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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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산공정의 설계가 드디여 끝난 오늘 아침 시방송은 기쁘게도 풀섬양식장에서 미역, 다시마풍년수확이 시작된 소식을 해심에게 들려주었다.
청춘의 랑만과 희열에 넘친 웃음소리, 노래소리, 발동소리… 그립고 정다운 사람들, 지배인, 찬우아바이, 은향동무 그리고 명남이의 목소리도 방송에서 울려나왔다. 자기에게 보내는 고무와 격려인듯.
말 못할 희열에 눈굽을 적시며 그 방송을 듣고있노라니 보고싶은 자기 기업소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문광의 모습이 안겨왔다.
친근하고 믿음이 가는 그! 처녀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된 그리운 모습들을 빠짐없이 그려보여주며 새로운 힘과 의욕이 북받치게 해주는 오늘 아침의 방송은 그가 자기 들으라고 특별히 정을 담아 썼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광이 윤철의 그림을 가지고왔다간 뒤 기술개조사업은 빠른 속도로 진척되였다. 연곡화학의 이름있는 기술자들이 고분자화학분야의 어려운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함께 풀어주었고 문광의 요청으로 현숙이가 개건공사의 그 바쁜 속에서도 운호와 함께 넘어와 이틀밤을 지새우며 중요한 기계기술문제들을 맵시있게 풀어내도록 해주었다. 운호는 정말 다재다능한 재능아였다.
생산공정설계가 완성되였다는 전화를 받자 서경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에 기업소 공무반장과 기능공들을 넘겨보내주었다.
공무반사람들은 너무 반가와서 눈물까지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해심에게 그동안의 사업소소식을 이것저것 들려주었다. 몇분간의 방송기사에 다 담을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양식사업소에서 미역, 다시마수확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려 할 때 조개, 성게, 해삼 같은것들을 잡아들이는 작업이 만안의 각 수산단위들과 수산부업단위들에서 맹렬하게 진행되였다.
서경은 풀섬수역에서 막조개 한마리도 건져내지 못하게 하는것은 물론 다른 단위 배들이 양식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철저히 단속하라는 엄한 지시를 떨구었다.
그렇게 하고는 사업소 전체 력량을 동원해서 양식수역밖에서 조개류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다가 양식장에 놓아주게 하였다. 수확전투에 들어가야 할 청년반에는 로력이 증강되기는커녕 남자로력들을 전부 떼내서 조개잡이에 돌렸다. 청년반처녀들은 전마선으로 힘겹게 노를 저으며 모래미역들을 건져서는 돌을 매달아 양식수역에 떨구어넣는 작업을 하였다. 조개류들의 먹이였다. 그렇게 해서 조개, 성게, 해삼같은것들이 먹이를 찾아 양식수역밖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려는것이였다.
일곱명의 총각들이 빠져나간 청년반에는 딱 한명의 로력이 보충되였는데 로동정량원 정란이였다. 이번에도 그는 자진해서 섬에 들어왔다.
한번은 근무를 수행하는 철국이네 배가 미역을 가득 실은 청년반의 전마선 세척을 련결해서 끌어주다가 해상작업을 지휘하고있던 서경의 눈에 걸려 호된 추궁을 받았다.
《그렇게 심장이 얄팍해가지고 무슨 제대군인이요? 우린 지금 싸움을 하고있소.
난 인정이 없어서 처녀들이 힘겹게 노젓는걸 보고만 있는줄 아는가? 그렇게나 하겠으면 은향이 데리구 사라지오. 필요없어!》
격노한 지배인앞에서 은향은 얼굴을 싸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철국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용서를 빌었다.
수출원천으로 양식사업소의 생산물을 수매받아가는 류봉무역회사 사장은 서경이 사장을 할 때 과장을 하던 사람인데 그도 무역대방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 가격을 낮추자고 찾아왔다가 서경에게서 날카로운 추궁을 받았다.
