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쑤는 승냥이다

 

 

 

만 강 홍1)

 

 

상 권

 

1 편

 

관중이여!

이 세상에 상봉과 리별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우리 집 세사람의 리별과 상봉 같은것은 아직 없을것이로다.

누가 알았으리오, 우리의 지체있는 젊은이가 처음에는 인연이 없었는데 인연이 있게 되였고 나중에는 인연이 있으면서 인연이 없어서 산설고 물선 멀고먼 곳에 한번 떠내려가서 홀연히 생리별로 되였다가 십년세월을 보낸 후 다시금 한집안이 상봉할줄이야.

그대여!

청컨대 거문고를 잠간 무릎우에 얹고서 줄을 고르어 우리의 만강홍 한편을 타시라.

한가닥 큰 강은 유유히 흐르고 지는해는 더없이 붉으며 강기슭의 버들은 누르고 강언덕의 풀들은 십리인가 오리인가 보이는 곳 어디나 새파란데 모래는 눈처럼 새하얗구나.

강에 뜬 돛대가 등에 진것은 관악산이요 배머리가 마주 대한것은 남산이요 그속에 노을이 어린 곳은 서울이로다.

내가 십년전에 이곳을 떠나갔다가 십년만에 돌아와보니 산천은 예대로의 그 산천이요 보이는것은 예전에 보던것 그대로구나.

여보, 사공이여!

배를 곧바로 룡산으로 저어가서 강어구에 대이라, 이 강우 사방의 나무와 풀은 무성하고 푸른데 띠를 이은 초가집들이 큰 조개껍질을 땅우에 주어붙인것과 같은 곳은 곧 내가 자라난 마을이요 집앞의 배나무꽃은 한잎 두잎 날아서 눈송이같고 집옆의 버드나무는 실실이 드리워서 노을이 어리고 뜰 하나 가득히 행화나무꽃으로 붉게 물든 곳은 내가 살았던 집이로다.

 

한강에 천금같이 귀중한 녀자 한사람 살았으니 날 때부터 꽃인양 달인양 고와서 선녀같았더라.

그의 아버지는 일찌기 리조의 아전2)으로서 남의 비위를 잘 맞추며 붓대를 잘 놀려서 산과 물녘의 큰 정각들이 하루밤사이에 그에게 솟아났고 마대마다 든 돈바리는 남몰래 벼슬사려는자로부터 들어와서 진자리 마른자리 다 지나보았으며 귀한것 천한것 다 겪어보아서 그의 입에 온전한 재상이 없고 그의 눈에 만족한 인물이 없던 김오위장3) 그 사람이라, 세상이 변하니 인사도 또한 달라져서 그전날과 같은 세월이 다시는 오지 않게 되자 한강기슭에 작은 집 한채 짓고 살면서 스스로 창강조수4)라 하더라.

그에게는 사내아이가 전혀 없고 다만 귀여운 딸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을 만강홍이라 부르더라.

그 딸은 그리 아름답고 뛰여나지 않았더라도 사내아이 열백보다 더 사랑하겠거든 그의 재주 뛰여나고 모양도 절색5)이니 쥐면 꺼질가 불면 날가 애지중지한다는 비유도 부족할 정도이더라.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홍아 홍아, 네가 부디 앓지 말고 고이 자라며 잘 크거라, 우리 늙은 내외의 늘그막의 기쁨이사 오직 귀여운 어린 너의 한몸뿐이니라.

어머니는 그의 눈에 입맞추며;

내 아가! 그대(롱으로 하는 말) 반드시 장마뒤의 외 자라듯 하여 청백하고 고귀해서 백옥같이 티없는 젊은이를 남편으로 맞든가 영웅호걸로 세상에 이름있는 대장부로 짝을 삼아 천하에 넘치는 복록은 모두 네가 누리고 이 땅우의 근심걱정은 너에게 하나도 없어라, 홍아! 네가 너의 아버지 머리털을 보아라! 그 머리털 한오리 두오리가 모두 눈빛으로 되였다. 어머니의 몸도 어제가 좀 다르고 오늘 또 더 줄어드니 이렇게 줄다가는 너와의 리별이 멀지 않은것 같다. 어머니는 이제 죽더라도 조금도 유감스러울것이 없으나 너 홍아를 어쩌며 어쩌리요.

바깥늙은이가 매우 언짢아서 말하기를;

안늙은이는 무슨 말을 그렇게 처량하게 하시오, 당신 몸이 좋지 않으시오? 내가 그런 말을 들으니 이 늙은이 심사도 또한 몹시 처량하외다.

 

△ 이해

홍아가씨의 나이는 바야흐로 열다섯, 청춘이라, 성품이 몹시 영민하여 언어행동이 참으로 로숙한 어른보다 나은지라 사뿐히 일어나며 말하기를;

딸자식이 두분의 이런 말씀을 들으니 이 자식의 마음에도 또한 무수한 슬픈 생각이 듭니다.

△ 만강홍의 얼굴모습은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고 글과 생각도 산을 끼고 강을 기울일 큰 궁냥을 품었으나 다만 그 감정이 참새와 같아서 늘 송구한 뜻을 품고있고 그 모양은 지는 꽃과 같아서 수심을 가득 띠고있으니 강 저쪽과 이쪽의 무한한 원한이 모두 이 섬섬한 몸에 모여드니라.

 

 

2 편

 

△ 온 별장의 도화는 따사로운 봄볕에 한적하니 사람의 심사를 괴롭히기 좋도다. 또한 어제 저녁 잠간 내린 비로 못에 반상앗대쯤이나 못물이 불었으니 짙고 따스한 물결이 초록색 생초6)천을 쪽 편것과 같고 물기슭 이쪽 저쪽에는 사람이 없이 바람에 쪽배만 일렁거리고있다.

만 강 홍;얘! 록란(심부름하는 처녀아이 이름)아, 나는 저 못에 가서 쪽배를 타고서 온종일 곤하고

 괴로운 심사를 풀어버리고 돌아오련다.

부인이 말하기를;

오늘 바람새나 날씨가 좋으니 정말 한번 바람 쐬기 좋은지라, 녀자의 봄구경이 보통 남자의 미친 흥이 아니요 그 못물은 매우 깊고 배는 매우 가벼우니 (록란에게) 네가 아가씨를 잘 도와서 못에 이르러서는 둔덕에 서지 말며 배에 올라서는 가장자리에 앉지 말며 사물에 감동하되 다만 시로만 읊고 좋은 경치를 보되 소리를 하지 말라, (딸에게) 외부사람이 알가 두려우니라, 해가 기울고 물결이 일거든 곧 돌아와서 늙은것이 걱정치 않게 하라. 내가 같이 갔으면 하나 머리가 좀 아파서 바람을 쏘이면 안되겠다.

만 강 홍;못우에서 제비를 시로 읊는다.

푸른 못 삼월달에

첫비는 달고

봄풀잎 깊은 곳에

제비가 나네

가고 못 올 저 강 넘어

날지 말어라

떨어진 날개 한 털

기슭에 지네

△ 시를 지어 한번 읊조리는 운향7)이 랑랑하기를 구름쪽을 헤치고 떨어지는것 같더라.

록란이 말하기를;

시를 읊되 소리하지 말라는것은 우리 마나님께서 하신 신신부탁의 말씀이어늘 지금 아가씨께서 시를 부르시는 목소리가 아름답고 랑랑하여 읊는것이 아니라 소리합니다. 이 담장은 낮고 이 주변은 향가게, 차파는 집이며 술집, 밥집이요 이 밖은 놀이배가 오가서 구름처럼 모이고 흩어지는 사람이 모두 재조있는 사나이거나 글 잘하는 사람이요 먼길에 쉬여가는 사람들이라 바야흐로 늦은봄인 오늘에 그들은 심사 산란하여 꽃이 아니라도 강기슭의 나무와 풀을 모두 꽃으로 보는것이요 소리가 아니라도 제비와 꾀꼬리소리를 모두 노래소리로 들을것이어늘 이 적적하고 깊은 숲속에 열다섯 나이에 세상구경 못한 맑고 결백한 옥같은 목소리를 항차 부질없는 봄바람이 한번 불어가서 그곳에 퍼뜨려놓는다면 온 강주변의 정경이 홀연히 붉은꽃(만강홍을 암시)의 수심에 잠긴 강산으로 될것이요, 푸른 물(록란자신을 암시)의 한스러운 천지로 변할것이라, 그러면 생사람을 얼마나 죽일것이예요, 다시는 그러지 마시라.

    란;(만강홍이 읊은 시의 운을 따라 시를 읊는다.)

옥 같으신분 물가에 서니

그림자 곱고

강기슭의 버들꽃도

에워싸지요

시를 읊는 그 소리

낮추옵소서

창포꽃 핀 이 주변은

낚시터라오

△ 시를 지은 다음 일어서면서 말하기를;

    란;아가씨께서 평해주세요.

만강홍이 묵묵히 생각하다 이윽고 가볍게 웃을뿐 말이   없다.

    란;글짓는 솜씨 아직 평할 정도가 못되십니까?

만 강 홍;원 세상에, 말도 청산류수로군. 네가 당돌하지 않느냐. 네가 차 달이고 술상 보며 심부름하는

 짬에 무슨 공부를 하여 이와 같은 좋은 언변을 얻었느냐? 너는 참말로 옛날에 글 잘하던 녀종이 있었다더니 그와 같도다. 요것이 커가면서 이런 언변 안 버린다면 좋은 사내를 얼마나 생으로 죽일지 모르겠구나. 이 글에 있는 옥같이 고운 사람이란 누구며 버들꽃은 누구며 랑랑한 소리는 누가 시를 읊는 소리냐?

내가 시를 읊는 소리가 랑랑하던지 아니하던지 이 창포꽃 깊은 곳에서 고기 낚는 사람이 어찌 능히 알수 있겠느냐.

어디 한번 더 《시를 읊는 그 소리 낮추옵소서》라고 한 구절을 마땅히 다시한번 더 읊어보리라.

아야! 배머리가 첨벙 꾸르르 하면서 방울방울 흰 물방울 일고 물새도 모래불의 새도 쌍쌍이 나는구나.

아니! 록란아, 이것이 무슨 소리냐?

제비가 물차는 소리냐 고기가 물우에 뛰는 소리냐, 괴이한 이 소리가 무슨 소리냐?

    란;아닙니다, 아니예요! 이 못물 깊고깊어 바닥은 볼수 없으나 떨어지는것은 정녕 딴곳에서

 던지는 돌입니다. 제비가 물을 차고 고기가 뛰는것이 어찌 이런 소리를 낼수 있겠습니까.

(두사람) 주위를 살피는데 배머리 나무판자가 또 소리를 내며 강남의 가을빛이 한알 데굴데굴 굴러오네.

허허참, 이것은 누런 귤 하나이로다.

만 강 홍;아이구!  이것이 무엇이고 이것을 누가 던졌을가?  담장 허물어진 곳은 나무울타리와

 가시울타리를 성벽처럼 단단히 둘렀으며 대문은 널문짝을 단단히 잠궈서 손톱 들어갈 틈도 없으니 바깥사람이 어이 들어올수 있으랴.

네가 이 못가 버드나무를 살펴보아라, 그 버드나무가 한가지는 못우에 늘어져 흔들거리고 다른 가지는 구불어져 담장밖에 나가있으니 (말이 끝나지 않아서)

    란;아이구 저것 저것, 연록색두루마기를 보아요, 버들가지 걸친 담장에 사람의 그림자

얼른거려요.

△ 만강홍 머리를 들어 한번 보고

만강홍 노래;

한가지 흔들

또 한가지 한들

무엇이 번듯

어른거리나

푸른 란새가

날아들었나

푸른 구름 끝에 

숨었다가는

어느덧 완연히

나타나누나

강물에 씻긴 달

솟은듯 하네

    란;이 누런 귤이 어디 갔을가?  굴러온것은 례절없는 일이나 버리기 아까우니 그것을 절반

 갈라서 우리 두 사람이 씹어먹는것도 괜찮겠다.

만강홍 웃으며 말하기를;

그것은 이미 내 품속에 간직하였도다.

록    란;망측도 하여라. 그런 깨끗치 못한것을 아가씨께서 오래도록 고이 간직한단 말이요?! 그것이

 한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남자손으로 천번이나 만번이나 주물리고 만져지면서 생각하다 할수 없어 일생의 무한한 심사를 담아서 보낸것이니 후회하지 않으시려거든 그의 눈앞에서 내버려서 애틋한 숨은 뜻을 단연 베여버릴것이어늘 아가씨가 그 말할수 없는 장난을 가만히 감수하고도 얼굴에 한점 붉은빛이 피지 아니하고 맑고 깨끗한 살결속에 즐겨 품으니 온갖 봄근심이 이미 창자속에 뚫고들어갔지! 망측하여라.

△ 만강홍 빙긋이 웃으며 대답치 않고 배머리를 돌려 돌아가자고 말하더라.

만 강 홍; (노래한다)

쪽배는 흔들흔들

언덕에 멎고

푸른 버들가지에

늦바람 부네

파란 물결 맑은데

해가 기울제

그 사람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담장가에 버들가지

걸쳐있구나.

만 강 홍;얘 록란아, 돌아가거든 오늘 이 일을 마님께 고하지 말고 다만 나와 함께 노래하며 즐겼다고

 좋게 말하여라.

 

    인;너희들이 잘 놀고 돌아오느냐? 무슨 일로 종일 즐겁게 날을 보내다 돌아왔느냐, 있은

 일을 죄다 자세히 말하여라.

만 강 홍;그 못우의 담장은 사면이 뾰쪽뾰쪽하고 담장 동쪽과 남쪽은 무수한 버드나무가 울창하여

 강색과 산빛을 다 가리워 들이지 아니하고 못물은 맑고 푸르러서 만물이 다 비치는것이 마치 수정거울 한가지이고 다만 보이는것은 모래불과 물우에 새들이 가득히 앉아있는것이라 별로 그윽한 흐름과 맑고 상쾌한 경치는 볼수 없기로 심심하여 시 한수 지으니 이러이러 하였나이다.

부인이 묵묵히 듣고있다가 한참만에 언짢은 기색으로 말하기를;

그게 무슨 말이냐? 늙은 몸이 갈길은 그 강가이며 이 아이 신세는 어느 물가에 떨어질지 모르겠도다. 이 아이 말이 무슨 말인고.

록란아, 너는 같이 소리로 화답하지 않았느냐?

    란;이러이러 하였나이다.

부인 한번 읽고 탄식하더니 손으로 록란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하기를;

너는 진실로 옛날에 글 잘하는 종이 있었다더니 그와 같구나. 《시를 읊는 그 소리 낮추옵소서》라는 구절은 무엇을 가리켜 한 말이냐. 너의 아씨를 가리켜 한 말이 아니냐?

△ 록란이 일어서면서 주저하니

만강홍이 어머니의 머리맡에 앉았다가 록란이가 일어서는것을 보고 말하기를;

마나님 신기8)가 몹시 곤하신것 같으니 록란아 네가 나가서 생강차를 달여오너라. 내가 여기서 머리 짚고 앉아있으리라.

    인;아가! 내가 너의 눈섭사이를 보니 그렇듯 백옥같은 얼굴에 허다한 붉은빛 도는것이 여러가지

 수심어린 모양으로 나타나니 못에서 무엇을 느낀바가 없었느냐?  

만 강 홍;봄바람 봄볕이 스스로 사람의 얼굴을 시름겹게 하는데 바람이나 해빛 한번 쏘이지 못한

 저의 엷은 얼굴이 바람과 해볕을 좋이 쐬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른 정상은 없었습니다.

    인;아가! 이 늙은 몸도 몹시 고달퍼서 죽을것 같으니 너의 아버지를 곧 모셔오너라.

 

김오위장;아니 로친네, 몸이 어떻게 괴롭소?

    인;별로 아픈데는 없어도 신기가 쇠멸9)해져서 하늘이 내리누르는것 같으며 몸이 천근이나

무거워 땅속에 꺼져들어가는것 같고 온갖 사념10)이 이미 다 저 멀고 먼 하늘가의 한쪼각 구름같아요. 지금 헐떡거리는 이 목숨이 두려운것은 하나는 당신이 보이지 않는것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만강홍이로소이다. 그 애의 나이가 바야흐로 꽃피는 시절이라…

△ 말소리가 갑자기 굳어지더니 오십년의 어진 혼이 슬프도다 광나루 강가의 한쪼각 청산으로 돌아가더라.

 

 

3 편

 

△ 이해 가을 팔월 열나흘날 밤이라.

만 강 홍;록란아, 내가 래일 광나루를 건너가서 어머님 묘에 곡을 하고 돌아오리라.

    노래(만강홍)

대자리 성근 발에

밤은 깊은데

가을바람 슬슬히

옷깃 스치네

무연한 강물결에

달은 떠있고

다락에선 피리소리

슬피 울려라

외로운 이내 마음

잠들수 없어

국화꽃과 옛얘기

주고받노라

만 강 홍;록란아, 이 포도 한두송이는 이슬맺혀 록색 구슬로 익었고 짧은 가지 긴 가지의 여주11)

 서리가 내려 붉은 구슬로 익었으니 지난해 이 밤에 우리 모친은 광주리 들고 나는 치마로 이 포도, 이 여주를 가득히 따와서 제사에 쓰기 전에 먼저 맛보다가 어머님이 나를 이러이러하게 훈계하시더니 올해 이 밤의 이 포도, 이 여주는 지난해 오늘의 그 포도, 그 여주 그대로인데 지난해 오늘 밤에 계시던 우리 모친을 올해 이 밤에 뵙지 못하니 내가 뉘와 함께 따며 내가 먹은들 뉘가 다시 훈계할고, 줄줄이 흐르는 두줄기 눈물 한방울 두방울 떨어져서 소복12)한 내 옷자락 적시였도다.

김오위장;얘! 우리 아가 울지 말아라. 네 우는것을 내가 보니 천갈래 만쪼각으로 찢어진 이 간장을

 칼로 란도질하는것 같구나.

△ 얼굴에 홀연 주름이 잡히더니 은실같은 흰 터럭에 떨어지는 눈물방울 맺혀서 거둘래야 거둘수 없고 참을래야 참을수 없어 슬픈 울음 기가 막혀 말도 하지 못하다가 이윽고 반식경13)에 겨우 말을 하기를;

김오위장;이 딸과 령감에게 전생 후생14)에 무슨 업원15)이 있어서 너같은 한가닥 혈맥을 낳아

 이 첨지앞에 던져두어서 어미없는 이 자식과 안해없는 이 홀아비가 명절날을 당하여 서로 슬퍼하게 만드는가.

만 강 홍, 눈물을 씻고 술을 올리며 말하기를;

이 자식이 운명이 기구하고 죄가 많아서 모친이 일찍 버리시고16) 부친이 지금 또한 로쇠하시니 세상천하에 불효가 많다한들 저보다 더한것은 없으리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박명17)한 사람이 또한 많으나 그도 또한 저보다 더한 사람 없으리니 바라옵건대 아버님은 이 딸의 정상18)을 깊이 살피시와 돌아가신 어머님으로 하여 상심하시지 마소서. 이 자식은 이제 광나루로 가서 어머님 묘앞에 절을 하고 돌아오겠나이다.

김오위장, 술을 받으며 긴 한숨 쉬고서 말하기를;

우리 아가, 처녀가 들에 나가는것이 례절이 아님이 두려우나 명절날 성묘19)야 일없으리라. 네 눈물 한방울은 이 아비의 천오리 머리털을 희게 만들며 너의 원한찬 소리는 이 아비의 간장을 만쪼각 내는구나. 이번에 네가 가서 너의 슬픔과 원한을 다 풀며 저생에 간 외로운 혼을 위로하고 돌아와서는 네 얼굴색이 기쁘고 네 마음이 편안하여서 늙은것앞에 다시는 조금도 한숨을 쉬지 말고 한방울 눈물도 흘리지 말아라.

만 강 홍;록란아, 마나님께서 생전에 좋아하시기를 찰밥과 맑은 장국, 산채와 과일밖에는 달든,

 시든, 쓰든, 맵든, 누리든, 비리든, 기름지든, 걸든 모두 저가락을 대지 않으시고 정정한 저 가을 련꽃과 담담한 국화외에는 붉고 푸르고 누렇고 자지빛 나는 모든 꽃을  보시지 않으셨는데 지금에 맑고도 고결한 령혼이 좌우에 계시는것 같은지라, 묘앞에 차리는 음식에 진귀한것을 많이 마련하지 말고 간결하게 할것이며 제상에 놓을 그릇에도 역시 겉치레를 그만두고 모름지기 련꽃이나 국화같이 우아한 색조와 운치있고 향기도는것을 꽂아 평소에 좋아하시던 뜻을 받들어라.

    란;(노래)

나물은 백번토록

고이 씻고요

낟알은 만번토록

정히 찧지요

강에서 고기잡고

산채도 뜯고

백사자기 가져다

국화 꽂아요

록   란;아가씨는 이 제물을 보세요. 여기서 더 정결하면 부처님앞에 재20)나 올릴가 두렵네. 아가씨

 효성있는 마음에 혹시 소홀하고 성의 없다고 섭섭히 생각하심이나 없으십니까?

△ 만강홍 한그릇 두그릇 살펴보고나서 심부름하는 아이와 늙은이를 불러서 이고 지우고 록란은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흰 가마를 따라서 사뿐사뿐 가더라.

수구문 동쪽에 이르니 온산의 무덤을 덮은 가을풀에 고아와 과부가 솔가지 부여잡고 리별을 통곡하니 아무 한탄도 원한도 없는 걸음이라도 이것을 보고는 슬픈 마음이 들것이어든 하물며 어머니를 여읜 어린 녀자의 창자와 가슴이 어이 더 느끼지 않으며 더 슬프지 않으리오. 천만번 삼키던 어린 꾀꼴새의 울음소리가 차차 가마밖으로 새여나오더라.

