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리익을 위하시는 마음에서

 

 

인민의 리익을 위하시는 마음에서

                                                      

박  영  순                      

 

1959년 5월 12일, 나는 항일무장투쟁전적지답사단의 요청에 의하여 그들과 동행하게 되였다.

그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들을 부르시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1933년에 내가 량수천자에 있을 때 한 중국로인네 도끼를 잃어버리고 끝내 찾아드리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가면 그 로인을 꼭 찾아서 다시한번 사과해주오.…

오랜 세월이 지나간 오늘까지도 한 로인의 도끼에 대해서도 잊지 않으시는 그이, 그것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잃어버리시고 찾아드리지 못한 일을 이렇듯 고스란히 품고 잊지 못하시며 마음을 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북받쳐오르는 감동을 걷잡을수 없었다.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한 20성상 그 어느날, 어느 한밤도 발편잠을 주무신 일 없이 오직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 싸워오신 그이께서는 언제 어데서나 항상 인민에게 충실하고 인민의 리익을 귀중히 여기도록 유격대원들을 가르치시였고 몸소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간곡한 당부를 가슴깊이 새기고 전적지답사를 떠나는 나의 머리속에는 그 도끼에 대한 사연이 다시금 새롭게 떠올랐다.

1933년 3월 상순경, 국내진출부대를 친솔하시고 왕재산으로 나오시다가 량수천자에 머물러계실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두만강가에 있는 한 중국로인의 집에 류숙하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체 대원들에게 주둔구역 인민들의 일을 자기 집 일처럼 도와주며 될수록 그들에게 페를 끼치지 말라고 간곡히 가르치시면서 아침이면 주인집의 로인네들보다 먼저 일어나시여 몸소 집안팎을 깨끗이 청소하시고는 도끼를 드시고 두만강에 나가 얼음을 까고 물까지 길어다가 독에 가득 채워놓군 하시였다.

하루아침에는 류달리 추워서 물구멍에 두터운 얼음이 얼어붙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도 물을 긷기 위하여 도끼를 드시고 강가에 나가시여 얼음을 까고계시였다. 그런데 얼음을 거의다 까내려갔을 때 그만 도끼자루가 부러지면서 도끼가 얼음구멍에 빠지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음구멍을 더 넓게 뚫고 장대끝에 갈구리를 매여가지고 강밑을 더듬으시였으나 물이 깊어서 좀체로 찾을수가 없었다.

보통생각으로는 집주인네 일을 성심으로 해주다가 그렇게 된 일이니 할수 없다고 단념할수도 있는 일이였건만 그이께서는 도끼를 찾으시려고 계속 애를 쓰시였다. 강가에 나와 함께 도끼를 건지려던 대원들이 주인에게 값을 치르어드리자는 의견을 말씀드렸으나 그이께서는 아무리 값을 많이 주어도 자기의 손때묻은 물건이 없어진 아쉬운 생각이야 어떻게 주인에게서 덜어줄수 있겠는냐고 하시면서 좀체로 단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강밑에 묻힌 도끼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는수없이 주인집 로인에게 도끼값을 후히 드리며 재삼 사과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사랑과 고결한 품성앞에 그러지 않아도 감격을 금치 못하고있던 로인은 그이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매일 이른새벽에 우리집 물까지 길어주신 장군님께서 그 하치 않은 도끼 하나때문에 그토록 추운데서 고생하신 일만 생각해도 저는 무엇이라 황송한 말씀을 드릴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많은 값까지 굳이 손에 쥐여주시니 나는 참으로 어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늙은것이 힘이 없어서 유격대어른들을 돕지 못한것만 해도 가슴아픈데 그런 페까지 끼치고 또 도끼값까지야 어찌 받을수 있겠습니까.》

로인은 한사코 사양하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끝내 주인집 로인에게 도끼값을 물어주신 후에도 이 일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시며 《그 로인에게 참으로 미안하게 되였습니다.》라고 거듭 말씀하군 하시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에 와서도 그이께서는 그때 일을 잊지 않으시고 그 로인을 꼭 찾아가서 다시한번 사과해달라고 당부까지 하시지 않는가.

인민을 위하시는 그이의 숭고한 사상에 깊이 감동된 우리는 답사기간 한자리에 모여앉으면 그 이야기를 하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깊은 뜻을 받들고 우리 항일유격대는 그 어떠한 곤난과 역경속에서도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인민의 리익을 생명과 같이 존중히 여겼으며 인민대중에게 충실히 복무하는 철저한 사상을 가지고 적들과 싸웠던것이다.