《무역에서 가격투쟁은 우리 재부를 지키고 우리의 존엄을 지키는 정치투쟁이요. 안 사겠으면 그만두라고 하시오. 그만한 배짱도 없이 무역을 하오? 깨끗한 양식물은 깨끗한 연해에만 있소. 우리 말고 그런 깨끗한 양식물을 살데가 있으면 거기나 가보라고 하시오.》
《지배인동지, 지금 일부 단위들이 외국상선들과 개별거래를 하면서 가격을 계속 떨구고있습니다. 너무 그러다간 힘들게 개척한 수출판로를 잃을수 있습니다.》
《동무!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가? 저 배들의 생산물을 회사가 다 사들이란 말이요. 비싸게만 사준다면 독자적인 수출권이 없는 단위들이 무엇때문에 눈을 피해가며 개별거래를 하겠소? 그렇게 다 모아가지구 더 비싼 가격으로 팔아넘기시오. 동문 혹시 우리 경제가 어렵다구 주눅이 든건 아니요?
변질되지 마시오, 사장동무! 국가의 존엄을 위해서라면 싣고간 수출품이 천만금이라도 배채로 바다에 처박을줄 아는 배짱있는 무역일군이 되시오.
난 한푼도 못 깎겠소. 못 팔겠으면 늦기 전에 퇴송하시오. 가져다 저 풀섬양식장에 넣고 2백명종업원들이 흙을 씹어삼키면서라두 제 값을 받을 때까지 키우겠소. 저긴 우리 섬이구 우리 바다요. 애국의 피끓는 제대군인들이 동무처럼 제 나라 자원 귀한줄 모르는 사람들 얼씬하지 못하게 지켜선 우리 바다란 말이요.》
복도에 서서 죄다 엿듣고는 눈물이 글썽해서 앞질러 달려나온 정란에게서 불을 토하는것 같은 그 웨침을 전해들은 종업원들은 결패있게 마당을 비껴질러 잔교로 다가오는 자기 지휘관을 끝없는 존경과 믿음을 안고 맞이했다. 그리고는 옷자락을 기발처럼 휘날리며 배머리에 버티고서서 해상작업을 지휘하는 그의 뒤를 따랐다.
사업소 초급당위원회의 통보를 받은 시당위원회에서는 그날 저녁으로 시안의 무역단위, 수산단위, 수산부업단위 당조직책임자들의 비상회의를 열고 류인석이 책임진 강력한 지도그루빠를 조직했다. 그 성원들이 다음날 새벽부터 자기 맡은 단위들에 나가 바다우에 떴는데 그들속에는 방송기자 문광도 있었다.
바다가양식사업소에서는 양식수역밖에서 새끼조개까지 다 잡아들이라는 지배인명령이 취소되고 청년반의 총각들이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양식미역수확에 들어갔다. 시방송이 연봉에 있는 해심에게 들려준 바다의 풍년기쁨소식뒤에는 이런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해심의 일기)
…
나는 생각한다. 바다는 아무리 거대하고 힘차도 지켜주는 품이 없으면 백날, 천날을 가꾸어도 풍요해지지 못할것이라고.
더 놀라운것은 심각한 비판과 직무정지책벌을 받은 수산국장과 상업국장을 비서동지가 시당에 제기해서 책벌기간 우리 사업소에 데려왔다는것이다.…
서경은 시퍼런 불줄기를 두눈으로 황황 내뿜었다.
《어째서 그런 사람들을 우리한테 끌어옵니까? 어째서? 왜 쓸데없는 인정을 베푸는가 말입니다. 풀섬에 보내자구요? 안됩니다. 그래 은향이, 해심이 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운 우리 처녀들, 철국이, 명남이 같이 때묻지 않은 청년들과 그런 사람들을 섞어놓자는겁니까?
풀섬은 가장 어려울 때 가장 순결하고 가장 억센 넋을 묻은 우리 섬입니다. 섬이 어지러워집니다. 찬 바다물에서 날미역을 건져씹으며 섬을 개척한 우리 바다의 꽃다운 딸들, 내 목숨보다 귀중한 우리 사람들과 절대로 섞지 못한단 말입니다!》
천영도 격해났다. 지배인의 가슴속에서 타끓는 자기 사람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옹호가 당비서의 피도 설설 끓게 한것이다.
