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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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 바다가양식사업소 종업원들의 기쁨은 남달랐다. 주저앉았던 기업소를 일으켜세웠을뿐아니라 넉넉하던 시기에도 해내지 못한 풀섬양식기지건설과 풀섬수역양식장개척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제힘으로 해낸 긍지와 자부심이 새해를 맞는 이들모두에게 그토록 환희로움을 가져다주었던것이다.
바다가마을에 있는 초급당비서 김천영의 단층집울타리문은 아침부터 활짝 열려있었다. 철국이와 은향이가 열려진 그 문으로 들어서려는데 저쪽 길모퉁이에서 해심이가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 반갑게 새해인사를 나누고나서 천영의 집문을 두드렸다.
집안에는 생산부원 오찬우가 와앉아있었는데 마치 제가 집주인인듯 젊은이들의 인사를 도맡아놓고 받았다.
《어― 해심이냐? 새해에 복 많이 받아라. 일두 많이 하구. 좋은 신랑감 골라잡아라. 참성게 고르는것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옆에 앉은 천영의 무릎을 쓸어만졌다.
《어― 올해엔 철국이하구 은향이하구 잔치해야지? 비서, 우리 뚝 부러지게 차려줍세. 이젠 우리두 힘있는 기업소야, 힘있는 기업소!》
천영은 젊은이들에게 어서 앉으라고 자리를 권했다. 찬우의 주정은 끊치지 않았다.
《비서, 고맙네. 근간에 이렇게 기쁜 설날 처음이야. 우리 지배인 아직 안 왔나? 어― 그 사람 술 한잔 먹여야 돼. 일군이거던. 혁명의 세대가 교체되긴 교체됐어. 난 우리 지배인 이젠 못 따라가겠네. 30년 양식한 나보다 물계 더 휑―해. 나야 이젠 60하구두 세살 더 먹었은즉 물러설 때두 됐지. 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생각하게.
어― 이젠 맘 푹 놓구 물러서게 됐은즉 안 좋은 일인가? 내 년로보장 넘는다구 바다밖에 본거 없는 두상태기 죽어두 바다귀신 되지 산귀신 되겠나? 풀섬에 나가서 염소라두 치겠네.
기업소 다시 살아나서 좋아, 설날 아침밥 같이 먹자구 당비서가 새벽부터 데리러오니 좋아…》 별안간 찬우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내 그만둘 생각 진작 안했던건 아니야. 그러다가두 기업소 다 무너뜨리구 나앉는다는게 죽을 죄 짓는것 같았네. 죽어두 바다사내답게 죽은 영일이처럼 죽지 못하는게 죄스러워서 그만두겠단 말 못했네.》
술취한 찬우의 넉두리를 듣는 해심의 눈귀가 달아올랐다.
《이젠 관리일군자린 젊은이들한테 넘겨주게. 내 자리라는거야 기업소 참모장자리가 아닌가. 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생각하라는데. 묵은 잔디는 불살라버려야 새 잔디가 잘 돋는 법일세. 내 오늘 지배인한테두 말하겠어. 발 잘 맞출 젊은이 하나 골라서 내 자리에 앉히라구.》
이때 《계십니까? 새해를 축하합니다!》 하는 서경의 목소리가 마당에서 활기있게 울렸다. 그러자 찬우는 무릎을 치면서 휘청휘청 일어섰다.
《우리 지배인 범은 범이다. 제 소리하니까 딱 오지 않나.》
방안에 청신한 기운을 풍기며 제낀깃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외투를 입은 서경이 들어섰다.
《아바이, 새해에 건강하십시오.》
서경은 비칠거리며 마주오는 찬우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았다.
《고맙네, 지배인. 복많이 받으라구. 올해엔 자식 하나 더 보게. 젊었는데 까짓것, 마음먹으면 먹은대루가 아닌가.》
서경은 시원스럽게 웃었다.
《그러지 않아두 아들 하나만 가지군 안되겠습니다. 딸 하나 더 있어야지. 양식공 말입니다.》
《암, 그래야지. 우리 지배인은 백발백중할거야.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니까.》
그 말에 남자들은 껄껄 웃고 처녀들은 얼굴을 붉혔다. 서경은 유쾌하게 웃고나서 천영과 그의 안해, 철국, 은향, 해심이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지난해에 수고들 많았습니다. 새해엔 더 높이 날아봅시다.》 그리고는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정란동무, 뭘하구 있소? 빨리 들어오지 않구.