록란, 가마의 발을 걷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하는 말이;

아가씨! 이 소리가 웬 소리시오. 여기서 광나루 가기가 얼마 아닌지라 잠간만 참으면 하늘이 무너져라 곡을 하고 땅이 꺼져라고 통곡하여도 아무 일 없으리니 아가씨, 이 소리를 참으시오. 저 성아래우의 의관을 빼입은 사람들과 길 좌우의 분주히 모여드는 말수레는 모두 호화롭게 노는 량반들이라 저 푸른 가사21) 걸친자가 소복한 녀자뒤를 밟아서 어떤 못된 마음을 품으며 가고 오는 눈들이 서로 쏘아보는 위태한 이곳에서 아가씨, 이 소리가 웬 소리요. 이러지 않더라도 저기 록색옷을 입고 붉은 부채 부치는 묘령22)의 어떤 집 수상한 사람이 우리 일행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가 가면 가고 우리가 서면 서더니 지금은 길 동쪽구석에 앉아서 우리의 동정을 살피고있으니 이것이 십분 매우 수상하거늘 또한 그 얼굴도 귤을 던지던 사람과 흡사합니다.

만 강 홍;허다한 남자에 초상도 허다하거니 하필 그런 이야기를 꺼내느냐, 그의 모양이 수상한것이

 아니라 네 말이 몹시 괴상하도다. 네가 이런 꿈같은 사실을 가지고서 어디를 가서나 나를 영영 조롱할 구실을 삼으니 이것이 무슨 심사인가. 쓸데 없는 객설23)은 그만 조둥아리질하고 가마군이나 독촉하여 빨리 가자. 짧은 해에 벌써 한낮이 되였으니 돌아올 때는 저물가 두렵다. 이제 늦게 돌아가면 늙으신 아버님의 마음에 얼마나 큰 심화가 일어서 간장이 얼마나 마디마디 타시겠느냐. 오래도록 즐겁게는 해드리지 못할망정 잠시인들 티끌만 한 근심이라도 끼쳐서야 되겠느냐.

 

△ 광나루 나루터에 도달하여 묘가 있는 언덕을 가리키고 가마에서 내려 배를 타고 앞으로 건너간다.

만 강 홍;(노래)

강 건너 봉우리에

가을빛 들고

우리 엄마 저 산속에

누워계시네

날아가는 기러기도

슬퍼서인지

울고가는 그 소리

강에 울린다

△ 잠시후 배를 대고 묘있는데 올라가서 례를 갖추어 절을 할 경황도 없이 엎어지면서 통곡을 하니 흐르는 큰 강도 목메여 흐느끼고 우뚝우뚝 솟은 먼산도 슬퍼한다. 푸른 언덕은 붉은 눈물로 아롱지고 거치른 다북쑥은 잎잎이 검은 머리의장자리를 찔러 풀어헤친 머리칼이 바람맞은 삼대같더라. 이윽고 록란이 간신히 부축하여 일으켜서 례식차려 제를 지내고 달래여 산을 내려오니

만강홍, 묘앞을 떠나지 못하여 다시금 슬퍼하기를;

어머님께서 나를 끔찍이 사랑하셨건마는 돌아가시고나니 그만이구나, 어머님 살아계실 때에 잠시라도 저를 못 보시면 찾고찾아서 내 이름 부르는 소리 끊치지 않았으며 내 머리털이 한오리만 일어서도 쓰다듬고 쓰다듬어마지 아니하시며 내 손가락 하나가 조금만 아파도 빨고빨아주시더니 지금 이 자식이 어머님과 리별한지 반년에 강을 건너와서 피나게 울되 네 왔느냐 말 한마디없이 묵묵히 계시고 머리가 이같이 흐트러지고 몸이 이같이 아프되 네 어떠냐고 한마디 묻지 않고 막막히 계시니 세상천하에 나를 사랑해줄이 또 누구며 나를 가련히 여겨줄이 또 누구냐.

△ 무덤에 덮인 잡초를 말끔히 뽑고 다시 석인24) 가에 가서 이끼를 일일이 닦고 비석옆에 앉아서 방황하며 차마 일어서지 못하더라.

만 강 홍;(노래)

해가 지는 언덕에서

곡을 하오니

무덤우의 가을풀만

무성합니다

딸의 마음 상석앞에

닿기도 전에

돌아서서 외로이

가야 합니다

 

 

 

 

 

4 편

 

△ 록란이 거듭거듭 권고하여 산을 내려 배를 타니 때는 이미 황혼에 밀물도 물길 돌리고 달은 솟아 이미 강 중심에 떴더라. 어부들의 노래소리도 하나 둘 끊어지고 사람의 왕래도 바야흐로 없어졌는데 배는 겨우 기슭을 떠나 몇 삿대질하여서 남쪽 강기슭에서 배 머물라 부르는 소리 나니 자욱한 갈대에 싸여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매우 긴급한 모양이더라.

    란;(노래)

어부들의 배노래도

적적하고요

강바닥 험한 바위

썰물이 지네

어인 사람 또 있어

배를 놓치고

달빛어린 갈밭에서

부르고있나

    란;배사공할아버지! 배를 돌려대지 마십시오. 우리 아가씨 여기 계시니 딴 사람과 같은

 배 타기가 몹시 꺼려지며 또 작은 배에 많은 사람을 받는것이 역시 보통 생각할 일이 아니며 가을날 바람새도 믿을것이 못되는데 항차 이 나루는 옛날부터 유명한 광나루요, 이때는 또 팔월 중순 (팔월달 광나루의 파도는 세상에 험하기로 이름났고 천하의 장관이다.)이라 이 물결이 왕왕 광나루의 장한 수세를 이루니 할아버지는 십분 깊이 생각하십시오.

△ 저쪽 기슭우에서 들리는 배 멈추라는 소리 점점 더 다급해지고 찬 조수는 점점 지고 처녀는 더욱 조급하게 배를 저으라고 독촉하니 사공은 가기도 딱하고 돌아서기도 딱해서 배는 가지 못하고 마음만 조바심치더라.

만 강 홍;록란아, 저 손님의 정상이 가히 십분 민망하구나. 해는 지고 길은 저문데 배를 지척에

 두고 건너지 못하면 그 마음에 얼마나 열불이 일겠느냐, 가마 탄 몸이 남과 함께 강을 건네는것은 나도 못할 일이지마는 저문 강 마지막배에 어찌 남녀가 한배를 같이 타는것을 꺼리리요, 옛날에 원쑤도 한배를 탄 일이 있었거던 우리 동포인 남녀에 있어서랴, 사공할아버지는 다만 스스로 판단하여 좋이 처리할것이요 조금도 우리때문에 꺼려마십시오.

    공;아가씨의 귀한 말씀이 이미 저 나그네의 사정을 살피신지라 실로 바다보다 넓고 깊은

 두터운 뜻을 베푸시니 이 늙은것의 마음이 몹시 감동되였삽니다.

 

 

5 편

 

△ 사공이 스스로 노를 저어 배를 돌려서 나그네를 태우니 나그네는 그 어떤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라 푸른 옷에 붉은 부채 부치며 반나절이나 따라온 낯익은 총각이로다.

만강홍이 황망히 멀미하던 몸을 가누고 한쪽가로 자리를 옮겨앉아 몸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머리 한번 돌리지 않고 강가의 가을빛만 바라보더라.

록란이 만강홍가까이에 바싹 다가가서 사부랑사부랑 귀속말을 한참 하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수 없으되 아마 푸른 옷 입은 사람이 배에 오른것이 몹시 심상치 않다는것을 말함이리라.

강물은 잔잔하여 배는 들추지 않고 물빛은 선선하여 늦더위를 걷어가니 종일 곤하게 걷던 길손이 끄덕끄덕 졸더라. 가마군은 하나 둘 엇비슷이 기대여 꿈나라로 들어갔고 늙은 심부름군은 팔짱을 낀채 얼굴을 가리고 앉아서 병든 학 잠자듯 하고 사공은 배머리에 앉아서 배안의 나그네와 말을 건네지도 않고 다만 가련한 록란이만은 만강홍의 뒤에 오도커니 서서 랭랭한 그 모양이 한마디도 붙이기 어렵더라.

총각이 배가 몇리쯤 간것인가를 일어나서 보고 몸을 돌려 록란이 앞으로 슬며시 다가가서 대단히 다정한듯이 가만히 정중하게 말하기를;

저는 사나이로서 큰 배 타고 바다를 다니는것을 무수히 하여 몸에 뱄으되 상기 멀미하여 괴로움을 견디기 어렵거늘 처녀는 귀한 집 깊은 담장안에서 살다가 홀연히 이런 큰 강의 배를 탐에 부드러운 몸과 섬세한 심사가 생각컨대 몹시 두려울것이어늘 눈가에 조금도 어려운 기색이 없고 우뚝 서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하니 옛 사람이 지은 시에 못가에 사는데 익숙해져서 배가 밀려도 바람을 겁내지 않노라고 하였더니 그대의 집이야말로 못가에 있지 않습니까?

록란, 여전히 놀란 기색없이 마지 못해 말하기를;

우리 집은 저 룡산 강어구에 있어요. 귀하신분이 이렇듯 은근히 물으시니 무슨 상관이라도 있으십니까?

총    각;아무 관계는 없소. 한구석에서나마 같이 가게 된것이 오히려 인연이라고 말하겠거던 배처럼

 위태하고 외로운게 없는데 지금 내가 같은 배를 탔으니 비록 남녀의 처지가 같지 않으나 그 동정하는바는 같은지라 어이 한마디 위로의 말이 없어서야 되겠소. 또한 내가 먼발치로 보니 몹시 낯익은 모양이라 벌써부터 한말씀 하여 물어보고싶었으나 옆 사람들이 괴이하게 볼가 두려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안나더니 지금에야 겨우 기회를 만난고로 마음에 있는 말을 하여 전날의 내 소원을 쾌히 풀려 하오.

    란;귀인의 댁은 어디시기에 어찌 저희들의 낯을 익혀왔습니까?

    각;나의 집은 아가씨의 집과 령 하나 사이라오.

    란;거기가 어디십니까?

    각;삼호 강어구 버드나무 서쪽으로 가서 다섯번째 대문이 우리 집이요. 룡산강우 한벽정아래

 세번째 집은 곧 우리 서당이고 성은 리가요 본관25)은 완산26)이요, 이름은 사남이라고 부르오. 나이는 바야흐로 열에 여섯인데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세 형이 역시 나와 리별하고 다만 한분의 행랑할멈과 서로 의지하고 살고있으니 넓은 천하에 외로운 이슬이 자축거린들 나보다 더 가련하지는 않으리로다.

   란;제가 묻는것은 언제 우리를 보았는가 하는것이요 귀인의 처량한 집안형편이야기가 아니오라,

 그런 가련한 이야기는 제가 듣기를 원치 않나이다.

    각;이제 내가 한 우리 집안의 슬픈 이야기는 아가씨의 동정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보게 된 시기를 얘기하자니 자연 나온것이요. 또한 넓은 천지간에 아가씨가 서쪽땅에 살지 않고 내가 남쪽나라에 살지 않고서 같은 땅에 사는것도 쉽지 않고 이웃에 살기도 역시 어려우며 몇만년의 긴 세월에 내가 앞서 나지 않고 아가씨가 또한 뒤에 나지 않고서 같은 때에 난것도 쉽지 않는 일이요. 나이가 서로 같은것도 또한 어려운지라, 무릇 사람이 세상에 남에 이웃하기도 어렵고 나이 같기도 어렵거늘 항차 큰 강의 한배안에 같이 타서 이 밝은 달밤을 같이 지내니 참말 하늘이 주신 좋은 인연이요 인간의 기이한 상봉이라 이에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에 있는것을 말함에 간장에 맺힌 정을 서로 호소함이 사람의 떳떳한 감정이라 무엇을 허물하리요. 아가씨는 조금도 괴이하게 보지 말지어다.

   란;귀인의 서당이 한벽정 아래오면 제가 사는데와의 사이가 몇리 아니오라 오고 가시는 길에

 혹시 김오위장님 별장을 지난 일은 없으신지요?

    각;버들이 푸른 때와 꽃피는 시절에 몇번 지났으나 등한히 지나다녀서 그속의 각별한 좋은

 경치는 보지 못하였으니 지금에 이르러 몹시 유감스럽도다.

    란;도령이 지나신 때가 바로 어느 시절이오니까?

    각;그 시절은 분명히는 기억하기 어려우나 생각컨대 버들꽃 만발하고 도화꽃 지던 시절이로다.

록란, 방긋 웃으며 말하기를;

그 경치가 늦은 봄날이 아니오면 과연 어느때리요. 귀인27)이 모호하게 하시는 그 말씀은 희롱하심이 아니오니까. 제가 이제 귀인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더듬어보니 지난 봄 삼월 그믐날 그 별장 동쪽 담장 버드나무가지에서 잠간 본것 같사온데 귀인은 기억나시지 않으십니까?

   각;나는 생각나지 않소. (또 웃으면서 말하되) 나는 생각나지 않소구려.

록란, 이어 말하기를;

그 버드나무가지끝에서 익은 귤을 화창한 봄날의 못으로 던지시고도 기억이 나지 않으세요?

    각;(또 웃으며) 기억나지 않는데…

    란;귀인이 저를 속이시기 너무나 심하십니다. 제가 미치지도 않았고 바보나 장님도 아니오며

 그때 역시 취커나 졸거나 꿈꾸지 않은 때라 제가 살아 여기 있고 귤이 지금도 집에 있어서 상기 시들지 않았으니 귀인의 그 희롱이 무슨 생각에서 하심인지 모르겠사오나 몹시 례절에 어긋나는 놀라운 행동이라 저와 같은 천한것도 분하거든 항차 저의 아가씨같은 귀한 댁 처녀가 판판 까닭없이 살아서 말하기 어려운 희롱을 당했으니 저 보기에 다시 한층더 분하여 죽겠고 한스러워 죽겠거늘 붙들고 시비를 가릴것이나 대문밖을 나지 않는 처녀의 사정이라 소문이 퍼질것이 두려워 부끄러움을 삼키고 몰래 참고참자니 거미가 목구멍에 걸려서 걸걸하듯 지금도 상기 불쾌하거늘 홀연히 내가 수구문밖에서 귀인을 먼발치로 보고 마음속에 묻혔던 화기가 다시 타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하였어요. 그러나 처녀아이로서 번화한 대로에서 장부를 보고 면박을 주기가 매우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 앉아서 스스로 새겼더니 지금 또 이 쪽배에서 만나 한번 돌려 생각하니 이것 역시 하나의 기이한 만남이로소이다. 지나간 혐의28)는 저 흐르는 물에 띄워보내고 굳이 격의29)로 이렇듯 서로 말을 건넸으니 저의 그대 생각함이 실로 많고 그대의 저를 생각함도 역시 다른 심상한 이와 판판 다른지라 오히려 칠척장부의 몸을 굽히지 않을지언정 마땅히 기울어진 마음을 서로 말하여야 하거늘 도리여 아무렇지 않은것처럼 하고 지내려고 꾸미시기에 애쓰시니 저는 장부를 위하여 수치로 여깁니다.

총각, 한번 껄껄 웃더니 이에 다시 일어나며 말하기를;

이것 참말 죄가 많고많았도다. 그 일은 지금껏 나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여도 무슨 생각에서 나온것인지 바이 모를 일이로다. 옛 사람의 시에 《님을 보고 물 건너서 련밥 던지니 반나절을 달아오른 얼굴 가리울 곳 없네라 하였으니 님을 보고 련꽃을 던짐이 실로 간절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일이였으나 오히려 반나절을 무안하였거던 나는 님도 안해도 아닌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 귤을 던졌으니 반년이나 수치스러운 얼굴을 가리지 못하였음이라. 여기 앉아서 지지하게 발명30)을 하지 않겠으나 실로 고의로 조롱한것이 아니니 이 마음 들여다본다면 용서하여줄수 있으리라. 바라건대 처녀는 결코 괴이하게 여기지 마시라.

록   란;그런 일은 젊은 남자의 소일풍취31) 어찌 허물하리오마는 그때에 다행히 인정많은 우리를

 만나 제가 베짜는 북을 내던지는 노염을 띠지 않았고 귀인이 이발을 부러뜨리는 봉변을 당하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참으로 귀인의 행복인지라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그러나 옛날 사씨 성을 가진 남자는 이발을 부러뜨리는 변을 당하고도 휘파람 불며 태연자약하였거늘 오늘 귀인의 반년이나 부끄러운 얼굴을 어쨌다는 말씀은 허물을 자기가 좋게 맡아나서는것 같으면서도 련꽃을 던졌다는 말씀에는 은연중 다시금 한수를 슬쩍 돌려쓰셔서 우리의 좀 안정된 마음의 파문을 다시 뒤흔들어놓으니 음험한 솜씨는 저 사씨보다 만길이나 더 높습니다.

   각;공연한 소리를 하도다. 참말 나의 지금의 사정은 그가 노여움을 산것과 같도다.

△ 록란, 다시 회답하지 않고 사뿐사뿐 만강홍이 앉아있는 곁으로 가서 소곤거리며 웃기도 하고 말을 하기도 하더라.

 

6 편

 

△ 때는 밤도 이미 깊디깊었고 배는 강중간에서 바야흐로 일렁이는데 다섯량 폭의 기발은 펄펄 펄럭인다. 사공이 꺼림직해서 일어나 서북변에 떠있는 푸른 구름을 보고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무어라고 하는지 알수는 없으나 보건대 근심하는 모양이라.

슬프다! 우리 아가씨는 배멀미가 나는지 안 나는지, 배멀미가 심한가 재삼 물었으나 대답이 없거늘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자는듯도 하고 멀미로 취한듯도 하여 얼굴은 불그스레하고 눈섭은 찡그렸으며 배 란간에 비슷이 기대여 애련히 맥을 놓고있으니 마치 비바람치는 새벽성앞에 휘늘어진 버들이나 넘어진 꽃나무와 같더라.

    란;아이고 어인 일이요, 어인 일이시오.

△ 창황히 손으로 부축하여 일으켜서 손바닥을 문지르며 놀란 목소리로 말하기를;

   란;아가씨 정신차리세요, 록란이가 여기 있어요. 제가 록란이예요.

△ 만강홍은 손발을 가누지 못하며 머리를 들지 못하여 이리로 일으키면 저리로 넘어지고 저쪽을 고이면 이쪽으로 쓰러지더니 이윽고 선하품을 하면서 어렴풋이 목구멍속에서 《록란아, 내 죽는다. 내 죽어.》 하는 소리를 겨우 할뿐이라.

록란, 하늘을 치여다보고 발을 구르면서 흑흑 흐느껴울면서 겨우 말하기를;

저 단풍잎 갈대꽃은 쓸쓸한 바람에 흔들리고 야속한 쪽배는 가없이 망망한 물우에서 위급하며 배안엔 의원이 없고 짐에는 생강, 계피도 든것이 없으니 하늘이 나를 죽이려는구나.

△ 총각이 록란에게서 거절을 당하고 심사가 어지러워 물소리나 달빛이 모두 한탄의 소리요, 수심의 빛이며 사모하던 그 인연도 차겁게 끊어졌고 머리를 돌려보니 하늘은 푸르더라. 수심어린 생각을 달래면서 글 한수 읊으며 저 혼자 상심하여

    각;(노래)

귀한 집 어여쁜 꽃

봄에 피여서

내 눈앞에 한가지

걸쳐있건만

대문은 잠겨있고

날은 새오니

그 누가 봄바람

불어보내랴

△ 조용히 읊고있다가 록란이가 그러는것을 보고 한편은 비록 무한히 가련하나 한편은 다시 서로 사귀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하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총각은 서둘러 비단주머니 끈을 풀고 차곡차곡 싸두었던 청심환을 찾아내여 한알도 남기지 않고 한봉지를 몽땅 만강홍때문에 울고있는 사람에게 은근히 주면서 먹는 법을 상세히 일러주더라.

록란은 이것이 뜻밖에 어인 일인가?!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할 겨를도 없이 약봉지를 펴면서 눈물을 흘리며 곧 개여서 만강홍에게 권하니

만강홍, 삼키며 토하며 화장했던 얼굴에 구슬같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고 꼿꼿이 섰던 눈섭이 부드럽게 펴지니 기쁘고 신기하구나, 병든 학이 황황히 기침을 기고 얼었던 앵무새 어눌히 괴로운 울음 우도다.

이윽고 맑고 랑랑한 본래의 목소리로

만 강 홍;얘 록란아, 내가 한잠 푹 잤구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이 혀는 몹시 향내나고 내 목구멍은

 무엇이 걸린것 같아서 숨쉬면 마치 청심환 먹은것 같은 기미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

록란, 자기가 우는것을 만강홍이 볼가 념려하여 돌아서서 눈물자욱을 말끔히 닦고 천연스럽게 웃으며 말하기를;

아가씨는 푹 주무셨습니까? 저는 아가씨께서 괴로와 못 주무실가 근심하여 가만히 산조인을 한줌 가져다 삼키게 하였나이다.

만 강 홍;이상하고 이상하고나. 너의 옷깃은 눈물자욱으로 얼룩졌고 너의 모양은 몹시 급하게 서둔

 모양 숨차하며 너의 목소리는 놀란듯 떨리는데 산조인 한줌을 어쨌다니 생판 거짓말을 어이 하느냐.

