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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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이가 연봉에 넘어온지 한달이 되는 오늘 뜻밖의 일이 터졌다. 아침에 조합초급당비서와 관리위원장이 해심에게 시당에서 바다가양식사업소문제를 놓고 시안의 경제부문 당, 행정책임자들의 회의가 열리게 된다고 알려주었다.
사연인즉 사업소지배인이 5월에 수확하여야 할 양식미역을 거의 절반이나 앞당겨 수확해서는 시장에 내다 팔아버렸다는것이였다. 수산국과 상업국에서 중지할것을 요구했으나 끝끝내 수확하고 팔아버렸는데 엄중하게도 사업소 초급당비서까지 두둔해나섰다는것이다.
시당에 크게 상정되여 오늘 아침 시안의 경제부문 당, 행정일군들이 모두 모여 대론쟁을 하게 되는데 무사치 못할것이라고 관리위원장은 걱정했다. 한주일전 이곳에서 진행된 기술협의회때 영예군인조합일군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그들이여서 관리위원장은 무척 왼심을 썼다. 초급당비서는 시당에서 련락이 온것은 제기된 문제를 놓고 집체적으로 토의하고 대책을 세우는 모임이라고 하면서 안심시키고 떠났지만 해심은 가슴이 활랑거렸다.
독단, 극단한 본위주의, 경제관리에서 자유주의, 상적행위조장, 상급에 대한 도전… 수산국과 상업국에서 시당에 제기하였다는 문제들은 어마어마했다.
해심에게는 누구도 모르던 서경의 전망계획을 까밝혀내던 문광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도 탐정이 자기의 꼭 들어맞은 추리를 놓고 명쾌하게 웃어대는것 같던 그 모습이.
경제관리에서 편향이요, 출로요 하면서 나누던 이야기, 친구가 되자고 맞잡던 손 그리고 경제사업의 성패이자 경제일군의 운명이라고 하던 지배인의 이야기… 과연 그것들이 경제관리에서 자유주의이고 상급에 대한 도전이란 말인가? 그런데 한창 크는 미역을 앞당겨 수확한것은 무엇때문일가? 그리고 당비서 천영은 어째서 그것을 두둔했고?
해심은 복잡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축해버렸다. 아니다. 분명히 지배인과 기자는 그날 사회주의경제의 우월성을 살려 자본주의경제를 압도할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항간에는 소수점아래 다섯자리까지 쪼개는 《수자지배인》이라고 소문난 자기네 지배인이 당분간은 기업소의 부담이지만 이곳 영예군인조합과의 협동을 주저없이 작전한것이고 당비서도 지지한것이다. 극단한 본위주의자들이라면 이런 결심을 하지도 못한다. 내 나라 경제를 놓고 울고 웃는 그 사람들이 결코 나쁜 사람들일수 없다.
해심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 시내로 줄달음쳤다. 령넘어 30리길을.
만약 귀중한 그들에게 부당한 처벌이 가해지거나 또 그들자신이 본의아니게 결함을 범하였다면 시안의 경제부문 당, 행정일군들이 모여있는 앞에서 이 모든것에 대하여 그리고 부부간의 애틋한 정도 뒤로 미루고 애국충정으로 고동치는 자기네 지휘관과 그를 지지하였던 사람들을 부디 용서해달라고 호소하고싶었다.
해심이가 도착하였을 때 회의는 이미 시작되여 격렬한 론쟁이 벌어지고있었다. 해심은 제일 뒤줄의 구석진 곳에 조용히 가앉았다. 회의분위기가 심각하여 누구도 해심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집행석에는 풀섬개척전투때부터 여러번 보아온 시당비서와 시행정경제위원장(당시)이 앉아있고 연탁에서는 서경이 불을 뿜는것 같은 열변을 토하고있었다. 맨 앞줄에 앉아있는 천영과 문광의 뒤모습이 보였다. 머리를 당당히 쳐들고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해심은 어쩐지 마음이 진정되였다.