비서동지, 정량원을 데려왔습니다.》
그 말에 은향이가 반갑게 뛰여나가고 모두가 놀라운 눈길로 서경을 쳐다보는데 천영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정란은 들어오면서 천영에게 얌전스레 머리숙여 인사를 하는데 웬걸,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은 어조였다.
《비서동지, 새해에 건강하십시오. 그리구 욕두 많이 하시구요. 작년엔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천영은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정란을 쳐다보았다.
《왔구만! 우리 정량원이. 믿었소, 동무가 다시 온다구 말이요.》
그리고는 지배인을 돌아보았다.
《헌데 지배인동무, 어떻게 된거요? 우리 애를 집에 몇번 보냈댔는지 압니까? 그냥 쇠가 걸려있더라는데 아주머닌 설날인데두 안왔소?》
《그 사람은 청진에 있는 친정에 먼저 들렸다가 옵니다. 아이가 거기 있으니까. 아마 호영일 데리구 오늘 저녁이나 래일 아침에 도착하겠지요.》
찬우가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뭘하나? 빨리 상을 차리지 않구. 어― 해심아, 얼른 나가서 술잔부터 들여오너라. 지배인 설날술 한잔 부어올려야지.》
그 말에 서경은 웃으며 들고온 가방에서 술병을 꺼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새 담배갑을 꺼내서 터쳐가지고 찬우와 천영, 철국에게 한대씩 뽑아 권하고 갑을 그냥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은향이와 해심이가 부엌에 내려가서 음식그릇들을 날라들이는데 정란이 자기가 들고온 비닐구럭을 가지고 부엌에 내려왔다.
《정란아, 고맙다. 이렇게 와서. 너한테 가려댔어. 지배인동지 집에 오셨던?》
은향이가 속삭임소리로 묻는데 정란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팔을 걷어붙이며 퉁을 놓았다.
《그건 그렇게 담아들여가는게 아니야. 이리 줘. 무슨 음식그릇을 그렇게 담니? 당장 시집가겠다는게. 음식이라는건 날라들여가는 쟁반에 그릇담은걸 보구두 군침이 꼴깍 해야 돼.》 그리고는 은향이가 들었던 쟁반을 내려놓고 음식그릇 몇개를 자리바꿈해놓자 단번에 보기가 달라졌다.
《녀자는 뭐니뭐니해두 음식법부터 잘 알구 봐야 돼. 우리 나라가 이담에 암만 잘살아두 식모두구 사는 세상은 안 만든다. 알겠니? 쟁반에 담는것부터 상차림하는것처럼 해야 돼.
자, 해심아, 네가 들어. 요쪽이 앞으루 가게. 너무 높이 들었다, 좀 낮춰. 그렇지.》
은향은 감탄어린 눈으로 해심이가 든 음식쟁반과 정란이를 번갈아보다가 혀를 찼다.
《어마나, 정말! 정란아, 넌 솜씨있는 주부로구나.》
이때 방안에서 서경의 쾌활한 목소리가 날아내려왔다.
《자, 다들 올라오오. 부엌에서 꿍꿍이 하지 말구. 은향인 아직두 나한테 덜 혼나서 정량원하구 짝자꿍이하나? 아주머니, 거 다 몰구 올라오십시오. 맛있는거 있으면 다 걷어가지구. 허리띠는 미리 풀어놨으니 어디 두드리며 먹어봅시다.》 그리고나서 천영과 찬우쪽을 돌아보았다.
《오늘은 나두 좀 마셔야겠습니다.》
늘 엄격해있던 서경이 활기있게 떠들자 방안분위기는 한층 더 밝아졌다.
모두가 둘러앉자 서경은 술을 부으려고 몸을 엉거주춤 일으키는 철국을 눌러앉히고 자기가 가져온 술을 찬우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부었다.
《모두들 공동사설 들었지요? 자,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해서 듭시다!》
찬우가 지배인을 따라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난 초아침부터 술을 마셨네만 우리 지배인 부은 술이니 또 마시겠네. 젊은 지배인을 만나서 젊어진 우리 기업소를 위해서 들겠네.》
천영이 저으기 감개무량하여 한마디 보탰다.
