒤에서 《오빠야!》 하고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소년이 돌아보니 어느새 따라왔는지 해심이가 저만치에 서있었다.
황황히 배전을 다시 넘은 윤철이는 화가 나서 을러멨다.
《넌 집에 가겠다구 하구선 왜 따라왔니?》
새뜩해진 해심이는 아까 받았던 연필을 도로 내밀며 입을 삐쭉거렸다.
《이거 안 가질래. 오빠 나쁜 장난할라 그러지? 우리 아버지한테 대줄래.》
바빠난 소년이 꼭 붙들었다.
《해심아, 우리 해심이 오빠말 잘 듣지? 오빠가 먼바다에 나가서 멋있는 그림 그려다줄게.》
《먼바다?》
소녀의 두눈이 반짝했다.
《응.》
《갈매기가 날아가는것만큼?》
《갈매긴 먼바다에 못 날아가. 땅에서 멀리 안 가는 새거던. 배는 갈매기보다 더 먼-데 간단다.》
창황중에도 소년은 유식을 뽐냈다.
《먼바다는 크나?》
《응.》
《곱나?》
윤철이는 잠시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건성으로 끄떡해버렸다. 나이는 어려도 어엿한 화가인 소년의 미학관으로도 바다는 《곱다》라는 개념과 잘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 애꾸러기를 떼버리고 배가 떠날 때까지만 입을 다물게 하자면 뭐나 다 응해야 할판이였던것이다.
그런데 눈을 또록또록 굴리던 해심이가 난딱 소년의 손을 잡았다.
《나두 같이 갈래.》
소년은 기가 막혀 그 손을 뿌리쳤다.
《넌 안돼! 아이들은 배에 태우지 않아. 이건 해사규정이거던.》
며칠전에 배를 타고 어장에 나가게 해달라고 조르는 소년에게 선장 진영일이 했던 말이 그대로 그의 딸에게 되풀이되였다.
《피- 오빠두 어른이 아니지 않나. 자기두 몰래 갈라 그러면서?》
윤철이는 조급해졌다. 어린 화가를 그처럼 대견해하는 고모부였지만 바다에 나가는것만은 도무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꼬마화가의 마음은 수평선너머 먼바다로 달렸다. 기록영화에 나오는 집채같은 파도, 그것을 타고넘으며 먼바다어장으로 나아가는 고기배들, 용감한 어로공들…
소년은 마침내 한가지 모험을 궁리해냈다. 배가 떠나서 만을 벗어날 때까지 배안의 어느 구석에 숨어있는것이였다. 일단 먼바다에 나간 다음에 나타나면 깜짝 놀라고 욕이나 좀 할뿐 어쩌지 못할것이다. 배를 돌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다 내려놓을수는 더욱 없을테니까.
소년은 비상한 흥분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오늘 배의 구석구석을 예리하게 살폈던것이다. 어떤 정황에서도 들키지 않게 숨어있을 가장 안전한 장소. 마침내 그런 장소를 탐색하자 소년은 행동에로 넘어갔다. 그런데 첫발을 떼자마자 요렇게 딱 잡힐줄이야.
한편 어린 해심이는 아버지가 자기보다 더 곱다는 먼바다에 가보고싶어 감질이 났다. 오빠가 먼바다에 그림그리러 간다는것은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소녀는 발까지 구르며 졸라댔다. 안 데려가면 아버지한테 일러바칠테다, 그럼 오빠두 못 가지? 같이 가든가, 둘다 못가든가. 떼질 절반, 위협 절반. 암만 다섯살잡이라도 속궁리는 너무도 빤했다.
소년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차라리 다음기회로 미룰가? 아니, 먼바다선단 배들은 한번 나갔다가는 한달이 거의 되여서야 들어오군 한다. 그러면 여름방학이 다 지나간다. 처음이자 마지막기회, 그런데 어른들이 나올 시간이 돼온다.…
소년은 결심했다.
《좋아, 너 오빠 말 잘 들어야 돼.》
《응!》
윤철이는 해심이를 안고 배전을 넘은 다음 갑판아래 깜깜한 구석에 숨어버렸다. 철부지 해심이는 숨박곡질이라도 하는 기분이 되여 오빠의 목을 그러안고 깨드득거렸다.
