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6

 

저녁식탁은 알뜰하고 성의있게 차려졌다.

서경, 천영, 찬우가 옛 장령 백환과 함께 웃상에 둘러앉고 아래상에는 서경의 어머니 렴순과 해심이, 정란이가 앉았는데 정란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남자들 상을 살피다가 그릇이 나는것 같으면 어느새 일어나 채워주고 렴순과 해심이에게도 음식그릇들을 밀어놓아주며 극진히 대접했다. 이들모두가 반갑고반가운 제집 손님들인듯 정란은 극성스레 권하며 드나들었다.

《됐소. 그만하고 동무도 뭘 좀 드오.》

서경이 말하자 정란은 생긋 웃었다.

《먹습니다. 부엌에서 만들면서부터 먹는데요 뭐. 많습니다, 아직.

자 생산아바이, 아바인 전쟁로병이니까 영웅동지하구 이야기가 통하지 않겠나요. 비서동지, 지배인동지두 그동안 고생많으셨는데 오늘은 마음 푹 놓구 드십시오.

영웅동지, 어머니, 먼데서 오시느라구 힘드셨겠는데 많이 드세요. 세멘트지배인동지두 오셨으면 좋았을걸. 신신당부하는데두 먹은셈 치겠으니 즐겁게 하루밤 보내라면서 자긴 못 오겠다질 않나요. 암만 일이 바빠두 그렇지.

얘 해심아, 너두 살루 가게 좀 폭폭 떠먹으렴. 그새 집 떠나서 얼마나 수고했니.》

매 사람 빠짐없이 권하는 그 말에 벌써부터 얼굴이 불카해진 찬우가 술잔을 들고 이 사람, 저 사람 둘러보다가 한마디 했다.

《허― 이 집안에 지금 누가 주인이구 누가 손님인가?》

그 바람에 폭소가 터졌다. 엄엄하고 꼿꼿해보이는 백환까지도 희슥한 눈섭아래의 두눈에 미소를 담고 정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마트면 입에 물었던 음식까지 내뿜을번 한 해심이가 얼굴이 빨개가지고 돌아앉았는데 그 잔등을 쓸어주며 정란은 찬우에게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아바이두 참, 내남이 따루 있나요? 우리 기업소는 다 한집안인데. 그렇지 않습니까? 비서동지, 지배인동지.

영웅동지두 어머니두 인차 아시게 될거예요. 그렇지? 해심아.》

말을 돌려도 음식처럼 매 사람 빠짐없이 돌려감는 밉지 않은 그 수다스러움에 좌석은 화락해졌다.

서경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맛보는 가정적인 분위기에 아까부터 자꾸만 눈물이 괴여올라 고개를 숙이군 했다. 마가을, 초겨울의 그 처절하던 풀섬개척전투의 나날이며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근 300일간의 낮과 밤이 마음속으로 흐르고 또 흘렀다.

백환은 아들곁에 믿음이 가게 앉아있는 천영에게 말했다.

《비서동무, 고맙소. 비서동무가 그렇게 잘 받쳐주니까 지배인이 길을 가두 곧바루 가는거지. 며늘아이두 비서동무얘길 편지에 많이 써보냈소.》

천영은 흔연히 웃었다.

《별말씀 다 하십니다. 지배인동무같은 우수한 지휘관을 만나서 우리 동무들이 배우는것이 많습니다.

영웅동지두 련합부대장이였으니까 아실테지만 구분대의 전투력은 구분대장의 작전력, 지휘력이 아니겠습니까.》

백환은 대견스러운 눈길로 아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혁명군대의 위력은 정치부의 위력이요. 그래서 우리 군대는 빨찌산시절부터 각급 전투단위들에 정치지도원, 정치위원을 두었고 조국해방전쟁의 가장 어려웠던 1950년 가을에 인민군문화훈련국을 정치부로 개편한거요.

내 영웅메달에도 전쟁 3년간에 희생된 정치지도원들의 피가 스며있소. 잊혀지질 않소, 그들의 얼굴들이.》

…전투, 가렬한 전쟁의 마지막전투였다. 적참모부는 백환의 대대가 차지한 전선동부 돌출고지를 향해 악을 쓰고 있는 병력을 다 내몰았다.

