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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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심각한 우려를 가져왔다. 강재생산과 개건공사가 동시에 벌어지는 전투로 한껏 달아올랐던 건설강재공장의 열기는 싹 식어들었다.

벽체의 마감돌기에 콩크리트보를 치고 그 우에 강철트라스들을 올려놓았는데 처음에는 일없는것 같던 콩크리트보가 서서히 부서지다가 이틀만에 트라스들이 기울어져내려앉으며 한쪽벽체가 무너져나갔다.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설비들이 파손되고 강재생산과 공장건설이 다 중지되였다. 사고복구는 문제가 아니였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건설을 하겠는가, 한다 해도 안전성을 담보할수 있겠는가가 문제였다. 공사과정에 그렇게 되기 다행이지 만약 다 지어놓고 지붕까지 얹은 다음 붕괴되였더라면 어떻게 될번 했는가.

설계상잘못이냐, 아니면 시공에서 결함이냐 하는것부터 밝혀내야 했다. 책임기사 안만수와 현장기사 리운호는 설비제작과 설치, 현행생산을 맡고 건설공사는 초급당비서 국림이 책임지고 진행하여왔다. 기계에다 건물을 씌운다는 식의 공법에 문제가 있다면 현숙이가 책임져야 했고 설계상의 요구대로 시공을 바로하지 않았다면 국림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현숙은 경중이 다를뿐 책임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설계의 대상책임도 현숙이고 시공지도 또한 현숙이였기때문이다.

콩크리트혼합비률, 양생기일… 시공과정은 아무리 따져봐도 결함이 없다. 하다면 설계에?

십분 그럴수 있다는것이 사고심의성원들의 견해였다. 압연장의 전동설비들이 왕왕 가동하는 조건에서 벽체의 콩크리트보가 채 굳기 전에 바닥판진동의 영향을 받아 균렬이 간것이 아닌가 하는것이였다.

현숙은 자기자신에게도 떠오르는 그 의심을 단호히 부정해버렸다. 절대로 그럴수 없도록 바닥판과 새로 치는 벽체기초를 물려놓았기때문이다. 하다면 사고의 원인은? 설계자의 잘못이 아니면 시공자의 잘못이고 시공자의 잘못이 아니면 설계자의 잘못이다. 그것만은 명백했다.

사고심의에는 유민수도 망라되였다. 구조공학전문가이고 그 분야의 학위까지 가지고있는 그에게 설계의 구조력학계산서를 검토할 과제가 맡겨졌다.

《구조도면들과 계산서들을 봐야겠소. 그리구 공정표도.》

현장에 나온 민수가 다소 미안쩍게 말하자 현숙은 도면들을 쌓아놓은 곳을 가리켰다.

《저기 몽땅 꺼내놓은것이 안 보이는가요?》

면구스럽게 웃고나서 필요한 문건들을 골라쥔 민수는 법무일군들과 함께 차있는데로 가다가 돌아서서 다시 현숙이한테로 다가왔다.

《식사랑은 제대로 했소?》

현숙은 고개를 외로돌리고 대답을 안했다. 그러는 현숙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민수는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속썩이지 마오. 내 어떻게 하나 현숙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소.》

《흥, 필요없어요. 사고의 원인은 객관적으로, 정확히 밝혀야 해요.》 그리고는 쌩 돌따서서 사고현장을 정리하는데로 가버렸다.

사고의 원인이 어느쪽으로 밝혀지든 책임에서 벗어날수 없는 처지에 빠져가지고도 여전히 도고한 현숙이를 민수는 아연히 쳐다보았다. 시공과정은 설계상요구를 정확히 지켰다는것이 이미 밝혀진 사고현장으로 오면서 민수는 자기가 이제 현숙이의 눈물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시공자의 잘못이 없는 이상 전적이며 직접적인 책임이 이제는 현숙이에게 돌아오게 된다. 그것은 법앞에 나서야 할 책임이다. 설사 관대히 용서된다 해도 공명심과 소총명, 자고자대… 이러루한 비난은 피할수 없고 애젊은 실장으로서 그의 권위는 회복하기 힘들게 될것이다.

