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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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여 해심은 기다리고기다리던 자기 지배인의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양식떼를 실으러 오후에 자동차가 넘어가니 그 차로 돌아오라는 지시였다.

해심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이곳에 넘어와서 석달하고도 보름! 길었던가, 짧았던가? 꿈결에도 바다를 잊어본적이 없었다. 아, 정든 바다, 내 사랑 바다. 그 바다가 나를 부른다!

서경은 빈틈없이 인계하고 매 사람 빠짐없이 인사를 잘하고 오라고 각별히 당부했다. 정든 지휘관들, 친근한 자기 사람들이 있는 바다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처녀는 들떠있었다.

오후에 바다가양식사업소의 자동차는 갖가지 수산물들을 한가득 싣고 넘어왔다. 그동안 외지에서 신세를 많이 졌을 영예군인조합사람들에게 해심이대신 인사해주는 서경의 통이 큰 마음이였다.

《해심기사가 크긴 커. 소수점아래 다섯자리까지 쪼갠다는 수자지배인이 소수점우로 다섯자리가 넘게 마음 쓰는걸 보니.》

일이 바빠서 못 넘어가니 안됐다고, 그동안 해심이를 따뜻이 돌봐준 영예군인들과 가족들에게 바다사람들의 인사를 보낸다는 서경의 편지를 돌려가며 읽고나서 조합관리위원장이 하는 말이다.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소. 앞으로도 종종 오라구. 배워주러도 오구 놀러두 오구. 기사동무가 시집갈 땐 그릇가지들을 우리 조합이 다 맡겠소.》

손을 꼭 잡아주는 관리위원장을 해심은 정을 담아 마주보았다.

《이젠 기사동무라구 하지 말구 해심이라구 불러주세요. 관리위원장동지네 집에서 백밤넘어 자지 않았나요.》

《그러지. 해심이, 이름처럼 바다의 마음을 안고온 해심이는 우리 집식구구 우리 조합식구야. 이 령감 보러 자주 오지?》

《네, 자꾸자꾸 오겠어요, 아저씨. 이젠 이렇게 불러도 되지요?》

허리에 철편을 넣은 가죽띠를 차고있는 관리위원장은 해심의 어깨를 정답게 쓸어주었다.

《그럼! 내 꼭 좋은 아저씨가 되지. 헌데 친한 총각 생기면 이 아저씨한테두 손목잡구 넘어와서 인사시켜야 돼.

좋은 총각 붙여줄 마음이 있긴 하지만 에라, 그만둔다. 해심이두 잘 아는 총각이니 내 아니래두 어련할라구.》

누구를 념두에 두는지 해심은 대뜸 알아차렸다. 참성게!

부지중 《성게두 고런 참성겐 없어.》 하던 정란의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찬우아바이도 설날에 참성게 고르듯 좋은 신랑감을 골라잡으라고 했지? 양식하는 사람들이여서일가? 남자 좋으면 좋았지 하필 참성게에 비유할건 뭐람.

해심은 관리위원장의 말을 천연스럽게 받아주었다.

《전 아는 총각이 많아서 누굴보고 그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생각하는 그 사람한테 말씀해주세요. 해심이는 긍지를 가지고 제 길을 끝까지 갈테니 그쪽에서도 변심없이 자기 길을 가라고요. 우리가 걷는 길이 한길이라면 탈선없이 걸을 때 바다의 마음은 통채로 그쪽에 갈거라고 말이예요.》

말하고나서 해심은 즐겁게 웃었다.

보고싶은 그! 시안의 각 경제단위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그 경제보도기자가 이 시각 어디에 있을지 해심은 알수 없다. 그러나 처녀는 매일 아침, 낮의 시방송을 들으며 문광의 종전행적을 알군 했다. 문장이 음악처럼 굴곡있고 률동적으로 흐르며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고 절절한것이 특징적인 그 문체는 이젠 귀에 익어놔서 신문이나 잡지와는 달리 《본사기자 ㅇㅇㅇ》이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는 방송기사를 들으면서도 그가 쓴 글이라는것을 해심은 제꺽 알아차리군 했다. 순탄하면서도 음악적인 문장흐름, 방불하고 생동한 묘사, 구체적인 자료들을 들어가며 차근차근 설명하는 설득력, 깊이 파헤치고 명백하게 갈라놓는 분석력, 그 모든것들이 종합되면서 울려나오군 하는 절절한 호소…

어느때든 문광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눌 때가 오면 해심은 이것을 꼭 말해주고싶었다. 그러면 그는 자기의 글이 분석화학전문가인 처녀의 분석대우에서 정량적으로나 정성적으로나 세밀하게 분석되고있은데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것이다.

