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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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여 완공의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풀섬양식기지는 자기의 자태를 완전히 드러내놓았다.

투박한 돌을 쌓아 지은 건물들이지만 미장을 얼마나 멋들어지게 해놓았는지 매 건물들이 하나도 꼭같은데가 없이 다 개성적이고 특색있었다. 안쪽은 매끈하게 면을 맞추고 바깥쪽은 울퉁불퉁한 돌들이 머리를 내밀었는데 이음짬들마다 띠모양의 미장을 한 이것을 설계자인 현숙이는 《띠미장》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명남이는 울퉁불퉁 내민 돌들의 테두리에 미장띠를 두른것이 마치도 안경을 낀것 같다면서 한사코 《안경미장》이라고 우겼다.

작업반실, 가공장, 창고, 세목장, 식당, 키낮은 염소우리며 층층이 깜찍한 아빠트같은 토끼우리들. 거기에다 배구와 롱구를 할수 있는 마당이 있고 콩크리트부두도 있다. 부두건설은 20일나마 걸렸는데 서경은 시작부터 마감까지 고무작업복을 입고 찬 바다물속에 있었다.

초기건설계획에는 부두가 통나무잔교로 예견되여있었다. 부두설계를 위해서 현숙이가 바다물밑지형과 파도세기조사를 위해서 현지에 나왔을 때 현숙이를 도와주려고 도시설계사업소 소장 오근성이 함께 나왔는데 그날 마침 시당비서 류인석도 현지에 나와있었다.

《다 좋은데 잔교가 나무로 되는것 하나는 아쉽구만. 기왕이면 콩크리트부두로 건설할수 없을가? 동무들이 자기 힘으로 큰일을 벌려놓았는데 시에서 지원해주겠소. 급결세멘트가 얼마나 있으면 되겠는지 타산해보시오.》

인석의 말에 서경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문제는 철근입니다. 고강도세멘트는 사온다 해도 강재까지 사올 형편은 못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인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류진에는 금속공장이 없지, 금속공장이. 건설강재문제는 류진시의 건설에서 제일 걸린 문제요, 걸린 문제.》

《제철소, 제강소형편들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좋기는 파철을 가지고 각종 환강과 형강들을 뽑아내는 공장이 하나 있으면 좋은데.》 근성이 시당비서의 말에 뒤를 달았다.

이때 측량기의 렌즈를 부지런히 돌려가며 류진만의 해안지형과 전반수역을 열심히 조사하고있던 현숙이가 제꺽 렌즈를 창평도래굽이쪽으로 돌려댔다.

《저기 좌초된 대형부선은 다시 쓸건가요?》

그 말에 근성은 《응? 부선?》 하면서 서둘러 들여다보고나서 류인석에게 보라고 넘겨주었다.

《저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건 이젠 10년나마 됐는데 청진항만건설사업소에서 류진항 3호부두확장공사때 끌고들어왔다가 파도에 떠밀려 좌초된겁니다. 공사가 끝난 다음에 내버리고갔습니다. 너무 파손돼서 쓸모없다는거지요. 그후 조선소사람들이 철판이 욕심나서 뜯어내려다가 품이 너무 들어서 걷어치운건데 비서동지 생각엔 어떻습니까? 지배인동무도 한번 보오.》

로설계가의 말에 서경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시당비서가 물러난 측량기 대안렌즈에 눈을 가져갔다.

이윽고 서경이 눈을 떼자 먼저 들여다보았던 류인석이 묻는듯 한 눈으로 서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서경도 영문을 몰라 현숙이와 근성을 번갈아쳐다보았다.

근성은 그러는 그들을 빙그레 웃으며 마주보다가 말했다.

《현숙인 지금 저 대형부선을 여기 끌어다 처박고 그걸 골조삼아 철콩부두를 건설하자는겁니다. 철근콩크리트부두말입니다.》

류인석의 눈이 번쩍했다.

《그렇게두 될수 있소?》

현숙이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부선의 철판과 형강, 환강들은 일반철근보다 훨씬 견고할겁니다.》

《그런데 저렇게 좌초된걸 어떻게 끌어오겠소?》

이번엔 서경이 물었다.

현숙은 그것도 문제가 아니라는듯 생긋 웃었다.

《유명한 류진해난구조대가 있지 않나요. 물속에 가라앉은 선박도 인양해내는데 저런것쯤은.》

류인석은 처녀설계가의 야심만만한 눈동자를 놀랍게 그리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했다.

《그런 공법도 있었구만. 좋소, 아주 좋소.》

근성은 그러는 시당비서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기성공법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할수 있지요.》

류인석은 머리를 저었다.

《내가 좋다는건 공법보다도 이 동무의 사고방식이 좋다는겁니다. 저 큰 배를 통채로 먹어치울 생각을 하다니, 처녀가. 총각들이 알았단 기겁하겠소.》

가벼운 웃음들이 흘러나오고 현숙은 깔끔하게 눈길을 돌려버렸다.

부두자리의 물밑지형을 조사할 때 현숙은 제 눈으로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기어이 잠수작업복을 입고 잠수공들과 함께 찬 바다물속으로 들어갔다. 새파랗게 얼어가지고 나와 이발을 달달 쪼으면서도 웃음을 짓느라고 애쓰는 현숙이를 바다사람들은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았고 해심이는 그를 꼭 부둥켜안았다. 정열적이고 헌신적인 내 동무!