민수는 이런 처지에 빠진 현숙이를 옹호해주고 그에게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것을 밝혀낸다면 항상 자기를 질시하고 경멸해오던 현숙이가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게 될것이고 그러면 현숙이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지난날이 더는 자기를 괴롭히지 않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숙이가 있음으로 하여 서로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고있는 오근성령감도 자기를 달리 보게 될것이다. 그래서 민수는 자기가 사고현장으로 떠나올 때 경계심과 함께 내놓고 말 못할 부탁을 담고 자기를 바라보는 근성에게 아량있는 미소를 지어보이기까지 했다.

민수는 이번 사고의 책임이 어떤 경우에도 현숙이한테로 돌아가지 않을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이미 한달전에 산업설계실단계에서 끝나고 심의실에 넘겨진 건설강재공장개건공사 설계문건들을 훑어본적이 있었다. 역시 현숙이는 현숙이였다. 사고방식이 독특하고 빈틈이란 찾아볼수 없었다. 압연장의 바닥콩크리트판과 헐어버리고 새로 쌓게 될 벽체의 기초를 작업진동의 영향을 절대로 받지 않도록 맞물려놓은것만 봐도 아주 단순한 원리이지만 보통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해낼수 없는 생각이였다. 누구도 곧추 세울수 없다던 생닭알을 끝을 짓쪼아 곧추 세웠다는 꼴럼부스처럼.

바닥판진동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기초우에 올라선 벽체에서 그 무슨 진동의 영향으로 마감보가 균렬이 간다는것은 되지도 않을 말이다. 그러니 구조설계도면과 계산서들은 보나마나하다. 시공공정표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야무지고 깔끔한 현숙이가 공정표작성에서 무엇을 놓쳤을리 만무하다.

조업을 먼저 해놓고 착공한다는 이 엉뚱한 방식의 공사에서 현숙이의 모든 사색과 주의는 바닥판진동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도록 새로 치는 벽체기초를 맞물리는 방법을 찾아내는것과 함께 시공공정표를 가장 합리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작성하는 이 두가지에 집중되였을것이다. 그밖의것들은 작업량이나 많을뿐 아무에게나 맡겨도 다 할수 있는것들이기때문에.

그리고 시공지도상책임도 현숙이에게 돌아올수 없다. 기성관념에서 완전히 탈피한 건설공사인것만큼 현숙이의 깔끔한 눈초리가 시공과정의 매 걸음걸음을 놓침없이 따랐을테니까. 그렇다면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겠는가?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민수는 모든 사람들과 달리 설계와 시공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초점을 돌렸다. 그만큼 현숙이를 잘 아는 민수였던것이다. 민수는 사고현장을 돌아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짚이우는데가 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자기처럼 사고각도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누구도 못 찾는다. 현숙이의 독특한 공법에 누구나 머리를 기웃거리는 지금 더욱 그렇다.

민수는 무너져나간 벽체를 정리하면서 부서진 마감보의 잔해들이며 깨여진 블로크쪼각들, 굳어진 혼합물덩어리들을 날라다버리는 오물장만 눈여겨보고는 돌아섰다. 사고의 원인은 분명히 거기에 묻혀있을것이다.

이제는 최후의 한계점에 가서 그것을 들추어내면 될 일이다. 일단 의심이 가기 시작한 공법이고 설계이니 이 사람, 저 사람 꼬집어내기 시작하면 별의별것들이 다 시비거리로 될것이고 사사건건 시비하는 사람들과 맞서 현숙이를 편들어주다가 현숙이 공법이 절대로 잘못된것이 아니라는 유력한 증거를 꺼내놓으면 현숙이는 자기를 고맙게 생각할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현숙이와의 관계는 완전히 풀리게 된다.