바다가양식사업소의 정문은 해심을 맞이하느라고 활짝 열려져있었고 양식떼를 가득 실은 자동차는 거침없이 날아들어가 마당복판에 멈춰섰다. 천영과 정란, 가공반과 공무반사람들이 해심을 열렬히 맞이해주었다. 무한한 행복감. 해심은 아마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것 같았다.

《해심아, 넌 정말 큰일을 했어. 난 마음만 먹으면 뭐나 다 하는데 속상하게두 이런 일만은 못하지 않니. 그런데 넌 이런것두 마음만 먹으면 하누나, 랭각기개조때부터.》

정란은 이러면서 발뒤축을 돋구어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큰 해심의 량볼을 쪽!쪽! 소리가 나게 빨아주었다.

해심은 자기 손을 꽉 쥐고 흔들며 《해심동무, 정말 수고했소. 큰일을 했소. 이제는 원가를 낮출수 있게 됐소, 원가를!》 하고 열정적으로 부르짖을 사랑하는 지휘관을 찾아보았으나 그때에야 마지막미역더미들을 만짐하고 풀섬양식장을 떠난 청년반의 배들은 아득한 바다길에 줄지은 점으로 아물거리고있었다. 200마력기관선에 줄지어 끌려오는 그 열한개의 점들중 어느 한점에 서경이 있는것이다.

힘겨울 때 누구보다 가까이 있고 누구보다 크던 자기 지배인이 기쁘디기쁜 이 시각에는 왜 그렇게 멀고 왜 그렇게 작은 점으로 있는지. 아니다. 기하학에서 점이란 크기는 없고 오직 위치만을 표시하는 특수한 도형이지만 그 시각 우리 바다에 떠있는 그 점은 자기가 어디에 있건 현존하는 위치는 무시되고 절대적인 크기만을 나타내는 그런 존재였다.

양식떼들을 부리우려고 할 때 해심이를 맞이하느라고 그때까지도 열려있던 사업소정문으로 무슨 짐인지 가득 싣고 방수포까지 씌운 세멘트공장의 대형화물자동차 한대가 그대로 통과해들어와 모여섰던 사람들의 옆에까지 와서 삑 멎었다. 운전칸에서 뛰여내린 사람은 지배인 권민이였다.

《지배인동무 어디 있소? 동무네 지배인, 음? 음, 비서동무가 있구만. 내 청진에 갔다가 동무네 지배인 부모님들을 모시고왔소.》

모두가 깜짝 놀라며 운전칸을 쳐다보는데 《뭐요? 누구? 어디, 어디 계시오?》 하며 자동차쪽으로 달려가려는 천영을 권민이 붙잡았다.

《아, 아, 왜 이렇게 덤비오? 마저 듣지 않구, 음? 집앞에 내려놓구 왔단 말이요. 얼른 가서 서경일 데려오겠다구.

청진갔다 오는 길에 외가집에서 사는 고녀석 사탕이나 한봉지 주자구 들렸댔는데 그 부모님들이 먼 황해남도에서 오늘 새벽에 거기 도착하셨더구만. 음, 사돈님들 인사나 나누구 호영일 데려오자구 들렸다는거지.

자네가 편지했다면서? 힘든 일 하는 아들곁에 돌봐주는 어머니가 계셔달라구. 확실히 괜찮아. 어로공출신이란 말이야. 당사업, 음? 당사업하는 사람이 달라, 음!》

천영은 제 어깨를 두드려주는 권민의 손을 밀어버렸다.

《말두 길군. 늙었나? 헌데 왜 여기루 모셔오지 않구 빈집에 내려놓구 온단 말이요? 지배인 지금 저기 있소. 저―기. 빤한것 같애두 몇마일인지 아나? 한시간은 걸려. 사람두 덜퉁하기란. 그러니까 소성로두 한번에 잘해놓지 못하구 밤낮 개조하면서 발명권 세개나 타먹었지?》

권민은 어처구니없어 허 웃었다.