《시에도 있지? 〈먼길에 심장이 일찍 식으면 어이하랴〉 자, 영원히 식지 않을 우리 심장을 위해서!》
천영의 안해가 퉁을 놓았다.
《아이구, 무슨 〈위해서〉두 많습니다. 술이 〈식겠〉어요. 그저 새해에 모두들 건강하기 위해서 어서 들자구요.》
《당신두 그 짬에 〈위해서〉를 하나 더 끼워넣는구만. 녀자들이란 이렇소. 좌우간 그것두 합치기요.》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잔들이 모아지고 잔찧는 소리가 즐거운 잔향을 일으켰다. 서경은 저가락으로 접시에 담긴 음식을 한점 집으며 정란을 돌아보았다.
《정란동문 모르지? 이젠 지나간 얘기니까 옛말삼아 합시다. 동무가 섬을 떠난 그날 밤 저 은향동무가 울면서 나한테 소리쳤소. 내게도 안해가 있구 아이가 있겠지 하구 말이요. 그 말이 정말 가슴을 찌르더구만.
나두 눈물이 있는 사람이요. 그러나 풀섬개척은 우리를 목조르기하려는 자본주의경제와의 결사전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사소한 에누리도 나약성도 허용할수 없었소. 난 최전연에서 전초병으로 복무한 군인이기때문에 우리와 맞선 적이 어떤 적인지 알아도 잘 알아.》
모두가 가슴이 찡해와서 말이 없었다. 술에 취한 찬우도 깊은 생각에 잠겨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이거 내가 당일군앞에서 정치사업대행하는게 아닙니까? 얘기가 별스럽게 나가서 안됐습니다.
자, 철국이, 술 좀 부으라구. 오늘이야 기쁜날인데.》
사람들이 다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저으기 심각해졌던 마음을 풀어놓는데 천영이 먼저 술병을 들어 서경의 잔에 부었다.
《이런 자리가 쉽지 않은데 지배인동무, 내 언제부터 묻고싶었소. 무역회사 사람들두 지배인동무 아주머니나 호영일 본 사람이 거의 없더구만. 아주머니가 농업연구사라는것밖에는 더 아는게 없더란 말이요. 가정얘기를 좀 해주오.》
서경은 빙긋 웃었다.
《지난해에 연구사가 됐습니다. 연구조수였지요. 세명의 연구사와 조수 두명, 부조수 한명이 망라된 연구조의 한 성원입니다. 부조수, 조수, 연구사, 상급연구사… 과학연구기관 전문가들의 급수는 이런 순서로 올라갑니다. 해심동무가 잘 알겠구만.》
그러자 모두의 눈길이 해심에게 돌려졌다. 해심은 당황하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학졸업생들이 연구기관에 배치될 때 부조수의 자격을 가지는데 최우등졸업생들은 한급 높은 전문가로 단번에 조수자격을 줍니다.》
찬우가 그까짓 급수물계는 알아 뭘하겠느냐는 식으로 해심의 말에 손을 홰홰 내저으며 서경에게 바싹 다가앉았다.
《지배인, 내 어쩐지 우리 지배인은 보통사람들하구 다르다는감이 자주 드는데 오늘은 한잔 한김에 색시하구 짝을 뭇던 얘기나 좀 들읍세. 지나간 얘길 좀 하라니.》
천영도 그 말에 수긍하며 재촉했다.
《그래주오. 비밀이 아니라면 말이요. 이거 당비서라는 사람이 자기 지배인 지나온 경력두 똑똑히 몰라, 가정생활두 몰라, 딱할 때가 많소.》
《정말입니다. 우리두 좀 압시다. 앞으로 참고가 될지 알겠습니까. 그렇지?》
철국이까지 이렇게 동을 달며 은향이를 능청스럽게 돌아보았다. 은향은 얼굴이 빨개지며 눈을 곱게 흘겼다.
《나보군 왜 그래요? 자기나 알고싶다구 할게지.》
《뭘 그러오? 우리가 어떤 사이라는걸 이젠 온 기업소가 다 아는데.》
그러자 찬우가 무릎을 쳤다.