…설계문건들을 걷어쥔 민수가 법무일군들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나자 현숙은 강한 허탈감을 느꼈다. 자기가 그토록 심혈과 애정을 기울였던 그것들을 유민수가 이리저리 번져가며 그 어떤 결론을 하고 훈시를 할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쿡 솟고 고함이라도 지르고싶었다. 어쩌면 일이 이다지도 야속하게 번져지는가.

얼굴이 점점 해쓱해져서 벽체를 짚고 겨우 서있는 현숙이를 발견한 운호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와 팔을 끼고 부축하며 어디론가 이끌어갔다. 현숙은 실신한 사람처럼 운호에게 몸을 맡긴채 휘청휘청 끌려갔다.

…날 어디로 데려가나요? 어디로?

아, 그렇지. 여기는 현장설계실. 고마워요, 운호동무. 그런데 현숙이는 왜 이렇게 맥이 없을가요? 꼼짝할 힘도 없어. 그러고보니 사고가 나서 이틀동안 난 아무것도 못 먹었어. 알기나 해? 난 발을 옮겨놓을 힘도 없어. 난 허울만 남았어. 아마 솜처럼 가벼울거야.

생각나나요? 요전번 5. 1절날 동무네 공장팀이 축구에서 1등을 했을 때 비서동지가 관람석에 앉아있는 나한테 달려와 꽃묶음을 쥐여서 끌고나가서는 동무한테 통채로 콱 안겨주던것이. 그리고는 돌아서서 관람석에 대고 박수를 쳤지요. 익살군, 미욱쟁이, 곰통.

그때 동무가 얼결에 나를 그러안았을 때 땀젖은 운동복속의 가슴이, 나를 그러안은 두팔이 무척 단단하다는것을 느끼며 나는 가슴이 화닥닥 뛰였어. 동무한테 순진하고 쾌활한 감정만이 있는것이 아니라 남자의 억센 힘도 있다는것을 그때 처음 느꼈어. 만명이 넘는 관중들앞에서 나를 그렇게 만들었지만 왜 그런지 동무네 비서동지가 밉지는 않았어, 왜 그런지.

아무튼 시공에는 결함이 없으니까 비서동지한테는 책임이 바늘끝만큼도 안 돌아갈거야. 현숙인 일없어. 모든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다 져야 해.

현숙이가 책임이 두려워서 이러는줄 알아? 그 설계문건들엔 현숙이가 깡그리 다 들어가있어. 선 하나, 점 하나, 수자 하나, 그게 다 현숙이야. 리현숙이 살이구 뼈야, 피구 넋이야. 그걸 다 모으면 현숙이가 돼. 그걸 다 가져가면 현숙인 살두 뼈두 피두 넋두 없는 껍데기만 남아.

동문 모르지? 거기엔 동무도 있어. 난 설계탁에 동무가 준 사과를 올려놓구 사색하구 그려내구 계산해냈어. 피곤에 못 견딜 땐 그 사과향기를 가슴에 흠뻑 들이키군 했어.

알기나 해? 현숙이가 쪽잠에 들 때면 그 사과를 가슴에 꼭 안고 잤다는거. 그걸 뺏아갔어.

생각나지? 기자동지가 해심이를 도와달라고 찾아와서 나하구 같이 연봉에 갔던거. 그때 동무가 일을 다 끝낸 담에 내가 그 사과를 꺼냈지. 해심인 때아닌 사과에 눈이 커지면서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문광동진 어리둥절해하는데 동문 나를 쳐다보았지. 사과의 내막을 말할가봐 난 제꺽 막았어. 《꼭같이 나누어먹으면 정이 오간대요.》 하구. 우리 넷이서 그 사과를 얼마나 다정하게 노나먹었나.