《이 사람 말하는거 보라, 음? 발명권 많이 탄게 욕벌이 될 때두 있구만?》

《됐네. 호영이두 왔겠구만.》

《아니.》

《왜?》

《고녀석 가자니까 어디 말을 듣나? 제 아비처럼 눈 똑바루 뜨구선 이게 다 믿을수 있는것들이야? 하구 이 얼굴, 저 얼굴 뜯어보다가 제 외할미목에 도루 감기더라구. 안 가겠대. 거짓부리라는거지. 아버지한테 갈 땐 엄마가 와서 데려가군 했다는거야, 음.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다 하구 가르쳐줘서 무릎에 앉기까지 했댔는데 자다깨서 오늘 아침에 처음 본 령감로친 내가 어떻게 믿구 점심숟갈 놓자마자 따라가? 이런 속심이지, 음.

어쩌면 아귀가 딱 맞게 움직이는 제 아비 먹구 게웠는지. 그래서 인차 외할머니가 데리구 들어와서 며칠 같이 있으면서 외켠에 붙은 정 친켠에 돌려주기루 작정하구 왔네, 음.》

천영은 희슥한 머리카락을 쓸며 서경이 돌아오는 바다를 덤덤히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은 양식사업소 사람들도 어쩐지 가슴이 쓸쓸해졌다. 저녁노을이 비낀 바다는 고요히 설레이고 그우에서 갈매기무리가 꺄우― 꺄우― 하는 소리는 그 무엇인가를 하소연하는것만 같았다.

말없이 서있는 천영에게 권민이 독촉했다.

《그렇다구 지배인 올 때까지 로인들을 아빠트마당에 한정없이 앉혀두겠나, 음? 나두 바빠. 공장에 들리지두 못했거던.

찾아보라구. 그 깨끗한 지배인 바다에 나갈 때야 작업복 사무실에서 갈아입구 갔겠지? 열쇠라두 찾아주면 빈집일망정 앉혀드리구 가겠네, 음.》

귀를 바싹 강구고 속상해하던 정란이 손벽까지 치며 나섰다.

《옳습니다. 지배인동진 작업복 갈아입구 바다에 나가셨어요. 사무실에 걸어놓은 양복주머니에 집열쇠가 있을겁니다. 제가 찾아내오겠습니다, 비서동지.》

천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란은 제꺽 해심이를 불렀다.

《해심아, 이리 와. 같이 가자.》

그들은 사무청사 2층에 있는 지배인방에 들어갔다. 모든것이 질서있게 정돈되여있는 그 방에 몇달만에 들어오는 해심이가 저으기 감개무량해져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등뒤에서 정란이가 절컥 하고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의아해져서 돌아보는 해심의 팔을 잡아당긴 정란이 눈을 똑바로 뜨고 따지기 시작했다.

《자, 여긴 우리밖에 없어. 문밖에서 엿들을 사람도 없구. 그런건 나밖엔 못하니까. 그러니 말해봐. 문광동무 너한테 몇번 갔댔니? 그 사람하구 살 마음이 있어, 없어? 빨리 말해. 밖에선 우릴 기다려.》

그러면서 처녀를 방구석에 몰아넣는데 빠질데도 없고 물러설데도 없는 구석에 해심은 꼼짝 못하고 갇혔다.

은향이도 바로 그랬다. 남다 퇴근하고 조용한 사업소잔교, 빠질데도 물러설데도 없는 끝에까지 몰려가서 가슴속에 남모르게 움터나던 철국에 대한 사랑을 끝끝내 토설하고야말았던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철국이가 자기 표현대로 말한다면 오직 한길만 남겨두고 일체의 통로들을 다 차단하면서 조여드는 정란의 맹렬한 조애사격에 쫓겨 은향이를 덥석 그러안았고.

서로 좋아하면서도 바다처녀, 바다총각답게 툭 터치지 못하는 그 꿀먹은 벙어리들을 불처럼 확 타게 한것이 자기라고, 너네도 그렇게 만들테니 어디 두고보라고 정란은 해심에게 이미 말했었다.

《난 마음만 먹으면 뭐나 다 하는거 알지? 흥, 아궁이에 하나가득 박아넣는 장작개비 하나씩 하나씩 다 불붙여서 넣던? 한두가치 먼저 불살리고 그 불에다 다 걷어넣는거지.

사랑이라는것두 같애. 꼭 두쪽 다 불붙어야 되는건 아니야. 한쪽만 먼저 활활 붙여놓구 다른쪽을 그 불에 던져넣는게 더 빨라. 너네 둘중 어느 쪽을 먼저 불달아놓는가 하는건 내가 마음먹기탓이다.》

그런데 마음만 먹으면 뭐나 다 한다는 이 녀자의 손에 먼저 불살려야 할 대상으로 해심이가 걸려든것이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움트기 시작하는 감정을 본인이 아닌 3자에게 자기 입으로 토설하지 않고서는 못배길 요런 막다른 골목에 빠질줄이야.