록란, 탄식하며 또 웃으며 이르는 말이;

아가씨는 잠간 때와 경황을 생각해보세요. 이 강속의 쪽배에 앉아서 바람불고 물결 뒤번지는 이 마당에서 아가씨가 푹 쉬셨다는 말이 꿈꾸지 않으면서 하는 꿈속의 잠꼬대요 취하시지 않으면서 하는 취중의 말씀이외다. 다시 그 몸을 한번 보세요. 푸른 머리 헝클어지고 하얀 허리가 드러나 놀랍고 땀방울이 턱에 방울방울 돋고 배가 꾸르륵꾸르륵 남이 놀랄만큼 소리내니 이것이 모두 푹 쉰 값인가요. 기가 막힙니다.

△ 만강홍, 아야 갑자기 어쩐 일인지 머리는 무엇이 다친것 같고 사지는 짓눌리는것 같고 마음은 하늘에 둥둥 뜬것 같고 창자는 칼로 도리는것 같은지라 한번 배란간에 의지하고는 하늘과 땅을 분간치 못하고 정신이 어찔하여

만 강 홍;(노래)

속리산의 눈길 천리에

나막신 닳고

금강산 꽃구경에

막대 닳았네

이제는 쪽배 타고

섬속에 가서

신선같은 총각 만나

약이나 캘가

만 강 홍;(독백)

그 가득한 봄향기를 삼키려다가 못 삼키고 도리여 곁사람에 의해 깼으니 조금전의 기쁨에 넘치던 마음이 이제는 그만 헛된 꿈으로 돌아갔고나. 곁에서 나를 깨운 사람은 곧 록란이 너로다.

 

 

7 편

 

△ 말이 미처 끝나지 않아서 먹장같은 구름이 서북변에서 뭉게뭉게 일어나며 물새들이 홀홀히 짝지어 울며 날더니 갑자기 칼날같은 광풍이 한자리 몰려와 배를 치니 돛폭은 바람에 못 견디여 갈기갈기 찢어져서 마치 시들어진 파초나 가을 련꽃같고 배는 물속에 들어가서 거북의 머리 룡의 뼈에 부닥치도다.

    공;아이고 큰일났다. 큰일났어. 손님 여러분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 봉창32)안에 들어가서

 조금도 머리를 내밀지 말고 조금도 입을 벌려 서로 떠들지 말며 앉거든 굳게 붙들고 서로 의지하여야 하며 눕거든 서로 가지런하게 하여서 얼마가 지나든 어디에 이르든 오직 이 늙은이의 지도만 기다리시라. 또한 이때에 공연히 함부로 떠들면 다만 기가 막혀 죽고 원통하게 죽을뿐이로다.(바빠서 련하여 말하기를) 그중에서도 두분의 귀한 댁 따님은 나그네들과 섞여있는것이 무엇한 일이오나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피하재도 사실상 어쩔수 없으니 바라건대 두 아가씨는 체면이고 명성이고 다 저 하늘가 구름밖에 던져버리고 죽고 사는것을 저 하늘에 맡겨서 다행히 사경에서 살아난다면 구슬에 한점 티가 있다고 어이 보배가 못되며 좋은 말이 한번 넘어졌다고 어찌 준마가 안되리오.

△ 손님 일동이 다같이 사공의 지휘에 따라 엎어지며 자빠지며 분주히 봉창안으로 들어갔다.

만강홍과 록란, 두사람은 서로 맥맥히 바라보면서 어쩌면 좋을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다만 울고있을뿐이로다.

사공, 숨을 헐떡거리며 앞으로 와서 안타까이 말하기를;

일이 급하게 되였습니다. 산더미같은 저 성난 파도가 한번 들이치면 두 아가씨는 어느 물머리에 떨어져서 어떤 고기밥이 될지 모릅니다. 이런 때 이런 경우에는 원쑤도 오히려 마음이 같아지거든 남녀 한겨레가 어이 서로 꺼리리까. 간절히 바라건대 두분 아가씨는 몸을 돌보고 스스로 아껴서 늙은이의 처리하는 일을 방해하지 마시라.

△ 만강홍과 록란이 함께 내려간다.

곡식되는 말만 한 작은 봉창안은 새까만 칠통처럼 어둡고 답답한지라 사람의 얼굴을 가려볼수 없고 다만 여기저기서 토하는 소리, 늙은이와 처녀들의 《내 죽겠다》는 소리가 들릴뿐이로다.

! 세상에서 이른바 염라지옥이란것이 별곳이 아니라 인간세상의 여기가 그것이로다. 두어시간이나 좋이 지나고 또 너덧시간 지나서 봉창에 가득찬 손님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바이 모르고 정신들이 다 나갔더니 홀연히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는 소리를 듣고도 누가 와서 말하는지 모르더라. 죽은듯 누워있는 사람들 한사람도 일어나지 않고 자기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알고 여전히 엎드러져있더라.

사공이 판자창을 열어제끼고 살펴보니 첩첩히 서로 겹치고 주런이 드러누운 몸들이 보매 한가닥 맥도 뛰는것 같아보이지 않고 들으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도다.

    공;아이구! 손님일동이 참말 산 사람이 없으시오? 하늘은 이미 구름과 바람을 말끔히 걷었고

 배는 이미 기슭에 닿았고 밤은 이미 새고있고 밥은 이미 익었으니 손님 여러분은 정신차리고 일어나시오.

△ 그리고는 한사람 두사람 흔들어 일으켜 앉히니 꿈틀거리는 모양이 마치 서리맞은 벌레와 언 나비가 처마끝에 어린 아침해를 만난듯 하더라.

이윽고 누웠던이들이 겨우 일어나앉고 앉은이들이 겨우 일어서고 서서는 겨우 나오되 아! 그중에 만강홍과 록란 두 녀자는 보이지 않도다.

사공이 겁을 먹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고 찾는다.

만강홍은 서쪽가에 누웠으니 애처롭기가 비맞고 지다 남은 행화33)같고 록란은 동쪽에 넘어져있으니 곤하기가 바람분 뒤의 긴 버들가지로다.

 

 

8 편

 

△ 사공이 놀라서 늙은 할머니에게로 달려가서는 말을 하면서 고이 부축하여 일으키도록 하고나서 손님에게 가서 약이 있는가고 묻는다.

△ 총각이 한편으로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른편으로는 몸을 문지르면서 지나온 정경과 현재를 더듬어 생각해보니 아득하다.

험한 비바람에 먼곳으로 떠내려온 외로운 넋이 이 세상 구경할 생각도 못하겠더니 다시 살아나니 기이한 인생이로다. 온 천하의 그 어떤 훌륭하고 큰일과 모든 사람의 어떠한 큰 공로와 명예라도 죽을 지경에서 다시 살아나는것보다 더 다행일수 없으나 그가 살아야 내가 살고 그가 죽으면 나도 죽을 평생업원의 그이가 살았는가 죽었는가. 내가 산것이 다행이 아니라 그가 사는것이 다행이요. 내가 죽는것은 애석치 않으나 그가 죽는것은 애석하거늘 관계없는 늙은이 젊은이는 모두 살아있으되 정답고 사랑스러운 사람, 내 눈안에 있는 사람은 도리여 보이지 않으며 안 보아도 될 남녀들은 전부 나왔으되 업원의 사람,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도리여 안 보이는구나. 아아, 그가 죽은것이 틀림없으니 내가 살아도 허사로다. 하늘이 기왕 나를 살렸거든 어찌 그는 살리지 않았으며 하늘이 이미 그를 죽였거든 어찌 나는 죽이지 않았는고. 한편에는 후하고 다른편에는 박하여 나를 살리고 너를 죽이니 내가 산것이 그의 죽은것보다 못하도다. 너의 죽음을 생각하고 너의 죽음을 꿈에 보고 너의 죽음을 원통해하고 너의 죽음을 슬퍼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기보다는 오히려 성난 푸른 물에 몸을 던져 혼을 두견새34)에 의탁하고 원한속에 자고새를 따라 로량진우에 가서 너를 찾고 양화도 나루가에서 너를 찾다가 끝내 못 찾거든 광나루의 지는 꽃, 한강의 저문 비에 그대의 혼을 곡하고 그대의 한을 호소하리라. 쇠처럼 굳게 마음 먹고 강물처럼 뜻을 결심하고서 한걸음 한걸음 배가로 가도다.

이때에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등한하고 심상한 사공은 이런 남의 심사는 모르고 앞에 와서 약을 달라고 하는도다.

총각, 아무 생각도 없이 묻기를;

할아버지는 약을 어디다 쓰시려 하십니까?

   공;어디 쓰는가는 나중에 자세히 말하리니 다만 있으면 있다 하고 없으면 없다고 하시라.

   각;아니요. 약에는 찬데, 더운데, 급한데, 급하지 않은데 따라 다르게 쓰임이 있고 병에는

 주객이 다르게 볼수 있으니 지금 찬것, 더운것을 헤아리지 않고 달란다고 곧 응하면 사람을 구하는것이 아니라 필연코 사람에게 해로우니 어찌 소홀히 하겠소. 내게 다른 약은 없고 다만 만병에 다 잘 듣는 상비환약 몇알이 남은게 있습니다.

    공;늙은것이 구하는바가 그것이요 인삼 록용이 아니니 있는대로 주시오.

총각이 주머니끈을 풀면서 말하기를;

할아버지의 이 부탁이 정말 누구를 위한 일입니까? 할아버지가 대답을 시원히 안하면 나는 약을 순순히 안 드리리다.

△ 사공은 얼굴에 성난 기색을 띠우고 홀연히 돌아서 가도다.

총각이 한손으로 약을 들고 다른 손으로 소매를 당기며 말하기를;

아이고!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좀 말이 많았다고 성내시지 마시라.

사공은 급히 약을 받아가지고 봉창안으로 달려들어가더니 이윽고 나오는데 눈섭이 펴이고 몹시 마음이 흡족한 표정으로 총각에게 와서 말하기를;

지금 급한 사람을 구해준 그대의 높은 풍격은 남보다 뛰여나니 후에 반드시 좋은 안해 만나고 귀한 아기 볼것이며 귀한 사람 되리라.

    각;무슨 말씀이십니까?

    공;흘러가는 물을 길어다 남을 주는것도 적선이라 하거늘 지금 그대는 한쪼각 외로운 섬에서

 다 죽게 된 두 목숨을 선자리에서 살리니 괴로운 바다길에 자비로운 배를 만나 건넌다더니 그대가 바로 그런 사람이로다.

    각;할아버지의 앞말씀과 뒤말씀이 모두 무엇을 가리키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스로

 돌이켜봄에 백의 하나도 비슷한것이 없어서 할아버지의 칭찬말씀 어쩔길 없으니 다만 저는 부끄러움만 더할뿐이올시다. 이런 말씀 다시는 하시지 마시라.

    공;내가 일단 좋은 일을 하여 그대에게 말하러 올것이니 그대는 마땅히 배에서 내려 한턱

 내겠는가?

    각;아니, 무슨 일이시오? 그러면 말하시라. 나중의 한턱은 오직 그 일의 결과로 있으리라.

    공;그대가 지금 쾌히 천금같은 응낙을 하여야 이 늙은이가 인간의 신기한 일을 말할수 있으리라.

   각;죽다가 겨우 산 목숨에 어찌 무슨 신기한 일이 있으리오.

    공;한정이 있는 인생에 한정없는 념원이라. 천리 험한 산길에 넘어져 다친 의로운 나그네가

 다행히 말을 얻어타니 모두 헐떡이며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그 원이 더 있을리 없을것 같으나 이미 말을 타면 또 경마잡힐 생각하며 경마 잡히고나면 또 가마 탈 생각하며 가마를 타고나면 또 한순간에 천리가는 화륜35)을 생각하나니 지금의 그대가 조금전 갑자기 풍랑을 만나 외로운 배에 있어서는 천만가지 념원을 다 던져버리고 한가지 산다는것만 생각다가 이미 살아났으니 풍랑을 보면 그 원이 다 찼을것이나 어찌 담담히 가마타고 화륜 탈 생각을 하는가?! 그대 지금 새파랗게 젊은 머리 땋은 총각이라 귀한 벼슬과 비단에 감긴 생애는 장래의 일이요 꽃같은 색시들속에서 짝을 즐기는것은 정말 급한 심정이(말이 끝나지 않아)

   각;대신 내가 녀자로 태여난것이 아니고 다행히 남자로 됐으니 불행히 들오리나 메추라기

 같은것이라면 그만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고금을 갈라놓고 세상에 우뚝 솟아서 오며는 세계가 치여다보고 가며는 천지가 비게 됨이 곧 사내의 쾌히 할 일이라 어찌 녀자로 하여 울고 웃는 허수아비 되기를 좋아하리요. 제가 비록 몹시 못났으나 이 한가지만은 큰 산 큰 강을 두고 가히 장담할수 있으리로다.

   공;고기 안 먹는 중과는 비린것을 같이 얘기할게 못됨이라 그러나 옛말에 산중의 한 늙은

 중이 게다리 하나를 핥아보고 온 부두를 파헤쳤다더니 그대도 큰소리 마시라, 래일에 그대가 부두를 파헤친 늙은 중이 될지 어찌 알리오.

   각;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과연 무슨 긴절하고 좋은것이건대 그토록 천번 만번을 아낍니까?

 지지한 물녘의 해가 이미 동녘으로 붉게 그림자 지되 오히려 이 대나무 꼬챙이나 나무쪼각이 산산이 바사지며 무지개 꼬리와 비발이 홀연 동서에 언듯번듯 하여 마침내 머리 두고 설 곳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솔깃하던 저의 마음이 한시를 재촉하더니 이제는 싫증이 납니다.

    공;이미 핀 꽃은 봄바람 가랑비에도 다시 효과가 없으며 도장없는 약속은 청산록수를 두고

 맹세해도 다 믿기 어려운지라 그러나 후에 한턱 안 내는것은 차라리 그대가 이 늙은이를 저바리는것이 될지언정 오늘의 이 일은 내가 그대를 저바리지 않은것이니 어찌 의심하는가? 내가 이제 그 좋은 일을 자세히 이야기할것이니 그대는 조급해말고 한바탕 들어보라!

어제 저녁 광나루 어구에서 조수가 이미 배나루터에 지고 배는 이미 강 중간에 떴음이라 그대가 와서 배 대여달라고 애걸한것도 이때니 온 배안의 손님이 모두 배 돌리는것을 승낙 안했거늘 그중 귀한 아가씨 한분이 무정한듯 하나 오히려 정이 있어서 그대가 배에 오를것을 허락하니 이는 격외36)의 난사요 또한 천금같은 녀자와 한배를 타니 더우기 거리의 기이한 일이요. 나루길 십리를 한번 노를 저어 무사히 건너지 못하고 괴상하게도 바람도 없는데 쪽배가 공연히 저절로 출렁이여 그 아가씨가 멀미를 내게 되고 그대에게 또한 약이 있으니 더욱더 하늘이 주신 좋은 인연이요 강 중간에서 풍랑이 갑자기 일어나서 재자가인37)이 애석하게도 물에 빠져 죽게 되였더니

(사공의 노래)

나비는 꽃잎 안고

물에 떠가고

기러기 달을 따라

물에 떠오네

흘러흘러 온 곳은

하늘가 이 섬

비도 멎고 구름 개여

님 보게 되리

(사공 대사 계속)

다행히 바람이 멎고 파도가 자서 다 죽게 됐다가 살아남은 목숨이 다시금 세상의 이런 땅에 있으니 손님일동에게 있어서 모두 행복하도다. 그렇거니와 그대같이 영특하고 장가 아니간 총각과 저같은 아릿답고 시집 안 간 아가씨가 만약 그 물결속의 죽은 넋이 되였던들 동작나루가의 슬피 우는 잔나비나 외로운 기러기되여 밝은 달빛에 배를 젓는 시인의 회포를 돋구었을것이요, 삼호물가의 꽃이나 버들되여 무한한 봄바람에 수자리 가서 안해를 생각하는 감회를 보태였을것이라. 그리고 또한 하나가 살고 하나가 죽었은들 봉황새 가자 대숲만 외로이 비고 계수나무 시들자 토끼만 홀로 남은 신세가 되여 혼자 살아남은 수심깊은 원한과 백년의 업원을 쏟을 곳 없으며 줄 사람도 없이 되였을것을 그대 무사하고 그도 또한 살아있어 이미 깨여진 희망과 없어진 인연이 일일이 꽃피고 달 둥그니 행복중에서도 행복이라 어찌 범속한 남녀의 경우와 더불어 같이 이야기하리오. 비로소 풍랑이 그대의 좋은 중매군됨을 알리로다.

총각이 얼굴에 무엇이 부딪친듯 슬픈것 같더니 눈물이 우렷이 어려 한방울 두방울 푸른 초사옷띠에 젖어드는데 울음을 삼키고 말하기를;

할아버지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저의 창자를 꿰뚫어보신것이니 인간세상을 돌이켜볼 때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해주는분은 오직 우리 할아버지 한분뿐이십니다.

그러나 바다밑의 밝은 달이 맨손에 움켜쥐이지 않으며 강기슭에 내린 신선 역시 몇마디 말로 동하지 않으리라. 한없는 심사를 하소할곳 없어 다만 창자속에 감추어두어서 몸은 이제 초췌해지고 가슴은 몇번인지 꽉 막혀 터지더니 아! 하늘이 끝내 나를 죽이지 않고서 할아버지를 오늘 만나게 하니 일생의 운명이 오직 할아버지에게 달렸음이라 할아버지는 깊이 생각하고 생각하시라.

    공;그런 정형은 이 늙은것이 이미 다 알고있으니 그대는 모든 수심을 다 고이 버리라. 늙은이가

 약을 얻은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아가씨를 위해서였어. 아가씨를 위해서야.

    각;아니 뭐라고요?

    공;그 처녀가 어느 집 아가씨인지 모르겠으나 온건한 태도와 정숙하고 고결한 모양이 신선이

 사는 산머리에서가 아니라면 신선이 사는 달빛어린 대아래서나 본것이라 반드시 하늘의 꾸중을 받고 이 세상에 내려온 인물이리라. 비단에 싸여 자라 버들같이 고운 몸이 가마를 타도 어지러워하고 배를 보아도 겁이 나겠거늘 멀고 험한 길에 종일 가마우에서 곤하고 비바람 부는 물결에 시달려 밤새도록 배안에서 들추었으니 건장한 남자라도 정신이 나가서 조금도 몸을 가누지 못하겠거늘 항차 그 가련한 녀자가 가히 온전하기 바라리요. 조금전에 배가 기슭에 대이고 쓰러진 손님을 일일이 흔들어 깨워 일으킬제 그 두 아가씨는 정신이 나간지 이미 오래되여 흔들어도 흔들어도 일어 못나는지라. 늙은것이 놀래서 자세히 보니 손은 이미 싸느렇게 되고 발은 벌써 굳어졌으며 입에는 가래가 거품 일었고 얼굴은 벌써 재처럼 싸늘해져서 어디를 보나 한가닥 맥도 산것이 안 보이며 아무리 문질러도 손발 하나 풀리지 않고 다만 한가닥 숨결이 붙어있으니 명문우에 온기가 있는듯 마는듯 하더라. 늙은것이 곰곰히 생각하니 두사람의 곡절이 아니라 만리길 풍랑에 표류한 까닭이로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섬에 의약을 구할길 없으니 애석하다 꽃다운 사람이 죽는구나고 하였더니 반갑게도 우리 총각의 한알 귀한 약이 어느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어느 땅속에서 솟았는가! 두 아가씨가 그로 하여 살아서는 그 약이 총각 손에서 난것임을 도무지 모르고 이 늙은것에게 은혜와 감사의 말을 자꾸 하니 늙은이가 그 약이 나온데 대하여 일일이 말하였노라. 그랬더니 록란이 바삐 일어나며 큰소리로 말하기를 《우리 아가씨는 그 총각에게 일생의 감사만 말할것이 아니라 재생의 은혜에 대하여 말함이 옳으리라. 우리 아가씨는 기억하십니까? 어제 저녁 바람은 고요하고 물결도 잔잔한 배에 있을 그때가 아가씨의 한생시절이요 오늘이야 다시 살아난 시절이로다.》

아가씨가 그 말을 듣더니 볼에 한가닥 붉은빛이 은연히 돌며 문득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윽고 한숨 쉬며 말하기를

《록란아, 어제 저녁일은 내 죽고삶을 나는 터럭만치도 생각하기 어려웠으며 오직 입안에 약간 향기도는것을 느끼고 청심환맛 같다고 이상하다 하였더니 그때가 아마 죽은 때요 그 향기가 그 총각에게서 온 약이 아닌가?》

록란이 다시금 이 늙은것을 향하여 어제 저녁 그 아가씨가 까무러친것과 총각이 약을 준것을 자세히 한바탕 이야기하더라, 늙은이는 곧 총각의 은덕을 무수히 칭찬하니 그 아가씨가 록란을 불러 조용히 말하기를 《네가 내 대신 거기 가서 내가 그러드라면서 우리들이 받은 은혜를 일일이 감사드리되 이러이러하라. 제가 귀인과 일찍 한번도 만남이 없으며 또 한마디도 건넴이 없고 우연히 이 배에 같이 타서 온밤 풍랑속에서 죽고사는 운명을 한가지로 하였으니 보통일이 아니요. 또한 자신의 죽고삶을 자신이 구원하기도 겨를이 없거늘 바다같은 도량과 산같은 은혜로 위급한 사람을 구원하신 높은 품격이 실로 몽상38)하지도 못할 지경이라 제가 다시 소생하는 은혜를 입고 시중드는 처녀가 일생의 은덕을 받았으니 감사하옴은 뼈에 사무치고 은혜는 죽어서도 갚으오리다라고.》

록란이가 전갈분부를 받고 비록 영민하나 가시지 않은 멀미가 몸에 얽혀있고 쌀쌀한 공기가 뼈를 쑤셔 한발자욱도 움직이지 못하고 《어쩌나》, 《어쩌나》라고 소리만 지르도다. 이 늙은이가 보기가 가련하고 가련하여 대신해서 그 전갈을 하고저 하였으나 생소한 녀자와 남자간에 이같은 말이 아마 인간세상에 드문 일이라, 그리하여 주저하다가 총각의 속심을 뽑아보았노라.

