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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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변의 항구도시 류진은 겨울에 불어치는 서북풍이 세찬것으로 유명하다. 바람에 베개통같은 돌이 날려 소대가리를 깨군 했다는 옛말이 사실인지는 딱히 알수 없으나 아무튼 류진바람은 한번씩 터질 때마다 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거리들을 남겨놓군 했다.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동북방향으로 만탑산, 궤상봉, 관모봉과 같이 해발 2천메터가 넘는 산봉우리들을 큼직큼직하게 세워놓으면서 오봉산까지 5백여리를 기운차게 뻗쳐온 함경산줄기가 바다쪽으로 잠시 내려오는듯 하다가 꼬리를 북으로 홱 가무릴 때 그 탄성에 휘뿌려진듯 작은 산줄기 하나가 오던 방향으로 백리를 내처 달려 류진시의 뒤담벽을 이루고있다. 겨울이면 북쪽에서 내려오는 대륙의 찬공기와 동남방에서 올려미는 온화한 해양성기후가 바로 그 백리 송진산줄기의 릉선에서 맞부딪치면서 강한 서북풍을 일으킨다고 한다.
산줄기의 남쪽비탈면 한 골짜기에서 바람이 시작될뿐아니라 물도 시작되여 류진천이 흐르는데 유명한 류진바람이 등을 밀어줄뿐아니라 물곬도 틔여주었는지 강은 신통히도 바람방향과 꼭같이 20여리를 굽이하나없이 곧추 흘러서는 시내중심을 꿰질러 바다에 닿는다.
도시형성의 초기부터 사람들은 소대가리 깨는 바람을 막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도처에 울창한 바람막이숲들이 바로 그 역사질을 말해주고있다. 그러나 그 어떤 방풍림도 강을 가로지를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다나니 겨울이면 벽계동골안에서 터진 광풍이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그 얼음판직선주로를 타고 거침없이 시내에 돌입한 다음 거리와 골목들을 줄달음치고 회오리치면서 갖은 심술과 횡포를 부리군 한다.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피눈물의 언덕에서 시작된 고난의 행군이 가장 간고한 국면에 들어서고있는 때여서인지 이해 1996년 정초의 눈보라는 더욱 사나왔다. 오늘도 대소한계절의 짧은 겨울해가 총총히 걸음을 재촉하여 락산마루에 당도하자 바람은 더 기승을 부리고 날씨는 맵짜졌다. 해는 제사 끔찍한듯 늘 산마루에 걸터앉아 다리쉼하던것도 싹 걷어치우고 서둘러 산너머로 숨어버렸다. 그러자 눈보라는 더욱 승이 나서 눈가루와 흙먼지가 뒤섞인 희누런 장막을 말아올리며 불어쳤다.
바다는 이럴 때 오히려 장쾌한 광경을 펼치군 한다. 내부는 바람과 달려들어오는 파도, 물머리를 치여들 때마다 맞받아치는 광풍에 하얀 물갈기가 장엄한 기폭처럼 나붓긴다. 바람은 대지의 품으로 달려오는 파도를 밀어내보려고 하늘과 땅사이의 공간을 꽉 메우고 산을 무너뜨릴듯이 기승을 부리나 그럴수록 파도는 더 높이 키를 돋구며 기어이 와닿아야 할 기슭으로 돌진해온다.
창평도래굽이는 바다와 바람의 이 치렬한 대결이 절정을 이루는 곳이다. 한고패 파도가 도래굽이 벼랑바위들을 힘껏 들이치고는 하얀 물보라로 부서져 바다에 날려들어가면 그뒤로 다음파도들이 길길이 솟구치며 달려든다. 모든것이 세찬 광풍앞에 머리를 숙였어도 파도만은 굴함없이 일떠서서 광풍과 맞서고있었다.
류진시방송위원회 경제보도부 기자 문광은 이 도래굽이벼랑밑에서 뜻밖에도 화판을 한손에 움켜쥐고 파도의 장쾌한 모습을 화폭에 옮기고있는 화가를 발견했다. 어제 있은 편집위원회에서 호된 비판을 받고 무겁고 침울해진 마음을 돌려세워보려고 일요일의 이 저녁에 여기로 나왔는데 끓어넘치는 열정을 안고 자연의 광란을 화폭에 휘여잡아넣고있는 화가를 보니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동했다.
보매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청년화가는 묘하게도 바람이 미치지 못하는 벼랑아래 바위짬에 화구들을 벌려놓고 다 그린 그림과 실물을 비교해보며 덧붓질을 하고있었다. 파도가 바위를 들부시는 순간을 포착하여 형상한 그림에서는 기백과 격동이 높뛰고 격렬한 음향까지도 들려오는듯싶었다.