해심은 발을 탕탕 구르며 조여드는 정란의 손을 잡으며 사정했다.

《제발 이러지 말아요. 문광동지가 좋은 사람이라는걸 동무보다 이젠 내가 더 잘 알아요. 그러니 제발 비는데 아무 말도 말아줘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쏟아놓고보니 그 말은 결국 그와 살 마음이 있다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정란의 얼굴에 흡족한 웃음이 어리는것을 보고서야 제 말의 뜻을 알아차린 해심은 그만 돌아서서 얼굴을 싸쥐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거나말거나 정란은 제 볼장을 다 봤으니 이젠 됐다는 식으로 돌아서서 그제야 옷걸이에 걸린 서경의 양복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됐다. 살 마음이 있다니 넌 이젠 더 다치지 않겠어. 은향인 그때 나보구 사랑이란 감춰둘수록 커진다구 얼빠진 소릴 하더라만 어느 외국소설책에서 그따윌 읽었는지 물 지내 탄 술처럼 술두 아니구 물두 아닌 얼빤한 련애나 해본 사람이 쓴걸거야. 사랑이라는건 혼자 끙끙 앓을 땐 기껏해서 불찌같은거지만 아무한테라두 뱉아만 놓으면 그 다음부턴 활활 타는 불이 된단다.

내 경험이야. 내가 바로 그랬어. 흥, 아무렴 바다처녀가 한번 마음을 두었으면 사는거지 타산하구 고르구 하겠니?

정말이다. 내 경험이야. 너넨 이젠 먹구 떨어졌다. 고 참성겐 내게 맡겨라. 난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거 없어.》

해심은 억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하는데 마침내 열쇠뭉치를 꺼내든 정란은 《요건 사무실열쇠, 요건 서류함열쇠…》 하다가 집열쇠를 찾아 고리를 뱅글뱅글 돌리면서 뽑아냈다. 그러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했다.

《그런데 해심아, 난 말이다. 잔치 언제 하는가 하는건 또 상관 안하지 않니. 너네두 불만 달아놓은 담엔 잔치성화는 안 먹이겠어. 은향이 보렴. 삼년이나 활활 타다가 입당하구 이제야 잔치하는걸. 그래두 어디 그 불이 식던? 그러니 너두 은향이처럼 입당한 담에 잔치하겠으면 하구 박사가 된 담에 애기업구 하겠으면 하구 마음대루 해라.

너두 이젠 바다처녀니까 사랑은 나처럼 해야 돼. 이것저것 재지 말구. 아무래두 주는 정 아끼구 남기구 하지 말구 콱콱 주란 말이다.

젖은 나무처럼 실실 타지 말구. 녀자라는건 달짝지근하기만 해선 안돼. 바다물처럼 짜구 쓴맛두 있어야지. 소금빼구 서슬빼구, 그래야 슴슴한 맹물밖엔 안 남아. 우리가 뭐 하늘나라 선녀들이냐?》

날바다처럼 야생적인데가 있는 그 말에 해심은 얼나간 사람처럼 서있기만 했다.

《됐다, 빨리 가자. 밖에서들 기다리는데.》

덤벼치며 걸어놓았던 양복이 떨어져서 다시 집어올리는데 안주머니에서 무엇인가 떨어졌다.

《얘, 해심아, 이리와. 이게 뭐야?》

정란이가 손에 쥔것은 빨간 비로도로 만든 작은 주머니였다.

《쟈크까지 달았구나. 아주머니가 만들어준거겠지? 무슨 보물이 들어있나 좀 꺼내볼가?》

해심은 기겁했다. 정말 재는것도 무서운것도 없는 녀자.

《걱정두. 기다리는 사람들이야 아무래두 기다리는거 쪼꼼 더 기다리면 죽는대? 그리구 지배인동진 봐라, 아직두 저―기 점이야, 점. 한마일이나 되는거 알지? 꺼내보구 우리 둘만 입을 딱 다물면 소수점아래 다섯자리가 아니라 열다섯자리까지 세는 지배인이라두 어떻게 안대?》

해심은 단호하게 막아나섰다.

《안돼요, 정 그러면 난 나갈래요.》

그러자 암팡진 그 손이 해심의 손목을 딱 움켜잡았다.