곧 출항준비검사가 시작되였다. 기업소 로동안전과, 해사감독소… 늘 하는 검사여서 례사롭게 흘렀는지 아이들이 숨은것을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드디여 배가 떠났다. 숨박곡질하는것 같이 짜릿짜릿하던 기분은 사라지고 지루하고 갑갑해난데다가 깜깜한데서 무서워나기까지 한 해심이는 와릉와릉하는 배기관소리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오빠가 손바닥으로 황황히 입을 막으며 위협했다.
《울지 마! 이제 들키면 안돼. 너네 아버진 성나면 막 때려.》
《안야. 우리 아버진 날 욕 안해. 나 아버지한테 갈래.》
《너 오빠 말 잘 듣겠다구 하구선?》
할수없이 소녀는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다시 바스락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안됀? 오빠야.》
《조금만 참아.》
또 잠잠해졌다. 그러나 잠간이였다.
《나 오줌.》
《뭘? 오줌?》
《응.》
소년은 짜증을 냈다.
《좀 참으라마.》
《싫어싫어, 무서워. 나 아버지한테 갈래, 오빠 나빠.》
《야! 요건 한대 맞겠니?》
오빠가 끝내 참지 못하고 팩하자 가뜩이나 울고싶었던 어린 소녀는 왕-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끝내 들키고야말았다. 소년에게는 《체포》였지만 해심이한테는 《구출》인셈이였다. 배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선원들이 다 달려와 아이들을 에워싸고 선장 진영일은 어이없어 애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비상사고였다. 만을 채 벗어나지도 못하고 배가 돌아섰다. 오호쯔크어장을 주름잡던 유명한 《청년》호. 그 어떤 풍랑도 진영일선장만은 돌려세우지 못한다던 용감한 《청년》호를 아홉살난 소년과 다섯살잡이 소녀가 잔잔한 바다길에서 돌려세웠던것이다.
달리는 배에 처음 올라본 해심이가 좋아라 해득거리며 갑판을 뛰여다니는데 《전대미문》의 소년밀항자는 화판을 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가까와오는 부두를 근심스레 쳐다보고있었다. 갑판장이 소년에게 주먹을 흔들며 을러멨다.
《이제 너네 아버지직장에 전화하구 학교에두 통보하겠다. 넌 가둬넣구.》
기관장이 소년의 엉뎅이를 철썩 갈겼다.
《엉큼한 자식! 해심이를 끌구오면 선장동무가 용서할줄 알구?》
그러자 폭소가 터졌다. 해심이가 아버지옷자락을 잡고 어른들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안야, 난 끌려오지 않았어!》 또 와그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소년은 눈물을 뚤렁뚤렁 떨구었다. 해심이 아버지가 그러는 소년화가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용감한 미술가가 울긴.
동무들, 대양을 화폭에 담겠다는 이 포부가 얼마나 좋소? 이 애들이 크면 우리보다 더 멋들어지게 바다를 다스려낼거요. 안 그렇소? 갑판장.》
갑판우에 갑자기 고요가 깃들었다. 젊은 어로공들은 사색에 잠긴 눈으로 소년화가를 다시 바라보았다. 류진만의 서쪽산발들을 덤불삼아 저녁노을이 황황 타오르고있었다. 진영일선장은 윤철이의 어깨우에 손을 얹고 이글이글하는 눈으로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봐라, 저 노을, 얼마나 아름답니? 우리 바다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사업소에 오시여 이 바다의 주인은 청년들이라고 하실 때두 노을이 저렇게 불탔다, 저렇게.》
모두의 눈동자마다에 그 노을이 비껴들어 강렬하게 불타고있었다. 누구인가 노래를 뗐다.
설레이는 바다여 행복의 바다여
금노을이 피여나는 나의 바다여
노래는 합창으로 번져갔다.
백사장에 딩굴면서 파도에 자라난
우리네 청춘들이 너를 반긴다
…
비상사고로 돌아오는 배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노래소리에 부두에 나와있던 사업소간부들과 로동자들이 어리둥절해졌다.
