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수 없는 혈육의 정


   

끊을수 없는 혈육의 정

 

오  백  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지휘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 소부대활동을 진행하던 1942년 여름에 있은 일이다.

며칠째 계속 내리던 비가 멎은 어느날. 우리 소조일행은 함경북도 은덕군(당시 경흥군)송림동뒤에 있는 《보로지》산속에 이르렀다.

오래간만에 해빛을 보는 우리는 젖은 옷도 말릴겸 잠시 휴식할 생각으로 해빛받이 나무밑에 제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수림이며 안개속에 잠긴 아름다운 동해의 푸른 물, 조국의 산과 바다는 류달리 아름답게 보였다.

(내 조국은 언제 봐도 정말 아름답구나.)

나는 형언할수 없는 감격에 싸여 조국의 산과 들을 눈여겨보았다. 보면 볼수록 모든것에 점점 더 정이 가고 귀중하게만 여겨졌다.

조국의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나는 라진앞바다에서 길게 연기를 뿜으며 일본쪽으로 건너가는 검은 배가 눈에 띄우자 그만 북받쳐오르는 증오감을 금할수 없었다.

(조선사람들의 재물을 깡그리 략탈해가는 도적놈들…)

조국의 어느 곳에서나 깡통을 들고 거리를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과 왜놈 십장이 휘두르는 채찍에 쓰러지면서 저주로운 세상을 원망하는 수많은 부두로동자들의 원한에 찬 얼굴들이 보였다.

남의 나라에 기여들어 주인행세를 하는 강도놈들을 하루속히 몰아내지 않고서는 우리 인민에게는 자유도 행복도 있을수 없다는것을 가슴이 미여지게 느꼈다.

나는 일제놈들에 대한 증오와 격분으로 하여 주먹을 부르쥐며 피우던 담배를 풀섶에 내동댕이쳤다.

순간 나는 담배꽁초가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뜻밖에도 어린아이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이 깊은 산속에 웬 어린애의 발자국이 있을가?)

이러한 의심을 가지며 나는 그 발자국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비에 젖은 땅우에 또렷이 찍혀져있는 그 발자국은 6~7살가량 되는 어린아이의 발자국이 틀림없었다.

발자국이 난 주위에는 둥굴레를 캐느라고 파헤친 흔적이 군데군데 눈에 띄였다. 아직 채 시들지 않은 둥굴레 잎사귀를 집어든 나는 그것이 방금전에 뜯은것임을 단정하였다.

(어린것이 먹을것을 찾느라고 맨발로 이 험한 산판을 걸어다니였구나.)

나는 이때 조국의 어디서나 목격할수 있는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와 마찬가지로 이 깊은 산속에서도 헐벗고 굶주리는 조선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모두 여기 와서 이 발자국을 보오.》

나는 동무들을 불렀다.

어린아이의 발자국을 더듬어보는 동무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어디서나 볼수 있는 다만 철없는 어린아이의 발자국으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그 발자국에서 악독한 일제의 학정에서 허덕이는 그리운 부모형제들의 신음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우리의 가슴은 끝없는 비분으로 차고넘쳤다. 마치도 그 발자국의 주인공이 내 혈육처럼 생각되였다.

나는 동무들에게 잠시 기다리도록 하고 그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어린아이를 찾아 한걸음한걸음 걸을수록 나의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이 어린것이 어디 가서 풀뿌리를 담은 바구니를 안고 쓰러지지나 않았는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계속 발자국을 더듬어갔다.

발자국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던 나는 산비탈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린아이가 걸어간 앞수림속에는 제비둥지처럼 통나무기둥에 흙을 뭉쳐 쌓은 한채의 작은 초막이 눈에 띄였다. 문이라고 짐작되는 한장의 거적을 달아놓은 이 집은 집이라고 말할수 없는 초라한 초막이였다.

한참동안 주위를 살피고난 후에 나는 그곳으로 접근하여갔다.

초막문앞에서 걸음을 멈춘 나는 조심히 주인을 찾았다.

《예, 거 누구신가요?》

《지나가던 사람인데 잠간 쉬여갈수 없습니까?》

나는 주인의 승인을 얻은 후 거적문을 들치고 방안에 들어섰다.

부엌이자 방인 좁은 초막안은 발을 옮겨놓을 자리조차 찾기 어려울 지경이였다.

내가 방안에 들어서니 주인집 아주머니는 둥굴레뿌리를 씻어 가마에 안치고있었다.

그리고 주인은 깔개도 없는 봉당에 앉아 나무껍질로 신을 삼고있었다.

《여기 와 좀 앉으시우.》

주인은 봉당에 널려있는 나무껍질을 한쪽으로 쓸어놓고 자리를 권하면서 나를 유심히 살피는것이였다.

