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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김로인일가
오 죽 순
1941년 여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이 소부대활동을 전개하고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손동무와 나는 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문가에까지 나와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우리들의 학습과 생활형편이며 건강에 대하여 일일이 물으신 다음 당시의 국제국내정세에 대하여 상세히 말씀해주시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목단강 림구일대에서 정치공작을 진행하며 동시에 적의 형편을 정찰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적들이 집결한 지대에 들어가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며 적의 동태를 정찰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불장군이란 말그대로 단독적인 노력이나 열망만으로써는 안됩니다. 인민을 믿고 그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에 의거하여 싸울 때만이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민에게서 배우고 인민을 잘 교양하고 조직하여 옳게 발동시킨다면 어떤 일이건 못해낼것이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임무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손을 잡으신채 산으로 갈 때에는 산발을 잘 타야 하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며 물 한모금, 소금 한덩이도 사전에 잘 알아보고 먹어야 한다고 먼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친아버지가 타이르듯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서 더욱 자신심을 얻고 그이께서 주신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리라는 결의를 다지며 길을 떠났다. 우리가 림구시가에서 서북쪽으로 약 40리 떨어진 야산 수림속에 자리잡은것은 1943년 늦은 봄이였다. 림구시가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였으나 가목사와 밀산으로 통하는 군사교통의 거점으로서 적들이 매우 중히 여기는 곳이였다. 우리의 공작은 처음부터 긴장성을 띠였다. 가는 곳마다 적이요, 으슥한 곳마다 특무들이 박혀있어 비록 산속이라고 하여도 방심할수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겨우 산중에 들어와 숯구이하는 중국사람 몇명과 련계를 맺었을뿐 도시나 벌방지대에 사는 인민들속에서 정치공작을 진행하며 림구지대에 주둔한 적군의 형편과 림구역을 통과하는 군용렬차의 운행정형을 알아내는 등의 기본임무는 아직 착수도 못하고있었다. 7월 중순경인 어느날 밤, 우리들은 한자리에 모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구절구절 따져가면서 자기 사업을 검토하고 앞으로 진행할 보다 적극적인 사업대책을 세웠다. 그후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나는 이미부터 련계를 맺고있던 왕로인에게서 림구시내에 살면서 벌판에 나와 농사를 짓는 조선농민 1명을 소개받았다. 소개라야 그가 믿음직하다는것과 그의 농막위치를 알려준데 불과했다. 나는 배낭속에 넣고다니던 중국농민복을 입고 로인이 거처하는 농막으로 찾아갔다. 머리가 반백이 되고 등이 구부정한 로인이 밭머리의 풀을 뽑고있을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우선 중국말로 인사를 하였다. 《로인님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받자 로인은 일손을 멈추고 허리를 펴면서 《괜찮소, 어디서 오는 사람이요.》하며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것이였다. 《로동판에서 오는 길인데 하도 벌이가 되지 않아 어데 좀 입벌이라도 할데가 없을가 해서 왔습니다.》 로인은 의심스럽게 나의 모습을 아래우로 훑어보더니 《중국사람들에게나 가보오. 우리 집에는 할 일이 없소.》하고 딱 잘라버리며 돌아앉는것이였다. 다시 청을 드렸을 때는 어성까지 높이는 바람에 이제는 더 말을 건늬기조차 어색하게 되였다. (로인의 성품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로인을 다시한번 쳐다보았다. 