《…그리고 또 하나, 당에다 제기하겠으면 있은 사실을 덜지도 보태지도 말고 그대로, 정확히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역을 개인장사군들에게 팔아넘기지 않았습니다. 시장관리소와 시직매점이 운영하는 수매상점에 정확히 수매가격으로 넘겨주었습니다.》
중간좌석에서 상업국장이 일어나 소리쳤다.
《동무! 변명하지 마오! 국영기업의 생산물을 왜 국가상업이 아니라 협동수매단위에 넘겼는가? 그게 한푼이라도 더 받자는 심보가 아니고 뭔가?》
《그렇습니다. 한푼이라도 더 받아야 합니다. 왜? 우리 종업원들의 피땀이 스민 귀중한 생산물이기때문에. 근로자들의 로동의 대가를 비싸게 쳐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은 경제지휘일군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분한 미역은 계획외 생산물입니다. 국가상업에 넘겨야 할 계획분은 지금 1989년도 최대면적을 원상복구한 양식장에서 자라고있습니다. 넘겨줄 시기는 5월입니다. 무엇때문에 상업국장동지는 계획외 생산물을 처분한걸 가지고 복잡하게 굽니까? 농업단위들에서는 자체로 개간한 비경지의 생산물을 3년간 자체로 처분하게 되여있습니다. 우리가 새로 개척한 양식장은 새로 개간한 비경지와 같습니다.》
집행석에서 행정경제위원장이 서경의 발언을 중지시켰다.
《흥분하지 마오, 지배인동무. 그러니 동무네가 처분한 미역은 계획외 생산물이라는거지? 그러니 상업국은 여기에 상관이 없구만. 계획분을 받을 때에 가서 받지 못하면 책임추궁하는거지 왜 벌써부터 떠드오? 앉소.
다음. 수산국장동무, 어떻게 된거요? 동문 양식물생산계획을 흔들어놓았다구 했는데 이 동무들이 처분한건 계획분이 아니라질 않소?》
수산국장이 일어섰다.
《계획분은 아니지만 예상수확고판정은 다하게 되여있습니다. 앞당겨 수확하면 예상수확고보다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소? 지배인동무.》
《그렇습니다. 정확히 4. 2톤이 떨어집니다.》
《그랬으면 계획에 반영된걸 흐트러놓은거지 뭐요?》
서경은 랭소했다.
《국장동지, 숨박곡질하자는겁니까? 이 자리에서까지? 어째서 앞당겨 수확하자는것인지 국에 제기하면서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까박붙이지 마오. 동문 그게 결함이요. 국에서 수확하지 말라면 말것이지 실적이 좀 있다고 교만해서 그러면 못쓰오.》
《아니, 난 따져야겠습니다. 지도일군인 국장동지는 우리가 지난해 어려운 풀섬양식기지건설전투를 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건설계획을 수표도 하지 않구 끼고있다가 한주일만에야 비준해서 내려보냈습니다. 40일전투계획을 전투개시 7일만에야 비준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그 전날에 시의 책임일군들이 현장에 나왔댔다는 말을 듣고서야.
우리가 여름모 길러놓은것이 없어서 먼곳에 가서 사와야 할 때 연유 얼마간이라도 계획공급해달라고 우리 생산부원이 찾아간걸 어떻게 돌려보냈습니까? 지금 어디나 다 자체해결인데 동무네도 자력갱생할 궁리를 하라고 했지요? 자체로 힘겨운 개척전투를 벌리고있는 우리들에게 말입니다.》
《동무! 아무 말이나 망탕 하지 마오. 여기서 누가 그걸 물어보는가?》
수산국장이 소리치자 서경은 연탁을 내리쳤다.
《말해야겠소! 결사의 돌격전에는 지도가 없고 생산물의 처분은 극성스럽게 〈지도〉하고! 우리에게는 일하다가 범하는 과오가 위험한게 아니라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감투를 씌우는 사람들이 위험하오.
