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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있다 ㅡ 박록금동지를 회상하여 ㅡ
황 금 옥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용약 떨쳐나섰던 내가 박록금동무를 처음 만난것은 1935년 봄, 왕청현 요영구근거지에서였다. 이 시기만 해도 무장대오에는 녀성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때문에 록금동무는 근거지안의 녀성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기관총을 메고 30~40리를 행군해도 끄떡하지 않는 장수였다. 《나는 유격대에 들어와서 눈을 떴어요. 혁명이란 어떤것이고 어떤 사람들을 동지라고 불러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으니까요. 이제 혁명이 승리하면 헤여졌던 가족들도 다시 만나고 지주놈들이 없는 세상에서 제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게 된다니 얼마나 좋아요. 나는 꼭 그날이 올것을 믿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난 아직 총도 잘 쏘지 못하고 글도 잘 몰라요. 많이 가르쳐주어요.》 이것은 그가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이다. 그후 1937년 정월부터 록금동무와 나는 사령관동지의 지시를 받고 장백현내의 적통치구역으로 들어가서 조국광복회와 부녀회공작을 했고 그와 함께 옥중생활도 했다. 록금동무를 회상할 때마다 언제나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것은 혁명의 노래로 적을 전률케 하였으며 영원한 청춘을 혁명에 바친 그의 옥중투쟁이다. 적들에게 체포되여 혜산경찰서에 있을 때 우리는 많은 녀성들과 함께 놈들의 련무장에 감금되여있었다. 이때 해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동무는 산후에 완전히 추서지 못한 몹시 쇠약한 몸으로 적들의 야수적고문을 받고있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 동무를 무죄석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록금동무는 경찰의 감시를 피해가면서 내곁에 다가앉더니 《나는 저 동무와 같이 사업을 했으니까 그가 한 모든 일을 내가 했다고 뒤집어쓰면 될거야요.》라고 자기의 가슴을 툭툭 쳤다. 다음날 고등계주임놈에게 불리워나가면서 록금동무는 나에게 얼굴을 돌리고 웃어보이며 눈으로 앓는 동무를 가리켰다. 그 동무에 대한 근심은 하지 말라는 암시였다. 후에 록금동무의 말에 의하면 이날 고등계주임놈은 처음부터 을러대더란것이다. 《오늘도 아픈 매를 맞기 전에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고문이야 고문. 죽는단말이다.》 주임놈은 이렇게 위협하고는 장백과 국내조직의 비밀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 《또 그 소린가, 난 자기가 한 일밖에 모른다. 신흥촌에만 있은 내가 어데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어떻게 안단말인가. 난 모른다.》 맨발에 미투리를 신은 록금동무는 발끝부터 심장까지 얼어드는것 같았으나 꿋꿋이 뻗치고 서서 그놈의 질문을 딱 잘라버렸다. 《리제순이와 같이 공모했는데도 몰라?》 고등계주임놈은 주먹으로 고문대를 치며 악을 썼다. 그러나 록금동무는 일이 뜻대로 되여간다고 은근히 기뻐했다. 《내가 책임지고 조직한 일은 한가지뿐이다.》 《응? 뭣이야.》고등계주임놈은 흉물스런 턱을 내밀고 록금동무의 앞으로 다가앉으며 다그쳐물었다. 《유격대에 보낸 축기는 내가 만들었고 그것을 유격대에 가져간것도 내다.》 록금동무의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놈은 발작적으로 화닥닥 일어서며 《거짓말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한것으로 다 알고있는데 무슨 허튼수작이냐.》하고 악을 썼다. 놈들이 이미 이러리라는것도 예측하고있었던 록금동무는 오히려 태연하게 주임놈을 쏘아보며 말을 계속했다. 