《옳소, 지배인동무. 우리 이 대오를 쇠소리나는 강철의 대오로 꾸립시다. 그러나 골라내고 집어버리면서가 아니라 떡쇠를 강철로 벼리면서 꾸려야 하오.》
《아닙니다! 강철이 어떻게 나오는지 압니까? 로속에서 불순물들을 다 태워버리고 나온단 말입니다. 그들은 깨끗이 불살라버려야 할…》
천영은 책상을 꽝 치며 벌떡 일어섰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그들의 머리속에 있는 락후한 사상이 불순물이지 그들자체가 불순물은 아니란 말이요. 혼동하지 마시오. 우리의 용광로는 바로 그 불순물들을 깨끗이 불살라버린 강철의 흐름을 력사에 부어주는 사상의 용광로요. 동무는 바다의 지휘관이 아닌가. 바다는 좁지 않소. 좁지 않단 말이요!》 다시 주저앉으며 천영은 퍽 누그러진 어조로 타일렀다.
《소리쳐서 안됐소, 지배인동무. 동무야 실전에서 화연에 그슬린 전초병출신이 아니요. 우리 군대에서 최전연의 전초병구분대들은 전승의 축포가 오르던 그밤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번지지 않고 적들과 실탄을 마주 날리는 실전구분대들이요.
심장이 커야지, 안 그렇소? 전초병부소대장.》
《그렇습니다. 난 전연군인이였습니다.》 서경은 앉아있는 천영의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전초선에서 뭘 배웠는지 압니까? 〈뜨겁게 사랑하고 몸서리치게 증오하라. 병사의 모든 감정은 강렬해야 한다!〉 바로 이것을 배웠습니다. 유능한 경제일군이 되고싶던 포부를 묻어두고 전연군관이 된 나의 첫 정치지도원동지가 우리 신입병사들을 맞던 날 해준 말입니다.
첫 순찰임무수행중 적들이 불의에 도발을 걸어왔을 때 정치지도원동지는 제일 나이가 어린 나를 몸으로 막아주고 전사했습니다. 그때 한꺼번에 세명이 희생되였는데 앞에 섰던 우리 분대장동지의 몸에는 일곱발의 총탄이 박혔습니다. 피로 물들었던 그날의 검붉은 눈, 잊혀질것 같습니까? 6백리분계선 철조망아래 그렇게 쓰러진 전초병들이 한둘인것 같습니까? 우리 분대, 우리 소대에서 내 손으로 묻고 복수를 피타게 절규하며 조총을 쏘아올린 전우들. 지금도 최전방고지들에 수호자의 붉은별을 이고 솟아있는 그 봉분들에는 10대, 20대 열혈청춘들이였던 내 전우들의 꿈이 묻혀있습니다. 다 살지 못한 생! 이루지 못한 꿈! 그것들을 살아있는 전우들에게 넘겨주고 그들은 오늘도 전연의 산발들에 국방의 주추돌처럼 묻혀있단 말입니다.
제대될 때 나는 나의 첫 정치지도원동지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희망을 내가 실현하리라 결심하고 경제대학을 지망했습니다.
경제일군! 그것은 20년전 스물여덟살 청춘을 분계선철조망에 휘뿌린 청년군관이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남모르게 동경했던 희망이였습니다. 그런 신성한 자리에 앉아서 건달을 부리고 사리사욕이나 채운 사람들. 분합니다. 정치지도원동지가 이걸 알면 봉분을 박차고 뛰쳐일어났을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라! 몸서리치게 증오하라! 분계선표말들이 부서져나가고 콩크리트말뚝들이 몸부림치며 떨던 그 격렬한 총성들이 매일, 매시각 내 귀전을 때리며 웨치고있습니다.》
서경은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죽을 때까지 난 전연군인이요! 내 나라 경제의 전초선에 버티고서서 악착스레 조여드는 제국주의경제에 무자비한 총탄을 퍼붓는 전연군인이란 말이요!