똑똑히 알아두시오. 이제 우리가 이 고난을 이겨내고 기어이 승리자가 될 때 지도일군의 자리에 앉아서 건달이나 부린 당신같은 사람들을 준엄하게 결산할것이요!》
서경의 추상같은 단죄는 장내를 얼어붙게 했다. 숨막히는 정적속에 서경이 연탁에 올려놓은 고뿌를 들어 벌컥벌컥 물마시는 소리가 별스럽게 들려왔다.
지금까지 앉아서 아무 말 없던 류인석이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무, 들어가앉소. 양식사업소 비서동무, 동무이야기를 좀 들어봅시다. 됐소, 나오지 말구 선자리에서 말하오.》
천영이 일어섰다. 희슥희슥한 그 머리카락들이 해심에게 까닭모를 믿음을 안겨주었다.
《수산국에 이미 제기했던것처럼 우리가 미역을 앞당겨 수확한것은 수확고에서 좀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이 제일 필요한 시기라고 보았기때문입니다. 지배인동무가 문제를 정확히 보았습니다. 겨울김장도 다 떨어지고 햇풀도 돋아나지 않은 지금이 주민생활에서 제일 어려운 때입니다. 우리 바다가사람들에게 미역은 식량보탬의 중요한 수단입니다. 미역죽이라도 쑤어먹어야 이 고비를 넘기지 않겠습니까.
그 미역으로 식량을 바꿀 날을 고대해온 우리 종업원들에게 사상사업을 하니 모두가 호응해나섰습니다. 인민생활을 책임진 경제일군의 진실한 립장과 태도라고 보고 지지했습니다.》
류인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이번엔 문광을 찾았다.
《기자동무는 회의에 참가해서 할 말이 없소?》
문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담담하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수산국일군과 상업국일군이 당조직앞에 자기들을 솔직히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편집위원회는 시당위원회의 과업을 받고 이 문제가 경제관리에서 제기된 문제인것만큼 경제보도부서가 똑바로 료해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습니다.
취재과정에 우리는 시당에 제기된 통보가 사실과 어긋나며 양식사업소의 계획외 생산물을 놓고 수산국일군과 상업국일군들사이에 비원칙적인 거래계약이 맺어져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사업소의 처분으로 계획외 생산물을 손에 넣을수 없게 되자 이들은 상급단위에 부당한 제기를 했던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당조직에 보고하였습니다.》
장내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해심은 깜짝 놀랐다. 지난해 풀섬개척전투때 사취행위를 했던 석용하의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비원칙적인 행위에는 항상 이렇게 견실한 사람들에 대한 모해가 뒤따르는 법이다.
《내가 좀 말합시다.》 행정경제위원장이였다.
《우리는 가슴아프게도 작년도에 류진양식의 관리일군들을 철직시키고 새 지배인을 파견했소. 그러면 그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둔 지도일군들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찍어말한다면 현직무에서 15년이나 사업하고있는 수산국장동무에게 말이요.
틀려먹었소. 동무처럼 성과가 있으면 열매는 자기가 먼저 따먹으려고 하고 결함이 있으면 책임을 아래단위일군에게 내리밀고. 얼마나 위험한 경향이요? 내버려둔다면 우리 경제에 주인이 없어질거요. 막말로 그런 지도일군밑에서 누가 일해먹겠다고 하겠소?
수산국장, 동문 류진수산의 이름있는 선단장, 기사장출신인데 왜 그러오? 좋은 때 백날실적보다 어려울 때 하루실적이 더 중요해.
상업국장, 틀려먹었소. 최근에 상업부문이 곤난을 겪는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구 비원칙적이구 비사회주의적인 방법으로 상업을 끌고나가면 되겠소? 인민생활을 위한 상업이지 상업을 위한 상업이 아니요. 량심으루 반성해보오.》
류인석이 모임을 결속했다.