두달전인 1953년 5월부터 세차례에 걸쳐 드세게 들이댄 아군의 강력한 반타격전으로 적들은 351고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고지들과 수십평방키로메터의 지역을 내주고 1년반이나 질질 끌던 정전협정마당에 황황히 끌려나왔다.

련대와 사단의 첨단인 백환의 대대가 전쟁의 마지막날에 차지한 고지는 련속적인 공격전으로부터 방어로 이행한 련합부대 방어전연에서 2키로메터나 앞으로 쑥 내민 돌출고지였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적진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이 고지에 직사포를 끌어다놓고 다시한번 사단이 공격으로 넘어간다면 련련히 잇닿은 적의 고지들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며 적사단을 단번에 10키로메터밖으로 쫓아버릴수 있었다. 반대로 적의 수중에 그대로 놔둔다면 적들이 아군방어전연을 내리타격할수 있는 고지였다.

백환의 대대가 네시간에 걸친 격렬한 전투끝에 이 전술적요충지를 차지한것은 7월 27일이였다. 전쟁의 마지막날에 중요한 전술적지탱점을 빼앗긴 적들은 고지를 다시 장악하려고 린접사단의 예비대까지 다 긁어모아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공격도상에서 전술적휴식과 보충이 없이 방어로 이행한 아군사단으로서는 힘겨운 전투였다. 특히 결사의 돌격전으로 고지를 타고앉은 백환의 대대는 정면으로 공격해오는 증강된 적보병대대와의 전투가 죽음을 각오한 최후결전이였다.

여러 시간이 지난 지금 대대는 60명가량의 전투원들밖에 남지 않았다. 돌출고지가 불끈 틀어쥔 주먹처럼 솟아있다면 그 주먹을 내뻗친 팔처럼 좁고 긴 릉선이 아군방어전연과 련결되여있는데 이 릉선을 련대가 고수하고있었다. 몸과 주먹을 이어주는 이 팔을 잘라내려고 두개련대의 적들이 아군련대를 량옆에서 공격하고있었다. 방어진지도 채 굴설 못하고 방어전을 벌리는 련대는 중대인원도 채 못되는 백환의 대대에 증강해줄 력량이 없었다. 사단참모부는 백환에게 만약 릉선을 지키는 련대가 토막나는 경우 남쪽에 포위될 련대의 일부 중대와 소대들, 개별적전투원들로 대대를 보강하여 고지를 원형방어할데 대한 명령까지 떨구었다. 백환은 그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 경우 정전의 신호탄이 오른 시각부터 이 고지는 군사분계선을 등뒤에 감고 적진에 홀로 솟은 섬으로 될것이다.

폭격, 포격. 적의 공격선두에는 여섯대의 땅크까지 나타나 악을 쓰며 고지를 톺아오른다. 쌍방사포군들은 더욱 맹렬히 불을 토하며 전쟁의 마지막날 하늘을 꽈당꽈당 흔들고있는데 아득바득 접근하고있는 제편까지 쓸어눕힐 정도여서 백환의 고지에는 적포탄이 이제는 날아들지 않았다. 다만 여섯대의 적땅크포가 울부짖고 거기에 장비된 대구경기관총이 둔탁한 총성을 울리며 전호턱을 우박쏟아지듯 하고있었다.

땅크, 적땅크만 까부신다면. 백환은 수류탄묶음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자기와 함께 최후결사전에 나설 전우들을 피타는 눈으로 골라보았다.

또다시 작렬하는 적땅크포탄. 누구인가 자기를 몸으로 덮쳤다. 이윽고 재더미, 흙더미를 털어던지며 마주보는 사람은 한달전에 새로 파견되여온 정치부대대장이였다. 그가 대대장의 가슴에 안겨있는 반땅크수류탄묶음을 틀어잡았다. 포탄이 작렬할 때마다 화끈 달아오른 불모래들이 휘뿌려박혀 험악하게 된 얼굴들이 마주 노려보았다.

《대대장동무, 무슨 생각을 합니까? 사단명령을 잊었습니까? 최악의 경우 두토막이 날 련대의 한쪽토막을 모아서 원형방어를 조직하라는 명령 말입니다. 살아서 명령을 집행하시오!》 그리고는 대대장의 손에서 빼앗은 수류탄묶음을 기발처럼 추켜들었다.

