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항전의 지휘자 성기


 

여기서 이야기하게 되는 성기(? ― B. C. 108년)는 고조선(만조선, 아래에서는 만조선으로 표기한다.)말기의 대신으로서 한나라의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마지막항전을 조직지휘하였다.

만조선과 한나라사이의 전쟁은 한나라통치자들의 끊임없는 령토팽창야욕에 의하여 일어난 침략과 반침략, 정의와 부정의의 전쟁이였다.

전쟁의 직접적동기로 된것은 B. C. 109년 만조선에 한나라의 사신으로 파견된 섭하라는 자가 조선의 비왕 장을 살해한 사건이였다. 국가의 존엄을 훼손한 이러한 도발행위에 강경히 대응하여 만조선정부가 료동군 동부도위소재지를 기습하고 섭하를 처단한것은 응당한 자위적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조선에 대한 침략의 구실을 마련해보려고 꾀하던 한무제(B. C. 156―B. C. 87년)는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B. C. 109년 한무제 류철은 루선장군 양복으로 하여금 5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제(산동반도)로부터 발해를 건너 공격하게 하였으며 좌장군 순체로 하여금 료동지방에서 출발하여 륙로로 침입하게 하였다.

한나라의 침략을 반대하여 싸운 B. C. 109-B. C. 108년 전쟁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볼수 있다.
첫째 단계는 한나라침략군의 수륙량면공격을 저지파탄시킨 시기이고 둘째 단계는 한나라와 강화교섭을 진행한 시기이며 셋째 단계는 한나라침략군의 왕검성(부수도)포위공격을 분쇄하기 위하여 싸운 시기이고 넷째 단계는 왕검성을 사수하기 위하여 최후결전을 벌린 시기이다.

전쟁 첫 단계에서 적아쌍방이 벌린 큰 격전은 패수(대릉하)계선에서 2차, 왕검성(중국 료녕성 개주시일대)밖에서 1차 있었다.

당시 한나라침략군의 전략적기도는 좌장군 순체의 륙군이 패수계선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료하하구에 도착하면 대기하고있던 양복의 수군과 합동하여 왕검성을 포위공격하는것이였다.

이에 대처하여 성기는 패수계선과 왕검성에 기본방어집단을 배치하고 패수계선에서 적의 공격을 좌절시킴으로써 적의 수륙병진기도를 분쇄하는 전략을 세웠다.

패수(대릉하)계선의 만조선방어군은 첫 전투에서 완강하게 싸워 좌장군 선봉부대의 공격을 물리치고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중국의 력사기록인 《한서》에서는 이때의 패전상황에 대하여 《좌장군의 졸정 다는 료동지방출신 군사들을 거느리고 먼저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흩어지고 다는 도망쳐 돌아왔으므로 법에 따라 목을 베였다.》고 전하고있다.

만조선의 패수서군은 좌장군이 직접 거느린 한나라침략군을 또다시 격파하였다.

만조선의 방어군은 패수와 같은 자연의 험한 지형에 의거하여 방어전을 벌림으로써 한나라 륙군의 공격을 두차례나 좌절시키고 그들의 수륙병진기도를 분쇄하였다.

한편 양복은 좌장군 순체가 지휘한 륙군이 패하여 수륙군의 합동공격을 계획대로 실현시킬수 없게 되자 공명심에 들떠 단독으로 왕검성을 공격하였다. 그는 제 지방의 침략군병졸 7,000명을 거느리고 왕검성을 공격하다가 만조선군의 호된 반격에 부딪쳐 겨우 목숨을 건져가지고 산속으로 도망쳐 10여일이나 숨어있지 않으면 안되였다.

전쟁 첫 시기 한나라침략군의 륙군과 수군이 련속 패하자 한무제는 위산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강화교섭을 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은 두번째 단계인 일시적인 휴전기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러나 만조선군의 강경한 자세로 하여 강화담판은 막을 올리기도 전에 결렬되였고 한무제는 담판을 성립시키지 못한 죄로 위산을 처형하였다.

강화담판이 파탄된 후 전쟁은 세번째 단계에 들어섰다.

성기는 우거왕을 도와 한편으로는 부수도 왕검성을 고수하기 위한 방어전을 완강히 벌리도록 하였고 다른편으로는 적진내부에 알륵을 조성하기 위한 리간활동을 적극 벌리게 하였다.

강화담판결렬후 좌장군 순체부대는 패수(대릉하)중류지역으로 에돌아 올라가 만조선의 패수상군을 격파하고 남진하여 왕검성의 서북쪽을 포위하였다. 패잔병을 긁어모아 겨우 재편성된 양복의 부대는 왕검성 남쪽을 포위하였다.

적들은 발악적으로 성을 공격하였으나 만조선군민의 완강한 항전으로 하여 여러달동안 패전만 거듭하였다.

성기는 두 적장의 약점을 포착하고 리간책을 썼다.

좌장군 순체나 루선장군 양복은 다같이 흉노와 남월을 치는데서 《공》을 세웠고 《전투경험》도 가지고있는 자들이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단독으로 먼저 왕검성을 점령하고 고조선을 멸망시킴으로써 명성을 떨쳐보려는 공명심이 꿈틀거리고있었다. 결국 이것으로 하여 두 적장사이에 불화가 조성되게 되였다.