마감작업에 들어가면서 소대들이 또 개편되였다. 섬에는 두개 소대가 남았는데 청년반을 기본으로 하는 한개 소대는 천영이 책임지고 주변정리와 우물파기를 하였다. 이미 있던 우물을 확장하려댔는데 현숙이와 함께 왔던 오근성은 언덕우에도 샘줄기가 있을것이라고 하면서 반나절이나 마른 풀숲과 잡관목덩굴들을 헤치면서 자리를 찍어주었다. 암반을 까내면서 5메터가량 들어가니 정말 큰 샘줄기가 터졌다. 바다기슭에 있는 우물보다 쩝쩔한 맛이 없고 물량도 훨씬 많았다. 청년반이 그 우물을 파는데 옹근 3일이 걸렸다. 이제는 도랑을 파고 관을 늘이면 아래에 있는 건물들과 가공장들에 저절로 물이 흘러내리는 자연흐름식수도가 된다. 서경이 책임진 다른 한개 소대는 가공장 마감작업에 붙고 나머지 인원들은 생산부원 오찬우가 책임지고 태장건설과 모내기준비에 착수했다.

전투 39일째 되는 11월 13일. 서경의 공정계획대로 모든것이 끝나리라는것이 확실해진 그날 밤은 달이 유난히도 밝았다. 천영과 서경은 새로 일떠세운 양식기지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있었다.

그밤 해심이 역시 잠들수 없어 마당에 나왔다. 래일이면 완공의 날! 무척 길었다. 견디기 힘든 악전고투속에서 길고도 길었던 40일. 그러나 뒤돌아보면 너무나도 짧았던 40일이였다. 인간의 마음속으로 흐르는 시간에는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다. 때로는 견디기 힘들게 길고 때로는 순간처럼 짧은 이 시간의 길고짧음은 생활의 폭과 심도, 성격과 양상에 따르는 법이다.

해심은 환한 달빛아래서 자기의 손등에 생긴 허물자리를 쓸어보았다. 돌을 메여나르던 그때 못 견디게 밀려드는 졸음을 참느라고 깨물었던 자리이다.

《해심아, 용쿠나. 네가 쓰러지지 않고 견뎌내니 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

새로 지은 작업반실에서 잠을 자던 날 모포를 같이 덮고 나란히 누운 은향이가 손등의 그 허물자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난 동무를 보면서 힘을 얻었어요. 동무도 힘들었지요? 매일 밤 작업복들을 빨아주구 기워주구 말리워주구 하지 않았나요.》

《너두 그러지 않았니.》

《난 그저 동무를 돕느라구 따라섰을뿐이예요.》

《고맙다. 나야 반장이 아니니. 청년비서구. 구실을 하자면 아직 멀었어.》

철국의 자재수송조원인 명남이가 짬시간에 우물파기작업장에 왔다가 깊은 구뎅이속에서 일하는 은향이와 해심이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은향누인 영웅이구 해심누인 모범전투원이야!》

그 말에 두 처녀는 깊은 우물안에서 허리를 싸쥐고 웃었다.

《명남아, 같은값이면 둘다 영웅이라구 해주렴!》

은향이 올려다보며 소리치자 명남이는 《그런 평균주의는 지배인동지식이 아니란 말이예요!》 하고 대꾸했다. 그바람에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댔다.

죽도록 힘들었던 일들과 그만큼 보람도 크고 웃음도 많았던 일들을 추억하며 해심이 혼자서 웃음을 짓는데 마당 한켠에서 천영과 서경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지배인동무, 난 지금 막 꿈을 꾸는것 같소. 이게 정말 우리가 한게 옳긴 옳소?》

《저두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꼭 흥부가 켠 박에서 솟아난것 같은게.》

《우리한테야 그런 박씨를 물어다줄 제비가 없지. 우리 힘, 우리 손! 얼마나 좋소?

지배인동무가 고생많았소. 젊은 지배인이 몸을 아끼지 않구 앞장에서 내달리니 기업소가 젊어졌소.》

《별말씀 다 하십니다. 그저 뒤는 비서동지한테 맡긴다 하구 냅다 뛰였지요. 욕많이 하십시오. 사람들한테두 내가 너무 혹독했지요? 비서동지가 아니였다면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락오자를 만들번 했습니까. 그 사람들이 정말 떨어져나갔더라면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합니다.》

어째서인지 천영은 더 말이 없었다. 한참만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람문제 말이 났으니 말이지 미결건이 하나 있소.》

해심은 당비서가 누구를 념두에 두는지 대뜸 알아차렸다. 정량원, 그에 대해서 이제 지배인이 뭐라고 하겠는지 귀를 바싹 강구었다.

《정란동무 문제겠는데 나도 생각이 있습니다. 래일이면 모든게 끝납니다. 저녁엔 우리도 철수하게 될겁니다. 그때 내가 정란동무를 찾아가겠습니다. 그 동무가 제일 힘들 때 섬에 들어와서 큰 몫을 맡아주었습니다. 어린애를 떼놓구 섬에 들어온다는게 간단합니까?