《허튼수작을 하는것은 너희들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한것을 다른 사람이 했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그것을 인정할수 있겠는가. 앓고있는 저 사람도 역시 인정하지 않을것이며 더우기 그는 혁명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농촌녀자인데 만일 너희들 같으면 그런 무식한 녀자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수 있겠는가?》 록금동무의 도도한 태도는 고등계주임놈에게서 취조받는 립장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놈을 심문하는 태도였다. 고등계주임놈은 록금동무의 말을 받아쓰다말고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입을 놀려》하고 당장 후려칠듯이 가죽띠를 추켜들며 호통을 쳤다. 《내가 했다는것은 부인하면서 왜 또 무엇을 말하라고 하느냐. 축기도 내가 한것이 아니라면 나는 차라리 잘 된셈이다.》하고 록금동무가 말을 딱 끊어버리자 고등계주임놈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리둥절하였다. 《좋다. 그럼 어떤 련락을 누구에게 했는가?》 《내 목숨이 끊어져도 그것은 말할수 없다. 또 말할것도 없다.》 《뭐, 뭐야…》 고등계주임놈은 눈을 까뒤집으며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손에 들었던 가죽채찍으로 그를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날 록금동무는 끌려나간지 2시간후에 거의 반주검이 되여 련무장으로 옮겨왔다. 우리는 그를 옮겨눕히고 전신을 주물러주었다. 사람의 살을 만지는것이 아니라 언 나무통을 만지는것 같았다. 록금동무는 점심때가 지나서야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간신히 입을 열어 앓고있는 동무를 찾아 자기가 꾸며댄대로 그에게 알려주고 앞으로 어떤 위협이나 고문이 있어도 일체 문제를 거부하라고 두번세번 당부했다. 그러자 그 동무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울었다. 《울지 마오. 동무는 늙은 어머니와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사업을 위해서도 여기서 나가야 해요. 장군님께서 주신 임무를 다하지 못한 나는 여기서라도 끝까지 싸울테니 동무는 나가서 우리가 다하지 못한 일을 계속해줘요…》 그럴수록 그 동무는 더 흐느껴울었다. 이후에도 록금동무는 그 동무의 석방을 위하여 계속 경찰놈들과 맞대놓고 론쟁도 했고 몇차례의 모진 고문도 당했다. 이렇게 하여 앓고있던 그 동무는 체포된지 몇달만에 석방되였다. 《그가 나갔으니 어머니와 딸애가 얼마나 기뻐하겠소. 계속 자기 사업도 할것이고…》 나는 일찌기 이날처럼 그렇게 기뻐하는 록금동무를 본적이 없었다. 비록 자기는 갇히여있지만 동지를 내보내여 다시 투쟁을 할수 있게 한 그의 심정, 혁명을 위하고 동지를 위해서는 서슴없이 어떤 고통도 자기 몸으로 막아낸 그의 빛나는 눈동자를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경찰놈들은 우리 녀성들 몇명을 뒤마당으로 불러내더니 일본말로 쓴 서류를 합쳐서 책을 매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일을 하는척 하면서 오래간만에 해볕을 쪼일수 있었다. 록금동무는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장군님을 모시고 동무들은 지금 어디서 싸우고있을가. 우리도 여기에서 동무들 못지 않게 싸워야 한다.》 이렇게 록금동무가 소곤소곤 말을 하는데 우리 주위를 빙빙 돌며 감시를 하던 경관놈이 귀를 기웃하고 걸음을 멈추더니 《유격대도 노래를 부를줄 아는가?》고 수작을 하는것이였다. 우리들은 그놈의 낯짝에 침을 콱 뱉아주고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언제나 즐겁게 웃고 노래부르고 춤도 춘다. 한번 들어보고싶은가?》 록금동무는 그놈에게 큰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정말인가.》 바보같이 미욱한 그놈은 믿어지지 않는지 우리들의 곁에 다가와서 되묻는것이였다. 《정말이다.》 