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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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양식떼를 실은 자동차가 그리운 바다로 나갔다.
양식떼, 물통, 바께쯔, 소랭이… 사람들은 첫 제품들이 나올 때마다 콩크리트바닥에 꽝꽝 둘러메쳐보고는 주저앉아 흠집은 가도 깨지지 않는 그것들을 손으로 쓸어만지며 눈들을 슴벅거렸다. 칼렌다에서 새 열처리공정을 거치면서 빠져나와 필필이 감기는 비닐박막을 이쪽저쪽으로 잡아당겨보면서 찢어지지 않는다고 감탄들을 하였다. 파비닐로도 이런것이 나오느냐고.
사실 색도나 투명도는 그렇게 높은 수준이 못된다. 나프사분해공정에서부터 들어갈것이 다 들어가면서 나오는 외국산이나 우리 중앙공업제품에야 어떻게 대겠는가. 그 어떤 제품을 생산하든 화학공업은 고도의 정밀공업인데 아직 그런 기준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혼합물의 밀도도 그렇게 고르롭지는 못했고 성의를 다해 부어냈지만 생산된 제품에서 형타를 맞접었던 부분은 칼로 깎고 연마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어려운 시기에 자기힘, 자기 손으로 생산한 제품이다.
영예군인들과 가족들은 해심을 두고 평양제1고등중학교를 나오고 김일성종합대학까지 다닌 수재가 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힘겹게 찾아온 성공의 뒤끝에 이런 말을 듣는 해심은 어쩐지 허전한감이 들었다.
(수재? 그렇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 최우수교육을 받은 최고급전문가이다. 그러나 내가 해놓은 랭각기, 양식떼, 어느 하나에도 나의 새 발명과 연구는 없다. 이미 개발된 기술을 현장에 도입이나 했을뿐이다. 그것도 새 기술도입이 아니라 해당 부문들에서 이미 개발된지 오랜 기술들을. 내가 만약 전문부문에 들어가서 이만큼 노력했더라면…)
모두가 영웅이기라도 한듯이 자기를 떠받들었지만 기쁨의 첫 순간이 지나간 다음 해심은 이렇게 울적한 심사에 싸이군 하였다. 고도로 세분화된 전문지식을 배운 그였지만 어려운 지방의 현실은 이렇게 자기 전공과는 거리가 먼 기술기능부문에서 심혼을 바치도록 하고있다. 일생을 이렇게 볶이우다나면 대학때 아무리 우수했어도 전문연구기관에 들어간 자기의 동창생들보다 아득히 떨어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군 했다.
성공의 기쁨은 한편으로 이런 허전감, 허무감까지 안겨주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않은 이 속마음을 들여다본 사람이 있었다. 문광이였다.
첫 양식떼가 바다로 나간다는 보도를 현지에서 날리려고 찾아온 그에게 해심은 이것이 그렇게 떠들썩한 보도감이 되는가고 물었다. 하도 어려울 때니까 그렇지 원래는 보잘것 없는것이라고, 모든것이 정상이라면 사실 필요없는 공정이고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였다고.
그러자 문광은 처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길이 마주치자 해심은 어쩐지 떳떳치 못한것 같은 눈길을 내리떨구었다. 문광은 심중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 마음은 알만 합니다. 리상과 현실과의 차이, 욕망과 실천과의 차이. 때로 허무하게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더우기 최첨단수준에서 교육을 받은 동무에게는 말입니다.》
차마 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정통으로 찌르는 그 말에 해심은 가슴이 뜨끔해졌다. 겸손의 연막속에 가리워진 허무감, 허전감을 대번에 간파한것이다.
문광은 현장에 쌓인 수지제품들을 하나하나 쓸어보며 오래도록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동무는 자기가 큰일을 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술발명의 수준,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고난속에서 캐내는 석탄 한덩어리가 흔하고 넉넉할 때의 몇톤보다 더 귀중합니다.
동무는 보잘것 없는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버이수령님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고 우리 장군님의 사랑이 어려있는 이 영예군인조합이 고난의 시기에 지식과 넋을 바쳐 자기를 살려낸 진해심기사를 잊을것 같습니까? 또 동무가 만들어낸 저 양식떼들이, 춤추는 바다가 동무를 잊겠습니까? 제힘으로 고난을 헤쳐나가는 오늘이 있어 첨단으로 비약하는 래일이 올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큰일을 해냈다는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이건 중요한겁니다.》
해심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큰일, 긍지를 가져야 한다, 내가 한 일이 그렇게도 큰일이였단 말인가!