있을 때는 다 몰랐는데 그렇게 가버리니 전투지휘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 정량원이 몫을 크게 맡아주었다는거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좋소.》

《뭘 그럽니까. 난 수자쟁이가 돼놔서 일한건 한것대루 다 계산합니다. 아무렴 내가 사람을 정말 버리겠습니까? 단단히 오금을 박아주는것으로 그칠수도 있었지만 앞으로 기업관리에서 예상치 않은 후과를 초래할가봐 시초에 버릇을 떼주느라고 그런겁니다. 로력관리는 기업관리에서 기본의 기본이 아닙니까.

그리구 한 스무날 지내보니 우리 정량원에게 좋은 기질들이 있습디다. 마음만 동하면 가림없이 걷어안아서 막힘없이 해치우고. 주장도 있고 배짱도 있고. 그렇게 다불리는데두 탕탕 맞서는걸 보지 않았습니까.》

《허헛 참, 사람두 독하기란. 그렇게 생각하면서두 뛰쳐나가게 내버려뒀단 말이요?》

《실컷 울구불구한 다음엔 다시 올 녀자라는 믿음이 가더군요.》

두사람은 껄껄 웃었다. 해심은 그러는 지배인쪽을 밉지 않게 흘겨보았다.

남자들이란 정말! 녀자를 그렇게 울려놓고도.

《그러지 않아두 내 둬번 갔댔는데 서러워서 울며불며 야단입데. 아무래두 지배인이 가야 풀리지 안되겠소. 헌데 매맞을 각오는 하구 가야 되오.》

《그러지요. 그런 녀자한테라면야 지끈하게 매두 맞아볼만 하지요. 그 동무가 울면서 한밤중에 노저어 떠나던걸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알알합니다.》

해심은 무거운 짐을 덜어놓은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러면서도 눈굽은 뜨거워났다. 사색하는 힘이 있고 헌신하는 열정이 있으며 마음도 대범한 지배인 그리고 그뒤를 말없이 깐깐히 감싸주는 당비서. 우리 바다가 주인들을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심은 잠자리에 돌아와 은향에게 자기가 들은것을 자초지종 속삭여주었다. 은향이도 해심이를 꼭 그러안으며 《우리 지배인동지 정말 남자로구나.》 하고 속삭였다.

그러나 다음날 일은 판판 뒤집어졌다. 정량원을 데려오기는 고사하고 자재부원 석용하를 해임철직시키는 사태가 일어났던것이다.

아침에 전체 종업원들이 다 섬에 건너와서 작업대상을 맡았다. 마지막작업대상!

자기자신의 힘에 대한 벅찬 희열과 랑만에 넘쳐있는지라 도랑파기, 건물정돈, 주변정리는 들끓는 분위기속에서 흥겹게 진행되고있었는데 미장조만은 안타깝게 뭍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10시가 지났는데도 세멘트가 건너오지 않았던것이다.

마지막세멘트. 사람들이 발을 굴렀다. 몇십톤의 세멘트를 쓰면서 일사천리로 내달린 공사가 마지막 5백키로그람이 제때에 당도 못해서 문턱에서 어푸러지는 격이 되는것이 아닌가?

로동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난다긴다 하는 석용하가 어떻게 된거야?》

《철국이한테서 사달나지 않았나? 발동선 고장나던가?》

《아니야, 숱한 자재를 전마선으로 날랐는데 배가 고장나면 철국이가 가만 앉아있을 사람이야?》

《세멘트가 튀였다는 소리야.》

《알게 뭐야? 석용하가 또 무슨 요술을 피우는지?》

《그런 말 망탕 하는게 아니야.》

《흥, 원래 그런 버릇이 있지 않나. 여기 와서 흙 한삽 떠본적이 있어?》

자재부원을 두고 저마끔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초급당비서가 돌아보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양식사업소사람들은 석용하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전에 관리일군들을 조절할 때 자재부원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었다.

오전시간이 다 가도록 나타나지 않는 자재수송조때문에 누구보다 속상해하는 사람은 은향이였다. 저만치에 따로 떨어져서는 멀리 뭍을 애타게 바라보고있는데 초겨울의 바다바람에 머리카락이 마구 흩날려도 비다듬을념을 않고있었다. 자재수송조를 철국이 책임지고있으니 은향이가 속이 탈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끄떡없이 서서 사업소가 자리잡은 저쪽기슭을 지켜보고있던 서경이 마침내 미장칼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기관선 발동거시오!》

아침에 종업원들이 타고들어왔던 2백마력기관선이 발동을 걸었다. 바로 그때 사업소부두쪽에서 수송조의 자그마한 잠수작업선이 빠져나오는것이 아물아물하게 보였다.

《세멘트가 온다!》

모두가 환성을 지르며 일어서고 부두에서 배에 오르려던 서경도 걸음을 멈추고 서서 그쪽을 뚫어지게 지켜보다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0시 50분, 아무리 만속을 걸어도 이제 저 배가 섬에 당도하자면 한시간이 거의 걸린다.

《모두 하던 일을 계속하시오.》 서경은 짧게 지시를 주고 몇사람 이름을 찍었다.

《동무들은 가공장마감작업조에 붙어야겠소. 오전 한겻을 공쳤으니 지금 인원을 가지고는 암만해도 해떨어지기 전에 끝낼것 같지 못하오. 자, 좀 이르긴 하지만 마감작업조는 먼저 점심식사를 합시다.》

모두 긴장되였던 마음들이 풀어지며 다시 일손을 잡았지만 왜 그런지 처음처럼 성수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꾸만 배가 도착하는 부두가에 왼심이 씌워져 그쪽을 바라보군 했다.