알아두시오, 새끼조개 한개도 제 주머니에 넣지 않고 고스란히 양식장에 놓아준 깨끗한 우리 사람들과 그따위 인간들을 절대로 섞지 못하오, 못한단 말이요!》
김천영. 격랑이 인다고 물러선적이란 단 한번도 없는 왕년의 먼바다 개척자는 맞받아일어나 태풍치는 바다처럼 길길이 뛰는 서경을 드세게 움켜잡았다.
《이건 뭐야? 서경이! 눈을 크게 뜨구 똑바로 보라. 그들은 몸서리치게 증오해야 할 원쑤가 아니라 목숨바쳐 뜨겁게 사랑해야 할 우리 사람들이야, 우리 사람! 골라내고 집어내고 차버리기 시작하면 우린 한사람두 안 남아! 나중엔 자기자신까지두 버린단 말이야!
수산국장 태호는 제대배낭을 우리 선단에 풀어놓구 오호쯔크어장에 천리마조선의 기발을 휘날린 용감한 어로공이였어! 그런 사람들을 과오가 있다구 버리겠는가, 버리겠는가? 말하라, 말해보라!
우린 이제 로동단련하는 석용하두 데려와야 돼. 버리는게 지휘관이 아니다. 끝까지 책임지는게 지휘관이지, 에―익!》 천영은 움켜잡았던 서경의 어깨를 놓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이 그렇게 외곬만 타면 못 써, 큰일 못해. 혁명을 못한단 말이야, 혁명을!》
무섭게 노했던 나이많은 당비서의 숨소리만 헐금씨금 들리는 방안에는 태풍뒤 바다처럼 갑자기 정적이 깃들었다.
서경은 돌아서서 묵묵히 바다를 내다보았다.
…순찰, 불의에 터진 총성, 번개같이 몸을 날리며 날카로운 눈길로 목표를 찾던 짧은 그 순간, 울부짖기 시작하는 58식자동보총, 매복한 적들에게 헛방이란 모르는 정확하고 예리하고 무자비한 련발사격을 퍼부으면서도 량옆에서 울리는 전우들의 총성을 세여가며 분대전원 무사하다는것을 느끼던 그 조우전. 더욱 맹렬히 불을 토하는 열한정의 자동보총, 마침내 《M―16》자동소총소리를 완전히 제압한 뒤에 휩쓸어치듯 갑자기 찾아오던 정적.
스물한살에 벌써 분대장이 된 서경은 귀를 멍멍하게 하는 그 정적의 음향속에서 누구보다 빨리 랭철한 리성을 찾군 하는 우수한 군인이였다.…
이윽고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정돈한 서경은 묵묵히 담배를 빨고있는 천영에게 다가왔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그만 리성을 잃었던것 같습니다.》
천영은 단정하면서도 결연한 자세로 서있는 서경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용서? 무엇을 용서한단 말인가? 이 젊은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뜨겁게 사랑하라!
그렇다.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불보다 더 뜨겁게. 문득 시당에서 책임지도원을 할 때 지도사업으로 나가군 하던 세멘트공장의 소성로가 떠올랐다. 송풍기가 터져나갈듯 울부짖고 불길이 황황 솟구치던 소성로, 이글이글한 불덩어리가 되여 쏟아지던 크링카덩어리들. 그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무엇을? 인간을! 누구를? 순결하고 아름다운 바다처녀들을, 울면서 막돌을 져나르고 배고파 찬 바다물에서 날미역을 건져씹던 그 어린 처녀들, 때묻지 않은 바다총각들을 그리고 굶고있는 자기 아이들 생각을 눈물과 함께 삼키며 그물망태기에 가득 담긴 조개들을 한개도 남기지 않고 선창에 쏟던 바다의 강의한 아버지, 어머니들을!