    각;오늘 사정이 다만 할아버지의 선심에 달렸으니 할아버지는 제발 나를 살려주시라.

    공;그대는 조급해하지 말라. 늙은이에게 묘한 도리가 있느니라.

 

9 편

 

    공;살펴봄에 배 대인 이곳이 어느 지방 같은가?

    각;비록 하루저녁 바람에 불려왔으나 다만 갈꽃 핀 얕은 물가에 있는지라, 어제 저녁 바람이

 무슨 바람인지 모르겠으나 흔들리는 쪽배가 서쪽은 양화도어구를 못 갔을것이요 동켠은 서빙고 강머리를 더 올라가지 못했을것이니 오직 광나루 남부에 있을것이라, 어찌 물으십니까?

    공;그대는 똑똑히 잘 살펴보라. 이 기슭 우쪽의 점점이 솟은 먼 산봉우리가 그대에게 일찌기

 낯익은 산이며 이 물속의 우뚝우뚝 솟은 바위가 생시에 보던 돌이겠는가? 또한 닭과 개소리가 적막하고 굴뚝의 연기가 전혀 보이지 않아 사방을 살펴봄에 한사람도 오가는이가 없으니 이곳이 묻건대 광나루 남부지방이 옳은가?

    각;아니, 이 지방이 그러면 어느 땅일가? 저는 바람불고 물결친이래로 할아버지가 절대로

 머리를 내밀지 말라는 지도만 쫓아서 봉창안에 누워있어서 유유한 넋이 정신없이 지나다가 지금 비로소 머리를 들고 나와서 동녘하늘의 새벽빛을 보고 이 세상인줄 알았는지라 돛 앞켠의 의희한39) 먼산은 남한산, 청계, 관악산이요, 돛대 뒤편의 구름이 그 아래우에 둥둥 뜬데는 백악산, 목멱산, 인왕산으로 스쳐보았으나 이상히도 이 강 북쪽과 남쪽에 고기배 한척도 대인것 없고 사람의 집 하나도 없음이라 방금 의아해하던중이더니 지금 할아버지의 말씀 듣고 자세히 보니 먼산 뜬구름이 필경 구름이며 람기40)요 산 하나 보기 어렵고 다만 보이느니 사면에 물빛만 차고차서 가장자리를 보지 못하겠도다.

아니 우리 일동이 정녕 빠져죽었겠거늘 지금 내 이야기가 넋이 슬피 우는 소리가 아니며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고기창자속이 아닌가? 꿈꿀 때는 꿈인줄 모르고 죽으면 죽은줄 모르나니 우리가 죽고서 살았을 때처럼 이야기를 하는지 어찌 알수 있겠는가.

사공이 껄껄껄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총각이야말로 옛사람이 이른바 나는 어디 가고 중이 여기 있는고 하였다는 격이로다. 어제 밤에 손님은 전부 봉창안에 들어가고 이 늙은이는 배우에 혼자 있어 동서남북을 도무지 가리지 못하고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배를 맡겨두어 하늘가가 번듯하고 땅끝이 꺼지다가 동녘이 점차 트이며 풍랑 또한 자니 처음에 내 몸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지 의심스러웠으나 지나온 경황을 한번 생각하니 한바탕 봄꿈에서 깬것 같은지라, 내 몸을 한번 보고 두번 보고 또 보니 절반 꺾어진 노는 손에 쥐여있고 반나마 젖은 고의는 다리에 걸쳐져있고 돛폭은 다 찢어져 한치도 없으며 닻줄도 끊어져 반자도 남지 않았도다.

다 나간 혼을 겨우 가다듬고 배머리와 배의 뒤쪽을 점검하니 낚시도구와 고기그물은 다 떠내려갔고 다만 남은것은 나무판자 하나이로다. 그래서 반드시 죽지 않았고 산것이 틀림없다 생각하였소.

이로부터 손님들의 신변에 대한 걱정이 나서 봉창판자를 열고 손님들을 본 연후에 지형을 살펴보니 생시에 한번도 본 일 없는 산천이요 잠잘 때 한번도 꿈에 못 본 세계요 평생에 한번도 사람들로부터 듣지 못하던바이로다. 이제 배를 돌려 기슭에 대이려 하나 배밑은 모래밭에 절반이나 묻혀 움직일래야 움직일수 없고 돌릴래야 돌리지 못하며 아침조수가 아직 찌지 않아서 발을 뽑재도 그도 하지 못하니 어쩌면 좋겠소, 어쩌면 좋아. 하늘가 외딴 곳에서 살아갈 좋은 방침41) 하나도 없고 다만 저 조수가 지고 뭍이 드러나기만 기다려 발을 뽑고 기슭에 올라서 저 기슭우의 시든 배와 병든 도토리와 저 바위밑의 흰 고기와 조개로 목숨을 부지하다가 다행히 하늘이 우리를 죽이지 않으사 하루이틀사이에 어느때든지 큰것이나 작은것이나간에 고기배가 지나가면 사정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길밖에는 도리가 다시 더 없도다.

    각;아아 우리 할아버지여! 지금 우리들이 정녕 살지 못하였는가. 설사 우리가 살아있더라도

 키없는 배에 앉아있으니 배에 키가 없으면 그거사 한쪼각 뒤엎어진 환난이라 뒤엎어진 환난이 모래밭에 묻힌것이 오래 지탱할수 있겠는가. 갑자기 바람불어 물결이 한번 들이치면 물우에 표류하면서 떴다 잠겼다 하여 어느곳에서 가라앉을지 모르며 표류하는 한탄을 설사 면하고 저 기슭에 올라간들 나무열매와 해산물이 이 알곡과 고기 먹던 입에 맞겠으며 설사 살아서 하루이틀 지난다한들 인적없는 외딴 곳에 고기잡는 배가 어찌 있으리요. 필경 굶어죽고 애끊겨 죽어서 뼈가 가을풀 우거진 곳에 널림에 까막까치가 떼를 지어 모이고 여우와 삵이 와서 물어뜯어 죽은 후에도 괴롭기보다는 차라리 물속에 뛰여들어가서 물에 빠진 혼백은 고래의 큰 배속에 들어가고 유유한 혼은 물결속에서 눈 녹듯 없어져서 나의 살았던 흔적을 한점이라도 인간세상에 남겨두지 않고서 부처님의 무생42)의 원을 푸는것이 그 어느 편이 나은가…

 

 

만 강 홍

 

  권

 

10 편

 

    공;그대는 조급해하지 말고 늙은이의 말 한마디를 더 들으라.

이 늙은것의 나이 지금 여든이라, 단간짜리 초가집도 없으며 피줄 이은 자식 하나 없고 알몸뚱이인 외로운 이 몸이 마치 회오리바람을 만나서 지는 다북쑥과 같은지라 새바람 불어서 서쪽에 지면 그곳 사람이 밟고 서풍이 불어 동쪽에 떨어지면 그곳 사람이 툭 차버려서 넓고넓은 천지에 가위43)돌에도 못 붙고 나무에도 붙지 못하도다. 살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을수도 없어서 늘그막에 이 부목(남쪽지방에서는 배를 가리켜 부목이라고 한다.)을 가지고 가련한 여생을 의탁하였도다. 다행히 날씨가 좋고 손님이 빈번하면 하루에 그날 먹을것을 벌고 그렇지 못하면 며칠이 되여도 탁주 한잔이 안 생기는지라. 그러나 한가닥 모진 숨통을 생으로 끊을수 없고 쌀쌀한 산속의 비내리는 새벽에 쪽박을 차고 늙은중의 절간을 찾아가며 외로운 성의 눈내리는 저문 날에 늙은 기생의 문앞에 그릇을 들고 비럭질해서 수심겨운 산속 슬픔의 물녘, 그 허다한 곳에 비맞고 바람에 시달리면서 아직까지 살아있도다.

말을 멈추고 생각하면 늙은것이 이 세상에 무슨 잊지 못할 일이 있으며 무슨 장래의 소원이 있어서 이렇듯 미련을 가지리요마는 서산의 지는해는 그 그림자가 뉘엿뉘엿 들면서도 산봉우리에 붉은빛이 남아있고 맑은 가을 늙은 나무는 그 소리가 알알하면서도 가지끝에 마른잎이 아직 달려있나니라, 슬프도다! 남은 해빛 늙은 나무가 필경 한번은 떨어질것이지마는 뉘엿뉘엿 지는 붉은 해빛과 알알거리는 마른잎이 종시 떨어지려고 않도다, 저 무정한 물건도 역시 그렇거든 항차 감정을 가진 사람인 우리들이리요, 남은 빛 늙은 나무격인 이 첨지도 오히려 참지 못하겠는데 하물며 어린 꽃 초생달인 그대 젊은이야 오죽하겠는가, 설사 쪼각구름이 엉켜 방해하며 궂은비가 쌀쌀하나 하늘바람이 한번 걷어가면 온 집들의 퉁소소리가 모두 그대의것이라, 지금 그대가 겪는 이 액운44)은 참말 쪼각구름 궂은비가 닥친 시절이로다. 그대는 조급해하지 말고 이 늙은것이 처리하는것만 보라.

△ 손에 반이나 꺾어진 노를 쥐고 배따라기45) 한가락을 신명나게 부르며 온 기력을 다하여 배를 대이니 아침 조수는 이미 지고 저녁 조수가 밀려오며 높은 돌은 나타나고 낮은 돌은 보이도다. 이어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서 돌부리에 배를 매고 손님들에게 권하여 배를 내리게 하더라.

손님들 배고프고 춥고 비실거리고 어지러워 하더니 마치 물에 든 고기같고 조롱을 벗어난 새같이 엎어지며 자빠지며 앞을 다투어 내려오고 단지 두 처녀만 남아서 움직이지 못할새 사남은 노머리에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을 쉴뿐이더라.

사공이 걷어올린 맨발로 성큼성큼 들어와서 배머리가에 구붓이 서서 사남을 등에 업히라 권고하니

총각(사남),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할아버지는 나를 조금도 념려말고 저 아가씨들을 먼저 구해내리시라. 저는 비록 다 죽었다가 살아남은 몸이나 두다리가 상기 있으니 스스로 물을 건널수 있거니와 저 아가씨들은 움직이지 못하는것 같은지라 옛사람의 말에 이르기를 아지미가 물에 빠졌는데 손을 대여 건지는것은 도리에 어긋나는것이라고 하였으니 내가 도와드리리다. 할아버지는 아래에서 업어올리시라(하고 일어서며 말하기를) 아가씨들은 혹시 꺼리껴하지 않겠는지?

△ 만강홍이 그렇게 말하는것을 들으니 무정한것 같으되 유정하고 그 얼굴색을 보니 사람을 보호한다고 말하나 사람을 부끄러워함이라. 구름같은 머리는 헝클어져 드리워지고 눈같은 흰 뺨에는 붉은색이 물들었더라.

만강홍, 아릿다운 태도로 록란을 보고 말하기를;

귀인이 도와주시겠다는 이 말씀 들으니 매우 감격되는바이올시다. 험한 바위돌이 고개 숙이고 고목에 꽃이 핀들 저같은것이 무엇이건대 감히 장부되신분의 수고를 끼치기 바라리오. 저는 시중드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 죽드래도 그에게 의탁하고 살드래도 그에 의탁할지라 다만 축원하건대 귀인은 저희들 념려를 마시고 스스로 아끼고 자중하여 조금도 탈이 없으시이다.

△ 록란, 이 령을 듣고 간신히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오니 걸음마다 비틀거려 마치 서리병아리46)가 홰에 오를 때 모양 같더라.

총각, 록란의 전갈47)을 기다리지 않고;

조금전에 사공의 말을 들으니 아가씨가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더니 지금 일어난것을 보니 천만다행이로다. 그러나 보다싶이 새처럼 약하고 버들처럼 연한 몸이 능히 이 지척의 감탕밭을 발벗고 건널수 있겠습니까. 아가씨 혼자몸도 전혀 부지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남을 구원하겠습니까.

△ 하고 우르르 달려와 붙들기를 마치 제비가 내려오며 꽃을 차고 나는것 같고 소리개가 스쳐날며 닭을 차고 가는듯이 하여 배사공 할아버지의 등어리에 업혀줘서 모래사장에 내려서 앉히고

사공이 다시 들어와서 전과 같이 구붓이 서니 총각, 웃으며 만강홍에게 따뜻이 말하기를;

존귀한 아가씨는 부디 널리 용서하십시오. 저도 역시 사람이라 남녀간 지켜야 할 례의를 어찌 모르리오마는 외딴 이곳에서 돌아갈래야 갈수 없고 피할래야 피할수 없음에 어찌리요. 또한 우리 동포로서 본다면 오늘 우리들이 모두 한집안 형제라 형이 엎어지면 동생이 일으키고 동생이 넘어지면 형이 부축하는것은 의리상 마땅한것이요, 정의로서도 반드시 그래야 함이라 하필 허식으로 하리요.

△ 하더니 록란이를 그러하였듯이 할아버지에게 업혀주더라.

만강홍이 어쩌지 못하고 단지 절에 간 처녀노릇을 하여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물건너가는 소리를 들으니 흰머리와 고운 얼굴이 흡사히 도화꽃이 가벼운 바람에 쫓기고 버들꽃이 나는것과 같도다.

만 강 홍;(내면독백)

아아, 하늘이여! 내가 꿈꾸고있는가 깨고있는가. 내가 어느매 사람 어떤 몸으로 오늘의 이 신세에 놓여있는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금이야 옥이야 하던 사람이요 깨끗한 집, 좋은 방에 울긋불긋 고운 옷을 입은 몸으로 발벗은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있으니 이 무슨 일이며 어인 까닭인고. 초상 그려두는 사람을 데려와서 이 모양 하나 박아 우리의 청춘남녀와 함께 나의 깊은 액운을 보이고 나의 긴 원한을 호소하지 못하는것이 한이로다.

△ 사공이 얼른 만강홍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들어갈 때 사남이가 나오다가 벌거벗은 발이 돌모서리에 대여서 감탕속에 자빠졌도다.

   공;저 미친 아이가 필경 이 늙은것을 헐떡거리게 만드는구나.

△ 창황히 구해내여오니 전신이 흙투성이가 되여 마치 물에 빠진 생쥐꼴이더라.

기슭에 앉은 나그네들은 애석해하지는 않고 오히려 신기한 구경을 하듯 모두 웃으니 아릿다운 록란도 웃음을 참지 못하여 붉은 입술 벌려 깔깔 소리를 내더라.

만강홍, 홀로 민망하여 제가 빠진것 같이 보고있다가 록란이가 웃는 모양을 보고 총대처럼 뾰족한 입으로 말하기를;

네가 비록 지각없는 천한 계집아이나 조금이라도 인정이 있다면 사람이 저꼴이 된것을 보고 달려가서 구하지는 못할망정 신기한것을 보는듯 좋아라고 그렇게 웃어? 저 총각이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제일 마지막으로 떨어져있다가 저런 뜻밖의 광경을 당하였는데 네 마음에 무슨 유쾌하고 좋은 일이 있어서 깔깔거려마지 않느뇨. 참말 개보다도 못하다.

록란, 련이어 웃으며 말하기를;

그렇게 애석하면 아가씨는 어찌 두손으로 받들어내다가 전신의 흙탕을 핥아주지 않고 편안히 앉아보시며 어찌 땅을 치고 하늘을 원망하면서 큰소리로 울지 않고 도리여 내가 웃는것을 나무라시오. 설사 내가 운들 아가씨에게 무슨 유쾌한 마음 들겠으며 내가 웃은들 아가씨의 마음에 무슨 불쾌함이 있으리요. 옛사람이 일찌기 말하기를 죽더라도 님있는 곳이면 오히려 여한이 없다 하더니 저 총각이 바로 그런 사람이올시다. 다른 사람이 그런것을 보면 심히 애석하나 저 총각이 그런것을 보면 참말 하나의 좋은 사실이고 하나의 유쾌한 사실이예요. 저렇듯 머리땋은 남자가 무슨 행운으로 이 외딴 곳에 와서 꿈에도 못 보았고 죽어서도 못 얻을 다시 더는 만날수 없는 선녀같은 아가씨를 대낮에 안아다가 한가닥 봄마음 샀으니 저분의 마음속 소원이 다 풀렸음이라. 하늘이 준 복된 사람이 일찌기 둘다 온전치는 못하며 쾌락한 사람의 일신상에는 반드시 조그마한 장애를 겪게 하나니 저 미끄러짐이 사실은 하늘이 그렇게 만든것이라 남의 경사를 보고 우는것이 옳아요 웃는것이 옳아요, 아이 우스워 죽겠네.

아가씨! 내 말 잘 들어보세요. 내가 저 물에 빠진 생쥐모양을 보고 우는것이 아니라 웃는 까닭은 여기 있으니 아까 아가씨가 나올제 저분의 마음은 이미 아가씨 머리뒤를 따랐고 저분의 눈은 아가씨 얼굴만 뚫어지게 보았으니 그 나머지는 빈몸의 깍대기뿐이라 빈 깍대기 몸뚱이가 비록 반반한 맨땅우에 있은들 어찌 안 넘어지겠어요. 내가 가만히 저분의 심사를 살펴보니 저렇게 물에 빠진 생쥐모양으로 된것이 응당한 일이라 어찌 애석한데가 있겠어요. 다만 가석한 일은 우리 아가씨가 잠시의 봄마음을 팔러가서 고운 비단에 깊이깊이 싸인 옥같이 정한 몸을 진흙에 어지럽히고 만리풍랑에 쇠같이 굳은 마음을 봄얼음 녹이듯 하고도 마음은 부끄러워 안하니 나는 아가씨를 위하여 진정으로 일장통곡을 하게 됩니다.

만강홍, 기가 막혀 도리여 웃으며 말하기를;

너의 심장은 무슨 심장이길래 등한48)히 볼것을 별난것으로 보아서 그런 되지 않은 소리를 마구 하느냐, 좀 있다가 하늘이 맑고 구름이 개이고 물이 찌고 돌이 드러날 때 되거든 어디 보자.

록란, 말을 받아서;

볼 때 보더라도 말은 바른대로 하나니 본 일 없는 남녀가 대낮에 붙든것이 과연 보통일이예요? 처녀 총각이 눈맞추고 은근히 부르는양이 과시 등한한것인가요? 아가씨의 입은 광주리만큼 크더라도 무슨 변명할말이 있어요. 나는 아가씨 배꼽에 유리를 대고 들여다보아요.

만 강 홍;아이구, 저 되지 않은 소리가 생사람 미치게 하기 알맞는구나. 기가 막혀 말을 못하겠어

 말을 못해.

얘 록란아, 제발 주둥아리를 그만 놀려라. 저 기슭에 있는 손님들이 듣는다면 희디흰 내 얼굴에 활활 타는 모닥불 끼얹게 된다.

   란;저 손님들도 생각이 있고 눈도 있는지라 이미 저 마음 짐작했고 그 모양 보았을걸 어찌

 우리의 소곤거리는 소리에 귀기울이고있겠어요. 나와 아가씨는 신분은 주인과 시중드는 사람사이나 정은 형제라 꽃싸움, 피리 장난하던 어린때부터 한그릇의 밥을 함께 먹고 같은 이불에서 잤는데 하늘이 어이 시기하고 귀신이 어찌 꺼려서 무한한 풍파를 다 겪게 하고도 남은 액운이 상기 미진하여 이같은 외딴 곳에 와서는 필경 한그릇의 밥을 함께 못 먹으며 같은 이불에 자지 못하고 내 밥동무, 내 잠동무를 순순히 딴사람에게 사양하여주어야 하니, 아-

 

 

11 편

 

사공, 헌옷을 입고 짚신을 신고 사남을 보고 말하기를;

총각은 여기 앉아서 옷을 말리우라. 늙은것은 손님일동과 같이 저기 가서 밤을 따고 배를 주어오리라.

(또한 록란을 향하여 말하기를);

아가씨는 여기 앉아서 잠간 기다리라. 나는 좋은 밤과 배를 구해서 한치마 가득히 가져다주리라.

△ 하고 모두 산으로 올라가더라.

만강홍과 록란은 한발자욱도 움직이지 못하고 한곳에 눌러앉아서 맥맥히 서로 마주보니 맑고맑은 가을해는 처녀의 붉은 뺨을 따뜻이 익히고 가늘디가는 옥모래는 비단요처럼 폭신하여 곤한 사람 한잠 자기 알맞도다.

어언 앉아서 조니 두 아가씨가 마치 한쌍의 조는 원앙새 같더라.

갑자기 해는 강속에 떨어지고 산그림자는 우뚝우뚝 모래사장에 다가오며 조수머리의 선선한 찬바람이 땅을 쓸며 삽삽히 불어와서 천리길 가을꿈을 뚝 끊어놓도다.

 

 

 

12 편

 

만 강 홍;아이 추워, 아이 추워라.(소스라쳐 일어나니)

        (내면독백)

아버지의 목소리는 귀속에 은은히 남아있고 어머니모습은 눈앞에 완연하게 남아있는데 온 집안의 붉은 꽃나무 누른 꽃은 보이지 않고 온 방안의 수병풍49), 비단장막은 어디 가고 평생 꿈에도 본 일 없는 이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앉았는고.

        (독백)

아니, 이곳이 어느곳이냐?

△ 하품을 한번 하고 돌아보니 물소리는 철썩거리고 산세는 험하고 개미 한마리 얼씬 안하고 다만 록란이가 곁에 있어 가련하게도 무릎을 안고 졸고있더라.

