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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자가 갈 길은 오직 한길 ㅡ 혁명의 길밖에 없다
최 봉 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승리로 조국이 해방된지도 수십년이 지났지만 내 가슴속에 깊이 못박힌 일제와 지주놈의 착취와 억압밑에서 살아온 피눈물나는 과거는 오늘도 어제의 일인듯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유년시기를 함북도의 성진(오늘의 김책시) 원평마을에서 보냈다. 1914년 겨울, 눈보라에 문풍지가 윙윙 울리는 어느 추운날 저녁이였다. 《엄마 밥 줘, 밥…》 3살난 동생 보금이가 연신 졸랐다. 《보금아, 아버지가 오시면 밥을 많이 해주마, 응.》 어머니가 안타깝게 달래였으나 보금이는 그냥 발버둥치며 울어댔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때 나는 비록 9살밖에 안되는 철부지였지만 어머니의 이러한 모습을 보니 어쩐지 서글퍼졌다. 그리고 지주놈에게서 진 빚을 갚지 못하여 소작하던 땅을 떼우고 이국땅으로 간 아버지가 못견디게 기다려졌다. 《어머니, 아버지는 언제 오시나요. 네?》 이렇게 묻자 어머니는 나에게 눈물을 보인것을 후회라도 하는듯 얼른 옷고름으로 눈굽을 닦으면서 말하였다. 《지난밤 꿈에도 너희 아버지가 뵈였는데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곧 돌아오실게다.》 (정말 아버지가 오시면 얼마나 좋을가. 아버지는 돌아올 때 쌀도 많이 사오고 돈도 많이 벌어오겠다고 했지.)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는 어느날이였다. 뉘집 품팔이를 하고 늦게야 돌아온 어머니는 주인집에서 권하는 몇숟가락의 밥을 잡숫지 않고 그것을 나무잎에다 싸가지고 와서 떨리는 손으로 보금이의 입에다 떠넣어주며 눈물을 떨구었다. 어머니는 동구앞 백양나무우에서 까치가 울어도, 천장에서 거미가 내려와도 혹시 아버지가 오시지 않나 해서 고개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아버지를 안타까이 기다리였다. 그러나 여름도 가고 겨울이 되여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루한 겨울도 다 가고 봄이 다가온 어느날 밤이였다. 나는 잠결에 나를 찾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처럼 안타깝게 기다리던 아버지였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아버지.》하고 웨치며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어머니도 울었다. 다만 철없는 보금이만이 《아버지, 쌀을 사왔나요? 돈을 많이 벌어왔나요?》하고 아버지의 옷자락에 매여달리며 물었다. 잠시후에야 나는 고콜불에 비치인 아버지의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기골이 장대한 아버지의 얼굴에는 광대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보였고 더덕더덕 기운 옷은 람루하기 그지없었다. 《로씨야땅도 매한가지요. 한해동안이나 머슴살이하면서 번 돈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려.》 아버지는 터지고 매듭진 손으로 55냥의 돈을 꺼내놓으며 한숨을 지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꼭두새벽에 지주놈이 선참으로 우리 집에 찾아왔다. 《임자, <아라사>땅까지 갔다왔는데 리자가 더 늘어나기 전에 우리 빚부터 물어야지.》 《글쎄 손에다 쥔 돈이 있어야지요. 굶어서 부은 저 어린것들을 좀 보시오.》 아버지가 지주놈에게 애원했으나 이런 사정에 귀를 기울일 지주놈이 아니였다. 《잔말 말구 돈을 이리 내놓으라고, 법에 소송을 걸어야 정신을 차리겠나?》하며 자주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무슨 일을 칠상 싶었다.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누데기옷속에 꼬기꼬기 싸넣었던 돈을 맥없이 지주놈에게 꺼내놓았다. 《아버지, 그 돈을 왜 줘요?》 내가 물었으나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보금이를 껴안고 흐느껴울었다. 《쥐구멍에도 해들 날이 있다구 우리도 밥먹고 살 때가 있겠지. 