그때의 하많은 사실중에서 나는 우리 후방부대가 대전자 왕바버즈에 있던 1935년 겨울에 있은 일을 다시금 회상하게 된다.

우리는 그곳에서 밀영을 지을 과업을 맡았었는데 그때 우리는 도끼 하나 없는 빈손이였다. 하는수없이 부근에 있는 단 한집뿐인 농민의 집으로 도끼를 빌리러 갔었다. 그런데 조선농민의 집인 그 집에는 도끼는 없고 큰 자귀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라도 쓸수 있으면 가져가라는것이였다. 심심산중인 이곳에서는 그 집외의 다른데 가서는 도끼를 빌릴 곳이 없었다. 우리는 할수없이 그 큰 자귀를 빌려다가 나무를 다듬어 집을 지었다.

그런데 집을 다 짓고나서 자귀를 돌려주려고 살펴보니 날의 한귀퉁이가 떨어져있었다.

우리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우리는 값을 치르어줄 생각도 해보았으나 값을 치르어준다고 하면 그 로인이 어데 가서 그런 자귀를 구하겠는가.

호미 하나를 벼리려고 하여도 100여리길을 가야 하는 이곳에서 항차 눈이 허리를 넘는 겨울에 값을 주는것으로는 도저히 물건을 대신할수 없을것이였다.

이때 나는 한참동안 생각하던 끝에 어떤 일이 있어도 자귀를 본래대로 만들어서 돌려주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말에 동무들은 모두 나를 보며 의아해했다.

그들이 의아해하는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였다.

도끼조차 없어서 남의 자귀를 빌려다가 집을 지어야 했던 우리가 무엇으로 자귀를 본래대로 고쳐놓겠는가.

자귀날을 만들자면 우선 강하고 좋은 쇠붙이가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달굴수 있게 불을 피우자면 풍구도 있어야 할게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이때 가지고있던 도구라고는 줄칼 하나와 망치, 집게밖에 없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적당한 방법이 나서지 않아서 우리는 자체로 자귀날을 본래대로 만들어놓는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만 생각되였다.

그러나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의 리익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생각하니 귀떨어진 자귀를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줄수는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모여앉아서 더 깊이 진지하게 의논하였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줄칼로 날을 붙이면 잘 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전에 우리 아버지가 벼림질을 할 때에 여러번 그렇게 하는것을 보았기때문이다.

우리는 줄칼을 절반 잘라서 그 하나로는 자귀날을 달고 다른 하나는 남겨두었다가 무기수리를 하자는 의견일치를 보게 되였다.

우리들은 모두 성수가 나서 우등불에 자귀날과 줄칼반토막을 달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풍구대신으로 여러 동무들이 입으로 불을 불어보았으나 바람이 세지 못하여 불길이 잘 일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리대를 꺾어다가 여럿이 입에 물고 불었더니 제법 불길이 잘 이는것이였다.

우리들은 한밤중까지 신고를 하여 끝내 자귀날을 붙이는데 성공하였다.

다음에는 그것을 물에 담그어 쇠를 강하게 띄워가지고 절반 남은 줄칼로 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자귀날이 두텁게 된데다가 줄칼은 절반만 남았기때문에 좀처럼 날을 세울수가 없었다.

돌려주기로 약속한 날도 되였으므로 여러날을 끌수도 없었다. 우리들은 굳은 돌을 깨여가지고 꼬박 밤을 새워 교대하면서 갈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늦은 조반때가 지나서야 자귀날을 다 세웠다.

우리는 비로소 후련한 마음으로 자귀를 가지고 주인을 찾아가 돌려주었다.

우리는 자귀날을 고친것은 주인에게 말하였으나 밤새워 고생한 이야기는 할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을 후에 알게 된 자귀주인인 그 로인은 두고두고 이 일을 말하면서 우리 유격대의 일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나서군 하였다.

이렇게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과 모범을 따라서 항상 인민의 리익을 제일 중하게 알고 어떤 환경에서도 인민의 리익을 침해하지 않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했던것이다.

바로 그러하였기때문에 우리 유격대는 가는곳마다에서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헌신적인 원호를 받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찌 이것으로써 인민을 사랑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높고 깊은 뜻을 그대로 받들었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한 로인의 도끼를 잃고 돌려주지 못한 일을 잊지 못하시는 그이의 심중을 생각할 때 나는 가슴후더워옴을 금할수 없다.

우리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모든 정열을 고스란히 바쳐오시였으며 이날 이 시각에도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전체 인민의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보살피시며 미제에 의하여 겪고있는 남녘땅인민들의 불행에 대한 심려로 잠 못이루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일하며 생활하는 행복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이처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헌신분투할 각오를 더욱 굳게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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