가슴속에 무엇인가 큰것이 들어앉는듯 했고 지금까지의 허전감, 허무감이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처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고맙습니다, 기자동지.》
문광은 밝게 웃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거라는데 또 하는구만요.》
친근감을 자아내는 그 말에 해심이도 웃었다. 떠나는 그를 바래우며 정문으로 나가면서 해심은 불쑥 물었다.
《기자동지는 중앙급기자들이 부럽지 않나요? 그들은 전국 아니, 전세계를 대상하는데.》
어째서 그런 왕청같은 물음이 불쑥 나갔는지 모른다.
해심은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이 딱 나타날 물음이였던것이다. 부럽지 않다고 하면 솔직치 못하거나 포부가 낮은 사람이 되고 솔직히 부럽다고 한다면 좀전에 자기한테 했던 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대답이 어떻게 나오든 다 마음에 들지 않을것이다. 어쩌자고 이런 못돼먹은 물음이 떠올랐을가 하고 가슴을 조이는데 대답은 전혀 예상밖이였다.
《생활에서 사람들은 자기 동네이야기에 관심이 더 큰 법이지요? 그래서 지방방송, 지방신문이 있는거랍니다. 당정책이 사람들의 생활에 가장 가깝게 전달되라고 말입니다.》
겸손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였다. 자기 직무에 대한 당당한 긍지와 뜨거운 애착이 진실하게 울려나왔다.
그는 떠났으나 밝게 짓던 그 웃음은 일기장을 마주하고앉은 처녀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은 일찌기 잠자리에 들려고 했으나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않은 내 속마음을 그렇게도 속속들이 들여다본 그것은 혹시 그가 나를 깊이 관심하고 주시하고있었기때문이 아닐가? 아니면 그 역시 나와 같은 심리세계를 이미 체험하고 이겨낸것일가? 그리고 이밤 그도 나를 생각하고있을가?
언제부터 시작되였는지는 알수 없다. 때없이 그를 생각하게 되는 이 마음이.》…
두달전 그 격렬한 회의뒤끝에 어깨를 떨며 흐느껴울던 그때부터였을가? 아니다, 그날의 울음은 벌써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기 지휘관들과 함께 문광, 그에 대한 처녀의 마음의 고백이였는지도 모른다. 하다면 이해의 첫날 자기네 둘을 맞세워놓고 정량원이 그러던 그때부터였을가?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아득한 첫 기슭에서부터였을수도 있다. 아직은 그 끝이 료원해보이던 풀섬개척의 힘겨웁던 날 조국의 섬이 부르는 약동하는 청춘의 새 노래를 마이크에 꼭 담으리라고 확신하던 그 방송편집물을 들으며 야간작업에 나가던 그밤― 파도소리 소연하던 그밤에서부터.
그가 처음으로 눈에 비끼던 그때가 잊혀지지 않았다. 겉보기와 다르게 강단있던 함마소리, 솜씨있게 귀를 맞추어쌓던 돌벽, 야간작업장에서 함께 나르던 막돌, 그 막돌을 나르던 길에 가로등처럼 주런이 꽂아놓았던 홰불들… 그 홰불들이 이밤 해심의 눈앞에 타오른다.
…《생각해보면 윤철오빠가 남기고간 파도그림이 우리들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그 그림에 담긴 뜻을 함께 간직하고 함께 이어가는것이여서 그와 나는 더욱더 가까와지고 귀중해지는것이 아닌가.
이럴 때 현숙이라도 가까이 있었으면. 현숙아, 생각나니? 함박눈 펑펑 쏟아지던 그 저녁 우리 둘이 팔을 꼭 끼고 눈내리는 거리를 끝없이 걸으며 나는 그에 대해서 너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했지. 그때 넌 깊은 생각에 잠겨 내 말을 들었고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어.
