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기만전술로 적을 물리친 부분노
 

 

유인기만전술로 적을 물리친 부분노 

 

부분노는 고구려의 첫 시조왕인 고주몽과 2대왕인 유류왕(B. C. 259-B. C. 236년)을 섬긴 장군이다. 그의 생존년대와 관련된 정확한 자료는 문헌에 남아 전해지는것이 없다. 다만 그가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장수로서 고주몽때 장군이 되여 비류국을 복속시키고 행인국을 통합하는데서 그리고 유류왕때 선비국을 쳐서 복속시키는데서 공을 세웠다는 전설과 사실자료들만이 전해질뿐이다.

나라를 지켜낸 명장으로서 부분노의 군사적재능이 남김없이 과시된것은 유인기만전술로 선비국을 복속시킨 싸움이다.

선비족들은 원래 내몽골지방을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하고있었는데 그 일부는 료하 동쪽지방에도 와있었다. 그들은 고구려 서북부의 산간지대에 험한 지세를 리용하여 성을 쌓고 기회만 있으면 고구려의 마을들에 달려들어 로략질을 일삼고있었다.

이것은 고구려에 있어서 큰 우환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안전을 지켜 낼수 있겠는가.

B. C. 249년 4월 유류왕은 신하들과 대책을 토의하면서 《선비가 지세가 험한것을 믿고 우리와 화친하려 하지 않으며 정세가 유리하면 나와서 로략질을 하고 불리하면 들어앉아 지키므로 우리 나라에 걱정거리로 된다. 만일 누가 이를 꺾어내는 자가 있다면 과인이 장차 큰 상을 주겠노라.》고 하자 계하에서 백발의 로장 부분노가 나섰다.

유류왕은 선왕을 도와 창업에 큰 기여를 한 명장 부분노를 기대어린 시선으로 굽어보았다.

부분노는 말마디에 력점을 찍어가며 아뢰였다.

《선비는 험한 지세에 의거하고있고 굳건한 나라로서 사람들이 용감하고 우둔하여 힘으로써 싸우기는 어렵고 꾀로써 굽히기는 쉽소이다.》

이것은 부분노가 상대한 적을 깊이 파악하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적을 알고 자기를 알아야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다.》는 말도 있듯이 적아를 잘 알아야 그에 맞게 구체적인 전투계획을 세우고 싸움의 종국적승리를 달성할수 있는것이다.

유류왕은 부분노의 의견에 머리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냐?》

부분노는 한숨 돌리고나서 말을 이었다.

《사람을 시켜 반간으로 적의 땅에 들어가서 거짓말로 우리 나라는 지역이 좁고 군사가 약하므로 겁이 나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면 선비가 반드시 우리를 만만히 여기여 수비를 하지 않을것입니다. 신이 그 틈을 타서 정병을 거느리고 지름길로 들어가 산림속에 숨어서 그 성을 노리고있겠습니다. 이때에 대왕께서 리병(피로하고 약한 군사)을 적들의 성 남쪽으로 출동시킨다면 적들은 반드시 성을 비우고 멀리 쫓아올것이라 이때 신은 정병을 거느리고 그들의 성으로 뛰여들어가고 대왕께서는 용감한 기병을 거느리고 그를 량쪽에서 공격하게 되면 곧 이길수 있을것입니다.》

부분노의 계책은 적들이 처한 형편과 성격상 특성, 기질적측면, 준비정도를 정확히 파악한데 기초한것으로써 첩자로 적을 마비시키고 유인매복과 량면협격전술로 소멸하는 정당하고 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책략이였다.

부분노의 계책이 훌륭하다고 인정한 유류왕은 그대로 집행하게 하였다.

첩자는 곧 놈들속으로 침투하여 거짓말을 류포시켰다. 적들은 그 거짓말을 진짜로 믿고 고구려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고 안일해졌다.

일은 부분노가 예견한대로 되여갔다.

적을 마비시키려던 초기의 목적이 달성된 조건에서 부분노는 다음단계의 작전에로 넘어갔다.

부분노는 《별동대》라고도 할수 있는 정예군사를 직접 거느리고 사이길로 들어가 산림속에 매복하였다. 그리고 왕에게 예정계획대로 추진시키도록 련락을 띄웠다.

유류왕은 《리병》을 파견하여 적들의 성 남쪽을 공격하게 하였다.

《리병》을 본 적들은 과연 랭소하면서 성문을 열고 의기양양하여 쳐나왔다.

때를 기다리고있던 부분노는 정예군사를 거느리고 빈 성으로 쳐들어갔다. 선비족의 웅거지, 악의 소굴은 이렇게 부분노의 책략에 의하여 손쉽게 점령당하였다.

그제서야 속았다는것을 깨달은 적들이 고구려유인대 《리병》에 대한 추격을 중지하고 되돌아서 공격해왔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부분노는 성에 의거하여 군사들을 지휘하며 기를 쓰고 달려드는 적들을 물리쳤다.

이긴 기세를 타서 유류왕이 직접 거느린 정예기병부대가 《리병》과 진을 바꾸어 전군이 되여 기치창검을 높이 들고 북을 울리면서 적들을 반격하였다. 앞뒤로 공격을 받게 된 선비군은 어찌할바를 몰라 헤덤비였다.

적들은 마침내 투항하여 속국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실로 선비족을 복속시키는 싸움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분노의 책략에 의거하여 진행되고 승리한 전투였다.

선비족이 투항하여 고구려의 속국으로 된것은 고구려서북지방의 정세를 안정시키고 당시 고구려에 엇서나가던 부여를 견제하는데서 중요한 군사적의의를 가지였다.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싸움이 끝난 후에 유류왕이 그에게 상으로 식읍을 주려 하였을 때 부분노는 끝까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참으로 부분노는 뛰여난 군사적지략과 용맹, 청렴결백한 품성을 지닌 군사지휘관이며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데 이바지한 명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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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 아래 - - 2016-07-09
간략한 설명이 곁들여 있어서 이해하기 좋습니다. 제가 원하던 국사책이네요.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근데 어째 이미지는 안보이네요. 당시 영토가 표시된 지도그림 같은 게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관리자 - - - - 2016-07-09
이미지문제가 해결되였습니다.
강남 - 강남 - 강남 - 2018-07-23
다음편은 언제 올리나요.
강남 - 강남 - 강남 - 2018-07-23
력사이야기들을 많이 올려주세요. 명인전, 무술명인전, 감사합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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