《어딜 나가? 안돼! 넌 아직 날 다 모르는구나. 나하군 한번 친했으면 훈장탈 좋은 일두 같이하구 쫓겨날 나쁜 일두 혼자 몸사리진 못해.

흥, 있어! 여기. 달아나기만 해봐라. 진해심이가 남몰래 문광이 마음두구 있다는거 온 시내에 공포하구말테다. 난 마음만 먹으면 뭐나 다 하는거 알지?》

감때사나운 바다녀자의 손에 해심은 이렇게 코꿴 송아지처럼 딱 매이고말았다. 처녀의 비밀을 강박해서 뽑아내고 이번에는 그 비밀을 지켜준다는 터무니없는 담보로 이런 《비도덕적인 행위》의 공범자로 만들어버렸던것이다. 정말 어쩌다가 이런 녀자에게 말려들었는지…

《야 해심아, 이게 뭐야? 이건 편지들이구나.》

편지였다. 세통의 편지. 옥심이가 보냈던 두통의 편지와 옥심에게 보내려고 썼던 서경의 편지. 세통의 편지들은 다 손때묻고 보풀까지 일었다.

동무가 우리 경제의 억센 대들보감이 될 때까지 사랑을 보류하자는 편지,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하여 목숨보다 귀중한 사랑마저도 어머니조국에 바칠 결심이 담긴 편지 그리고 하나는 결혼을 결심한 서경의 3년전 편지였다.

지식인남녀의 뜨거운 심장의 고동들이 쾅쾅 울려나오는 그 편지들을 읽어내려가는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에 이런 사랑도 있단 말인가!

《이런 남자였구나! 해심아, 우리 지배인동지가 이런 남자였어!》

정란은 눈물이 그렁해서 아득한 바다길에 찍혀있는 그 점을 내다보았다. 해심이도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바위를 치는 파도처럼 가슴을 세차게 들이치는 열혈남아의 불타는 웨침을 다시, 또다시 읽었다.

《옥심이!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을 깡그리 바쳐주신 내 나라를 위하여 사랑도 바쳐야 한다는 동무의 불타는 심장을 나는 사랑한다. 더욱더 사랑한다.

바치자, 우리의 사랑을! 목적도 가치도 보람도 어머니조국과만 잇닿아있는 우리의 사랑이 아닌가.

바쳐야겠기에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동무는 잘못 알고있다. 사랑을 간직할뿐 결혼은 포기한다고? 아니다. 결혼이 없는 사랑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결혼이 단순히 가정이라는 말인줄 알아? 그것은 한 박동으로 고동치던 두 심장이 완전히 하나로 합쳐졌다는 뜻이야.

짧게 만나고 길게 헤여져 사는 부부생활이 일생을 간대도 좋다. 동무의 심장이 내 나라 경제를 수호하는 내 심장속에 있고 내 심장 또한 천리동해안에 무겁게 파도칠 벼바다를 안아오는 네 심장속에 있는 한.

옥심이, 우리 결혼하자. 우리의 두 심장이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임을 자랑높이 선포하고 어머니조국의 축복을 받자!》

옥심에게 가있어야 할 편지가 어째서 3년째나 지배인의 품속에 간직되여있는지 해심은 알수 있었다. 서경은 편지를 보내놓고 앉아서 회답을 기다릴 그런 남자가 아니다. 그는 이 편지의 글줄을 마음속으로 웨치며 옥심을 찾아떠났을것이다, 결혼하러.

바다를 지키고 가꾸는 결사의 투쟁에 기발이 되여 나붓기고 홰불이 되여 타오른 자기네 지휘관은 이렇듯 뜨거운 심장을 지닌 참된 사나이인것이다. 강철같이 굳센 남아가 힘겨울 때마다, 안해가 그리울 때마다 펼쳤을 소중한 그 편지들을 심장가까이의 제자리에 정히 넣어두고 그들은 방을 나섰다.

눈굽을 닦으며 복도를 걷던 정란은 해심의 팔을 끄당겨세웠다.

《해심아, 네 생각엔 어떻니? 난 이자 본걸 우리 사람들한테 죄다 말할테다. 한사람도 빼치지 않구 다 말하겠어!

그리구 명심해. 사랑이라는건 저렇게 뜻을 가지구 하는거다. 넌 아직 사랑을 속살거리기엔 일러, 일러! 옥심선생처럼 뜻부터 높이 세워놓구 사랑을 해도 해야 돼. 그래야 지배인동지처럼 훌륭한 남자의 사랑을 받는단다.》

그리고는 손을 잡아끌며 바람같이 계단을 달려내려갔다.