드디여 배가 도착했다. 곧 가공장마감작업에 불이 붙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그쪽은 조용하고 마감작업조는 우두커니 부두가에 서있기만 했다. 명남이가 청년반이 일하는데로 뛰여올라왔다.

《어떻게 됐니?》 은향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다우쳐묻자 명남이는 《쳇, 빈배로 왔어요.》 하고 제사 맹랑하다는듯 주저앉았다.

《빈배로 오다니?》

《세멘트 꽝꽝 생산할 땐 뭘하구있다가 그렇게 찔끔찔끔 받아오니까 그러지요. 세멘트공장이 멎었대요. 석회석이 떨어져서 생산을 못한다나.》

《그럼 어떻게 한다니?》

《낸들 알겠나요? 기업소에서 기다리라구 해서 철국동지하구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는데 저 사람은 열시가 지나서야 나타났어요.》

이때 부두가에서 서경의 노성이 터졌다. 모두가 우르르 그쪽으로 달려내려갔다. 은향은 바람개비처럼 달려가려는 명남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철국동문 안 왔니?》

《철국동진 그 5백키로를 무조건 대야 한다구 어디로 갔어요.》

부두가에서는 서경이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자재부원을 다몰아대고있었다.

《동문 뭘하는 사람이요? 자재일군이 맞긴 맞소? 세멘트 5백키로라는게 열둬마대밖에 안되오. 내 마지막세멘트 대책세우라구 말한게 벌써 닷새전이지?

세멘트는 많은 물동량을 요구하는 생산물이요. 원료가 없어서 생산이 멎을 땐 벌써 며칠전부터 예견한단 말이요. 그러니 이 며칠동안 공장에 가보지도 않았다는건데 그럼 어디 가서 건달부리구 다녔소?》

석용하의 안경낀 두눈이 해빛에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건달부린줄 압니까? 공장사정이 그런걸 어찌겠습니까. 자재사업 걷어치우든가 해야지 일은 일대루 하면서…》

석용하가 대들자 이번엔 천영이 강판을 두드리는것 같이 소리쳤다.

《공사의 결속을 망쳐놓구 무슨 할 말이 있다구 그래? 하루이틀 미루자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가? 오늘이 며칠이요? 당장 모내기 들어가야겠는데 관리성원이라는게!》

석용하는 머리를 바다쪽으로 돌리고 씨근거렸다. 서경은 불이 황황 이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건달을 부리지 않았다구? 좋소, 이젠 털어놓고 말해보기요. 자재보장은 사실 이번 공사의 생명선이였소. 내 그래서 후방조를 따로 조직해서 동무한테 맡겼던거요. 생산물을 먼저 자재사업에 쓰구 그다음에 후방사업에 돌리라구 말이요. 그 험한 미역범벅을 사람들한테 먹이면서두 생산물을 뚝 떼서 쌀, 기름 좀 사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걸 혀를 깨물면서 참았소.

우리가 참을수 있는걸 참구 견딜수 있는걸 견뎠는가? 저 청년반 어린 처녀들 다섯을 부모들이 찾아와서 한꺼번에 데려간 날 밤 난 울었소. 그 애어린 처녀들이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막돌을 져나르구 배고파서 찬바다물에서 날미역을 건져서 씹던게 눈에 맺히구 가슴을 허벼서 울었단 말이요. 우리가 잘사는 날이 오면 저 애들만은 내 업어서라두 데려오겠다구 결심하면서 이발을 사려물구 일어섰소. 오죽 힘들었으면 남자들까지 사표를 내구 작업반장들까지 물러섰댔겠는가?

자재사업에 들어간 생산물이 얼마요? 그 누구의 수완이 아니라 가정을 가진 우리 녀성들이 제 아이 굶기면서두 고스란히 갖다바친 그 생산물들이 있었기때문에 이 숱한 자재들을 마련했단 말이요.

말해보오. 이 어려운 때 동무처럼 손에 푼푼히 쥐구 일하는 자재일군이 어디 있소? 그런데두 막판에 와서 다해놓은 밥 죽 쒀놓는가? 고생하는 자기 사람들 희롱해두 분수가 있지!》

그 마지막말에 석용하는 홱 돌아서며 서경에게 대들기 시작했다.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마오. 내가 그래 자재를 떼먹었는가? 기업소생산물을 떼먹었는가? 저 혼자 일하는것처럼 놀지 마오. 사람들이 뒤에서 다 욕해! 세멘트 몇십톤이나 쓰면서 키로루 쪼개는 사람두 내 처음 보구.》

《석용하!》 천영이 노성을 질렀다.

《누가 욕한다는거요? 누가? 이 풀섬개척은 당정책을 관철하는 결사전이요!

동무 눈엔 세멘트 5백키로가 보잘것 없는건가? 지난날엔 그렇게 흔하구 하치 않았던것들두 지금은 피같이 귀한 때가 아닌가. 자재사업을 맡았으면 자기 책임을 옳게 해야지 그게 뭐요?》

《글쎄 나두 다 잘했다는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저 사람을 개몰듯 하니. 저런 사람밑에서 누가 일해먹겠습니까? 난 더 못하겠습니다. 안하무인이라는건.》

평소에 좋지 않게 보아온데다가 일을 망쳐먹고도 제편에서 기가 올라 펄펄 뛰며 지배인의 작풍을 걸고드는 석용하를 종업원들이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흥, 건져낸 생선처럼 되겐 퍼들쩍거리네.》 코김을 내부는 명남이를 은향이가 팔굽으로 가볍게 쳤다.