《로동당원들은 나를 따라 앞으로!》

살아남은 전투원들가운데서 대대장을 제외한 일곱명의 당원전체와 입당청원서를 가슴에 품은 다섯명의 민청원들이 정치부대대장의 뒤를 따랐다.

폭음! 폭음! 육탄이 자폭하는 장렬한 메아리… 적땅크들은 검은 연기를 피처럼 토하고 무한궤도를 추악한 머리채처럼 풀어헤치며 주저앉았다. 군사분계선은 적들이 주저앉은 돌출고지아래 골짜기로 건너갔고 백환은 잊을수 없는 그 지점의 전초선에 사랑하는 외아들인 서경을 내세웠다.

가렬한 전화속에서 그가 소대장으로부터 대대장으로 성장하여 전승의 시각을 맞이할 때까지 여러명의 정치부중대장, 정치부대대장들이 그가 지휘하는 근위사단 구분대의 혁혁한 무공에 밑거름이 되여 쓰러졌다.

전승의 환호성이 강산을 진감하는 고향에 휴가를 받고 돌아오는 스물여섯살난 대대장의 가슴에서는 금별이 빛났으나 그 정치지도원들의 고향에 전해진것은 소박한 훈장과 군공메달들뿐이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영웅관에 가보라. 가서 세여보라. 3년간의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 낳은 5백여명의 화선영웅들가운데 정치일군이 몇명이나 되는가를. 아마 열손가락이 모자라지 않을것이다.

청사에 불멸할 위훈을 세우고도 금별의 영예는 병사들과 군사지휘관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얹어주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추억속에만 고요히 남은 우리 군대의 수천명 화선정치지도원들. 바로 그들이 그때처럼 준엄한 오늘 고난의 행군대오에 신념의 기둥을 억세게 버티여주는 화선식정치사업의 위대한 전통을 창조한 인민군대의 당일군들이다.…

《고맙습니다, 영웅동지. 그런 훌륭한 정치지도원이… 꼭 되겠습니다.》

천영은 번쩍이는 눈으로 백환을 마주보다가 옆에 앉은 서경을 돌아보았다. 서경은 뜨거운 눈길로 아버지와 당비서를 마주보다가 고개를 수그리였다.…

손님들이 다 돌아간 다음 서경은 웃방에 홀로 앉아 책상우에서 고요히 타오르는 초불을 마주하고있었다. 방금전에 아버지가 한 말이 귀전을 떠나지 않았다.

《난 경제는 잘 모른다. 그러나 경제도 군사와 같다면 교훈적인 얘기를 하나 하자.

20년전 일이다. 군사대학 재직반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이전 쏘련군원수가 쓴 회상수기를 읽은적이 있었다. 필자는 꾸르쓰크격전을 회상하면서 그때 예비대를 옹근 한개의 전선군으로 편성한것은 분명 쏘베트군사예술이 거둔 성과였지만 사용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때문에 더 거둘수 있는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했다. 수십년이 지나서 쓴 회상록에서 그때의 예비전선사령관은 자기의 옛 상관들을 비판했지.

부대장들이였던 우리는 그것을 읽으면서 일리가 있는 소리다, 만약 그렇게 됐더라면 2차대전행정에서 변혁적의의를 가지는 그 작전은 더 큰 전과를 거두었을것이다 하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작전교원은 견해를 달리했다. 그 책임은 상급참모부에 있는것이 아니라 현지의 야전지휘관들에게 있다는것이였다. 그들이 최사전략적기도대로 제구실을 똑똑히 했더라면 정예의 예비전선군을 일시에 투입하지 못하고 개별적집단군들로 쪼개서 어려운 모퉁이마다 밀어넣어야 할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교원동지는 강조했다. 구분대장으로부터 대련합부대사령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야전지휘관들이 어떤 정황에도 대처할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되지 못한다면 최고사령부의 전략이 흔들리는 그런 엄중한 후과를 가져온다고.