이윽고 화판에서 눈길을 떼던 화가는 그제야 자기 등뒤에 서있는 문광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문광은 서둘러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안됐습니다. 방해될가봐 그저 조용히 넘겨다본다는것이 그만.》
화가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런데서 갑자기 사람을 만나니 좀 놀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눈가에 의혹과 경계의 빛을 지우지 않았다. 하긴 이 바람사나운 날에 외진 바다가에서 그것도 날저물녘에 만난 알지 못할 사람을 이상히 여기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 길이 없는 이곳이니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볼수 없고 아무리 일요일이라도 이런 날씨에 저녁산보란 있을수도 없는 일이기때문이다.
《난 그저 이런 날의 파도를 보고싶어서 나왔댔습니다.》
화가는 그제야 알만 하다는듯 미소를 지었다.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바다를 좋아한다? 그렇다. 이 해안도시에서 나서자란 문광은 바다를 무척 좋아했고 자기딴에는 사랑한다고까지 말해왔다. 그런데 어제 있은 일은…
《동문 경제보도기자가 맞소? 당의 수산자원보호정책과 어긋나는 행위를 분간하지 못하다니!》
《동무에게 고향의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착오를 범하지 않았을거요.》…
맵짠 비판의 소나기. 그것은 문광이 류진바다가양식사업소가 풀섬수역에서 진행하고있는 미역따기작업을 취재하고 돌아온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교외의 농장에 나가 새해농사차비를 취재하고 돌아오던 그는 바다가양식사업소에서 햇미역을 대대적으로 수확하고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 그곳으로 향했다. 사업소일군들을 만나 취재를 하고 돌아왔는데 그가 도착하기 전에 시방송위원회에는 류진수산사업소의 오랜 선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양식자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벌써 3년째나 내버려두고있는 풀섬양식수역에서 모래미역까지 그렇게 걷어내면 앞으로 그곳에서는 자재를 보장해주어도 밥조개와 성게같은것들을 양식할수 없다는것이였다. 양식사업소일군들은 작업을 중지하라고 찾아온 수산사업소의 선장에게 웃기관의 승인을 받았고 더우기 방송에 내겠다고 기자까지 방금 왔다갔다면서 남의 기업소일에 중뿔나게 간참하지 말라고 했다.
문제의 전화를 받은 위원회에 소동이 일어났다. 경제보도부는 물론 어느 부서도 그곳에 기자를 내보낸 일이 없다고 보고되자 편집위원회는 실태를 료해하기 위하여 경제보도부장을 현지에 내보냈다. 한편 풀섬수역에서의 미역생산작업에 대한 문제가 시당위원회에까지 제기되여 시당일군들도 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작업이 중지되고 사업소와 그 작업을 승인한 수산국의 일군들에게 추궁이 가해질 때 시방송편집위원회에서는 기자 문광의 문제가 심각히 론의되였다.
《만약 동무가 취재한대로 방송이 나갔더라면 어떻게 될번 했소? 기자는 당사상전선의 전초병이고 우리 당의 이목구비요. 그 어떤 문제도 높은 당적안목에서 보아야 하오.》
지금도 어제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얼어들었다. 편집위원회에서는 문광의 취재집필활동을 중지시켰다.…
《여기 있었구만!》
번거로운 상념을 깨치며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50대의 사나이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문광이 누구인지 알수 없어 의아히 쳐다보는데 화가가 반색했다.
《어떻게 알구 찾았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껄껄 웃었다.
《내 다 알지. 어제 솔섬에 못 건너간건 아쉽지만 그렇다구 이런 날을 놓칠 자네가 아니니까. 만안에서야 여기 내놓구 볼만 한 파도가 있나? 헌데 이 사람은 처음 본다, 친군가?》
문광은 번쩍번쩍 빛이 뿜어져나오는것 같은 그 사람의 인상적인 두 눈을 마주보며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전 그저 지나가던 구경군입니다.》
사실이냐는듯 돌아보는 그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가는 화판을 내밀었다. 뼈대가 굵고 얼굴이 검스레한 그 사람의 온몸에서 쩝쩔한 바다냄새가 풍겨오는것으로 보아 오랜 바다사람같았다. 그는 화판을 바다쪽에 돌려대고 그림속의 파도와 실물을 비교하며 세세히 뜯어보았다.
《좋구만! 진짜파도보다 더 좋아. 확실히 윤철인 바다의 화가야, 바다맛이 나거던!》
윤철?!
문광은 화가를 놀랍게 쳐다보았다. 최근 몇해동안 국가적인 미술전람회에 련속 입선하여 두각을 나타내는 시미술창작사의 청년화가, 문광이 화첩에서 오려내여 자기 책상우에 붙여놓고있는 《만선의 배길에 불타는 저녁노을》의 창작가가 이 사람이였단 말인가? 언제건 한번 기회를 마련해서 꼭 만나보고싶었던 화가였다.
젊은 화가는 자기를 칭찬하는 바다사람의 말에 머리를 저었다.
《어제 솔섬에 나갔더라면 더 멋진 상을 잡지 않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화판에 눈길을 박은채로 《음-》 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그 번쩍거리는 눈을 들었다.