왜 그랬니? 그때 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곰곰히 했고 무슨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니? 나에게 그로 하여 잠 못 드는 이런 밤이 있을것을 너 그때 벌써 생각한것은 아닌지?》…
류인석은 현숙이와 운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소. 실장동무, 세멘트공장 책임기사동무가 동무네 건설장에서 생긴 사고의 원인이 자기들한테 있다는것을 알려왔소. 동무들한테 출하된 세멘트의 질이 표준수치에 이르지 못했다는거요.》
현숙이와 운호는 어리둥절해서 마주보았다. 류인석은 뒤짐을 지고 방안을 거닐었다.
《동무네 건설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운식동무는 마지막으로 출하된 세멘트의 품질을 자기가 직접 다시 분석해보았소. 현숙동무, 벽체의 마감보를 올린 세멘트는 실지보다 마르까가 20이 더 낮았소.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오?》
현숙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콩크리트혼합물의 양생기일을 한주일정도 더 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마르까가 최하 150아래로는 더 떨어지지 않는 경우라야 가능합니다.》
《동무네는 얼마로 알고있었소?》
《180~200으로 알고있었습니다.》
인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소. 겉은 다 굳었지만 속까지 완전히 굳어지지 못한 콩크리트보우에 무거운 강철트라스를 올렸으니 왜 그렇게 되지 않았겠소. 그 정도도 사실은 다행인셈이요.》 그리고는 망연히 서있는 현숙이를 자리에 앉혔다.
《우리가 그 보고를 받았을 때 이번에는 강재공장 당비서동무가 달려왔더구만, 정신없이. 리현숙실장을 어떻게 할가봐 말이요.》 인석은 그때 광경이 다시 떠오르는지 웃음을 지었다.
《사고심의를 중지시키고 동무에게 알려주자고 공장에 전화하니 초기를 만나 쓰러질번 한걸 운호가 발견하구 대책을 세웠다고 했소. 그래 여기 와있던 초급당비서를 욕했지만.》 인석은 잠시 말을 끊고 짐짓 엄한 기색을 지었다.
《현숙이, 앞으로 그렇게 몸을 혹사하는 일이 다시 나타나면 처벌하겠소.
그리구 운호두 틀려먹었거던. 침식을 번져가는 현숙일 잘 돌봐줘야지 그게 뭐요? 쓰러지게 된 림박에 가서야, 뭘 잘못했는지 알겠나?》
현숙이도 운호도 다같이 고개를 수그렸다. 처녀는 고마움에 젖어, 총각은 자책에 잠겨.
《초급당비서동무를 보내면서 생각해보니 안됐더구만. 오늘은 현숙일 일찌기 들여보낼겸 같이 가서 동무부모들한테 내가 사과하자구 했는데 어떻게 된거요, 운호가 같이 왔으니? 혼자 보내구 마음을 못 놓겠던게지?》
그 말에 현숙이가 깔끔하게 운호를 돌아보고 운호는 당황해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아닙니다, 절 보구 같이 가라구 했습니다. 깨워서 데리구 가라구, 우리 비서동지가 분명…》
인석은 허리를 뒤로 제끼며 웃었다.
《그 사람 엉큼하다? 전번엔 1등을 한 자기팀 주장한테 현숙일 통채루 안겨주더니 이번엔 현숙이한테 운호라? 하긴 오래간만에 산보삼아 둘이 같이 걷는것두 좋지.》
현숙이와 운호의 얼굴들이 빨개지는것을 지켜보던 인석은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어떻게 한다? 운호를 떼여놓구 현숙이만 데려갈수는 없구. 그렇다구 처녀네 집에 총각을 함부루 데려갈수도 없구.》
현숙은 달아오른 얼굴을 들며 일어섰다.
《고맙습니다. 비서동지, 전 사실…》
류인석은 서둘러 그들의 어깨를 눌러앉혔다.
《됐소, 됐소. 내 계획을 취소하지. 기왕 온김에 운호한테 한가지 과업을 주자.》 그리고는 자기 책상에 가앉았다.
《운호는 이제부터 기술을 더 련마하는것과 함께 공장경영, 경제운영실무도 배워야겠소. 공장의 기술공정만이 아니라 전반적생산공정을 파악하고 기업전략, 경영전략적안목도 겸비돼야 보다 훌륭한 기술자가 되구 공장의 진짜주인이 될수 있소.》
인석은 책상우에 놓여있는 현숙이의 설계문건들을 들고 일어섰다.