《옳거니, 세상에 우스운게 몸뚱이 다 드러난줄두 모르구 대가리만 눈속에 구겨박은 까투리라니. 그러구선두 제딴엔 잘 숨었다구 생각하겠지?》
그 말에 모두가 웃으며 은향을 돌아보았다.
《좋긴 좋다, 한 기업소에서 쌍이 나오니. 잔치술두 두번 먹게 됐어. 녀자집에선 안날에 손님접간하니 은향아, 내 그때부터 가겠니라. 그리구 당일날엔 철국이네 집에 가서 또 마시구.》
《아바이두 참, 련달아 이틀 〈흙〉이 되자구요? 어느 하루야 술 굶어야지.》
정란이가 옹알거리자 또 웃음소리가 터졌다. 서경은 몸둘바를 몰라하는 은향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정 듣고싶다면 말합시다. 비밀도 아니구 그렇다구 특별히 참고되거나 자랑할것두 없긴 한데.…》
그들은 한도시에서 대학을 다녔다. 서경은 경제대학에, 옥심은 농업대학에. 서경이 대학 2학년때 옥심은 졸업반이였다.
남다른 사연을 안고 대학에 왔고 최전연의 전초구분대에서 강철같은 의지력을 배운 서경은 직심스러운 탐구가였다. 대학 2학년에 이르러 서경의 발걸음은 자주 도립도서관으로 향하군 하였다. 련합도서목록을 뒤지며 인민대학습당과
대소한계절의 어느 일요일이였다. 점심식사도 잊고 자료에 파묻혀있던 옥심은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빈혈로 쓰러졌다. 열람실에는 서경이밖에 없었다. 난방용연료가 긴장하여 도서관은 아래층 큰 열람실 한칸에만 불을 때고 거기서 독자들이 열람을 하게 하였다. 외국문자료들, 특허문헌사본들이 있는 웃층 구석진 곳의 서고에는 서경과 옥심이만이 들어박혀있었다. 자료들을 찾느라고 오르내리기 시끄러워 아예 그곳에서 입김을 날리며 독서에 열중하고있는 이 독학가들에게 도서관의 사서는 서고를 통채로 내맡기고 아래층열람실에 내려가있었던것이다.
처녀가 쓰러지자 뛰쳐일어났던 서경은 그것이 빈혈이라는것을 곧 알아차렸다. 서경은 처녀의 립장이 난처하게 소동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안아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그것이 연분으로 되였다. 그들사이를 더욱 가깝게 해준것은 처녀의 아버지가 서경이 복무하던 전선동부 최전방사단의 군사부사단장이라는것이였다. 그들의 정은 깊어졌다. 대학전과정을 최우등으로 마치고 가치있는 졸업론문을 농업과학잡지에 발표한 옥심은 평양의 농업과학연구원에 배치받았고 평양과 원산사이로는 애틋한 정이 담긴 련인들의 편지가 달마다 오갔다.
기세좋게 타오르던 사랑의 불길이 별안간 불머리를 숙였다. 그것은 방학때도 늘 기숙사에 남아 공부하든가 현실연구를 나가던 서경이 그해 방학에는 이미 세웠던 류진지구에 대한 현실연구계획을 미루고 제대되여 고향에 간 자기의 옛 군사부사단장을 찾아 청진을 다녀온 다음이였다.
《서경동무, 동무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려면 한해 더 있어야 해요. 이제부터가 중요하답니다. 이삭이 패는 시기부터 여물 때까지가 한해농사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것처럼.
우리의 사랑을 잠간 보류하자요. 제 생각은 잊어주세요. 내 나라 경제의 억센 대들보가 되기 위해서 분초를 쪼개기 바래요. 동무가 대학의 최우수졸업생으로, 뛰여난 경제전문가로 될 때까지 전 편지도 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저의 사랑인줄 알아주세요.》
진실하고 뜨겁고 깊은 정이 담긴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였다.
서경은 단마디로 회답하였다.
《알겠소, 내 사랑!》
서경은 처녀가 바라던대로 대학을 졸업하였다. 아니,
그무렵 그들의 사랑에 새로운 곡절이 생겼다. 옥심이가 자기의 인생에서 가정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결단을 내렸던것이다.