해볕에 타서 검붉어진 얼굴에 깊이 잡힌 주름살이며 거칠고 투박한 손등, 능란한 일솜씨, 흙투성이가 된 옷차림, 어느 모로 보나 고역에 시달린 소박한 조선농민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이상 로인을 괴롭히지 않기 위하여 솔직하게 조선말로 나의 신분을 밝히였다. 《로인님. 아까 일을 나삐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항일유격대원입니다.》 로인은 몹시 놀란듯 머리를 휘돌려 나를 이모저모로 다시 훑어보더니 《유격대원이라… 그래 무슨 일로 왔소?》하고 미덥지 않다는듯이 되묻는것이였다. 나는 로인의 곁에 한걸음 더 다가앉으며 이른저녁때까지 이야기했으나 로인의 태도에서는 이렇다할 변동이 없었다. 나는 로인을 좀더 료해하여볼 생각으로 래일아침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그가 만약 밀정이라면 적들이 이 밤중으로 기여들것이여서 나는 이날밤 농막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곳에 숨어 그 주변을 살폈으나 적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밭으로 나온 그의 행동에는 수상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그의 뒤를 따르는 놈도 없었다. (믿을수 있는 로인이 틀림없다.) 나는 우선 이렇게 단정하고 곧바로 밭으로 내려갔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나서는 나도 밭에서 풀을 뽑기 시작했다. 로인은 나의 거동을 자주 곁눈질하여볼뿐 한참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는 그와 가지런히 밭이랑을 타고나가면서 풀을 뽑았다. 그러면서 한마디한마디씩 로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하여 이야기를 건늬였다. 로인은 어제와는 달리 나를 다정히 대해주었다. 그러나 속심만은 좀체로 털어놓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싸창을 내보이면서 《로인님. 나는 항일유격대원입니다.》하고 말했다.(당시 일제의 밀정이라면 이런 싸창을 가지고있지 못했다.) 윤기도는 싸창을 보자 그의 얼굴에서 위구와 조심성이 사라지고 기쁨이 어리였다. 《그래, 당신이 정말 산아주바이(이곳 인민들은 항일유격대원을 이렇게 불렀다.)란 말이요?》 로인은 너무도 반가와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김로인은 나의 손을 꼭 잡은채 《그래, 산에서 얼마나 고생들 하나. 그런것을 의심하고 그만… 하여간 나삐 생각지 말고 어서 농막으로라도 가세나.》하며 일손을 놓고 일어서는것이였다. 나는 초막안에서 로인이 따온 풋강냉이를 구워먹으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보니 김로인은 지난날 우리 유격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던 사람이며 그의 가족들인 늙은 부인과 아들,(이때 림구역에서 로동을 하고있었다.)딸과 며느리 할것없이 모두가 유격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였다. 나는 로인에게 유격대의 눈부신 활동과 국제국내정세에 대하여 그리고 일본놈들이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것과 또 그놈들을 반대하여 모두가 힘을 합쳐 유격대를 도와 싸운다면 조국의 해방을 더욱 앞당길수 있다는데 대하여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암 그래야지, 그 악독한 놈들을 가만히 둬둘수야 없지. 그런데 자네는 여기에 얼마나 있을 작정인가?》 나는 걱정어린 로인의 얼굴을 지켜보며 그건 왜 묻는가고 되물었다. 《별일은 아니네만 자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네.》 이때에야 나는 개였던 자리가 확연한 내 옷이 농민의 차림과는 어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의 일신을 그처럼 걱정해주는 그의 지성에 나의 가슴은 여간만 후더워지는것이 아니였다. 그 이튿날 아침, 김로인은 조선농민복 한벌과 지하족을 가져왔다. 이날밤 나는 농막에서 김로인과 함께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밤이 퍼그나 깊었을 때였다. 《자네 여기 좀 있게나, 내 얼른 갔다올데가 있네.》 하고는 다시 말을 건늴새없이 김로인은 농막을 나서는것이였다. 무슨 일로 어디로 가는지 딱히 알수 없어 나도 멀찍이 그의 뒤를 따라섰다. 김로인은 신작로와 강냉이밭속을 지나서 곧바로 림구시가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 걸어가니 밤하늘을 배경으로 토성의 륜곽이 드러나보였고 무너져내린 토성사이로는 희미한 가로등과 올망졸망한 집들이 어슴푸레 보였다. 