《현숙동무, 받소. 난 설계를 잘 모르지만 이 설계문건들에서 현숙동무의 불타는 사랑을 보았소. 한생을 변함없이 불타길 바라오.》
현숙은 눈앞이 탁 흐려졌다. 불타는 현숙이!
물우에 솟아있는 얼음산은 전체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고 한다. 90프로가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그 하나를 떠올리고있는것이다. 우리의 건축물들은 얼마나 훌륭한 기초우에 솟아있는가!
인석은 눈굽이 빨갛게 달아오른 현숙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려주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어느덧 날은 저물어 하늘에서는 별들이 웃기 시작했다. 땅우의 그 누구를 부르듯, 반기듯 새물새물 웃으며 빠금빠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그 별들을 현숙은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서있었다. 별하늘이 저렇게도 아름답다는것을 처음 아는듯싶었다. 그렇게 서있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는 현숙이에게 운호가 물었다.
《어디로 가오?》
현숙은 너무도 뻔한것을 묻는것이 이상한듯 운호를 쳐다보았다.
《공장에 가지요 뭐.》
《오늘만은 꼭 집에 가서 쉬라고 하지 않았소.》
현숙은 깔깔 웃었다.
왜 웃는지 자기도 딱히 알지 못하면서 눈물이 다 쨀끔쨀끔해지도록 오래 웃었다. 그렇게 웃고난 현숙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 운호에게 말했다.
《나한텐 일터가 집이예요. 거기만 가면 현숙인 마음이 편안해.》
둘은 갑자기 말이 없었다. 한참 걷던 현숙이가 문득 생각난듯 멈춰섰다.
《참, 동문 집에 가지요?》
그 말에 운호가 자못 격분해서 소리쳤다.
《뭐요? 누굴 어떻게 보구 하는 말이요? 난 공장의 주인이란 말이요!》
현숙은 맞받아 쏘았다.
《그럼 현숙인 손님인가요?》
운호는 얼떠름해서 쳐다만 보았다. 그러다가 제풀에 씩 웃었다.
《됐소, 됐소. 따벌같은거. 가기요, 같이.》
현숙은 생긋 웃었다.
그러다가 생각나서 말했다.
《동무 형님은 정말…》 잠시 말을 끊었다가 힘주어 계속했다.
《용감한 남자예요!》
신이 나서 형자랑을 할줄 알았던 운호가 그 말에는 흥심없이 대꾸했다.
《우리 형은 원래 그렇소. 어머니말이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거요. 말이 없구 진지하구, 그러면서도 속대가 세구. 그런데 난 그렇지 못하대. 엄말 닮았다나.》
방그레 웃는 현숙을 힐긋 돌아보고나서 운호가 물었다.
《왜 웃소?》
《아무것두 아니예요.》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들며 그 향기를 들이켰다.
《제 철두 아닌데 어떻게 보관했으면 이렇게 생신하구 향기로울가요? 금방 딴것 같이.》
운호는 씩 웃으며 우쭐했다.
《그건 비밀이요. 사과판매원들이 나한테만 말해준 비방이거던.》
《음― 알만 해요. 현숙이한테두 비밀이 있군요?》
운호는 또 씩 웃었다. 현숙은 짐짓 새침해졌다. 그 같지 않은 비밀을 그래야 몇걸음만에 뱉아놓는가 세볼테야 하고 마음을 사려먹는데 운호의 입에서는 전혀 왕청같은 말이 나왔다.
《별들이 정말 멋있지? 까만 비로도에 보석들을 쫙 뿌려놓은것 같지 않소?》
현숙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그냥 입을 꼭 다물고 응대를 하지 않았다.
《현숙동무, 옛말 하나 해달라오?》
기다리는 말은 안 나오고 무슨 별이고 옛말이고. 현숙은 앵돌아진 어조로 받았다.
《흥, 녀자는 밤이 무서워서 해가 되구 남자는 달이 됐다는 옛말?》
운호는 또 씩 웃었다.