밖으로 달려나온 그들에게 권민이 눈살을 찌프렸다.

《무슨 열쇠 하나 찾는게 그렇게 오래나, 음? 찾긴 찾았구만. 이리 주, 음.》

그런데 정란은 고개를 저으며 그 열쇠를 제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비서동지, 저와 해심이가 따라가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준비해놓겠습니다. 오늘이야 미역가을도 끝낸 날이겠다, 부모님들도 오셨으니 지배인동지 기쁜 날이 아닙니까. 한상 뚝 부러지게 차려놓구 모여앉으면 좀 좋겠나요? 비서동진 지배인동지랑 같이 일을 끝낸 다음에 오세요. 너무 늦으면 안돼요.

그리구 세멘트공장지배인동지두 부리울거 부리우구 우리 지배인동지네 집에 오십시오. 남자들이야 친구의 기쁜 일에 왁 모여들어서 축하해주는게 멋이 아니나요. 그렇지 않니? 해심아.》

말은 천영에게 떼놓고 권민을 휘감아서는 최종결론권은 마치 해심이에게 있는것처럼 척 돌려놓는 재빠른 그 말에 천영도 웃고 권민도 웃었다.

《왁 모여들어서 축하해준다? 음, 동무 기업소에서 로동정량 본다구 했던가? 좋아, 아주 좋아. 음, 타라구. 해심이두 가자, 음.》

껄껄 웃는 권민과 머리를 끄덕이는 천영에게 정란은 바쁜소리를 쳤다.

《가만, 잠간만 계셔요. 벌려놓은 일들을 마무리하구요. 잠간이면 돼요. 제깍해요. 해심아, 이리 와.》

그다음엔 바람개비처럼 여기저기를 돌아치는 정란의 손에 끌려 해심은 정신도 못 차리고 뛰여다녔다. 참견하고 훈시하는것이 얼마나 많은지. 하긴 사업소정문에서부터 풀섬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령역안에 정란이가 삐치지 않고 그 녀자의 눈길, 손길이 가닿지 않는 곳이란 없었다. 지배인 서경도 미처 관심 못하고 놓치는 일에도 정란이만은 딱딱 찾아들어가 걸싸게 해치우군 했다.

자기한테 차례진 일들은 노래부르듯 헐하게 해치우고나서 이일저일 가림없이 참견하고 도와주는 정란이여서 서경은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가지고 《정 할일이 없소? 그럼 이걸 좀 맡아주오.》 하고 웃으며 과업을 주고 또 주군 했다.

혹간 사람들이 분수없이 참견한다고 자기 말을 안 들을라치면 발까지 탕탕 구르며 《이건 지배인지시예요!》 하고 으름장을 놓는 기업소로동정량원을 사람들은 《지배인1대리인》이라고까지 불렀다.

지금도 그랬다. 무슨 신칙하고 당부하고 독촉하고 추궁하는것이 그리도 많은지. 해심은 아마 지배인도 그렇게는 못할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돌아치고와서는 이번엔 권민을 들볶았다.

《됐습니다. 가자요, 지배인동지.

아니? 아직 발동두 안 걸구 섰나요? 뭘 했어요? 대낮에 밖에 나온 수리부엉새처럼 머룩머룩들 서서.》

입을 허! 벌리는 권민과 해심의 등을 정란은 무작정 떠밀었다.

《꾸물거릴새 없어요. 늙은이들 기다리겠는데.》 하고 차에 오르다가 해심이를 돌려세웠다.

《아니다, 해심아. 넌 마실걸 좀 사가지구 와. 옆에서들 볶으니 잊을번 했구나.

늦으면 안돼. 남자들이 뭐라는지 아니? 세상에서 제일 기다리기 힘든게 안주 마련해논 놈이 술 가지러 간 놈 기다리는거래.》

부르릉― 하는 차발동소리와 함께 폭소가 터졌다. 그 우람찬 대형화물차가 발동이 걸려 차체를 부르르 떠는것도 사람들하고 같이 웃느라고 몸을 들썩들썩하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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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 단동 - 로동 - 2021-12-28
안녕하십니까? 제가 조국에서 이 도서를 열람할때 기억에 의하면 1장이 시작되기전 주인공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언약하는 서문이 별도로 존재했던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이 루락되였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자 - - 관리자 - 2021-12-30
미래선생의 기억이 정확합니다. 빠진 서문내용을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열람해주시기 바랍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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