해심이는 갑판장아저씨가 갑삭 안아서 부두에 내려놓자 영문을 몰라 망연히 서있는 어머니한테 뛰여가 안기며 신이 나서 일러바쳤다.
《아버지하구 같이 배타구 먼바다에 나갔댔어. 난 안 울었는데 오빤 울었어. 바다가 무서워서 울지 않구 아저씨들이 욕해서 울었어. 그래서 내가 아저씨들을 욕해줬지 뭐.》
철부지밀항자들때문에 선장, 갑판장, 기관장은 물론 출항준비검사성원들까지 추궁을 받았다. 그러나 그날 날이 많이 저물어서야 다시 출항하는 《청년》호에서는 푸른 진주 빛나는 조국의 바다를 반기는 청춘들의 노래가 더 우렁차게 울렸다.
…
창파우에 싸우면서 천리마 타고가는
우리네 청춘들이 너를 반긴다
…
그때로부터 12년후 풍랑을 헤가르는 《청년》호에는 아래우달린 어로공비옷을 입고 미술대학모표가 빛나는 대학생모자를 쓴 윤철이가 있었다. 몇달후 그의 졸업작품인 조선화 《만선의 배길에 불타는 저녁노을》은 국가미술전람회장에 전시되였다.…
가지가지 잊을수 없는 추억들을 퍼내주는 그 바다. 해심의 큰 눈에 핑 어려있는 눈물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았다.
모든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고향길이였다.
《지금 생활이 어려운건 사실이요. 올봄부터는 평양시민들 식량공급까지 중지됐으니까. 그러나 내려가는건 잘 생각해보시오.》
박사원을 권고했던 스승의 말이였다.
《지금 형편이 어떤지 아니? 전문연구기관들에 시약두 제대루 공급 못해. 과학기술은 투자없이 발전 못한다는거 너도 알지?》
재학기간 쟁쟁하게 이름을 날리고 연구소에 들어갔으나 연구사업을 중도에서 걷어치우고 시집가버린 상급생언니의 말이였다.
홀로 남은 어머니. 굴지의 수산기지라던 류진수산사업소도 극심한 시련에 부닥쳤다. 연유사정으로 먼바다는 고사하고 연해에도 나가지 못하는 원양선단의 대형어선들은 부두에 쓸쓸히 못박혀있고 가공직장의 대형설비들도 돌려본지가 오래됐다고 한다.
해심은 자기의 앞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녀성과학자가 될 포부와 꿈. 넉넉하던 시기에도 녀자들이 과학에서 성공하자면 많은것을 희생해야 했다. 그런데 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그 포부와 꿈을 과연 실현할수 있을것인가. 처녀는 마침내 박사원진급을 포기하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어쩐지 떳떳치 못한 고향길이였다.
자식들과 바다를 끔찍이 사랑한 아버지는 사실 해심이가 평양제1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수산대학에 가서 수산과학을 배웠으면 하였다. 해심이도 단발머리소녀시절 그 길을 그려보았고. 그러나 1중학교를 졸업할 때 어린 나이부터 기숙사생활을 함께하며 더없이 친해진 현숙이가 그 길을 딱 가로막았다.
《글쎄 생각해보렴. 어쨌든 바다라는건 화학이구 생물이겠지? 꼭 수산대학에 가야만 그걸 배운다는 법은 없어.
고향도시를 으뜸가는 도시로 웅장화려하게 일떠세우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현숙이의 꿈은 변함이 없었다. 평양제1고등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상급학교지망을 세가지로 써내라고 할 때 1지망부터 3지망까지 《평양건설건재대학》(당시)이라는 꼭같은 글자들을 세칸에 또박또박 박아썼던 현숙이였다. 현숙이는 지금 그 꿈과 포부를 그대로 간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있다. 한생의 결심을 거창한 설계도에 담아가지고.
해심은 그런 현숙이가 부러워 다시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아까부터 차창밖을 열심히 내다보고있던 현숙이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나직이 환성을 질렀다.
《류진이다, 해심아, 류진이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