이건 뭐야? 콩물? 아참, 날 생각해서 가져왔군요. 고마와요. 아이, 달콤한 냄새. 이건 단빵이군요. 난 이런걸 제일 좋아해. 이건 정말 맛있군요.

…현숙은 마지막빵과 콩우유까지 다 먹고야 정신이 들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앉을수 있게 들여놓았던 긴의자에 현숙이를 앉혀놓고 빵과 콩우유를 먹여주던 운호는 처녀의 눈이 점점 또렷해지는것을 보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동무때문에 아침에 가져다놓았댔는데 방엔 들어두 안 왔댔구만, 그대루 있는걸 보니.》 그리고는 손수건으로 현숙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현숙은 맥없이 물었다.

《내가 울었나요?》

그러자 운호는 손가락으로 현숙의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현숙은 자기의 눈물을 닦아준 운호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을 닦아주면서두 거짓말을 하는군요.》

《아니요, 이건 눈물이 아니요. 동무의 깨끗하고 고운 마음이 얼굴에 구슬처럼 맺힌거지 뭐.》

《사람들이 다 봤지요?》

《봤소.》

현숙은 한숨을 호― 내쉬였다.

《다들 말하겠군요. 현숙이가 센척 하더니 사실은 약하더라구.》

운호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우린 누구보다 강하고 진실한 현숙동무를 보았소. 우리 공장을 위해서 침식까지 다 잊고 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무를 보았소. 새로 태여나는 류진건설강재공장은 초기를 만나 쓰러지면서도 자기를 안아일으켜준 헌신적인 처녀설계가를 잊지 않을거요.》

(아, 동문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송아지야. 현숙이가 그래 초기나 만나서 쓰러진줄 알아?)

현숙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 현숙인 이젠 없어. 다 가져갔는데 뭐. 아까 가져간 그게 바로 현숙이야.》

운호는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우는 처녀를 와락 흔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거야? 현숙인 여기 있는데. 비서동지가 시당에 간거 모르지? 아침에 갔소. 우리 공장 로동자들은 리현숙실장을 믿는다고 제기하겠대. 사고의 원인은 정확히 밝히되 현숙동무의 뜨거운 열정과 참된 사랑, 현숙이의 실력에는 절대로 의문부호를 붙이지 말아달라구 제기하겠다는거요.

누가 현숙일 빼앗는다는거야? 누구도 우리 공장 사람들한테서 현숙이를 못 뺏아가. 책임기사동지가 어디 갔는지 알아? 이번 사고는 압연장의 기계진동과 절대로 련관이 없다는걸 증명하러 갔어. 밤을 꼬박 새우며 그걸 계산해냈거던. 기초가 흔들리지 않는 벽체는 절대로 금이 갈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도 가서 공학으로 증명하겠다고 사고심의성원들을 찾아갔소.》

현숙은 눈물이 솟구쳐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현숙아, 너 이런 사랑을 받는단 말인가. 너는 설계도면의 선과 점, 수자며 부호, 여기에 있는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구나. 너의 살과 뼈, 피와 넋이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있어 함께 사는줄 현숙아, 너 알고나 있었던가.)

온몸이 나른해진 현숙은 그만 솔곳이 잠들어버렸다. 운호는 처녀가 깊이 잠들자 자기의 저고리를 벗어 소중히 덮어주었다. 총각의 눈길은 눈과 입을 곱게 다물고 단잠에 든 처녀의 얼굴을 끝없이 애무하고있었다.…

…현숙은 반듯하게 누워 가없이 푸른 하늘을 날고있었다. 흰구름들, 안개처럼 엷은 구름들이 눈앞으로 흘러가고있는데 하얀 솜처럼 소담한 구름 한송이는 자기의 가슴에 포근히 얹혀있었다. 맑고 푸른 하늘, 그 하늘이 무엇과 비슷한데 그것이 무엇이던지 생각나지 않아 애쓰다가 드디여 상기해냈다. 리운호, 그 동무의 눈빛이 저렇게 맑지. 자기의 모든 감정, 속생각, 얼마나 숨김없이 내비치군 했댔나.