록금동무가 다시 이렇게 말하자 경관놈은 무슨 생각이 났던지 사무실쪽으로 뛰여갔고 잠시후 7~8명의 경찰놈들이 하모니카까지 들고 벙글거리며 나왔다. 경찰놈들은 심심풀이로 우리들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자는 심산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달랐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려고 한것은 첫째로는 체포된 우리 조직의 간부들과 동지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굴하지 않고 싸운다는것을 알리자는것이였으며 둘째로는 우리의 노래가 적들의 심장을 찌르는 무기로 되여 놈들을 전률케 하자는데 있었다. 경찰놈들은 빙 둘러서서 노래를 독촉했다. 우리는 먼저 《나오라 혁명전에》를 불렀고 다음은 록금동무의 선창으로 《적기가》와 《유격대행진곡》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경찰 한놈이 하모니카를 불라고 했다. 이때 록금동무는 하모니카를 들고 한참이나 바라보며 그 무엇을 생각하더니 《해방가》를 불렀다. 우리들은 그에 맞추어 다시 노래를 불렀다.
삼천만 동포야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총을 메고 칼을 잡아라 잃었던 우리 자유 우리 권리를 원쑤의 손에서 찾기 위하여 온 세계 인류와 똑같이 살도록 전민족 혁명에 몸바쳐 싸우자 … 노래가 끝나자 록금동무는 큰 소리로 웨쳤다. 《이것이 우리의 노래다. 수천만 로력대중은 이 노래를 부르며 일어나고있는것이다. 너희들의 노래는 죽어가는 슬픔의 노래이고 멸망의 노래이지만 우리 혁명가들의 노래는 살아서 영원히 전진하는 승리의 노래이다.》 록금동무는 말을 끝내면서 손에 들고있던 하모니카를 땅바닥에 동댕이쳤다. 이 뜻하지 않았던 록금동무의 태도에 질겁한 경찰놈들은 감히 그에게 대여들지는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사무실로 들어갔다. 경찰놈들이 사라진 다음, 우리들은 놈들이 갖다놓은 서류들을 발로 차서 흩어뜨리고는 련무장으로 돌아왔다. 이날 저녁때, 고등계주임놈은 록금동무에게 저녁밥도 주지 않고 그를 불러갔다. 밤은 깊어갔으나 록금동무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까이 가슴만 조이며 그를 기다렸다. 록금동무는 첫닭이 울무렵에야 돌아왔다. 전신이 물에 젖은 그가 의식을 잃은채 두놈의 경찰에게 맞들려들어왔다. 이날밤, 우리들은 밤을 밝히며 그의 전신을 주물러주었다. 다음날 아침에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 록금동무는 온 힘을 모두어 동지들을 휘둘러보고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가 살아났나? 동무들도 다 있구만.》하고 다시 맥없이 천천히 눈을 감는것이였다. 이 순간 우리들은 반가우면서도 얼마나 설음이 북받쳤는지 모른다. 적들의 야수적만행에 대한 증오로 하여 가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날 저녁 록금동무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혁명가들은 어데를 가나 자기의 사업을 중단해서는 안되며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말고 혁명가답게 굳세게 싸워야 한다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합시다.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자기 몸을 바칠 각오를 한 다음에야 무엇이 무서울게 있어요. 조선녀성들의 힘과 혁명정신을 적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해요.》 이렇듯 록금동무는 적들에게 체포되여서도 혁명을 위하여 조금도 굴함없이 싸웠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부터 경찰놈들은 록금동무를 딴방에다 감금하고는 우리와 련계를 끊어놓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정신과 마음만은 갈라놓을수도 없었고 굴복시킬수도 없었다. 이듬해 5월, 우리는 함흥형무소로 이송되여갔다. 록금동무는 형무소에 가서도 자기의 투쟁을 중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흥에 도착한것은 낮이였다. 