만 강 홍;(노래)

날새는 풀언덕에

쪽잠들었고

정든 내 방 찾아간 꿈

바람에 깼네

해질무렵 황혼은

다가오는데

낯선 산천 어딜 보나

처량하여라

△ 만강홍 방금 깨여나서 마음이 아득하여 진정할줄을 모르더니 서산의 해가 떨어지고 강바람이 점점 쓸쓸해지니 점차 무서운 마음이 울컥울컥 일어나며 전신이 한줌이나 될듯 움츠러들어서 울고싶으나 울수도 없고 자고저 해도 자지 못하겠는지라 모름지기 록란을 흔들고흔드니

    란;만강홍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 깨서 하품을 한번 크게 하면서 말하기를;

참말 괴상한걸. 방금 내가 꿈에 돌아가신 마나님을 모시고 무슨 교훈의 말씀을 한참 재미있게 듣다가 다 듣지 못하였는데 아가씨는 무슨 일로 깨웠어요? 아이 분해죽겠네.

만 강 홍;내사 네가 아니니 어찌 네가 방금 꿈을 꾸는줄 알았으리오. 그런줄 알았던들 내가 깨우지

 않았을걸. 깨우지 않아. 그러나 나도 꿈에 어머니를 뵈왔으니 너의 미진한 일은 내 꿈에서 듣고 나의 미진한 일은 네 꿈에서 들으면 안될것도 없지 않는지라 어찌 그리 분해하느냐. 내가 꿈꾼 이야기를 할터이니 네가 듣겠느냐?

    란;내가 듣고 안 듣는것은 상관하지 말고 말할수 있으면 어서 말하세요.

만 강 홍;어머님이 나를 사랑하고 아끼시기는 생시나 꿈에서나 일반이시더라. 이야기인즉 내가

 어떤 증세도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하여 앓으면서 몇달째 낫지 않았는데 때는 마침 삼월 삼짇날50)이던가보아. 그날은 바로 내가 이 세상에 태여난 날이라 이른 꽃은 방금 지고 늦은 꽃은 아직 안 피였는데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은 고요하여 사람의 수심을 돋구고 마음을 산란케 하기 좋은 시절이더라. 마나님께서 내가 자리펴고 누워있는것을 민망히 생각하여 바람도 쏘일겸 향피우고 부처께 치성이나 하자고 나를 달래시거늘 내가 딴때에는 천만사가 다 귀찮더니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동하고 눈섭도 펴져서 곧 응낙하고 이내 새롭게 단장을 잘하니 우에는 가는 한산모시 홑적삼에 은행색별무늬 놓은 관사겹적삼을 입었고 아래는 갑삼팔비단51)누비바지, 송화주 단속옷52), 도화색순인치마53)를 입었으며 눈같은 하얀 무명의 외씨같은 버선, 버들에 꾀꼬리 노는 모양을 수놓은 신으로 자지색양산을 짚고 집앞에 나서서 내가 나를 돌아보니 참말 얄미울 지경이더라. 갑자기 골방54)뒤로 《아가씨》, 《아가씨》 하고 연해 부르며 제비처럼 나오는이는 딴사람이 아니라 곧 너였는데 나와 꼭같고 약간 색다른 모양은 치마가 연한 람생주이더라. 벽종이 땡땡 열두점을 치니 마님이 방금 향피울 그릇을 챙기고나서 매양 담담한 단장에 점잖은 옷차림으로 사인교55)우에 천연히 앉고 《정녕 홍아! 내 딸은 어머니와 한가마 타고 가자》 하시더니 가마가 좁아 안되겠다 하여 다른 가마 하나를 불러서 너와 같이 타게 하고 영미정을 나서 승방56)에 가니 그 승방은 곧 우리 어머니가 시주57)한 승방이라, 일찌기 우리 모친이 나를 낳기 전에 그 승방의 삼위일체불에게 불공드리고 나같은 불초58)딸자식을 낳으셨더라. 이때부터 매번 명절에는 향피우고 발원59)하여 해마다 의례히 오시던 곳이니라. 이날에 어머님이 그 부처앞에 먼저 향 석대를 피우시니 첫대는 우리 령감님 몸이 더욱더 건강하고 기력이 더욱더 강장하여 만수무강케 하옵시사. 둘째 대는 우리 딸애 병없이 건강하여 하늘이 내신 배필60)의 좋은 총각 만나게 하옵시사. 셋째 대는 집안일동이 일년내내 모든 불행은 영영 없어지고 천백가지 일을 다 소원성취케 하옵시사. 그다음에는 내가 향 두대를 피우니 첫째 대는 우리 부모 두분의 수명이 남산과 같으시옵고 즐거움이 동해처럼 깊으시옵사. 둘째 대는 무슨 일이였던지 나도 잊어버렸다. 그다음에는 네가 정성들여 향 한대 피우며 깊이깊이 가만히 빌되 원컨대 우리 아가씨와 함께 언제나 갈라지지 말고 칡이 되거던 한나무에 서로 감기고 키나 대나무비자루가 되거던 한사람의 손에서 떨어지지 말게 하옵시사 하더라.

세사람이 일일이 소원을 빌고 모친은 늙은 신각씨61)를 따라서 어느곳에론가 가시고 나와 너는 앞서거니뒤서거니 서로 법당62)뒤로 돌아가니 거기에 거울같은 묵은 못이 있고 못가운데 석가산63)이 있어서 석가산 좌우에는 푸른 오동, 푸른 대나무가 울창하며 신기하고 보지 못한 새들이 오르내리며 울고 또 작은 배 하나가 있어서 푸른 부평초 덮인 물우에 둥둥 떠있더라.

나는 너와 함께 어머님이 거기에 계시는가 하여 그 쪽배를 타고 석가산에 올라가니 한사람의 발자욱도 바이 없고 길에는 가득히 도화가 피고 봄은 적막한데 중간에 천연석탑 한자리가 있으니 높이가 한길은 좋이 되고 탑면에 희미하게 몇줄의 옛글씨 적혀있더라. 내가 비석에 낀 푸른 이끼를 닦고 자세히 읽어보니 웃줄은 어언도요 다음줄은 어느해 어느달 어느날에 삼위일체불이 여기에 다시 출현한다 하였더라. 신기하게도 내가 본 그날이 곧 거기 적혀있는 그해 그달 그날이로다. 내가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나는 너를 향해서 말하기를 이 부처가 여기에 다시 출현한다 하였고 오늘이 또한 그날이거늘 그 부처는 보이지 않으니 이 돌이 곧 부처냐 푸른 오동, 푸른 대나무 신기하고 보지 못한 새들이 모두 부처가 화한 후신64)들이냐 나와 너의 몸도 혹시 부처가 다시 출현한 몸이나 아닐가.

말을 하고있는 사이에 아이! 저 도화숲속에 한 묘한 젊은 총각이 언뜻 나오니 깨끗하고 준수65)하게 생긴 모습이 결코 우리 인간세상의 사람이 아니요. 분명 하늘에서 내려왔도다. 그 남자가 대단히 낯익은 사이처럼 우리 둘에게 인사하고 말하기를 제가 두 아가씨와 서로 만난지가 어언 일천 팔년이 되였습니다, 그동안 편안하셨소? 전생에 다 풀지 못한 원을 이생에서 쾌히 다 풉시다고 하고 회오리바람이 닥치는 앞으로 와서 우리 두사람의 손을 덥석 쥐고 배에 태우니 내가 어찌 놀라지 않았겠느냐. 손을 빼지 못하여 한참 신고하고있는참에 강바람이 슬슬이 불어 흔들어 깨웠단다. 이상하고 괴상한 꿈이지?

    란;아이구 좋고 정말 좋아라. 아가씨의 꿈이여! 이제 이 한꿈이 가히 우리 아가씨의 평생을

 징험66)한것이예요.

만 강 홍;원 같잖아라. 네가 점쟁이 아니거니 허황한 가을꿈을 듣고 어찌 남의 평생을 예언할수

 있단 말이냐.

    란;내가 점쟁이는 아니지마는 아가씨를 위해 한번 해몽67)을 하겠으니 청컨대 아가씨는

들어보시라.(해몽하여 말하기를) 그 증세없는 기이한 병은 곧 상사병68)이요. 그 삼월 삼짇 날씨는 곧 복숭아꽃 활짝 피는 시절이요. 그이 세상에 난날은 곧 어른되는 날이요. 그 은행적삼 도화치마는 곧 결혼하는 자리에 입는 긴 단장이요. 제가 연한 푸른색치마를 입은것은 아마 별방마마69)의 차림일것이요. 아가씨가 두번째 향대 피우면서 드린 소원을 잊은 일은 곧 이 세상에 아직 있어보지 못한 좋은 총각과 한방에 살고 한무덤에 묻히자는것이요. 돌아가신 마나님이 늙은 신각씨를 따라간것은 마나님이 돌아가신 후에 보살부처70)로 된것이요. 그 못속의 석가산은 곧 바다가운데 있는 외딴섬이요. 어언이란것은 곧 섬이름이요. 그 삼위일체불은 곧 꽃숲속에서 나온 한사람과 아가씨 한분과 어떤 녀자 하나로써 세사람이 한가정을 이룰 좋은 징조로소이다.

만 강 홍;세사람이 한가정을 이룬다는 말 들으니 관중들이여! 뉘가 알리요. 내 그때 까닭없이 한가닥

 시기하는 마음 움텄더라. 굳이 말한 어떤 녀자란 누구를 말하는가. 네가 아닌가?

   란;그것은 왜 묻습니까? 다만 아가씨는 꿈속에서 겪은 일이나 생각해보십시오.

만강홍, 이어 말하기를;

네 꿈은 어떤 개꿈이냐? 너도 말하여라. 나도 해몽하여보리라.

록란,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하기를;

내가 일찍 듣기는 사람은 사람꿈을 꾸고 개는 개꿈을 꾼다는데 내가 마나님을 꿈꾸었으니 마나님은 곧 아가씨의 모친이라 무슨 까닭으로 내 개꿈속에 나타났을가? 내가 그의 얼굴을 보아서 차마 얘기하지 못하겠어요.

만강홍,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하기를;

그 말이 좋이 남을 욕하는것이 아닌가. 나와 너사이에 이미 주인과 심부름군의 신분차이가 있거니 내가 혹 말을 잘못하였은들 네가 감히 이렇듯 되잖은 소리를 하는가.(다시 돌려 생각하니 내가 먼저 실언71)하였는지라 어찌 그를 원망하리요 하여 솟아나는 노여움과 타오르는 분기를 억누르고 좋게 말하기를) 내가 례사로 한 롱담을 네가 어찌 고깝게 듣느냐. 그런 되잖은 말은 그만하고 빨리 꿈이야기나 하여라.

록란, 얼굴의 붉은 기색이 상기 다 가셔지지 않은채 겨우 대답하기를;

저의 꿈은 붉은것은 붉고 푸른것은 푸른 개꿈인지라 말할것이 못되나 아가씨가 이왕 재삼 물으시니 천한 종이 어찌 아뢰지 않으리오마는 그 푸른것은 푸르고 붉은것은 붉은데 대해서는 다 빼고 다만 긴요하고 특이한것만 대충 말하겠으니 아가씨는 잘 들으시겠어요?

만 강 홍;(이르기를) 걱정하지 말라.

    란;아까 꿈에 말이예요. 아가씨가 저와 함께 어떤 곳에 가니 그 땅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곳이예요. 무연한 큰 바다는 사방을 한빛으로 둘렀고 무수한 산봉우리들은 높고낮은데 저 바위틈의 풀속에서 울며 꿈틀거리는것이 새 같으면서도 새가 아니며 사람 같으면서도 역시 사람이 아닌지라 머리는 둥글고 다리는 모난것이 열에 일곱은 사람이요 짧은 꼬리, 긴 발톱으로 보아 셋에 하나는 짐승이였어요. 그런 무리가 우리일행을 보고 처음에는 놀라다가 나중에는 달려오니 그 기세는 마치 사나운 짐승이나 큰 뱀이 죽자고 달려드는것 같애요. 나와 아가씨는 피할래야 피하지도 못하고 땅우의 풀속에 넘어져서 서로 붙안고 통곡을 하는데 아니 글쎄 저 멀고먼 수풀 나무사이로 등불 한줄기가 번뜩하며 정녕 말하기를 《너희들은 놀라지 말라. 이 땅은 오호해중의 어언도요 저 무리는 곧 섬사람들이라 몸형태는 비록 짐승같으며 생활은 비록 어질지 않으나 처음에 권모술수72)로 대하고 점차 의리로 사귀면 십년이 못 가서 자연히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내가 머리를 들어 한번 바라보니 아니 글쎄 그분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곧 우리 마나님이예요. 아가씨는 더욱 섧게 울면서 《어머니는 나를 살려주세요, 살려줘요.》 하니 마나님은 태연히 슬퍼하지 않고 조용조용 말하기를 《너희들의 남편이 여기 있으니 너희들은 놀라지 말라. 너희들의 꽃나이가 열다섯이 못되여서는 우리 집 사람이였거니와 이제 남에게 시집갔으니 너를 죽이고 살리는것은 모두 너의 남편에게 맡겨졌는지라 내가 어쩔수 있느냐》고요.

내가 놀라 말하기를 《남편될 그 사람이 묻건대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마나님이 아홉마디 지팽이를 들어 멀리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 사람이 곧 그러하다》고 하지 않아요. 가리키는데를 내가 보니 글쎄 그 사람은 딴사람이 아니라 지금 저 모래밭에서 옷을 말리고있는 저 총각이였어요. 마나님이 또 우리를 보고 말하기를 《너희들이 그 사람을 보았느냐?》 하기에 우리들이 보았다고 하였지요.

마나님이 아가씨를 보고 신신당부하여 가르치시기를 《늙은 몸이 너희들 둘의 신세를 저 사람에게 함께 맡기고 가니 너희들은 시기하지 말고 한마음으로 섬길지어다. 내가 다시 말하지 않으리라》고 하기에 내가 서로 시기하지 말라는 교훈의 말씀을 듣고 매우 이상히 여겨서 바야흐로 물으려고 할 때에 아가씨가 갑자기 흔들어 일으켰어요.  아가씨, 이 꿈이 괴이하지 않으세요?

만강홍,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니;

저 총각은 강기슭의 내 몸에 무슨 춥고 더운 관계가 없으나 그 풍류는 천상에서도 보기 어려운 신선같은 남자요 인간세상에서 본 일 없는 호걸이로다. 항차 또한 저 사람이 꺼꾸로 나를 자나깨나 련모하여 귤을 던진이래로 제 일생소원을 오직 내 몸에 걸었도다. 그리하여 나를 한양 성동에서 기다리고 나를 광나루에서 보내려다가 만리풍랑에 정신이 다 떠내려가니 만약 그가 용렬73)하고 저속한 사나이라면 제 살기에 겨를이 없었겠거늘 하물며 나를 구하리요마는 저 총각은 꺼꾸로 내가 죽는것을 오히려 자기가 죽는것보다 더하게 알며 내가 사는것을 도리여 제가 사는것보다 더 좋아하여 극진타가 이곳에 이르니 관중들이여! 저런 인물의 그런 모험이 모두 누가 시켜서 한바인가? 첫째도 나요 둘째도 역시 나로다. 그런 사정을 거듭 생각하니 내가 저 총각에게 있어서 전생에 무슨 업원이 있어서 오늘의 이 정황에 이르렀는가.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그의 신상에 이미 너무나 충분한 인정의 뿌리, 사랑의 꽃을 심었거든 다시 또 이 산처럼 높고 물처럼 깊은 큰 은혜 있으며 또한 괴이하게도 꿈속에서 손을 잡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곧 저 사람이였다. 이것저것 생각하여도 비록 부친의 명령이 없고 또 남몰래 한 약조도 없으나 저 총각은 단연코 우리 집의 오직 한사람의 남편이어늘 아까 록란이가 한 어느 녀자 더 있다는 말을 듣고 이제 그의 꿈이야기 들으니 아! 서로 시기말라, 한마음으로 섬기라는 이 두말. 한마디한마디가 삼백근 철퇴로 내 머리를 쪼개는것 같구나.

마음속으로 가만히 말하기를;

너는 본래 우리 집의 천한 종이라 어찌 나와 함께 어깨겯고 한 남편을 섬기리요. 참말로 이것은 개새끼나 새새끼로다.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하고 눈은 쌍심지를 켜서 그런 분한 기운을 어찌 참을수 있으랴. 여기 칼이 있으면 곧 쥐고 제 혀를 잘라놓고 여기 빨래방치가 있다면 당장 제 머리를 박살내리라.

만강홍, 다시 돌려 생각하니 이것은 아이도 낳기 전에 시렁74)매는 격이로다. 분기를 꿀꺽 삼키고 새긴 다음 억지로 대답하기를;

너의 꿈이 과시 개꿈이라 어찌 해몽할만 하리요. 네 꿈이 참꿈일진댄 어찌 그런 이상한 일이 있으며 설사 그렇다고 할진댄 마나님이 어찌 나에게는 나타나지 않고 반대로 너에게 나타났겠는가? 지금 네가 비록 천만번 꿈얘기를 하더라도 나는 곧이듣지 않겠노라.

   란;아가씨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개라고 하면 개는 개꿈을 꾸는것이 본시

 례상사어니와 마나님이 나타나신것이 매우 괴이합니다.

내가 일찍 중의 설법75)을 들으니 이생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죽어 저생에 가서 반드시 짐승이 된다더니 마나님이 저생에 가서 개가 되지 않았는가 하옵니다.

(이렇게 한바탕 이야기하는 사이에)

사공할아버지가 어디서 와서 우뚝 서서 말하기를;

두 아가씨가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이같이 해가 지고 갈길 막힌 때에 어찌 그리 긴 이야기들을 하며 얼굴이 불그락하는가?

△ 만강홍이 생각하니 이 늙은이가 가만히 와서 우리 이야기를 엿들은 모양이로다. 과연 그렇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록란, 이어 말을 하기를;

사공할아버지는 괴이하게 여기시지 마세요. 우리들이 저희들 집신세를 생각하니 죽고싶은 마음이 가득하여 자연 그렇게 됐어요. 할아버지! 아까 저보구 좋은 밤과 좋은 배를 가져다주겠다고 하더니 그 좋은 밤, 좋은 배가 과연 어디 있어요?

 

 

13 편

 

사공, 웃으며 말하기를;

좋은 밤이 여기 있고 좋은 배도 여기 있으니 바라건대 두 아가씨는 옛집터에서 산적76) 구워먹던 생각을랑 마시고 마음껏 자십시오.

△ 품속에서 산과실을 꺼내여 한줌한줌씩 고루 나눠주니 그 배는 까막까치가 파먹다 남은것이요, 그 밤은 다람쥐가 반가까이 갉아먹던것이더라.

록란, 만강홍에게 권하면서 말하기를;

궁벽한 산속에서 개미를 핥으며 바다우에서 눈을 씹는것은 예로부터 대장부도 그랬으니 우리들의 오늘 이 산과실은 어찌 그보다 맛이 없으며 달지 않겠나요. 바라건대 우리 아가씨여, 이 배는 보기를 봉산 누렁배같이 보며 이 밤은 함종률같이 보고서 이것으로 창자를 이으면 하늘이 우리를 죽이면 그만이어니와 혹시 우리를 살릴진댄 반드시 좋은 일이 있으리다. 곱기가 아가씨 같은 천금처럼 귀한 녀자와 밉기가 저 같은 만고의 천한 사람이 넓은 세상에도 보기 드문 짝이요. 죽었다 살아나도 얻기 어려운 한생이라 옛날 어느 미인은 얼굴이 몹시 못난 녀자가 있었기때문에 더욱 깨끗함이 드러났고 그 못난 녀자는 그 미인이 있기에 더욱 미워보였나니 하늘이 나를 죽이고저 하나 아가씨가 더욱 깨끗해지기 위해서 나를 죽이지 않아요, 죽이지 않아.

△ 하고는 배 한알을 썩썩 깨물더라.

만강홍,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면서 이르기를;

        (내면독백)

저 말이 종시 질투하여 쏘아대는것이라. 흡사 별방마마의 뾰족한 독설로 암암이 안방 아가씨를 조소하는것과 마찬가지라 괴롭고 괴롭도다. 저것이 필시 전생에 내 원쑤된것이 이생에 다시 나의 경쟁자로 태여났도다. 괴롭고 괴롭구나. 내가 쪽배에 풍랑을 만남은 내 신세에 도리여 태평세월이 되고 쾌락한 생활로 되도다.

만강홍, 이윽고 깊이 한숨을 쉬고 이르는 말이;

록란아, 너는 바늘끝만치도 내 생각 하지 말고 잘 먹고 잘살아서 무궁한 향락과 무한한 수복을 누리라. 나는 천번만번 생각하여도 이 한몸이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초목을 씹으며 물고기들을 이웃하여 구차하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한시바삐 죽어서 혼이라도 아침저녁의 조수를 따라서 날마다 광나루나 한강 배나루에 가서 어머님 무덤을 바라보고 아버님 사시는 옛집이나 쳐다보리라.

    공;바라건대 아가씨는 여러 공상 마시고 오직 이 늙은이의 생각에 의지하시오. 이 늙은것이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한바퀴 살펴보니 산우에 옛절이 있고 절앞에 탑이 있으니 높이가 한길남짓 되며 탑면에 몇줄 글씨 있으니 특히 큰 글자로 쓴것은 어언사요 그 나머지는 이끼 끼고 돌이 살아서 볼래야 보지 못하였고 절앞과 동쪽에 모두 하나씩의 오솔길이 있어서 숲속 바위짬을 뚫고나갔고 절안에는 찾았으나 중은 없고 다만 세 금부처가 한줄로 앉았으며 상우에는 흙으로 구은 향로 몇개가 있고 거기에는 자단향77) 몇대가 있어서 절반쯤 탄채 꽂혔으니 생각컨대 하루이틀사이에 피우고 간것이라 이것을 보니 산아래에 사람이 산다는것을 가히 알수 있습니다.