무엇보다 결심하기 힘든것이 그것을 위하여 3년간이나 가꿔온 순결한 사랑을 스스로 포기해버리는것이였다. 불타는 정열가, 무서운 실천가, 열정아, 재능아, 억세고 순결한 사나이… 그래서 더욱더 마음이 끌렸던 서경. 마침내 그것을 포기하고 서경에게 잊어달라는 편지를 보낸 그밤이 지난 아침 옥심은 눈이 퉁퉁 붓고 10년을 더 산듯 늙기까지 해가지고 당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김서경, 그는 처녀를 달래고 설복하여 돌려세우는 그런 남자가 아니였다. 어려운 그 길을 스스로 걷는 처녀를 아픔을 묵새기며 묵묵히 바래주는 그런 남자도 아니였다. 편지를 받은지 사흘이 지나 바쁜 일감들을 서둘러 간종그리고 서경은 철도역에서도 백리나 떨어진 그 시험포전으로 달려갔다.
책임연구사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연구과제가 되리라는것이 이제는 명백해진 이 연구과제에 10년세월을 바치고있는 칠순의 로학자였다. 이 연구조의 두번째 책임연구사인 로학자는 650리길을 달려온 서경의 결심에 깊이 감동되였다.
그들은 시험포전머리의 낡은 연구막에서 소박하기 그지없는 결혼식을 하였다. 연구조의 유일한 녀성인 옥심이가 거처하는 부엌달린 시료분석실이 닷새동안 그들의 신방이 되였다.
연구조가 이곳에 첫발을 들여놓은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농장의 관리일군들은 몇차례나 바뀌였는지 모른다. 이제는 농장에서 연구사업에 필요한 협조로력도 보내주지 않았다. 마을에서도 바다쪽으로 퍼그나 떨어져있는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이란 동화속의 신비로운 모험세계에 잠긴 꼬마들밖에 없었다. 다감한 처녀 옥심이가 애틋하게 피여나던 사랑을 스스로 포기하고 찾아온 곳은 바로 이런 곳이였다.
초청할 이웃도 없는 그곳에서 그들은 결혼식을 하였다. 첫날옷도, 큰상도, 결혼사진도 없는 결혼식. 실험기구들을 밀어놓은 실험탁에 신랑, 신부를 포함한 일곱사람이 둘러앉아 짧은 저녁식사와 긴 이야기를 나눈 류다른 결혼식이였다. 수집던 시각도 잠간, 신부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판에 끼우고 화제가 어느덧 과학사업, 경제사업으로 심도있게 번져가니 결혼피로연인지, 학술담화자리인지 가늠할수 없게 되였다.
여섯명에서 다루는 두정보의 시험포전. 신랑은 다음날 첫새벽부터 그들과 함께 그닥 시원치 못한 시험농사결속을 도와주고 밤이면 신부를 도와 연구자료들을 선별해주었다. 그속에서도 신혼의 5일간이 꿈처럼 흘러갔다. 다섯번째 밤을 보낸 아침 서경은 책임연구사와 옥심의 편지를 가지고 청진으로 떠나 처가집문을 두드렸으며 혼자서 가시아버지, 가시어머니의 축복을 받았다.
연구조사람들은 옥심이와 함께 가라고 하였으나 서경은 한해시험의 경험과 교훈을 총화해야 할 제일 중요한 시기에 분석조수의 자리를 비울수가 없다고 하면서 혼자 떠났던것이다.
《옥심이, 먼길에 나섰으면 처음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례외라는걸 한두번 허용하면 인생이 례외로 흘러. 변치 말고 끝까지 가오. 내 마지막까지 밀어주는 남편이 되겠소.》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있는 안해를 한번 더 뜨겁게 끌어안아주고 그는 떠났다.
열달후 옥심은 현지의 농장진료소에서 자기가 바라던대로 남편을 꼭 찍어낸것 같은 아들을 낳았다. 산전휴가의 마지막날까지도 시험포전에 바치다가 초산의 진통으로 쓰러진 녀성과학자. 하마트면 그 생명이 위태로울번 했던 그날이 지나고 새 생명이 고고성을 터뜨린 새벽 농장진료소의 토방에 앉아서 연구조성원들과 같이 뜬눈으로 밤을 새운 리당비서가 시험포전과 초막이나 다름없는 연구조성원들의 거처지를 오래오래 돌아보았다. 포전머리에는 불과 보름만에 기와집이 번듯하게 일어섰고 시험포전에는 다시 협조로력이 붙었다.