비끼기도 했다. 거울처럼. 그런데 그 거울은 모든것을 아름답고 깨끗하게만 담는 거울이다. 더없이 순진한 동심의 거울. 그것처럼 티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

그런데 이 가슴에 포근히 덮인 흰구름은 무엇일가? 아, 이건 내 목수건이야, 하얀 목수건. 이 하얗고 포근한 목수건이 나한테 잘 어울린다고 운호동무가 말했지.

맑은 거울같던 하늘이 이번에는 장난기 어린 운호의 두눈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다시 유난히도 빨간 사과로 변하고.

리운호, 빨간 사과!

운호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건 내가 아니라 동무요, 리현숙이.》

무슨 말을? 현숙이가 빨간 열매라는거야?

《그럼!》

그럼 동문?

《나야 송아지지, 푸른 대지를 마음껏 뛰노는.》

흥!

그러더니 정말 자기가 빨갛고 아름다운 열매로 변해버렸다. 얼마나 생신하고 빨갛고 향기로운지. 그러다가 그 빨간 열매인 자기가 아스라하니 높은 나무의 맨 웃가지에 열렸다. 내려다보니 그루아래서 노란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뿔송아지 한마리가 자기를 올려다보고있었다.

아이, 금송아지! 저건 운호동무야. 어디 올라와봐요.

《아니, 난 안 오르겠소. 아름다운 열매를 마음껏 감상할테요. 열매란 무르익으면 꼭 키워준 대지의 품에 안기는 법이거던.》

흥! 동무한테 떨어질줄 아나요?

《현숙이, 아름다운 열매! 거목의 자양분을 마음껏 빨며 한껏 무르익소. 사랑의 대지에 뛰여내릴 때 내가 받아안겠소. 아름다운 그 열매를 이 가슴에 꼭 그러안고 난 무릎꿇어 삼가 절을 할테요. 나를 위해 이토록 고운 사랑을 낳아키운 대지여, 그대가 고맙노라고―》

현숙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동문 정말 훌륭한 시인이예요. 대지, 어머니대지, 아름다운 사랑의 세계!

현숙은 정말 그 대지의 품으로 뛰여내리는데 그 빨갛고 아름다운 열매를 운호가 덥석 받아쥐였다.

《아!》…

현숙은 꿈에서 깨여났다. 화닥닥 놀라 일어나앉으며 본능적으로 가슴에 가져가는 두손에 운호의 저고리가 잡혔다. 그러니 지금껏 이 가슴에 포근히 얹혀있던 그 흰구름송이가 운호의 저고리였단 말인가? 내가 얼마나 잤을가?

운호에게 끌리워 방안에 들어오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콩우유이며 빵, 울기까지 했지. 그러다가 어느새 잠을? 이렇게도 정신이 없다니…

정신이 새록새록 맑아졌다. 그러자 홀지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자기가 혼곤히 잠들었을 때 자기를 눕혀놓고 운호가 무엇을 했을가? 가만, 잠들었을 때 내 얼굴이 어떠했을가?

현숙은 발딱 일어나 벽거울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자기가 잠잘 때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거울속의 자기를 볼수 없고 그렇다고 재그시 눈을 떠보니 그것은 잠자는 모습이 아니고.

현숙은 이번에는 두눈을 똑바로 뜨고 거울속의 자기를 들여다보았다. 건설장의 먼지가 오르고 입술이 부르텄다. 그러나 두눈은 여전히 씻은듯 반짝였다.

그렇지, 내 눈귀가 아래로 약간 휘여내렸다고 했지. 그건 사실이야. 한데 눈을 펀히 뜨고있을 때에도 그렇게까지 세세히 관찰한 운호가 잠든 자기의 얼굴은 얼마나 마음놓고 뜯어보았을가? 그런줄도 모르고 꿈하늘만 훨훨 날아다녔으니.