《오늘 우리는 당경제정책관철을 위하여 매우 유익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제기된 문제를 시당위원회에서 충분히 료해했기때문에 당사자들과 그리고 련관된 일군들만 모여서 해당한 대책을 세우려고 했댔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성격으로 보아 시안의 경제부문 당, 행정일군들이 다 알아야 하고 다같이 깨달아야 할 교훈적인 문제이기때문에 이렇게 모이자고 했습니다.
평가할것은 기업관리에서 머리를 쓰고 사색할뿐아니라 진실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려는 바다가양식사업소 일군들의 정신입니다. 모임과정에 다 알려진것이기때문에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두가지 문제를 말하겠습니다.
첫째로, 양식사업소 일군들의 자유주의적경향입니다. 국단계에서 부결맞았다고 제마음대로 행동하면 되겠는가? 아닙니다. 보다 웃단위에 제기하고 시당위원회에 철저히 의거했더라면 일은 더 잘될수 있었습니다. 경제관리에서 무규률, 자유주의. 스쳐보낼수 없는 경향입니다.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비서동무, 동무가 특히 잘못했소. 동무결함이 얼마나 엄중한지 알겠소?》
류인석은 엄엄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천영은 무겁게 일어서며 머리를 숙였다.
《앉으시오. 동무문제는 따로 봅시다.》 그리고나서 번쩍번쩍하는 빛이 뿜어져나오는 눈길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다음 둘째, 지금까지 우리는 일시적인 난관앞에서 주저앉는 일군들의 패배주의, 보신주의와 투쟁해왔습니다. 그런데 시련이 겹쌓이자 일부 일군들속에서는 제 주머니를 따로 챙기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습니다.
일군들의 사리사욕, 부정부패. 위험합니다. 가장 위험합니다. 항일의 피어린 고난의 행군에서 혁명대오가 승리한것은 수령님의 령도밑에 지휘관과 대원들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는 운명공동체가 되였기때문입니다. 오늘의 고난의 행군에서 지휘관들인 우리 일군들은 이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휘관이 대원들과 고락을 함께 하는 대오만이 불패합니다. 대중과 따로 사는 일군. 없어야 합니다, 없어야 합니다!》
…모임이 끝났다. 집행석의 두 일군이 주석단옆의 앞문으로 나가자 사람들은 우르르 일어서서 회의장뒤의 큰문으로 나가기 시작하는데 해심은 제일 뒤좌석에 홀로 앉아 시안의 각급 경제단위들을 맡고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빠짐없이 뜯어보고있었다. 얼굴빛들은 각이했다. 후련해하는 얼굴, 심각한 얼굴, 감동된 얼굴, 사색에 잠긴 얼굴, 거기에다 맨 나중에야 푹 수그리고 나가는 컴컴한 두 얼굴…
입을 다물고 혼자 묵묵히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두셋이서 수군거리며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돌아보고 건너다보며 열심히 말하면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각한 회의뒤끝인데도 소리를 죽여가며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 낯선 얼굴들… 녀자들도 퍼그나 되고 자기네 지배인처럼 젊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찬우아바이만큼 나이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국장, 처장, 부장, 소장, 지배인, 관리위원장, 사장… 각이한 직무명칭으로 불리우는 행정경제일군들과 어느 단위에서 일하건 다같이 당비서라는 하나의 직무명칭으로만 불리우는 당일군들…
저가운데 자기네 지휘관들 같은 사람은 몇명이고 수산국장이나 상업국장 같은 사람은 또 몇명일가? 아무리 뜯어보아도 얼굴만 봐서는 알수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자기네 지배인, 초급당비서 같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얼마나… 해심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지었다.
사람들이 다 나갔으나 텅빈 회의실 제일 앞줄에 나란히 앉은 세사람은 일어설념을 안했다. 모두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있는것 같았다. 무슨 생각들을 하고있을가? 걸어온 뒤를 돌아보고있을가, 아니면 가야 할 머나먼 길을 가늠해보고있을가.