! 하늘이 굳이 우리를 죽일진대 어제밤의 풍랑에서 죽이지 않고 이곳 사람을 시켜서 그러리요. 이 늙은이는 손님들과 함께 이미 작정한바가 있습니다.

    란;괴상한 일이로군. 할아버지가 본것이 우리 아가씨가 꿈꾼것이 아니겠나요?!

    공;아니 무어라고?

△ 록란이 만강홍의 꿈이야기를 세세히 하니

사공, 손벽을 치고 껄껄 웃으면서 말하기를;

누가 이 늙은이가 가본것을 벌써 그림그려서 아가씨의 꿈속에 던져넣었는가!

    란;할아버지의 작정하신바를 가히 들을수 있겠습니까?

    공;저 산우에 오랜 절이 아마 하늘이 주신 우리의 좋은 집이요 땅이 우리를 위해 숨겨둔

 정자로다. 저속에서 묵으면서 쉬다가 하루이틀 바람과 찬이슬을 그이고 다시 좋은 수를 꾸미는것이 옳겠도다.

△ 말하고있는 동안에

가마군이 나무를 꺾어서 림시로 가마처럼 만들어 만강홍이 앉아있는 옆에 놓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아가씨의 이 곤난이 참으로 저희들탓이요 결코 아가씨의 운명이 아니오니 빌건대 아가씨는 넓은 도량으로 저희들의 허물을 특별히 용서하사 사랑하시기를 전보다 더하여 주십소서. 저희들의 이 뼈골이 돌아가신 마나님 품속에서 자라지 않은것이 없는지라 그 은혜를 생각하면 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으온대 마나님의 무덤흙이 상기 마르지도 않아서 우리 아가씨로 하여금 이같은 하늘가 외딴 곳에 떨어져서 갈래야 갈수 없고 돌아설래야 그러지도 못하게 한지라 저희들이 이 배사공할아버지의 생각을 따라서 이제 산우에 올라가려고 할새 저들은 비록 이처럼 뼈대 큰 사나이라도 배에서 내린지 반날의 바람결에 모래사장에 엎드려서 아가씨가 낯선 총각의 혐의를 사는것을 보며 또 배사공할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옥같이 깨끗하고 눈같이 흰 아가씨의 신상에 달도 부끄러워서 숨고 구름도 가리울 혐의를 당하게 했으니 돌아가신 마나님의 혼이 머리우에서 노한 눈으로 내려다보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한몸이 삼단같고 나무토막같아서 굴신78)을 하지 못하겠더니 다행히 이 배사공할아버지가 시든 배, 병든 밤을 주어다 주어서 근근 이만큼 움직입니다. 저희들이 나무를 꺾어 이것을 만들면서 어제 겪어온 일을 골똘히 생각하니 배꽃같이 희던 가마는 어디 가고 우리 아가씨로 하여금 차마 이런 가시돋친 나무에 어찌 앉게 하리요 라고 하여 던져두었더니 강바람이 삽삽79)히 불어 사람의 뼈속을 찌르고 날도 또한 황혼이 되니 우리 아가씨로 하여금 차마 이 거친 모래밭에서 어찌 주무시게 하리요. 저희들의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무릅쓰고 림시로 꾸민 가마를 등대80)하였사오니 빌건대 아가씨는 고생스러운 생각을 제발 버리시고 여기에 타십시오.

만강홍, 그들이 호소하는 감정을 들으니 솟아나오는 뜨거운 눈물이 뚝뚝 비오듯 하여 울지 말래야 울지 않을수 없겠구나. 이윽고 말하기를;

행랑81)아범 여러분네여, 오늘 이 상태가 모두 내 한사람의 용서 못할 죄악의탓이요 행랑아범 여러분에게는 털끝만치도 허물이 없어요. 다만 이 몸이 즉시 죽어서 인자하신 하나님곁에 가서 나의 애통한 정상을 호소하며 나의 죄악을 속죄82)하고서 궁벽하고 외딴 곳에 와서 행랑아범 여러분으로  하여금 곧 집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하는것이 한스럽소.

바라건대 행랑아범 여러분은 내 생각을 말고 더욱더 힘써서 제 몸을 스스로 아낄지어다. 내가 듣건대 소년이 자주 앓음은 오래 살 징조라 하니 여러분의 액운이 후날의 락으로 될지 어찌 알수 있으리요.

또한 인생도처에 청산이 있는83)지라 여기 해가 있고 여기 땅이 있으니 여기 먹을것이 있음은 보지 않아도 명백한지라 여러분이 비록 살고싶지 않아도 살수 있으리라.

내가 여러분에게 한마디 심중히 하고싶은 말이 있으니 그것은 저 록란의 일이로다. 저 록란은 행랑아범이 다 잘 알고있거니와 저의 할아버지때부터 대대로 우리 집에서 충실히 일하여 즐거움도 슬픔도 같이 지냈고 단것도 쓴것도 함께 나누었더니 그 어머니대에 와서 남자애 하나도 낳지 못하고 다만 저 딸 하나를 낳았는데 저 애가 난 날이 내가 난지 사흘후라 울음소리 난지 삼칠84)이 못 가서 그 어머니가 불행하게도 죽으니 가련한 저 피덩이를 돌아가신 마나님이 친히 품속에 거두어서 나와 같이 보살핀지라 옷을 입혀도 붉든푸르든 나와 같이하였고 음식을 먹여도 달든쓰든 나와 함께 하여서 지금껏 열다섯해가 되였도다. 여러분! 나와 그가 명분은 비록 주인과 종사이나 정의는 형제이니 내 죽은 후라도 여러분은 저 록란을 나같이 잘 돌보며 나같이 사랑하여 다행히 살아 고향에 돌아가거든 아버님곁에서 나 대신 받들며 어머님 무덤앞에 나 대신 제사드려서 우리 집 혈통을 길이 이으면 내가 죽드라도 한이 없을터이니 행랑아범 여러분은 이 부탁을 저버리지 마시라.

△ 그러고는 일어나서 물가로 달려가더라.

   란;아이구 아가씨! 우리 아가씨는 나를 두고 어디로 가시오.-

△ 하고는 만강홍의 치마자락을 부여잡고 매여달리더라.

가마군은 당황하여 체면불구하고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더라.

 

 

14 편

 

만강홍;(노래)

물도 산도 다 막힌

머나먼 이곳

인간세상 어디에

이런 곳 있나

풀도 누런 모래언덕

날은 차겁고

칡이 엉킨 늙은 나무

음침한 가을

아!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려라

△ 만강홍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나무우에 누워서 유유한 한생각으로 강기슭의 옛집에 날아가니 고운 다락, 깨끗한 방, 비단이불, 수놓은 장막에 자개그릇85), 향합86) 등은 예대로 놓여있고 사향연기는 고요히 타고 등불은 반짝이며 벽시계는 달빛아래 댕댕거리고 마당의 학두루미는 기침 기듯 소리내여 처량히 우는데 저 노랑꽃 붉은 나무 깊고깊은 속에 지팽이에 의지하고 홀로 있는 외로운 그림자가 흰머리 드리우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때때로 산이 무너지게 긴 한숨을 쉬는 늙은이가 력력히 눈에 띄우도다. 방금 문안드리며 아버지라고 하자니 글쎄 아버지는 돌아보지 않고 귀가에 요란한 소리 일어나도다.

만강홍이 이에 머리를 돌려 살펴보니

만 강 홍;(노래)

저문 숲 나무끝에

달이 뜨고요

인적없는 묵은 절

문은 닫겼네

강우의 정든 집

볼수가 없고

산 설고 물 선 이곳

어느 동린가

만 강 홍;록란아, 저 솟구치는 샘물과 엇비슷한 벽은 어떤 별장이며 저 이끼 푸른 기와와 거친

 담장은 누가 살던 궁전이며 나는 무슨 호사로 이런 깊고깊은 청산에 누워있는가?

    란;이 산은 벌써 말한것처럼 오호해우의 어언섬이요, 저 절도 말한것처럼 삼위일체부처의

 옛 궁전이오니 아가씨는 정신차려서 모래밭에서 꾼 꿈을 생각해보시라. 현재의 이 광경이 꿈과 맞아요, 안 맞아요?

만강홍, 한숨 쉬며 말하기를;

인생은 원래 꿈결같은 삶인지라 꿈밖에 무슨 세상이 있으리요. 아까 꾼 꿈이 참으로 꿈꾼것이 아니요 지금 깬것이 역시 깬것이 아니거니 무엇이 꿈이라 말하며 무엇을 깬것이라 말하겠는가. 나와 너의 문답이 모두 꿈속에서 꿈이야기를 할뿐이로다. 온 뜰에 가득히 나무잎 쌓였고 서리는 두텁게 내려 눈같은데 숲도 차겁고 돌도 차거워 사람의 살과 뼈를 쑤시며 날짐승, 길짐승은 사람을 겁내며 산중생활이 도리여 바다우에 표박87)하고있는것보다 못하니 이것을 산넘어 또 산이요 바다건너 또 바다라고 말하는것이로다. 멀고먼 하늘가의 이밤은 어이 이리 긴고.

록란, 맨발로 손님들곁으로 달려가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를;

가마군아저씨들! 사공할아버지! 추워서 나는 죽겠어요. 추워서 나는 죽겠어요! 나 죽기는 아깝지 않으나 우리 아가씨가 나보다 먼저 돌아가면 어째요?

    공;조카는 가서 잠간만 기다리라. 이 늙은것이 차라리 옷을 벗어 싸가지고 올지언정 우리

 조카를 춥게 놔두리요. 조카는 가서 조금만 기다리라.

(사공) 곧 여러 사람과 함께 솔잎 긁어모으고 마른가지 꺾어서 당장 동쪽과 서쪽에 불을 두무지 피우고 동쪽불에는 두 아가씨가 쪼이고있으며 서쪽불에는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방금 추위를 가시려 할새 누가 알았으리요! 이 두무지 불빛이 사방산천에 비쳐져서 뭇사람의 습격을 받으리라는것을. 가련쿠나! 불앞의 열손가락이 아직 녹지도 않아서.

아아! 사면팔방 여기저기서 사람마다 든 홰불이 번개처럼 산을 덮고 올라오며 깊은 숲 지척에 맹호같은 소리가 진동하여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머리털을 곤두세우더라.

갑자기 누런 두건88)  쓰고 긴칼 짚고 앞에 서서 날래게 올라오는이는 누구인고? 저 살이 찐 사나이가 옛날책에 나오는 산속의 사나이같지 않으면 사내다운 기개는 정녕 옛날 이름있는 장수같구나.

곧바로 서쪽불무지로 올라와서 범같이 호령하며 말하기를

사나이(별감);어떤 시라소니들이 감히 우리의 정결한 절간을 더럽히는가? 너희들이 진정 사실을

 다 말하면 그만이어니와 조금이라도 숨기면 내 칼이 여기 있노라.-

△ 그 사나이뒤에 우르르 따라온 사람들은 모두 물우에서 도적질하는 방탕한 사람들이요 산에서 도적질하는 건달이라, 각기 짧은 방망이를 쥐고 삽시간89)에 가득히 모여서서 하는 잡도리가 매우 좋지 못하더라.

그들은 또한 불빛속에서 울고있는 두 녀자를 얼핏 보고 물밀듯 그곳으로 밀려가서 겹겹이 에워싸고 좋은 말, 궂은말로 떠들면서 여기저기서 으르고 달래더라.

칼을 짚은 사나이가 저쪽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동쪽불무지곁으로 가니 좌우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여 맞으면서 말하기를

    중;저기 앉은 처녀들이 옛날 명산속에 살았다는 미인형제가 아니면 책에 나오는 달밤의 미인이

 아니온지 절색이올시다.

우리 장별감어른은 곧 이 녀자를 받아들여 호화로운 댁에 데려다가 동산90)에 두어두고서 살구꽃 피는 저녁과 매화꽃 피는 새벽에 거문고를 같이 뜯으며 오동잎에 비내리고 참대잎에 눈내릴 때 술잔을 붓게 하여 오래오래 함께 늙으면 그것이 참말 대장부의 쾌히 함즉한 일이요 늘그막의 락이라, 저희들은 실로 어르신네를 위하여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별감(사나이), 그 녀자를 보니 모양새가 서울녀자라 무수한 감회가 뭉게뭉게 일어나서 검에 의지하여 말없이 있더니 이윽고

    감;(노래)

열두다리 청계천에

달도 기운데

말을 타고 님 찾던 일

어제같구나

있는 살림 다 없애고

머리만 희니

어제날의 그 풍류

어데로 갔나

    감;얘, 처녀들아, 너희들은 어느곳 누구네 딸이며 또 무슨 사고, 누구의 매개로 이곳에 왔느냐?

 너희들은 두려워말고 제비나 기러기처럼 정처없이 흘러온 사연과 비맞은 꽃, 바람에 날린 잎처럼 된 원인을 하나도 숨겨두지 말고 자세히 말하여라.

만강홍, 눈물을 거두며 옷매무시를 고치고 겨우 입을 열어 공손히 말하기를;

늙으신 어른께서 이와 같이 은근히 물으시니 죽다가 살아남은 저에게 은총91)이 몹시 깊으며 늙으신 어른께서 가련해하심이 또한 자식같이 하시니 만리타향에 외로운 이 몸이 우러러 의지하는바이올시다. 귀하신분앞에서 감히 거짓이 있으리까.

그러나 세세한 사정은 귀하신 어른께서 듣기 지루해하실가 두렵사와 대충 말씀드려 베푸신 어진 뜻에 보답하겠사오니 바라건대 늙으신 어른께서는 가련히 여기소서.

    감;어디서 온 기러기가 해당화씨를 물어다가 이 세상에 떨어뜨렸는고! 너의 뜻을 방해하지

 않겠노라.

△ 만강홍, 이에 손을 모아쥐고 크게 절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옥소반에 구슬굴리듯 하고 은병에 물방울 떨어지듯 하게 자기 부친의 력사를 먼저 말한다.

만 강 홍;저의 집은 원래 한양성안 자하동 곬이요, 저의 부친은 일찍 리조의 아전으로 다년간 고기

 먹고 비단 입다가 지금부터 십 몇년전에 그만두고 한강가 자그마한 집에서 살고있는 김오위장, 호는 창강조수라고 하는분이로소이다.

    감;아니, 너의 아버지는 곧 나의 이십년 옛친구로다! 너의 부친은 리조92)의 서리우두머리요

 나는 왕실별감93)으로 문밖에 바람 몹시 불어도 상관치 않고 한시절 잘 놀고 잘 먹었더니 나는 운수가 고르지 못하고 명도94)가 기구하여 애매하게 큰 죄를 지어서 자식들과 살림을 모두 억울하게 없애고 뜨내기신세가 되여 이곳에 표류하여 사는지 열 몇해가 되였느니라.

이와 같은 인가없는 외딴섬에서 옛친구의 자식인 너를 볼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하였으리요. 물같이 빠른것이 세월이구나. 네가 너의 부친 무릎밑에서 울고 웃던것이 생각하면 어제같은데 벌써 이같이 컸구나. 아! 네 모습이 네 부친과 아주 비슷하구나. 너의 부친 년세가 나보다 세살 우이라 옛날 풍류95)하던 때의 모습이 아마 이제는 다 없어졌으리라. 지금은 병이나 앓지 않고 여전하시냐?

만강홍, 고개 숙여 땅에 엎드려 절을 한 다음 말하기를;

아이구, 어르신께서는 금총교 다리목 남천가의 일곱번째 배나무집에서 사신 장별감아저씨가 아니십니까!

    감;그렇다, 내가 그래!

만 강 홍;못난 조카가 아이적부터 아버님무릎우에서 아침저녁 장아저씨의 말씀을 늘 들었더니 산과

 물로 둘러싼 수림속에서 지금 뵈오니 참으로 알수 없는것은 사람의 사는 일이올시다.

별감, 칼을 던지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못난 이 아제비는 젊어서부터 어리석어서 본래 운명이 밝은 세상을 버린바 되였더니 하늘이 일시의 가장96)도 허용치 않아서 이런 늙은 몸에 죄악이 산처럼 겹겹이 쌓였으니 다시금 태여나 속죄하여야 마땅하거늘 또 그렇게 하지 않고 철창을 깨고 달아나서 이런 심히 변한 신세를 만들었으니 이곳의 이런 생활이 어울리거니와 너, 어린 조카는 정결하고 정숙한 덕성과 유순한 품의97)로서 왕실의 큰 량반을 맞거나 그렇지 않으면 귀한 집 어진이에게 시집갈 운명이어늘 이렇게 오게 된것이 무슨 일인고. 이것은 참으로 꿈에도 있을수 없는 일이요 생각할래야 생각할수 없는 일이로다.

△ 만강홍 또한 어머님을 여읜 후 광나루우에 묘를 쓰고 가을성묘를 하고서 광나루 물우에서 홀연히 풍파를 만나 어제 저녁 바다우와 산속의 별세계에 오게 된 사실을 세세히 다 말하니

별감, 역시 눈물을 떨구다가 더욱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린 조카는 몸을 스스로 돌보아서 상심하지 말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초년고생은 후년의 락이라 하였으니 옛날부터 이름내고 큰공 세운 인물들은 남자든 녀자든 물론하고 비상한 력사를 다 겪은 다음에야 마침내 큰 영예를 획득하였느니라.

지금 우리의 어진 조카는 생기기를 꽃같고 달같아서 결코 이 속세98)의 인물이 아니라 예로부터 이르기를 가인은 그 절개를 온전히 지키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만약 좋은 비단속에 묻힌 생활을 하여 편하고 한가한것을 일삼으며 안일을 락으로 삼으면 못쓸 욕망이 반드시 생길지라 못쓸 욕망이 한번 생기면 재앙이 머리를 쳐드나니 생각컨대 하늘이 어진 조카에게 이런 험난을 시험함이 너를 사랑하는 취지가 아니겠는가.

또한 이 아저씨가 여기 있으니 깊은 산속에서는 울리는 발소리도 오히려 기쁘거든 하물며 이런 간절한 상봉이겠는가!

결코 상심하지 말라.(별감이 또 만강홍에게 말하기를) 곁에 있는 녀자는 어떤 녀자냐?

만 강 홍;우리 집 심부름하는 아이인 록란이올시다.

    감;아니, 춘섬로파가 낳은 아이인가?

만 강 홍;바로 그렇습니다.

    감;저기서 불을 쪼이는이는 어떤 남자들인가?

만 강 홍;저 흰 두건 쓴 머리 벗어진 할아버지는 광나루의 늙은 사공이요, 저 패랭이 쓴 네사람들은

 우리 집 행랑아범이고 저 푸른옷 입고 머리땋은 남자는 성명이 누군지 알수 없는 손님이올시다.

    감;이왕 이렇게 되였으니 더 말할것없이 모두 내려가는게 좋겠다.

만 강 홍;말씀을 들으니 아저씨께서 몸을 피하셔서 이곳에 와서 계시는지라 옛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내가 궁한것도 용납치 못하겠거늘 내 자손을 구할 겨를이 있겠는가고 하였으니 꼭 열두사람인 우리들을 수용할만 하겠습니까?

    감;환난과 질병과 넘어진 사람을 서로 구하는것은 사람의 떳떳한 감정이라, 우리들이 다같이

 한양사람으로서 이런 하늘끝의 땅우에 표박하게 되였으니 사람이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하겠는가. 여기에 우리 집이 있으니 추우면 같이 춥고 더워도 같이 더우며 나에게 량식이 있으니 밥이면 밥을 먹고 죽이면 같이 죽을 먹어서 며칠간 바람새를 보다가 다행히 하늘바람이 한자리 잘 불어서 살아서 고향산천에 돌아가면 이것은 실로 일생의 신기한 력사요 아마 오래오래 좋은 이야기거리가 되리라.

△ 모였던 군중이 만강홍과 록란을 둘러싸고 장별감을 따라 산을 내려가더라.

만강홍, 전처럼 림시로 만든 가마우에 누워서 머리를 돌려 살펴보니 푸른 갈대, 꽃핀 나무가 쭉 펼쳐진데에 다만 홰불이 별빛처럼 번쩍이며 구름속에 달도 숨은 강의 남북쪽에 다만 다듬이소리만이 바람결에 처량히 들려오더라.

저 산우의 절간 마당에 있어서는 백번을 생각하여도 살길이 바이 없어 심화가 불같이 일어나 서리기운이 발끝을 찌르고 락엽이 귀밑머리를 스쳐도 도무지 추운줄 모르더니 장별감을 한번 만난 이후로는 살길이 좀 트이고 심화가 약간 가라앉아서 그런지 점점 몸에 추위가 드는것을 느끼고 사지가 곧아올라오더라.

만강홍, 가만히 혼자말로;

내가 지금 장별감댁으로 곧 가기만 하면 반드시 나를 따뜻한 구들목에 깊이깊이 뉘이고 두터운 이불을 겹겹이 덮어줄것이니 오늘 저녁은 내가 편안히 한잠 쉬리라. 여기서 장별감댁이 이제 얼마쯤 남았는고. 한걸음에 날아가지 못하는것이 한이로다.

(노래-만강홍)

흙탕길 지나가니

모래길이요

한밤중에 걷는 이길

멀기도 하다

단풍들고 달꽃이

우거졌으니

내가 가는 그 집은

어디 있을가 

△ 가는 마음이 일각을 재촉하여 백판교99)앞쪽에서 개소리만 컹컹해도 저기는 정녕 장별감집이어니 하며 사철나무 울타리곁에서 풍경소리만 뎅그랑거려도 장별감집이 정녕 저기거니, 이같이 하기를 한 스무나문곳 하고서 또 대여섯집 하였으되 가야 할 곳은 소식이 감감하고 산은 갈수록 깊고 물은 갈수록 더하도다.