높은 담벽에 전기철조망까지 둘러친 감옥안에 들어섰을 때 나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이 쓰렸다. (인제는 완전히 바깥과는 멀어졌구나. 사회생활도, 혁명투쟁도 끝나는셈이 아닌가. 아니다. 새로운 투쟁은 이제부터다.) 이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음산한 감옥안의 정경을 둘러보았다. 이때 우리를 인계받은 녀간수는 입고있던 옷을 벗고 죄수복을 갈아입으라고 호령하면서 우리들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록금동무는 간수의 태도가 아니꼬왔던지 간수년을 쏘아보았다. 《보긴 왜 봐. 계집년들이 건방지게 무슨 사상운동이야. 빨랑빨랑 옷을 바꿔입지 못해.》 간수는 록금동무의 허리를 쥐여박으며 발까지 굴렀다. 《흥, 왜놈의 개가…》 록금동무는 큰 소리로 코웃음을 치고는 간수년을 본체도 않고 일부러 느릿느릿 죄수옷을 갈아입었다. 이렇게 우리의 감옥생활은 시작되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건너편 감방에 있던 록금동무는 우리가 들어있는 곁방인 8호감방으로 옮겨왔다. 당시 8호감방은 병감방으로 사용하고있었는데 거기에는 정평농조사건으로 검속된 김모(이름은 기억할수 없음)라는 27~28살가량의 녀동무가 결핵성복막염으로 앓고있었다. 일체 행동의 자유를 구속당하고 정적과 울분으로 가득한 감옥에서도 환자들이 있는 병감방은 더욱 음침하고 침울하였다. 때문에 어떤 간수나 할것없이 병감방의 취급을 싫어했을뿐만아니라 결핵성환자일 때에는 감옥의 의사들까지도 출입을 꺼려했다. 바로 이와 같은 병감방에 적들은 록금동무를 넣은것이다. 이것은 곧 자기들이 시중을 들어야 할 일을 록금동무에게 시키여 혁명가인 그를 병에 걸려 죽게 하려는 교형리들의 악귀같은 심보에서 나온 처사였다. 이와 같은 간수놈들의 악착한 심통을 미리 알아차린 록금동무는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는 뜨거운 인간성으로부터 비록 처음 대하지만 처녀를 오랜 혁명전우와 같이 생각하고 첫날부터 일체 그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육친의 정으로 품에 안아도 주고 밤을 밝히며 팔다리를 주물러주고 대소변도 받아냈다. 이렇게 정성껏 그를 간호하면서 록금동무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조선혁명의 앞길에 대해서 그가 알수 있도록 꾸준히 일깨워주었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해설해주었고 항일빨찌산전투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자장가마냥 조용조용히 혁명가도 불러주었다. 하루는 록금동무가 벽을 두드려 통방을 해왔다. 《환자는 먹지를 못하니 가슴이 아프다. 무슨 방도가 없을가.》 그때 내게는 사령관동지께서 보내주신 공작비중에서 쓰다남은 돈 16원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회답을 보냈다. 《돈이 있다. 사식을 먹이자.》 통신을 받은 록금동무는 그자리에서 간수를 찾았다. 《왜 부르는거야.》 간수년은 신경질을 발칵 내며 종알댔다. 《환자가 먹지를 못하는데 내게 돈이 있으니 저녁부터 사식을 달라.》 《안돼…》 간수년은 단마디로 거절해버리고는 시끄럽다는듯이 홱 돌아서 가버렸다. 이날부터 록금동무는 그에게 콩밥을 이기여 떡을 만들어 먹이기 시작하였다. 환자는 점차 입맛이 당기여 다소간 먹기는 하였으나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이리하여 그는 밥을 싸서 배에다 띠고 말리여가지고는 가루를 내여 물에 타서 먹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성으로 환자의 생명은 붙어있었으나 약 한첩 쓰지 않으니 병이 나을리 만무했다. 환자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여 결핵성복막염이 대장염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기관지까지 겸하여 가망이 없게 되였다. 록금동무가 간호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반년이 지난 후 그 녀자는 집행유예로 출옥되였다. 