가슴우에 포근히 얹혀있던 한송이 하얀 구름? 부끄러움이 확 밀려들며 발끈 약이 올랐다. 해볼테야!

현숙은 서둘러 바께쯔의 물로 세면을 하고 수건으로 깐깐히 닦으며 다시 거울앞에 섰다. 눈빛이 깔끔한 처녀가 거울속에서 마주본다.

이때 조용히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어하듯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그 소리에 현숙은 거울앞에서 물러나며 침착하게 몸가짐을 바로잡았다.

다시 조심스레 문두드리는 소리. 들리라는것인지, 들릴가봐 저어하는것인지. 다분히 증섞인 목소리로 현숙은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슬며시 열리며 운호가 들어왔다.

《깨났소? 좀더 자지 않구.》

현숙은 저으기 딱딱하게 대답했다.

《실컷 잤어요. 내가 얼마나 잤나요?》

운호는 순진하게 머리를 기웃거렸다.

《글쎄, 한시간? 두시간? 아니, 그렇게까진 못될거요.》

그건 도대체 얼마나 잤다는 소리야? 까닭없이 약이 오른 현숙은 운호에게 그의 저고리를 집어주었다.

《잘 먹구 잘 잤어요. 잘 덮구. 고맙군요, 눈물나게.》

정말 고맙다는것인지, 빈정대는것인지 알수 없는 말이였지만 운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벌쭉 웃었다.

《그렇다면 나두 고맙소, 눈물나게.》

제 말을 가져다 꼬리에 붙이는바람에 현숙은 발끈 성이 났다. 처녀가 쌔근거리며 자기를 쏘아보는줄도 모르고 저고리에 팔을 꿰던 운호가 왕청같은 말을 꺼냈다.

《고새 현숙동무 체취가 폭 뱄구만. 내 옷이 아니라 꼭 동무 옷을 입는것 같애. 감각이…》

그 말에 현숙은 팔을 채 꿰지도 못한 저고리를 홱 나꿔챘다.

《왜 그러오?》

《흥, 감각이 어쨌다구요?》

현숙은 한발 다가들었다.

《아, 잘못했소. 난 사실 내 옷이 따스하구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소, 정말이요.》

《동문 그래 처녀가 자는줄 알면서도 들어왔나요? 무슨 마음먹구?》

《그래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소? 제가 들어오라구 해놓군?》

현숙은 까딱없이 마주서서 쏘아보았다. 애숭이같은거. 고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 깨깨 토설을 받아낼테야.

《흥, 아까두 내가 잠들었으면 옷이나 덮어주구 공손히 물러갈게지 현숙이 잠자는건 왜 그렇게 찬찬히 뜯어보았나요?》

그만에야 운호의 얼굴은 석달전의 그 사과보다 더 새빨개졌다.

《그때… 안 자댔소? 난… 난 동무가 자는줄 알았는데.》

서투른 범인처럼 찌르면 찌르는대로 털어놓는다. 이제 한발만 더 조여들면 속에 있는것을 깨깨 털어놓지 않고서는 못배길것이다.

《흥, 솔직히 말 못하겠나요? 온 공장에 소문내기 전에.》

뱉아놓고보니 현숙은 제 말이 우스웠다. 온 공장에 소문내야 자기에게 리로울것은 하나도 없다. 망신이면 처녀가 더 망신이지. 그러나 순진하기란 이를데 없는 총각은 발까지 구르며 다불러대는 처녀에게 그만 가슴속의것을 토설하고야말았다.