《8월 25일 옥심 생남. 산모건강.》이라는 전보에 서경은 《김호영의 장래를 축복함. 아버지.》라는 전보만을 보냈다. 새로 일떠서는 회사는 사장의 아들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황금의 삼각주》에서 일확천금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려고 재벌들이 파견한 대표들, 《철의 장막》을 끝끝내 벗겨버린 《개혁》, 《개방》의 틈바구니를 탐색하려고 찾아드는 기업가 아닌 기업가들과의 아량있으면서도 원칙적인 면담들이 긴장하게 벌어지고있었던것이다.
일곱달이 지나서야 두눈에 피발이 가득 서가지고 자기 집을 찾아간 서경은 안해에게 말했다.
《말을 들으니 일곱달이 지나서부터는 어머니의 젖이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했소. 그럴바엔 이제부터 시작해서 한달동안 젖을 떼오. 이건 밤이요. 젖떼기할 때 밤살이 젖살을 내리지 않게 한다기에 사왔소. 그리고 아이는 젖을 뗀 다음엔 외가집에 보냅시다. 당신이 아이한테 빠져있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지장이 가오.》
딸네 집에 와있던 가시어머니가 야단쳤다. 아이들은 젖을 오래 먹을수록 튼튼한 법인데 누가 그런 가을뻐꾸기같은 소리를 하더냐고. 그리고 아이는 자기가 거둬주는데 지장은 무슨 지장이냐고. 하지만 옥심은 흔연히 남편의 말을 따랐다. 어려운 길에 나선 자기의 뜻을 누구보다 리해하고 소중해하는 남편의 말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녀자라도 모성의 정애앞에서는 어쩔수 없는것이다. 하루이틀 짬이 생기면 옥심은 아들이 있는 친정으로 달려가군 하였다. 다 비우지 못한 어머니의 풍만한 젖가슴은 색색거리며 그것을 더듬는 어린 아기의 말큰말큰한 입술과 손가락의 짜릿한 그 감각이 저려나도록 그리웠던것이다. 아기는 꼴깍꼴깍 탐스럽게 소리를 내며 젖을 빨다가 고개를 젖히고는 대견스레 내려다보는 엄마와 외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해롱해롱 웃다가는 다시 오물오물 빨아대군 하였다. 그 모양이 깨물어주고싶도록 사랑스러워 볼이며 손발이며를 쪽쪽 빨아주면서 옥심은 이런 행복을 스스로 포기할 결심을 다지던 때를 회상하군 하였다.
…잠든 애기를 남의 집에 맡기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혁명, 혁명》이라는 부르짖음으로 씹어삼키며 산으로 올랐다는 녀투사들, 울부짖는 눈보라…
그들처럼 나도 살리라 결심하고 이 길에 들어섰으나 포기해버렸던 가정을 이루고 복동이 어린 아기까지 품에 안고보니 어쩐지 자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을 끝까지 가낼것 같지 못한 생각이 들군 했다.
(난 암만 해도 안될것 같애.)
이전에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연구조에서 자기의 위치가 자꾸만 생각되였다. 책임연구사, 그밑에 두명의 연구사, 또 그아래엔 세명의 조수, 부조수들. 피라미드같기도 하고 쐐기같기도 한 그 삼각대형에서 자기는 한낱 조수일따름이다. 조수가 바뀐다고 연구사업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또 조수 한명이 물러선다고 연구사업이 흔들리는것은 더욱 아니다. 어머니인 옥심에게서 아기는 연구사업보다 더 귀중한 세상전부의 또 전부였다. 짬이 있을 때마다 아들에게로 향하던 발걸음이 얼마후부터는 그 짬을 일부러 마련해서 이어졌고 아이에게 젖을 물려 끼고자는 밤들이 한밤, 두밤… 때로는 네댓밤씩 되기도 하였다.
옥심은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이 더욱 그리웠다. 고요한 밤이면 젊은 안해는 남편이 그리워 베개잇을 눈물로 적시군 했다. 그러다가 깨여난 아침이면 그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무척 아름찼고 그런 날은 몇곱절로 힘들군 하였다.