만 강 홍;(노래)

머리 들어 서울쪽을

바라보오니

물길은 끊어지고

산은 막혔네

늦가을 강기슭에

푸른 갈대라

못가에서 노래하던

그때와 달라

국화꽃 여기에선

볼수 없어라

말이 없이 모래밭

밟고 섰으니

흐르는 눈물은

삼대이런가

길고긴 저 노을에

수심비꼈다

길고긴 밤 헤매는 곳

어느메인고

하늘은 저기저기

예대로인데

△ 한참 달려가는 사이에 먼먼곳에서 한둘의 홰불이 번득이고 마주오면서 분분하게 말하기를

    리;장할아버님은 편안히 돌아오십니까? 저희들이 산속 절간에 불빛이 인것을 보고 숨가삐

 달려오다가 마침 저녁썰물이 이미 져서 배를 건너지 못하고 다음조수에 건너와서 주막집 로파에게서 들으니 장할아버님께서 이미 불을 끄러 산으로 가셨습디다. 저희들이 따르자 해도 이미 미치지 못하겠고 불도 이미 꺼졌기에 여기서 기다리오니 할아버님은 용서하소서.

△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들으니 횡설수설해서 모두 옛말에 나오는 수수께끼같은 단지속 세상에서 나온 사람 같더라.

별감, 칼을 비끼고 큰소리로 말하기를;

섬놈들의 심장은 본래 이런가! 너희들은 다만 술마실 시간은 있고 위급한것을 구할 겨를은 없는가. 너희들 같은 오랑캐새끼를 결단을 내지 않으면 다른 좋은 사람에게 물들가 두렵다.

△ 하고는 한사람을 꽁꽁 결박하고 또 한사람을 마구 차니 판세가 매우 좋지 못하더라. 그러자 무수한 사나이들이 개미떼처럼 달려들어 서로 끌어안더라.

별감, 더욱 큰소리로 말하기를;

너희들은 모두 섬놈 오랑캐새끼라 다만 너희들의 동류라 해서 사랑하여 법을 어기고 살리려는가?

△ 그중 기골이 헌헌하고100) 목소리가 큰 사나이가 버럭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성 낸 사나이;너의 입이 정말 오랑캐새끼의 입이요 네가 하는짓이야말로 도적놈의 본색이다.

 네 마음에 조그마한 불만이라도 있으면 곧 섬놈, 섬놈 하며 오랑캐새끼, 오랑캐새끼 하니 섬놈은 우리의 이름이라 규탄할것이 못되거니와 오랑캐새끼란 그 말은 무엇때문에 하는가. 너에게 반점의 인심이라도 있다면 조용히 한번 생각해보아라. 네 본시 죄를 지은자로써 이곳에 표류한데 우리 섬사람의 무던한 마음, 어진 인정이 아니더라면 너는 반드시 굶어죽고 얼어죽었을것이요 또 네가 여기 와서는 하나도 좋은 일은 한것 없고 다만 어질고 착한 백성을 시켜서 도적질하게 하고 겁탈하게 하고 떼를 지어 남의 짐을 빼앗아서는 공평치 못하게 나누면서 제 혼자 리속을 채우기만 일쑤이니 우리 섬사람의 의기가 아니면 너는 이미 맞아죽고 밟혀죽었을것이어늘 너는 우리 섬사람을 은인으로 삼을 대신 원쑤로 삼아서 공연히 사람을 개패듯 하며 심상하고 어줍잖은 일에도 사람을 파리잡듯 하니 이런 악한 도적은 제때에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섬에 범을 길러 우환을 만들것이어늘 항차 지금 그들 동류가 다소 늘었으니 범에 날개가 돋친것이라고 말할수 있는지라 지금 우리 만장군중101)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이때를 놓치지 말고 이 범의 새끼를 잡으라!

△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군중, 목소리를 모아 말하기를;

리존위102)의 말씀이 우리 의사에 진정 맞습니다.-

△ 아! 삽시간에 장내의 정경이 홀연히 바람불고 물밀듯 변하여 이 주먹 저 발길이 우박처럼 내려오며 갑자기 장별감을 큰 삼바줄로 꽁꽁 묶어서 묵은 버드나무 높은 가지에 꺼꾸로 매여달았도다.

리존위라는 사람이 어깨를 으쓱 솟구치고 기세를 올려 두손을 내저으면서 군중을 향하여 말하기를;

저 한양서 온 사내 여섯은 여기 묶어놓고 녀자 둘은 이 군중속에 장가 못 간 사람이거나 또는 홀아비가 있거든 하나씩 가지고 가라.

△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앞으로 나선 흰 수건 두른 젊은 남자가 손벽치며 말하기를

흰 수건 남자;홀아비가 여기 있노라.

존위, 만강홍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장삼랑은 저것을…

△ 다음으로 나온 흰 수건에 수염이 긴 사나이가 머리를 저으며 말하기를

그 사나이;장가 못 간자인 내가 여기 있노라.

존위, 록란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김이동은 저것, 저것을

△ 가련쿠나 어여쁜 록란과 만강홍이 궁벽한 시골에 서로 떨어져서 필경 물긷고 방아찧는 신세되도다.

 

 

15 편

 

△ 닭소리는 산안팎에 처량히 울리고 서리내린 다리에서 말그림자는 강 남북으로 울음우는데 만리길 동행이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서로 송별하였도다.

장삼랑은 만강홍을 말에 싣고 채찍쳐서 강웃쪽으로 갔으며 김이동은 록란을 업고 한걸음 두걸음 산밖으로 달려가니   가마군은 풀우거진 땅우에 묶여서 노한 눈으로 보고있을뿐 이요.

사공할아버지는 큰 버드나무밑에 달아매여서 뻘건 혀를 쭉 빼물고있을따름이요.

그중 리총각 한사람은 리존위가 풍류객의 모습이라 하여 데리고가서 허물어진 집자리에 앉히고서 은근히 그 성명을 묻더라.

총각이 그 광경을 보니 하늘과 땅아! 사나운 바다, 험한 산에 구름되고 비되며 서러운 비, 처량한 달에 소리되고 그림자되여 만리길 서로 따르며 한시각도 떠나지 않던 백년업원, 평생의 좋은 인연을 일일이 남이 빼앗아가는것을 보고 범의 대가리와 호랑이꼬리에 앉아서 사랑하는 사람이 남북으로 끌려가는것을 눈으로 보내자니 눈에 불은 쌍줄로 나고 가슴의 피는 부글부글 끓도다. 이때 이 사람은 죽은 부모형제가 되살아온대도 기쁘지 않고 존엄한 임금이 친히 묻더라도 영예로울것 없겠거든 하물며 원쑤요 도적인 리존위가 지껄이는 되잖은 소리가 어이 귀에 들어오리요.

당장 쳐죽여서 하늘땅에 사무친 분한을 씻으려다가 다시 생각하니 광막한 이 천지에 이 한목숨이 살아있음이 참으로 우연이 아니로다. 지금의 나는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새파란 젊은 소년이라. 때가 오고 운이 트이면 범을 치고 룡도 잡으며 산을 끼고 바다도 뛰여넘으며 해서 안되는 일이 없고 이루지 못할 명성이 없을것을 사람의 자식으로 태여나서 효성을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백성이 되여서 의리를 다하지 못하고 크디큰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이 몸과 홑 백년후에도 태여나기 어려운 이 목숨이 공연히 인연없는 녀자를 그리워한것으로 해서 이름없는 사나이로 원통하게 죽으면 대장부의 슬기롭지 못하고 용맹치 못함이 이보다 심한것이 없으리라. 옛날에 큰뜻 품은 어떤 남아는 분노를 참고 시정배의 바지가랭이밑으로 기여나갔고 어떤 뜻있는 선생은 돼지똥 널린 가운데 우정 누워있었으니 그것이 어찌 옛일이기만 하리요. 앞날에 좋은 일 있기를 위하여 부득이하도다.

이에 분기를 삼키고 소리를 낮추고 온공하게 문답에 응하더라.

    위;여보 총각,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요?

    각;저의 천한 이름은 사남이라고 부르고 천한 성은 당신의 성과 같은 글자올시다.

    위;아! 진정 이와 같을진대 그대의 본관은 어느 고을이라고 하는가?

    남;저의 본관은 본래 완산이요 현재 있는 곳은 한양성밖 삼호강어구올시다.

    위;아! 내 본관이 또한 완산이라 하도다. 같은 성,  같은 본관은 백대의 친척이라 하니 뜻밖에

 오늘 저녁 친척을 서로 만나보는구만. 이제 항렬103)은 물을것없이 나이많은자가 형이 되며 어린자가 동생되여 서로 의탁하고 지냄이 자네의 마음에 어떠하오?

    남;이왕 우리 귀한 친척이 표박해온 이 하찮은 일가를 천하다 않으시고 이같이 각별한 사랑을

 주시니 감히 시중드는 종노릇도 마다 않고 만분의 일이라도 은혜에 보답하리다.

    위;어진 동생은 더 딴말 말고 손잡고 같이 지내면 되리라. 여기서 우리 집이 산길로 사오리로다.

△ 그날 저녁으로 말을 타고 같이 가더라.

 

 

16 편

 

    남;(노래)

물길 끊긴 저 하늘에

산은 막혀도

인생은 어디 가나

사람 사는 곳

큰뜻이야 조금도

버리지 말자

예로부터 이름난이

고생 겪었다.

△ 사남이 만강홍과 록란을 한번 리별한 이후는 번거롭던 옛 생각과 넓고 크던 풍정104)을 딱 잘라 무릎밑에 접어넣고 리존위의 집에서 살면서 낮인즉 밭에 물을 대며 꽃가꾸고 밤인즉 칼집 쓰다듬으며 스스로 격려하여 지루한 세월을 보내더라.

이때는 보리가 누렇고 준치가 나는 시절이라 주인집 사나이는 앞강에 고기잡으러 나가고 녀자는 모두 밭에 보리가을하러 나가서 한사람도 없고 다만 사남이만 남아서 온 집안의 꽃과 과일나무를 보살피고있었다.

찌는듯 한 초여름의 불볕이 수심겨운 사람을 번민케 할새 대문을 잠그고 후원뒤로 깊숙이 들어가니 여기에 몇간 초당이 있고 정자곁에 큰 홰나무그늘이 있으니 그 선선하기가 물같아서 참으로 한숨 자기 좋더라. 유유한 고향에로의 꿈길이 삼호강어구에 이르지 못하여

아아, 모기소리같은 원한의 소리, 애달픈 소리가 귀뿌리에 처량히 울려온다.

사남이 머리를 들고 들으니 나무끝에서 들려오는것 같더니 다시 들으니 풀속에서 들려오는것 같기도 하여 어느곳인지 짚지 못하겠다.

사남,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이게 무슨 소리야. 온 집안에 정녕 한사람도 없는데 귀신이 우는 소린가, 이 소리가 무슨 소릴가?

△ 갑자기 대밭, 솔밭이 조용해지니 처량한 그 소리가 정녕 저 정자에서 나도다.

사남이가 곧 몸을 일으켜 정자우에 뛰여올라가니 서쪽 한간은 온 마루가 제비똥으로 찼고 동쪽 한간은 나무판자로 만든 문을 굳게 잠궈서 열래야 열수가 없도다.

사남, 문을 두들기며 말하기를;

이안에 어떤 사람이 살고있는가?

△ 아! 그안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리;문을 두드리는분은 한양서 온분이 아닙니까?…

△ 그 말소리를 조용히 들어보니 녀자말소리 같다.

사남, 이어 말하기를;

어떻게 아시오? 나는 한양서 온 사람이요.

녀자소리;우리들도 다같이 한양성에서 자란지라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알았소.

△ 사남, 드디여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하나는 턱을 고이고 앉아 울고있고 하나는 아이를 무릎우에 안아 눕혀 재우고있으니 모양새가 귀한 집 딸일러라. 그 모양을 보니 자기 신세에 대한 슬픈 생각이 점점 일어나서 땅이 꺼질듯 한 탄식소리로 말하기를

   남;제가 당신들 두 아가씨를 가만히 보니 모두 귀한 집 따님이라 무슨 사유로 이런 섬사람의

 집안에 앉아있소? 그 래력을 듣고싶노라.

△ 아기 안은 부인 눈물을 참노라. 이윽하여 겨우 말하기를

    인;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우리 친정집 아버지가 현재 강화군수라 수리명절을

 맞아서 첫째로는 우리 아버님께 문안드리러 왔고, 둘째로는 고을 남쪽에 삼랑산성이 있고 성안에 옛절이 있으니 맑은 샘, 푸른 빛과 무성한 숲, 신기한 돌이 하루의 더위를 가실만 한지라 어제 새로 두점에 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 교하강어구로 내려가니 해가 이미 지고 바람과 물결이 서로 마주쳐서 사공이 배를 물 중간에 세우고있을새 난데없는 쪽배 하나가 살같이 다가오며 우리 사공 보고 어디 배이며 어디 가느냐 하더이다. 누가 그 배가 해적선인줄 알았으리요. 그 도적이 필경105) 우리 배안을 수색하여 우리의 옷과 노리개106)들을 빼앗고 도리여 우리가 얼굴이 곱다 하여 우리에게 차마 참기 어려운 일을 강요하며 우리에게 불측한 욕을 보이려 협박하다가 끝내 욕망을 이루지 못하고 드디여 우리를 꽁꽁 묶어서 돛대머리에 매여두니 그 다음일은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도시 알지 못할러니 오늘 늦게야 눈을 뜨니 이 아이는 지금처럼 무릎우에서 앙앙 울고 내 동생은 여전히 내곁에서 훌쩍거립니다.

아아, 하늘아 땅아! 이것이 어떤 인간이며 또 이것이 누구의 집이뇨. 더 말 말고 이 몸이 다만 한시라도 빨리 죽어 귀신이 되여 산해의 도적을 모두 몰살시켜서 우리의 원한을 풀고 우리의 원쑤를 갚겠거늘 지금까지 이 피도 아니 마른 젖먹이가 가련하여 차마 그리 못하였도다. 어미는 죽어도 죽는줄 알거니와 이거야 어찌 알랴.

△ 하니 처량한 그 말은 사람이 차마 듣지 못하리라.

사남, 척연히107) 말하기를;

귀하신 녀인들은 분하고 욕됨을 참고 잠간만 기다리시라. 내가 잠간 밖에 갔다 돌아오리라.

△ 하고 부엌에 달려가서 자기의 점심거리인 식은 보리밥 한그릇 하고 또 과실밭에 가서 덜익은 능금과 반익은 앵두를 줌줌이 반소매나 되게 따서 갇혀있는 사람에게 은근히 던져주고 위로하여 말하기를

    남;두분 녀인은 몸을 스스로 돌보아서 이 밥 먹고 이  과실 자시고 황혼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라.

 제가 주인집 사람이 돌아오는것을 기다려 한가닥 살길을 열어주리라.

    인;(노래)

침침한 베개맡에

잠이 드니

황혼은 어느덧

가오누나

꿈결속의 그 자취

가시지 않고

석류꽃 덮인 곳에

문은 잠겼네

멀리 보인 저 산의

두견새소리

고향길 갈수 없는

이 넋이런가

나의 원한 세세히

하소하려니

지는 달 처량한데

뉘께 말하랴

부인, 사남이 위로하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

        (내면독백)

저 사람의 경쾌하고 청아한 언어는 정녕 한양태생이요 저 사람의 자선하는 마음씨는 또한 도적놈의 무리가 아니라 무슨 관계로 이런 범의 굴에 살고있을가. 혹 공명정대하신 하늘이 나의 원통함을 내려다보고 나의 어려움을 민망히 여기사 신선을 보내여 구하러 온것일가?

△ 그 보리밥과 능금은 한곁에 밀어두고 황혼의 시각이 다가오기만 고대하도다.

사남, 여전히 홰나무아래에 돌아와서 반나절의 더운 날을 지내고 주인이 돌아와서 문을 열것을 생각하며 기다리더라.

 

 

17 편

 

△ 해는 져서 강어구가 붉게 물들자 바지가랭이를 걷어붙인 령감은 한손에 고기꿰미를 들고 다른 손에 게를 쥐고, 달빛이 들어서 버들가지가 시원해지자 사부랑사부랑거리면서 푸른 치마 입은이는 반광주리에 보리쌀을, 반광주리에 산살구를 담아들고 쌍을 지어 돌아오도다.

주인로파, 사남을 보고 은근히 말하기를;

우리 도령님이 긴긴날 홀로 집에 있어서 얼마나 심심하였겠어요. 내가 좋은 소식 하나 조용히 도령님께 이야기해드리리다.

사남,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못난놈의 주제에 무슨 좋은 소식이 있겠어요.

주인령감;여보게 동생, 오늘 집안에 찾아온 사람이 없었던가?

    남;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다만 두 부인과 한 젖먹이가 초당속에서 울고있는것을 보았

을뿐입니다.

주인령감, 웃으며 말하기를;

동생은 어떻게 보았는가? 이런 일은 자네가 알바 아니네.

   남;그 부인을 한시바삐 구해내여오고싶었으나 주인이 노하실가 두려워…

△ 홀로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하기를

    남;(노래)

산길 물길 다 막힌

외딴 이곳에

문은 굳게 닫겨서

적막하여라

사람의 울음이

꽃이라 하면

그 원한은 무엇에

비기오리까

피 토하며 울고있는

두견새라오

△ 그 음조가 절절하고 처량하여 산중의 초목은 꽃도 풀도 모두 울고있으며 짐승도 바위도 역시 고개 숙여 눈물 흘리거늘 항차 사람이야 도적놈의 창자를 가졌던들 어찌 슬픈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리요.

주인령감, 키를 깔고 오동나무아래에 앉아서 달을 보며 더위를 가시다가 그 노래소리를 듣고 홀연히 느끼고 깨달은듯 사남을 불러 말하기를;

주인령감;동생! 거문고를 그만 타고 나와 함께 후원의 정자로 가세. 나에게 할 일이 있네.

 

 

18 편

 

△ 사남, 그 부인을 구출하여 동산의 별당에 머물게 하고 곧바로 주인에게 말하기를

   남;가없는 천지에 한정있는 이 몸이라, 영웅호걸도  다 죽으니 누구라 아니 죽으며 부귀한

 사람이든 비천한 사람이든 다 살아가니 누구라 살지 않으리오. 하지마는 죽었다 해도 죽은것이 못되고 살아있다 하여도 산것 같지 않습니다. 죽었다 하여도 말을 하니 죽은것이 못되고 살았다 하여도 수치가 있어 살았다고 할수 없습니다. 대장부의 할 일은 원래 영웅호걸이 되는것이라 비록 혹시 시운108)이 고르지 못하여 영웅호걸이 되여 천하의 대중을 살리지는 못하겠거든 베황관109) 쓰고 도롱이 입고 오직 이름없는 백성이 되여 태평세월을 노래함이 족하고 그렇지 못하거든 산에 들어가서 념불이나 하며 물 마시면서 신선이나 되여 이 세상의 괴로운 삶을 떠남이 족하고 그것도 못하겠거든 쪽배 타고 달그림자속에 낚시대 하나 드리우는것이 족하고 깊은 산속에서 몇이랑 약초밭이나 가꾸면 족한지라, 이런 인물은 죽어도 소리가 없으나 살아서도 수치가 없으니 이르기를 초탈110)한 사람이라 하오. 백년을 우리가 산들 얼마를 살며 백년을 우리가 먹은들 얼마를 먹는다고 온 땅의 황금을 줏느니 안 줏느니 하며, 자기 집 미인은 버리기만 하고 차마 하지 못할짓으로 남을 잡고 차마 그러지 못할 욕을 남에게 보여서 스스로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니 이런 인물은 오히려 나지 않는것만 같지 못하도다. 이런자를 궁한 인간이라 이르니 궁한 인간은 천지의 귀신이 단연코 용서하지 않으며 형제친척이 또한 스스로 리별하지요.

빌건대 형님은 이왕 영웅호걸이 못되거든 바라건대 초탈한 인물이 되여 천하의 궁한 사람으로 하여금 다 착한 사람이 되게 하면 형님은 비록 영웅호걸되기를 사양하였으나 천하의 백성들이 두손으로 받들리다. 아! 영웅호걸이 별사람이 아니라 천하의 백성으로 하여금 궁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이올시다.

주인령감, 묵묵히 생각하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칼을 들어 맹세하여 이르기를;

이 칼을 어질지 않고 의롭지 않은데 다시 쓴다면 나는 마땅히 이것으로 죽으리라.

△ 이날 밤에 그의 무리를 다 모아서 큰마당에 쭉 세우고 칼을 짚고 군중에게 맹세하여 말하기를

주인령감;우리들은 시운이 많이 어그러졌고 또 이 세상에 한낱 몸뚱아리로 태여나서 이왕 영웅호걸이

 못되며 또 좋은 세상의 착한 백성이 못되고 물고기나 새우 따위로 이웃을 삼으며 남의것을 겁탈함을 일로 삼아서 의리에 어긋나고 어질지 못한짓 한것이 지금껏 여러해로다. 지금에 와서 깨달아보니 온 천하에 무슨 일을 못하고 온 세상에 무엇을 못 먹어서 사람죽이기를 수로 삼으며 남의것을 빼앗아서 먹으리요. 너희들은 지금부터 시작해서 종전의 나쁜 생각을 하지 말고 일체 새로운 일에 종사하여 인의111)가 있는 사람으로 좋이 될지어다. 만약 그것을 달가와하지 않는자 있으면 내 칼이 무디지 않았노라.