서경은 용하의 앞에 다가서서 불꽃이 탁탁 튀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당신의 건달군같은 작풍과 품행에 미리 불을 걸지 못해서 오늘 일이 이렇게 됐소. 내 책임이요. 가오, 당신 가고싶은데로. 그러나 계산은 똑똑히 한 다음에 보내두 보내겠소.

알아두라! 난 못 속여. 배속에 집어넣은걸 열물까지 깨깨 토하게 할테니.》

정말 배속을 헤집고 들어가는것처럼 창끝같이 날카로운 그 눈길앞에서 석용하는 기가 질려 뒤걸음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까지 온몸에 소름이 내돋았다.

서경은 홱 돌아서 작업반실로 들어가버렸다. 잠시후 옷을 갈아입은 서경이 다시 나왔다. 별스레 해쓱해보이는 얼굴에 부르튼 입술과 피발선 두눈. 그렇게도 강철같이 굳세보이던 자기네 지배인이 전투 40일동안에 무섭게 수척해진것을 종업원들은 그제야 알아보았다.

서경은 천영에게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좀 들어갔다 나오겠습니다. 어떻게든 세멘트를 끌어와야지요.》 그리고는 명남이를 불렀다.

《명남이, 가자. 발동걸라.》

전투의 가장 힘든 곳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남모르는 마음속 고충을 묵묵히 새겨가며 불길같이 타번진 지휘관. 그는 마지막짐까지도 자기가 걸머지려고 결연히 나선것이다. 해심은 알지 못할 충동에 떠박질려 서경의 앞을 막아나섰다.

《지배인동지, 제가 가겠습니다. 세멘트공장 지배인동지는 우리…》

서경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해심의 말을 막았다.

《그건 안되오. 아마 그 지배인동지는 지금 도착하지 못했다는 석회석화차에 있을거요.》

불쑥 해심의 눈앞에는 그 공장 책임기사와 함께 공장을 돌아보던 때가 떠올랐다. 그 싸이로! 암만 없대도 싸이로만 깨깨 쓸어내도 5백키로 안되겠는가. 그래야 열둬마대밖에 안된다는데.

《아닙니다. 가서 쓸어오겠습니다.》

서경은 우뚝 서며 해심을 의아쩍게 바라보았다.

《공장에 가서 싸이로안을 다 쓸어내면 5백키로는 얼마든지 나올겁니다. 세멘트공장엔 큰 싸이로가 네개나 됩니다.》

순간 눈이 벙긋하던 서경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되오. 그게 어떤 일이라구.》

그러자 은향이가 나섰다.

《일없습니다. 세멘트가루야 털면 되는데. 우리한텐 이젠 목욕탕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청년반이 가겠습니다.》

그때 누구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저기 철국이가, 세멘트가 옵니다!》

그 소리에 모두가 일제히 바다를 돌아보았다. 퍼그나 가까운 거리에까지 매생이가 다가왔는데 철국이가 혼자서 노를 젓고있었다. 백수십명의 종업원들이 한꺼번에 부두가로 달려갔다. 명남이가 날쌔게 부두말뚝에 동여놓은 매생이의 줄을 풀어서 던지며 휙 뛰여내려서는 부리나케 노를 저어 마중갔다. 배부리는 솜씨가 이젠 얼마나 손에 익었는지 명남이의 배는 씨엉씨엉 맞받아가다가 배머리를 핑그르르 돌리며 철국의 배앞에 섰다. 명남이가 던진 바줄이 힘있게 날아가 그 끝이 철국의 배에 떨어졌다.

《코에 걸라요!》 그리고는 신이 나서 힘껏 노를 저어대는데 바줄이 팽팽해지며 제법 철국의 배를 잡아끌었다.

《어디서 났어요?》

《하늘에서 떨어졌다!》

《해, 나두 같이가야 되는건데 괜히 기름만 새기면서 공탕했네.》

《부리워주구 인차 올게지.》

《아예 오지두 말걸 그랬어요. 기다리는 세멘트는 안 오구 와두 필요없는 사람만 실어왔으니 쓴 기름값 계산하면 수지 맞지 않는 수송했지 뭐야요.》

이쪽에서 듣겠으면 들으라는 식인지 아니면 콱 들어라 하고 우정 그러는건지 아무 꺼리낌없이 떠들어대는 명남이의 말에 다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갔다. 아무튼 둘이서 소리높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머리우에서 《꺄우― 꺄우―》하고 저들끼리 소리치고 화답하는 갈매기소리처럼 흥겨운 기분을 자아냈다.

배가 부두에 닿자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해군샤쯔가 몸에 착 달라붙은 철국이 서경에게 군대식으로 보고했다.

《지배인동지, 자재수송조는 마지막수송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시간을 못 지켜서 면목이 없습니다.》

서경은 철국의 손을 와락 움켜잡았다.