한편 왕검성군사들에 의하여 큰 참패를 당한 양복의 부대에서 졸병들은 모두 싸움을 두려워하였고 장수들은 마음속으로 심히 부끄러워하였으며 포위만 하고 화친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적들의 이러한 약점을 꿰뚫어본 성기는 한편으로는 화친만을 원하는 양복과 몰래 첩자를 시켜 사사로이 관계를 가지게 하고 다른편으로는 좌장군 순체의 공격을 완강하게 물리쳤다. 어지간히 힘이 빠진 순체가 양복에게 함께 공격하자고 하였으나 양복은 강화교섭에만 기대를 걸고 그에 응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좌장군 순체 역시 사람을 시켜 만조선과 강화교섭을 이루어보려 하였으나 성기는 일방적으로 양복과만 관계를 맺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자 좌장군은 지어 양복이 전에 군사를 잃은 죄가 있는데다가 지금 조선과 사사로이 관계를 가지고있으면서도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하고있으니 반역하려는 계책이 있지 않는가고 의심할 지경까지 되였다. 한무제 역시 두 장수가 성을 포위하고도 사이가 벌어지고 뜻이 달라서 오래도록 결말을 짓지 못하고있다고 불평을 터놓았다.

이처럼 성기는 좌장군 순체와 루선장군 양복이 합동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왕검성방어에 유리한 국면을 마련하였던것이다.

화가 동한 한무제는 전국을 수습하기 위하여 제남태수 공손수를 새로 파견하였다. 그는 양복을 모해하는 순체의 말을 믿고 양복을 구속하였으며 그의 군대를 좌장군휘하에 편입시킴으로써 결국 적의 한쪽 날개는 꺾이우고 적들의 수륙병진계획도 파탄되게 되였다. 제남태수 공손수 역시 일을 잘못 처리한것으로 하여 죽음을 당했다.

양복의 부대까지 통합하고 군사지휘권을 독차지한 순체는 왕검성에 대한 총공격에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전쟁은 네번째 단계에 들어섰다.

성기는 애국적군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림기응변의 전술로 잘 꾸려진 성에 의거하여 적들의 공격을 걸음마다 짓부셔버렸다. 적아간의 치렬한 공방전은 B. C. 108년 여름까지 계속되였다.

싸움이 지속되자 신념이 없고 나약한 자들속에서 배신자가 생겨나게 되였다. 공포에 사로잡힌 조선상 로인, 상 한도(음), 장군 왕협과 같은 고위관료들은 비렬하게도 적진으로 넘어가 투항하였다. 니계상 참이라는 자는 자객을 시켜 우거왕을 살해하고 적들에게 투항하였다. 이때 왕자를 비롯한 일부 왕족들과 고위관리들도 그의 뒤를 따라 투항하였다.

귀족관료들의 배신행위로 하여 성은 위험에 처하였다. 하지만 왕검성방어자들은 동요하지 않고 성을 지켜 굴함없이 싸웠다.

뛰여난 군사적재능으로 전쟁승리에 기여한 대신 성기는 애국적군민들의 투쟁기세에서 힘을 얻고 그들을 묶어세워 마지막항전을 지휘하였다.

이때 적들에게 투항하였던 우거왕의 아들 장, 로인의 아들 최 등 비렬한 무리들은 좌장군 순체의 밀령을 받고 다시 성안에 침투하여 투항을 설교하는 한편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서 대신 성기를 암살하였다.

비록 성기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의 지휘밑에 만 조선인민들이 근 1년간 벌린 결사항전은 적들에게 큰 손실을 주고 고조선 전 지역을 병탄하려던 한무제의 침략야망을 꺾어버리였다.

적들의 패전상은 한무제가 전쟁에 동원시켰던 4명의 장수들가운데서 3명의 목을 자르고 나머지 한명도 장군의 벼슬을 떼여 평백성으로 만들어버린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이때 량군 즉 륙군과 수군은 다 곤욕만 치르고 장졸들중에 표창을 받은 자는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적들에게 안긴 이러한 된 타격은 만조선인민들의 항전을 조직지휘한 성기의 공적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성기를 단군의 후손으로 떳떳이 내세우고 길이 그 이름을 전해가는것이다.
 

※ 고조선력사는 전조선, 후조선, 만조선의 3개 왕조시기로 구분하고있다. 만조선은 B. C. 194년경 만이 후조선을 정변의 방법으로 뒤집어엎고 세운 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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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 아래 - - 2016-07-09
간략한 설명이 곁들여 있어서 이해하기 좋습니다. 제가 원하던 국사책이네요.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근데 어째 이미지는 안보이네요. 당시 영토가 표시된 지도그림 같은 게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관리자 - - - - 2016-07-09
이미지문제가 해결되였습니다.
강남 - 강남 - 강남 - 2018-07-23
다음편은 언제 올리나요.
강남 - 강남 - 강남 - 2018-07-23
력사이야기들을 많이 올려주세요. 명인전, 무술명인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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