비가 온 뒤여서 초막천장에서는 누런 물방울이 아직도 뚝뚝 떨어지고 벽은 곰팡이가 뿌옇게 끼여 썩은 냄새를 풍기고있었다.

방안을 살펴보던 나는 더 묻지 않고도 이 집식구들의 살림형편을 짐작할수 있었다.

나는 은덕탄광에 끌려가 일하다가 도망쳐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주인에게 말을 건늬였다.

그런데 그는 내가 하는 말을 들을 때나, 묻는 말에 대답할 때나 일손을 멈추지 않고 곁눈질을 해가며 나의 일거일동을 유심히 살펴보는것이였다.

나는 그 까닭을 인차 짐작할수 있었다.

그는 나를 탄광에서 도망쳐오는 로동자로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일제놈의 밀정이 아닌가고 의심하는것이 분명하였다.

내가 그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물으면 물을수록 《당신은 그런걸 몰라서 묻소?》하고 마치 가슴에 칼이라도 품고 마주서는 사람처럼 쏘아붙이는것이였다.

나는 원쑤를 미워하는 주인의 언행이 나무랍다기보다 오히려 몹시 미덥고 고맙게만 여겨졌다.

《해가 저물어가는데 이 집에서 하루밤 쉬여갈수 없을가요?》

내가 일부러 이렇게 묻자 주인은 안된다고 단마디로 딱 잘라버리는것이였다.

《일본놈들때문에 그러는가요?》

내가 넌지시 이렇게 한마디 더 하자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는것이였다.

나는 그의 심정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잘 쉬고 갑니다.》

나는 이렇게 인사말을 남기고 거적문을 나섰다.

이때 나에게는 일제에게 착취받고 억압당하는 인민들에게 새힘과 희망을 안겨주라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비록 왜놈들에게 쫓기여 심산속에 들어와 모진 고생을 겪을망정 적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사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새힘과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를 후에 다시한번 꼭 찾아보기로 하고 마당에 내려섰다.

주인도 어딘가 나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인지 나의 뒤를 따라 밖에 나와서 바래워주는것이였다.

안주인은 너덜이 난 옷을 걸치고 차마 그대로 밖에 나올수 없어서인지 거적문으로 몸을 감싸며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이때 밖에 나갔던 이 집 딸애가 손에다 둥굴레뿌리 몇개를 쥐고 맨발로 걸어오고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이 어린 처녀애가 바로 우리가 살펴보던 발자국의 주인공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어린애는 낯설은 나를 아래우로 찬찬히 쳐다보더니 머리를 숙이고 다시 걸어오는것이였다.

아이가 걸친 옷 역시 형체뿐이였고 발과 다리는 가시에 찢기여 뻘겋게 피가 흐르고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나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아팠다.

나는 그 아이앞으로 다가가 그를 덥석 품에 그러안고 볼을 비볐다.

《얘야, 이제 오래지 않아 배를 곯지 않고 잘살 날이 꼭 온다.》

나는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속삭였다.

어린것을 가슴에 안은채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끄집어내였다.

《자, 엄마보고 신도 사달라고 하고 옷도 사달라고 해라. 응…》

천진란만한 이 어린것은 다시한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손에 쥐였던 둥굴레를 쥐여뿌리고 좋아라고 내가 주는 돈을 받아쥐고 고개를 돌려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는것이였다.

이 광경을 보며 부부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이윽고 어린아이는 자기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가 조그마한 주먹을 펼쳐보이는것이였다. 아이어머니는 어린애를 안으며 눈물을 머금었고 주인은 말없이 나를 찬찬히 바라보고있었다.

그들부부의 눈에는 나를 의심하던 빛이 사라지고 그 어데인가 확신에 찬 빛이 어려있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도 거칠고 큰 두손으로 나의 손을 힘있게 마주쥐였다. 그리고는 흥분으로 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은 두만강건너에서 오지 않았소?》하고 나직이 묻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대답도 들을새없이 나의 손을 잡아 집안으로 이끄는것이였다.

맨봉당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주인과 함께 소조원들을 데리고 등너머에 있는 숯가마터로 갔다.

그는 숯가마터에 이르자마자 숯불을 피워놓고 우리들에게 쪼이라고 하였다.

비에 젖은 옷을 말리지 못한채 그대로 입고다니던 우리는 숯불에 옷을 말리면서 주인에게 일본놈들을 쳐부시던 무수한 전투이야기들과 함께 왕청지방에서 있었던 전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를 유격대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그는 식사를 준비해오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가지고다니는 비상용빵이 있으니 걱정 말고 함께 앉아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면서 굳이 그를 만류하였다.