명심해라. 경제전선의 야전지휘관인 네가 구실을 똑똑히 못하면 당의 경제전략을 옳게 관철할수 없다는것을.》

서경은 소중히 품고다니는 빨간 비로도주머니를 꺼내여 자기와 안해 두 심장이 함께 간직되여있는 그것을 조용히 쓸고 또 쓸어보았다.

오늘 아침 그는 시험포전에서 순직한 로학자의 뒤를 이어 연구조의 책임연구사로 임명받았다는 옥심의 짧은 편지를 받았다. 연구소 당조직은 옥심을 서른두번째 육종시험을 또 준비해야 하는 이 꾸준한 연구조의 세번째 책임연구사로 임명했던것이다.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왔다. 서경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좀 쉬려무나. 밤이 깊었는데.》

《자겠습니다. 어머니도 쉬십시오, 먼길에 힘드셨지요?》

렴순은 아들의 얼굴을 다정히 어루만졌다.

《고생많았겠구나. 죽을 기를 쓰구 일했다는데.》

서경은 어머니의 손을 따뜻이 움켜잡았다.

《군인인 아버지 뒤바라지를 하느라고 한생 고생많으신 어머니한테 며느리밥상 한번 올리지 못했습니다. 나이 서른이 지나고 아버지가 돼서도 어머니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이런 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눈귀에 맺히기 시작하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래서 내 아들, 며느리가 더 장하다. 이제 인차 옥심이한테두 가보자구 했다. 큰일하는 외며느리 잔등한번 쓸어주지 못했으니 일이 됐냐? 호영이두 이젠 데려다 제 아비곁에서 키워야지? 그녀석두 범새끼루 키우자꾸나.》

서경은 그 말에 대답 못하고 창가로 돌아섰다. 도시는 정전이여도 항구에는 무역짐배들의 전등이 환하고 멀리 바다에는 전광어업을 하는 배들이 가득 떠있어 마치도 그쪽이 도심인듯 한 고난의 해안도시 밤풍경이 가슴아프게 안겨왔다.

《호영인 데려오지 맙시다. 옥심이 있는데서 청진은 350리지만 여기는 650립니다. 곁에 끼고있지는 못해도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있으면 그만큼 힘이 될겁니다. 좀더 크면 유치원두 학교두 제 엄마곁에서 다니게 하겠습니다. 옥심인 눈물이 많은 녀잡니다. 그리구 옥심인…》 책상우에 놓여있는 빨간 비로도가 왈칵 안겨와 서경은 목이 꽉 메였다.

그 시각 류진에서 650리 떨어져있는 연구기지에는 늦은 밤에 그곳에 도착한 연구소 초급당비서가 네명의 연구조성원들과 심중한 협의를 하고있었다.

《책임연구사동무, 이건 한두사람의 생각이 아닙니다. 혁명과업수행과 가정을 하나로 결합시킬수 있는 방도가 그렇게도 없겠는가고 류진바다가양식사업소 초급당에서 안타까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편지를 돌려보며 우리는 모두가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류진도 동해안 북부고랭해가 심한 곳입니다. 고집부리지 말고 시험포전을 류진으로 옮깁시다. 이건 당조직의 요구입니다.》

당조직의 요구!

옥심은 말없이 창가로 돌아섰다. 꿈결에도 그리운 남편에게로 당조직은 자기를 데려다주려 하고있다.

(여보 호영이 아버지, 우리 부부를 위해서 당조직이 이렇게 고마운 결정을 채택했군요. 당신 이걸 알고계셔요?)

추억이 있다, 못 잊을 추억이.

이제는 두해가 지난 봄날 옥심이가 호영이를 임신한지 다섯달이 좀 넘었을 때였다. 생각지 않게 나타났던 서경. 선자리에서 돌아가야 한댄다.

《옥심이, 보고싶었소.》

《나두 당신 보구싶어서 울었어요.》

서경은 두손으로 안해의 얼굴을 싸쥐고 들여다보았다. 안해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속삭이듯 조용히 물었다.

《언제요?》

《뭘 말이예요? 난 몰라.》

《난 옥심이가 어머니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소.》

《자기 아버지되는건 기다려지지 않나요?》

《그날이 그날이지 뭐요.》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얼굴을 쳐든 옥심은 함빡한 정을 담아 서경을 그윽히 올려다보았다.