나는 그이상 더 나가면 적들에게 발견될수 있었으므로 밭속에서 그의 행동만을 살폈다. 김로인은 토성이 무너져내린 곳으로 조심히 접근하고있었다. 그가 토성밖에 있는 물홈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남쪽 토성밑에서 적순찰병이 어둠속을 뚫고 나타났다. 로인은 땅에 납작 엎드린듯 알아볼수 없었다. 적순찰병은 그 어떤 감촉을 느껴서인지 얼마간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다시 사라졌다. 바로 이때 토성이 무너져내린 곳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쑥 나타났다. 뒤이어 두사람이 임을 이고 토성을 넘어서자 자취를 감추었던 김로인이 다시 어둠속에서 솟아나 재빨리 물홈을 넘어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후에 들은바에 의하면 토성을 넘어온 사람은 김로인의 부인을 비롯하여 그의 딸과 며느리였으며 그들이 이고온것은 우리 소조원들을 위한 식량이였다. 거기에는 가난한 농민들이 설날에도 맛보기 어려운 고등어도 들어있었다. 김로인일가의 이 극진한 지성에 나의 마음은 한없이 뜨거워오르기만 하였다. 땀으로 흠뻑 젖은 김로인의 등에서 짐을 받아가지고 걸음을 옮기며 나는 생각하였다. (김로인과 그 일가의 지성, 그것이 어찌 그들만이 지니고있는 심정이랴. 인민들은 비록 적의 토성안에 갇히여 놈들의 압제밑에서 신음하고있지만 유격대를 한시도 잊지 않으며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는 그 마음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있다. 참으로 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여 싸운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 나는 이날밤 김로인과 함께 림구일대에서의 적의 동태를 탐색할 방도를 토의하였다. 며칠후에는 우리의 련락처인 김로인의 농막에서 그 아들과도 만나 림구역을 통과하는 적의 군수물자수송정형을 알아낼 대책도 세웠다. 이때로부터 우리는 김로인과 그 일가를 통하여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할수 있었다. 그러나 공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림구시내에 주둔한 적군의 무장장비와 훈련정형을 더 구체적으로 장악해야 하며 사진까지 찍어야 했다. 이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김로인과 의논했다. 김로인은 나의 말이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말이 없이 무엇을 생각하다가 《그 일은 내가 맡아할수 없겠나.》하고 나를 마주보는것이였다. 《그건 제가 직접 해야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시내형편에 밝지 못한 자네가? 목숨을 내대는 일이니 직접 하자는겐가? 자네 몸이 어떤 몸이라구, 안되네.》 우리 유격대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로인의 마음은 참으로 뜨거웠다. 나는 사진을 찍어야 하니 그 일은 부득불 내가 해야 한다고 그를 타이르지 않을수 없었다. 김로인은 잠시후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정 그렇다면 할수 없네만. 어디 오늘밤에 집사람들과 의논해보겠네. 무슨 수가 생기겠지.》 이튿날 아침 로인은 기쁜 얼굴로 지난밤에 의논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 조카가 목단강에 있네. 그 애가 자네와 비슷하네. 나이도 그렇고 키도 중축을 넘지. 내 조카노릇을 하면서 시내로 들어가는것이 문제없을상싶네. 조카놈을 우리 집에 온다고 하면서 며칠간 딴곳으로 보내면 적들이 자네 신분을 알아보려고 목단강에 조회를 보낸다 해도 문제없을것이란말일세.》 그는 자기 딸의 의견이라고 하면서 사진촬영의 방도까지 단숨에 죽 내리말하는것이였다. 그 이튿날부터 나는 김로인의 조카노릇을 하기 위한 준비(성명, 생년월일 기타 가족관계들을 암송하는것)를 하였으며 그의 가족들은 조카가 10년만에 온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식은 틀림없이 놈들의 개를 통하여 적기관에도 알려졌을것이였다. 기약한 날이 왔다. 늦은 저녁(목단강에서 오는 기차시간이 이때였다.)에 나는 수박을 가득 실은 우차를 몰고 김로인과 함께 림구시가로 향하였다. 신작로로 나가 한참 걸어가니 성문곁에 놈들의 쌍보초가 보였다. 나는 태연하게 정문으로 다가갔다. 《서라. 너는 누구냐.》 보초병 한놈이 낯설은 나를 보고 웨치는 소리였다. 《이애 말이웨까.》하고 김로인은 재빨리 그놈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나리, 저, 아침에 말씀드린 저의 조카올시다. 목단강에서 지금 오는 길이지요. 얘, 나리께 인사드려라.》 나는 《공손히》 인사를 했다. 