《너무 이러지 마십시오. 비록 둥굴레뿌리를 삶아먹지만 나라를 위해 싸우는 당신들을 대접할 몇되박의 쌀은 있습니다.》

그가 나간 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우리는 교대별로 감시를 하면서 얼마동안 휴식하고있었다.

얼마후 집주인이 그릇에 김이 나는 밥과 국을 담아가지고 숯가마로 올라왔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우리는 그에게 김일성장군님을 아는가고 물었다.

김일성장군님이요? 알다뿐이겠소!》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서는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어째 모르겠습니까. 조선사람이면 누구나 그분을 잘 알고있습지요.》

이렇게 허두를 떼고는 자기가 이미 왕청지방에 가서 목재로동을 할 때부터 김일성장군님에 대해서 알고있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덧붙여 말하는것이였다.

몇해전에 그는 일본놈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왕청현 어느 벌목장에 끌려가서 고역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유격대의 활동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것도 한두번만이 아니였다. 오늘은 어디서 일제놈군대들이 녹아났다거나 《만주국군》이 무장해제를 당했다는 소문이 매일과 같이 이사람저사람의 입을 건너 전해졌다.

또 유격대공작원들이 목재소에 찾아와서 로동자들을 만나는 때도 있었다. 이런가운데서 그는 계급적으로 각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조국이 해방될 그날을 굳게 믿었고 어떻게 하면 유격대를 도울수 있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적들은 《불온분자》를 물색한다고 하면서 목재소에 달려들어 로동자들을 닥치는대로 잡아갔다. 그때 그는 겨우 몸을 피하여 그길로 조선에 나왔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하루하루 품팔이를 하며 돌아다니다가 이 산속에 들어와 놈들의 눈을 피하여 더러운 세상을 등지고 살고있었다.

이런데로부터 그는 나를 처음 대하자 일본놈의 《밀정》이 아닌가고 생각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왕청에서 몇번 만난 일이 있는 유격대공작원들과 상통되는 점을 발견했다는것이다.

그와 우리는 밤이 깊도록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맡겨달라고 나서는것이였다.

그는 진심으로 우리 일을 도와주려고 하였다.

우리는 일제가 그처럼 최후발악을 하던 그 암담한 시기에도 조선인민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것을 이 초막주인을 통하여 똑똑히 보고느꼈다. 우리는 인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원조를 받는 우리의 정당한 투쟁은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그곳을 떠났다.

그후 그는 우리와 긴밀한 련계를 가지고 활동하게 되였다.

유진에서부터 라진, 선봉을 거쳐 은덕에 이르는 이 일대에서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다니며 우리의 공작을 도와주는 그를 일본놈들은 《보로지》산속에서 나타나는 한갖 《숯쟁이》로만 여겼다.

그의 아주머니도 봄철이면 두릅 기타 산나물장사군으로, 가을철이면 산과실장사군으로 가장하고 대낮에 장정들도 감히 들어서기 두려워하는 무시무시한 저술령을 한밤중에 넘나들면서 놈들의 군수창고와 해군기지 그리고 일제놈들 사택지구에까지 들어가 적정을 탐지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그들부부는 몇년동안을 하루같이 항일유격대의 전투승리를 보장하기에 힘썼다.

나는 그들부부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서 무한한 긍지와 기쁨이 피여나고있는것을 보았다.

언제인가 그들이 우리에게 하던 다음과 같은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있다.

《이역땅에서 온갖 고난을 겪으시며 일본놈들과 싸우시는 장군님과 유격대어른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굶을 때에도 배고프단 말을 못하였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그저 앞날이 든든해서 저절로 새힘이 생기지요.》

이 얼마나 참되고 진실한 심정이며 우리들에게 힘을 주는 말이였던가!

우리는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는 인민들의 지지와 사랑속에서 15성상의 장구한 기간 악독한 일제와 싸워이겼다.

3천만 우리 인민이 바라고바라던 조국해방의 그날. 적들의 최후발악을 무찌르며 조국땅에 상륙한 우리는 만세를 웨치며 환영해주는 인민들속에서 그들부부와 어린아이를 다시 만날수 있었다.

바로 그날을 굳게 믿고 자기의 목숨도 두려워함이 없이 우리 유격대를 도와 싸운 그들과 뜨겁게 손을 잡은 순간 나는 진정 목이 메여 말을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찾아주신 해방된 조국땅에서 기쁨을 나누게 된 우리는 서로 감격과 흥분속에서 《보로지》산속의 초막과 숯가마터에서 만나던 일들을 회상하였고 조국의 앞날에 대하여서도 밤가는줄 모르고 이야기하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