《난 당신처럼 씩씩한 아들을 낳고파요.》

《그래 옥심이, 우리 딸도 낳고 아들도 낳고 많이 낳아키웁시다.》

그 말에 옥심은 기겁한 시늉을 하며 남편을 밀어놓았다.

《어마나! 그러다 연구사업은 언제 하구? 당신 욕심꾸러기.》

옥심은 다시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 당신한테 부탁할거 있어요. 들어주지요?》

《뭐요? 옥심이가 바라는거라면 하늘의 별도 따오겠소.》

옥심은 반색하며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약속했어요! 뭔가면 응― 이제 두달 있으면 난 산전휴가 받게 돼요. 산전산후휴가는 어머니가 되는 녀자들만 받는 국가혜택이거던요. 나 휴가 받으면 류진에 가두 되지? 당신곁에서 애기낳구파요.》

서경은 머리를 저었다.

《친정에 가서 아이를 낳소.》

옥심은 도리질했다.

《싫어요, 난 류진에 갈래. 당신곁에.》

힘겹게 다시 고개를 젓는 서경의 눈길이 떨렸다.

《류진엔 아직… 집이 없소. 그리구…》

그러자 옥심은 단박에 눈물이 가랑가랑해졌다.

《집없어두 좋아요. 당신이 살고있는 려관방이라두 일없어. 어서 오라구해요, 응?》

그러나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남편은 묵묵히 대답이 없었다.

《머리만 한번 끄덕 해줘요. 이렇게 한번만. 난 당신이 그리워 죽겠어. 오라구 해줘요. 하늘의 별이라두 따다준댔지 않았나, 약속하지 않았나. 기다리겠으니 오라구 한마디만 해줘요. 안된대두 말이예요.》

그리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서경은 애처로운 그 울음에 가슴이 찢겨져왔다. 이런 녀자가 어떻게 결심하고 이 먼길을 나섰단 말인가. 이런 눈물많고 연약한 녀자가.

그러나 남편의 머리카락과 가슴을 홈빡 다 적셔놓았던 그 눈물많고 연약한 녀자는 산전휴가의 마지막날까지도 시험포전에 바치고 농장진료소에서 해산했다. 그리고 안해의 애처로운 울음에 가슴이 찢겨지던 남편은 그런 안해의 해산에 찾아가보지도 못하고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짤막한 전보만을 날렸고…

가장 연약한것이 가장 굳센것으로, 가장 굳센것이 가장 연약한것으로 한데 어우러진 그 추억―

옥심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결연히 얼굴을 쳐들었다.

《시험포전은 옮기지 못합니다. 어째서 바로 여기에 시험포전의 첫 말뚝이 박혔는지 우리 알지 않나요.

이삭이 머리를 숙여야 할 계절이지만 랭해로 결실을 못 맺고 빳빳이 고개를 쳐든 논벌을 오래도록 바라보시면서 북부동해안농사에서는 어떻게 하나 랭해에 견디는 종자를 육종해내야 한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간곡한 교시를 수령님께서 가슴아프게 바라보신 이 논벌에서부터 관철하자고 했던 전세대 연구사동지들의 고결한 뜻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시험포전이 보이는 저 등성이에 묻어달라고 했던 첫 연구사동지의 묘를 두고 가긴 어디로 간다고 그러나요?

시험포전을 옮기자는 고마운 당조직의 믿음을 저희들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걷게 해주는 어머니당의 사랑으로 심장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당원증처럼!》

눈물많은 옥심은 이렇듯 강한 녀성이였다.

650리밖에서 벌어지고있는 이 모임을 아직은 알수 없는 서경이였지만 빨간 주머니안에서 자기 심장과 함께 고동치는 안해의 이 심장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그 주머니를 보며 목이 꽉 메여와 어머니에게 더 잇지 못한 말도 바로 나의 옥심은 강하다! 이 웨침이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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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 단동 - 로동 - 2021-12-28
안녕하십니까? 제가 조국에서 이 도서를 열람할때 기억에 의하면 1장이 시작되기전 주인공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언약하는 서문이 별도로 존재했던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이 루락되였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자 - - 관리자 - 2021-12-30
미래선생의 기억이 정확합니다. 빠진 서문내용을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열람해주시기 바랍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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