《수고했소. 그런데 웬거요?》

《세멘트공장 당비서동지를 찾아갔댔습니다. 생산이 금방 멎었다는데 그렇게두 세멘트가 없겠는가, 쓸어모아두 5백키로는 나오겠는데 하구 말입니다.》

《잘했소. 그래두 공장에 세멘트가 좀 있었던 모양이구만.》

그 말에 철국은 세멘트공장이 있는 먼 기슭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당비서동지가 공장로동자들을 데리구 싸이로들을 다 털어냈습니다. 세멘트먼지를 뽀얗게 쓰고나와서는 한 7백키로는 될것 같다고 하더군요. 공장차에 실어서 사업소까지 날라다주었습니다. 풀섬에 스며있는 애국의 넋이 영원히 살아있게 해달라구 부탁하면서 바래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모두의 눈굽이 달아올랐다. 파도가 뭍을 향해있는 바위투성이섬기슭과 부두벽을 때리며 쉴새없이 철썩거렸다. 마치도 뭍에서부터 거꾸로 파도가 밀려오는듯싶었다. 철썩일 때마다 어머니대지가 보내오는 그 어떤 절절한 당부가 담겨져있는듯 파도소리는 강렬히도 가슴을 흔들었다.

뜨거운것이 핑 어린 해심의 눈앞에는 세멘트먼지를 하얗게 쓰고 바래주었다는 공장사람들의 모습이 화강석군상처럼 그려졌다.

《뭘하랍니까? 제일 힘든걸 맡겨주십시오. 봉창하겠습니다.》

서경은 그러는 철국의 어깨를 툭 치고는 돌아섰다.

《우선 점심식사들을 하시오. 미장조는 먼저 먹었으니 작업을 시작하고 철국동무는 좀 쉬오.》

그제야 땀이 식는지 명남이보고 웃옷을 갖다달래서 입으며 팔소매에 팔을 꿰던 철국은 저쪽에 혼자 서있는 석용하를 보았다. 그러자 옷을 채 입지 않은채로 앞서가는 지배인을 쫓아와서 멈춰세웠다.

《지배인동지, 한가지 더 보고할게 있습니다.》

서경이 우뚝 섰다.

《뭐요?》

《섬으로 들어온 일체 자재와 물자들은 우리 수송조가 날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송한 세멘트는 추가분과 오늘 실어온것까지 합쳐서 148톤 700키로그람입니다. 옳습니까?》

서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철국을 보며 잠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옳소. 정확하오.》

그러자 철국의 손이 허공을 홱 그었다.

《그런데 공장판매대장에는 151톤 반이 나간것으로 돼있습니다. 어떻게 된겁니까? 오늘 실어온 7백키로는 셈에 넣지 말아야지요? 그러면 세톤 반은 어디로 빠져나갔습니까?》

서경의 예리한 눈길은 단번에 석용하에게로 날아가 박혔다. 석용하의 안경낀 두눈이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대장을 잘못본게 아니요?》

철국에게 다시 물으면서도 눈길은 석용하를 범발톱처럼 꽉 움켜쥐고 놔주지 않았다.

철국이 역시 석용하를 보며 대답했다.

《그곳 초급당비서동지는 세멘트 5백키로가 채 공급 못되여 찾아왔다구 하자 당장 책임기사와 판매부원을 불렀습니다.

판매문건에는 석용하라는 수표가 딱딱 있는데두 말입니까? 령수증들이 말입니다. 공장책임기사동지는 우리 사업소에서 추가로 요구했던 세톤까지 전투를 벌려 전달에 전량 다 보장했다고 했습니다.》

서경은 랭랭하게 대답했다.

《세멘트공장에 추가신청을 한적이 없소. 부두건설에 지원받은 고강도세멘트는 그 공장 세멘트가 아니요. 거기선 그런게 못 나와.

이미 신청한 량도 채 못 받아왔는데 누가 추가신청을 했다는거요?》

《그거야 저 사람한테 물어봐야지요.》 철국은 쓴웃음을 지으며 턱짓으로 용하쪽을 가리켰다.

《그런데 종적을 알수 없는 3. 5톤은 우리 사업소행표가 아니라 현금으로 지불됐습니다. 그리고 그곳 판매부원의 말이 우리 기업소자재부원은 이달에 들어와서 공장에 온적이 없다는겁니다. 전달에 받아갈걸 다 받아가구 더 받아가기까지 했으니까 공장에 나타날 일도 없지요. 그럼 보름동안 뭘하면서 딩굴었는가 하는겁니다.》

《그것도 저 사람에게 물어보오. 내가 어떻게 알겠소.》

서경은 불길이 황황 쏟아져나오는 눈으로 석용하를 노려보았다. 그옆에 서있는 철국도 주먹을 꽉 움켜쥐고있었다. 아까까지 펄펄 뛰며 대들던 석용하는 얼굴이 거멓게 질려있었다. 팽팽하게 압축된 공기속에서 바다도 기가 질린듯 숨을 죽였다. 해심은 가슴이 조여들었다. 격노한 바다사나이들이 이제 어떤 징벌을 가할지.

《점심밥들을 먹읍시다. 미장조는 가공장으로 가고.》 서경은 단호한 걸음으로 작업반실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두 쓰겁게 석용하를 쳐다보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두커니 서있는 석용하의 안경낀 두눈이 멍청해보이고 살집좋던 몸도 순간에 알뽑아낸 보가지처럼 후줄근해졌다.