《이런 날 솔섬등대벼랑의 파도야 정말 볼만 하지. 그래두 난 이 파도가 더 좋구만. 윤철이 의도에두 딱 맞구. 자연의 파도나 그리자는게 아니라구 하질 않았나. 그리구 솔섬엔 이제 또 기회가 있을거야. 그땐 어떻게 하나 건너가보자구.》
두사람은 더 말이 없이 앞바다에 솟아있는 솔섬을 바라보았다.
남쪽으로 틔여있는 류진만은 입구에 둘레 40리나 되는 솔섬이 솟아있어 천연방파제를 이루고있다. 날바다의 파도가 그 솔섬에서 부서져서야 만안에 들어온다. 아마 이 사람들은 어제 저 솔섬에 미리 건너가있다가 만밖의 거대한 파도가 길길이 솟구치며 휘날리는 광경을 그리자고 했댔는데 무슨 사정이 있어 건너가지 못한것 같았다.
두사람의 눈길을 좇아 솔섬을 바라보던 문광은 바로 그뒤에 있는 작은 풀섬이 눈에 밟히자 또다시 어제일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좋은 기회를 놓친건 사실이지만 어제 그 미역따기를 중지시킨건 정말 다행입니다.》
혼자말하듯 나직한 화가의 말에 문광은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그말에 응답하는 바다사람의 걸걸한 목소리가 별스레 크게 들렸다.
《한심한 사람들, 정신이 쑥 나갔지. 제살궁리에 나라자원생각은 뒤전이거던. 수산국두 한심해. 그걸 승인하다니!》 그리고는 사뭇 가슴 아픈듯 길게 숨을 내쉬였다.
《아무튼 야단이야. 저 양식장을 빨리 살려내야 되는데…》
문득 화가가 저어하는듯 한 눈길로 문광을 돌아보았다. 순간 그들의 눈길이 맞부딪쳤다. 녀자처럼 곱게 쌍까풀진 유순한 두눈이 자기를 찬찬히 뜯어보며 잊었던 그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려고 애쓰는것만 같아 문광은 서둘러 눈길을 피하며 돌아섰다. 조금만 더 마주본다면 저 청년화가가 배사람이 말하는 한심한 사람들중 한명이 바로 자기들곁에 있다는것을 알아낼것만 같았다. 사실 그때 취재현장에는 그들이 없었는데도.
문광이 서둘러 발자욱을 옮기는데 등뒤에서 그들의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류봉무역회사 사장이 이번에 번 외화로 쌀이 아니라 양식자재를 사오겠다고 시에 제기했답니다.》
《나두 어제 그런 말 들었소. 그게 진짜라면 그 사람 눈이 바로 배긴 사람이야. 앞을 내다볼줄 알거던. 젊은 사람인데 머리가 그렇게 비상하대.》
세찬 바람소리, 파도소리에 그들의 이야기는 더 들을수 없었다. 문광은 저들이 어제 왜 솔섬에 건너가지 못했는지 그 까닭이 짐작되였다. 솔섬에 건너가던 길에 풀섬수역에서 미역따기를 하는것을 보고 중지시키려다가 자기네 말을 안 들으니 배를 돌려가지고 들어와 시당과 방송위원회에 전화를 걸었을것이다. 그러니 저 사람이 진영일이라는 수산사업소의 선장이 분명했다.
소란스러운 바람소리, 파도소리에 섞여 뭐라고 웨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선장이 손나팔을 하고 소리치고있었다.
《거기서도 들어가지 않겠소?》
그제야 문광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바다가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황황히 소리쳤다.
《먼저들 돌아가십…》
바람이 홱 불어치며 입안에 콱 쓸어들어와 숨이 꺽 막혔다. 문광은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솜옷고깔모자끈을 바싹 조여맨 선장과 스키모자를 푹 눌러쓴 화가는 별난 사람이라는듯 저들끼리 마주보다가 떠나가버렸다. 화판과 화구가방을 나누어메고서 팔을 끼고 짓수굿이 바람을 맞받아 멀어져가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문광은 또 한숨을 내쉬였다. 저 사람들을 언제인가는 다시 만나게 될것이다. 다시 만나는 그날에는…
순간 파도가 바위를 들부시는 장쾌한 소리가 문광의 귀전에 쾅쾅 울렸다. 그렇다. 다시 만나는 그날에는 내가 그때 그 한심한 기자였다는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량해도 구하리라.
바다냄새가 몸에 푹 배인 선장의 부리부리한 두눈과 유순하고 찬찬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운데가 있어보이는 화가의 눈길이 자기를 정깊게 바라보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다사람이 《바다의 화가》라고 불러준 청년화가 윤철. 문광은 까닭없이 자기가 인차 그와 친하게 지낼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광은 그 두사람을 다시 만날수 없었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그들은 한달후 오늘과 같이 세찬 바람이 내불고 파도가 솟구치던 그날 풀섬에서 희생되였던것이다.
그때 시방송위원회 당조직의 조치로 현직일군 재교육학습반에서 공부하고있던 문광은 그들의 희생소식을 전해듣고 쓰라린 후회와 자책으로 가슴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