듣는 말에 의하면 간도땅은 우리 같이 가난한 사람들도 살수 있는 고장이라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로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분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무엇때문에 그놈은 아버지가 피땀으로 번 돈을 함부로 빼앗아가는지 또 무엇때문에 아버지는 그놈에게 돈을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는지 알수 없었다. 그때 나는 빼앗고 빼앗기며, 먹고 먹히우는 지주, 자본가제도의 본질을 알기에는 너무나도 나이가 어리였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난 이른봄에 우리 일가는 정든 고향을 떠나 살길을 찾아 간도땅으로 들어갔다. 길가의 수수짚무지가 아니면 뉘집 부엌에서 밤을 새우며 수십일만에 다달은 곳이 바로 연길현 쟈피거우였다. 거기에서 우리는 누가 살다가 버리고간 움막에다가 거적때기를 치고 살림을 차렸다. 바가지와 숟가락만 있으면 살수 있다던 간도땅에도 우리가 낟알을 심어먹을만 한 땅은 한뙈기도 없었다. 하는수 없이 우리는 이 고장의 지주 리훈장의 소작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육신을 놀려 부지런히 일하면 그래도 살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매일 밭에 나가 부지런히 일하였다. 우리 가족은 방아간에 내버린 겨를 걷어다가 망에 빻아 나물에 버무려먹거나 소나무껍질을 짓이긴데다가 강냉이가루를 묻혀먹으면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을을 했다. 그러나 이해 가을 리훈장에게 뜯기우고나니 타작마당에서 빈 키만 들고 나앉지 않으면 안되였다. 해가 바뀔수록 빚은 늘어나고 생활은 더 어려워졌으며 굶주림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였다. 내가 16살 나던 해였다. 어려운 집형편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어서 나는 1년에 45냥을 받기로 하고 외우벌에 사는 지주 최가놈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다. 머슴으로 들어간지 며칠후인 어느 명절날에 있은 일이다. 아침 일찍부터 지주집 애들은 고운 옷을 떨쳐입고 산소로 가는 제 부모를 따라나섰다. 이날 이른아침 최가놈은 나를 데리고 터밭으로 나갔다. 《얘, 저 밭 꼴을 좀 봐라. 사람들이 어찌나 다녔는지 길이 다 났구나. 오늘은 명절날인데 저 밭이나 다 갈고 푹 쉬여라.》 지주놈은 제법 상냥스럽게 말하고나서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따져봐도 빨리 갈고 노는건 고사하고 진종일 갈아도 갈아낼것 같지 않았다. 다른 농사일은 해보았어도 나는 아직 밭갈이만은 해보지 못하였던것이다. 나는 밭머리에서 오래동안 신고한 끝에 간신히 황소에 보습을 메웠다. 그런데 정작 밭을 갈자니 보습이 어찌나 무거운지 움직일수가 없었다. 사실 보습만한게 보습을 다루자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보습을 겨우 밭고랑에 박았다. 살이 유들유들 찐 누런 황소는 느릿느릿 움직였다. (비록 땅은 없더라도 이런 소만 있었으면 부대기를 일구더라도 머슴살이야 하겠는가. 지주놈의 소작살이를 하는것도, 머슴살이를 하는것도 모두가 제 땅이 없기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머슴을 산 다음에 지주에게서 돈을 받기만 하면 송아지 한마리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났다. 황홀한 공상에서 깨여난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제법 목청을 돋구면서 채찍을 허공중에 내둘렀다. 황소는 와락 힘을 썼다. 그 바람에 보습은 땅을 파제끼지 못하고 쭉 미끄러져나갔다. 나는 보탑에 매달려 보습을 땅에 박으려고 애를 써보았다. 그러나 소를 잘 몰지 못하여 황소는 밭고랑을 곧추 타고 나가지 않았다. 소는 좌로우로 달아나면서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러다가 밭을 다 갈지 못하면 어쩔가? 지주놈이 쓸모가 없다고 나를 내쫓지나 않을가?… 어떻게 하든지 밭을 다 갈아야 하겠다.)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 좌우로 빗나가려는 보습을 곧고 깊게 대느라고 있는 힘을 다 썼다.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고 허리가 부러지는것 같았으나 쉬지도 못했다. 