김로인은 계속하여 하루종일 보초를 서기에 얼마나 수고하는가고 그놈들을 얼려대면서 수박 4개를 얼른 보초막곁에 갖다놓는것이였다. 보초놈은 그것을 보고 히죽거릴뿐 더는 따져묻지 않았다. 나는 성안으로 천천히 우차를 몰았다. 앞서 가는 김로인을 따라 신작로에서 골목길로 두세번 꺾어들어갈 때였다. 나지막한 초가집앞에 나섰던 젊은 녀인(김로인 며느리)과 큰 처녀(김로인의 딸) 그리고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 잡힌 할머니(김로인 안해)가 나에게로 막 달려나오며 《이게 누구냐.… 네가 10년만에 오는구나.》 《오빠가 온다.》하고 저마다 반겨맞아주었다. 그것은 다만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한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사실 나 역시 그들이 친어머니와 누이들처럼 여겨지는것이였다. 나는 감격에 목메여 잠시 아무말도 못했다. 지난날 꿈에선들 본 일이 있었으랴만 혈육의 정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반겨주며 감싸주는 그들에게 나는 젖어든 눈시울을 슴뻑이며 충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내가 마중 나온 마을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있을 때였다. 경관 한놈이 큰길쪽에서 우리에게로 다가오고있었다. 표독스레 눈알을 굴리며 걸어오는 품이 심상치 않았다. 《왜 모여섰는가?》 경관놈이 이렇게 새된 소리를 지르자 《나리님 오셨습니까, 우리 오빠가 왔어요.》하고 김로인 딸이 대답했다. 《오빠? 무슨 오빠말인가?》 경관놈은 더욱 으르렁대였다. 《아니, 우리 조카가 목단강에 있는것을 나리님도 아시지 않소.》 김로인 안해가 말했다. 그러자 경관놈도 더는 말을 못하고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럴 때 모여선 사람들을 헤집고 《나리님 오셨습니까.》하며 집안에 들어갔던 김로인이 경관앞에 바삐 나섰다. 《이렇게 밖에 서계셔서야 되겠습니까. 방으로 들어갑시다. 조카놈이 온데다 귀한 손님까지 왔으니 수박추렴이나 해봅시다.》 김로인은 그의 팔을 이끌었다. 자기를 환대해주는데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수박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는지 어쨌든 그놈의 얼굴에서 살기가 다소 사라져갔다. 《어서 들어갑시다.》 김로인은 계속 그놈을 구슬려댔다. 그러나 경관놈은 히죽거리면서도 얼른 방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김로인은 《참 섭섭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나 맛을 보게 집으로 보내야 하겠군.》하고 딸에게 큼직한 수박 몇개를 보내는것이였다. 뒤이어 경관놈도 떠났다. 김로인과 그 일가의 뜨거운 지성과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렇게 나는 적의 감시망에서 벗어났다. 방에 들어가니 마치 고향집에 온듯 한 느낌이 들었고 그 집 어머니(김로인의 안해)를 보니 친어머니를 보는듯싶었다. 이날밤 나는 김로인 부부가 밤이 새도록 망을 봐주는 속에서 마음놓고 그 가족과 이야기도 하고 야근에 나간 그의 아들이 보내준 정보도 받았다. 이튿날 늦은 아침 나는 김로인의 딸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가 든 장바구니안에는 꽈배기(과자의 일종)와 함께 사진기도 들어있었다. 우리는 그가 미리 정찰해두었다는 중국집 담벽아래에 자리잡고 가지런히 앉았다. 적병영이 바로 눈앞에 있어 그 마당에 있는 산포며 중기관총, 경기관총, 공병기재들과 훈련하는 적의 꼴들이 손에 잡힐듯 보였다. 오누이로 가장한 우리는 사람들이 다가올 때면 꽈배기를 씹다가는 인기척이 뜸한 기회에는 사진기를 들어 적병영과 기재들, 훈련상태들을 모조리 찍었다. 이렇게 우리는 김로인일가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수 있었다. 이해 가을이였다. 내가 사령부에 보고를 가지고갔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의 공작성과를 여간만 치하해주시는것이 아니였다. 분에 넘치는 그이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나의 눈앞에는 김로인과 그 가족들의 미더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말씀대로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에 의거하여 싸운다면 어떤 어려운 과업이든지 문제없이 해낼수 있다는 확신을 다시한번 가지게 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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