그사이 류봉무역회사는 빈터에서 일떠서 드디여 외국회사, 상사들과의 거래를 솜씨있게 해제끼는 힘있는 무역단위로 자라났다. 사장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으면서도 아직 집이 없어 가족을 못 데려오는것으로만 알고있던 시의 일군들은 큰 일들을 맵시있게 제끼군 하는 서경에게 새로 지은 아빠트를 배정해주었다.
남편의 편지에 집을 받은 소식이 적히자 옥심은 류진으로 달려왔다. 짬이 있어 집보러 왔다는것은 엄격한 남편에게 내대는 구실이였고 그보다 보고싶고 그리운것은 남편이였다.
새 집에서 보내던 첫밤에 서경은 안해의 마음속에 생겨난 동요를 알게 되였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오르며 서경은 두통의 편지를 안해에게 꺼내주었다.
《읽어보오. 당신이 보낸 편지들이요. 하나는 내가 대학때 사랑을 보류하자던 편지고 하나는 재작년에 갈라지자고 보냈던 편지요. 감회가 새로울거요.
난 점심엔 못 들어오오. 대방들과 면담이 있소. 저녁엔 일찍 들어오지.》
옥심은 온종일 자기가 썼던 편지들, 남편의 손에서 보풀까지 인 그 편지들을 눈물속에 읽고 또 읽으며 지척이지만 아득히 흘러간것만 같은 자기의 처녀시절을 가슴아리게 추억했다.
《서경동무, 차라리 동무가 뛰여난 재능과 무거운 책무를 지닌 청년이 아니였다면. 그러면 나를 위해서, 우리
헤여질것을 결심한 이 시각 더욱더 사랑하는 서경동무! 바라건대 내 나라 경제의 억세고 억센 대들보가 되여주기를 그리고 어느 처녀인가가 나처럼 동무를 사랑해주기를―
부디 빌어요. 내 마음 더 흔들어놓지 말아주세요. 이제 동무가 뭐라고 가슴가득한 정을 보내온다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이 길을 포기할거예요. 다만 두해전 그날처럼 〈알겠소, 내 사랑!〉 이 한마디만 적어보내줘요. 그 글발을 한생토록 품고 바람찬 이 길을 유한없이 걷겠어요. 1994. 10. 2. 옥심.》
옥심은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이 늘 간직하고 다니면서 안해가 그리울 때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꺼내보았을 편지, 안해의 얼굴처럼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보풀이 인 이 편지들. 옥심은 남편이 어째서 이 편지들을 꺼내주고 나갔는지를 깨달았다.
아이를 남의 집에 맡겨놓고 눈보라치는 백두산에 오른 녀투사들의 장한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자기가 조수이듯이 그들도 빨찌산의 가장 평범한 녀대원들이였다. 그들가운데는 지휘관도 아닌 빨찌산녀대원 한명이 혁명의 운명을 결정하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녀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자기
행군길에서 쉴참이면 돌아앉아 남몰래 눈물을 삼켜가며 불어오른 젖을 짜내군 했다는 그들! 생사를 알길 없는 그 피덩어리들의 운명이 가슴을 찢을 때도 강잉히 일어나 분노의 총구로 원쑤를 찾았다는 그들! 바로 그들이 위대한 오늘에로 혁명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주는 피줄기― 백두의 혁명전통을 창조하였다.
고난의 행군. 이 처절한 행군길도 이제 우리 혁명사에 또 하나의 영광스러운 전통으로 남을것이다. 피눈물에 잠기고 굶고 얼면서도 일편단심
남편의 가슴속에 자기가 이런 모습으로 간직되여있음을 옥심은 깨달았다. 안해가 남편을 그리듯 남편 또한 안해를 그렸음을 말해주는 보풀이 인 이 편지들은 다름아닌 김서경이라는 사나이의 심장속에 간직된 옥심이
이런 뜻높은 사나이의 사랑을 받고있는 녀자가 이 세상에 나 말고 또 있을가? 안해의 참되고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 부부간의 애틋한 정도 가정의 안락도 뒤전에 밀어버린 이런 남편에게서 나는 세속적인 사랑을 바랐단 말인가.
그날 밤 옥심은 남편의 가슴을 눈물로 적셨다.