△ 이어 술을 사고 소 잡고서 온 집안살림을 다 헤치니 모였던 뭇사나이들이 감격의 눈물 머금고 돌아가더라.

그후로 리존위는 사남과 더불어 날로 더 친숙하여 동기형제와 꼭같고 리존위부인도 역시 남편의 어진 일을 따랐으며 섬의 남녀는 고기잡고 베짜기에 힘쓰고 어질고 의로운것을 서로 숭상하여 범의 굴이 태평세상이 되더라.

 

 

19 편

 

△ 나그네는 가고 돌아오지 않으며 세월은 오고 또 와서 이미 몇번이나 석류꽃 피였고 또 가을의 누런 국화꽃 맞았더라.

어느 하루밤 날아가는 기러기는 달밤에 처량히 울고 가을벌레는 풀섶에서 울어 나그네가 잠들지 못할 때로다.

사남, 고향생각이 참으로 간절하여 깊은 밤 잠들길 없어 칼을 쓰다듬으면서 장가112)를 부르기를;

  (장가)

기러기는 훨훨

남으로 갈제

사람은 어이하여

가지 못하나

나무잎은 떨어져도

뿌리에 지는데

사람은 제 고향에

어이 못 가나

지금에도 또다시

못 간다며는

어느때가 되여야

간단 말인가

리존위, 그 가곡을 조용히 듣고 몹시 슬프고 가련한 생각이 들어 사남을 불러서 척연히 말하기를;

못난 이 형이 동생의 가곡113)을 들으니 돌아갈 생각이 정말 간절한 모양이라 나그네가 고향에 돌아가고저 생각하는것은 인간세상의 떳떳한 인정이라 내가 어이 말리겠는가. 못난 이 형이 동생을 지금까지 머물게 한것은 동생이 나이찼고 이미 강을 건넌 사나이라 장가들 시기를 놓친지 몇해 됐으니 못난 이 형이 좋은 짝을 얻어서 같이 돌려보내려 함이더니 이런 궁벽한 섬에 그런 사람이 없는지라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노라. 이왕 이렇게 될줄 알았은들 장삼랑이 실어갔고 김이동이 업어간 두 녀자중에서 고를것을…

존위부인, 곁에 있다가 말하기를;

, 그 녀자! 참 좋아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위;동생은 지체있는 집안이요 멋있는 사나이라, 온 천하의 훌륭한 처녀중에 하늘이 좋은

 인연을 정한데가 반드시 있을것이거늘 어찌 시골집 녀자로 짝을 삼겠는가. 그 녀자들은 모두 락양114)사람이라 설사 뜻이 가하더라도 남의것을 빼앗아 인연을 맺으면 어진짓이 아니요 남을 유인하여 절개를 헐면 의리가 아니니 동생의 어질고 의로움으로써 차마 할수 있겠는가.

    인;이 몸이 늙어서 그만 깜빡 잊은 일이 있어요. 도령님! 지난해 오월달 보리가을때에 내가

 밭에 나갔더니 그때 룡연 서쪽기슭의 묵은 콩밭에 두 처녀아이가 있어서 머리를 서로 껴안고 우니 하나는 조금 작습디다. 갑자기 큰 처녀가 룡연으로 쫓아가면 작은 처녀가 말리고 작은 처녀가 룡연으로 쫓아가면 큰 처녀가 그러안으면서 서로 엇바꿔 이렇게 하기를 대일곱번나마 하더군요.

내가 마음에 몹시 놀라서 곧 달려가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들이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자기 집의 곡절많은 긴 력사라 뼈골에 사무친 원한을 한바탕 말하더군요. 그 력사를 가만히 들어보니 곧 장씨집과 김씨집에 끌려간 녀자였어요.

내가 또 묻기를 너희들이 이왕 서울서 온 사람이면 혹시 삼호강가의 리총각을 기억하는가 하니 그들이 내 말을 듣고 미친듯 취한듯 말하기를 《부인께서는 그 총각을 어떻게 아시며 이왕 아신다면 그 총각이 지금 어디에 살고있습니까?》

내가 말하기를 그 총각은 우리 집 주인과 같은 성씨라 현재 우리 집에서 서로 의지하고 사노라. 그 작은 녀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인생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서로 만날 날이 있으리라. 그 총각은 곧 우리 아가씨의 약혼한 장부요 또 저의 장래의 상전이라. 귀신이 몹시 장난을 피워서 만리길 동행을 하루아침에 생리별하고 거처와 생사를 들을길 없더니 이제 로부인을 뵙고 소식을 들으니… 우리가 그때 리별한이래로 하나는 장가네 집 부엌에 가서 떨어지고 하나는 김가네 우물우에 가서 남아있게 되였는데 고통과 치욕을 참고 참으며 아직 죽지 않고 지금껏 절개를 지켜온것은 오직 그 총각을 한번 보기 위함이올시다.》

내가 또 말하기를 그대들이 남의 집에 간지 지금 팔년나마 된지라 무슨 방법으로 온전한 몸으로 오늘까지 이를수 있으리요. 그대의 말이 리치에 당치않도다. 그 작은 처녀가 말하기를 《아이구 푸른 하늘이 우에 있고 천지신명이 뒤에 있는데 우리들이 어찌 생판으로 거짓말을 로부인께 감히 말하겠습니까? 지금 그 일이 구구하여 다시금 한바탕 호소하리라. 우리들이 지금부터 5년전에는 몸에 상제의 옷을 입은지라, 그에 빙자하여 절개를 보전하였으며 상복을 벗은이래로는 면할길 없을새 음식을 먹지 않고 병을 앓는다 하여 또한 지루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슬프다. 누가 그들이 바다도적인줄이야 알았으리요. 하루저녁은 두 사나이가 그 무리를 불러모아서 소곤소곤 말을 하더니 아침조수때 나가서 지금껏 5년동안 돌아오지 않더니 하루이틀전에 늙은 도적떼들이 그 새끼들이 물에 빠져죽은것을 듣고 우리를 사려고 돈을 가지고 와서 흥정하였어요. 아! 하늘땅이여, 소녀는 본래 천한 몸이라도 기가 막혀 죽겠고 원통해 죽겠거던 우리 아가씨는 그런 청청한 집안이며 그런 깨끗한 몸으로 어찌 이런 짐승같은짓을 참을수 있으리요. 그래서 여기 길가에서 서로 울고있어요.》

내가 좋은 말로 위로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또 어떤 고생을 맛보드래도 오늘의 이 마음을 털끝만치도 변치 않으면 반드시 소원을 이룰 날이 있으려니 고이 가서 자중하라. 돌아보는 사이에 아니 글쎄 그들이 똑같이 머리깎고 신각씨 되여 머리카락을 들고 나를 보며 말하기를 《우리가 절개를 보전한것을 이 머리털로 증명하노라》 하고 함께 산으로 올라갔으니 생각컨대 어언사로 갔으리라.

내가 집에 와서 도령님께 곧 말하려고 했으나 큰뜻을 사그러뜨릴가 저어하여 지금까지 말을 못하였소.

(부인이 또한 존위를 보고 말하기를) 곧 어언사에 가서 그들이 있는가를 찾아보시구려.

△ 존위, 그밤으로 한편은 사람을 장가네 마을에 보내서 장삼랑과 김이동이 살았는가 죽었는가를 알아보게 하고 다른편으로는 직접 어언사에 가서 찾아보니 과연 두사람의 신각씨가 있어 파리하게 앉아서 념불을 할세 유진115)이 온 낯에 돋았더라. 보고 곧 돌아와서 장가촌에 갔다온 사람의 말 들으니 그들의 력사는 일일이 부인이 전하는바와 맞더라.

대단히 기뻐서 곧 사남에게 그의 뜻을 물으니

사남은 가부간 한마디도 없이 다만 《형님생각대로 하시오. 형님생각대로요.》라고만 할뿐이로다.

존위가 그날 밤으로 잔치차비를 하고 날이 새자 어언사에 가서 김씨댁 처녀와 리씨총각이 부처앞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으니 관중이여! 만리길 산과 바다에 표박하면서 서로 따랐으며 십년간의 파란곡절에 시달린 여생이 또다시 오늘 이 저녁을 맞았도다.

 

 

20 편

 

△ 리씨총각과 김씨처녀의 이미 깨여졌던 소원과 이지러졌던 인연은 일일이 꽃피고 달 둥글었거니와 저 가련한 록란은 홀로 초조하여 외로운 란새, 짝을 잃은 원앙새모양 같아서 곁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프게 만들도다.

리랑군, 추연히 부인을 보고 하는 말이;

저 록란은 비록 천한 바닥에서 태여난 몸이나 정숙한 그 행실과 현순116)한 그 덕행은 지체있는 집에 가서 구하더라도 구하기 어려운 사람인지라. 항차 우리들과 같이 이 만리길을 서로 따라왔으며 십년을 버리지 아니한 정의가 있으니 바라건대 부인은 풍파만났던 일을 깊이 생각하여 시기하지 않는 덕행을 베풀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 부인, 그의 뜻을 알고 그날로 곧 록란과의 주인과 심부름군사이의 옛 신분을 타파하고 자신이 친히 비녀를 꽂아주어서 남편의 시중을 나누어 받드니 삼위일체불의 꿈이 이제 와서야 효험을 나타내더라.

 

 

21 편

 

△ 리씨랑군이 오른편에 김씨부인을 앉히고 왼편에 록란아씨를 앉히고 기쁨에 넘쳐 말하기를

리씨랑군;우리 집 여러분들! 우리들이 곧 전생의 업원이 변해서 이 세상에서 사랑의 인연이 맺어진것을

 알수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세상천하에 뛰여난 남자와 아름다운 녀인이 어디에 그대같은 사람이 없고 어디에 나같은게 없어서 천신만고를 다 겪고서야 세사람이 함께 만난 오늘이 있겠는가.

! 바다길 간 길손이 십년을 어언 이 섬에서 살았도다. 월조117)가 남쪽고향을 그리워하고 대말118)이 북쪽고향을 향해 우나니 사람이 어이 돌아가지 않으랴, 사람이 어이 돌아가지 않으랴!

 

△ 봉산자119)가 말하기를 오호해, 어언도는 여러 지리책에서 끝내 찾아보지 못하니 매우 유감스럽도다.

 

〔주 해〕

 

1) 만강홍(滿江紅);작가와 창작년대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못한 극문학작품이다. 다만 작품에 반영된 내용과 일부 생활세부, 언어문체상 특징으로 보아 17세기이후 19세기 후반기까지에 이르는 시기의 시대상을 반영한 중세극문학의 마지막시기에 창작된것으로 볼수 있을것이다.

이 작품이 출판된지는 해방전시기의 일이였으나 연극계와 학계에 발굴소개된것은 전후의 일이였다.

이 작품은 중세극문학특유의 연극용어들로 씌여지고있는 점에서 《동상기》와 류사한데가 있으며 소설식문체로 극작품을 엮어나가고있는 점에서는 신재효가 《3창춘향가》를 다듬은것과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만강홍》은 《동상기》나 《3창춘향가》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 극작품의 문학성을 한층 높이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읽는것으로 그친 희곡의 한계를 벗어날수 없었다.

이 작품은 해방전에 출판되였던 책의 원문에 기초하여 문장을 풀이하고 주해를 주었다.

2) 아전(衙前);중앙관청과 지방 관하에 달린 낮은 신분의 관리들을 통털어 이르던 말. 구실아치.

3) 오위장(五衛將);군사관계의 5개 관청(5위)에서 군사를 거느리는 종2품∼정3품의 장수. 1882년에 없앰. 여기서는 실지 그런 높은 직무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왕이 제 마음에 드는 예술인, 아전 등에게 빈말뿐인 벼슬로 준 오위장이다.

4) 창강조수(滄江釣臾);푸른 강에서 고기낚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5) 절색(絶色);더없이 아주 고운 미인.

6) 생초(生綃);생사로 얇게 짠 사붙이. 천의 한가지.

7) 운향(韻響);시 운률의 울림.

8) 신기(神氣);정신과 기운의 상태.

9) 쇠멸(衰滅);쇠약하여 멸망지경이 됨.

10) 사념(思念);생각과 념원.

11) 여주(蕊枝);일년생 덩굴지는 풀의 한가지.

12) 소복(素服);하얀 옷차림. 여기서는 상제가 입는 흰옷.

13) 반식경(半食頃);한차례의 음식을 먹을만 한 시간의 절반정도 되는 시간.

14) 전생 후생(前生 後生);나기 전 저쪽 세상과 이 세상 다음에 올 세상.

15) 업원(業寃);전생에 지은 죄과로 말미암아 이생에서 받는 고통.

16) 버리시고;여기서는 세상을 버리시고. 즉 죽은것을    말함.

17) 박명(薄命);기박한 운명.

18) 정상(情狀);가엾은 상태.

19) 성묘(省墓);묘를 찾아가 인사함.

20) 재(齋);명복을 빌기 위해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

21) 가사(袈娑);중이 장삼우에 걸쳐입는 진한 자지빛    웃옷.

22) 묘령(妙齡);스물안팎에 한창 피는 나이.

23) 객설(客說);객담. 쓸데 없고 실없는 이야기.

24) 석인(石人);무덤앞에 조각해서 세우는 돌사람.

25) 본관(本貫);집안의 첫 조상이 난 고장. 관향.

26) 완산(完山);전라도 전주.

27) 귀인(貴人);귀하신분.

28) 혐의(嫌疑);꺼리여 싫어함.

29) 격의(隔意);서로 터놓지 아니하는 속마음.

30) 발명(發明);죄나 잘못이 없음을 말하여 밝힘.

31) 소일풍취(消日風趣);마음을 붙이여 심심찮게 시간보내는 멋스러운 풍모와 취미.

32) 봉창(蓬窓);배안의 띠집 창문.

33) 행화(杏花);살구꽃.

34) 두견(杜鵑)새;타향에서 죽은 한사람의 혼이 두견새되여 고향에 가고파하면서 귀촉도 하고 피나게 운다는 옛말이 있다.

35) 화륜(火輪);여기서는 화륜선 즉 기선 또는 화륜차.(기차)

36) 격외(格外);보통의 격식이나 관례를 벗어난 그밖.

37) 재자가인(才子佳人);재주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녀인.

38) 몽상(夢想);현실성이 없는 허황한 생각.

39) 의희(依稀)한;어렴풋이 희미하다.

40) 람기(嵐氣);산속에 생기는 아지랑이같은 기운. 신기루.(바다에서 생기는 아지랑이 기운으로 없는 산이 가까이 있는것처럼 보이는 현상)

41) 방침(方針);방책과 지침.

42) 무생(無生);불교에서 말하는 《불생불멸》. 늙어죽는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 무생의 리치를 배워야 한다고 설교한다. 생기지 않으면 멸망이 없다는 소리이다.

43) 가위(可謂);∼라고 할만 함.

44) 액운(厄運);재난을 당할 운수.

45) 배따라기;배가 떠나갈 때 부르는 어부노래의 하나 또는 배가 떠나는 장면을 형상한 서경악부 열두가지 춤의 하나를 출 때 나중에 부르는 노래.

46) 서리병아리;이른 가을에 깬 병아리. 힘없고 추레하게 된 사람을 비유할 때 서리병아리 같다고 함.

47) 전갈(傳喝);말을 전해주는것.

48) 등한(等閒);어떤 일에 관심이 없거나 무심함.

49) 수병풍(繡屛風);수를 놓아 꾸민 병풍.

50) 삼월 삼짇날;3월 3일의 민속명절.

51) 갑삼팔비단;품질이 도탑고 좋은 비단의 한가지.

52) 단속옷;단속곳. 녀자가 치마아래 바지우에 입는 속옷.

53) 순인치마;순인천으로 지은 치마.

54) 골방;큰방 뒤쪽에 달린 작은 방.

55) 사인교(四人轎);네사람이 메는 가마.

56) 승방(僧房);신중(녀자중)만 있는 절.

57) 시주(施主);절이나 중에게 물건을 베풀어주는것.

58) 불초(不肖);부모만 못함.

59) 발원(發願);(부처에게) 바라고 원함.

60) 배필(配匹);부부가 되는 짝.

61) 신각씨;녀자중.

62) 법당(法堂);부처가 있는 절간의 정면 큰집.

63) 석가산(石假山);못 같은데 돌로써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산모양의 축조물.

64) 후신(後身);다시 태여난 몸.

65) 준수(俊秀);남달리 뛰여남.

66) 징험(徵驗);경험에 기초하여 안다는 뜻. 여기서는 알게 하는 징후.

67) 해몽(解夢);꿈풀이.

68) 상사병(相思病);사랑때문에 병난것.

69) 별방(別房)마마;제2의 안해. 여기서는 첩.

70) 보살(菩薩)부처;부처 다음가는 《성인》.

71) 실언(失言);실수한 말.

72) 권모술수(權謀術數);그때그때의 정황에 따라 변통성있게 둘러맞추는 모략이나 수단.

73) 용렬(庸劣);어리석고 변변치 못함.

74) 시렁;여기서는 물건을 올려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올려놓을수 있게 낮고 자그마하게 맨 요람의 한가지, 또는 요람을 맬 시렁.

75) 설법(說法);불경 해설.

76) 산적(散炙);양념한 고기붙이를 꼬챙이에 꿰여서 구운 음식.

77) 자단향(紫檀香);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큰 나무인 자단으로 만든 향.

78) 굴신(屈身);몸을 굽힘.

79) 삽삽(颯颯);쏴하고 부는 바람이 쌀쌀함.

80) 등대(等待);미리 준비하고 명령을 기다림.

81) 행랑(行廊);대문간에 붙어있는 방, 행랑채. 행랑살이하는 남자하인을 행랑아범이라 함.

82) 속죄(贖罪);저지른 허물이나 죄를 보상함.

83) 인생도처에 청산이 있다(人生到處 有靑山);사람이 사는 어디에 가나 푸른 산은 있다는 말. 어디 가나 사람살만 한 곳이 있다는 뜻.

84) 삼칠(三七);난지 세번째 칠일. 옛 풍속은 아이가 난 후 7일을 한단위로 하여 칠이라 하고 일곱칠이 될 때까지 외부사람이 아이방에 나들지 않게 위생을 지키였다.

85) 자개그릇;조개껍질로 장식한 그릇.

86) 향합(香盒);향을 담아두는 합.(둥글고 납작하며 뚜껑이 있다.)

87) 표박(漂迫);물우에 정처없이 떠돔.

88) 두건(頭巾);베감투. 본래는 상사가 난 집에서 남녀가 쓴다. 여기서는 남자들이 갓대신으로 쓴 머리쓰개.

89) 삽시간(汕時間);눈깜박할 사이.

90) 동산(東山);뒤동산. 큰 집의 울안에 풍치로 만들어놓은 산 또는 자연의 산을 그렇게 리용하는데 대체로 집뒤쪽에 있다.

91) 은총(恩寵);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사랑.

92) 리조(吏曹);봉건중앙행정기관 6개(륙조)가운데서 문관의 선발, 임명, 표창, 사업성적, 고사 등의 일을 맡아보는 관청.

93) 별감(別監);왕궁에 매인 하인의 하나.

94) 명도(命途);운명과 신수.

95) 풍류(風流);풍치있고 멋스럽게 노는것.

96) 가장(家長);한 집안을 거두는 어른.

97) 품의(品儀);품성과 행동거지의 모습.

98) 속세(俗世);불교의 세계가 아닌 이 세상 보통사람들이 사는 속된 세상.

99) 백판교(白板轎);웃설미는 없고 바닥틀만 있는 가마.

100) 헌헌(軒軒)하다;끼끗하고 헌거롭다.

101) 만장군중(滿場群衆);한장소에 가득한 군중.

102) 존위(尊位);동리의 우두머리어른.

103) 항렬(行列);같은 혈족간에서 몇째의 대인가를 따지는 표시. 형제자매벌되면 같은 항렬이고 아버지와 형제벌되면 웃항렬이다. 이름을 지을 때 그 사람의 항렬을 표시하는 글자를 넣었다.

104) 풍정(風情);풍치있는 정회.

105) 필경(畢竟);마침내.

106) 노리개;녀자가 몸치장으로 차는 금은보석따위와 그밖의것으로 만든 값있는 장식품.

107) 척연(慽然)히;걱정스럽게.

108) 시운(時運);시대나 때를 만나는가 못 만나는가 하는 운수.

109) 베황관;베황건. 베로 만든 누런 두건. 여기서는 세상을 숨어사는 도사가 된다는 뜻.

110) 초탈(超脫);(세속이나 리욕을) 뛰여넘어 벗어남.

111) 인의(仁義);어질고 의로움.

112) 장가(長歌);분절이 있는것도 없는것도 있는, 시구가 길게 련달린 시가의 한 형식. 긴소리.

113) 가곡(歌曲);여기서는 노래의 곡조.

114) 락양(洛陽);여기서는 서울을 멋스럽게 이르는 말.

115) 유진(油塵);여기서는 검버섯.

116) 현순(賢順);어질고 순함.

117) 월조(越鳥);월나라(중국의 옛 나라 이름, 남쪽에 있었다.)의 새.

118) 대말(大馬);호말. 호나라는 북쪽에 있는 나라로서 큰말의 명산지임.

119) 봉산자;작가가 자기를 념두에 둔 가상적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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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 - 중국 요녕성 - 직장인 - 2018-03-15
정말 좋은 자료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책들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과,
박세영, 박팔양, 박아지... 등 현대시인들의 시들입니다.
김소월이나 이상화 등 시인들의 시집은 쉽게 구해서 볼수 있으나 우에 열거한 조국의 시인들의 책들은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조국에서 번역된 외국 시인들의 시들을 보고 싶습니다.
특히 뿌쉬낀과 하이네의 시들...

감사합니다. 또 기대도 합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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