저녁때가 되여서 내가 마지막 밭이랑을 갈아나가는데 술에 거나하게 취한 지주놈이 아들녀석을 이끌고 밭머리에 나타났다. 《야 이놈아, 그렇게 일하다가는 죽값도 못하겠다. 생땅을 남기고도 밭을 갈았다고 하겠느냐, 당장 다시 갈아라.》하며 지주놈은 눈알을 굴리였다. 온종일 기를 쓰고 일한 사정도 몰라주는것이 괘씸하여 《처음 하는 일이 돼서 그렇게 된걸 어떻게 하겠나요.》라고 나는 대꾸하였다. 《다시 갈라면 갈게지 뉘앞이라고 대답질을 해.》 지주놈은 개화장으로 웃옷을 벗은 나의 등을 힘껏 후려쳤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그저 지주놈의 상판대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나는 부모에게서도 맞아보지 않던 매를 이놈한테 맞아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든 나는 못살기때문에 받는 구박과 천대가 하도 서러워 보습을 쥔채 소리없이 흐느끼며 울었다. 이렇게 나의 머슴살이는 쇠사슬이 없는 노예생활이였다. 한발자국 문밖을 나가자고 해도 지주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나는 사시장철 더덕더덕 기운 베잠뱅이를 벗어보지 못하였고 끼니때면 신발도 못벗고 부엌에 걸터앉아 된장에다 먹다 남은 밥찌꺼기가 아니면 가마치로 끼니를 에웠다. 첫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서 외양간을 치고 소여물을 끓이고 온종일 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올 때에도 소꼴을 해지고 와야만 했다. 밤에는 지주네 식구가 다 잠든 야밤삼경까지 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았다. 그해 늦은 봄명절날이였다. 이른새벽부터 지주집 자식들은 새옷을 입는다, 몸치장을 한다 하며 부산을 피우며 돌아갔다. 진수성찬을 차려먹고난 그들은 웃고 떠들며 그네터로, 씨름판으로 뛰여나갔다. 동네의 다른 지주집아이들도 놀음터로 가는것이 보이였다. 마당을 쓸고 외양간을 치며 그 광경을 보는 나의 마음은 어느덧 명절기분으로 설레이였다. 한식날 경험도 있어서 며칠전부터 밀린 일을 다해놓고 난 나에게는 황소를 걸고 힘을 겨루는 씨름판정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지주한테 나도 씨름판으로 가겠다고 말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지주에게로 갔다. 《내 가보았는데 갈밭골에 소꼴이 많더라. 오늘은 명절날인데 시원히 바람이나 쏘이면서 소꼴이나 한발구 해오너라.》하고 최가놈은 크게 생각이나 하는듯이 제법 생색을 내며 말하였다. 명절날에 놀지 못하는것도 분하려니와 지주놈의 교활한 검은 배속이 그대로 들여다보여 개기름이 번지르르 도는 그 징그러운 낯판대기에 침이라도 탁 뱉고싶은것을 겨우 참았다. 어쩌는수 없이 나는 온종일 갈밭골에 가 소꼴을 베여가지고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명절날이 이럴진대 다른 날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고역과 멸시에 찬 나날이 흘러 1년간의 머슴살이기한도 다된 어느날이였다. 최가놈은 나를 불러앉히고는 문서장을 뒤지며 수판알을 잘그락거리였다. 그리고나서는 지난 여름에 후치질을 하다가 내가 후치날을 부러뜨린 값을 제하고 감기를 만나서 일하지 못한것과 1년동안의 식비를 제하고 회계를 맞추어보니 나에게 줄 돈은 다 나간셈이라고 하였다. 《이봐, 회계는 그런데 너희집 형편이 하도 딱하구 네가 직심히 일한것도 생각해서 내가 사정을 봐주기로 했다.》 지주놈은 넌지시 나의 얼굴을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윤두소로 준 우리 암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그 송아지를 너에게 주자고 한다. 네 생각에는 어떠냐? 그러면 5냥이 더 가는셈이다. 그 대신에 밭갈이때에는 우리 집 밭을 갈아줘야 한다.》 지주놈은 이렇게 다짐까지 하는것이였으나 나는 하늘에라도 날아오를듯 기뻤다. 돈이면 오금을 못쓰는 흉측한 이놈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고 송아지를 주겠다고 할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였지만 그렇게 소원하던 송아지를 준다는 바람에 귀가 번쩍 틔였던것이다. 그런데 정작 송아지를 보니 갈비대가 아롱아롱한게 몰골없이 여위였다. (지성이면 돌에서도 풀이 난다는데 잘 먹이고 기르면 춰서겠지.) 