《난 해와 달이 아니라 별에 대한 말을 하자는거요. 이건 우리 어머니가 내가 애기때부터 늘 들려주던 옛말인데 난 말이요, 막냉이에다가 유복자다나니 엄마사랑이 각별했거던. 지금도 그렇소.》
《흥, 그럴것 같애요, 애기. 서론이 너무 길군요, 지루하게. 빨리 본론이나 말해봐요. 별이 어쨌다는건지.》
콕콕거리는 현숙이에게 이제는 어지간히 습관됐는지 운호는 개의치 않고 본론에 들어갔다.
《우리 엄마 말이 옛날, 아주 먼 옛날에는 저 하늘에 별이 하나도 없었다는거요. 그러다가 이 세상에 사람이 나면서부터 별이 생겼대. 살아서 좋은 일 많이 한 사람들이 모두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 되였다는거지. 별들이 저렇게 반짝반짝하는건 그 착하고 고운 마음씨들이 밝게밝게 비쳐서라나? 우리 운호두 이담에 크면 좋은 일 많이 해서 밝고밝은 별이 되라고 하셨소.
그 옛말이 머리에 깊이 배겨서 난 유치원다닐 때 착한 어린이들에게 빨간별을 주는것두 그래서라구 생각했댔소. 학교땐 영웅메달도 그래서 금별이라구 생각했구. 훈장들도 그렇지 않소? 우리 나라 훈장, 메달들은 다 별모양이거나 안에 꼭 별이 새겨져있거던. 좀 보오, 하늘에 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세상에 좋은 일 하고간 사람들이 정말 많지? 내가 〈우리 교실〉문학상을 받은 동요두 〈보석별 될래요〉요.》
천진한 동심에 잠긴 그 랑만적인 옛말에 저도 모르게 끌려들며 현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뭇별들이 총총하게 빛나는 그 하늘을. 그러고보니 저 하늘엔 별들이 많기도 했다. 다감한 서정에 젖은 운호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아버지의 모교인 광산금속대학에 입학해서 떠나던 전날밤 어머닌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소. 저 많은 별들중 하나가 바로 네 아버지다, 공부를 잘해서 저런 별이 되거라 하고 말이요.
현숙동무, 내가 정말 저렇게 빛나는 별이 될수 있을가?》
현숙은 감동되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니였으나 길지 않은 생을 진실하고 뜨겁게 산 남편의 뜻대로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키우려고 정과 넋을 기울인 그 어머니, 고요한 밤하늘의 뭇별들을 바라보며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그렸을 그 아들. 현숙은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동무 어머닌 정말 훌륭한 어머니예요.》
둘은 또 말이 없이 걸었다. 시내도로에서 갈라져 공장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자 운호가 주머니에서 작은 손전지를 꺼내서 켰다. 쾌활하고 순진한 소년같던 운호가 별안간 어른스럽게 깊은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걷는것을 곁눈질해보던 현숙은 생긋 웃으며 품속에 늘 넣고다니던 자기 사진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현숙이 곱지요?》
운호는 뜻밖의 그 사진을 전지불로 비쳐보며 감탄했다.
《정말 매력있는데!》
그리고는 사진과 현숙이를 번갈아보았다.
《이런 사진도 있었소?》
《대학을 졸업하구 고향에 돌아온 기념으로 찍은거예요. 작년가을에.
배경도 내가 고르고 구도도 내가 잡아서 찍어달라구 했거던요. 현숙인 가을을 제일 좋아해요. 동문요?》
운호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사진이 정말 잘됐소. 배경두 좋구 구도두 좋구. 색도두 아주 좋구만. 표정, 자세 다 멋있소. 실물보다 더 고와.》
흡족해있던 현숙은 그 마지막말에 그만 발끈했다.
《뭐라구요?》 그리고는 사진을 홱 나꿔챘다.
《그러니 현숙이 실물이 이 사진보다 못하다는건가요?》
야무지게 쏘아보는 현숙이에게 운호는 황황히 둘러쳤다.
《아, 아니, 내 말이 그만 순서가 바뀌여서 그래. 사진보다 실물이 아 아니, 현숙동무가 더 고와. 제가 설계해서 찍었다면서 자기 미모를 절반도 못 담았구만.