《현숙동무, 왜 성나서 그러오? 난 사실 동무가 부러워서 그랬소. 주인이라는게 초기를 만나 쓰러지는 동무처럼 내 공장에, 내 일에 자기를 바치지 못했소. 온넋을 깡그리 바쳐서 사랑과 믿음을 받는 동무처럼 난 살지 못했단 말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다나니 그만 눈길이 떨어지질 않았소. 그리구…》

《그리구?!》

《응― 난 이 세상에 동무처럼 진실하구 열정적이구 아름다운 처녀가 없다구 생각했소. 이런 좋은 처녀를 아니, 좋은 동무를 사귀게 된걸 정말… 정말… 응… 정말이요, 다른 생각은 없었소.》

황황히 중얼거리던 운호는 현숙의 눈에서 끝내 참아내지 못하고 웃음이 남실남실 새여나오는것을 발견하자 그만에야 손을 홱 내젓고 처녀가 그때까지 쥐고있던 자기 저고리를 툭 나꾸어챘다.

《에이참, 현숙인 왜 나만 보면 그렇게 따벌처럼 쏘아대는거야? 난 어쩌지 않는데.》

볼이 잔뜩 부어 옷을 입는 운호를 지켜보던 현숙은 돌아서서 허리를 들까불며 깔깔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섰다.

《아프나요?》

《아프지 않으문.》

《몹시?》

운호는 벌쭉 웃었다.

《아니, 지나간 다음엔 달콤하구 간지러워. 또 쏘이고싶은걸 뭐.》

《정말?》

《정말아니문. 자, 가자구.》

《가다니? 어디로요?》

《내가 말 안했던가? 헹, 말할새나 있었나, 콕콕거리기만 하니, 시당에서 찾는대.》

현숙은 긴장해졌다.

《시당에서요?》

운호는 고개를 끄덕했다.

《비서동지가 돌아왔소. 사고의 원인이 밝혀졌다는거요.》

《원인이 뭐래요?》

현숙은 바싹 재우쳐물었다.

《알게 뭐요. 씨물씨물 웃기만 하지 어디 대주오? 가면 안다나. 현숙이 깨났으면 데리구 같이 가라는거야. 난 왜 같이 가라는지 몰라?》

현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에 잠겨 천천히 돌아서려는데 운호가 씩 웃으며 바지주머니에서 빨간 사과 한알을 꺼내서 내밀었다.

아이, 사과! 현숙은 냉큼 빼앗아쥐며 들여다보다가 코끝에 가져다댔다. 아득한 옛날처럼 생각되는 그 빨간 사과가 떠올랐다. 그런데 오늘 또 이렇게 유난히도 빨갛고 향기로운 이 사과, 제철도 아닌 때에 요렇게도 생신하고 향기로울수가 있나?

현숙은 사과향기를 정신없이 함빡 들이키다가 장한 일을 한 소년처럼 으쓱해진 운호를 살틀하게 쳐다보았다.

《이번엔 장마당 몇개를 훑었나요?》

《헹, 어서 드오, 시원하게. 정신이 쩡 들거야. 전번 사과는 왕청같이 네쪽으로 나누었지? 이번엔 절대 그러지 마오. 동무한테만 딱 준건데 동네방네 돌린단 말이요?》

현숙은 자못 불만스러워하는 운호를 재미있다는듯 쳐다보다가 별안간 새침해지며 사과를 도로 그의 손에 찰싹 쥐여주었다.

《흥! 친한 동무들끼리 노나먹었는데 어쨌단 말이예요? 깍쟁이!》

짐짓 토라진 현숙의 손에 사과가 다시 철썩 넘어왔다.

《해심동무한텐 문광형이 사다주라구 하란 말이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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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 단동 - 로동 - 2021-12-28
안녕하십니까? 제가 조국에서 이 도서를 열람할때 기억에 의하면 1장이 시작되기전 주인공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언약하는 서문이 별도로 존재했던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이 루락되였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자 - - 관리자 - 2021-12-30
미래선생의 기억이 정확합니다. 빠진 서문내용을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열람해주시기 바랍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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