출옥하기 전날부터 록금동무와의 리별을 슬퍼하여 계속 흐느껴울던 환자는 담가에 실려나가면서도 록금동무를 목메여 찾았다. 그런데 그 녀자가 나간지 이틀후부터 록금동무는 환자가 누워있던 바로 그자리에 자신이 눕고말았다. 그 녀자에게서 결핵균이 전염되였던것이다. 가장 친근한 혁명전우가 바로 곁방에 누워서 앓고있는것을 알면서도 그를 구완해주지도, 볼수조차도 없는 우리의 울분은 참을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병으로 누워있던 록금동무를 간수가 불러냈다. 나는 그가 감옥내에 있는 의무실로 가는줄만 알았다. 그러나 2시간도 못되여 록금동무는 모진 고문을 받고 반주검이 되여 감방으로 옮겨왔다. 이날 아침, 함흥형무소 계호과에는 박록금앞으로 뜻하지 않은 옷과 떡이 들어왔다. 옷은 명주로 만든 치마와 저고리였고 떡은 하얀 찹쌀떡이였다. 이 옷과 떡은 록금동무의 간호를 받다가 출옥한 그 녀동무의 가족들이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가지고 온것이였다. 그의 가족들은 록금동무에게 면회까지 요청했으나 간수놈들은 단번에 거절해버리고 면회실이 아니라 고문실에 불러내다놓고 록금동무를 이렇게 사경에 처하게 만들어내보냈던것이다. 《너는 보호자도 없다. 집행유예로 나가는 정평녀자에게 혁명을 선전하고 그 녀자를 통해 국내에 있는 조직과 련계를 맺게 한것이 틀림없다. 어디에 있는 누구와 어떤 련계를 가지고있는가.》 놈들은 이렇게 을러대며 허위조서를 만들기 위하여 록금동무를 악착하게 고문했던것이다. 이날부터 록금동무는 음식을 전페하고 누워 운신도 못했다. 날이 갈수록 록금동무의 병세는 더해갔고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그래도 그는 자기의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벽을 두드려 우리를 고무해주었고 자기는 절대로 죽지 않고 병과 싸워 이기며 적과도 싸워 이긴다고 매일과 같이 결의를 표명하면서 나더러 안심하라고 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게 되자부터 적들은 아까운 쌀만 소비한다고 하며 그에게 밥을 주는것까지 중지시켰다. 하루는 록금동무로부터 우리에게 이런 통신을 보내왔다. 《가슴이 답답하구나, 기관총을 메고 30~40리씩 행군해도 아무렇지도 않던 심장이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구나, 정말 참기 힘들다, 노래나 불러주렴, 나도 같이 부르게.》 나는 그의 요구대로 노래를 불렀다. 그가 즐겨부르는 《유격대행진곡》을 불렀다. 그가 부르는 노래소리도 벽을 통해 우리에게로 들려왔다. 간수년이 철창문을 두드리고 장대질을 했지만 우리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1절을 부르고 2절을 부르기 시작하던 록금동무의 노래소리는 문득 그치고말았다. 나의 머리에는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록금동무를 찾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주먹으로 벽을 쳐도 아무 응대가 없었다. 이 순간 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주먹으로 감방마루를 치며 목놓아울면서 놈들을 한없이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록금동무는 이렇게 최후의 순간까지도 혁명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귀중한 청춘을 조국에 바쳤다. 나는 오늘 그가 최후의 순간까지 즐겨부르던 그 노래를 듣는다. … 용진용진 나아가세 용감스럽게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 이 노래는 사회주의조국의 거리와 마을에서, 용광로와 전야에서, 조국의 초소에서, 미래의 주인공들인 어린이들속에서 힘차게 울려퍼지고있다. 나는 이 노래속에서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하였던 불굴의 혁명투사인 박록금동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노래속에서 혁명투사 박록금동무의 영상을 본다. 그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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