풀섬. 간고하게 일떠세운 우리 섬. 대원들은 육체적으로 힘든 고생만을 이겨내면 되였으나 지휘관들은 남들이 아는 고생보다 모르는 고생, 물밑의 소용돌이처럼 심각한 대립과 마음속고뇌를 안고 몇곱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있은줄 알고나 있었던가.
누가 먼저 일어섰던지. 아마 세사람이 다같이 일어선것 같았다. 그들이 천천히 나오고있었다. 해심이도 일어서고싶었으나 어째서인지 몸을 까딱 움직일수 없었다.
진액이 다 빠져버린듯 맥없이 터벅터벅 걸어나오던 그들은 제일 뒤줄 구석진 곳에 호젓이 앉아 자기들을 지켜보고있는 해심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세사람이 처음엔 놀랍게, 다음엔 응당 와있어야 할 사람을 보듯 덤덤히 해심을 보았다.
해심은 꼼짝없이 앉아서 그 세사람을 마주보았다. 그들중 제일 젊은 문광까지도 퍼그나 수척하고 나이들어보였다. 그 순간 해심의 눈에 비낀 그들은 왜 그런지 종전의 뜨겁고 굳세고 당당한 사나이들이 아니라 쇠잔하고 맥이 다 빠지고 어딘가 멍멍해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 허불썩하고 약하디 약한 사람들이였다.
눈물이 핑 어리기 시작했다. 울음이 북받쳐올랐다.
처녀는 앞좌석등받이에 이마를 대고 흐느껴울었다. 무엇때문일가? 그들이 무사한것이 기뻐서? 아니면 우리 경제의 오늘과 래일, 시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부둥켜안고 온넋을 깡그리 불사르는 이 깨끗하고 불같고 참된 사람들이 모해당했던것이 분해서? 아마 그 두가지가 다 섞인 울음이였을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참지 못했다.
해심은 오래 울었다. 그러나 누구도 다가와 달래지 않았다. 묵묵히들 서서 처녀가 우는것을 괴로운 눈길로 지켜보기만 할뿐이였다. 한참만에야 해심은 손수건으로 눈굽을 꼼꼼히 닦으며 일어섰다. 그러다가 또 울음이 나서 손수건을 꽉 깨물었다.
그들 네사람은 다같이 회의실을 나섰다. 복도바닥만 내려다보며 앞사람이 가는대로 따라서다나니 천영과 서경이 앞서고 자기앞에 해심을 들여세운 문광은 제일 뒤에 섰다.
태풍뒤 바다처럼 이상한 정적에 싸여있는 청사안에 그들의 발자국소리만이 울렸다. 투벅투벅, 뚜걱뚜걱, 또깍또깍, 딱딱… 무엇인가 묻듯, 하소하듯 생각깊이 울리는 그 발자국소리, 발자국소리…
정문밖을 나와서는 모두 우뚝 섰다. 서경은 정오무렵의 해빛에 눈이 시그러운지 미간을 쪼프리고 마치도 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시내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깊은 한숨을 쉬며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어디로 가잡니까?》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다시 물었다.
《기자동문 어디로 가겠소?》
《모르겠습니다. 좌우간 가는데까지 같이 갑시다.》
이번엔 천영이 지나가는 말처럼 해심에게 물었다.
《해심인 집에 가야지? 오래간만에 넘어왔는데.》
집? 그렇다. 집 그리고 어머니…
해심은 꿈에서 깨여나기라도 한것처럼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익고 정다운 거리, 그리운 나의 집. 그러나 처녀는 머리를 저었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왔던 생각이 그제야 들었던것이다.
《전 넘어가겠습니다. 일을 벌려놓은채로 왔댔습니다.》
서경이 해심을 돌아보았다.
《일은 잘 돼가오? 가보지 못해서 안됐소.》
맥이 탁 풀린 어조였다.