응― 동문 건축설계는 잘하는데 사진설계는 영 락제요. 아, 아니요, 잘못 말했소. 그 사진이 설계가 아니라 시공에 결함이 있는것 같애. 어디 다시 보기요.》
현숙은 더 바싹 약이 올랐다. 찍던중 제일 잘됐다고 자부하면서 늘 품고다니던 이 사진은 걸작이라고 칭찬하면 실물의 값이 떨어지고 졸작이라고 혹평해야만 현숙이 인물값이 오르는 괴상한 작품이 되고말았다, 어느쪽으로 칭찬해도 다 거슬리는.
자랑을 하려다가 역습의 기회를 절대로 놓쳐본적이 없는 류진시 최우수축구선수에게 되려 놀림감이 되고만 현숙은 눈물이 다 날 지경으로 약이 올라 쌔근거렸다.
《흥, 발전했군요? 현숙이를 놀릴줄 다 알구. 이런 밤길을 함께 걸은 기념으로 줄가 했더니 그만두겠어요.》
정말 줄 마음이 있었는지는 자기도 모른다.
사진을 도로 품속에 넣으려는데 운호가 그 손을 딱 잡으며 사정했다.
《현숙동무, 성났소? 롱담 한마디에 그렇게 성낼건 뭐요? 풀기요. 그 사진은 정말 잘됐소. 리현숙이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재현했거던. 동문 사진설계를 정말 잘했소.
범은 그려두 뼈는 못그린다구 했는데 그 사진엔 범뼈같이 도고한 리현숙이의 성격이 정말 멋들어지게 나타났소. 그러면서두 부드럽고 따뜻한, 정말이요.》
현숙은 어처구니없어 웃고말았다. 도무지 풀길 없을것 같던 모순을 풀어도 아주 명쾌하게 풀었다. 줄줄 주어대는 그 몇마디에 현숙이의 인물값도 사진값도 나무랄데없이 쑥 올라갔다. 현숙은 자기 손목을 딱 그러쥔 운호의 손을 뿌리쳤다.
《이걸 놔요. 그럼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고 실물이요, 설계요 했나요? 현숙이 성난거 고렇게 딱 보고싶었나요? 성나면 어떻다는거 몰라서?》
그러자 운호는 애원하다싶이 했다.
《잘못했소. 정말이요. 사진을 주오. 세상에 줬다가 도루 뺏는 법이 어디 있소? 내 빌게.》
《귀잡구 절 할래요?》
《응.》
《정말?》
《정말 아니문! 다른 사람도 아니구 현숙이한테야 절을 못해?》
《그럼 해봐요.》
현숙은 깨고소하게 웃었다. 절까지 받아내고도 안 주겠다고 딱 잡아떼면 요 송아지가 당장 울상이 되겠지? 고걸 좀 볼테야, 고걸.
그런데 손에 쥐고있던 전지를 현숙이한테 넘겨주고 정말 두손으로 귀를 잡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던 운호가 날쌔게 현숙이 손에서 사진을 홱 뽑아냈다. 밀집방어진을 무너뜨리는 파도식공격. 뽈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한발 물러서는척 하다가 상대가 해이되는 틈에 잽싸게 돌입하군 하는 그 수법에 깜짝 넘어간 현숙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건 뭐야? 쓰리군!》
《헹, 안돼. 이젠 나한테 귀잡구 백번 절을 해도 못 줘.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고운 이 현숙일 왜 내놓는단 말이야?》
운호는 품속에서 빨간 뚜껑의 수첩을 꺼내가지고 사진을 그 갈피에 끼워넣고 제꺽 품속에 다시 넣었다. 현숙이가 사진을 빼앗으려고 하자 운호는 처녀의 그 손을 꽉 잡았다.
《어딜? 심장을 꺼내주면 줬지 이젠 내 가슴에서 현숙이는 못 꺼내.》 그러다가 현숙이의 손을 자기 가슴에 꽉 가져다대며 속삭였다.
《정말이야, 현숙이. 난 동무를 사랑해, 불타는 현숙이를! 우리 같이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자, 동무별. 싫어?》
현숙은 심장이 후두둑 뛰였다. 리운호! 순진하고 깨끗한 웃음, 내 나라 하늘의 보석별이 되려는 소중한 꿈, 절대로 낡아지지 않으려는 그 노력… 내가 이런 동무를 마다한다면 어떤 남자를 바란단 말인가, 어떤 남자를!
《운호동무!》
《현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