견딜수 있는것을 견뎠는가? 참을수 있는것을 참았는가? 그 결사의 전투를 마감하던 날 저 사람이 소리쳤지. 풀섬에서, 용하에게 피를 토하는것처럼! 새끼조개 한개도 제 주머니에 넣지 않고 양식장에 고스란히 놓아준 우리 사람들, 공해가 없이 깨끗한 우리 바다! 저 사람은 자기 대원들을 그렇게 부르고있다.
장하다, 젊은 지배인. 동무는 역시 괜찮아, 훌륭해! 참되게 군사복무시절을 보냈고 학창시절을 보냈어. 시련을 겪고있는 조국은 자기가 키워낸 이런 지휘관들을 믿고 이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한다. 어머니들이 씩씩하게 자란 아들들을 믿듯이!
―몸서리치게 증오하라!
누구를? 태호를, 용석이를 그리고 용하… 나는 《아니다!》라고 소리쳤지. 두눈에 피발이 서고 입술이 다 부르튼 이 지배인, 젊디젊은 안해를 바람세찬 먼길에 내세우고 어린 자식도 가시집에 맡겨두고 사는 이 불같은 젊은이에게.
아, 가슴이 왜 이다지도 쓰린가? 내 제 로친 끓여주는 더운밥, 더운국 하루 삼시 먹고 살면서도 제손으로 때식해먹고 빨래질, 바느질 다 하면서도 기업을 살리겠다고 뛰여다니는 우리 지배인 집에 데려다 밥한끼, 술 한잔 따끈히 먹여봤던가. 제손으로 대충 싸가지고 나와서는 사무실문을 안으로 잠그고 혼자서 먹군 하는 그 점심밥곽 한번 열어봤던가? 그러구두 소래기쳤지.
내가 당일군이 옳긴 옳은가? 죄지은 사람들까지 다 걷어안겠다면서 이런 장한 지배인 왜 말한마디도 따뜻이 못해준단 말인가.
(서경이, 자네 당비서복이 없는 사람이야. 날 용서하라구. 자네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그 정치지도원, 신대원의 가슴에 사랑과 증오로 불타는 병사의 참된 심장을 넣어주고 목숨도 꿈까지도 다 넘겨주고 간 정치지도원처럼 난 되지 못했구만.)
생각이 왜 이렇게 많아지는가?
지배인말이 옳다. 우리는 깨끗이 불살라버려야 한다. 사람들의, 일군들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낡은 관념, 태도, 본새를. 결코 남아있는것만이 아니다. 이 고난속에서 새로 생긴것들도 있다. 표리부동, 낯내기 그리고 제살궁리… 그것들을 깨끗이 불살라버려야 한다. 그래서 태호, 용석이, 용하 그들모두를 우리 바다의 깨끗한 물방울로 만들어야 한다. 물은 씻지 못한다지만 우리 바다는 자기가 품고있는 억만물방울들을 다 씻어주는 바다이다. 자기를 이루는 물방울들을 하나하나 구슬같이 닦아서 애국의 한마음으로 순결하게 파도치는 바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바다를! 사람들을!…
《안됐소, 지배인동무. 리성을 잃기야 내가 더했지. 그러나 난 잘됐다구 생각하오. 우린 서로가 더 잘 알게 되구 더 가까워졌소.》
《옳습니다.》 서경은 짧게 대답했다.
천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정히 서있는 서경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지배인동무! 동문 역시 심장이 있는 지휘관이요. 심장가란 말이요. 우리 다 데리구 갑시다. 끝까지, 한사람도 떨구지 말구.