해심에게는 아버지와 윤철오빠의 희생을 초래한 이 풀섬양식장의 무책임한 양식자재보관의 책임이 저 사람에게도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으로는 막돌을 져나르다가 넘어져서 울던 나어린 처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결사의 전투마당뒤에서 어쩌면 그런 롱간질을 한단 말인가?

점심식사를 끝내고 쉴새없이 일손을 다그쳤지만 가공장바닥타일붙이기만은 저녁까지 다 끝내지 못했다. 축전지로 전광어로등을 켜놓고 하면 안되겠는가고 천영이 물었으나 서경은 하루 드티더라도 작업을 떼자고 하였다. 청년반만 남고 나머지 종업원들은 천영이 데리고 철수했다.

다음날 오전 모든 작업이 깨끗이 마무리되였다. 철국의 발기로 부두끝벽에 《우리 섬》이라는 세 글자를 큼직하게 새겼다. 배를 타고 섬에 들어오면 제일먼저 보일 그 글발들. 손가락을 꼽아가며 무엇인가를 입속으로 열심히 세여보던 은향이가 셈을 끝내고나서 나직이 속삭였다.

《41일!》

그런데 곁에 서있다가 입속의 부르짖음처럼 나직하면서도 강렬한 그 속삭임소리를 들은 명남이가 단호히 부정했다.

《아니야요. 지배인동지식으로 세야 돼요. 40.5일이야요!》 지배인이 딱 제 등뒤에 서있는것도 모르고.

모두가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은향은 명남이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어이없어 허허 웃던 서경이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하!하!하!…》 통쾌한 웃음을 터치는데 그렇게 요란하고 시름없이 웃는 지배인을 보며 모두가 큰소리로 따라웃었다. 느닷없이 터진 그 요란하고 가슴시원한 웃음소리들은 완공의 축포성인양 섬을 흔들었다. 그렇게 웃는 모두의 눈귀에는 뜨거운것이 맺혀있었다.

건설전투를 총화짓는 기업소종업원총회에서 지배인 김서경이 총화보고를 했는데 결사의 전투로 41일간에 풀섬양식기지를 일떠세운 이 자랑찬 성과를 고난의 년대에 사업소가 창조한 《풀섬의 기적》으로 연혁사에 당당히 써넣자고 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섬, 우리 바다를 물려받는 후대들은 풍요한 자원에 앞서 찬바다물에서 날미역을 건져씹고 막돌을 져날라 래일을 개척한 우리 세대― 고난의 행군세대의 투쟁정신을 값비싸게 받아안게 될것이라고 격정에 넘쳐하는 그 말에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총회에서는 석용하의 탐오행위를 준렬히 비판했다. 3.5톤의 세멘트를 팔아먹고 자재사업을 명목으로 기업소생산물을 많이 사취한것은 물론 지난 시기 자재사업을 맡아가지고 적지 않은 물자들을 제 주머니에 채워넣은것들도 밝혀졌다. 고난속에서 기업소는 쓰러져도 제 주머니는 오히려 불려온 이런 행위는 마땅히 법적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결론하였다.

서경의 추천과 초급당위원회의 결정으로 철국이가 자재부원으로 임명되였다. 그가 기업소관리성원으로 된것을 모두가 기뻐했다. 해심은 남다른 기쁨으로 남모르게 가슴들먹일 은향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기쁘겠어요.》

은향은 얼굴이 빨개지며 해심의 얼굴을 자기 가슴에 꼭 가져다댔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그 가슴속의 심장이 행복으로 높뛰고있었다.

다음날로 사업소는 미역, 다시마모내기전투에 진입했다. 방송기자 문광이 청년양식반의 작업장에 찾아왔다. 이번에도 하루종일 배를 타고 같이 일하면서 처녀들에게 마이크를 내대기도 했다. 처음엔 마이크앞에서 굳어지던 청년반원들은 시간이 흐르자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도 마이크로 흘러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시방송으로는 《류진바다가양식사업소 풀섬청년양식반 모내기전투장에서 보내온 기자의 현지보도입니다. 〈우리 섬은 청춘을 노래한다!〉》 이렇게 시작된 방송이 울려나갔다.

경쾌한 바다노래의 선률을 타고 풀섬의 변모된 모습과 새 양식장에서 모내기전투를 벌리는 청년반원들의 작업모습이 눈으로 보는것처럼 방불히 그려진 그 방송이 《류진바다가양식사업소 풀섬양식장 모내기전투장에서 보내온 시방송 문광기자의 현지보도였습니다.》라는 말로 끝날 때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고있던 정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정란은 서경이 집으로 찾아가기까지 했으나 아직 기업소에 나오지 않았다. 정란의 시어머니가 집마당에서 서경에게 줄욕을 퍼부으며 만나지도 못하게 했던것이다. 바다가마을 녀인들이 그러하듯 성격이 드세고 입심이 센 그 늙은이가 퍼붓는 욕설을 묵묵히 다 듣고나서 서경은 닫겨져있는 문에 대고 《정량원동무, 우리는 동무를 기다리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 소식을 들은 해심이가 《정란동문 너무해요. 성미가 활달하고 시원시원한줄 알았는데.》라고 하자 은향은 웃으며 말했다.