나는 어쨌든 송아지를 가지게 된 기쁨에 휩싸여 다른 생각을 더 할사이도 없이 여윈 송아지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집에서는 송아지 한마리를 놓고 전에 없는 웃음꽃이 피였다. 《소를 사자고 하던 평생소원을 봉호가 풀었구나. 올리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고, 우리도 인제는 살길이 트이는 모양이다. 저 송아지가 커서 새끼를 낳게 되면 그걸 팔아서 우리 봉호 장가들 때 례장감을 삽시다.》 어머니가 하는 말이였다. 나는 이때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가 웃는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날밤에도 몇번씩 밖에 나가 송아지를 쓰다듬어보고 들어와서는 《그놈의 송아지가 참 잘 생겼거든.》하며 기뻐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송아지가 여물을 먹지 않았다. 내가에 나가 개구리를 잡아다가 먹여보았다. 여윈 소를 춰세우는데 개고기가 좋다고 해서 나중에는 하나밖에 없는 황등개까지 잡아서 송아지에게 먹여보았다. 그래도 송아지는 여위기만 했다. 금덩어리처럼 귀중히 여기던 송아지는 며칠후 끝내 죽고말았다. 소병을 고친다는 사람이 와서 무종병에 걸려서 자기가 고칠수 없다고 한 송아진데 어떻게 되여 이 송아지가 이 집에 왔는가고 해서야 최지주놈의 교활한 속임수에 넘어갔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최가놈은 처음에는 《병든 송아지라니 웬 말이냐.》고 펄쩍 뛰더니 나중에는 그저 덮어놓고 모른다고 뻗대였다.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수 없는 기막힌 일이였다. 지주놈의 머슴살이를 하면서 소를 기르고 그것을 밑천으로 남과 같이 살아보자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허황한 생각이였는가를 비로소 깨달은 나는 최지주놈의 저주로운 낯짝에 침을 뱉고 돌아섰다. 이리하여 최가놈의 손아귀에서 1년동안에 피땀흘려 일한 보람도, 아버지, 어머니의 크나큰 희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지주의 간악한 속임수를 알게 된 어머니는 너무도 억울하여 며칠동안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후에도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바득바득 애썼다. 룡정아래 동성우 왕배토골안에 이사하여 지주 장가놈의 소작살이도 해보았고 토성촌에 이사하여 다른 지주의 머슴살이도 해보았다. 그후에는 화전농사도 해보았다. 나중에는 소금장사까지 해보았으나 소금장사로도 우리 일가의 어려운 생활을 구원할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일제가 만주를 강점한 이후부터 일제의 파쑈적억압과 야만적착취로 인하여 더는 살아나갈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어디를 가서 누구의 소작살이를 하나, 머슴살이를 하나 지주, 자본가가 주인노릇을 하는 세상에서는 매한가지였다. 조선에서나 로씨야땅에서나 중국땅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온갖 굴욕과 멸시를 참고참으며 남보다 곱절이나 일하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때까지 품어온 불공평한 사회에 대한 의혹에 대하여 리론적으로는 풀수 없었지만 지주, 자본가놈들이 무산자들을 착취해먹기때문이라는것을 체험을 통하여 깨닫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후 혁명가들과 접촉하고 계급적으로 각성되면서 우리가 대대로 섬긴 지주놈들이나 자본가놈들은 어느놈이나 할것없이 한배에서 나온 승냥이들-로동자, 농민의 피땀을 긁어먹고 기름진 착취사회의 포만한 배속에서 나온 승냥이들이라는것을 알았다. 동시에 나는 빈주먹으로 아무리 하소연하여도 우리 무산자들의 처지는 개선될수 없으며 오직 무장을 들고 이 세상의 온갖 불행과 재난의 화근인 착취제도를 타도해야만 로동자, 농민들이 잘살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이리하여 나는 1932년 봄, 호미를 잡았던 손에 총을 잡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항일무장투쟁의 대오에 나서게 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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