장렬한 희생은 있어도 락오자는 없는 강철의 구분대를 이끌구 행진해가자구. 어디로? 붉은기 휘날리는 승리의 광장으로!》
《알겠습니다. 난 지금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는 우리 바다를 보고있습니다.》
《큰 멀기를 헤치고나서 마주서는 바다는 늘 그렇게 커보이는 법이라오.》
두사람은 마주보았다. 뜨겁게 타는 눈길로…
그러나 초급당비서방에서 있은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종업원들중 한사람도 없었다. 잽싸고 그악스러운데다가 남달리 촉기가 빠른 로동정량원 정란이도 그 시각에는 풀섬에 건너가있었다. 다만 방송기자 문광만이 후날 고난의 1990년대를 마감하는 섣달 그믐날밤을 풀섬에서 서경과 함께 보낼 때 그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을뿐이다. 그러나 서경도 그날밤 천영이 시당비서를 찾아가 늦도록 자기를 자책하며 앉아있은줄은 알지 못했다.
열혈의 10대, 20대에는 조국을 지켜 최전연에서 분노의 철화를 내뿜고 30대에는 우리 경제를 질식시키려고 악착스레 조여드는 제국주의경제와 맞서 맹수처럼 사납게 울부짖는 젊은 경제일군의 심장을 더 깊이, 더 뜨겁게 알지 못했던 자기를 천영은 눈물을 머금고 반성하였다.
《비서동무, 난 동무네 지배인 김서경동무를 무역회사를 조직할 때부터 잘 알고있소. 그 동무는 남들이 상상도 못하는 엄청난 모험도 주저없이 단행해서 성공시키군 했소. 되면 바랄나위없이 좋은 일이지만 안되면 헤여나기 어려운 처벌을 받는다고 막아나서는 사람들을 서경인 사정없이 밀어제끼며 자본가들과 당당히 맞서 배짱치기를 했소. 마지막 한푼까지 깨깨 받아내군 했지.
신념이 강한 일군이요. 그래서 한심하게 주저앉은 바다가양식에 보냈던거요. 〈책벌이 두렵지 않다. 나에겐 욕하고 때리기까지 해도 자기가 낳은 자식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어머니가 있다. 나는 조선로동당이 낳아키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일군이다!〉 얼마나 좋소? 그 신념, 그 배짱이.
돌봐주어야 하오.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이 말이요. 불같은 그 성격이 자기를 돌볼것 같소? 그땐 벌써 불이 아니지. 보살펴주어야 하오, 우리가.》
밤이 퍽 깊어서야 시당에서 돌아온 천영은 련합부대장을 하다가 제대되여서도 통일되기 전에는 전연을 뜰수 없다고 먼 서남전선의 전연마을에 그대로 눌러앉아있다는 서경의 부모들과 옥심의 연구소당위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해심의 일기)
…
비서동지는 당일군이고 너그러운분이니까 그랬겠지만 대범하긴 해도 건달군, 리기주의자들은 무섭게 질시하는 지배인동지가 어떻게 수산국장과 상업국장을 데려오자는 말을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전 자재부원도 로동단련이 끝나자 풀섬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명남이가 지배인동지 듣는줄 모르고 우리 청년반에 《령감조》 생겼다고 말했다가 눈물이 쑥 나오게 욕을 먹었다고 한다. 그날중으로 지배인동지는 전체 종업원들을 모여놓고 선포했다는것이다.
《김태호, 전용석, 석용하동무들로 청년작업반 목축분조를 내옵니다. 분조장은 석용하동무입니다.
청년반장동무, 목축분조의 일을 작업반적으로 제때에 밀어주어야 하겠습니다.
목축분조장동무, 사업소는 동무들이 전체 종업원들과 가족들의 생활을 한계단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서 큰 몫을 담당하리라고 믿습니다. 통이 크게, 떳떳하게 일판을 벌리시오. 그리고 년장자들로서 함께 생활하는 청년들을 잘 이끌어주기 바랍니다.
이 시각부터 전체 종업원들이 목축분조동무들을 보고 〈아바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동지, 동무〉라고 부르시오.》
비서동지가 먼저 박수를 치자 모두가 다같이 박수를 치며 새로 조직된 목축분조성원들을 완전한 자기 사람들로 받아들였다. 모두들 놀라운 눈길로 지배인동지를 쳐다보며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그의 또 한가지 인간미에 머리를 숙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우리 지휘관을 진짜 바다의 남아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