《성격이 개방적인 녀자들이 꽁할 땐 더 꽁한 법이란다. 정란이두 정란이지만 그 시어머니가 이만저만 아니야. 외며느리루 들어와서 떡돌같은 아들만 둘이나 낳아주었다구 며느릴 얼마나 끔찍이 여긴다구. 그런 금옥같은 며느릴 욕해서 쫓아버렸으니 지배인동지가 욕볼만두 하지 뭐. 더 우스운건 정란이 맏오빠가 찾아가서 정란일 욕하다가 그 시어머니한테 쫓겨온거야.

〈군항이 에미가 내 집안 사람이 된지 언젠데 아직두 그 집안인줄 아우? 내 집에 와서 내 집사람 욕하니 암만 사둔이래두 듣기 안 좋수다.〉 이러면서 오래간만에 찾아온 사돈집사람 밥먹구 가란 말두 안했다지 않니.》

마치 제가 보기라도 한것처럼 신통히 흉내까지 내는 바람에 해심은 그만 까르르 웃고말았다.

《그럼 정란동문 이젠 아예 안 나오나요?》

《왜 안 나오겠니? 나오긴 나와. 나와두 언제 그랬냐싶게 씁쓸해서 나올거야. 나두 가봤는데 집안에 앉아서 기업소일을 나보다두 더 잘 알고있지 않겠니. 그 참견쟁이가 참견하구 훈시하구싶어서 지금 오금이 막 저릴거야.

그러지 않아두 문광동무가 장마당 수산물매대에 찾아가서 정란이 시어머닐 만났대. 며느리 직장에 내보내지 않으면 방송으루 비판방송하겠다구 롱삼아 을러메니까 〈자네까지 그러문 내 생각해보겠네.〉했다질 않니. 정란이가 그러는데 자기 시어머닌 문광동무 말이라면 낙지가 겨울에 난대두 믿는다는거야.》

말끝에 은향은 《문광동무 참 괜찮지?》하면서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해심은 애써 심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듯 자기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은향의 눈을 피해 얼굴을 돌렸다.

문광기자, 마주보는 사람들이 따라웃지 않을수 없게 하는 그 특유한 웃음, 겉보기와 다르게 맵짜던 메질솜씨, 무거운 돌을 메고지고 함께 걷던 그날 밤의 돌투성이길, 심금을 울리고 감칠맛이 있게 쓴 방송글.

윤철오빠의 마지막그림이 된 도래굽이의 파도를 그릴 때 함께 있었다는 기자. 그 마지막그림을 희생된 친구의 넋으로 간직했고 그처럼 고향의 바다를 사랑하는 기자가 되겠다고 했다는 사람…

(해심의 일기)

밤이 무척 깊었다. 사흘이 지나면 새해다. 래일 또 섬에 들어가야 한다. 새해 설날에 종업원들에게 다문 몇키로씩이라도 햇미역을 공급할수 있게 새 양식장에서 솎음작업을 하자고 지배인동지가 말했다. 찬우아바이는 지금 솎으면 안된다고 했지만 지배인동지는 봄에 수확을 좀 손해보더라도 종업원들이 새 양식장의 미역을 놓고 고생한 보람을 느끼면서 새해를 맞는것이 미역 몇톤보다 더 비싸다고 했다. 그 의견을 비서동지가 적극 지지했다. 정말 속이 넓고 깊은 일군이다. 래일이면 첫 열매를 따들인다는 기쁨이 벌써부터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있다.

나의 사회생활이 시작된 첫해. 가슴미여지는 상실의 아픔과 방황, 결사의 개척전투, 고생스러웠어도 이겨냈다는 긍지가 있는 해―영원히 잊을수 없는 1996년이 우리 조국의 력사에는 어떤 모습으로 새겨질가?

오늘 아침 방송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느 한 구분대를 현지지도하신 소식이 나왔다. 지배인동지는 깜짝 놀라 굳어졌다.

《우리 부대, 우리 초소요!》

그러다가 울었다.

최고사령관동지!》

한달전에는 풍랑을 헤치시며 초도방어대로, 련이어 판문점에로 그리고 오늘은… 우리는 모두 울었다.

아버지장군님 사생결단의 의지로 헤치시는 조국수호의 결사전!

그런 결사전의 대오에 나 또한 한 대원이 되였기에 꿈과 희망과 리상, 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열망… 귀중한 모든것들을 하나도 잃지 않았을뿐아니라 더 크고 더 귀중하게 받아안으며 새 생활의 첫걸음을 자욱 찍은것이다. 나는 내가 용감해지고 심장이 커졌다는것을 자부한다. 한 파도를 장하게 넘었으니 보다 격렬한 다음파도를 맞고싶은 격동적인 희열이, 온몸과 온넋을 더 깡그리, 더 진하게 바치고 더 벅차고 더 숨가쁘게 그 무엇인가를 받고싶은 강렬한 열망이 나를 불태우고있다.

아, 기다려지는 1997년! 새해는 나에게, 우리모두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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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 단동 - 로동 - 2021-12-28
안녕하십니까? 제가 조국에서 이 도서를 열람할때 기억에 의하면 1장이 시작되기전 주인공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언약하는 서문이 별도로 존재했던 생각이 듭니다. 그 부분이 루락되였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리자 - - 관리자 - 2021-12-30
미래선생의 기억이 정확합니다. 빠진 서문내용을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열람해주시기 바랍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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