잘되는가고? 잘되지 않아 악전고투를 하고있는 형편을 온몸의 맥이란 맥은 다 빠져버린것 같은 지배인에게 사실대로 말할수 없었다. 그렇다 해서 잘된다고 마음에 없는 대답을 할수도 없고.
해심은 눈길을 땅에 떨군채 한숨을 호― 내쉬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건 잘된다는 뜻도 아니고 잘 안된다는 뜻도 아니였다. 반대로 잘된다는 뜻도 되고 잘 안된다는 뜻도 되고. 사업과 생활에서 명백치 않고 정확치 않은것은 그리도 질색하는 서경이였지만 그 역시 더 캐묻지 않고 머리를 끄덕했다. 도대체 무엇을 알았다는것인지.
이들이 이렇게 어디에나 더하고 덜어도 같고 같은 《0》이라는 수자와 같이 아무 뜻도 없는 기계적인 머리끄덕임을 나누는것을 지켜보고있던 천영이 말했다.
《지배인동무, 난 아무래도 도루 들어가야겠소.》
그 말에 서경의 눈길이 가늘게 떨렸다.
《그렇게 하십시오.》
무슨 말인가 더하려던 서경은 드디여 본래의 결단성있는 표정으로 돌아가 자세가 단정해졌다.
《난 기업소에 내려가겠습니다. 문광동무, 다시 만납시다. 해심동무, 힘든대로 마저 수고해주오. 내 인차 넘어가보겠소.》 그리고는 마치 이들과 다투고가는 사람처럼 결패있게 가버렸다.
《해심동무, 연봉엔 나하고 같이 넘어갑시다.》
문광이 말하자 천영은 《해심아, 그렇게 해라. 그럼 부탁한다.》 하고는 청사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갑시다. 가만, 오늘따라 이 앞엔 차가 한대도 없구만. 연봉사람들 날쌔게도 넘어가버렸는데?》
이렇게 말하며 길 량쪽을 번갈아 살펴보는 문광에게 해심은 나직이 말했다.
《걷지요 뭐. 그래야 30리인데.》
…그들은 말없이 걸었다. 시내를 벗어나 연봉으로 가는 령길에 올라서니 해빛이 눈시그럽게 반사되는 바다가 오른쪽에 펼쳐졌다. 눈부시게 재글재글 끓는 바다저쪽에 덩지 큰 솔섬이 우중충 떠있고 그뒤에 풀섬이 애기토끼처럼 얌전스레 옹크리고앉아있었다. 해심은 걸음을 멈추고 멀리 《우리 섬》을 보고 또 보았다.
풀섬! 벽에 걸린 큰 지도에도 점으로나 겨우 찍혀있는 작은 섬. 그러나 그 작은 점을 어머니대지의 품에 그러안고 뜨겁게 볼을 비벼온 개척자들의 불타는 사랑을 섬은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나도 고요히 떠있었다.
낡은 등대탑이 유럽나라들의 중세기 요새유적처럼 서있는 한산한 그 기슭에 첫발을 들여놓던 그때부터 꼽아보니 그래야 6개월! 세월은 날마다, 시간마다, 분마다 얼마나 하많은 사연들을 안고 흐르는가.
《호수처럼 고요하구만, 바다가.》
옆에 함께 서서 바라보던 문광이 혼자말처럼 말했다.
고요? 해심은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바다는 호수가 아니다. 그 어느때건 바다는 결코 고요해본적이 없다. 고요해보이는 그 물면아래에 격렬한 소용돌이가 있고 강렬한 흐름이 있다. 천갈래, 만갈래의 물흐름들이 광대한 물면아래서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다가 하나의 흐름으로 묶이워 거폭으로 흐른다. 피끓는 정열, 불타는 정의감과도 같은 그 소용돌이와 흐름을 평시에는 외유내강하게 고요한 물면아래 묻어두고있다가 자기의 머리우에 먹장구름이 드리우고 광풍이 몰아치면 격랑으로 치받아 일떠서는 바다. 그런 바다와 함께 살며 그런 바다를 가꾸는 생활이기에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례사롭게 흘러가는것 같은 하루하루가 그 안속은 강렬한 지향과 격렬한 투쟁으로 충만되여있는것이다. 그 소용돌이, 그 흐름은 거기에 뛰여든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볼수도 느낄수도 없다. 이들은 방금 그런 격렬한 소용돌이를 거쳐 또다시 하나의 흐름을 이루지 않았던가. 더 큰 흐름, 더 거세차고 더 뜨겁고 그래서 더 불가항력적인 흐름을!