《옥심이, 난 사랑해. 농업과학자 전옥심이의 불타는 심장을. 우리 호영이한테도 이걸 물려주자, 이 심장을!》
다음날 아침 옥심은 짐을 꾸려들었다. 남편이 안해의 얼굴을 자기의 억센 가슴에 꼭 가져다대며 말했다.
《이제 닷새있으면 호영이 첫돌인데 이왕 왔던김에 며칠 더 쉬고 같이 청진에 나가서 돌생일이나 차려주고 가지? 아니면 내가 데려다가 여기서 차리던가.》
옥심은 입술을 감쳐물며 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난 가야 해요. 분석조수가 없이 연구조가 무슨 일을 할수 있겠나요. 애는 당신이 데리고 오세요. 그 앨 받아준 농장사람들과 우리 연구조사람들한테서 첫돌축복을 받게 하자요.》 단호하게 걸음을 옮기던 옥심은 문가에서 멈춰섰다. 안해는 잡았던 문고리를 스르르 놓고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그린듯 망연히 서있는 남편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애절한 정이 눈가에 끓고있었다.
《여보!…》
닷새후 어린 호영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연구사들, 농장사람들이 아니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서 호젓하게 첫돌생일을 보냈다. 아침부터 외손자에게 새로 마련한 색동옷을 입혀놓고 어느 한쪽이라도 오겠거니 하고 기다리던 호영이 외할머니는 낮에 날아온 《첫돌축하. 아버지.》라는 사위의 전보에 이어 늦은저녁무렵에 글자수까지 꼭같은 《첫돌축하. 어머니.》라는 딸의 지급전보를 받아보고는 너무 기가 막혀 주저앉아버렸다. 대좌견장을 달았던 옛 군사부사단장은 장난감대신 그 두장의 전보문을 량손에 갈라쥐여서 찍은 외손자의 돌사진을 로친이 《미친것들, 한바리에 실어두 짝지지 않을것들…》이라고 밤새껏 욕해도 미친것이 더 대견스러운 딸과 사위에게 각각 보내주었다. 일은 바로 그날 오전 옥심에게 《오늘 류진바다가양식사업소 지배인으로 임명됨. 돌생일 못감.》이라고 날린 서경의 전보에서 시작되였다. …
남다르게 흘러왔고 남다르게 흐르고있으며 앞으로도 남다르게 흘러갈 자기들의 사랑 그리고 가정생활,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찬우, 천영, 철국, 은향, 해심 그리고 정란…
내가 저들에게 과연 무엇을 말해줄수 있단 말인가? 그리움? 아니면 몇달에 한번씩 만나는 상봉? 그 상봉은 더 말하기 괴롭다. 만나는 기쁨과 헤여져야 하는 아픔이 안해의 한눈물속에 다 담겨져있는 그런 짧은 상봉이다. 그래서 그리움보다 더 말하기 괴로운 상봉이다.
서경은 그들에게 이 모든것을 하나도 말해줄수 없었다. 다만 그것들이 일순간 그의 눈앞에, 가슴속에 흘렀을뿐이다.
《우리 집사람은 이제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잘나진 못했습니다. 키도 자그마하구 얼굴은 들바람에 터서 가무잡잡하지요. 그래도 내겐 귀중한 사람입니다. 우린 대학때부터 가까이 지냈는데 처녀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과학탐구의 길을 걷는 그 뜻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곳 연구사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압니까?
무역회사에 있을 때 한번은 타갠 강냉이에 풀뿌리를 섞어먹는 그들을 생각해서 뭘 좀 싣구 찾아갔던적이 있었습니다. 임신중이던 우리 사람이 무척 좋아하더군요. 연구조 몇달 식량보탬되겠다구 말입니다. 바쁜 길이여서 하루밤 같이 있지두 못하구 돌아섰는데 늙은 책임연구사선생이 헤여질 때 조용히 말했습니다.
〈사장동무, 고맙소. 동무의 성의니 이번엔 받겠지만 앞으론 이러지 마오. 경제일군이 제집살림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라경제가 추서지 못하오. 동무는 무역일군이 아니요.〉하구 말입니다.
고마운분이지요. 그게 사실 첫아이 임신한 제 사람 먹이고싶어서 가져온거라는걸 짐작하면서두 그런 말을 하자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좋은 사람들속에 있으니 내 사람도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