다시 걸음을 옮기며 해심은 말했다.
《기자동지, 고맙습니다.》
《뭘 말입니까?》
해심은 머리를 들어 앞을 내다보았다.
《전 우리 지배인동지와 비서동지를 무척 존경한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을. 기자동진 제가 존경하고 귀중히 여기는분들을 열렬히 옹호해주었어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다하지 못한 말이 울컥 치밀어 눈물이 쿡 솟았다.
(고마워요. 우리 윤철오빠를 영원히 잊지 않아주는 그 마음이 더욱!)
문광은 조용히 머리를 저었다.
《해심동무, 난 손님이 아닙니다. 나도 동무들과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제집식구끼리는 고맙다는 말을 안하지요.》
해심은 눈물이 가셔지지 않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문광도 해심을 이윽히 마주보다가 눈길을 돌렸는데 깊은 추억이 그 눈길에 서서히 비끼기 시작했다.
《난 저 풀섬에서 희생된 동무의 아버지 진영일선장동지와 오빠인 미술가 윤철동무를 잊을수 없습니다. 그들은 래일의 풍요한 우리 바다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건 한순간의 충동이 아닙니다. 평시에 조국의 바다를 열렬히 사랑한 심장들이기때문에 누구도 모르는 그곳에 서슴없이 뛰여들었던것입니다. 난 그걸 잘 압니다. 물론 단 한번밖에 만나본적이 없고 그나마 통성조차도 못해봤지만.》
해심은 깜짝 놀랐다. 친구라고 하면서 오빠의 그림을 가져가지 않았는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해심은 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토록 알고싶었던 사연을 드디여 알게 될 이 시각이 그 어떤 운명적인 계기처럼 느껴졌다.
문광은 추억깊은 어조로 지난해 정초에 있었던 일을 해심에게 들려주었다. 자기만이 묻어두고있던 사연깊은 그날을 더듬어가는 그의 이야기는 처녀의 가슴을 절절하게 파고들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그! 정량원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 그는 정량원이 알고있는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 아닌가.
추억깊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숨김없는 그 진정이 가슴에 끝없이 공명되여 자기 또한 깊고깊은 사색에 잠기며 해심은 30리길을 무척 가깝게 걸었다. 이런 사람들이 내곁에 있다. 진실하고 뜨거운 이런 사람들이 귀중히 여겨주는 아, 그런 처녀가 나는 되고싶다!
오늘 일들은 처녀의 일기장에 잊을수 없는 기록으로 남을것이다.
…며칠후 해심은 시당에서 열린 당일군들의 회의에서 자기네 기업소 초급당비서 김천영이 비판을 받고 처벌을 받았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나 지배인 서경은 주의를 받았을뿐 비판도 처벌도 받지 않았다. 지배인이 받아야 할 책벌까지 당비서 한사람이 다 받은것이다.
당일군은 행정경제일군의 사업을 사소한 오유도 나타나지 않도록 가장 책임적으로 뒤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이렇듯 엄중하게 비판되는것이다.
해심은 남보지 않는 곳에서 울고 또 울었다. 억울하고 야속해서가 아니였다. 보이지 않는 물밑에 잠겨 경제라는 큰 배에 곧바른 항로를 잡아주는 억세고 믿음직한 키! 우리 당사업의 한 측면이 뜨겁게 안겨와 처녀는 울고 또 울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